세상은 넓다. 문화도 다양하고 사는 모양도 가지가지다. 관광지 중에도 독특한 곳이 꽤 된다. 엽기라고 할 만한 곳도 있다. 태즈메이니아의 작은 항구 도시 포트아서. 보기 드문 컬트 여행지다. 거기선 고스트(Ghost) 투어, 즉 귀신 관광을 한다.

포트아서를 처음 방문했던 때는 중국의 작은 거인 덩샤오핑이 죽은 해다. 그러니까 1996년. 당시 포트아서가 어떤 곳인지 짐작조차 못했다. 태즈메이니아도 생소한데 포트아서를 알 리 없었다. 아, 참. 독자 여러분을 위해 태즈메이니아에 대해 한마디. 태즈메이니아는 호주 대륙 남단의 섬으로 자연이 완벽하게 보존된 휴양지다. 한마디로 우리의 제주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하다. 섬은 남한만큼 크다. 일행은 딱 6명. 대만인 2명, 홍콩인 2명, 한국인 2명이었다.

동물들의 시체가 널려 있는 길을 따라
가는 길부터 음산했다. 로드킬(Road Kill: 동물이 도로를 건너다 자동차에 치여 죽는 것) 때문이다. 수많은 야생동물들의 핏자국이 길에 찍혀 있었다.

“저거 캥거루 같은데” “아 저건 월러비예요. 캥거루와 비슷한데 약간 다르죠. 그 옆에 있는 것은 포섬이라는 동물인데….”

포트아서 가는 길에는 아직 치우지 않은 죽은 야생동물이 널려 있었다. 섬뜩했다. 게다가 날도 잔뜩 흐려서 여행길이 신나지 않았다. 미지의 여행지를 만난다는 설렘에 가슴이 들떠 있어도 시원찮을 판에 왠지 우울했다. 관광지 입구. 십자가 앞에 꽃다발만 가득 쌓여 있다. 그 옆에 경고문 하나.

‘여기 있는 직원들은 모두 끔찍한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슬픔을 떠올리지 않도록 사건에 대해 제발 묻지 말아주십시오.’

알고 보니 기자가 방문하기 직전 이 지역에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던 거다. 1996년 4월. 한 남자가 갑자기 자동소총을 꺼내 관광객과 주민을 가리지 않고 난사했다. 35명이 죽고, 부상당한 사람도 수십 명이나 됐다. 사무실에서, 유적지에서, 화장실에서도 사람들이 총을 맞고 쓰러졌다. 태즈메이니아의 작은 관광지 포트아서는 전 세계에 전파를 탔고, 호주 대륙 전체는 슬픔에 빠졌다. 호주 역사상 최악의 살인사건이었다.

그런 사고 때문에 내 마음까지 우울했을까? 괜히 안쓰러웠다. 일행은 유적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나지막한 단층 호텔로 안내됐다. 짐을 푼 뒤 투어 준비에 나서려는데 현지 가이드로부터 투어는 해 지고 난 다음 시작된다고 한다.

“왜 투어를 밤에 하지?” “글쎄, 사람 수십 명이 죽었다는데 밤에 한다니 어쩐지 기분이 으스스해지는데.” 대만과 홍콩인들은 모두 여성이었는데 그들 역시 무섭다는 투였다.

드디어 투어 시작. 관광 안내 데스크에 가니 벽면에는 관광객이 보내온 사진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관광객 뒤에 무표정으로 서 있는 희미한 소녀라든가, 희끄무레한 물체….

태즈메이니아를 달리다 보면 끝없이 이어진 초원을 만난다.
“이게 뭐죠?” “관광객들이 유령이 나타난 사진을 보내준 거예요. 행운이 있으면 고스트를 만날지도 모르죠.” 관광 안내 데스크 앞에서 만난 가이드는 랜턴을 들고 커다란 느릅나무 앞으로 안내했다. 어두운 표정의 가이드는 영어로 “자, 이제 고스트 투어를 시작하겠다”며 랜턴으로 느릅나무 위를 비췄다.

고개를 들어 나뭇가지를 쳐다보던 대만과 홍콩 여인들은 갑자기 소리를 꽥 질러댔고, 옆에 있던 외국인은 “오 마이 갓”이라며 비명을 질렀다.

나무엔 사형수들에게 씌우는 올가미가 걸려 있었다. 가이드는 이곳이 죄수들의 수용소였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귀신이 출몰한단다.

