婚姻 - Wedding(결혼) 체크리스트  

예산 짜기
품목 내용 예상비용 실제사용비용
결혼식 웨딩드레스, 식장, 부케, 원판 등
허니문 신혼여행
가구 수납장, 옷장 등
가전 TV, DVD, 냉장고, 세탁기등
침구 침대, 침구세트 등
주방용품 냄비세트, 그릇세트 등
한복 신랑, 신부 한복
예복 신랑, 신부 예복
예물 신랑, 신부 예물
예단 이불세트, 은수저 등
이바지 이바지 음식
기타 1  
기타 2  
웨딩 스케쥴
기간 결혼식 웨딩드레스/한복/예복 신혼집 혼수품 신혼여행 기타
D-100 택일, 양가 부모님 상견례 결혼 예산 세우기   분가여부 결정      
D-90 예식장소 찾고 예약하기     리스트작성(예: 예물, 예단, 가구, 가전 등)    
D-80       예단 상의   웨딩스튜디오 찾기
D-70 예식 사진 신청하기       신혼여행지 결정, 교통, 숙박비용 알아보기  
D-60 청첩장 주문       여행사 예약, 여권, 비자 준비 웨딩사진찍기
D-50 주례부탁 한복/예복 맞춤 계약할 집 등기부 열람, 집계약, 전입신고 및 확정 신고   여행사 예약, 여권, 비자 준비 웨딩사진찍기
D-40 청첩장 주소 적기, 사회자, 축의금 받을 사람 선정 예복 스타일 결정   시부모 예단 준비 신혼여행 가방 마련, 신혼 여행 준비물 구입 직장을 그만둘 경우 회사에 통보하고 인수인계
D-30   신부 메이크업, 부케 예약, 한복 찾기   가구와 가전제품 구입 예약   치아점검 스케일링 등 건강진단 받기
D-20 이바지 음식 주문 예물 고르기 도배, 보수, 가구배치 침구류, 그릇 구입   웨딩사진 찾기
D-10 함받기   우편배달신고, 인테리어 완료, 전화가입, 가스설치, 물건들이기 시댁에 예단 보내기 신혼여행지에서 입을 옷 구입  
D-5 폐백음식준문, 결혼식날 쓸 자동차 준비, 도와줄 친구 최종점검 웨딩드레스 입어보기, 웨딩 악세사리 결정, 부케 예약 재확인, 부케 가져올 친구 연락 신혼집정리   여행경비 환전, 여행가방 꾸리기 회사 휴가 제출
D-1 결혼식 당일 준비 사항 점검(차량, 지갑, 소품), 사례비 준비, 폐백음식, 이바지 음식 확인하기, 예식 사진 확인 웨딩드레스, 부케 점검     준비물 최종 점검  
하객 체크리스트
관계 예상인원 참석여부 기타
친가        
       
       
       
       
       
       
       
       
       
외가        
       
       
       
       
       
       
       
       
       
부모님 친구분들        
       
       
       
       
초/중/고등학교
친구/후배
       
       
       
       
       
대학교친구/후배        
       
       
       
       
대학원친구/후배        
       
       
학원친구        
       
동호회 친구/ 후배        
       
회사선후배        
       
회사친구        
       
       
혼수 체크리스트
구분 물품명 업체명 예상가격 구입가격 기타
가구 장농        
서랍장        
장식장        
TV/비디오장        
쇼파        
식탁        
         
         
가전 TV        
비디오        
DVD        
오디오        
컴퓨터        
에어컨        
세탁기        
다리미        
         
         
         
주방용품 냉장고        
가스렌지        
전자렌지        
커피메이커        
토스트기        
종합믹서기        
세척기        
반상기세트        
냄비세트        
그릇세트        
수저        
기타주방용품        
         
         
침구 침대        
침구세트        
이불1        
이불2        
         
         
         
예물 반지        
시계        
         
         
         
예단          
         
         
예복 신랑예복        
신부예복        
한복 신랑한복        
신부한복        
예식 체크리스트
구분 업체명 예상가격 구입가격 기타
상견례장소        
예식장 야외        
예식장        
호텔        
회관        
         
청첩장        
       
       
스튜디오 야외촬영        
비디오        
스냅        
원판        
         
드레스/턱시도 드레스        
       
       
턱시도        
       
       
부케/꽃 부케        
꽃길        
신부/신랑화장
/헤어
신부화장        
신랑화장        
헤어스타일        
       
폐백        
이바지        
피로연        
신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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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
결혼식전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서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일주일 이내에 신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혼인 신고를 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신부는 신랑의 호적에 입적되고 신랑신부는 서로에게 법적 의무가 생긴다.
우선 신랑신부에 의하여 협의 된 장소에서 동거해야 하며 신랑신부는 서로 부양,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즉 신랑신부 중 서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부양할 의무가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한 협조란 원만한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신랑신부가 필요한 일을 분담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보편화되었는데 적극적으로 가사를 분담하여 협력한다는 자세가 요구된다.구청이나 동사무소, 읍사무소, 면사무소 등에 비치되어 있는 혼인신고 용지의 각 난에 내용을 기재한다. 그리고 증인란에는 성인 두 사람의 서명날인을 받은 다음, 신랑신부가 각각 서명 날인하여 신랑의 본적지나 주소지 또는 현거주지 중 어느 한곳에 신고하면 된다.
혼인 신고는 신부가 호적을 신랑의 호적으로 옮기는 것으로 호적만 정리하는 것이지 주민등록까지 정리하는 것이 아니며, 주민등록 전, 출입신고를 함께 병행하여 14일 이내에 전입신고를 하여야 비로소 법률상으로 한 집에 사는 동거인으로 의료보험을 받을 수 있다.
첨부서류
 
본적지에서 신고할경우
거주지에서 신고할경우
장남
혼인신고서 3통,
신부의 호적등(초)본 2통
혼인신고서 4부
신랑의 호적등본 2통
신랑의 주민등록등본 1통
신부의 호적등(초)본 2통
신부의 주민등록등본 1통
차남이하
혼인신고서 4통
신부의 호적등(초)본 2통
혼인신고서 4부
신랑의 호적등본 2통
신랑의 호적등(초)본 2통
신랑의 주민등록등본 1통
동성동본 혼인신고
동성동본혼인신고 동성동본 부부는 근친혼 여부 확인 절차만 밟은 후 혼인신고를 할 수 있다. 
근친혼 여부 확인 절차는 호적 또는 제적등본, 족보사본(혼인 당사자에 관계되는 부분만 첨부해도 된다), 당사자 또는 8촌 이내의 혈족이나 4촌 이내 인척인 성년자의 확인서,확인자의 호적등본, 부모 등의 확인서 첨부가 불가능할 경우 증인
1명 및 성인 2명 이상의 확인서와 확인자의 주민등록등.초본 서류 가운데 한 가지만 제출하면 된다. 
주의) 부계와 모계의 8촌 이내의 혈족은 여전히 민법 815조의 규정에 따라 결혼할 수 없다.
97년 7월 동성동본 혼인금지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제청 사건에서 헌법에 불합치하다는 위헌 판결로 동성동본 혼인 신고는 예전에 비해 훨씬 간단해졌다.
국제결혼 혼인신고
신랑이 한국인일 경우에는 외국인인 아내의 본국법에 의하여 혼인능력 등 혼인 성립 요건을 구비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서면(신부의 본국 유관기관에서 발행)을 첨부하여 혼인신고를 한다. 
신부가 한국인일 경우 외국인인 신랑이 그의 본국법에 의하여 혼인능력 등의 서면(신랑 본국 유관기관에서 발행)을 첨부하여 혼인신고를 해야하고, 후에 신부가 외국 국적을 취득해서 한국 국적을 상실하게 되면 국적 상실 신고에 의하여 신부의 호적을 제적 처리하게 된다. 
외국에서 혼인한 경우 신랑이 한국인아면 혼인을 한 외국의 방식에 의해 혼인이 성립되었음을 증명하는 서면(당해국 유관기관에서 발행하는 혼인 증서)을 그 지역을 관할하는 한국의 재외공관의 장에게 제출하거나, 혼인을 한 외국의 지역이 한국의 재외공관의 관할에 속하지 않을때는 한국의 신랑 본적지의 시(구),읍,면장에게 혼인증서의 등본을 발송하여야 한다.
 신부가 한국인일 경우에는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하는 경우와 같은 절차에 따르며, 후에 신부가 외국 국적을 취득해서 한국 국적을 상실하게 되면 국적상실신고에 의하여 신부의 호적을 제적처리하게 된다.
웨딩 가이드
신부를 인계받을때
신부를 기다리는 신랑의 마음. 조금이라도 빨리 신부의 손을 잡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신부의 아버지가 애틋한 마음으로 신부와 걸어오고 있는 지금, 여유를 가지고 기다린다.
신부가 꽃길 중앙에 도착하면 단상에서 세 걸음 정도 내려와 있다가 신부 아버지가 도착해 신부의 손을 쥐어줄 때까지 기다리도록 한다.
그런 다음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 손을 쥐어 주면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단상에서 내려와 쫓길 중앙까지 내려온 신랑, 성큼성큼 걸어가서 "신부를 내놓으시죠"라는 느낌으로 손을 내미는 것은 신부 아버지에 대한 큰 결례다
신부와 단상 위로 올라갈 때
신부를 인도 받은 신랑은 신부가 팔짱을 끼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단상 위로 올라가기 일쑤. 하지만 간편한 차림의 신랑과는 달리 신부는 처음 입은 웨딩드레스에 베일, 부케 때문에 행동하기가 무척 불편하다.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신랑의 팔짱을 낄 수 있도록 웨딩드레스 앞자락을 잡아주거나 허리를 감싸 이동하기 편하도록 도와 준다.
신부가 천천히 신랑 옆에서 팔짱을 낄 수 있도록 여유롭게 안내한다.
신부의 등을 감싸안아서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도록 도와 주고 함께 단상위로 올라간다.

신부가 팔짱을 끼자마자 "자,가자"하고 앞장 서서 가는 것은 금물.
가뜩이나 웨딩드레스 때문에 불편한 신부를 배려할 수 있는 것은 신랑밖에 없다.
신부의 베일을 넘겨줄 때
결혼식날 신부는 보통 때보다 10cm 정도 키가 커진다. 보기에는 좋지만 베일을 넘겨줄 때는 키 큰 신부가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있다.
베일을 벗겨줄 때 신부가 가만히 서있다면 신랑은 까치발로 힘겹게 벗겨 줘야 할 정도. 보기에도 힘겨울 뿐 아니라 한 번에 베일을 넘기기도 함들다. 이 때는 신부가 살짝 무릎을 굽히는 센스를 발휘한다.
신랑이 팔을 쭉 뻗지 않을 정도의 위치를 잡아서 신부는 무릎을 약간 굽히고 고개를 숙인다.신랑이 베일을 우아하게 한 번에 넘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베일을 넘길 때 신부가 가만히 서있으면 부드럽게 넘기기가 힘들다.신랑의 옷차림에도 구김이 가고 낑낑대며 베일을 넘기다 보면 신성해야 할 순간이 엉망이 될 수도.
서로 마주보고 인사할 때
서로 맞절을 하는 순서가 되면 서로 마주 본 후 한 걸음씩 위로 빠진다.
신부의 경우 웨딩드레스 때문에 이동이 불편하다면 신랑만 한 걸음 물러서도 서로 인사하기에 충분하다.
나란히 서있다가 그대로 마주보고 인사한다면 머리를 부딪히기 쉽다. 실제로 머리를 부딪히기도 하고 충돌을 막기 위해 엇갈리게 인사하는 경우도 있다
축주나 축가를 들을 때
축가나 연주가 시작되면 신랑신부는 물론 주례자도 연주 방향으로 비스듬히 몸을 돌린다.연주가 끝날 때까지 경청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축가 연주를 들을 때 연주 방향으로 고개만 돌리는 것은 연주자에 대한 결례, 또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또한 잘못된 태도다.
하객들에게 인사할 때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에게 인사 하는 순서, 이 때 신랑은 결혼식에 와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90도로 꾸벅 인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신랑은 감사의 표시로 정중히 인사하는 것이지만 결혼식 예절로는 맞지 않다.
신랑신부가 인사할 때는 두 사람이 같은 각도로 인사하는 것이 가장 보기 좋다. 45도 정도의 각도로 천천히 그리고 나란히 인사하도록 한다.
신랑이 고개를 너무 숙이거나 신부가 고개만 까닥할 정도로 가볍게 인사하는 것 모두 잘못된 자세
폐백이란?
혼례식을 마친 후 신랑집 또는 예식장일 경우는 폐백실에서 행하는 의식으로 신부가 신랑의 가족을 정식으로 초대면하여 예를 올리는 절차를 말하는데 신부 집안에서는 이 예를 갖추기 위해 정성을 다한 음식상을 준비합니다.
전통 결혼에서의 폐백은 신부가 신부의 집에서 혼례를 치르고 시댁에 들어와 시부모와 시댁식구, 그리고 조상들에게까지 신랑 집안의 새 식구가 되었음을 고하는 의식이다.
폐백상 차리기
폐백상은 병풍을 두르고 돗자리를 깐 후 상을 놓고 방석을 두 개 놓는다.
상에는 붉은 면이 겉으로 오게 하여 청홍 예탁보를 덮고 대추는 시아버지, 포는 시어머니 앞에 놓는다.
겉상은 홍색 보자기를 덮어 큰 상에 놓고 술잔과 잔대, 술주전자를 놓아 상을 차린다
폐백드리기
폐백을 드릴때 신랑집 대청마루에 병풍을 치고 돗자리를 깔아 신부집에서 보내온 폐백으로 상을 차렸으나 지난날 복잡했던 폐백이 지금은 많이 간소화 되고 대개 폐백장소는 예식장소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 신부는 대례복(大禮服)을 갈아입고 폐백실로가서 신랑부모 또한 시조부님, 백부님, 숙부님내외, 시삼촌님, 시고모님 순으로 절을 합니다.
-시조부님이 생존해 계실 경우라도 시부모님께 먼저 드리는 것이 원칙입니다.

절을 마친 신랑 신부에게는 시아버님께서 대추를 신부의 치마폭에 던져 줍니다 . 이는 대추 수 만큼 아들을 낳으라는 풍속입니다.
* 대추는 아들을 뜻합니다
* 신랑측은 신부의 수고스러움을 보아 여러명이 함께 절을 받는것도 좋을 것
이다.
* 폐백은 새며느리를 받아들이는 시댁측의 예를 갖추고 또한 신부측에서 시댁
식구들의 낯을 익히고 화목하고 정성껏 모시겠다는 마음가짐의 뜻을 표현 하 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큰절드리는법
1. 바로 선 자세로 두 발을 모으고 양손과 팡을 어깨 높이 정도로 수평이 되도
록 들어올린다.
2. 양발을 모은 채로앉아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놓는데 무릎을 60 벌린다.
3. 고개와 가슴은 숙이고 손은 눈 높이로 올려서 이마에 대듯 했다가 무릎위에
올려 놓는다.
4. 손을 어깨와 수평으로 하고 수모의 부축을 받고 일어난다. 몇초 후 동작을
반복한다.
5. 절을 마치면 어깨 높이의 양손을 허리 높이로 내리고 살며시 앉는다.

깨비공주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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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선물, 핸드메이드 비누 만들기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어린이 날… 직접 만든 천연비누를 선물해 보자. 받는 이에 따라 넣을 수 있는 재료가 무궁무진해 만드는 재미도 쏠쏠하다.
장난감이 들어있는 신기한 아이 비누
손 씻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에게는 비누 속에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넣어 선물해보자. 아이의 이름을 비누 한 가운데 넣거나 로봇, 반지나 헤어핀 같은 작은 액세서리를 넣어 주면 비누를 다 써야만 장난감을 얻을 수 있으므로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씻게 된다. 아이의 사진을 코팅해서 넣어주어도 좋다.
준비물 : 비누베이스, 베이스오일(올리브오일 또는 홍화씨오일), 에센셜오일 또는 천연 한방 재료, 비누틀, 식용색소, 빨대, 스테인리스 용기와 숟가락, 핫플레이트, 비누속에 넣을 장난감 또는 스티커, 종이컵, 커터
아토피성 피부에 좋은 비누 재료
아토피성 피부염이 있는 아이에게 천연 재료로 만든 비누가 효과적. 가벼운 건조증이나 가려움증은 비누만으로도 어느 정도 가라앉힐 수 있다.
에센셜오일 / 라벤더를 비롯해 캐모마일, 호호바, 샌들우드, 티트리 등은 면역력과 보습력을 높여준다.
어성초 / 아토피 및 여드름성 피부에 효과가 있는 재료. 단, 한약에 부작용이 있는 경우 사용을 금한다.
유노하나 / 온천효과가 있는 가루로 피지를 적당히 녹여내고 대신 피부에 미네랄을 공급해준다.
청소년에게 좋은 비누 재료
여드름이나 피부 트러블이 많은 청소년에게는 클렌징 효과가 뛰어나고 피부를 안정시켜주는 천연비누가 좋다.
오트밀 / 비타민B와 미네랄이 들어있어 피지 제거와 피부 신진대사를 촉진한다.
율피 가루 / 밤껍질 가루로 타닌 성분이 있어 피지 분비로 헐거워진 모공을 조여준다.
삼백초 / 모세혈관을 건강하게 만드는 비타민이 풍부하다. 숯 / 피지 노폐물의 흡착효과와 세정효과가 뛰어나다. 티트리오일 / 항균력이 뛰어나서 균이 번식하기 쉬운 여드름성 피부의 모공을 깨끗하게 만든다.
 
만들어보세요
① 기본 과정
비누베이스를 녹인 후 베이스 중량의 3~5%되는 베이스오일을 넣어 섞는다. 휘발되지 않도록 온도를 조금 낮춘 후 에센셜오일이나 한방재료 등을 넣는다. 첨가하는 양은 전체 중량의 1%를 넘지 않도록 한다.
② 장난감 비누 만들기
비누틀에 용액을 절반 정도 붓고 빨대로 색소를 묻혀 넣어서 색을 낸다. 표면이 약간 굳으면 장난감을 넣고 그 위에 용액을 붓는다.
③ 이니셜 비누 만들기
비누틀에 용액을 반쯤 붓고 색소로 색을 낸다. 표면이 약간 굳으면 비닐에 이니셜 스티커를 붙여넣고 나머지 용액을 붓는다.
④ 메시지 비누 만들기
비누틀에 용액을 반쯤 붓고 표면이 굳으면 메시지를 담은 스티커를 붙인다. 그 위에 용액을 붓는다.
⑤ 동물 모양 비누 만들기
종이컵에 색을 낸 비누용액을 2~3cm 가량 부어서 굳힌 후 말랑거릴 때 꺼내서 쿠키용이나 고무찰흙용 커터로 찍어낸다.
⑥ 2가지색 비누 만들기
커터로 찍어내고 남은 비누를 다시 종이컵에 넣고 다른색을 낸 비누용액을 부어굳힌다.
   
부모님&선생님을 위한 노화방지&향수 비누
핸드메이드 비누의 가장 큰 장점은 첨가하는 재료에 따라 기능이 달라진다는 것. 선물 받을 사람의 피부타입이나 나이 등에 맞춰 재료를 선택한다. 노화 때문에 걱정인 부모님에게는 피부탄력과 보습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재료를, 분필 때문에 손을 자주 씻는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향수처럼 진한 향기를 지닌 아로마오일을 넣어 만든다.
준비물 : 스테인리스 용기와 수저, 비누베이스, 베이스오일(올리브오일이나 홍화씨오일), 진주가루 또는 인삼가루, 비누틀 또는 종이컵, 우유팩, 아로마오일(일랑일랑, 라벤더 등), 꽃이나 포푸리, 칼, 끈
노화방지용 비누 재료
진주가루 / 피부를 약산성으로 유지시켜 면역력을 높여주고 보습, 혈액순환, 세포재생, 미백, 세정작용이 있어 피부를 희고 젊게 가꾸어준다.
인삼가루 / 피부 재생 효과가 있다. 가격이 싼 잔뿌리 등을 갈아서 만들지만 향기와 효과는 비슷하다.
석류액 / 에스트로겐 성분이 들어있어 갱년기 여성에게 좋다. 꾸준히 사용하면 피부결이 부드럽고 촉촉해진다.
토코페롤 & 콜라겐 / 토코페롤은 대표적인 노화방지 성분으로 피부에 발라도 같은 효과가 있다. 피부 재생 기능이 있는 콜라겐 용액을 첨가해도 좋다.
천연 향수 만드는 아로마오일 배합 레시피
로맨틱 향 / 로즈 4 방울,재스민 2방울,버거못트 1방울을 섞어 만든다. 달콤한 로즈는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적이며 재스민은 깊고 달콤한 향이 오래 지속되는 것이 특징.
섹시한 향 / 재스민과 스피아민트 3방울씩 넣은 후 진저 1방울을 섞어 만든다. 재스민은 감각적이고 풍부한 향이 진저는 상콤하지만 깊은 향이 특징. 시원한 스피아민트 향이 더해 매혹적인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달콤한 향 / 그레이프와 레몬 3방울씩을 넣고 스피아민트와 버거못을 1방울씩 섞는다. 달콤한 과일향이 나며 특히 그레이프는 지방을 분해하는 효과도 뛰어난다.
정열적인 향 / 샌들우드 7방울과 오렌지 2방울 섞어 만든다. 샌들우드는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달콤한 오렌지는 피부 재생효과가 있다.
릴랙스 향 / 샌들우드 6방울과 오렌지 4방울, 로즈 2방울을 섞고 파인과 레몬 1방울씩을 떨어뜨린다. 피로 회복에 좋은 상큼하고 부드러운 향이 특징.
 
만들어보세요
① 비누 베이스 녹이기
비누베이스를 잘게 썰어 녹인 다음(전자레인지에 3분 정도 돌려도 된다) 비누 베이스의 3~5% 중량의 베이스오일을 넣는다.
② 노화방지용 재료 준비
진주가루나 인삼가루 등을 준비하는데 두가지 이상을 섞어 사용해도 좋다. 분량은 비누 중량의 1%를 넘지 않도록 한다.
③ 재료 섞기
①에 ②를 넣은 다음 용액에 잘 섞이도록 골고루 저어준다. 1㎏의 비누를 만들때 노화 방지용 재료는 1큰술 정도가 적당하다.
④ 용액 붓기
비누 틀에 섞은 용액을 천천히 붓는다. 비누틀이 없다면 우유팩, 종이컵, 플라스틱 젤리컵을 비누틀로 사용해도 된다. 알코올 스프레이를 뿌려 비누 거품을 제거한 후 굳으면 틀에서 떼어낸다.
⑤ 향수 비누 재료 준비
원하는 향의 아로마오일을 준비한다. ①처럼 베이스오일을 첨가한 용액에 아로마오일을 넣는다. 이때 온도가 너무 높으면 아로마오일의 향기가 쉽게 사라지므로 주의한다.
⑥ 향수 비누 꾸미기
아로마오일을 넣은 향수 비누는 색소를 넣지 않으면 색이 나지 않으므로 색소를 첨가하거나 말린 꽃이나 포푸리로 장식한다.
⑦ 장식용 태슬 비누
비누 용액을 종이컵에 조금씩 따른 다음 각각 다른 아로마오일을 넣고 향기에 잘 어울리는 색소로 색을 낸다. 굳힌 다음 말랑말랑 할 때 칼로 썰어서 구멍을 뚫은 다음 끈으로 연결한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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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 묶는 법

정보의바다 2008. 3. 28. 11:23



안전벨트에 직접 묶을 경우 선등자 용이나 카라비너를 이용하여 중간 매듭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며, 또한 가장 강한 강도의 매듭으로 강한 충격에도 쉽게 풀수 있는 장점이 있다. 등반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매듭이기도 하다. 8자 매듭은 선등자용 되감기 8자 매듭, 중간 등반자용 8자매듭, 두 줄을 연결할때 사용하는 되감기 8자매듭 이 있다. 8자 매듭은 충격이나 얼었을 때에도 쉽게 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카라비너에 직접 연결할 경우나 안전벨트에 직접 매듭을 할 경우에도 매듭의 고리를 가능하면 작게 만드는 것이 좀 더 안전하다.






매듭법 중에 가장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매듭으로서 많은 변형이 있고, 또한 순서도 여러 가지가 있다.
선등자 매듭으로 로프에 직접 매듭을 하거나, 나무나 움직이지 않는 고정 확보물 등에 매듭을 할 경우에 많이 사용한다. 또한 안전벨트가 없을 경우 가장 빠르게 몸에 묶을 수 있어 임시용으로 잠시 매는 매듭으로 많이 사용한다. 일단 매고 난 뒤에는 잘 움직이지 않아서 선등자나 후등자가 종종 매듭을 사용하지만, 매듭이 뒤집어 질 경우 에는 쉽게 풀릴 수 있는 단점이 있어 반듯이 정확하게 매듭이 되었는지 확인하여야 하며, 끝은 반드시 옭매듭 처리를 해주어야 한다.



두 줄을 연결할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매듭으로 가장 확실한 매듭이며 어부매듭으로 불리우고 낚시줄을 묶는데
에도 많이 사용한다. 이 매듭의 특징은 힘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단단하게 매듭이 되는 점이다.
이때문에 충격을 받거나 얼었을 경우에는 풀기가 힘든 단점이 있다. 잘 풀지 않는 곳에 매듭을 한다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매듭이며, 매듭의 모양이 예쁘기 때문에 선호하기도 한다. 또한 가는 코드 슬링을 연결할 때 많이 사용된다. 배낭 멜빵에 예쁘게 코드슬링으로 고리를 만들어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으며 배낭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때 종 종 잡아당기는 고리로 사용할 때 좋다.




나무나 고정된 확보물에 매듭을 할 때 주로 사용되며, 당기면 당길수록 힘을 받으며 풀 때에는 긴 줄 쪽으로 고리를 당기면 쉽게 풀 수 있다. 몸에 직접 묶으면 조여지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으며, 안전벨트에 카라비너를 이용하여 묶어야 한다. 얼었을 경우에도 쉽게 풀린다.
플라이나 걸개를 걸때 고정된 곳에 묶을 때 편리하며 미리 고리를 만든 후에 높은 곳으로 올리기에 편해서 한쪽은 에반스 매듭으로 처리하고 다른 한쪽은 까베스탕 매듭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비상용 매듭으로 많이 사용되며, 반드시 굵기가 다른 줄 간에 사용되어야 하며 주 로프보다는 가는 5~7mm 정도 의 가는 코드 슬링을 이용하여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초보자의 하강시에 푸르지크 매듭을 이용하여 하강기 위쪽에 걸어서 보호 장치로 사용할 수 있으며 두개의 푸르지크 매듭을 이용하여 등강기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비상매듭으로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두개의 푸르지크 매듭을 이용할 경우에를 대비하여 가는 코드 슬링이 여러개 가 있으면 비상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단독 등반시에도 솔로이스트가 없을 경우 임시방편으로 사용할 수 있다.




양쪽의 줄을 고정할때 쓰이는 매듭으로 반까베스탕을 사용시에는 매듭을 한 상태에서도 길이를 조절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등반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매듭이다. 쉽고 빠르게 매듭을 할 수 있으며, 또한 힘을 받거나 얼었을 경우에도 쉽게 풀 수 있다. 로프를 잠깐 고정 확보물에 묶어 두거나,등반 중에 자기 확보를 할 경우에 많이 사용되며 끝줄을 이용하여 묶 을 경우에는 반드시 옭매듭으로 마무리 처리를 해야 한다.
우면서도 의외로 헷갈리기 쉬운 매듭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며, 반 까베스통 매듭과 함께 익혀두면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등반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매듭이지만,간단히 매듭을 할 수 있고 편리성 때문에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되며 사각매듭이라고도 한다 매듭하기 쉽고, 풀기 쉬운 장점이 있는 반면에 쉽게 풀릴 수 있어 정확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주의점은 매듭시 로프의 끝이 같은 면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엇갈려서 매듭을 하였을 경우에는 가벼운 움직임에도 쉽게 풀어져 위험 할 수 있다. 스퀘어 매듭을 이용하여 두줄을 연결할 경우에는 더 확실하게 하려면 양 끝을 이중으로 옭매듭하는 것이 확실하다.



테이프 슬링을 묶었을 경우에는 매듭을 한쪽에 한 후에 면을 따라서 꼬이지 않도록 하여 매듭을 한다.
테이프 매듭의 단점은 사용하지 않을 경우 시간이 지나면 풀릴 수있기 때문에 사용하기 전에 반듯이 매듭을 확인하여야 하며, 매듭의 끝이 항상 4~5cm 정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모든 매듭의 기본이 되는 매듭으로서 흔히 막매듭,OverHand Knot으로 불리운다
8자매듭으로 선등자,후등자용 및 두줄을 연결할 때 피셔 맨 매듭과 스퀘어 매듭으로 두 줄을 연결할 때 선,후등자가 보울 라인 매듭을 사용할 때, 에반스 매듭을 사용할 때 등 여러가지 매듭을 하고서 마지막에 옭매듭을 하여서 매듭이 풀리는 것을 예방한다.




과거에는 동그랗게 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나비처럼 양옆으로 벌려서 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그랗게 사리는 법은 줄을 메고 가기 편리한 점이 있다. 줄의 마감 처리는 사각매듭으로 묶거나 짧게 남은 줄로 미리 고리를 만든 후에 그 위로 고리에서 먼쪽부터 긴 줄을 감은 후 남은 끝줄을 고리에 끼운 후 반대편에서 당기면 된다. 배낭이 없을 경우에는 사린 줄의 양쪽 끝을 약 1미터 정도 다시 푼 후에 사려놓은 가운데 부분을 돌려 감은 후에 어깨에 올려 맨 후에 허리로 되감아서 매듭하면 편하게 들고 갈 수 있다.





펌:http://www.e-sej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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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이름  

◆꽃구름 : 여러 가지 빛깔로 아롱진 아름다운 구름. 채운(彩雲).


◆눈구름 : 눈을 내리게 할 듯한 구름.


◆뜬구름 :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흔히, 덧없는 세상일에 비유하여 씀.]



◆매지구름 : 비를 머금은 검은 조각구름.


◆먹구름 : (비나 눈이 내릴 듯한) 검은 구름. 먹장구름. 암운(暗雲).


◆먹장구름 : 짙게 검은 구름. 먹구름.



◆뭉게구름 : 수직으로 발달한 구름의 한 가지. 독특한 구름 덩이가 둥글게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흰 구름. 맑은 봄날 지평선에
                  흔히 나타남. ‘적운(積雲)’·‘쌘구름’의 딴 이름.


◆비구름 : 비가 내리기 직전에 검고 어둡게 하늘을 덮어 흐르거나 무너져 내리듯 하는 구름  1.비를 머금은 검은 구름.
               2.‘난층운(亂層雲)’의 딴 이름


◆비늘구름 : 작은 구름 조각이 물결이나 비늘 모양으로 높이 펼쳐 있는 구름.‘권적운(卷積雲)’의 딴 이름.




◆비행기구름 : 비행기가 높은 하늘을 날아간 자리에 길게 꼬리를 끌며 나타나는 흰구름. 비행기구름. 비행운. 항적운(航跡雲).


◆열구름 : 떠가는 구름. 행운(行雲).


◆삿갓구름 : 외따로 떨어진 산봉우리의 꼭대기 부근에 걸리는 삿갓 모양의 구름.


◆새털구름 : 푸른 하늘에 하얀 줄무늬 또는 명주실 모양으로 높이 뜬 구름. 날씨가 맑다가 흐려지기 시작할 무렵에 흔히 나타남.
                  ‘권운(卷雲)’·‘털구름’의 딴 이름.




◆쌘구름 : 수직으로 발달한 구름의 한 가지. 독특한 구름 덩이가 둥글게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흰 구름. 맑은 봄날 지평선에 흔히 나타남.
           뭉게구름. 적운(積雲).


◆쌘비구름 : 수직으로 발달한 구름의 한 가지.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솟구쳐 오르면서 위의 구름은 아래로 흐르듯 흩어져 내리는
             비구름. 소나기·우박·번개·천둥·돌풍 등이 함께 일어남.
             쌘비구름.적란운(積亂雲). (참고)소나기구름.


◆소나기구름 : 수직으로 발달한 구름의 한 가지. 검은 구름이 솟구쳐 오르면서 위의 구름은 아래로 흐르듯 흩어져 내리는 비구름.
                소나기·우박·번개·천둥·돌풍 등이 함께 일어남. ‘적란운’을 달리 이르는 말. 쌘비구름


◆실구름 : 실처럼 가늘고 긴 모양의 구름.


◆안개구름 : 안개처럼 땅에 가장 가까이 퍼져 떠 있는 구름. [산간 지역에 비가 내릴 때 흔히 나타남.] 층구름.'층운’·‘층구름’을 달리
              이르는 말.


◆양떼구름 : 잿빛이나 흰빛을 띠고 둥글둥글하게 덩어리져 비교적 하늘 높이 뜬 구름. 높쌘구름. ‘고적운(高積雲)’을 달리 이르는 말.


◆조개구름 : 상층운의 한 가지. 작은 구름 조각이 물결이나 비늘 모양으로 높이 펼쳐 있는 구름.

                  저기압 전면에 생겨나 비가 내릴 전조를 나타냄. 권적운(卷積雲). 털쌘구름. (참고)비늘구름.


◆털층구름 : 높은 하늘에 하얀 장막처럼 퍼져 있는 구름. 흔히, 햇무리나 달무리가 보이며, 비가 내릴 전조로 나타남. 권층운(卷層雲)

펌:http://blog.daum.net/hanlim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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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순 일본말
다음은 순 일본말이지만 알면서도 쓰고, 또 몰라서도 쓴 것들이다.

1. 가께우동(かはうとんを) -> 가락국수
2. 곤색(紺色, こんいれ) => 진남색. 감청색
3. 기스(きず) -> 흠, 상처
4. 노가다(どかた) -> 노동자. 막노동꾼
5. 다대기(たたき) -> 다진 양념
6. 단도리(だんどり) -> 준비, 단속
7. 단스(たんす) -> 서랍장, 옷장
8. 데모도(てもと) -> 허드레 일꾼, 조수
9. 뗑깡(てんかん) -> 생떼, 행패. 어거지
10. 뗑뗑이가라(てんてんがら) -> 점박이 무늬, 물방울무늬
11. 똔똔(とんとん) -> 득실 없음, 본전
12. 마호병(まほうびん) -> 보온병
13. 멕기(ぬつき) -> 도금
14. 모찌(もち) -> 찹쌀떡
15. 분빠이(ぶんぽい) -> 분배. 나눔
16. 사라(さら) -> 접시
l7. 셋셋세(せつせつせ) -> 짝짝짝. 야야야(셋셋세, 아침바람 찬바람에 등 우리가 흔히 전래동요로
아는 많은 노래들이 실제론 2박자의 일본 동요이다.)
18. 소데나시(そでなし)-> 민소매
19. 소라색 (そら) -> 하늘색
20. 시다(した) -> 조수, 보조원
21. 시보리(しぼり) -> 물수건
22. 아나고(あなご) -> 붕장어
23. 아다리(あたり) -> 적중, 단수
24. 야끼만두(やきまんじゆう) -> 군만두
25. 에리(えり) -> 옷깃
26. 엥꼬(えんこ) -> 바닥남, 떨어짐
27. 오뎅(おでん) -> 생선묵
28. 와사비(わさび) -> 고추냉이 양념
29. 요지(ようじ) -> 이쑤시개
30. 우라(うら) -> 안감
31. 우와기(うわぎ) -> 저고리, 상의
32. 유도리(ゆとり) -> 융통성, 여유
33. 입빠이(りつぱい) -> 가득
34. 자바라(じやばら) -> 주름물통
35. 짬뽕(ちやんぽん) -> 뒤섞음, 초마면
36. 찌라시(ちらし) -> 선전지, 광고 쪽지
37. 후까시(ふかし) -> 부풀이, 부풀머리, 힘
38. 히야시(ひやし) -> 차게 함

나. 일본식 한자말
일제강점 후 일본은 일상용어조차도 일본식으로 쓰도록 했고, 또 우리 지식인이란 사람들도
비판 없이 받아쓰곤 한 것이 바로 아래의 말들이다.

1. 가봉(假縫,ねかりぬい) -> 시침질
2. 가처분(假處分,ねかりしよふん) -> 임시처분
3. 각서(覺書,おぼえがきね) -> 다짐글, 약정서
4. 견습(見習,みならい) -> 수습
5. 견적(見積,みつもり) -> 어림셈, 추산
6. 견출지(見出紙,みだし紙) -> 찾음표
7. 계주(繼走,はいそう) -> 이어달리기
8. 고수부지(高水敷地,しきち) -> 둔치, 강턱
9. 고지(告知,こくち) -> 알림, 통지
10. 고참(古參,こさん) -> 선임자
11. 공임(工賃,こうちん) -> 품삯
12. 공장도가격(工場渡價格,こうじようわたしかかく) -> 공장 값
13. 구좌(口座,こうざ) -> 계좌
14. 기라성(綺羅星,きら星) -> 빛나는 별
15. 기중(忌中,きちゆう) -> 상중(喪中 : 기(忌)자의 뜻은 싫어하다,
미워하다 이며, 상(상)자는 죽다, 상제가 되다. 라는 뜻이다.)
16. 기합(氣合,きあい) -> 혼내기, 벌주기
17. 납기(納期,のうき) -> 내는 날, 기한
18. 납득(納得,なつとく) -> 알아듣다, 이해
19. 낭만(浪漫) -> 로망(Romance : 낭(浪)자는 물결, 파도란 뜻이고,
만(漫)자는 넘쳐흐르다. 라는 뜻이다.)
20. 내역(內譯,うちわけ) -> 명세
21. 노임(勞賃,るうちん) -> 품삯
22. 대금(代金,だいきん) -> 값, 돈
23. 대절(貸切,かしきり) -> 전세
24. 대하(大蝦,おおえび) -> 큰 새우
25. 대합실(待合室,まちあいしつ) -> 기다리는 곳, 기다림 방
26. 매립(埋立,うぬたて) -> 매움
27. 매물(賣物,ういもの) -> 팔 물건, 팔 것
28. 매상고(賣上高,たか) -> 판매액
29. 매점(賣占,かいしぬ) -> 사재기
30. 매점(賣店,ばいてん) -> 가게
31. 명도(明渡,あけわたし) -> 내어줌, 넘겨줌, 비워줌
32. 부지(敷地,しきち) -> 터, 대지
33. 사물함(私物函,しぶつかん) -> 개인 물건함, 개인 보관함
34. 생애(生涯,しようかい) -> 일생, 평생
35. 세대(世帶,せたい) -> 가구, 집
36. 세면(洗面,せんぬん) -> 세수
37. 수당(手當,てあて) -> 덤삯, 별급(別給)
38. 수순(手順,てじゆん) -> 차례, 순서, 절차
39. 수취인(受取人,うけといにん) -> 받는 이
40. 승강장(昇降場,のりおりば) -> 타는 곳
41. 시말서(始末書,しまつよ) -> 경위서
42. 식상(食傷,しよくよう) -> 싫증남, 물림
43. 18번(十八番,じゆうはちばん) -> 장기, 애창곡 (일본 가부끼 문화의 18번째)
44. 애매(曖昧,あいまい) ->모호 (더구나 "애매모호"라는 말은 역전 앞과 같은 중복된 말이다)
45. 역할(役割,やくわり) -> 소임, 구실, 할 일
46. 오지(奧地,おくち) -> 두메, 산골
47. 육교(陸橋,りつきよう) -> 구름다리(얼마나 아름다운 낱말인가?)
48. 이서(裏書,うらがき) -> 뒷보증, 배서
49. 이조(李朝,りちよう) -> 조선(일본이 한국을 멸시하는 의미로 이씨(李氏)의
조선(朝鮮)이 라는 뜻의 이조라는 말을 쓰도록 함.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를 일본제국이 민비로 부른 것과 같은 맥락임)
50. 인상(引上,ひきあけ) -> 올림
51. 입구(入口,がせまい) -> 들머리("들어가는 구멍"이라는 표현은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들어가는 머리"라는 말은 얼마나 정겨운가?)
52. 입장(立場,たちば) -> 처지, 태도, 조건
53. 잔고(殘高,ざんだか) -> 나머지, 잔액
54. 전향적(轉向的,まえきてきむ) -> 적극적, 발전적, 진취적
55. 절취선(切取線,きりとり線) -> 자르는 선
56. 조견표(早見表,はやみひよう) -> 보기표, 환산표
57. 지분(持分,もちふん) -> 몫
58. 차출(差出,さしだし) -> 뽑아냄
59. 천정(天井,てんじよう) -> 천장(天障 : 하늘의 우물이라고 보는 것은
일본인이고, 우리나라는 하늘을 가로막는 것이란 개념을 가지고 있다)
60. 체념(諦念,てりねん) -> 단념, 포기
61. 촌지(寸志,すんし) -> 돈 봉투, 조그만 성의(마디 촌(寸), 뜻 지(志)를 쓴 좋은
낱말로 얘기하지만 실제론 일본말이다)
62. 추월(追越,おりこし) -> 앞지르기
63. 축제(祝祭,まつり) -> 잔치, 모꼬지, 축전(우리나라는 원래 잔치에 제사
"제(祭)"는 쓰지 않았다. 잔치와 제사는 다른 것이기에)
64. 출산(出産,しゆつちん) -> 해산
65. 할증료(割增料,ねりましりよう) -> 웃돈
66. 회람(回覽,かりらん) -> 돌려보기

어떤 사람은 한자말을 쓰는 것이 말을 줄여 쓸 수 있어 좋다고 하지만
실제론 강턱(고수부지), 공장 값(공장도가격)처럼 오히려 우리말이
짧은 경우도 있어 설득력이 없다. 또 다른 낱말인 매점(賣占, 賣店)의
경우 차라리 사재기, 가게라는 말을 씀으로서 말뜻이 명쾌해지는 이점이 있다.
괜히 어줍잖은 일본식 한자말을 쓰기보다는 아름다운 우리말,
우리식 한자말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좋겠는가?

다. 일본식 외래말
영어 발음을 지독히도 못하는 사람들이 일본인들이다.
그런 일본사람들이 잘못 만들어 놓은 엉터리 외래어를 비판 없이
무심코 받아쓰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저버린 행위가 아닐까?
다음과 같은 말들을 살펴보면서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 앞으로는
적극 우리말 또는 올바른 외래어를 쓰도록 할 일이다.

1. 난닝구(running-shirts) -> 런닝셔츠
2. 다스(dosen) -> 타(打), 묶음, 단
3. 돈까스(豚/pork-cutlet) -> 포크 커틀릿, 돼지고기튀김
(발음이 너무 어려워 이상하게 변형시킨 대표적인 예)
4. 레미콘(ready-mixed-concret) -> 양회반죽
5. 레자(leather) -> 인조가죽
6. 만땅(滿-tank) -> 가득 채움(가득)
7. 맘모스(mammoth) -> 대형, 메머드
8. 메리야스(madias:스페인어) -> 속옷
9. 미싱(sewing machine) -> 재봉틀
10. 백미러(rear-view-mirror) -> 뒷거울
11. 빵꾸(punchure) -> 구멍, 망치다
12. 뼁끼(pek:네델란드어) -> 칠, 페인트
13. 사라다(salad) -> 샐러드
14. 스덴(stainless) -> 녹막이, 스테인리스("스덴(stain)"만 쓰게되면 오히려
"얼룩, 오염, 흠" 이란 뜻이 되므로 뒤에 리스(less)를 붙여야 만 된다)
15. 엑기스(extract) -> 농축액, 진액
16. 오바(over coat) -> 외투
17. 자꾸(zipper, chuck) -> 지퍼
18. 조끼(jug) -> 저그(큰잔, 주전자, 단지)
19. 츄리닝(training) -> 운동복, 연습복(더구나 training만 쓴다면 단순히 훈련이란 뜻밖에 안된다.)
20. 함박스텍(hamburg steak) -> 햄버그 스테이크
21. 후앙(fan) -> 환풍기

펌:http://blog.daum.net/hanlim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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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프로는 불을 피우고, 아마추어는 불을 쬔다.
2.프로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만, 아마추어는 책임을 회피하려고 급급 한다.
3.프로는 기회가 오면 우선 잡고 보지만, 아마추어는 생각만 하다 기회를 놓친다.
4.프로는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지만, 아마추어는 두드리고도 안 건넌다.
5.프로는 자신의 일에 목숨을 걸지만 아마추어는 자신 일에 변명을 건다
6.프로는 여행가이고, 아마추어는 관광객이다.
7.프로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아마추어는 자기 이야기만 한다.
8.프로의 하루는 25시간이지만, 아마추어의 하루는 24시간뿐이다
10.프로는 뚜렷한 목표가 있지만, 아마추어는 목표가 없다.
11.프로는 행동을 보여 주고, 아마추어는 말로 보여준다
12.프로는 너도 살고 나도 살자고 하지만, 아마추어는 너 죽고 나 죽자고 한다.
13.프로는 자신에게는 엄하고 남에게는 후하지만, 아마추어는 자신에게 후하고 남에게 엄하다.
14.프로는 놀 때 최고로 놀지만, 아마추어는 놀 줄 모른다.
15.프로는 리더(Leader)고, 아마추어는 관리자(Manager)다
16.프로는 평생 공부를 하지만, 아마추어는 한 때 공부를 한다.
17.프로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지만, 아마추어는 결과에 집착한다.
18.프로는 독서량을 자랑하지만, 아마추어는 주량을 자랑한다,
19.프로는 강자에게 강하고, 아마추어는 약자에게 강하다.
20.프로는 사람을 소중히 하고, 아마추어는 돈을 소중히 한다.
21.프로는 사람이 우선이고, 아마추어는 일이 우선이다.
22.프로는 길게 내다보고, 아마추어는 눈앞의 것만 본다.
23.프로는 해보겠다고 하지만, 아마추어는 안 된다고 한다.
24.프로는 시간을 관리하고, 아마추어는 시간에 끌려 다닌다.
25.프로는 구름 위에 뜬 태양을 보고, 아마추어는 구름 위의 비를 본다
26.프로는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마추어는 이기는 것도 걱정한다.
27.프로는 번영 의식이 있지만, 아마추어는 편한 의식이 있다.
28.프로는 "난 꼭 할 꺼야" 라고 말하지만, 아마추어는 "난 하고 싶었어" 라고 말한다
29.프로는 메모를 하고, 아마추어는 듣기만 한다.
30.프로는 "지금 당장"을 좋아하지만, 아마추어는 "나중에"를 좋아한다.
31.프로는 꿈을 먹고 살지만, 아마추어는 꿈을 잃고 산다.
32.프로는 "요령껏, 재주껏" 하지만 아마추어는 "무조건 열심히" 만 한다.
33.프로는 "Me"를 생각하지만, 아마추어는 "Me Too"를 생각한다.
34.프로는 Only One를 추구하지만, 아마추어는 Number One을 추구한다.
35.프로는 다면 사고를 하지만, 아마추어는 단면 사고를 한다
36.프로는 Know-Where를 생각하고, 아마추어는 Know-How를 생각한다.
37.프로는 밸류을 추구하지만 아마추어는 볼륨을 생각한다.
38.프로는 질을 생각하고, 아마추어는 양을 생각한다.
39.프로는 디지털형이고, 아마추어는 아나로그형이다.
40.프로는 플로우를 좋아하고, 아마추어는 스톡을 좋아한다.
41.프로는 뛰면서 생각하지만 아마추어는 생각한 뒤 뛴다.
42.프로의 무대는 그라운드지만, 아마추어의 무대는 관중석이다.
43.프로는 창조적 괴짜형이고, 아마추어는 노예형이다.
44.프로는 미래 중심적이고, 아마추어는 과거 중심적이다.
45.프로는 창조를 하고, 아마추어는 모방을 한다.
46.프로는 발전시키지만, 아마추어는 현상을 유지한다.
47.프로는 사람에 초점을 두지만, 아마추어는 시스템과 구조에 둔다.
48.프로는 신뢰를 쌓지만, 아마추어는 통제에 의존한다.
49.프로는 장기적 관점을 갖지만, 아마추어는 단기적인 전망을 갖는다.
50.프로는 "왜, 무엇"을 묻지만, 아마추어는 "어떻게, 언제"를 묻는다.
51.프로는 먼 수평선에 두지만, 아마추어는 시야를 말끝에 둔다.
52.프로는 자기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지만, 아마추어는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56.프로는 "올바른 일"만 하지만, 아마추어는 "일을 올바르게" 한다.
57.프로는 위험을 감수하지만, 아마추어는 위험을 회피한다.
58.프로는 이끌기 위해 솔선 수범하지만, 아마추어는 주어진 직책에 안주한다.
60.프로는 삶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아마추어는 직책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61.프로는 사람을 고무시키지만, 아마추어는 기준을 따르라고 한다.
62. 프로는 변화를 추구하지만, 아마추어는 예측과 질서를 추구한다.
63.프로는 현상에 도전하지만, 아마추어는 현상을 유지한다.
64.프로는 비전과 전략에 관심을 두지만, 아마추어는 세부적인 계획, 시간표에 관심을 둔다.
65.프로는 혁신가지만, 아마추어는 행정가이다.
66.프로는 실질적인 성과에 관심이 있다. 아마추어는 능률에 관심을 둔다.
67.프로는 철학, 핵심 가치, 공동 목표를 강조하지만, 아마추어는 전술,시스템, 구조를 강조한다.
68. 프로는 책임부터 생각하고, 아마추어는 권한만을 생각한다.
69. 프로는 공유하려 하고, 아마추어는 독점하려 한다.
70. 프로는 실수를 하고, 아마추어는 실패를 한다.
71. 프로는 놀지만, 아마추어는 까분다.
72. 프로는 웃지만, 아마추어는 비웃는다.
73. 프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주지만, 아마추어는 모르면서도 아는 척 한다.
74. 프로는 힘들어하지만, 아마추어는 힘들다고 소리친다.
75. 프로는 함께 일하고.아마추어는 혼자 일한다.
76. 프로는 비판하지만, 아마추어는 비난한다.
77. 프로는 얘기하지만, 아마추어는 떠든다.
78. 프로는 묵묵히 걸어다니지만, 아마추어는 싸돌아다닌다.
79. 프로는 남에게 감사하지만, 아마추어는 남을 감시한다.
80. 그리고, Pro는 (영락없이) Amateur처럼 생겼지만,
Amateur는 (마치) Pro처럼 행세한다.



프로는 아이디어를 낼줄알지만, 아마는 지적만 할줄안다
프로는 존경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마추어는 존경받는 것을 좋아한다..
프로는 숲을 보지만 아마추어는 나무만 본다

펌:http://blog.daum.net/hanlim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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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에겐 돈 빌려줘도 좋다


<이런 사람에겐 돈 빌려주지 마라>란 글을 내보내자 오랫동안 대출을 담당해온 친하게 지내던 은행지점장이 <이런 사람에겐 돈 빌려줘도 좋다>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이중 5개 이상이 맞으면 돈 빌려줘도 떼먹히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에겐 돈 빌려줘도 좋다>

<1>--밥 한끼 얻어먹은 걸 결코 잊지 않는 사람.
<2>--물건을 사고 영수증을 받아 꼭 살펴보는 사람.
<3>--쓸데없이 굽실거리지 않는 사람.
<4>--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시간약속을 잘지키는 사람.
<5>--신용카드연체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
<6>--지갑에 잔돈이 얼마 들어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
<7>--술값 먼저 내고 집으로 도망가는 사람.


명동과 역삼동에서 20여년간 사채업을 해온 분이 돈 빌려주면 안되는 사람으로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습니다.

<이런 사람에겐 돈 빌려주지 마라>

<1>업체를 찾아갈 땐 화장실부터 가보라. (화장실이 지저분한 회사는 곧 망한다)
<2>대출서류가 완벽하면 의심하라. (서류가 너무 완벽하면 사기성이 농후하다)
<3>사장의 얼굴과 눈을 보라. (사장 얼굴을 보면 그가 얼마짜리인지 쓰여 있다)
<4>돈 빌리러 올 때 동행인이 있으면 의심하라. (돈 빌려서 돈 갚는데 쓸 확률이 높기 때문)
<5>승용차의 실내가 어지러우면 문제가 있다. (머리속이 복잡하면 차속도 복잡하다)
<6>눈물로 호소하면 결코 빌려주지 마라. (눈물을 보이면 이미 선을 넘었다고 봐야 한다)
<7>말이 청산유수면 꺼내던 돈도 도로 집어넣어라. (말 잘하는 놈치고 돈 잘 갚는 놈을 결코 보지 못했다.)


위 내용을 역설적으로 생각해서 우리가 어떤 생활태도를 가져야할 옳은것인지 판단하시고 바른 생활습관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펌:http://blog.daum.net/hanlim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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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상식은 잘못된 습관으로 이어진다. 자동차 관리와 운전도 마찬가지다. 차의 수명 단축과 괜한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자칫 대형 안전사고를 불러올 수 있는 ‘나쁜 자동차 상식’들을 추려 봤다.

1) 연료를 아끼려면 에어컨을 약하게 튼다

차량 에어컨은 운전을 시작하고 2∼3분이 지난 뒤에 시속 40㎞ 이상 속도에서 켜는 것이 좋다. 이때 연료를 아낀다고 에어컨을 살살 트는 사람들이 있지만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과감하게 처음부터 4단(최고)부터 틀고 냉기가 차 안에 퍼지면 1단으로 줄이는 것이 좋다. 실험결과 이렇게 해야 연료를 10∼15% 정도 아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어컨을 끄고 차창을 여는 것도 애용하는 방법이지만 사실 별 효과가 없다. 배기량 2000㏄ 차를 시속 80㎞로 몰 경우,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1∼2단으로 켜면 평소보다 6% 정도 연료가 더 든다. 하지만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고 달려도 강력한 공기저항 때문에 연료가 5%가량 더 소모된다.

2) 에어백은 모든 충돌사고 때 작동한다

에어백은 일반적으로 시속 30㎞ 이상에서 정면으로 충돌할 경우에 작동된다. 그러나 ▲후방충돌 ▲측면충돌 ▲차량 전복 ▲전봇대 등 일부분 충돌 ▲앞차의 밑으로 들어가는 사고 등에서는 대개 터지지 않는다. 안전벨트보다 더 믿을 만한 안전장치는 없다.

3) 광폭 타이어를 끼우는 것이 무조건 좋다

광폭 타이어는 일반 도로에서의 코너링, 주행 안전성, 제동력 등은 좋지만 빗길에서는 노면에 닿는 면적이 넓어 ‘수막현상’(물로 인해 얇은 막이 생기는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 특히 시속 70㎞ 이상에서는 주행 안전성과 제동력이 저하되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또 타이어의 폭이 넓기 때문에 엔진출력과 승차감, 조향성 등도 다소 떨어지고 연료 소모도 많아진다. 결론적으로 최초 자동차 출고 때의 타이어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나중에 타이어가 닳아 교체를 할 때에도 먼저 것과 똑같은 것으로 하는 것이 최적의 선택이다.

4) 머플러서 나오는 물은 엔진냉각수가 새는 것이다

기온이 떨어져 엔진이 냉각됐을 때 시동을 걸면 머플러에서 많은 물이 나온다. 연료가 연소되면 탄화수소가 산소와 결합해 물을 생성한다. 연소실이나 머플러가 뜨거울 경우에는 수증기로 변해 증발되지만 냉각된 상태에서는 그대로 물의 형태로 배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머플러에서 물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무조건 냉각수가 새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5) ABS 브레이크는 제동거리를 줄여준다

지금은 보편화된 ABS(Anti-lock Brake System)는 제동 때 각 바퀴에 장착된 센서들이 상태를 감지해 컴퓨터에 정보를 보내고 운전자가 밟은 힘을 골고루 분산 조절함으로써 미끄러짐을 억제하고 직진성과 조향 안정성을 유지시키는 전자제어 브레이크 장치다. 하지만 ABS는 기본적으로 제동거리를 짧게 하는 장치가 아니라 제동 때의 직진성을 최대한 유지시키고 방향 전환을 가능하게 하여 추돌사고를 방지한다는 게 기본 기능이다. 때문에 ABS에 대한 과신은 절대 금물이다. 눈길·빗길 등 노면 상태가 좋지 않은 도로에서 속도를 낮추고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차분히 운전하는 것 이상의 안전장치는 없는 셈이다. 비슷하게 4륜 구동 차량이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것도 잘못된 상식이다.4륜 구동차는 산악지대나 사막에서의 주행성을 높이기 위해 4개의 바퀴 모두에 힘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지 악천후에서의 제동력까지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6) 자동변속기車 주차 때 핸드브레이크를 채운다

변속레버가 ‘주차(P)’ 위치에 있으면 변속기 내부의 기계적인 작동으로 기어가 풀리지 않아 더 이상의 안전장치는 필요없다. 겨울에는 브레이크 패드, 디스크, 드럼, 라이닝 등이 얼어붙을 수 있으므로 안 채우는 게 좋다.

7) 새 차에 코팅광택 하면 도장 수명이 오래간다

광택을 내는 것은 도장 표면을 미세하게 벗기는 작업이다. 출고 후 3개월까지는 미미하게나마 도장 면의 건조가 지속되므로 이때 광택작업을 해선 안된다.1년 뒤쯤 찌든 때를 벗겨낼 때 광택 작업을 하는 것이 좋다. 신차일 때에는 세차 후 왁스칠을 해주는 게 도장의 수명을 연장하는 길이다.

8) 새 차는 고속주행으로 달려야 길이 잘 든다

차를 사면 일단 고속도로로 나가 시속 100㎞ 이상으로 달려 주어야 한다는 것은 엔진 재질과 가공기술이 낙후돼 있던 시절의 얘기다. 기술이 첨단화된 요즘은 오히려 차에 손상이 올 수 있다. 새 차는 처음 시동을 걸면 실린더와 피스톤 그리고 각종 기계 작동부의 맞물리는 부분들이 탄력을 받으면서 길들여지기 시작한다. 이때 서로 어긋나는 소리를 내며 자리 다듬기를 한다. 이때가 아주 부드러운 주행이 필요한 순간이다. 출고 뒤 주행거리 1000㎞까지는 과속이나 급가속, 급제동을 삼가야 한다. 엔진 회전수도 4000rpm이 넘지 않는 범위에서 운전해야 한다. 주행거리가 5000∼6000㎞에 이를 때까지는 어린아이 다루 듯 조심조심 운행하는 것이 좋다.