“정말 고스트가 나오나요?” “물론이지. 겁낼 필요는 없어요. 모두들 신날 걸요. (Absolutely Right! Don't be Scared. It Thrills You)”

갑자기 머리카락이 섰다. 다리 근육은 뻣뻣해지고, 목은 묵직한 돌덩이를 단 것처럼 무거워졌다.
태즈메이니아의 포도밭 풍경. 포도밭도 유명하다.(사진 위) 개들이 양을 몰고 있다. 태즈메이니아는 광활한 목초지가 많다.(사진 아래)
“세상에 이런 투어도 다 있다니?” 머릿속이 갑자기 뒤엉켜버렸다. 불쑥불쑥 엉뚱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까 길바닥에 수없이 남아 있던 핏자국이 뭐였지? 도로 가장자리에 버려져 있던 월러비 얼굴이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월러비 입가엔 붉은 핏덩이가 굳어 있었다. “어쩐지 로드킬이 많았어. 그건 그렇고 총기사고로 무고하게 희생당한 영혼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투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기억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근심, 불안, 엉뚱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성은 통제력을 잃고 제 맘대로 이런 상황, 저런 상황을 떠올려댔다. 바이러스에 걸려 ‘Del’키를 눌러도 지워지지 않는 컴퓨터처럼 머릿속은 복잡했다.

포트아서 유적지는 죄수를 수용한 감옥이었다. 끊임없는 살인과 죄수 학대 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현장이다. 여러 번의 화재로 폐허가 돼 벽과 부서진 건물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폐허에서 진행되는 귀신 관광
해가 저물고 나자, 건물을 비추던 조명도 꺼졌다. 고스트 투어를 시작한다는 뜻이다. 가이드는 큼지막한 느티나무 아래로 참가자들을 불러 모았다. 불빛이라곤 가이드가 들고 있는 전등 하나뿐. 드디어 어둠 속으로 귀신을 만나러 출발!!!

포트아서는 1830년에 세워졌다. 포트아서는 호주 대륙을 건설하기 위해 물자를 조달하는 공장이자 감옥이었다. 질 좋은 목재를 얻기 위해 영국 정부가 이곳에 감옥을 세우고 노동자 대신 죄수를 보냈다. 죄수들은 영국에서 꼬박 9개월이 걸려 이 땅에 도착했다. 숲은 울창했고, 호주 대륙까지 바다는 멀었다. 간수들은 바다에 무시무시한 상어가 산다고 겁을 줬다.

죄수들은 중노동에 내몰렸다. 감옥이 아니라 차라리 지옥이었다. 현재 새로 지어진 기념관에는 당시의 상황을 볼 수 있는 죄수의 옷과 복장 등이 전시돼 있다. 한겨울에도 얇은 죄수복 한 벌이 전부. 죄수들은 채소 죽과 소금에 절인 자그마한 고깃덩이만 먹고 죽도록 일을 했다.

과연 이들이 얼마나 흉측한 범죄를 저지른 죄수였을까?

“실제로 흉악범은 드물었다고 해요. 장난감과 손수건을 훔쳤다고 여기까지 끌려온 아홉 살 소년도 있었답니다. 당시 영국 법은 엄격했어요. 지금은 인권을 떠들지만 당시엔 사람을 짐승보다 못하게 취급했죠. 일곱 살이면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직접 져야 했고, 여덟 살이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포트아서는 폐허다.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부서져 벽만 남아 있다. 조명에 비친 붉은 벽돌 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1884년과 1897년에 일어난 원인 모를 화재로 인해 많은 건물들이 잿더미가 됐다. 총독의 관저, 군부대 감시탑, 감옥 터, 독방, 교회 중 관저와 병사들의 숙소 일부를 제외하고는 벽만 남아 있다.

철원의 노동당사와 비슷하다. 1853년 죄인 수송이 중단됐고, 1877년 포트아서가 폐쇄될 때까지 이곳에서 일했던 죄수들은 평균 2천 명 정도였다. 죽어도 유골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바로 앞에 있는 무인도에 묻혔다. 이 섬이 바로 `죽은 자의 섬.’ 1천1백 기의 무덤이 있다.

포트아서의 슬픈 역사와 귀신을 본 사람들
고목 아래서 투어가 시작되면 가이드는 다 무너진 교회로 관광객들을 끌고 갔다. 교회 앞까지 을씨년스러운 느티나무 고목들이 도열해 있다. 유럽의 드라큘라 영화 속 배경 같다. 교회는 천장도 무너졌다.