9) 새 차의 엔진오일은 1000㎞에 교환해야 한다

과거에는 엔진 가공 기술이 떨어져 가공면의 미세한 쇳가루 때문에 일찍 엔진오일을 교환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과 재질이 발달해 일찍 교환하는 것은 경제적인 손실이다. 엔진오일 교환주기는 차 회사에서 추천하는 주행거리별, 기간별 중에서 먼저 오는 것을 기준으로 하되 비포장도로, 산악지역, 혼잡한 시내 주행 등 악조건으로 운행한 차는 이 주기보다 20∼30% 일찍 갈아주어야 한다.

10) 겨울에는 공회전을 길게 해야 한다

요즘 차량은 전자제어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최적의 연료량·점화시기에 따라 시동이 이루어진다. 여름에는 1분, 겨울에는 2분 정도면 충분하다. 과도한 공회전은 기름을 낭비하고 공해를 일으킬 뿐 아니라 엔진오일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겨울철 차 부품들이 냉각된 상태에서 시동을 걸자마자 가속페달을 밟으면 기계 작동에 무리를 주고 비정상적인 엔진소리가 나게 된다.

11) 운전대에 손잡이를 달면 방향전환이 쉽다

최근 들어 쉽고 빠른 방향전환을 위해 운전대에 작은 공 모양의 액세서리 손잡이를 달기도 한다. 이는 감각을 둔화시키고 순간적인 비상대처 능력을 떨어뜨린다. 급정거 등 사고 때 운전자의 가슴부위를 때리는 무기로 변할 수 있어 위험하다. 또 액세서리 자체 무게로 운전대가 한쪽 방향으로 쏠릴 수도 있다.

12) 배터리는 한번 방전되면 못 쓴다

배터리는 한번 방전되면 사용하지 못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배터리는 반영구적인 부품이다.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면 수명은 크게 떨어지지만 7.5v 정도의 기본 잔류전압만 유지되면 재충전으로 정상 기능을 되찾을 수 있다. 정상적인 조건에서 최소 2년 정도의 수명을 가진 자동차 배터리는 잦은 방전에 주의하고 배터리액의 수위를 정상으로 유지한다면 이보다 훨씬 오래 쓸 수 있다. 방전됐더라도 나중에 배터리가 제 기능을 낸다면 굳이 배터리를 바꿔야 한다는 정비업소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도움말 주신 분=현대차 이광표 차장, 대우차판매

한기복 부장, 르노삼성 이건화 도봉사업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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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유래와 뜻

☞가시내
여자의 순우리말 '가시'와 태생을 뜻하는 '나이"가 합쳐서 가시내, 가시나가 되었다.

☞개나발
'개'란 '야생의', '마구잡이의'란 뜻의 접두사로 마구 불어대는 나팔.

☞개차반

개가 먹을 차반(잘 차린 음식). 즉 똥. ->행세가 고약하고 성격이 나쁜 행동.

☞건달
불교의 건달바(乾達婆)라는 말에서 유래. 건달바는 수미산 금강굴에 사는 하늘나라의 신으로 고기나 밥은 먹지 않고 향만 먹고 살며 허공을 날아 다니면서 노래를 하는 존재다. 원래는 존재의 뿌리가 불확실하여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존재를 뜻했으나 '빈둥거리며 게으름 부리는 사람'. 또는 '빈털털이'란 뜻으로 쓰이고 요즘은 불량배나 깡패의 의미로 쓰임

☞계집
모계중심이던 사회에서 집에 계시는 사람이란 뜻으로 '계집'이라 했으나 점차 부계중심의 사회로 바뀌면서 '계집' 자체가 하대용으로 쓰이게 됨.

☞고문관
한국전쟁과 미군정 시기에 미군의 군사 고문관들이 한국 군대에 주둔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한국말에 서투르고 한국실정에도 어두워 실수를 많이 했는데, 이를 한국인들이 이용하여 속이고 잇속을 챙기는 일이 많았다. 이로부터 군대 내에서 어리숙한 사람을 고문관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사회전반으로 퍼진 것이다.

☞곤죽
원래는 곯아서 썩은 죽이란 의미에서 밥이 몹시 질거나 땅이 질척한 상태란 의미로 변하였고 다시 사람이 몹시 상하거나 늘어진 상태를 비유하는 말로 변하였다.
즉 몹시 상하고 엉망이 되어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깡패
영어의 '갱(gang:강도단)'과 한자 '패(:패거리)'의 합성어이다.

☞꺼벙이
꿩의 어린 새끼를 꺼병이라고 하였다. 이 꺼병이는 암수구별이 안될 뿐 만 아니라 생긴 것도 못생겼는데 이에 빗대어 어딘가 모자란 듯하거나 못생긴 사람을 꺼벙이라 하게 되었다.

☞등신
등신(等神)은 한자어 그대로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신상을 말한다.

☞마누라
조선시대 '대비 마노라" 와 같이 왕비에게 쓰이던 극존칭이 조선후기 이후부터 늙은 부인이나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 됨.

☞멍텅구리->멍청이
멍텅구리란 바다에 사는 물고기의 이름인데 이 물고기는 못생기고 동작이 느리다. 여기에 비유하여 판단력이 느리고 시비를 잘 모르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모리배
모리배(謀利輩):도의를 부시하고 단순히 이익만을 꾀하는 무리.

☞바가지
옛날에 콜레라가 돌 때 귀신을 쫓는다고 바가지를 문질러서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여기서 유래해 잘못을 듣기 싫을 정도로 귀찮게 나무라는 뜻이 됨.

☞바보
'밥+보'에서 'ㅂ'이 생략되어 바보가 되었다. 울보, 느림보 등 '보'는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로써 밥보는 밥만 먹고 할 일없이 노는 사람을 가리키다가 지금은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이비
사시이비(似是而非)의 준말로 겉은 비슷하나 본질은 다른 것.

☞삿대질
배의 삿대를 젖는 행동. 싸울 때의 손가락질이 삿대질과 비슷한데서 유래.

☞씨알머리
'씨알(종자)머리'가 없다. 즉 근본, 가문이 없어서 무례하다.

☞아니꼽다
장(臟)을 뜻하는 '안'과 굽은 것을 뜻하는 '곱다'가 합쳐져서 '장이 뒤틀린다'는 뜻. 즉 장이 뒤틀려 토할 것 같이 불쾌하고 매스껍다는 뜻이 되었다.



☞애물단지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이나 매우 속을 썩이는 물건이나 사람이란 뜻이다.

☞얼간이
음식을 소금에 약간 절이는 것을 '얼간'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대충 어리숙하고 어딘가 모자라는 사람을 뜻한다.

☞옘병할
'염병(장티푸스)을 앓아서 죽을' 이란 뜻. 옘병할 놈.

☞엿먹다
'엿'이란 남사당패에서 여자의 성기를 뜻하는 은어였다. 즉 '엿먹어라'라는 식으로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다.

☞우라질
오라(죄인을 묶던 붉은 줄)+지다(묶다)가 합쳐서 오라지다. 즉 '오라질'은 '못된짓을 하여 오라에 묶인다는 뜻'으로 미운 사람에게 하는 욕이다. 우라질 놈.

☞육시랄
육시(戮屍)는 이미 죽은 사람을 관에서 꺼내어 머리를 베는 형벌을 말한다.
그만큼 저주가 담긴 욕이다. 육시를 할 놈 -> 육시랄 놈

☞지랄하다
'지랄'은 간질병을 뜻한다. 즉 간질환자들의 발작증처럼 마구 법석을 떨거나 분별 없는 행동을 떤다는 뜻이다.

☞젠장할
'네 난장(亂杖)을 맞을' 이 줄어서 된 말. 난장이란 조선시대 정해진 형량없이 닥치는 대로 때리는 형벌임. '제기, 난장을 맞을'을 줄여 젠장할이 됨.

☞젬병
전병(煎餠:찹쌀가루나 수숫가루로 반죽하여 속에 팥을 넣고 부친떡))에서 나온말. 이 떡은 잘 부서wu서 모양내기가 힘들다. 즉 실력이나 기술이 없음을 뜻한다.

☞쪽발이
'쪽발'이란 발통이 두조각으로 이루어진 물건을 뜻하는 말이다.
일본인들이 두갈래로 된 나막신을 주로신는다 해서 쪽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칠뜨기
칠삭둥이란 뜻으로 약간 모자라는 사람을 칭한다.

☞칠칠맞다
칠칠하다(채소 따위가 깨끗하게 잘 자랐다는 말)의 잘못된 표현.->'칠칠치 못하다'. '칠칠치 않다'라고 써야 함

☞할망구
나이에 따른 명칭을 보면 80세를 모년(暮年)이라 하고, 81세는 90세 까지 살기를 바란다고 망구(望九)라 한다. 즉 망구를 바라는 할머니란 뜻이다.

☞호로자식
홀어미 밑에서 자란 자식(홀의 자식:호래/후레자식)과 오랑캐 노비의 자식(호로(胡奴)자식)이란 두가지 해석. 둘 다 버릇없고 막되먹은 사람을 말함.

※화냥년
화냥년에 대한 해석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명자호란때 청나라로 끌려가던 여인들이 돌아오자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이란 의미로 환향녀(還鄕女)라 부르던데서 유래되었다.
2. <역어유해>에는 노는 계집을 화랑(花郞)이라 적고 있다. 이 화랑이 남자무당(男巫)의 뜻으로 변하면서 '화냥'이 되었다.
3. 만주어 'hayan[하얀]'에서 온 말로 음탕한 계집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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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안동 - 하회마을
2 . 안동 - 탈 박물관
3 . 정선 - 아우라지
4 . 태백 - 석탄 박물관
5 . 서산 - 간월암 일몰 풍경 고수동굴


6 . 단양 - 고수동굴
7 . 진안 - 마이산 겨울풍경
8 . 영덕 - 강가에서 축산까지
9 . 영덕 - 일출과 강구항
10 . 서산 - 천수만 철새탐조여행
11 . 부안 - 채석강


12 . 진부 - 오대산 설경
13 . 청송 - 주왕산 설경
14 . 신안 - 다도해의 보석
15 . 원주 - 치악산 설경
16 . 완도 - 청산도
17 . 울릉도 - 유람선 관광
18 . 울릉도 - 내륙 관광


19 . 공주 - 계룡산 동학사
20 . 강진 - 다산초당과 다산유물관
21 . 남제주 - 송악산
22 . 정읍 - 내장산(단풍)
23 . 봉화 - 내청량사와 김생굴
24 . 서천 - 신성리 갈대밭


25 . 강릉 - 오대산소금강 단풍
26 . 양평 - 양수리 두물머리
27 . 영광 - 불갑사와 상사화
28 . 봉평 - 이효석 문화마을과 메밀밭
29 . 보령 - 무창포 해수욕장
30 . 보령 - 대천 해수욕장
31 . 양양 - 학마을


32 . 부안 - 곰소만 갯벌여행
33 . 제주서부 - 용머리해안
34 . 부안 - 내변산 직소폭포
35 . 통영 - 동양의 나폴리
36 . 최남단의 섬
37 . 성산포 - 해뜨는 일출봉


38 . 서귀포 - 천지연 폭포
39 . 고흥 - 소록도
40 . 용인 - 와우정사
41 . 제주 - 섭지코지
42 . 제주 - 산방산 산방굴사


43 . 부여 - 궁남지
44 . 단양,영주 - 소백산
45 . 평창 - 오대산 상원사
46 . 강릉 - 오대산 소금강
47 . 순천 - 선암사
48 . 춘천 - 남이섬
49 . 몽산포 해변 오프로드


50 . 태안 - 안면도 자연휴양림
51 . 거제 - 해금강
52 . 합천 - 황매산

53 . 남원 - 바래봉 철쭉
54 . 괴산 - 화양 9곡
55 . 담양 - 소쇄원


56 . 영월 - 래프팅
57 . 강촌 - 번지점프
58 . 성산포 스킨 스쿠버
59 . 강원 - 오프로드
60 . 화순 - 운주사
61 . 청송 - 주산지


62 . 하동 - 쌍계사 10리 벚꽃
63 . 여수 - 돌산도 향일암
64 . 거제 - 외도
65 . 진안 - 겨울 마이산
66 . 공주 - 계룡산 갑사
67 . 영덕 - 복사꽃마을
68 . 광양 - 섬진강변의 매화마을
69 . 완주 - 송광사와 벚꽃


70 . 구례 - 산수유마을
71 . 언양 - 자수정동굴
72 . 당진 - 안섬 휴양공원
73 . 남양주 - 운길산 수종사
74 . 강진 - 백련사와 동백
75 . 영주.단양 - 소백산 설경
76 . 무주 - 덕유산 눈꽃 산행


77 . 고성 - 거진항
78 . 양양 - 남대천 연어 축제
79 . 태안 - 안면도 꽂지일몰
80 . 고성 - 진부령 황태덕장
81 . 양양 - 낙산 일출
82 . 강원 - 환상선 눈꽃 열차
83 . 태백 - 태백산 설경
84 . 양양 - 설악 주전골


85 . 청송 - 주왕암과 주왕굴
86 . 서산 - 간월도
87 . 홍성 - 천수만 철새
88 . 아산 - 외암리 전통마을
89 . 순천 - 낙안 읍성 민속마을
90 . 강릉 - 정동진 일출


91 . 서귀포 - 해저 잠수함 투어
92 . 합천 - 가야산 홍류동 계곡
93 . 합천 - 매화산
94 . 영주 - 부석사
95 . 장성 - 만추의 백양사
96 . 동두천 - 소요산 자재암
97 . 인제 - 백담사 계곡 단풍


98 . 영광 - 모악산 불갑사
99 . 보성 - 보성다원
100 . 고창 - 선운산
101 . 화성 - 제부도
102 . 포항 - 내연산 12폭포 계곡
103 . 포항 - 청하 보경사
104 . 구리 - 한강둔치 장미공원

105 . 구리 - 코스모스공원


106 . 영암 - 월출산
107 . 제주 - 우도 사빈백사
108 . 제주 - 우도
109 . 영월 - 섬안이강
110 . 여주 - 강변고찰 신륵사
111 . 김천 - 직지사
112 . 영월 - 요선정과 요선암


113 . 창녕 - 화왕억새
114 . 창녕 - 화왕산 패러글라이딩
115 . 밀양 - 사자평 억새
116 . 옹진 - 덕적도 자갈마당 해변
117 . 옹진 - 덕적도 서포리 해변
118 . 강화 - 마니산과 참성단
119 . 가평 - 청평호반


120 . 강화 - 석모도 염전
121 . 강화 - 석모도 보문사
122 . 봉평 - 흥정천 계곡
123 . 봉평 - 메밀꽃과 이효석생가
124 . 평창 - 대관령목장
125 . 강화 - 덕포진
126 . 울진 - 덕구계곡


127 . 제주 - 성읍 민속마을
128 . 군산 - 선유도
129 . 하동,구례 - 섬진강 100리길
130 . 양양 - 낙산 해수욕장
131 . 영덕 - 옥계계곡
132 . 포항 - 장기곶 해맞이
133 . 포항 - 장기곶
134 . 포항 - 구룡포해수욕장


135 . 통영 - 비진도
136 . 태안 - 안면도 대하잡이
137 . 통영 - 소매물도 등대섬
138 . 양양 - 하조대 해변
139 . 춘천 - 위도
140 . 제천 - 월악산 용하구곡
141 . 삼척 - 신남해변


142 . 단양 - 삼선구곡
143 . 단양 - 다리안 계곡
144 . 강릉 - 사천진항과 해변
145 . 남해 - 금산 보리암
146 . 남해 - 금산절경
147 . 경주 - 문무왕 수중왕릉
148 . 창녕 - 화왕산 진달래
149 . 거제 - 구조라 해수욕장


150 . 거제 - 여차해변
151 . 거제 - 학동몽돌해변
152 . 고성 - 상족암해변 (공룡발자국)
153 . 청도 - 소싸움 축제
154 . 보령 - 대천 호도
155 . 괴산 - 선유동 계곡
156 . 부산 - 해운대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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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성질 중에 자의성(恣意性)이란 것이 있다.
 말이 처음 생길 때, 사물과 이름, 뜻과 말소리의 결합이 누군가 자의적(= 임의적)으로 붙여서 되는 성질을 말한다.
그러나 거기엔 필연적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자의적으로 시작한 언어가 언중들의 동의를 얻어 사회성을 얻게 되고, 역사적으로 변천하는 것(역사성)이 언어가 걷는 길이다. 그런 과정에서 문명의 발달로 새 말이 자꾸 생기고, 새로 생긴 말에는 어떤 필연적 이유도 있게 된다. 이를 말의 어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말의 어원을 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어원을 정확하게 추론한다는 것 또한 지난한 일이다.
그래서 말의 어원에는 많은 이설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때가 많이 있다. 말의 어원을 아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또한 그런 어원을 통해 그 말 속에 담긴 선인들의 얼을 엿볼 수도 있다.
부분적이지만 이 장에서 다룬 말의 어원들을 통해 재미있고 윤택한 언어생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게
작은 규모의 물건을 파는 집을 뜻한다.
‘가게’는 원래 한자어 ‘가가(假家: 임시로 지은 집)’에서 온 말이다.
큰 것은 어물전처럼 전(廛)이라 하였고, 다음은 점방처럼 방(房)이라 하였으며, 구멍가게처럼 규모가 작은 것을‘가가(假家)’라 하였다. 그 ‘가가’가 변음되어 ‘가게’가 되었다.

가물치
‘-치`는 물고기를 나타내는 접미사이다.
천자문에서, `하늘 천, 따 지, 가물 현` 그 ‘가물 현’의 ‘가물’이 오늘날 `검다`의 뜻이다. 고어에선 `검다`를 `감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가물치`는 결국 `검은 고기`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字가 붙는 물고기는 비늘이 있는 물고기이고, ‘치’자가 붙은 물고기는 비늘이 없는 물고기다. (오징어, 문어, 고등어 등은 예외).
또한 '치'로 끝나는 것들은 고유어(꽁치, 넙치, 준치, 멸치 등)이고, '어'로 끝나는 것들(붕어, 잉어, 숭어, 방어 등)은 한자어이다.

가을
사계절의 세 번째 계절을 뜻하는 ‘가을’은 ‘벼가을’, ‘보리가을’, ‘밀가을’처럼
본래는 농작물을 거둬들이는 일을 뜻하였다.
이로부터 ‘가을’은 농작물을 주로 수확하는 계절로서의 ‘가을철’을 뜻하게 되었다.

갈매기살
고깃집에 웬 갈매기인가 하고 ‘갈매기살’하면 바다 갈매기를 떠올리면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다. 갈매기살‘은 돼지 내장의 ‘횡격막(橫膈膜)’에 붙어 있는 고기다. ‘횡격막’은 폐의 호흡을 돕는 근육성의 막인데 우리말로는 ‘가로막’이라고 했다. 뱃속을 가로로 막고 있는 막이란 뜻이다. 이 ‘가로막’에 붙어 있는 살을 ‘가로막살’이라고 한다. ‘가로막살’은 얇은 껍질로 덮여있는 근육질의 힘살로 다른 부위의 고기보다 질기기 때문에 이 부위를 기피해 왔다.
그런데, 누군가가 거들떠보지도 않던 ‘가로막살’을 모아 껍질을 벗긴 뒤 팔기 시작하였다. 그 담백한 맛과 저렴한 가격 때문에 갑자기 인기가 많아졌다. 이 ‘가로막살’을 상품화하여 팔면서부터 ‘갈매기살’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가로막살 → 가로마기살 → 가로매기살 → 갈매기살
이런 언어적 유추 과정을 거쳐 오늘날 ‘바다 갈매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재미있고 엉뚱한 ‘갈매기살’이란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갈보
‘갈다’는 ‘교체交替’의 뜻이다. 여기에 ‘울보, 먹보’하듯이 어떤 행동을 천할 정도로 자주한다는 뜻의 ‘ -보’ 라는 접미사가 붙어 된 말이다. 즉 이 사내 저 사내 갈아 치우기를 잘 하는 여자란 뜻으로 웃음과 몸 파는 여자를 ‘갈보’라 하였다.
오늘날, ‘매춘부(賣春婦)’니 ‘창녀(娼女)’니 하는 한자어가 이에 해당하는 말이다.

감쪽같다
우리 민담에 호랑이보다 무서운 게 곶감이다. 우는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칠 만큼 달고 맛있는 게 곶감이다. 그 곶감을 누가 빼앗아 먹거나 나누어 달라고 할까 봐 빨리 먹어 치우고 말끔히 흔적이 없게 한 데서 생긴 말이다.
오늘날, `(고치거나 꾸민 것이) 표가 나지 않게 완벽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강강술래(강강수월래)
전라도 해남 지방에서 여자들이 한가위 밝은 달밤에 손에 손을 잡고 큰 원을 그리며 뛰노는 우리 고유의 민속춤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인 강강술래의 유래에 대해서는 고대 시대부터 있었다는 주장과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부녀자들을 동원하여 적을 속한 위한 전술에서 비롯되었다는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
첫째, 이순신 장군 관련설에서 나온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 强羌遂月來, 江江水越來, 羌羌水越來, 强强須來) 등이 있다. 대체로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오니 경계를 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둘째, 강강은 단순한 여음이거나 두드리는 악기의 의성어라는 주장이다.
셋째, ‘강’은 전라도 방언으로 원(圓)을 뜻하며, ‘술래’는 순라(巡邏)를 의미하는 것으로, 술래잡기를 하듯 원을 그리며 돈다고 해서 생긴 말이라는 주장이다.
넷째, 수레바퀴처럼 감고 감으라는 뜻의 ‘감감수레’가 ‘강강술래’로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이 중에 어느 것이 가장 정확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다만 이순신 장군 관련설은 역사적 사실과 정황에 맞춘 민간어원설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표준어는 ‘강강술래’다.
해남 지방 강강술래 민요의 노랫말은 이렇다.
달 떠온다 달 떠온다 강강술래
하늘에서 달 떠 온다 강강술래
달 우에는 별도 총총 강강술래
구름 속에 숨은 달은 강강술래
혀만 삐쭉 물었구나 강강술래
꽃도단포 화단 치마 강강술래
맵시 좋게 잘라 입고 강강술래
마당 좋고 동무 졸(좋을) 때 강강술래
신명털이나 하고 가세 강강술래

개차반
‘차반’은 예물로 가져가는 맛 좋은 음식이란 뜻으로, 흔히 새색시가 근친하고 시집에 올 때에 정성껏 잘 챙긴 음식이다. 똥이 개에게는 차반과 같다고 비유한 말로, ‘하는 짓이나 마음씨가 더러운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접두사 ‘개-’가 결합한 말은 진짜보다 좋지 않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와 같은 단어로 ‘개떡, 개죽, 개꿈, 개나리, 개살구, 개머루, 개꽃(철쭉)’ 등이 있다.

개평
조선 중기부터 조선 말엽까지 쓰이던 ‘상평통보’라는 엽전이 있었는데, ‘상평(常平)을 줄여서 `평`이라 하였다. 그러니 `평`은 곧 돈을 뜻했다. 주로 놀음판에서 딴 것 가운데 조금 얻어 가지는 일, 또는 그렇게 가진 공것을 뜻하는 말로 딴 돈 중에서 대개는 낱돈으로 주기 때문에 낱 `개(個)` 자를 써서 `개평(個平)’이라 했다.
‘개평’이 경기도 ‘가평의 떡’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발음의 유사성으로 유추한 민간어원설일 뿐이다.

거덜나다
조선시대에 사복시라는 관청이 있었는데, 거기서 말[馬]을 맡아보던 종을 ‘거덜’이라 했다. 궁중에서 높은 사람이 행차할 때 ‘물렀거라’하며 큰소리로 길을 비키라고 사람들을 몰아세우다 보니 자연히 우쭐거리며 몸을 흔들고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잘난 체 거드름 피우는 것을 ‘거덜거리다’라고 하게 되었다.
또, 이렇게 ‘흔들흔들 한다’는 뜻이 더욱 발전하여 ‘사업(살림)이나 물건이 흔들리어 결딴이 나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자고로 거드름 피우는 것은 망조다. 경계할 일이다.

거울
거울이 없던 시절엔 냇물이나 우물을 거울로 삼았다. 얼굴을 물에 비춰보면 거꾸로 보였을 것이다. ‘거꾸로’의 옛말이 ‘거구루’였다. ‘거구루’가 ㄱ이 탈락하고, 동음이 생략되어 ‘거구루 → 거우루 → 거울’로 된 것이다.

건달乾達
‘건달바`는 수미산(須彌山) 남쪽 금강굴에 살면서 하늘나라의 음악을 책임진 신(神)의 이름이었다. 이 ‘건달바’는 향내를 맡으면서 허공을 날아다니며 노래와 연주를 하고 살았다 한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악사(樂士)나 배우까지 ‘건달바’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여 한동안 ‘건달’을 ‘광대’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건달바’는 ‘건달’로 어형이 축소되었고, 의미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돌아다니며, 남의 일에 트집 잡기를 잘하는 사람’ 또는 ‘밑천을 다 잃고 빈털터리가 된 사람’이라는 새로운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다.
흔히 주먹 세계에서 ‘건달’과 ‘깡패’는 다르다 하며, 건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건달바’가 노래나 하며 한가롭게 지내는 신이라는 어원에 근거하여 ‘한량’쯤으로 착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更을 치다
옛날에 밤 시간을 알리는 한 방법으로 경(更)에는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 점(點)에는 꽹과리를 쳐서 시간을 알렸다.
경은 하룻밤을 초경, 이경, 삼경, 사경, 오경 다섯으로 나누었는데, 삼경은 지금으로 치면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고, 이 때에는 북을 28번 쳤다. 이것을 인정(人定)이라 하며, 인정이 되면 도성의 사대문을 걸어 잠그고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수상한 사람이 인정 이후에 돌아다니다 순라군에게 잡히면 순포막으로 끌려가서 여러 가지 심문을 받은 후 죄가 없으면 오경(五更) 파루(罷漏)가 친 뒤에 풀려났다. 이런 사실에서 인정 이후 끌려갔다가 파루 친 뒤까지 순포막에서 경을 치르고 나왔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호되게 혼쭐이 나다’ 뜻으로 `경을 치다`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또 다른 ‘경’의 어원
조선시대에 행해졌던 ‘자자(刺字)’라는 형벌이 있었다. 자자란 고대 중국에서부터 행해졌던 형벌의 하나로, 얼굴이나 팔뚝의 살을 따고 흠을 내어 먹물로 죄명을 찍어 넣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영조 때까지 행해졌다. 이 형벌을 경(黥)이라 했다. `경을 친다`는 것은 곧 도둑이 관아에 끌려가서 `경`이란 형벌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 호되게 꾸중을 듣거나 심한 벌을 받는 것을 이르는 말로 널리 쓰인다.

고구마
고구마는 원래 중미 지역이 원산지로 일본 대마도를 통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전해졌으며, 고구마란 이름도 그 때 함께 들어왔다.
대마도에서는 고구마를 `고오꼬오이모`라고 했으며, 여기서 `고오꼬오`는 효행(孝行)의 뜻인 일본말이다. 그리고 `이모`는 `감자` 종류다. 대마도의 가난한 백성이 병약한 부모를 고구마로 봉양했다고 하는 전설에서 생겨난 이름이 `고오꼬오이모`이며, 이 말이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 와서 지금의 `고구마`라는 말이 되었다.

고리짝
`옛날 옛적 고리짝에 한 사람이 살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는 으레 이렇게 시작되곤 하였다.
`고리짝`이 `고려 적(고려 때)`이 오랜 동안 구전되어 오면서 그 뜻을 잃어버린 단어임을 알았더라면, `옛날 옛적 고려 적에`로 말하였으리라.
옛날이야기는 말 그대로 오래된 이야기다. 그 오래됨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고려 시대`를 언급해야 했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 남아 있는 많은 고소설이 `조선 숙종대왕 즉위 초에` 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숙종 때는 우리의 고대소설이 발아한 초창기 시대다.
이처럼 옛날이야기를 조선 시대에서는 `옛날 옛적 고려 적에`로 시작했던 것인데, 이것이 오늘날 `옛날 옛적 고리짝에`로 변화된 것이다. ‘고리짝’은 ‘고려적’이 변한 말이다.

고수레
원래 무당이 굿을 할 때,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귀신에게 먼저 바친다는 뜻으로 음식을 조금씩 떼어 던지는 짓, 또는 그때 내는 소리를 뜻한다.
고수레에 대한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그 중 숙종 때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지었다는 『규원사화』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신시 시대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준 고시(高矢)씨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답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불을 얻는 방법과 농사짓고 수확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후대에 이르러 들에서 농사짓고 산에서 나물을 캐던 사람들이 고시 씨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음식을 먹을 때면 `고시네`라고 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고시네 → 고시레 → 고수레` 로 변한 것이다.
이것은 근방을 다스리는 지신(地神)이나 수신(水神)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무사하게 해 달라는 기원의 뜻도 들어 있어 근처의 잡귀나 동물들에게 너희들도 먹고 물러가라는 주술적인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추
고추가 조선 중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이름은 고초(苦草)였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쓴 풀`이라고 하겠는데, `고초`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소리의 변화(이화 작용)를 일으켜 `고추`가 되었다. 고추의 그 길쭉하고 뾰족한 모양에 착안하여 그와 비슷한 남자의 상징을 ‘고추’로 비유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오늘날 매운 고추를 ‘청양고추’라 하는데, 이는 매운 고추로 유명한 경상북도 ‘청송’과 ‘영양’에서 한 글자씩 따서 ‘청양고추’라 부르게 되었다. 충청남도 ‘청양’에서 비롯되었다 함은 잘못이다.

곤죽
밥이나 땅이 몹시 질퍽질퍽한 상태, 일이 엉망이 되어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 곤죽은 곯아서 썩은 죽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밥이 몹시 질거나 땅이 질척질척한 상태를 가리키게 되었으며, 나아가 사람의 몸이 몹시 상하거나 늘어진 상태를 비유하는 말로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술을 곤죽이 되도록 퍼 마셨군`과 같이 쓰인다.

골탕먹다
`크게 곤란을 당하거나 손해를 입다`는 뜻이다.
골탕이란 원래 소의 머릿골과 등골을 맑은 장국에 넣어 끓여 익힌 맛있는 국물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골탕을 먹는 것은 맛있는 고기 국물을 먹는다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곯다`라는 말이 골탕과 음운이 비슷함에 따라 ‘골탕’이라는 말에 `곯다`라는 의미가 더해지고, 또 `먹다`라는 말에 `입다`, `당하다`의 의미가 살아나서 `골탕먹다`가 `겉으로는 멀쩡하나 속으로 남모르는 큰 손해를 입게 되어 곤란을 겪는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곶감
‘곶감’의 ‘감’은 물론 과일의 하나인 ‘감’을 뜻한다. 그리고 ‘곶’은 ‘곶다’의 어간 ‘곶-’이다. ‘곶다’는 현대국어에서는 된소리가 되어 ‘꽂다’로 되었다. 그래서 일부 방언에서는 ‘꽂감’이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곶감’은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을 말한다.

과메기
과메기는 청어를 말려서 만드는 ‘관목(貫目)’에서 유래했다. 관목의 ‘목’이 포항 지방의 방언으로 ‘메기’라고 발음되어 ‘관목’이 ‘관메기’로 변하였고, 다시 ‘ㄴ’이 탈락되어 ‘과메기’로 굳어졌다.
과메기는 음력 동짓날 추운 겨울에 잡힌 청어를 배도 따지 않고 소금도 치지 않은 상태로 그냥 온마리를 엮어 그늘진 곳에 말려 만드는 것이다. 곧 냉훈법으로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한 동결 건조 식품이다. 지금은 모양에 따라 배를 따서 뼈만 발라낸 ‘배진 것’, 통째로 짚으로 엮은 ‘엮걸이’ 두 가지로 분류되고 있다.

그 정도면 약과藥果
과줄이라고도 하며, 밀가루를 꿀물이나 설탕물에 반죽하여 과줄판에 박아 찍어낸 것으로 주고 제사에 쓰이는 다과가 약과(藥果)다.
그 맛이 달고 고소하며, 딱딱하지 않아서 누구라도 수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래서 `그 정도면 약과`라는 말은 어떤 일의 정도가 약과를 먹는 일처럼 수월하고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때 쓰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는 `그 정도면 식은 죽 먹기다`가 있다.
‘약과는 누가 먼저 먹을지 모른다’는 말은 약과는 제사에 쓰이는 음식이므로 누가 먼저 죽어서 약과를 받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다.

‘글’은 동사 ‘긋다’의 어간 ‘긋’에 그 어원이 있다.
지난날 ‘긋’은 ‘귿’으로 표기되다가 ㄷ - ㄹ의 교체 현상(듣고 - 들으니, 묻고 - 물으니 등 오늘날 ‘ㄷ’불규칙)에 따라 ‘글’이 되었다. ‘금’, ‘그림’도 같은 어원에서 된 말이다. 결국 ‘글’은 어떤 도구로 그어서 된 것 이라는 뜻으로 된 말이다.

김치

우리나라에서는 김치를 ‘지(漬)’라고 하였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는 김치무리 담그기를 ‘염지(鹽漬)’라 하였는데, 이것은 ‘지(漬)’가 소금물에 담근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소금을 뿌린 채소 등을 재워두면 안에 있는 수분이 빠져 나와서 채소가 국물에 침전되는 것을 보고 ‘ㅣ(沈菜)’라는 특이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는 菹를 ‘딤ㅣ 조’라 하였다. (후에 ‘저’로 읽힘)
결국 ‘ㅣ → 딤ㅣ → 짐치(방언) → 김치(부정회귀 현상. 대체로 역구개음화. 질 → 길 등)로 변하였다. 결국 김치는 채소를 소금물에 담근 것을 뜻하였다.

꼬마
중세어에서의 우리말 ‘고마’는 아내 있는 남자의 사랑을 받고 사는 여자로 시앗, 첩(妾)을 이름이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고마’는 오늘날처럼 ‘키 작은 어린 사람’이 아닌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라는 뜻이었다. 그 ‘고마’가 된소리되기와 의미 변화를 일으켜 오늘날 ‘꼬마’가 되었으며, ‘꼬마둥이’, ‘꼬맹이’라고도 부른다.

꼬투리
`꼬투리`는 콩과 식물의 씨가 들어 있는 껍질을 뜻하는 말로, 씨앗의 모태가 된다는 면에서 어떤 이야기나 사실의 실마리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꼬투리를 잡다`는 남의 잘못이나 문제가 되는 실마리를 틀어쥐다 는 뜻이다.

꼭두각시
꼭두각시는 원래 우리나라 고대 민속 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인형을 말한다.
꼭두각시에서 ’꼭두‘는 ’꼭뒤‘라고도 하는데 뒤통수의 한가운데나 꼭대기를 가리키는 말이고,’각시‘는 젊은 색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꼭두각시는 머리 꼭대기에 기괴한 탈을 쓰고 노는 여자 광대를 가리켰다. 그러던 것이 점차 그 뜻이 넓어져 나무로 깎아 만든 젊은 색시 인형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상야릇한 탈을 씌운 이 인형은 그 자체로 움직이지 못하고 반드시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오늘날 무조건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나 정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괴뢰(傀儡), 망석중이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반정(中宗反正)을 꾀하던 날 밤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연산군은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는 소홀한 채 술과 놀이만 일삼던 임금이었다.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자 나라는 점점 어지러워졌다.
"허어, 왕께서 허구한 날 술과 계집의 치마폭에서 헤어날 줄을 모르니 나라꼴이 말이 아니오."
"그러게 말이오. 옳은 말을 하는 신하는 멀리하고 간신들의 아첨에만 귀를 기울이니 원!"
"뜻 맞는 사람끼리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임금을 몰아내든지 해야지,"
"쉿! 누가 듣겠소. 자, 사람들 눈을 피해 조용한 데서 얘기합시다!"
연산군의 그런 행동을 보다 못한 몇몇 신하들이 비밀리에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희안, 박원종 등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나라를 바로잡고자 뜻을 모은 사람들이었다.
"오늘 밤 모두들 박원종의 집으로 모이시오. 마지막으로 내일 할 일을 점검해 보아야겠소."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다 모이자 성희안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각자 어떤 일을 맡겠으며, 준비에 차질은 없는지 돌아가면서 말해보시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모두 다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오직 구석에 앉은 한 사람만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달빛도 없는데다 비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촛불도 켜지 않은 터라, 그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성희안은 가만히 모인 사람들을 세어보았다. 놀랍게도 모이기로 한 사람보다 한 명이 더 많은 게 아닌가.
"박 대감, 엄탐꾼이 들어와 있소."
박원종도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염탐꾼이 있다면 내일 벌이기로 한 큰 일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 모인 사람들도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염탐꾼은 보이지 않았다.
"성 대감, 대체 누굴 보고 그러시오?"
성희안은 말없이 한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성희안이 가리키는 것을 바라보던 박원종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성 대감, 그건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내일 큰일을 위해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요."
정말 자세히 보니 보릿자루였다. 그런데 거기에 누군가 갓과 도포를 벗어 놓아 영락없이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허허, 내가 너무 긴장했나 보군. 꿔다놓은 보릿자루를 사람으로 착각하다니...!"
그 뒤로 어떤 자리에서 있는 둥 없는 둥 말없이 그저 듣고만 있는 사람을 가리켜 '꿔다 놓은 보릿자루‘라 하게 되었다 한다.

끈 떨어진 망석중
의지할 곳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이나, 물건이 못 쓰게 되었거나, 일이 그만 허사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쓰는 말이다.
‘망석중이’는 나무로 다듬어 만든 인형으로 팔다리에 줄을 매달아 그 줄을 당겨 춤을 추게 하는 ‘망석중이놀이’에 나오는 인형이다.
옛날에 주로 음력 4월 초파일 연등 행사에서 무언 인형극인 ‘망석중놀이’를 하였는데, 망석중, 노루, 사슴, 잉어, 용 따위의 인형이 사용되었다.
이 ‘망석중놀이’는 송도의 유명한 기생인 황진이가 당시에 30년 동안 면벽수도를 했다는 명승인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시킨 일을 풍자하기 위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망석중은 끈을 매달아 움직이기 때문에 끈이 끊어지면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남을 지나치게 희롱한다는 뜻으로 `망석중 놀리듯 한다‘라고 쓰기도 한다.

나쁘다
`나쁘다`는 본래 `낮+브다`로 이루어진 말로서 `높다`의 반대로 낮은 상태를 뜻하였다.
오늘날은 ‘나쁘다’는 높고 낮음의 고저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어떤 가치의 높고 낮음을 나타내는 뜻으로 전이되어 `기준에 못 미친다`, `질이 낮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뜻으로 두루 쓰이고 있다.

난장
`시골에서 정한 장날 외에 특별히 며칠간 서는 장‘, 또는 ’한데다 난전을 벌여 놓고 물건을 파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옛날에는 관리로 등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를 거쳐야 했다. 그래서 과거를 볼 때가 되면 오로지 급제를 위해 수년 동안 공부를 한 양반집 자제들이 전국 각지에서 시험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렇듯 수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어 질서 없이 들끓고 떠들어 대던 과거 마당을 `난장`이라고 했다. 과거 시험장의 난장에 빗대어 뒤죽박죽 얽혀서 정신없이 된 상태를 일컬어 ‘난장판’이라고 한다.

날샜다
‘날샜다’라는 말은 원래 영화를 만들던 사람들이 쓰던 말이었는데, 차츰 일반 사람들도 이 말을 쓰게 되었다.
영화를 촬영할 때 밤이 나오는 장면은 꼭 밤에만 찍어야 했는데, 찍고자 하는 내용을 미처 다 찍지 못하고 날이 새면 할 수 없이 하루를 기다려 그 다음날 밤에 다시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거나 잘못되거나 예상처럼 되지 않고 빗나갔을 때를 가리켜 ‘날샜다’라고 하게 되었다.

남방셔츠
`남자들이 여름에 양복저고리 대신 간편하게 입는 웃옷`을 가리킨다.
`남방(南方) 셔츠(shirts)`가 줄어서 된 말로, ‘남방’은 동남아 지역을 가리키며, 그 곳은 날씨가 덥기 때문에 옷 모양을 소매가 짧고 통풍이 잘 되도록 헐렁하게 만들어 입는다. 날씨가 더운 남방 지방 사람들이 주로 입는 모양의 옷이라는 뜻으로 된 말이다. 줄여서 ‘남방’이라고도 한다.

남산
‘남산’이라 하면 남쪽의 산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원래 `남(南)`은 `앞 남`이었다. 즉 `남산`은 `앞산`이란 의미로 `앞에 있는 산`이 곧 `남산`이다. 그러므로 ‘남산’은 그 고을의 주산(主山)이 된다. 그래서 대체로 어느 고장이나 ‘주산’인 ‘남산’이 있다. 서울의 ‘남산’은 경복궁이나 여러 궁궐에서 보면 조선시대 한양의 ‘주산’였던 것이다. 그리고 좌청룡우백호 배산임수가 명당자리인 것이다. 한편 `북’은 `뒤 북`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죽어 `북망산`에 간다는 것은 뒷산의 묘지로 간다는 뜻이었다.
애국가 중의 `남산 위에 저 소나무` 할 때 남산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주산인 남산의 의미를 새로이 새겨 볼 일이다.

남산골 샌님
살림이 궁핍하여도 살아갈 궁리를 못하고 글만 읽는 가난한 선비를 비웃어 이르는 말이다.
옛날 서울 남산 밑에는 몰락한 구차한 ‘생원’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생원’은 소과에 급제한 선비 또는 나이 많은 선비에 대한 존대어였다. 그 ‘생원’이 ‘샌님’으로 되었다.
남산골 샌님을 ‘딸깍발이’라 했는데, 샌님들이 나막신을 신고 다닌 데서 나온 말이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의 허생도 남산골 샌님을 모델로 한 인물이다. 국어학자 이희승의 <딸깍발이>란 수필도 남산골 샌님들의 가난한 가운데 지조를 예찬한 글이다.

낭만浪漫
낭만은 논리적이거나 현실적이기보다는 주로 정서적이고 이상적인 것을 뜻하는 말이다.
낭만의 원래 말은 프랑스의 로망(roman)이다. 그것이 일본 사람들이 낭만이라고 한 것이다. 로망이라는 말과 비슷한 한자음을 찾아 쓴 게 낭만(浪漫)이었다. 음을 빌려 쓴 가차인 셈이다. 그 일본식 외래어가 우리말에 그대로 들어와 굳어진 것이다.

너스레
`떠벌려 늘어놓는 말솜씨`를 뜻하는 말이다.
흙구덩이나 그릇의 아가리 또는 바닥에 물건이 빠지지 않도록 걸쳐 놓은 막대기를 ‘너스레’라고 한다. 너스레를 늘어놓듯이 그럴 듯하게 떠벌리는 말을 ‘너스레’라 하게 되었다. 흔히 `너스레를 놓다(떨다, 부리다)`라고 쓴다.

넋두리
`불만이 있을 때 주절거리는 소리`을 뜻한다.
원래는 죽은 이의 넋이 저승에 잘 가기를 비는 굿을 할 때, 무당이 죽은 이의 넋을 대신하여(빙의 상태) 하는 말을‘ 넋두리’라 하였다. 무당이 하는 넋두리가 차차 뜻이 확대되면서 그냥 일반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푸념'도 같은 유래의 말이다.
넋걷이: 굿을 하여 죽은 사람의 넋을 거두어들이는 일, 또는 그 노래.
넋대: 무당이 물에 빠져 죽은 넋을 건지는 데 쓰는 장대.
넋반: 무당이 넋을 담는 데 쓴다고 하는 소반.

노가리
명태의 새끼를 말한다.
명태는 한꺼번에 매우 많은 수의 알을 깐다 한다. 명태가 많은 새끼를 까는 것과 같이 말이 많다는 것을 빗대어 쓰기도 한다. 노가리의 수만큼이나 말을 많이 풀어 놓는다는 것은 그만큼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의 의미가 된다. `노가리 풀다`, `노가리 까다`라고 하는 것은 말이 많거나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노다지
바라던 광물이 막 쏟아져 나오는 광맥, 또는 그 광물을 뜻한다.
구한말(舊韓末), 한국을 다녀간 한 외국인 루벤초프가 그의 탐험기(探險記) 속에서, "이 나라는 금이 노출되어도 캐지 않는 나라이며, 특히 북방 연해는 금의 고지였다"라고 씀으로하여, ‘은자(隱者)의 나라(Nation Hermit)’ 는 ‘황금의 나라(Nation of Gold)’로 이미지가 바꾸기 시작했다. 외국 여러 나라들이 눈독을 들였던 한국의 산야(山野)에 깔린 광맥은 외국 사람에 의해 개발되고, 그래서 한국의 금덩이는 외국으로 흘러나가게 된다. 그와 같이 금광에서 외국으로 흘러나가는 상자에 쓰인 글씨가 "NO TOUCH"(노 터치: 손대지 마시오)
라는 것이었다. 이 ‘노터치’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아가는 사이 와전(訛傳)되어, 드디어는 지금의 ‘노다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노다지 캐려는 사람이, 다른 데 정신은 없고 오직 한 군데에만 신경을 쓴 데서 이 ‘노다지’는 ‘늘’ 혹은 ‘언제나’와 같은 뜻으로도 쓰이게 된 것이다.

노들강변
‘노량’의 한자는 백로 로(鷺)에, 징검돌 량(梁)이다. 그래서 `노량`은 `노돌`이라고 했다. 그러던 것이 `노들`로 변했다. 거기에 `강변`이 덧붙은 것이다.
이 `노들강변`은 옛날에 서울과 남쪽 지방을 잇는 중요한 나루였다. 그래서 이 `노들강변`은 애환이 많이 깃든 곳이요, 민요로까지 불려진 것이다.
‘노들강변’ 민요는 중국의 신모(申某)가 가사를 지었고 문호월(文湖月)이 곡을 붙였다는 노래로, 한국에 들어와 완전히 한국 민요로 토착화하였다. 9박자의 세마치장단에 의한 맑고 경쾌한 노래이다. 가사는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無情歲月) 한허리를 칭칭 동여매어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으리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로, 세상의 한(恨)을 물에 띄워 보내는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노래, 놀이 , 놀음
`놀다`의 어간 `놀-`에서 온 말들이다. 각각 `놀 + 애`, `놀 + 이`, `놀 + 음`으로 분석될 수 있다. `사람`, `삶` `살림`이 모두 `살다`에서 온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노래, 놀이, 노름`이 전혀 다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놀이`는 그럴 듯한데, `노래`나 `노름`이 `놀다`에서 나왔다는 인식은 들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안 드는 단어일수록 대개는 그 단어가 만들어진 역사가 오랜 것들이다.

녹초가 되다
`아주 맥이 풀리어 늘어지다`라는 뜻이다.
녹초는 `녹은 초`를 뜻한다. 초가 녹아내린 것처럼 흐물흐물해지거나 보잘 것 없이 된 상태를 빗대어 나타낸 말이다.
누비옷
누빈 옷감으로 지은 옷으로 주로 겨울에 추위를 막기 위해 입는다.
본래는 스님들이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넝마의 헝겊 조각을 기워서(納) 만든 옷(衣), 즉 `납의장삼(納依長衫)`에서 나온 말이다. 납의가 `나비`로 소리 나다가 이것이 다시 `누비`로 정착된 것이다. ‘누비’의 원형은 `납의`로서 누덕누덕 기워 만든 옷을 말한다. 여기에서 `누비다`라는 새로운 바느질 양식이 나오게 되었으며, 나아가서는 종횡무진 거침없이 나아간다는 뜻으로까지 쓰이게 되었다.

눈시울
눈의 언저리의 눈썹이 난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울’은 원래 고깃배 가장자리의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길게 타원형으로 된 배의 가장자리 모양이 눈과 입 모양을 연상시켜 `눈시울` `입시울`이라 했던 것이다.

‘니마’ 는 태양신을 뜻하는 말에서 제사를 지내는 군왕을 뜻하는 말로, 상대방을 높이는 접미사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에 상응하는 ‘고마’는 물과 땅의 신으로서 생산을 맡는다. 니마는 단군의 아버지 신, 고마는 어머니 신에 해당한다 하겠다.
‘님’은 따지고 보면 태양신 곧 광명의 신으로 숭앙되었으며 따라서 ‘-님’ 이라고 부르는 우리 언어 관습의 밑바탕에는 상대방을 태양신과 같은 존재로 본다는 의식이 깔려 있는 셈이다.
‘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명사로 쓰일 때는 아직까지 두음법칙이 적용되어 ‘임’이 표준어로 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이 ‘님’으로 쓰고 있음으로 표준어 사정에서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단골집
늘 정해 놓고 다니는 집을 말한다.
무당을 ‘당골’ 또는 ‘단골’이라 불렀다. 늘 정해 놓고 거래하는 집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단골집’이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생겨났다.
우리의 민속신앙은 전통적으로 귀신이나 자연물을 섬기는 샤머니즘이었다. 이런 무속신앙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미신이라 하여 많은 배척을 받았으나 아직도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지금도 동네마다 대나무에 깃발을 꽂아 놓은 집을 더러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무당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표지이다.
옛날에는 가족 중에 병이 들거나 집안에 재앙이 있으면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거나 제사를 지냈다. 이렇게 굿을 하는 것을 ‘푸닥거리’라고 하며, 병이나 재앙의 원인이 되는 살(煞)을 푼다는 뜻에서 ‘살풀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굿을 할 때마다 늘 정해놓고 불러다 쓰는 무당을 ‘당골’ 또는 ‘단골’이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무당이 그만큼 가까운 존재였음을 말해 준 것이라 하겠다.

담배
담배는 1492년에 스페인의 탐험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상륙하여보니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오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이것이 처음으로 서구에 알려진 것이 오늘날 담배의 시초이다. 그러나 담배는 이미 기원전부터 중남미 대륙에 야생종으로 분포되어 있었고, 콜럼버스의 신세계 발견 이전부터 아메리카 인디오들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전래된 연대와 경로에 대해서는 고정된 설이 없지만, 국내 문헌에 단편적으로 나타난 기록들을 종합하여 본다면 1608년부터 1816년 사이에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콜럼버스가 1492년 지금의 신대륙에 처음 상륙했을 때, 그 곳의 원주민들이 마른 담배 잎을 선물했다고 한다. 콜럼버스 일행은 처음에는 그 용도를 몰랐으나 원주민들이 불붙은 잎 뭉치를 들고 다니며 피우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한두 번 피워 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여송연(Cigar)의 기원이다.
그로부터 20∼30년 후 담배의 원산지인 멕시코의 아즈텍족 추장이 유럽에서 온 탐험가에게 선물한 갈대 담배가 궐련(Cigarette)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길이는 한 뼘이 훨씬 넘었고 갈대 줄기에 담배와 향기 나는 식물을 섞어 만든 것으로 바깥 부분은 목탄을 발랐고 입에 무는 부분이 움푹 파인 모양으로 만들어 졌었다 한다. 그 이후로 갈대를 구하기가 힘들었던 스페인 사람들은 갈대 대신 종이로 싸는 방법을 개발하여 오늘날의 궐련과 거의 유사한 모양의 담배를 만들었는데 이런 방식은 수백 년 동안 주로 스페인 사람들이 사용하였고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파이프 담배와 여송연이 유행하였다 한다.
오늘날과 같은 필터 담배는 처음에는 비싼 터키산 담배 잎에 필터를 부착하여 ‘러시아식 담배’로 불리며 1850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1854년의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 포로로부터 빼앗은 이 담배 맛을 본 영국군들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러시아식 담배’ 를 찾게 되었고,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영국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제조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일본에 최초로 담배를 소개한 사람은 포르투갈 사람인데, 입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일본인들 사이에 급속하게 번져나가서 2년 만에 금연령이 선포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해 전해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초창기에는 주로 양반 계급과 고관대작 등 부유층 중심의 기호품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담배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인조실록」(仁祖實錄)에 나온다.
지봉 이수광(芝峰 李粹光)의 「지봉유설」(芝峰類設)에는, 벌써 오늘날 쓰이고 있는 ‘담배’비슷한 말이 나온다. ‘담바고는 남령초(南靈草)라 하는데 근년에 일본에서 온 것이다’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그밖에도 인조 때의 명신이자, 우리나라 담배의 시조라 할 수 있는 계곡 장유(谿谷 張維)의 「계곡만필」(谿谷漫筆)에 담배 피우는 법은 본디 일본에서 온 것이니, 일본 사람은 이를 ‘담박괴(淡泊塊)라 하였다’라고 써 있다. 윤기진(尹起晉)의 대동기년」 (大東紀年)에는 장유(張維)가 처음 피우기 시작했다는 말과 함께 ‘痰破塊(담파괴)’라는 표기가 나온다.
그 이후, 민요에서 보이는 ‘담바구타령’ 같은 것도 보이니, 포르투갈어 ‘토바코’가 일본의 ‘다바코’를 거쳐서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사이 ‘담바구’가 변음 되어 ‘담배’로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담배’는 오늘날 외래어라는 의식이 들지 않은 귀화어 집합에 드는 말이다.

대포
`큰 잔 또는 큰 잔으로 마시는 술`을 가리킨다.
커다란 탄환을 멀리 내쏘는 화기(火器)를 뜻하는 대포에서 크다는 뜻을 빌려와서 다른 뜻으로 쓰게 된 것이다. 크다는 것을 강조해서 ‘왕대포’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일식집에서 ‘정종 대포’라는 것도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댕기풀이
`관례나 혼인을 하고 나서 동무들에게 한턱내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자가 관례를 치르면 그 동안 땋아서 늘어뜨리고 다니던 머리를 틀어서 상투를 올리게 되고, 혼인을 하면 마찬가지로 여자의 머리를 올려 주게 된다. 이렇게 되면 총각, 처녀가 모두 어른이 되는데, 이 때 땋은 머리를 묶고 있던 댕기를 풀게 된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도깨비
도깨비의 어원은 ‘돗’ (종자)과 ‘아비’ (아버지. 남자)의 합성어이다.
도깨비방망이처럼 도깨비는 원래는 사람에게 재물을 가져다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다. 귀신도 사람도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의 도깨비는 강시 같은 중국의 ‘귀(鬼)’나 혹 달린 일본의 ‘요괴’와는 차원이 다르다.
도깨비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된 것은 장난기와 심술이 많고, 도깨비불로 나타나 사람들을 현혹했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씨름을 좋아하며 숲이나 바다. 강처럼 물기가 많은 곳에 산다. (과학적으로 이를 인燐이라는 원소로 보기도 한다)

도루묵
`은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선조 임금이 임진왜란을 맞아 피난하던 도중에 처음 보는 생선을 먹게 되었는데 그 맛이 별미였다. 그래서 이름을 물어보니 `묵`이라고 하므로, 그 이름이 맛에 비해 너무 보잘 것 없다 하여 그 자리에서 `은어(銀魚)`라고 고치도록 했다. 나중에 궁중에 들어와 `은어` 생각이 나서 다시 청하여 먹었으나 예전과 달리 맛이 없었다. 그래서 선조가 ‘은어’를 ‘도로 묵’이라고 하라 했다 전한다. 이런 유래로 인해 `도로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발음이 변해 `도루묵`이 되었다 한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허사가 되었을 때 흔히 `말짱 도루묵‘이라 한다.

도무지
‘아무리 해도, 전혀, 아주’라는 뜻의 부사로 쓰이는 말이다.
구한말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보호 조약이 체결되고 나라를 빼앗기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황현의 <매천야록>에 보면 엄격한 가정의 윤리 도덕을 어그러뜨렸을 때 아비가 눈물을 머금고 그 자식에게 비밀리에 내렸던 `도모지(塗貌紙)`라는 사형(私刑)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글자 그대로 얼굴에 종이를 바른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자식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놓고 물을 묻힌 한지(韓紙), 즉 창호지를 얼굴에 몇 겹이고 착착 발라 놓으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 종이의 물기가 말라감에 따라 서서히
숨조차 쉬지 못하게 되어 죽게 하는 끔찍한 형벌이었다.
`도무지`는 이런 끔찍한 형벌에서 비롯하여 ‘전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의미인 `도모지’가 변음(이화작용) 되어 ‘도무지`가 되었다.

도토리
‘돝[猪돼지 저]’ 이 ‘도톨’로 여기에 명사화 접미사 ‘이’가 결합하여 ‘도토리’가 된 것으로, ‘돼지(멧돼지)가 먹는 밥’의 뜻이었다. ‘상수리’와 구별하지 못하면서 19세기 말부터 ‘도토리’가 ‘상수리’까지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음식 중 도토리묵은 사실은 상수리묵이다.