1 포트아서 내의 교회 내부. 교회 내부에는 칸막이가 쳐 있다. 죄수들이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2 유적지 내 총독의 사저. 총독의 딸로 보이는 여자 귀신이 출몰하는 곳이다. 3 주도 호바트의 살라망카 시장.
이 교회가 첫 번째 유령 출몰지. 교회를 세울 당시 죄수들이 시비가 붙었다. 두 사람이 싸우다 결국 한 명이 살해됐다. 죄수의 핏자국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단다. 호바트로 끌려간 살인범은 교수형을 당했다. “속죄를 하고 교회를 세워도 정성이 부족할지 모르는데 살인까지 난 교회라니…?”
이후 교회에선 죽은 자의 비명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교회 옆에 붙어 있는 군인들의 숙소 앞에서도 유령을 봤다는 목격자가 많았다. 이곳에 주둔했던 병사의 부인은 임신 중 죽었다. 그후 이 집에선 뱃속의 아이가 세례를 받지 못해 천국에 가지 못한다며 흐느끼는 여인의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어느 날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깬 투숙객이 객실 프런트에 항의했죠. 지붕 위에 아이들 좀 내려오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프런트 직원은 오늘 투숙한 아이들은 없다고 했죠. 그래서 투숙객은 자신이 직접 봤다는 아이들의 얼굴을 직원에게 설명했습니다. 설명을 들은 직원은 바로 오래전 죽은 총독의 딸 사진을 보여주며 ‘혹시 이 아이 아닙니까’ 하고 물었죠….”

숙련된 가이드들은 음산한 목소리로 강약을 조절해가며 관광객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관광객은 바람 소리에도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공포감을 느꼈다. 건물들은 낡아서 마룻바닥은 삐걱댔고, 옆 사람이 비명을 지르면 마음 약한 사람들도 덩달아 악 소리를 터뜨렸다.

포트아서는 죄수들에게 잔인했다. 죄인들을 가뒀던 독방 옆 지하실에서는 산사람을 실제로 해부하기도 했다. 신참이 오거나 말썽이라도 피우면 독방으로 보내 길을 들였다. 짧게는 7시간부터 길게는 30일까지 죄수를 가뒀던 독방에는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독방에 감금된 죄수들에겐 두건을 씌웠다. 운동은 3일에 딱 한 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아챌 수 없도록 식사도 불규칙적으로 줬다. 독방 감옥의 예배당에는 죄수들이 옆 사람을 보지 못하게 칸막이까지 쳤다. 종교가 죄인들을 교화시킬 것이란 믿음으로 예배는 꼬박꼬박 드렸다지만 사실 죄수들은 사람 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바다 건너서 본 포트아서 유적지.
그래도 아름다운 태즈메이니아
2006년 포트아서를 다시 찾았다.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이름조차 생소했던 이 유적지는 지금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느릅나무에 걸린 올가미는 사라지고 없었고, 안내 데스크에 전시해뒀던 귀신 사진도 치웠다. 대신 귀신을 만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고스트를 만난다는 것은 당시엔 두렵고 무서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이벤트처럼 관광객들이 즐거워했다. 고스트 투어는 해외에도 소문이 나 미국인 학생 단체 관광객까지 와 있었다.

포트아서 때문에 태즈메이니아를 끔직한 관광지로 오해하면 안 된다. 호주에서도 자연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주도 호바트에서 동쪽 해안선을 따라 가는 길에 있는 프레이시네이 국립공원엔 9개의 해변을 끼고 있는데 하나같이 화려하다. 기암절벽이 압권인 슬리피베이, 술잔 모양의 와인글라스베이, 연둣빛과 쪽빛이 뒤섞여 있는 프랜들리비치…. 모양도 바다 빛도 각양각색이다.

숲도 아름답다. 마운틴 크레이들(1,545m)은 태즈메이니아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홀딱 반한다는 산이다. 우리로 치면 백두산 천지 같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산 정상 부근에 호수가 펼쳐져 있는데 가장 짧은 코스는 3시간, 일주일 코스도 있다. 군대가 주둔했던 리치몬드, 살라만카 시장으로 유명한 호바트, 러셀폭포와 크레이들 마운틴 등 볼거리가 많다.

여행 길잡이멜버른까지 대한항공 직항편이 있다. 국내선으로 갈아탄 뒤 호바트로 가면 된다. 멜버른에서는 배를 타고 호바트로 가는 방법도 있다. 인천항에서 배를 타면 다음날 아침 제주항에 도착하는 것과 같이 밤에 배를 타서 아침에 도착하는 배가 있다. 호바트 등에서 렌터카를 빌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 우리와 계절이 반대이며 여름에도 시드니보다 시원하다. 호주관광청(www.australia.com).

글&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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