독도
독도’와 관련된 명칭은 시대에 따라 문헌에 아주 다양하게 나온다. 성종 때의 ‘삼봉도(三峰島)’, 정조 때의 ‘가지도(可支島)’, 19세기 말 이후의 ‘석도(石島)’, ‘독도(獨島)’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런데 지금 울릉도 현지 주민들은 ‘독섬(즉, ‘돌섬’)’이라는 조금은 색다른 명칭에 익숙하다. 이 ‘독섬’은 ‘石’을 뜻하는 ‘독’과 ‘島’를 뜻하는 ‘섬’이 결합된 순수 고유어이다. 지금도 전라도 지역에서는 ‘돌’을 ‘독’이라 한다. 조선조 말(1883년) 울릉도에 대한 개척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을 때 전라도 사람들이 대부분 이주하였다는 점에서, 울릉도와 인접한 돌로 된 섬을 자기 지역 말로 ‘독섬’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문헌에 보이는 ‘석도(石島)’는 바로 우리말 ‘독섬(돌섬)’을 한자로 표기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또 다른 한자어 ‘독도(獨島)’는 ‘독섬’을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독’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자 그저 음이 같은 ‘홀로 독(獨)’ 자를 이용하여 엉뚱한 ‘외로운 섬’이 되고 말았다. 이로 보면 ‘독도’는 ‘외로운 섬’이 아니고 ‘돌로 된 섬’일 뿐이다.
한편, 일본 사람들은 17세기 이후 ‘울릉도’를 ‘죽도(竹島, 다케시마)’, ‘독도’를 ‘송도(松島, 마츠시마)’라고 불러 왔다고 한다. 아마 울릉도에는 대나무가 많아서, 독도에는 소나무가 많아서 그러한 명칭을 부여한 것일 터인데 지금도 울릉도에는 대나무가 많기에 그러한 명칭이 제대로 어울리나, 독도에는 소나무는커녕 어떤 나무도 없어 ‘송도(松島)’라는 명칭이 무색하다.
그런데 19세기 말 이후 일본에서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명칭에 아주 심한 혼란이 일어났다. 울릉도를 ‘죽도’ 또는 ‘송도’라고도 하고, 독도를 ‘송도’ 또는 ‘리앙쿠르島’라고도 하다가, 1905년 이후에는 독도를 ‘죽도’로, 울릉도를 지금과 같이 ‘울릉도’로 부르게 되었다.
울릉도를 가리키던 ‘죽도=다케시마’가 돌연 독도를 가리키게 되어 실제 독도에 대한 명칭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독도’에 대한 자기네 이름(즉, ‘송도=마쓰시마’)도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 땅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니 역사적 사실을 들추지 않더라도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억지인가를 알 수 있다.
우리도 엉뚱한 외로운 섬이란 뜻의 ‘獨島’보다는 ‘독섬’이라는 순수 우리말로 표기함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돌팔이
`전문 지식이나 기술 없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사람`을 뜻한다.
아는 것이나 실력이 부족해서 일정한 주소가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기술이나 물건을 파는 것을 `돌팔이(돌다+팔다)`라 했다. 돌팔이 무당, 돌팔이 의사, 등의 말이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동냥
`거지가 돈이나 물건을 구걸하는 일`을 뜻한다. 한자말인 동령(動鈴)에서 온 말이다.
원래 불가에서 법요(法要)를 행할 때 놋쇠로 만든 방울인 요령을 흔드는데 이것을 동령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중이 쌀 같은 것을 얻으려고 이 집 저 집으로 돌아다니며 문전에서 동령을 흔들기도 했다. 지금은 동령대신 목탁을 두드리지만 동냥이라는 말은 이렇듯 중이 집집마다 곡식을 얻으러 다니던 ‘동령’에서 비롯한 말이다.
한편 `가을 중 싸대 듯`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가을이 되면 농민들이 곡식을 수확하게 되고, 그러면 중들은 때맞춰 시주를 얻기 위해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는 데서,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닌 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 되었다. 동냥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동냥아치’라고 부르는데, 이는 ‘거지’와 같은 뜻으로 속화된 것이다.

동티
`잘못 건드려 스스로 재앙을 사다`의 뜻이다.
원래 흙이나 나무를 잘못 다루다가 지신(地神), 목신(木神)의 노여움을 입어 재앙을 당한다는 뜻의 민속 용어였던 것이 일반적인 뜻으로 확대되었다. ‘동티’는 ‘동토(動土)’라는 한자말이 변해서 된 말이다.

돼지
접미사 ‘-아지’가 붙으면 ‘새끼’의 의미가 된다. 송아지, 망아지, 강아지, 도야지 등이 이렇게 된 말이다. ‘도야지’가 축약되어 ‘돼지’가 되었다.
고어에서 `돝`은 어미 돼지이고, `도야지`는 새끼 돼지였는데, 후에 `돝`이 사어가 되면서 ‘도야지’가 축약된 `돼지`가 `돝` 대신 표준어가 되고, `도야지`는 방언이 되었다. 그래서 가축 중에 `돼지`만은 새끼 돼지의 명칭이 따로 없다. 본래는 새끼 돼지를 일컫던 말이 돼지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어의가 확대되어 쓰이게 된 것이다.
사람 중에 가망성이 없다 할 때 ‘싹아지 없다’의 ‘싹아지’도 ‘싹’에 ‘아지’가 붙은 말이다.

두레
부락 단위로 조직된 집단적 노동 형태를 이르는 말이다.
‘두레’는 ‘두르다’에서 유래한 말로 어간 ‘두르’의 ‘ㅡ’가 탈락하고, 접미사 ‘-에’가 결합한 말이다.
민속놀이 두레도 이와 같은 뜻으로 빙 둘러서서 논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딴따라
노래, 악기, 춤 따위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요즘 연예인에 해당한데 천시하여 ‘딴따라’라 불리던 시대가 있었다.
`딴따라`는 영어의 `tantara`의 음을 빌려 온 것으로 나팔이나 뿔나팔 등의 소리를 말한다. 그래서 이 소리를 빌어 와서 `딴따라`라고 하였다. 국어의 의성어가 아닐까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국어에 `딴따라`라는 의성어는 없다.

고어 동사 ‘ㅂ디다(찌다)’의 어간에 명사화 접미사 ‘-기’결합되어 이루어진 말이다.
‘ㅂ디기 → 떼기 → 떠기 → 떡’으로 변화된 것으로 ‘찐것’이란 뜻이다.

뚱딴지
엉거시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풀이름으로 일명 ‘돼지감자’라 불린다.
생김새나 성품이 돼지감자처럼 `완고하고 우둔하며 무뚝뚝한 사람`을 빗대어 가리키는 말로 쓰이다가, 오늘날은 본래의 의미는 거의 없어지고, 상황이나 이치에 맞지 않게 엉뚱한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마누라
원래 `마누라`는 `마노라`로 쓰였는데, `노비가 상전을 부르는 칭호`로, 또는 `임금이나 왕후에게 대한 가장 높은 칭호`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극존칭으로서, 높일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그리고 부르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부르던 것이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아내의 호칭으로 변화하였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남편을 `영감`이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영감`은 `정삼품 이상 종이품 이하의 관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날도 판사나 검사를 `영감님`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옛날 그 관직의 등급과 유사하여서 부르는 것이다.
옛날 모계 사회에서는 남편보다도 아내를 더 높여 불렀다. 남자는 기껏해야 `정삼품`으로 생각했는데, 아내는 `왕이나 왕비`로 생각했으니까. 이렇게 해서 `마누라`와 `영감`은 대립어가 된 것이다.
‘마누라’를 ‘마주누어라’의 준말로 보는 것은 ‘술’이 ‘술술 넘어 간다’해서 ‘술’이라 한다는 식의 발음의 유사성에 근거한 언어유희일 뿐이다.

막간幕間
원래 `막간`은 연극에서 한 막이 끝나고 다음 막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동안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이 `어떤 일의 한 단락이 끝나고 다음 단락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동안, 바쁜 중에 여유나 틈이 조금 생긴 동안이란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망나니
옛날에 사형을 집행할 적에 죄인의 목을 베는 일을 맡아 보던 사람을‘망나니’라고 불렀으며, 주로 중죄인 중에서 뽑아 썼다. 고로 망나니는 으레 성질이 포악하고 인상이 험악한 사람이 그 구실을 담당하게 마련이었다.
사형을 집행하는 막된 죄수라는 뜻의 ‘망나니’가 지금은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 말이나 행동이 막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그 의미가 변하였다.

매무새
`매무새`라는 말은 끈을 `매다`의 어근 `매`와 다발로 묶는다는 뜻의 어근 `뭇`과 명사화접미사가 ‘애’가 결합하여 `매(結)+뭇(束)+애(接尾) > 매무새`라는 어형을 이루게 되었다.

멍텅구리
멍텅구리는 본디 바닷물고기 이름인데, 못 생긴 데다 굼뜨고 동작이 느려서 아무리 위급한 때라도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할 줄 모르기 때문에 판단력이 약하고 시비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확대되어 쓰이게 되었다.

먹통
목재나 석재에 먹으로 표를 하는 도구가 있다.
먹통이 지니고 있는 `까맣다`라는 이미지 때문에 주로 말이 안 통하는 어리석은 사람, 바보, 멍청이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면목面目
'면목(面目)'은 원래 불교에서 전래한 말로 본래 면목은 사람마다 다른 게 아니고, 누구나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면목'이란 말은 자신의 본모습, 불성을 제대로 간직한 모습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낯, 체면, 남에게 드러낼 얼굴'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명태
명태와 관련된 민간어원설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 함경도 명천에 성이 ‘태’라는 고기잡이꾼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낚시로 이상한 물고기를 잡았는데, 아무도 이름을 아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고을 사람들은 명천의 ‘명’과 고기잡은 사람의 성 ‘태’를 결합하여 ‘명태’라 하였다는 이야기다.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북쪽에서 나는 명태의 생물은 보지 못하고 배를 째서 마른 것만 보았기 때문에 마른 명태는 ‘북어’, 강원도 앞바다에서 잡힌 명태는 ‘강태’, 겨울에 통째로 얼린 것은 ‘동태’라 부르게 되었다.

모꼬지
‘모꼬지’는 대학가에서 ‘서클’을 ‘동아리’로 바꾸고, ‘모임’도 ‘모꼬지’란 고풍스런 말로 바꾸면서 급속도로 확산되어 쓰인 어휘다. ‘모꼬지’는 국어사전에 ‘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로 풀이되어 있다. ‘모꼬지’는 최근에 만들어낸 단어가 아니다. 이상화의 시‘나의 침실로’의 ‘마돈나 지금은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야 돌아가려는도다’라 하여 ’목거지‘가 보인다.
‘모꼬지’는 ‘모이고 갖추는 일’, 즉 ‘모임을 갖추는 일’을 뜻하는 ‘몯지’가 음운변화를 일으켜 여러 형태로 나타나다가 오늘날의 ‘모꼬지’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여러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서 모이는 일, 잔치나 식사 대접 등을 통한 모임, 연회(宴會), 향연(饗宴)의 의미로 쓰인다.

목적目的
공작새 깃털에 있는 `눈 모양의 과녁`을 가리켜 생긴 말이다.
오늘날,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대상(목표)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무꾸리
무꾸리는 `묻는+거리`에서 나온 말이다. 굿을 할 때 각각의 마당을 부정거리, 칠성거리, 제석거리, 대감거리, 성주거리, 장군거리 등으로 부르는데, 점을 칠 때 특히 무당이나 판수처럼 신을 모시는 사람에게 길흉을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무녀리
‘무녀리’는 비로소 문을 열고 나왔다는 뜻의 `문(門)+열+이`가 변해서 된 말이다.
짐승의 한 태(胎)에서 나온 여러 마리의 새끼 중에 맨 먼저 나온 놈을 ‘무녀리’라고 한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제일 먼저 나온 새끼는 다른 새끼들에 비해 비실비실하고 몸이 허약한 편이다. 이에 빗대어 좀 모자라는 듯한 사람을 비유할 때 많이 쓴다.

무동 태우다
`사람을 목 뒤로 올려 태우다`의 뜻이다.
농악에서 여자 옷을 입은 남자 아이가 사람 어깨 위에 올라서서 아랫사람이 춤추는 대로 따라 추는 놀이가 있는데, 이 때 어깨 위에 올라선 아이를 `무동(貿童)`이라고 한다. 이로부터 어깨 위에 사람을 올려 태우는 것을 `무동舞童 태우다`라고 하게 되었다.
‘무등 태우다’는 잘못 쓴 말이다.
같은 뜻의 순 우리말로는 목 뒤로 말을 태우듯이 한다고 해서 `목말 태우다`라는 말이 있다.

무명
문익점이 처음으로 목화씨를 가지고 들어왔을 때 왕이 `그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느냐?`고 묻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들었던 대로 `무미엔`(중국 발음)이라 했다.
이 `무미엔`이라는 발음을 그대로 받아들여 비슷한 발음이 나는 한자 ‘무명(武名)’으로 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무명`은 뜻과 관계없이 소리만 빌려 쓴 가차인 셈이다.
무명씨를 심어 그 목화에서 나온 무명실로 짠 면직물을 `무명`이라 한다. 무명은 광목, 옥양목 등과는 그 종류가 다른 우리나라 토속 직물로 조선시대에 옷감과 이불의 재료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무쇠
무쇠는 `물쇠`에서 나온 말로서 무른 쇠라는 뜻이다. 강철보다 쉬 녹아서 생활용품 따위를 주조하는 데 널리 쓰인다.
그런데 강하고 굳센 것을 비유하는 말로 널리 쓰이는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무쇠를 매우 강한 쇠로 알고 있다.

무좀
‘좀’은 고어의 ‘촘'으로 벌레 이름이다. 보통은 ’좀벌레‘라고 하는 것인데, 나무, 곡식, 옷, 종이 따위를 쏘는 벌레의 하나다. '무좀'은 '물좀’이 ‘ㅈ’ 앞에서 ‘ㄹ’이 탈락한 것이다. 즉 물집이 생기도록 하는 좀벌레라는 뜻이다.

무지개
‘물+지게’, 즉 작은 물방울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문처럼 보이는 현상이라는 뜻에서 온 말이다. ‘지게’는 ‘문’을 뜻하는 고어이다. ‘물지게’가 ㄹ이 탈락하고, ‘지게’는 ‘지개’로 변음되어 ‘무지개’가 되었다.

물레
`물레`는 우리나라에 목화를 들여온 문익점의 손자 `문래(文來)`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문래`가 목화에서 씨를 뽑는 기계인 씨아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솜으로 실을 잣는 재래식 기구를 `물레`라고 하였다 한다. 그리고 문래의 동생 문영이 천 짜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하여 목화에서 실을 뽑아 짠 천을 ‘무명’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을 잣는 기구인 물레는 그 훨씬 이전인 김해토기에서부터 여러 가지 형태로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문익점 손자의 이름에서 나왔다는 설은 민간어원설이 아닌가 한다.

미루나무
처음에는 미국에서 들어온 버들이라는 뜻에서 `미류(美柳)나무`라 했던 것이 차차 `미루나무`라는 발음이 일반화됨으로써 표준어 사정에서 `미류나무` 대신 `미루나무`를 표준어로 지정하였다.

미리내
‘미리’는 옛말 ‘미르’에서 온 말인데, 용이란 뜻이다. ‘내’는 개울이나 시내를 뜻하고. ‘미리내’는 ‘용이 사는 시내’라는 뜻이 된다. 옛날 사람들은 용이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고, 하늘로 올라간 용이 살만한 곳은 은하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은하수가 마치 강이나 시내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은하수를 ‘용이 사는 시내’, 곧 ‘미리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미망인
[春秋左氏傳]에 이런 얘기가 있다.
초(楚)나라 영윤(令尹:재상)인 자원(子元)이 돌아간 문왕(文王)의 부인을 유혹할 양으로 부인의 궁전 옆에 자기 관사를 짓고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이 만들었다는 ‘만(萬)’이라는 춤을 추게 하며 풍악을 울렸다. 이에 문왕 부인이 말했다.
“선군(先君)은 이 무악(舞樂)을 군사 훈련 때에 한해서 썼다. 이제 영윤이 이것을 원수 갚는 일에 쓰지 않고 이 미망인 옆에서 하고 있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부인의 시종(侍從)이 이 말을 자원에게 고했다. 자원도 여기서 마음을 돌려 수레 6백대를 끌고 정(鄭)나라로 쳐들어간다. ‘未亡人’은 여기서 처음 쓰였으며, 죽지 못해 사는 여자라는 뜻으로 과부가 자기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었다.
따라서 원래는 남이 '미망인'이라 해서는 안 되는 말이지만, 요즘은 대체로 남편을 먼저 여읜 부인을 일컫는 명사로 쓰이고 있다.
 
미숫가루
미숫가루는 쪄서 말린 쌀가루나 보릿가루를 뜻하는 `미시`와 `가루`가 합쳐진 말이다. `미시` 자체가 쪄서 말린 가루를 뜻하므로 `미싯가루`는 `가루`라는 같은 말이 중복된 말이다.
찹쌀, 멥쌀, 보리쌀 등을 볶거나 쪄서 맷돌에 갈아 고운 체에 쳐서 만든 가루로 ‘미싯가루’, ‘미숫가루’ 등으로 불리다가 맞춤법 통일안에 의해서 `미숫가루`가 표준어가 되었다.

미역국 먹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우리나라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을 때, 그 ‘해산(解散)’이란 말이 아이를 낳는다는 ‘해산(解産)’과 말소리가 같아서, 해산(解産)할 때에 미역국을 먹는 풍속과 관련하여 이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은 ‘해산(解散)당했다’는 말의 은어로 사용되었다.
직장을 잃거나, 시험에 떨어진 것을 ‘해산 당한 것과 같이 생각하여 ’미역국 먹었다‘는 말이 나왔다 한다.

미장이
옛날에는 진흙으로 벽면을 바르는 일을 했었기 때문에 ‘미장이’는 원래 ‘니(泥, 진흙 니)’에다가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 중에 천한 직업인을 뜻하는 한자어 ‘장’(匠)이 붙은 ‘니장’(泥匠)에 사람을 뜻하는 명사화 접미사 ‘-이’가 붙어서 된 단어다. 그래서 ‘미장이’는 ‘니장이(泥匠이)’였는데 어형이 바뀐 말이다. ‘미쟁이’는 비표준어다.

미주알고주알
‘미주알’은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이다.
‘고주알’은 뜻과 관계없이 운을 맞추기 위한 첨가어다.
꼬치꼬치 캐는 것에 대하여 미주알고주알 캔다고 한다.

민며느리
`앞으로 며느리 삼으려고 민머리인 채로 데려다가 기르는 계집아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옛날에 시집 안 간 처녀를 미리 데려다 기르며 일을 시키고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며느리를 삼는 제도가 있었는데, 그런 어린 며느릿감 처녀를 `민며느리`라고 했다.
`민`은 아무 꾸밈새나 덧붙여 딸린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접두어이다. 그리고 민며느리라고 하면 `민머리`인 채로 데려 온 처녀를 말한다. ‘민머리’는 쪽을 지지 아니한 머리를 뜻하므로 시집 안 간 처녀를 이르는 말이다.
 
바가지 쓰다
조선말 개화기 이후에 중국에서 `십인계`라는 노름이 들어왔다.
이 노름은 1에서 10까지의 숫자가 적힌 바가지를 엎어 놓은 뒤에 물주가 돈을 감춘 바가지 수가 적힌 바가지에 돈을 건 사람은 못 맞춘 사람의 돈을 모두 가지며, 손님이 못 맞출 때에는 물주가 다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바가지에 적힌 수를 맞추지 못할 때에는 돈을 잃기 마련이어서 `손해 보다, 피해를 당하다`라는 뜻으로 `바가지 쓰다`라는 말이 생겼다.

바둑
중국에서 생긴 바둑은 논어(論語)에 ‘바둑을 두는 것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란 공자의 말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바둑’이 들어온 것은 삼국 시대라 한다. 이 바둑을 중국에서는 혁(奕)으로 썼는데, 이는 양자강 부근의 방언으로 원래는 위기(圍棋: 바둑알로 에워싸다)라 했다. 이 바둑을 우리나라에서는 배자(排子: 늘어놓는 것)라고도 했다.
배자(排子)는 ‘排돌(배독)’이라고도 불렀는데, 돌의 방언이 독이다. 배자>배돌>배독>바독>바둑(이화작용)으로 변해 온 것이다.

바라지
일을 돌봐 주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라지`는 원래 불교 용어로 절에서 영혼을 위하여 시식(施食)할 때에 시식법사가 앉아서 경문을 읽으면 그 다음의 경문을 받아서 읽는 사람 또는 그 시식을 거들어 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무속에서는 경상도, 강원도, 제주도 등지의 무당의 노래에서 으뜸 무당이 부르는 노래 사이사이에 뜻 없는 말로 받는 소리를 일컬어 ‘바라지’라고 하기도 한다. 그 후 바라지가 일상용어로 자리 잡게 되면서 뒤에서 일을 돌봐 준다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런 뜻에서 자식 바라지, 옥바라지, 뒷바라지 등의 말이 생기게 되었다.
*시식(施食): 부모나 그 밖의 외로운 혼령을 위해 음식을 올리며 경전을 읽는 일.

바람맞다
원래 ‘바람맞다’라는 말은 중풍에 걸렸다는 것을 뜻했다. 중풍(中風)의 풍(風)이 바람을 뜻하는 한자말이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중풍에 걸리면 온몸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도 없고 비참한 모습이 된다. 그래서 남에게 속거나 약속이 어그러졌을 때의 손해나 허탈감을 중풍에 연결시켜서 ‘바람맞았다’고 하게 된 것이다.

바람서리
애국가의 가사 2절 중에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가사가 있다. 이 `바람서리`를 간혹 `바람소리`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바람서리`이다. `바람 風, 서리 霜`이다. `바람서리(風霜)’즉 어떤 시련이나 역경에도 남산의 소나무는 꿋꿋한 기상으로 변함이 없다는 뜻으로 작사된 것이다.

바보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밥+보`에서 `ㅂ`이 탈락된 형태이다.
`보`는 울보, 겁보, 느림보와 같이 체언이나 어간의 끝에 붙어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이다. 따라서 바보란 말의 원래 의미는 밥만 먹고 하릴없이 노는 사람을 가리키며, 그런 사람을 경멸하여 현재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나 멍청이를 가리키게 되었다.
같은 이치로 `밥통`이라는 속된 표현(비속어)을 쓰기도 한다.

박수
중부 이북 지방에서 남자 무당을 가리키는 말로서, 몽골어 `박시(baksi)`가 그 어원인 듯하다. `박시`는 `지혜로운 자` 또는 `스승`을 뜻하는 말로서 라마교의 라마승도 `박시`라 한다. 제정일치 시대에는 제사장인 무당이 바로 부족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였던 것처럼, 우랄 알타이족의 남자 무당은 대개 그 명칭이 박수와 같거나 비슷하다.
`박수`를 그 앞에 성을 붙여서 `김 박수``이 박수`하는 식의 호칭으로 쓰기도 한다.

박쥐
`박쥐`는 원래 `밝쥐`였다. `눈이 밝다`는 뜻으로 `밝-`이 쓰인 것이다. 박쥐가 초음파를 발사하여 그 반사음을 포착하여 방향을 조정해서 야간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니까, 그 전에는 `눈이 밝은 쥐`로 이해했을 만도 하다.

박차를 가하다
일의 진행이 빨리 되도록 힘을 더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말을 탈 때 기수의 구두 뒤축에 달아 뒤로 뻗치게 하는 쇠로 만든 물건을 박차(拍車)라 한다. 박차의 끝에 달린 톱니바퀴로 말의 배를 차서 빨리 달리게 하는 데 이용한다. 그러므로 `박차를 가한다`는 말은 한자성어 `주마가편(走馬加鞭)`과 같은 뜻으로,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해서 더 빨리 달리도록 하는 것과 같이 일이 빨리 성사되도록 열과 성을 더하는 것의 의미로 쓰인다.

반죽이 좋다
쌀가루나 밀가루에 물을 부어 이겨놓은 것을 반죽이라 하는데, 반죽이 잘 되면 원하는 음식을 만들기가 한결 쉬워진다.
이 말은 지금은 성품이 유들유들하여 쉽사리 노여움이나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얼굴이 잘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발목이 잡히다
이 말은 본래 씨름판에서 쓰던 말로서, 상대편에게 발목을 잡히면 꼼짝없이 번쩍 들려서 모래판에 나둥그러질 판이 되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다. 남에게 어떤 단서나 약점을 잡혀서 꼼짝 못하게 된 상황이나 어떤 일에 꽉 얽매여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경우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방자구이
양념하지 않고 소금만 뿌려 구운 고기를 뜻한다.
방자는 관청의 종을 말하며, 상전을 기다리면서 밖에서 고기 한 조각을 얻어 즉석에서 구워 먹은 데서 비롯된 말이다.

박달나무
[三聖記全] 상편 첫머리에는 우리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시원에 관련된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어느 날 동녀동남 800명이 흑수와 백산의 땅에 내려왔다.)
우리말 '밝다'의 어간 ‘밝’의 한자 ‘白(흰/환할/밝을 백)’의 자음 ‘백’이 끝소리 ㄱ이 탈락되어 ‘배달(倍達)’의 ‘배’로 변했고, 삼국시기까지의 ‘달(達’)은 山 또는 高의 뜻이었다.
이 내용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배달(倍達)은 백달(白達)의 ㄱ탈락이고,
박달(白達)은 백달(白達)의 모음변형이며,
백달(白達)은 백산(白山)의 다른 표기이다.
박달나무는 배달민족의 나무라는 뜻이며,
배달민족은 백산(=배달)민족, 곧 백두산 민족이다.
‘박달’과 ‘배달’에 대한 어원설은 다양한 견해가 있음을 첨언해 둔다.

백일장白日場
조선시대에 각 지방에서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글짓기 시험을 실시하던 일을 백일장이라고 했다. 이 때 백일은 百日(100일)이 아니라 `낮`을 뜻하는 백일(白日)이다.

번갈아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번(番)을 갈마들어(갈음하여)`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 관청 등을 지키거나 하는 일을 `번 선다` 또는 `번 든다`고 하였다. 지금의 일직이나 숙직과 같은 제도라고 하겠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서로 교대도 해가며 번을 서곤 하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 `번번이(番番-)`도 같은 어원에서 생겨난 말이다.

벽창우
벽창호’는 ‘벽창우’가 변한 말이다. ‘벽창우’는 ‘碧昌牛’인데, ‘碧昌’은 평안북도의 ‘碧潼(벽동)’과 ‘昌城(창성)’이라는 지명에서 한 자씩을 따와 만든 말이다. 따라서 ‘벽창우’는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소’가 된다. 이 두 지역에서 나는 소가 대단히 크고 억세어서 이러한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단어 구조로 보면 ‘벽창우’는 지명(地名)이 선행하고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이 후행하여 그 대상의 이름이 된 예이다. ‘안주(安州)’에서 나는 ‘항라(亢羅)’라는 뜻의 ‘안주항라’가 줄어든 ‘안항라’, ‘명천(明川)’에서 나는 ‘태(太)’라는 뜻의 ‘명천태’가 줄어든 ‘명태’, ‘통영(統營)’에서 나는 ‘갓’이라는 뜻의 ‘통영갓’ ‘청송과 ’영양‘의 고추가 맵다 하여 ‘청양고추’ 등도 지명과 그 지역 특산물을 결합하여 만든 물건 이름이다.
그런데 ‘벽창우’는 ‘안항라’, ‘명태’, ‘통영갓’ ‘청양고추’ 등과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이들 말이 그 특산물의 이름에 충실한 반면, ‘벽창우’는 그러한 기능도 가지면서 나아가 비유적으로 ‘미련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보라
보라색은 그 어원이 몽골어에 있다. 몽골의 지배를 받던 고려시대에는 여러 가지 몽골의 풍습이 성행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매를 길들여서 사냥을 하는 매사냥이었다. 이때 사냥을 잘하는 새로 알려진 매에 여러 종이 있었는데, 그중에 널리 알려진 것이 송골매라 불리는 해동청과 보라매였다. 보라매는 앞가슴에 난 털이 담홍색이라 붙여진 이름으로서 몽골어 `보로(boro)`에서 온 말이다. 앞가슴에 보라색 털이 나 있는 매를 일컫는 `보라매`라는 이름에서 `보라`가 색깔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보람차다
`보람`은 원래 눈에 보이는 어떤 표적을 잊지 않기 위해서, 또는 딴 물건과 구별하기 위하여 두드러지게 하여 두는 표를 말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처음에는 유형의 물체를 가리키던 것이 차차 마음속에 느껴지는 어떤 흡족한 상태를 나타내게 되었다. ‘보람차다’, ‘보람있다’가 이런 의미다.
읽던 곳을 표시해 두기 위해 책갈피에 끼워 두는 줄이나 끈을 ‘보람줄’, 같은 용도의 종이를 ‘보람종이’라고도 한다.

보름
보름이 ‘바라다’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이는 보름을 한자로 望(바랄 망, 보름 망)이라 하고, 보름날을 망일(望日), 보름달을 망월(望月)이라 하고, 보름 사이를 망간(望間)이라 함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크고 둥근 달을 ‘바라다(望)’ 보는 시기를 의미하게 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 보름이 ‘밝음’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전라도 쪽에서는 ‘넋을 잃고 무엇을 바라보는 상태’를 가리켜 ‘뭣을 보라꼬 있냐?’라고 한다. 이 말들은 옛날에는 ‘아래 ㅏ’가ㅏ/와 /ㅗ/로 쓰였던 것으로, 오늘날에는 /ㅏ/ 로 바뀐 것을 표준어로 삼지만 방언(제주)에서 ‘아돌(아들)’ 소나이(사나이)처럼 종종 /ㅗ/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밝다’의 옛말 ‘복다’의 /ㄱ/ 이 탈락되어 ‘복>보’으로 변하였고, 여기에 명사화 접미사가 결합한 것으로 ‘보롬>보름’으로 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보름보기
`애꾸눈이`를 놀리는 말이다.
애꾸눈이는 눈이 한 쪽밖에 없으므로 남들이 보는 것의 절반만 본다는 생각에서, 결국 정상인과 비교하여 한달에 보름밖에는 못 본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보리동지
곡식을 바치고 벼슬을 산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다.
조선 시대 말기에는 곡식이나 돈을 바치고 벼슬 이름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봉건 체제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국가 기강이 흔들리고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따라서 서민 계급 중에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벼슬자리를 사는 것이 유행이 되다시피 했던 것이다. 이들을 일러 흔히 보리를 주고 벼슬을 샀다 하여 보리동지라고 조롱하곤 했다. 때로는 어리무던하게 생긴 사람을 농으로 이르는 말도로 쓰인다.
* 동지(同知): 조선 시대 `지(知)`의 다음 가는 벼슬로 경연, 예문관, 춘추관, 의정부, 삼군부 등에 딸린 종 2품에 해당하는 벼슬 이름이었다.

복불복福不福
복불복(福不福) 은 말 그대로 유복(복 있음)과 무복(복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이것은 사람의 운수를 이르는 말로, 똑 같은 경우와 똑 같은 환경에서 있더라도 여러 사람의 운이 각각 차이가 날 때에 쓰는 말이다. ‘복걸복’이니 ‘복골복’이니 하는 것은 잘못이다.

볼장 다 보다
‘볼장 다 보다’는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장을 다 둘러보아서 이제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일이 틀려 버리다. 일이 끝장나다는 뜻으로 쓰인다.

봉사
봉사는 원래 조선조 때 관상감, 전옥서, 사역원 등에 딸린 종 8품의 낮은 벼슬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 봉사 직책에 장님들이 많이 기용되었기 때문에 그 후 벼슬 이름이 그냥 장님을 뜻하는 말로 되었다.

봉창 두드리다
봉창은 방벽이나 부엌의 벽에 구멍을 내고 종이로 바른 창을 말한다. 이 창은 단순히 채광이나 환기를 위한 창이기 때문에 주로 방의 아래쪽에 내며, 여닫을 수가 없다. 잠꼬대를 하면서 이 봉창을 두드린다 해서, 상황이나 사리에 맞지 않게 엉뚱한 딴 소리를 할 때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 하게 되었다.

부대찌개
해방 후에 미군 부대에서 나온 고기를 ‘부대고기’라고 했는데, 그 부대고기를 넣고 끓인 찌개가 바로 ‘부대찌개’가 된 것이다.

부랴부랴
`불이야 불이야`가 줄어서 된 말이다. 즉 불이 났다고 소리치면서 내달리듯이 매우 급히 서두르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리나케`라는 말도 같은 이치에서 나온 말이다. 옛날에 불씨가 귀할 때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데 빨리 쳐야 불이 일어나게 된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부리나케`는 `불이 나게`가 바뀐 말이다. 즉, `불(火)+이(토씨)+나(出)+게`의 구조를 가진 말이다.

부질없다
옛날 대장간에서는 쇠붙이로 연장을 만들 때, 쇠를 불에 달구었다 물에 담갔다 하기를 여러 번 해야 했다. 횟수가 많을수록 더욱 단단한 쇠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불질을 하지 않은 쇠는 물렁물렁하고 금세 휘어지기 때문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불질(이)없다’가 변해서 된 ‘부질없다’라는 말은 쓸데없고 공연하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부채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부치다’의 ‘부’자와 가는 대나무를 묶은 ‘채’자가 어우러진 말로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키는 채’라는 뜻이다.
부채를 한자로는 ‘선(扇)’이라 하는데 이는 집을 뜻하는 ‘호(戶)’자와 날개를 뜻하는 ‘우(羽)’자가 어우러진 말이다.

부처
부처의 본래 발음은 `붓다`이다. `붓다(Budha)`는 산스크리트어로서 `진실하고 어진 사람`이란 뜻이다. 이것이 중국을 거쳐 오면서 한자식 표기(假借)인 `불타(佛陀)`가 되었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불타>부텨>부처로 변하였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를 얻기만 하면 `부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부처란 어떤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을 총칭하는 보통 명사이다. (석가모니의 본래 이름은 싯다르타이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부처`란 말은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 부처`만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북망산
북망산(北邙山)은 중국 하남성 낙양 땅에 있는 산 이름이다. 후한(後漢) 시대 이래 이곳에 무덤이 많았기 때문에 `북망산 간다`는 말이 곧 죽는 것을 대신하게 되었다.

불현듯
`갑자기, 걷잡을 수 없게, 느닷없이`의 뜻을 지닌 말이다. 낱말 분석을 해 보면 `불 + 현 + 듯`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혀다`는 `켜다`의 옛말이다. 따라서 불을 켜면 갑자기 환해지듯이 어떤 생각이 갑자기 일어날 때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비가비
'비가비'란 말의 어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무계출신을 '가비(甲)'라 하는데 무계가 아니니까 '非가비'라고 한데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직까지 '가비'라는 말이 무계 출신을 가리키는 말임을 입증하는 예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사당패에서 거사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사람을 '모가비(某甲)'라 부른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갑(甲)'이라는 말이 어떤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을 개연성은 상당히 높다.
두 번째는, 원래 기생방에서 일반인들을 '비가비'라 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부터 권번(기생조합)이 판소리의 주요 전승 기반이었음으로 이러한 가능성도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 역사적으로 볼 때, 무계 집단에서 배출된 기생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두 집단에서 공통적인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비가비 광대의 등장배경  
비가비 광대가 본래 광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회적으로 천시 받는 길로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양반 중에서도 한량이었다. 양반으로서 직접 연행(演行)을 담당하지는 않지만 공연물을 감상하고 품평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으며 풍류를 즐기는 자가 바로 한량인데, 그들 중에 직접 연행을 담당하는 광대의 길로 들어선 한량이 바로 '비가비‘인 것이다.

비위
소화액을 분비하는 비장(脾臟)과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위장(胃臟)을 합친 말이 ‘비위’로, ‘지라와 밥통’, 또는 음식에 대한 기분이나 느낌을 의미한다.
나아가 ‘아니꼽고 싫은 일을 당하여 견디는 힘’의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비위가 당기다. 비위가 좋다. 비위가 상하다. 비위를 맞추다 등으로 쓴다.

비지땀
`힘든 일을 할 때 쏟아지는 땀`을 이르는 말이다. 비지를 만들기 위해 콩을 갈아서 헝겊에 싸서 짤 때 나오는 콩물처럼 많이 흘리는 땀이라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빈대떡
빈대떡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널리 통용되는 설로는 최세진이 쓴 <박통사언해>에 ‘병저’의 중국식 발음인 ‘빙져’에서 빈대떡이 나왔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하나는, 빈대떡은 본디 기름에 부친 고기를 제사상이나 교자상에 올려놓을 때 밑받침용으로 쓴 음식인데, 그 후 가난한 사람을 위한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되어 빈자(貧者)의 떡이 ‘빈대떡’으로 되었다는 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정동을 빈대가 많다고 하여 ‘빈댓골’이라 하였는데 그 곳에 빈자떡 장수가 많아 ‘빈대떡’이 되었다는 설이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당시의 세도가에서 빈대떡을 만들어 남대문 밖에 모인 유랑민들(빈자들)에게 던져 준 데서 왔다는 설 등이다.
 

사나이
‘사나이’의 옛말은 ‘나ㅣ’(+아ㅣ)이다.
‘’은 남자를 의미하고, ‘아ㅣ’는 아이를 말한다.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 장정의 뜻인 丁을 ‘’이라 새기었다.
어원으로 볼 때 사나이는 남자 아이를 이르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은 남자 일반을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사냥
`사냥`은 본래 한자말 `산행(山行)`에서 나온 말이다. 『용비어천가』125장에 보면 `낙수(洛水)에 산행(山行) 가 이셔`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 쓰인 ‘산행’이 곧 ‘사냥’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조선 중기 때의 중국어 학습서인 최세진의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초간본에서도 `산행`으로 표기하고 있다.『박통사언해』중간본에 `산영`으로 바뀌고, 그 후 `사냥`으로 바뀌면서 한자어의 흔적은 사라지고 고유어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산과 들로 다니면서 활이나 덫으로 짐승이나 새를 잡는 일을 가리킨다.
오늘날 등산을 뜻하는 ‘산행(山行)’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사또
지난날, 각 도에 파견된 문무관리를 이르는 말로 원래 `사도(使道)`라고 불렀다. 이것이 된소리되기 과정을 거쳐 `사또`가 되었다. 백성이 고을의 원(員)을 높여 이르는 말로 두루 쓰이었다.

사람
동사 ‘살다’의 어간에 명사화 접미사 ‘암’이 결합하여 된 말이다.
사람이란 말은 ‘살아있는 것’(=생명체)의 뜻에서 생겨 사상의식을 가지고 목적의식적인 활동을 하는 인간만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엇다.

사랑니
`입 속의 뒤쪽 맨 구석에 나는 작은 어금니`를 말한다.
사랑니는 대개 다른 어금니가 다 난 뒤, 성년기에 새로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사람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때며, 특히 새로 어금니가 날 때 마치 첫사랑을 앓듯이 몹시 아프다고 하여 `사랑니`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사랑하다
`사랑하다`는 본래 `생각하다`는 뜻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사람을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생각 사(思)`에 `헤아릴 량(量)`을 쓴 한자어 `사량(思量)`에서 나온 말이다. 이제는 한자어의 흔적은 사라지고 고유어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오늘날 `사랑하다`는 `무엇인가를 귀중히 여기고 아낀다.`는 뜻으로만 쓰인다.
‘사랑하다’의 우리말 고어로는 ‘괴다’가 있었다. ‘사랑’은 ‘굄’이었다.

사리
흔히 일본어로 잘못 알고 있는 `사리`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이 `사리`는 `사리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실 같은 것을 흩어지지 않게 동그랗게 포개어 감은 것을 말한다.
`몸을 사리다`로 쓰일 때는 `어려운 일은 살살 피하며 몸을 아낀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국수나 새끼, 실 등을 감은 뭉치를 가리키는 순수 우리말이다.

사명당 사첫방
`매우 추운 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명당(사명대사)은 조선 선조 때 승려로, 임진왜란 당시 사명당의 활약을 과장한 많은 일화들이 전해져 온다. 그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유명하다.
사명당이 일본과 강화를 맺기 위해 일본에 건너갔는데, 그 때 왜왕이 사명당을 태워 죽이려고 구리로 집을 지어 가두고 사면에서 불을 피웠다. 그러나 사명당은 네 벽[四壁]에 서리 상(霜)자를 써 붙이고 방석 밑에 얼음 빙(氷)자를 써 놓은 다음 팔만대장경을 외우니 방이 타기는커녕 방안에 얼음이 얼어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로부터 몹시 추운 방을 가리켜 `사명당 사첫방`이라고 하게 되었다. 사첫방의 `사처`는 `하처 (下處)`가 변해서 된 말로, 점잖은 손님이 객지에서 묵는 집을 가리킨다.
같은 유래에서 나온 말로 `사명당이 월참(越站)하겠다`는 속담이 있다. 사명당이 길을 가다가 쉬지도 않고 지나쳐 버릴 정도로 방이 매우 춥고 차다는 뜻이다.

사이비似而非
한자로 표기하면 似而非 이다(같을 似, 어조사 而, 아닐 非). 같으나 같지 않다는 뜻으로 언뜻 보기에는 진짜인 것 같지만 사실은 가짜인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어느날 맹자의 제자인 만장이 맹자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그 사람은 어디를 가든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사람(향원)을 덕을 해치는 사람이 이라고 하셨을까요?"
이에 맹자는, "그런 사람은 특별히 비난할 만한 점이 없고, 성실한 데다 청렴결백한 것 같이 보여 세속의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천한 일에 아첨하고 이 더러운 세상에 어울려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느니라. “나는 사이비한 것을 미워한다. 강아지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을 곡식의 싹으로 혼동할까 두려워서이고, 보라색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을 붉은색으로 혼동할 것을 염려해서이다. 내가 향원을 미워함은 그들로 인해 사람들이 덕을 잘못 알지 않을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
맹자의 말을 들은 만장은 비로소 공자의 가르침을 깨우쳤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시의 표현에서 ‘사이비진술’이란 말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이육사의 광야에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표현을 사이비진술이라 한다. 같으나 같지 않은 의인법이다. 이 때 사이비진술은 시적진술을 의미한다.

산통 깨다
`일을 그르치게 하다`는 뜻이다.
길이 10cm 가량의 향목(香木)이나 금속 혹은 대나무를 베어 괘(卦)를 새긴 것을 산가지 또는 산대라고 한다. 그리고 이 산대를 넣는 통을 산통이라고 한다.
점을 칠 때 산통을 대여섯 번 흔든 다음 산통을 거꾸로 들면 그 구멍으로 산가지가 나온다. 이 산가지의 괘로 점을 치는 것을 산통점이라고 한다. 이 때 산가지를 집어넣는 산통을 깨 버린다는 것이므로 어떤 일을 이루지 못하게 뒤틀어 버린다는 뜻으로 쓰게 되었다.

살림
살림은 불교 용어인 `산림(山林)`에서 나왔다. 산림은 원래 절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가리켰는데, 이 말이 소리내기 좋게 음운변화(자음동화)를 일으켜 ‘살림’으로 변하여 일반 가정집의 생활이나 재산을 관리하는 것까지 뜻하게 되었다.

삼삼하다
음식 맛이 싱거운 듯하면서 맛이 있다는 뜻과 잊혀지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뜻이 또렷하다의 뜻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야! 그 여자 삼삼하게 생겼더라’ 할 때는, 사물의 됨됨이나 생김새가 그럴듯하다의 의미로도 쓴다. 이 경우에는 감탄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삼수갑산을 가다
`매우 힘들고 험난한 곳으로 가거나 어려운 지경에 이르다`라는 뜻이다.
‘삼수’는 함경남도 북서쪽에 있는 고장으로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국내에서 가장 추운 지대에 속한다. 겨울에는 평균 영하 16~18도에 이르고 눈이 수척의 높이로 쌓인다고 한다. 또한 교통이 불편하여 옛날에는 유배지로 유명했다.
‘갑산’은 함경남도 북동쪽에 있는 고장으로 삼수와 마찬가지로 매우 춥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다. 두 지역 모두 지형이 험한 데다 유배지로 이름이 나서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삼수갑산을 가다`고 하면 아주 멀고 험한 곳으로 가거나 아니면 매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삼십육계
`달아나는 것이 상책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손자 병법의 36가지의 책략 중에 적이 너무 강해서 대적하기 힘들 때에는 달아나는 것이 가장 나은 계책이다`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비겁하게 달아난다는 뜻을 담아서 많이 쓰고 있으나 원래는 힘이 약할 때는 일단 피했다가 힘을 기른 다음에 다시 싸우는 것(권토중래捲土重來)이 옳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작전상 후퇴인 셈이다.

삼천리강산
우리나라 국토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말이다.
우리 국토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 리, 서울에서 의주까지 천 리, 의주에서 두만강 끝까지 천 리라 해서 강산이 삼천리에 걸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삼천리강산`이라 할 때, 그 거리를 부산에서 의주까지의 종적인 거리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부산에서 의주까지의 거리는 2천 리에 지나지 않는다. 국토를 횡으로 가로지른 거리인 의주에서 두만강 끝까지의 천 리가 더해진 것이다.
여기에 아름답다는 의미가 더해지면 ‘삼천리금수강산’이 된다.

삼천포로 빠지다
`이야기가 곁길로 빠지거나 어떤 일을 하는 도중에 엉뚱하게 그르치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래가 전해진다.
첫째, 옛날에 어떤 장사꾼이 장사가 잘 되는 진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장사가 안 되는 삼천포로 가는 바람에 낭패를 당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라는 설이다.
둘째, 진해에 해군기지가 생긴 이래 해군들에 의해 나온 말로, 진해에서 서울로 휴가를 나왔다가 귀대하는 도중에 삼량진에서 진해 가는 기차를 갈아타지 않고 잘못하여 삼천포 가는 것을 갈아타는 바람에 귀대 시간을 어겨 혼이 나는 병사들 때문에 생겨난 말이라는 설이다.
셋째, 부산을 출발하여 진주로 가는 기차에는 삼천포로 가는 손님과 진주로 가는 손님이 함께 탄다. 기차가 계양역에 닿게 되면 진주행과 삼천포행의 객차로 분리하여 운행한다. 이 때는 반드시 방송을 통해 진주행 손님과 삼천포행 손님은 각각 몇 호차로 옮겨 탈 것을 알려 준다. 그러나 진주를 가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잠들거나 하여 엉뚱하게 진주가 아닌 삼천포로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어 생긴 말이라는 설이다. 위 세 가지 설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지금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삼팔따라지
`별 볼일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속된 말이다.
노름판(짓고땡)에서 세 끗과 여덟 끗을 합하면 열한 끗이 되는데, 여기서 10단위를 떼면 한 끗이 된다. 한 끗을 따라지라고 부르며, 매우 낮은 끗수에 해당되어 별 볼 일 없는 패를 잡은 셈이 된다.
해방 직후 북쪽에서 토지개혁이나 종교 문제 등으로 남쪽으로 삼팔선을 넘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빈털털이이거나 의지할 데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삼팔선을 넘어온 이들의 신세를 노름판에서 말하는 가장 낮은 끗수인 따라지에 빗대어 `삼팔따라지`라고 하게 되었다.
흔히 키와 몸이 작아 보잘 것 없는 사람이나 따분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서 ‘따라지인생’이라고 하며, 남에게 매여 자유 없이 사는 목숨을 `따라지목숨`이라고도 한다.

삿대질
삿대는 배를 저을 때 쓰는 장대이다. 그러니까 삿대질은 원래 삿대로 노 젓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말다툼을 할 때 상대편의 얼굴에다 주먹이나 손가락을 내지르는 것이 마치 삿대로 배질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삿대질’이라고 쓰게 되었다.

샅샅이
샅은 두 다리의 사이나 두 물건 사이의 틈을 가리킨다. ‘샅샅이’는 조금이라도 틈이 있는 모든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구석구석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새끼
이 말은 본래 시아우를 가리키던 `시아기`가 변하여 된 말이다.
`시아기`는 본래 남편의 아우인 시동생이 어리기 때문에 생긴 말이었는데, `시아기`에서 `새기`(축약)로, 그리고 `새끼`(된소리되기)로 소리가 변하면서 본래의 뜻은 잃어버리고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오늘날, `새끼`란 말은 동물의 `어린 것`이나 `놈`이란 뜻의 욕으로 쓰이고 있다.

서낭당
서낭은 마을의 터를 지켜주는 신(神)인 서낭신이 붙어 있는 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서낭신은 원래 성황(城隍)에서 온 말로서 한 나라의 도성을 지켜주는 신이었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토속신으로 변하여 마을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 같은 유래 때문에 아직도 마을 어귀에 서낭신을 모셔놓은 곳을 서낭당, 성황당, 성황단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서낭신을 마을과 토지를 지켜주는 신으로 믿고 섬겨왔는데, 마을 어귀 큰 고목나무나 바위에 새끼줄을 매어놓거나 울긋불긋한 천을 달아놓고 그 옆 작은 집에 서낭신을 모셔놓은 당집을 서낭당이라 했다.
때로는 당집 없이 큰 고목나무에 울긋불긋한 천이나 새끼가 매어 있는 것만도 서낭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이 서낭당 앞을 지날 때는 서낭신에게 행운을 빌며 돌을 하나씩 쌓아 놓기도 하고, 잡귀가 달라붙지 말라는 뜻에서 침을 뱉고 가기도 한다.

서울
서울은 본래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서라벌(徐羅伐), 서벌(徐伐), 서나벌(徐那伐) 등으로 부른 데에서 비롯한 말이다. 서울의 `서`는 높고 신령스럽다는 뜻이며, `울`은 ‘벌’이 변음된 것으로 넓고 큰 벌판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서울은 한 나라의 수도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수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다.
15C 국어 표기는 ‘셔블’이었는데, ㅂ순경음이 ‘우’로 변한 것이다.

선비
심신 수련을 하여 일정한 경지에 오른 사람을 가리키는 고조선시대의 호칭이다. 백제의 수사, 고구려의 선인, 신라의 화랑과 비슷하다.
따라서 `선비`는 학문과 인격을 닦은 사람으로 학식은 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사람을 존대하는 말로 쓰였다.

섣달
음력 12월을 가리킨다.
섣달이란 설이 든 달이란 뜻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은 설이 음력 1월에 해당하지만 수천 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는 동안 한 해의 출발을 어떤 달로 삼았는가 하는 것은 여러 번 바뀌었다.
그 중에는 동짓달, 즉 음력 11월을 첫 달로 잡은 적도 있었다. 동지 팥죽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고 하는 말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도 그런 생활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음력 12월 1일을 설로 쇤 적도 있는데 사람들은 이 달을 설이 드는 달이라고 하여 `섣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설달`이 `섣달`로 된 것은 `술가락`이 `숟가락`으로 된 것(호전현상)과 같은 현상이다. 지금은 음력 1월 1일로 설이 바뀌었지만 섣달이라는 말은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설렁탕
서울 용두동쪽 서울대학교 사범 대학 터에 선농단(先農壇)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있지만, 농사짓는 법을 가르친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後織氏)를 제사 지냈던 곳이었으니 농경민(農耕民)다운 습속을 이어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 일이다. 해마다 절기가 봄으로 접어들 때, 즉 경칩(驚蟄)이 지난 돼지날(亥日)을 가려 지낸 이 제사에서는, 적전지례(積田之禮: 임금이 친히 밭을 가는 의례)을 행했으며,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해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다.
조선 왕조 성종(成宗) 6년(1475) 정월에, 임금께서 이곳에 납시었다. 종친 월산 대군(月山大君)에 재상 신숙주(申叔舟)도 끼었으며, 거기에 서민이 합세하여 밭을 갈았다. 그러고서 백성을 위로하여 국말이밥과 술을 내렸는데, 이때 선농단(先農壇)에서 먹게 된 국밥 을 ‘선농탕’(先農湯)이라 이름하여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게 된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 ‘설렁탕’에 대한 일반적인 어원론이 되고 있다.
성냥
불을 켜는데 썼던 `성냥`은 마치 고유어인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한자어였다. 즉 `셕뉴황석(石硫黃)`이 음운변화를 겪어서 `성냥`이 된 것이다. 성냥의 원료는 유황이다.
옛날에는 대장간을 ‘성냥간’이라고도 했다.

소나기
함경도(咸鏡道)쪽 사투리로 천둥을 ‘소낙’이라 한다. 소나기가 내릴 때는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한바탕 요란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소낙이→소나기’거나 ‘소낙비’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성질이 소낙 같다‘ 하는 말은 성질이 급하다는 뜻인 동시에 천둥과 같이 요란한 것도 아울러 의미한다.
그렇다면 ‘소낙’이라는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손’의 ‘악’이었다고 생각해 봄직하다. ‘손’은 날짜 따라서 네 방위로 돌아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귀신이다. 그래서 이사를 가려면 손 없는 날을 택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달갑지 않은 고약한 귀신이 ‘손’이다. ‘악’은 모질게 내뿜는 기운이나 성이 났을 때 ‘악을 쓴다’는 바로 그 ‘악’이다. 그러므로 천둥은 ‘손+악→손악→소낙’으로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나기’가 ‘소 내기’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흥미본위의 민간어원설이다.

소매치기
옛날 사람들이 입고 다니던 두루마기 따위 웃옷의 좌우에 있는 옷소매는 품이 크고 넓어서 흔히 그 안에 돈이나 다른 귀중한 물건들을 넣어 가지고 다녔다. 그 옷소매 안에 있는 돈이나 물건을 훔친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손 없는 날
‘손을 타지 않는 길일(吉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사를 하거나 무슨 큰 행사가 있을 때, 어른들이 `손 없는 날`을 골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손`은 날수(日數)에 따라 4방위로 돌아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귀신을 일컫는 말이다. 손은 음력으로 1이나 2가 들어가는 날은 동쪽에 있고, 3이나 4가 들어가는 날은 서쪽에 있다. 그리고 5나 6이 들어가는 날은 남쪽에 있고, 7이나 8이 들어가는 날은 북쪽에 있다. 9와 10이 들어가는 날은 하늘로 올라가 있으므로 귀신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아무 손도 타지 않는다는 9일과 10일이 길일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음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송곳
`송곶`이란 말은 본래 소나무로 만든 Qy족한 것을 의미하였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송곶`이 `송곳`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송곳`이란 말에서 소나무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늘날 송곳은 쇠로 만든 뾰족한 것으로서 무엇인가를 뚫을 수 있는 도구를 가리킨다.

흔히들 사주 명리학은 통계학이 아닌가 하는 얘기가 있다. 명리학은 한 사람의 운명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거쳐서 가게 될 시공간(time-space)을 음양오행이라는 일종의 부호(code)로 나타낸 다음 그것을 해석하고 추리하는 나름의 강력하고도 엄밀한 논리 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통계학이 아니다.
명리학자들은 명리학을 술수학(術數學), 줄여서 술학(術學)이라고 부른다. ‘술수’란 ‘수’를 다루는 기술이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국의 수(數)라는 말은 사실 영어의 수(number)와는 그 뜻이 다르다. 한자어 수(數)는 우리말 속에 너무도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할 수 있다’ ‘그럴 수가’ ‘있을 수 없는 일’ 등등의 문장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의존명사‘수’가 사실은 한자어(數)다. 우리말 속에 너무도 많이 들어가는 탓에 아예 그것이 한자어임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되는 ‘수’란 어휘는 가능성(probability) 내지는 경우(case)의 수를 의미한다. 즉 ‘할 수 있다’는 ‘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수(가능성)를 다루는 기술인 명리학은 통계(number)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다. 운명 철학인 셈이다.

수라
임금에게 올리는 진지라는 뜻으로 궁중에서 일컫는 말이다.
`수라`는 몽골어 `술런`에서 온 것으로 본다.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 때, 태자들이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돌아와서 왕위에 올랐는데, 이때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한자로는 `水刺`로 적는데, 이는 단지 `수라`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가차(假借)일 뿐 별다른 뜻이 있는 말은 아니다.

수릿날
단오 명절`을 달리 가리키는 순 우리말이다.
음력 5월 5일, 즉 단오를 나타내는 우리말인 수릿날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쑥으로 수레 모양의 떡을 해서 먹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라고 하는가 하면, 이 날은 전통적으로 수리취(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엉거시과의 풀)로 떡을 해 먹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날은 해가 머리 정수리에 오는 날이라는 뜻을 나타낸 말이다. 단오는 단양(端陽)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하며, 이 말 자체가 정수리 바로 위에 있는 태양을 뜻하는 것임에서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농경생활을 해 오는 동안 열매를 맺게 하는 원동력인 태양을 중히 여기고 기리는 마음에서 여름 햇살이 정수리에 내리 쬐이는 날을 명절로 삼게 된 것이다. 수릿날 정오에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다든지, 쑥을 머리 위에 꽂던 풍속이 다 이런 까닭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수리취로 떡(단오날 먹는 절편을 수리취떡이라 함)을 해 먹지만 옛날에는 쑥으로 떡을 해 먹었다. 단오니 단양이니 하는 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붙인 이름이니 지금이라도 ‘수릿날’이라는 우리 이름을 되살려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수수
이 말은 한자어 `촉서(蜀黍)`에서 온 말이다. `촉서`의 중국식 발음이 `쒼쒼`인데 전라도 지방에서는 수수를 ‘쑤시’라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수수가 우리나라로 전래될 때 전라도 지방으로 들어온 것 아닌가 싶다. `수수`는 중국 이름 `쒼쒼`에서 온 말로 우리말처럼 되어 쓰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수작
‘수작(酬酌)’은 한자의 뜻처럼 원래는 ‘술잔을 서로 주고받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 ‘남의 언행’을 하찮게 여기어 이르는 말로 쓰인다. 이는 술좌석에서 술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실없는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부터 부정적 의미로의 뜻이 달라진 것이다.

숙제
‘숙제’는 원래 옛날 서당에서 시회(詩會)를 열기 며칠 전에 내준 시나 글의 제목이었다. 그런데 서당이 없어지고 대신 학교가 생겼으니,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물을 숙제라고 하게 되었다. 그것 말고도 ‘생각해 볼 문제 거리’를 숙제라고도 한다.

술은 찹쌀을 쪄서 차게 식힌 뒤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키는데, 이 때는 열을 가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거품이 괴어오르는 화학적인 발효현상이, 옛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신비롭고 경이로운 현상으로 비쳤을 것이다. 이 신비롭고 경이로운 현상을 보고 난데없이 물에서 불이 붙는다는 생각에서 ‘수(水) +블[火 불의 고어]’의 합성어를 만들었고, 결국 ‘수블’에서 ‘ㅂ’이 유성음 사이에서 ‘ㅜ’로 변하고, 동음생략이 일어나 ‘수블>수울>술’로 변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술이 술술 넘어간다 하여 ‘술’이라 한다는 것은 언어적 유추에 불과한 것이다.

술래
술래잡기 놀이에서 숨은 아이를 찾아내는 차례를 당한 아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 시대에 도둑이나 화재 등을 경계하기 위해 밤에 궁중과 서울 둘레를 순시하는 것을 순라(巡邏), 그리고 그런 군인을 순라군이라고 했다. 순라가 변해 술래가 되었으며, 찾으러 다닌다는 행위의 유사성으로 인해 오늘날과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스승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 중을 스승이라 하고 있다. 스승은 ‘師승’이란 말로서 일찍이 불교가 번성했던 고려시대부터 쓰이던 한자어였다. 본래 중들을 존경하여 ‘승’이라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스승은 선생님이란 뜻으로 고유어처럼 굳어졌다.

시냇물
본래 `시냇물`은 `실[谷]+내[川]+ㅅ(사이시옷)+물[水]`이 합쳐져서 생긴 말이다.
`실`은 `곡(谷: 골 곡)`의 뜻으로 ‘ㄹ’이 탈락하여 ‘시’가 되었고, 거기에 ‘내’와 ‘물’이 결합한 합성 명사다. 합성 명사 중 앞 단어가 모음으로 끝나면 사이시옷이 들어간다. 아직도 고유지명에 `실`이 `밤실` ‘고라실’ 등 무척 많다. 결국 `시냇물`은 `골짜기를 흐르는 냇물`이란 뜻이다.

시앗
고어에서‘싀’는 밖[外]이나 남[他]을 뜻하였다.
싀집(시집), 싀어미(시어미), 싀아비(시아비) 등에 쓰이는 것과 같다.
‘앗’은 고어 ‘갓’에서 ‘ㄱ’이 탈락한 것이다. ‘갓’은 ‘가시’에 어원을 둔 것으로 ‘꽃’, 즉 ‘여자’를 뜻한 말이었다.
‘시앗’은 원래 ‘바깥꽃’, 죽 ‘남편의 꽃’이란 뜻으로, 후에 남편이 얻은 첩을 본처가 이르는 말로 쓰이었다.

시치미
알면서 모르는 체하는 말이나 짓을 뜻하는 말이다.
옛날 매 사냥에서 주인을 나타난 표지를 매의 꼬리 위의 털 속에다 소뿔로 얇게 만든 명패(매 주인의 이름을 새긴 패)를 매달았는데, 이것을 `시치미`라고 한다. 따라서 시치미를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지금과 같은 뜻이 생겨났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딱 잡아 뗄 거야?’라고 할 때의 `잡아떼다`라는 말도 원래는 `시치미를 잡아떼다.`라는 말에서 `시치미`가 생략된 말이다.

실랑이
서로 옥신각신 하는 짓을 뜻하는 말이다.
실랑이는 ‘신래위’에서 나온 말이다. ‘新來)’는 과거에 새로 급제한 사람이란 뜻이다. 신래위(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다루며 노는 모습)를 남들이 못살게 굴거나 서로 옥신각신 다투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뜻이 되었다.

심금心琴을 울리다
글자 그대로 보자면 심금(心琴)이란 마음의 거문고란 뜻이다. `심금`이란 말이 나오게 된 유래는 부처님이 설하신 `거문고의 비유`에서 비롯된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스로오나`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고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고자 했다. 그러나 고행을 통한 수행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깨달음의 길이 보이지 않자 `스로오나`는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고 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를 본 부처님이 그에게 거문고를 비유하여 설했다.
"스로오나야, 거문고를 쳐본 일이 있느냐?"
"예."
"거문고의 줄이 팽팽해야 소리가 곱더냐?"
"아닙니다."
"그렇다. 스로오나야, 거문고의 줄은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늘어지지도 않아야 고운 소리가 난다. 그렇듯 수행이 너무 강하면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하면 게을러진다. 수행은 알맞게 해야 몸과 마음이 어울려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니라." 하였다.
마음의 거문고인 ‘심금(心琴)을 울린다’는 말이 바로 이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금을 울린다`는 다른 사람의 감동적인 행적을 보거나 듣거나 읽을 때 마음에 일어나는 감동의 울림을 거문고에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심상(尋常)치 않다
심상(尋常)은 고대 중국의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심(尋)은 8자 길이를 뜻하며, 상(常)은 16자를 뜻한다. 우후죽순처럼 많은 나라들이 저마다 들고 일어나던 춘추전국시대에 제후들은 얼마 되지 않는 `심상(尋常)의 땅`을 가지고 다투게 되었다. 평수로 따지면 한 평 남짓한 땅을 빼앗기 위해 싸웠다는 뜻으로 아주 작은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심상은 짧은 길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이것이 곧 작고 보잘것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에 비견되기도 하였다. 심상이 짧은 길이를 나타내는 본래의 뜻보다는 ‘보잘것없고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기 시작하면서 `심상치 않다`는 말이 생겨났다. 이는 곧 `작은 일이 아니다.` `예사롭지 아니하다.‘라는 뜻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십팔번
‘십팔번’이라는 말은 그 사람이 가진 레퍼토리 중의 으뜸을 가리키면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사실은 일본말인 ‘주하치반(十八番’)에서 온 것이다. 일본의 에도(江戶) 시대에 ‘가부키(歌舞伎)’ 배우에 이치카와단주로(市川團十郞) 1세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원한 품은 한 자객(刺客)의 칼에 맞아 죽은 당시의 대표적 배우였다. 이치카와 9세까지 내려오는 동안 그 집안에 전해져 오는 열여덟 가지의 내로라하는 교겐(狂言 : 서민의 일상생활에서 제재를 딴 얘기로서의 희극)을 일러 ‘주하치반’이라 했다(2세에서 대부분 완성). 여기서 일본 사람들이 ‘가장 장기로 하는 예(藝)’를 이르게 된 것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가장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나 일, 또는 애창곡’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썰매
‘썰매’는 한자어 ‘설마(雪馬)’의 음이 변화한 것이다. 그러니까 ‘눈 위에서 달리는 말[馬]’이란 뜻이었다. 눈 위에서 타는 미끄럼 도구를 이렇게 비유적으로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쐐기를 박다
나무를 V자형으로 깎아서 나무로 짠 물건의 틈새를 박아 연결 부분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나무못을 가리킨다.
쐐기는 보통 사물의 네 귀퉁이가 물러나지 않도록 만드는 역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물건의 틈새에 박아 넣어 두 물건의 사이를 벌리는 데 쓰기도 한다.
나무틀이나 이음새에 쐐기를 박으면 움직이거나 빠지지 않는 것처럼, 어떤 일을 확정할 때 분명히 한다는 뜻으로 쓴다. 또는 남이 일하고 있는 도중이나 얘기하고 있는 사이에 끼어들어 더 이상 그 일을 못하게 하거나 이야기를 중단하게 하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쓸개 빠진 놈
쓸개는 담이라고도 하는데, 한의학에서는 대담한 용기를 내는 장기라고 한다. 따라서 ‘담이 크다’는 것은 용기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쓸개가 빠졌다’는 것은 비겁하고 줏대가 없음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씨가 먹히다
베를 짤 때 가로 줄을 씨줄, 세로 줄을 날줄이라고 한다. 이때 가로 줄을 이루는 씨실이 잘 먹어들어야 베가 잘 짜진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조리가 있고 실속이 있는 말을 했을 때 주로 쓰는 표현이다. 일상생활에서는 긍정적인 대화보다는 주로 부정적인 대화에서 ‘씨도 안 먹힐 소리’ 등으로 많이 쓰인다.

씨알머리가 없다
씨알은 새의 종자 알이나 곡식의 종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씨알머리가 없다`는 말은 근본 태생을 모를 정도로 혈통이나 종자가 낮다는 뜻이다.
‘씨알머리’는 ‘씨알’의 낮은 말로, 특히 사람을 욕할 때 ‘그 사람의 종자’의 뜻으로 쓰는데, ‘씨알머리가 없다’는 혈통이 못하고 보잘것없는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보고 배운 것이 없어서 건방지고 예의가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아낙네
'아낙'은 '안'과 '악'이 결합된 것이다. '안'은 '안해'의 '안'이나 '안 사람'의 '안'처럼 '內'의 뜻을 가지며 동시에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낙'은 '안악'으로도 표기되었다.
'-악'은 '-억'과 함께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인데, 주로 작은 것을 뜻할 때 쓰인다. '터럭'(털 + -억), '주먹'(줌 + -억), '뜨락'(뜰 + -악), '쪼각'(쪽 + -악) 등에서 볼 수 있다.
'안악'은 '장소'와 '사람'을 동시에 의미하기에 이르렀다. '안악'이 '내정(內庭)’의 뜻을 잃고 '안뜰'에 그 자리를 넘겨준 뒤에 이 '안악'에 '-네'가 붙어 여성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네’는 ‘나그네’에서처럼 사람을 뜻한다.

아름답다
우리말 `아름답다`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 하나는 ‘알다(知)’라는 동사 어간에 ‘-음’접미사가 붙은 ‘알음’에 ‘-답다’ 접미사가 붙었다는 견해다.
또 하나의 견해는 동사 ‘안다[抱]’의 어간 ‘안’에서 파생된 ‘아름(抱)`의 명사에 `-답다`가 붙어서 형용사가 되었다는 견해다. ‘한아름’도 같은 경위로 된 말이다.
아리랑
민요 ‘아리랑’에 대한 어원에 대해서는 갖가지 설이 난무한다. 그만큼 그 뜻이 모호한 것이다.
먼저 ‘아리랑’의 어원을 한자어 ‘我離郞’으로 보고 ‘나의 낭군과 이별한다’ 뜻으로 보는 설이 있다.
고유어로는 ‘아! 리앙이여’라는 뜻이라고 보는 설이 있다.
그밖의 ‘나의 리앙’등으로 보는 것 등등이다.
조선 말 지주 박좌수의 머슴 ‘리랑’과 몸종 ‘성부’의 애절한 사랑에서 빚어졌다는 배경설화도 있다.
어쨌거나 ‘아리랑’은 애절한 사랑의 이별 노래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지방마다 다른 아리랑 민요가 있지 않나 싶다.

아사리판
`질서가 없이 어지러운 곳이나 그러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아사리’는 토박이말 `앗다(奪)`의 어근 `앗`에 조사 `을`이 붙고, 그 아래 `이`가 붙어 `앗+을+이`가 되고, 여기에서 `아사리`로 바뀐 말이다. 곧 빼앗을 사람이 많으니 빼앗을 사람과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람이 한데 어울려 무법천지가 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또 한편 덕망이 높은 스님을 ‘아사리’라고 하는데, 이 ‘아사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사리’가 많으면 다양하고 깊은 의견들이 개진되고, 토론하는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러한 모습을 피상적으로 보면 서로 자신들의 주장만을 앞세우기 때문에 매우 무질서하고 소란스럽게 비칠 수도 있다. 이런 연유로 무질서한 현장을 뜻하는 부정적인 말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아수라장
`싸움 따위로 혼잡하고 어지러운 상태에 빠진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교 용어로 ‘아수라’는 화를 잘 내고 성질이 포악해서 좋은 일이 있으면 훼방 놓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다. 아수라는 욕심 많고 화 잘 내는 사람이 죽어서 환생한 축생이라고 한다. 따라서 아수라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모습은 엉망진창이고 시끄럽고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아양을 떨다
이는 원래 `아얌을 떨다`에서 나온 말이다. ‘아얌’은 여자들이 겨울 나들이할 때 추위를 막으려고 머리에 쓰던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떨면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된다. 그래서 귀여운 행동이나 말로 시선을 끄는 행위를 뜻하게 되었다.
안달이 나다
`안달`은 `안이 달아오르다`란 뜻을 가진 말이다. `안`은 온갖 장기가 있는 `몸 속`을 가리키는 말이니, 이 말은 곧 속이 타서 달아오른다는 뜻이다.
어떤 일의 결과를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속을 태우며 안타깝게 고민하는 것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안성맞춤
경기도(京畿道)의 안성(安城) 고을은, 옛날부터 유기(鍮器)로 알려져 있다. 유기그릇을 안성에 맞추면 주문자의 뜻대로 잘 만들어졌으므로 거기에서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는 민간어원설로 보이지만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안타깝다
언어학적으로 보면 `안` 은 `마음` 이란 뜻이다. 이처럼 `안` 이 `마음`의 뜻으로 쓰이는 말에 `애가 타고 마음이 갑갑하다`라는 `안쓰럽다`는 말이 있다. `안타깝다`는 `마음` 이란 뜻의 `안`에 `답답하다` 의 옛말인 `답깝다` 가 붙은 `안답깝다` 가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간어원설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조선조 세종 때 경상북도 청송에 `안탁갑` 이라는 노처녀가 있었다. 임금님에게만 시집을 가겠노라 고집을 부리던 `안탁갑` 은 드디어 세종의 빈이 되었는데, 너무도 안탁갑에게 빠져 있는 임금을 걱정한 신하들은 그를 청파동으로 물리쳤다. 그런데 임금의 행차 소식을 들은 `안탁갑`은 행차의 길목에서 정성스레 만들어 온 미음을 올렸다. 세종은 이 미음을 단숨에 마셨는데 그 때 두 사람의 괴로움은 말이 아니었다. 그 후 사람들은 몹시 괴로운 일을 나타낼 때 `세종과 안탁갑의 사이 같다`란 표현을 썼는데, 이 애절한 사연에서 `안타깝다` 란 말이 생겼다는 슬픈 사랑이야기다.

알나리깔나리
아이들이 서로 상대편을 놀리는 말이다. `알나리`는 벼슬을 한 나이가 어리고 키가 작은 사람을 농담 삼아 `아이 나리`라는 뜻으로 이르던 말이며, `깔나리`는 ‘알나리’와 더불어 운율을 맞추기 위해 별다른 뜻 없이 덧붙인 말이다. `얼레리꼴레리`나 ‘얼라리꼴라리` ’얼레꼴레리` 같은 말은 다 `알나리깔나리`가 변해서 된 말들이다.
암죽
`낟알 가루나 밤으로 묽게 쑨 죽`을 가리키는 말이다.
암죽은 `밤죽`이 변한 말이다. 밤죽의 `밤`이 `밤→왐→암`의 변화 과정을 거쳐 지금의 암죽으로 된 것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밤으로 쑨 죽을 ‘암죽’이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쌀이나 다른 낟알을 가지고 쑤는 것까지 두루 일컫는 말이 되었다.
산모가 젖이 부족하거나 혹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아기에게 젖을 먹일 형편이 되지 않을 때 주로 암죽을 먹여 키운다.

압구정
한강변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있는 압구정동(狎鷗亭洞)은 바로 그 강변에 있었던 세조(世祖) 때 권신(權臣) 한명회(韓明澮)의 정자 이름 압구정에서 유래한 것이다.
두 임금을 받들어 세움으로써 네 개의 공신(功臣)을 겸하고, 두 임금의 장인이었으며 최고의 벼슬인 영의정을 수년 동안 거침으로써 도합 73년간이나 벼슬길에서 영화를 누렸던 한명회(韓明澮)는 벼슬에 뜻이 없었다는 세평을 듣고 싶어 짐짓 이곳에 정자를 짓고 갈매기[鷗 ]와 친하게 놀다[狎]는 뜻으로 압구정이라 이름 지었던 것이다.

애매모호曖昧模糊
`희미하여 분명하지 않음`이라는 뜻이다.
우리말의 `애매하다`는 벌은 받았으나 실은 죄 없음을 뜻하는 말로 `애꿎다`, `억울하다`와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그런데 일본말 한자어로 `애매`가 있는데, 이 말은 우리가
쓰는 한자어인 `모호`와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식 한자투에 익숙한 일부 지식층이 두 말을 잘못 결합하여 쓰던 것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따라서 `불분명하다`는 뜻을 나타내고자 할 때는 `애매하다` 또는 `애매모호하다`라는 말 대신 본래 우리말 `모호하다`라고 쓰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야단법석惹端法席
여러 사람이 한 데 모여서 서로 다투고 떠들고 하는 시끄러운 판`을 뜻하는 말이다.
`법석(法席)`은 원래 불교용어로 `법회석중(法會席中)`이 줄어서 된 말이다. 대사의 설법을 듣는 법회에 회중(會衆)이 둘러앉아서 불경을 읽는 법연을 일컫는 말로서 매우 엄숙한 자리를 뜻하던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엄숙한 자리에서 무슨 괴이한 일의 단서(端緖)가 야기(惹起)되어 매우 소란한 형국이 되었다는 의미로 `야단법석`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야단법석’의 야단을 野壇으로 쓸 때는 ‘야외에서 베푸는 법회’의 뜻이 된다.
야호
`야호`는 독일 알프스 지대에서 쓰던 `johoo`란 의성어가 어원이다. `야호`는 고립됐을 때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조난신호로 흔히 쓰였다. 한국에는 20세기 들어 `야호`란 구호가 수입돼 등산객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호연지기의 상징처럼 되었다.
옛날 신선이 호랑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호랑이를 부를 때 ‘야, 호[虎; 범호]’하고 불렀다는 웃지 못할 민간어원설도 있다.
《설문(說文)》에 병을 고치는 풀을 약이라고 한다 하였다. 이로 보아 약의 시초가 식물성인 초목으로 시작되어 ‘艸’자 밑에 사람을 즐겁게 한다는 뜻의 락(樂)자를 붙여서 ‘藥’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원래 ‘약’의 뜻이 식물이 지니고 있는 자극성(맵거나 쓴맛)을 말하며, ‘약이 오른 고추’, ‘잎에 약이 올랐다’ 등의 용례로 보아 그와 같이 약이 오른 풀이 인체에 대한 약리작용이 있는 것을 알고 사람의 병을 고치는 물질을 ‘약’이라고 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약오르다
`화가 나다`의 뜻이다. 원래 약초가 잘 성숙하여 독특한 자극성 성분이 생기는 것을 `약이 오르다`고 하던 것이 점차 그 뜻이 확대되어 사람의 성질을 뜻하게끔 되었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독한 기운이 뻗친다는 면에서는 서로 통하는 표현이다.

음식을 먹은 후에 `양이 찼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이 때의 `양`은 `질량`의 `량`, 즉 한자어 `양`이 아니다. 이 `양`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양`은 `위장`이라고 할 때의 `위`에 해당하는 우리말이다. 그래서 쇠고기 중에 `곱창`도 있고, `양`도 있다. 그래서 `양이 찼느냐?` 하는 것은 `위가 찼느냐?`는 뜻이다. 즉 `배가 부르냐?`는 뜻인 것이다. 그리고 `곱창`의 `곱`은 `기름`이란 뜻을 가진 우리말이다. `눈곱`의 `곱`과 같은 것이다.
`곱창`은 `곱`+`창`으로 기름이 많은 창자이다.
`폐`는 우리말로 `부아`(옛날에는 `부하`)였다. 그래서 `부아가 난다.`고 한다. 화가 나면 숨을 크게 들어 마셔서 `허파`가 크게 불어난다. 그래서 `부아가 난다`는 `화가 난다`는 뜻이 되었다. 우리 국어에서는 이렇게 신체 부위를 가지고 감정을 표시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머리가 아프다. 골치가 아프다.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귀가 가렵다. 귀가 따갑다. 눈꼴이 시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손이 근질근질한다. 애가 탄다. 애간장을 녹인다. 핏대가 난다 등등의 말들이 그런 것들이다.

양말
서양에서 들어 왔다고 해서 `양` 자를 붙이거나 `서양`을 붙여 만든 단어들이 꽤나 있다. 그 예가 무척 많음에 놀랄 것이다.
`양철 양동이 양은 양재기 양회 양행 양복, 양장, 양궁, 양단, 양담배, 양란, 양배추, 양버들, 양식, 양옥, 양장, 양잿물, 양주, 양초, 양파, 양화점 등등.
‘양말’의 ‘말’은 고유어 ‘말기’(둘러서 덧댄 부분)의 줄인 말이다.
양치질
양치질`의 `양치`는 `양지질` 즉 `양지`(버드나무 가지)에 접미사인 `질`이 붙어서 이루어진 단어다. 고려시대의 문헌 <계림유사>에도 `양지`(버들 楊, 가지 枝)가 나타나고 그 이후의 한글 문헌에서도 `양지질`이 나타나고 있다.
`양지` 즉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청소하는 것이 옛날에 `이`를 청소하는 방법이었다. 오늘날 `이쑤시개`를 쓰듯이, 소독이 된다고 하는 버드나무 가지를 잘게 잘라 사용했던 것이다. (이 `양지`가 일본으로 넘어가서 일본음인 `요지`로 변했다). 그래서 `이`를 청소하는 것을 `양지질`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어원의식이 점차로 희박해져 가면서 서양의 ‘양’에 `이`의 한자인 `치`가 연결된 것으로 착각하고, ‘치약’으로 이[齒]를 닦는다는 뜻으로 착각하게 되어 ‘양치질’이 된 것이다.
어깃장을 놓다
`어떤 일을 할 때 끼어 들어서 참견을 하거나 훼방을 놓다`는 뜻이다.
부엌이나 광의 문처럼 비교적 곱상하게 다루기 힘든 곳은 판자를 연결해서 널쪽문을 해 단다. 그 중에서도 튼튼하게 문짝에 가로 홈을 파고 띠를 끼워서 띠와 널을 못 박아 붙이는데, 자칫 일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각선으로 붙이는 띠목을 어깃장이라고 한다. 어깃장을 대각선으로 붙이는 모양에 빗대어 어떤 일을 어긋나게 한다는 뜻으로 쓰게 된 것이다.

어른
‘어른`은 `얼운`이라고 했다. 이것은 `얼우다[嫁: 혼인 가]`의 어간 `얼우-`에 명사형 접미사가 붙은 말로 `얼우다`는 결혼하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따라서 `얼운`은 `혼인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리고 `어린이`라는 말은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처음 만든 말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옛 문헌을 보면 이미 `어린이’와 ‘늙은이`가 많이 등장한다. 단지 `어린이`라는 잡지를 처음 만들어 널리 알렸을 뿐이다. `어린이`는 `어린 사람` 즉,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이었다. 훈민정음 어지(御旨)에도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라고 쓰이고 있다. `어린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으로 쓰이다가 `어린 사람(나이가 적은)`이란 뜻으로 어의가 전성된 말이다.

어리굴젓
`간한 굴에 고춧가루를 섞어 얼간으로 삭힌 굴젓`을 가리킨다. 충남 서산군 부석면 간월도에서 채취되는 굴은 지형적으로 간만의 차가 심해서 늘 바다 속에만 잠겨 있지 않고 하루 4~7시간은 개펄 속에 묻혀 햇볕을 받고 자란다. 이 때문에 양식한 굴은 1년이면 엄지손가락 만하게 크지만 간월도 굴은 3년 정도 큰 뒤 캘 때에도 2~3cm밖에 안 되고 거무스름한 빛깔을 띤다. 굴은 햇볕을 쬐면 생장이 중단되기 때문이며, 이런 굴을 두고 보통 `강굴`이라고 한다. 이러한 간월도 강굴은 적당한 기온과 염도가 유지되는 환경에서 자란 다른 지방의 굴보다 훨씬 고소하며, 물날개(굴에 나 있는 털)가 잔잔하고 그 수가 많아 고춧가루 등 양념 배합률을 높여주기 때문에 독특한 맛을 낸다. 어리굴젓은 이렇게 자란 굴을 이물질이나 땟국물을 빼내기 위해 깨끗한 바닷물로 씻은 뒤 7% 정도의 소금으로 희석시켜 섭씨 15~20도 정도의 발효실에 보름간 넣어둔다. 고춧가루로 주로 양념을 해서 `얼얼하다`, `얼큰하다`는 맛의 표현이 어형 변화를 가져와 `어리굴젓`이 되었으며, 조선조 때 무학대사가 이태조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전해져 오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600년 이상 된 식품으로 추정된다.

어버이
`업+엇+이` 로 된 말이다. 고려 속요 [사모곡]의 별칭인 [엇노리]에서 보듯 `엇` 은 `어머니` 를 뜻하는 말로, `엇` 에 접미사 `-이` 가 붙은 `어시` 는 `어이`로 변천한다. 그런데 사모곡 중 '아바님도 어이어신 마라난' 에서의 `어이` 는 `어버이`를 뜻하고 있는데, 이는 모계사회에서 여자가 대표성을 띠었던 것의 반영이로 볼 수 있다.
`어버이` 는 `어머니` 란 `어이` 에 아버지를 뜻하는 `업` 이 붙어서 된 말(업+어이)이다. 그러기에 `어버이` 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뜻하는 말이다.

억장(億丈)이 무너지다
억장(億丈)은 본래 억장지성(億丈之城)의 줄임말로 성의 높이가 억 장이 될 정도로 퍽 높이 쌓은 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은 억 장이나 되는 높은 성이 무너질 정도로 엄청난 일을 말한다.
오늘날, ‘억장’은 ‘가슴’의 속된 말로 한자어라는 의식 없이 쓰이고 있다. ‘억장이 무너지다’는 몹시 분하거나 슬픈 일이 있어서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뜻으로 쓰인다.

얼간이
소금에 조금 절이는 것을 `얼간`이라고 한다.
‘얼간’에 사람을 뜻하는 ‘이’가 결합되어, ‘얼간이’는 제대로 절이지 못하고 대충 간을 맞춘 것처럼 다소 모자란 사람이라는 뜻으로, `됨됨이가 변변치 못해 모자라고 덜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얼굴
`얼굴`은 15세기에서도 어형은 `얼굴`이었으나 `몸 전체`, `형상`, `형체`, `모습`, `틀`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5세기에 쓰인 `몸얼굴[體格]`, `밑얼굴[原形]` 등의 합성어를 통해서도 `얼굴`이 몸 전체를 가리키는 단어였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인물을 고르는 표준인 `身言書判(신언서판)`의 `身`이 바로 `얼굴`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얼굴`은 17세기에 와서 `안면顔面`이라는 의미로 변하였다. `안면`은 `몸 전체`에 포함되는 한 부분일 뿐이다. `몸 전체`에서 `몸의 일부`로 의미가 변한 것은 결국 의미 적용 범위가 축소된 현상으로 설명된다. 15세기에 ‘안면’을 뜻하는 말로는 ‘낯’이 있었다. 지금은 서로 같은 뜻으로 쓰인다.
‘얼굴’은 ‘얼’의 ‘굴(=통로)’의 뜻이 있는 말이다. 누구나 얼굴이 예쁘기를 바란다. 진정 예쁜 얼굴은 ‘얼’이 고운 사람의 얼굴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얼버무리다
‘이 말 저 말을 뒤섞어서 어름어름 분명하지 않게 하다`는 뜻이다.
`얼`은 명사나 동사 앞에 붙어서 `덜 된`, ‘여러 가지가 뒤섞여’, ‘대충’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원래 `얼버무리다`고 하면 여러 가지를 대충 섞어 버무린다는 뜻이었다.그러다 사람이 말을 분명하지 않고 모호하게 한다는 뜻으로 쓰게 되었다.

엑스 세대
영어에서 엑스(X)는 미지수의 기호로 쓰이는 글자로 알 수 없고 불확실한 것을 뜻한다.
캐나다의 작가 더글러스 쿠프랜드가 <엑스 세대>라는 책을 내면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쿠프랜드 식으로 하면 엑스 세대란 1968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세대들로 기생세대가 잘 이해하기 힘든 신세대를 뜻한다.
여리꾼
`상점 앞에서 지나가는 손님을 끌어 들여 물건을 사게 하는 중개인`을 가리킨다.
조선 시대에 육주비전의 상인들은 아들에게 문서를 다룰 줄 아는 정도의 글자와 상인들끼리만 통용되는 변말을 배우게 한 다음 15세 무렵에 다른 가게의 심부름꾼으로 내보냈다. 일종의 상인 수업을 받게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스무 살 남짓 되어 장사에 대한 요령을 터득하고 훌륭한 상인이 될 재질이 보이면 따로 가게를 내어 독립시켰다. 그러나 나이가 들도록
독립을 하지 못하면 `열립(列立)`으로 나서야 했다. ‘열립’은 상가 앞에 늘어서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가게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리꾼’은 ‘열립’이 `여리`로 변하고 거기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꾼`이 덧붙은 것이다. 그리고 여리꾼이 가게 안으로 손님을 끌어 들이는 것을 `여립켜다`라고 한다. 요즘 샌드위치맨이라고 하여 상가나 술집 앞에서 요란한 복장을 하고 앞뒤로 점포 이름을 알리는 글을 써 붙이고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들이는 사람을 볼 수가 있다. 또한 야간 유흥업소들이 채용한 ‘삐끼’들도 현대판 여리꾼이라 할 수 있겠다.
여보
`여보`의 어원은 `여기(此處)`의 `여`에 `보다(視)`의 어간 `보-`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 보오’의 뜻으로 오늘날 부부간의 호칭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이다.
`여보세요`는 이 `여보`에 `-세요(해요체)`가 덧붙여진 말이다.
열통 터지다
재래식 화장실에 어느 정도 대소변이 쌓이면 그걸 퍼내야 한다. 오물을 치우기 위해선 커다란 작대기로 그 속을 휘휘 젓는데 그때 메탄가스가 발생해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것을 ‘열통’이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열통 터지다`의 열통을 사람의 가슴 한복판에 화나 열을 돋우는 어떤 장기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열통은 위에서 말한 대로 재래식 변소에서 끓어오르는 메탄가스를 말한다.
`열통 터지다`는 말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폭발할 지경이거나 폭발하는 것을 가리킨다.
염병할
`일이 뜻대로 안 풀려 혼자 투덜대거나 남을 심하게 나무랄 때 쓰는 욕`이다.
염병은 장티푸스와 같이 높은 열이 나는 전염병을 가리키는 말이다. 염병, 즉 장티푸스에나 걸리라는 뜻을 담은 욕설이다. 지금은 장티푸스 같은 병이 큰 위협이 되지 못하지만 옛날에는 고치기 힘든 전염병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염병에 걸리면 서로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 전염을 막는 유일한 길이었다. 상대가 염병에 걸려서 가까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염병에 땀 못 낼 놈’이란 욕이 있는데, ‘괴로워하다가 죽을 놈’이라는 뜻으로 상대를 저주하는 말이다. 염병이 그만큼 무섭고 괴로운 병이었던 것이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남의 어려운 사정보다 자기에게 닥친 작은 일을 더 크고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엿 먹어라
`상대방에게 모욕적으로 이르는 상스러운 말`이다.
‘엿’은 남사당패의 은어로, 여성의 성기(性器)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리나라 말의 욕설 중에 성기와 관련된 말이 많듯이, 이 말도 남사당패의 은어를 빌려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엿’을 엿장수의 ‘엿’으로 잘못 알고, ‘엿’이나 먹으면서 조용히 있어라 정도의 뜻으로 쓰는 사람이 많다. 본래의 뜻을 안다면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말이다.

영감
`늙은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옛날에는 정3품과 종2품의 벼슬아치를 영감이라고 일컬었으며, 그 이상의 벼슬아치를 대감이라고 했다. 해마다 정월에 80세 이상의 관원 및 90세 이상의 백성에게 나랏님이 은전으로 베풀어 준 벼슬인 ‘수직’이라는 것이 있었다. 실제 맡은 일이 있던 직책은 아니고, 그냥 노인을 우대해서 이름만 내려준 벼슬에 불과했다. 수직이라는 벼슬을 받은 노인들도 영감이라고 부르다가 차차 나이 든 어른을 높여서 모두 영감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도 군수 영감, 판사 영감 하듯이 관료사회에서는 자신들끼리 서로 높여 부르는 말로 쓰기도 한다.

영덕대게
조선조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던 진상품으로 축산항 죽도(경북 영덕군 축산면)가 영덕대게의 원조로 기록돼 있다. 해방 후에는 영덕군 강구항에 대게 통조림 가공공장이 생겨 강구항이 집산지가 됐다.
동해 바다 속에는 태백산맥과 마주 달리는 해양산맥이 있다. 이중 영덕군 강구면과 축산면 사이 앞바다는 바위로 이루어져 갯벌이 전혀 없고 깨끗한 모래뿐이다. 주민들은 이곳을 `왕돌잠`이라고 부른다. ‘왕돌잠’은 다리가 길고 속살이 많으며 쫄깃쫄깃한 맛이 나는 대게의 서식지로 국내에서 해양환경이 가장 적합한 곳이다.
울진 후포항과 구룡포항에서 경쟁적으로 대게 어획량을 늘리고 있지만 역사성 때문에 `울진대게` `구룡포대게`는 `영덕대게`의 명성에 밀리고 있다. 매일 아침 7~8시 강구항에는 대게 입찰이 벌어진다. 영덕대게 중상품으로 손꼽히는 것이 박달대게다. 살이 실하고 맛이 풍부한 박달대게는 1백 마리당 2~3마리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희소가치가 있다.
요즘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영덕과 울진의 대게에 대한 원조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오금을 박다
무릎의 구부리는 안쪽 뒷무릎이 ‘오금’이다. 오금은 사람이 중심을 잡고 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체 부위다. 오금을 툭 치면 중심을 못 잡고 휘청하는데, 여기서 `오금을 박는다`는 말이 나왔다. 상대가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못하게 단단히 이르거나 을러 놓다는 뜻으로 쓰인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양혜왕과 맹자의 대화에서 비롯한 말이다.
양혜왕이 말하기를 ‘과인이 나라에 대해서 진심을 다할 뿐입니다. 하내가 흉년이 들거든 그곳(하내)의 백성들을 하동으로 옮기고 그곳(하동)의 곡식을 하내로 옮기며, 하동이 흉하거든 또한 그러합니다. 이웃나라의 정치를 살펴보건대, 과인이 마음을 쓰는 것과 같이 하는 자가 없는데 이웃나라의 백성들이 더하여 줄어들지 않고 과인의 백성들이 더하여 많아지지 않으니 어찌된 것입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해 말하겠습니다. 둥둥둥 북을 쳐서 병기와 칼날이 이미 접해지면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끌면서 도망하되 어떤 자는 백 보를 가서 멈추고, 어떤 자는 오십 보를 가서 멈추어 (자신이)오십 보를 간 것으로써 백 보를 간 자를 비웃는다면 어떻습니까?’
양혜왕이 말하기를 ‘옳지 않습니다. 다만 백 보가 아닐 뿐 이 또한 도망친 것입니다.’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뜻으로 쓰인다.

오빠
‘오빠’는 ‘오랍아’에 어원을 둔 말로 ‘오라비’를 부르는 말이다.
‘오랍’은 남자 동기간을 뜻하는 옛말이다.
‘오랍아>옵아>옵바>오빠’로 변천했다. ‘오누이’는 오랍과 누이의 합성어다.

오지그릇
붉은 진흙으로 만들어 볕에 말리거나 약간 구운 다음 오잿물을 입히어 다시 구운 질그릇이다.
오지그릇은 원래 `오+질그릇`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오질그릇`에서 `ㄹ`이 탈락된 말이다. 여기서 `오`는 `까마귀(烏: 까마귀 오)`를 나타낸다. 즉 진흙으로 빚어서 구어 낸 질그릇의 빛깔이 마치 까마귀처럼 검붉은 윤이 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자로 `오자기(烏瓷器)`라고도 한다.

오지랖이 넓다
‘오지랖’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오지랖이 넓은 옷은 그만큼 다른 옷을 덮을 수밖에 없다.
‘오지랖이 넓다’는 남의 말에 잘 참견하거나 염치없는 짓을 잘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옴니암니
사소한 것까지 캐거나 따지고 드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옴니’는 어금니가 변해서 된 말이고, ‘암니’는 앞니가 변해서 된 말이다. 그리고 ‘옴니’의 `옴`은 ‘어미’를 뜻하는 `엄`이 변한 말이다. 이(齒)는 다 같은 이인데 구태여 어금니니 앞니니 하며 따질 필요가 있느냐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미주알고주알’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자질구레한 것까지 좀스럽게 따지는 모양, 또는 그렇게 드는 비용까지도 뜻하게 되었다.
옹헤야
‘옹헤야’는 오래 전부터 민중들이 즐겨 부른 가요다.
‘옹헤야’는 ‘올해야’라는 부름말인 셈이다.
올해야말로 꼭 풍년이 들 것이라는 간절한 염원이 깃들어 있는 말이다.

외동딸
`하나밖에 없는 딸을 귀엽게 이르는 말`이다.
윷놀이에서 한 동만으로 가는 말을 ‘외동무니’라고 하며, 줄여서 그냥 ‘외동’이라고도 한다. 외동무니처럼 하나만 있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며, 같은 이치로 외동아들이라는 표현도 쓴다.

용빼는 재주
`용빼는 재주`의 `용`은 전설상의 동물인 용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새로 돋은 사슴의 연한 뿔을 가리키는 ‘녹용’의 준말이다. 살아 있는 사슴의 머리에서 이 녹용을 뺄 때는 날랜 솜씨와 묘한 방법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그런 기술을 일러 `용빼는 재주`라 한 것이다.
`용빼는 재주`, `용빼는 재간` 등으로 널리 쓰이는 이 말은 남다르게 큰 힘을 쓰거나 큰 재주를 지니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용수철
볼펜심 등에 있는 통통 튀는 스프링처럼 `용수철`은 탄력성 있는 용수(龍鬚) 즉 용의 수염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하다
`용(龍)이 어떤 일을 하다`에서 나온 말로, ‘재주가 참 좋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신령스러운 용이 일을 했으니 일이 매우 훌륭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용은 예로부터 길조의 상징이었으므로 용꿈을 꾸는 것은 더없는 길조였다.

우두머리
지금은 `우두머리`라는 단어가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마치 `두목(頭目)`이란 한자어처럼, `도둑의 괴수(魁首)`인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우두머리`란 단어는 비칭이 아니었다. 그냥 평칭으로 사용되었다. 그렇다고 경칭도 아니었다. `우두머리`는 한자어인 `위두(爲頭`할 위, 머리 두)에 고유어인 `머리`가 합쳐진 합성명사다. `위두머리`는 보통 위가 되는 사람의 뜻이었다. 그런데 이 `위두머리`의 `위`가 단모음화 되어 `우`가 됨으로써, 오늘날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우라질
`우라질`의 본디 형태는 `오라질`이다. 이 말은 몹시 미워하는 대상이나 잔뜩 맞갖지 않은 일에 대하여 욕으로 하는 말이다.
`오라`는 도둑이나 죄인을 결박하던 붉고 굵은 줄을 가리키는 말이고, `질`은 `지다`의 원형으로 `결박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오라질`이란 ‘나쁜 짓을 하여 오라를 질 만한’이라는 뜻이었다.

우물
‘움’에서 나오는 ‘물’, 또는 그런 샘터를 이르는 말이다.
이 `움물`이 동음생략이 되어 `우물`이 된 것이다. 지금도 방언에서는 `우물`을 `움물`이라고 한다.

육개장
육개장’의 ‘개장’을 ‘개장국’이라고도 한다. ‘개장’에 ‘국’이 덧붙은 것이다. 개고기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기에 그 개고기를 이용한 탕을 많이 먹었고, 그 결과 ‘개장’에 ‘탕’이라는 일반적 의미가 덤으로 부여되었다. 요즘에 그저 ‘보신탕’을 ‘탕’이라고 불러도 의미가 통하듯이, 예전에는 ‘탕’하면 ‘개장’을 뜻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장’이 ‘탕’이라는 보편적 의미를 띠게 되자, 다른 ‘육탕’의 명칭도 ‘개장’을 근거로 새롭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육개장’은 ‘개고기’가 아닌 ‘소고기’를 이용하여 끓인 ‘육탕’을 뜻하는 말이다.
원칙적으로 ‘육개장’은 ‘소탕’이나 ‘우탕(牛湯)’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하나, 그만큼 ‘개장’이 보편화 된 데서 비롯한 것이다.
육시랄
일이 뜻대로 안 풀려 혼자 투덜대거나 남을 심하게 나무랄 때 쓰는 욕이다.
`육시를 할`이 줄어서 된 말로, 육시라는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말이다. `육시`는 옛날의 형벌 방법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에 다시 참형(斬刑)을 가하는 육시(戮屍: 죽은 사람의 목을 베는 형벌)와 사지를 말에 묶어 각기 달리게 하여 머리, 몸통, 사지로 찢어 여섯 토막이 되게 하는 육시(六屍, 六弑)가 있었다. 본래의 뜻을 살펴볼 때 매우 끔직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저주어린 욕설임을 알 수 있다.

으악새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지러진 조각달/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일제 말엽 암울했던 시절, 김능인이 노랫말을 짓고 손목인이 곡을 붙여 고복수가 노래를 부른 「짝사랑」의 첫절이다.
첫 절의 첫 귀에 나오는 「으악새」가 「풀」이냐 「새」냐 라는 시비가 그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으악새」를 「억새풀」이라고 알고 있다. 그 근거는 1990년 이전에 나온 모든 국어사전에 「으악새」가 「억새」의 사투리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으악새가 억새의 사투리이듯, 모든 국어사전에는 억새의 사투리가 「웍새」라고 되어 있다는 것도 아울러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보통 사람들이 으악새가 억새의 사투리라는 것까지만 찾아보았지,「웍새」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은 것 같다. 억새는 산이나 들에 나며 줄기, 잎은 지붕을 이는 데, 또는 소나 양의 먹이로 쓰이는 풀이다. 그런 억새가 슬피 운다는 것도 이상하고, 산이나 들에 있어야 할 억새의 배경이 여울이나 강물같이 물과 관계가 있는 곳이라는 것도 이상하다. (물가에 억새 비슷한 것은 갈대다)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 평안도 사투리에 「왁새」라는 새가 있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왁새」의 표준말은 ‘왜가리’이다. 왜가리는 남쪽(오스트레일리아)에서 봄철(3월)에 우리나라에 와서 논이나 강가 또는 호숫가에서 물고기 조개 개구리 따위를 잡아먹고 살다가 가을철(10월)에 돌아가는 여름새이다.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라는「짝사랑」의 가사와 어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으악새가 떠나가야 할 가을이 되어 슬피 운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1992년에 나온 <우리말 큰사전>에는 「으악새」가 억새의 사투리도 되고, 왜가리의 사투리이기도 하다고 되어 있다.
억새의 사투리가 「웍새」고 왜가리의 사투리가 「왁새」다. [으악새]라는 소리가 [웍새]에 가까우냐 [왁새]에 가까우냐가 문제이다. 아무리 봐도 [으악새]는 [왁새]에 가깝다. 그러므로「으악새」는 「왜가리」라는 새를 의미하는 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을씨년스럽다
을사보호조약(1905)으로부터 나라 망한 한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을사년스럽다`고 하던 것이 변하여 `을씨년스럽다`가 된 것이다.
보기에 탐탁하지 않고 몹시 쓸쓸하다. 살림이 보기에 가난하다. 소름이 끼치도록 싫거나 지긋지긋하다 등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면수
쥐노래미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이름이다. 이면수는 찬물에 사는 어종으로 우리나라 동해와 일본 북동부에 분포한다. 관북지방(마천령북쪽, 즉 함경북도 지방)에 사는 ‘임연수(林延壽)’라는 사람이 이 물고기를 잘 낚았다는 데서 지금과 같은 이름이 비롯했다. 옛날 강원도 동해안에 사는 부자가 비싼 이면수로 쌈만 먹다가 망했다고 하여 `이면수 쌈 먹다가 천석꾼이 망했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맛이 좋고 비쌌다고 한다. 이면수의 표준어는 ‘임연수어’다.
그런 유래가 있는 말이라 할지라도 지금 대다수 언중들이 ‘이면수’라 하는데, 굳이 유래를 따져 사람 이름인‘임연수’를 표준어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바지
원래 이바지는 잔치한다는 뜻이다. 결혼이라는 큰 잔치를 치른 사람이 가져온 떡을 ‘이바지떡’이라고 한다. 나라에 공헌한 사람이 많으면 나라에서 잔치를 벌여준다. 그래서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게 힘쓰는 것을 ‘이바지 한다’고 하게 되었다.
이판사판
이판사판은 (일이나 상황이) 막다른 데에 이르러 더는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이르는 말이다.
불교에 이판승(理判僧)과 사판승(事判僧)이 있었다. 조선 왕조의 억불(抑佛) 정책으로 하여 승려는 특히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점점 더 푸대접을 받게 된다. 유학자(儒學者) 가운데는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큰 흐름은 멸시 그것이었다. 그에 견디지 못하여 황폐해진 절도 있었으나 많은 절들은 그 어려움을 딛고서 한편으로는 절의 운영·유지에 애를 쓰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수선(修禪)과 강경(講經)에 힘썼다. 이때 절을 운영하고 여러 가지 절일을 관장하는 승려들은 자연히 공부(참선·강경)할 기회를 잃게 되어 무식해졌으며, 절일은 젖혀둔 채 공부만 하는 승려들은 불경에는 밝아져 갔으나 세속과는 담을 쌓음으로써 현실적인 일에는 소극적으로 되면서 어두워져 갔다.
누군가 출가를 하고자 할 때는 이판이든 사판이든 그 어느 쪽인가를 가려야 하게 되어 있었고, 이판승과 사판승의 갈등의 골은 깊어 갔다. 급기야 이들은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되기까지 되었다. 이런 사정으로 이판사판이란 말이 생겼다.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다
`인구에 회자되다`의 ‘인구’는 사람의 입, 회자는 회[膾]와 구운 고기[炙]란 뜻이다. 사람들이 회와 구운 고리를 좋아하듯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훌륭한 글이나 명성 등이 사람들의 화제에 자주 오르내릴 경우에 ‘인구에 회자되다’ 라는 표현을 쓴다.
 
자린고비
민간어원에 보면, 옛날 충주 지방에 이씨 부자가 있었는데, 어찌나 구두쇠였던지 제사 때마다 지방에 `고비(考 妣)` 즉 `죽은 아비 考`, `죽은 어미 妣`를 써서 매년 기름에 전 똑 같은 지방을 썼다고 한다. 지방은 제사를 지내고 태워 없애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인데, 그만큼 인색한 부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절은고비’란 말이 생기고, ‘절은고비>저린고비>자린고비’로 바뀌게 되었다.
이 말은, 종이(지방)를 태우지 않고 계속 사용했다는 인색함을 책망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하찮은 것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절약하는 정신을 높이 사 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자웅을 겨루다
본래 역(曆)에서 나오는 자웅(雌雄)은, 자(雌)는 밤을, 웅(雄)은 낮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훗날 자웅은 수컷과 암컷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낮과 밤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에 비유해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양상을 나타낸 말로 ‘자웅을 겨루다’는 말이 쓰이게 된 것이다.
오늘날은 막상막하의 서로 비등한 힘을 가진 상대끼리 승부를 겨루는 것을 가리킨다.

자치동갑
‘나이가 한 살 틀리는 동갑`을 이르는 말이다.
자칫하면 동갑이 될 뻔했다는 데서 나온 말로, 아래로 혹은 위로 한 살 차이가 나는 경우에 쓰인다. 같은 뜻으로 어깨동갑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나이 차가 적기 때문에 서로 키가 비슷하여 어깨를 나란히 겨눈다는 뜻이다. 자치동갑끼리는 서로 친구로 하기로 하고 말을 트고 지내는 것이 상례이다.

잔나비
왜 원숭이를 `잔나비`라고 했을까?
우리말에 옛날에는(17세기까지도) `원숭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18세기에 와서 한자어인 `원성이`(원숭이 猿, 원숭이 猩)가 생겨났고 `성`의 음이 `승`으로 변하여 `원승이`가 되고 이것이 또 변하여서 오늘날 `원숭이`가 된 것이다.
원숭이의 고유어는 `납`이었다. 그래서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 `猿`의 새김도 `납 원`이라고 했다. 여기에 `재다`(동작이 날쌔고 재빠르다)의 형용사형 `잰`이 어두에 붙고, 명사화 접미사 ‘이’가 붙어서 `잰나비`가 되고 , 이것이 음운변화를 겪어서 `잔나비`가 된 것이다.

잡동사니
안정복은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인데, 이것저것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았다.
마침내 안정복은 이것저것 잡다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만을 모아 책을 한 권 엮었는데, 그 책 이름을 <잡동산이>라고 했다.
바로 이 <잡동산이>에서 여러 가지가 한데 뒤섞였다는 뜻의 `잡동사니`라는 말이 나왔다.

장가가다
`남자가 혼인을 하다`의 뜻으로, 말 그대로 남자가 장가(丈家 : 장인, 장모의 집)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도 고구려 시대에는 모계중심 사회의 유습을 받아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가 신부 집에서 일을 해주고 첫 아이를 낳으면 비로소 독립해 나가도록 했었다. 지금은 이러한 풍습이 없어졌지만 말에는 아직도 그 유습의 흔적이 남아 있고, 또 구식 결혼 후에 신랑이 사흘 동안 신부 집에 묵는 것도 그 유습의 잔재로 볼 수 있다.

장로(長老)
기독교의 '장로(長老)'는 불교에서 전래한 말로, 본디 이 말은 '지혜와 덕이 높은 스님'이란 뜻이었다. 현재 기독교에서는 '선교 및 교회의 운영에 참여하는 성직의 한 계급'을 뜻한다.

재미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흥취`를 뜻하는 말이다.
재미는 원래 자양분이 많고 좋은 맛이란 뜻을 지난 한자어 `자미(滋味)`에서 나온 말이다. 자미가 우리말의 `ㅣ` 모음역행동화 현상에 의해 `재미`로 변하면서 말뜻도 함께 바뀌게 된 것이다.

점심
점심은 선종(禪宗)에서 선승들이 수도를 하다가 시장기가 돌 때 마음에 점을 찍듯 아주 조금 먹는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래서 마음 심(心), 점 점(點)을 쓴 것이다. 이처럼 점심은 간단하게 먹는 중간 식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흔히들 중식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일본식 한자어이므로 되도록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

점을 찍다
`어느 것, 또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나타내거나 마음속으로 정하다`라는 뜻이다.
관원을 선임할 때에 삼망(三望 : 벼슬아치를 발탁할 때 셋을 추천하는 일)의 후보 가운데서 한사람의 이름 위에 임금이 친히 점을 찍어서 뽑는 것을 `낙점(落點)`이라고 했다. 이로부터 임금이 낙점을 하듯이 자기마음에 드는 대상을 고르는 것을 `점을 찍는다`고 하게 되었다.

점잔
`무겁고 야하지 않은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형용사 `점잖다`에서 온 말(명사)이다. 점잖다는 `젊지 아니하다`가 줄어서 된 말인데, 15세기 국어의 `졈다`는 `어리다`의 뜻이었다. 따라서 `점잖다`는 `어리지 않다`, 즉 어른스럽게 행동거지가 의젓하다는 뜻이다. (현대어 ‘젊다’가 ‘졈다’에서 온 말이다.) 흔히 `점잔을 빼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말은 나이는 젊은데 ‘짐짓 점잖은 척 해 보인다’는 뜻으로 쓴다.

정곡을 찌르다
과녁의 한가운데를 일컫는 정곡(正鵠)이란 말은 활쏘기에서 나온 말이다.
과녁 전체를 적(的)이라 하고 정사각형의 과녁 바탕을 후(候)라고 한다. 그 과녁 바탕을 천으로 만들었으면 포후(布候), 가죽으로 만들었으면 피후(皮候)라 했다. 동그라미가 여러 개 그려진 과녁의 한가운데 그려진 검은 점을 포후에서는 정(正)이라 하고, 피후에서는 곡(鵠)이라 했다. 정(正)은 본래 민첩한 솔개의 이름이고, 곡(鵠)은 고니를 가리키는 말인데, 둘 다 높이 날고 민첩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맞히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과녁 중에서도 가장 맞히기 힘든 부분인 정 가운데를 맞혔을 때 `정곡을 맞혔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곡은 과녁의 한가운데를 뜻한다.
같은 뜻을 가진 말로는 `적중(的中: 과녁의 가운데)이 있다.
활쏘기가 사라진 오늘날에는 ‘정곡을 찌르다’는 `어떤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제비초리
‘뒤통수의 골에 뾰족하게 내민 털`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하여 `제비초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소의 안심에 붙은 고기는 `제비추리`라고 한다.

젠장할
`젠장할`은 `제기 난장을 맞을` 이 줄어서 된 말이다.
`난장`이란 정해진 형량 없이 신체의 부위를 가리지 않고 마구 매로 치던 조선시대 고문을 말한다.
일이 뜻대로 안 풀려서 투덜거리거나 다른 사람을 욕할 때 쓴다.

젬병
`해놓은 일이나 물건이 형편없거나 잘못 되었을 때` 이르는 말이다.
‘전병’이 변해서 된 말이다. 전병은 찹쌀가루 밀가루 수수가루 따위를 반죽하여 번철에다 둥글고 넓게 지진 떡을 말하며 우리말로는 `부꾸미`라고 한다. 전병을 납작하게 지져 놓아 볼품없이 된 모양을 빗대어 나타낸 말이다.

조바심
`바심`은 `타작한다`라는 뜻의 말로서 `조바심`은 `조를 타작하다`라는 뜻이다. 조는 귀가 질기므로 어지간한 정도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굉장히 노력을 기울어서 해야 만이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조를 타작하는 마음처럼 무척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것을 `조바심`이라 한다.

좀이 쑤신다
좀벌레가 몸을 쑤셔대면 가려워서 참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가만히 참고 기다리지 못하는 것을 ‘좀이 쑤신다’라고 하게 되었다.

종간나 새끼
`(함경도 지방에서) 상대방을 얕잡아 이르는 욕설`이다.
`종갓나`는 함경도 사투리로 `종살이를 하는 가시내`라는 말이다. 즉 종년의 자식이라는 뜻으로 상대방을 경멸하여 욕설로 쓰는 말이다.

주걱
‘주걱’은 ‘죽(粥) + 억’으로 분석된다. ‘-억’은 다 아는 바와 같이 작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사이다. ‘터럭’이 ‘털 + -억’으로 되어 있고, ‘주먹’은 ‘줌 + -억’으로 되어 있는데, ‘주걱’에서 분석되는 ‘-억’도 이와 같은 것이다. 죽 같은 것을 푸는 데 쓰는 도구가 ‘주걱’이다. 밥을 푸는 것은 ‘밥주걱’이라 한다.
그런데 이 ‘밥주걱’의 생김새 때문에 여러 단어가 생겨났다. 턱이 유달리 길고 앞으로 굽은 턱을 ‘주걱턱’이라고 하고, ‘구두’를 신을 때 쓰는 도구도 주걱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구둣주걱’이라고 한다.

주마등
`사물이 몹시 빨리 변하여 돌아감`을 이르는 말이다.
등(燈)의 외피(外皮) 중심을 철사 끝에 머물게 하고 속에서 타는 촛불의 열기가 한쪽 방면으로만 빠져나가게 하여 그 힘으로 빙빙 돌게 한 것을 주마등이라고 한다. 등에다 말을 그려 놓았기 때문에 돌아가면 등에 그려진 말이 저절로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주마등이 돌아가는 것처럼 빠르게 변한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흔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와 같이 쓴다.

쥐뿔도 모른다
` 아무것도 모른다`의 뜻이다.
옛날에 한 노인이 짚으로 자리를 매고 있는데 작은 쥐 한 마리가 왔다 갔다 하였다. 이에 노인이 짚에 붙어있는 벼를 훑어주었다. 이런 일을 되풀이하면서 노인과 쥐가 친해지고 쥐는 점점 자라서 강아지만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쥐가 노인으로 변해서 가족들을 속이고 진짜 노인을 집에서 내쫓았다. 집에서 쫓겨난 뒤 이리저리 걸식하면서 떠돌아다니던 노인은 어느 절에서 스님을 만나 사연을 이야기하고 고양이 한 마리를 얻었다. 몇 해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고양이를 풀어서 마침내 요망한 쥐를 잡았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은 불러 한바탕 야단을 친 다음에 아내를 따로 불러서 `지금까지 쥐좆도 모르고 살았느냐?`라고 힐난을 했다고 한다.
비슷한 이야기 중에 여자가 같은 이유로 쫓겨났다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본래 위치를 찾은 다음 남편에게 `쥐씹도 모르고 살았느냐?`고 따졌다는 것도 있다.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앞 뒤 분간을 못하는 사람을 일러 `쥐좆(또는 쥐씹)도 모른다`고 하는 말이 생겨났으며, 표현상 성기(性器)를 나타내는 부분을 은유적으로 둘러서 `쥐뿔도 모른다`고 하게 된 것이다.

지랄한다
`마구 법석을 떨거나 분별없는 행동을 하다`의 뜻이다.
지랄은 원래 간질병을 뜻하는 말이다. 간질병의 증세는 대체로 눈을 허옇게 뒤집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온몸에 경련을 일으킨다. 정확한 사리분별 없이 날뛰는 사람의 행동을 간질병의 발작 증세에 빗대어 나타낸 말이다.

지사(知事)
'도지사(道知事)'를 줄인 말로 쓰는 '지사(知事)'는, 원래 불교용어로 '일(事)을 알다(知)', '업무를 관장하다'의 뜻인 범어(梵語) 'karma dana'의 한역(漢譯)이다.
중국에서는 절의 집사나 사무를 관장하는 사람을 '지사(知事)'라고 했으며, 고려시대에는 5품에서 6품까지의 지방관직과 2품에서 5품까지의 중앙관직에, 조선시대에는 정2품과 종2품 중앙관직에 '지사'라는 명칭을 썼다. 오늘날 ‘도지사’가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지아비 지어미
원래 `집`의 관형격(소유격) 형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15세기)의 문헌에 보면 `짓아비, 짓어미`였는데 19세기말에 와서 `짓`이 `지아비, 지어미`가 되었다. ‘ㅅ’이 유성음 사이에서 반치음의 과정을 거쳐 탈락한 것이다. ‘짓’은 ‘집’의 뜻으로 사이시옷이 들어가면서 본래 받침은 약화되어 탈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아비, 지어미`의 본디 뜻은 `집아비, 집어미`인 셈이다.

지치다
`피곤하다`는 뜻으로 곧잘 `지치다`란 말을 쓴다.
그런데 이 `지치다`란 말은 원래의 뜻이 `설사하다`란 뜻의 ‘즈다’에서 온 말이다. 설사하는 행위의 결과로 신체에 나타나는 탈진상태를 `지치다`라 하였는데, `피곤하다`는 의미로 바뀌게 된 것이다. `설사(泄瀉)가 훈몽자회에도 ‘지칠 설’, ‘지칠 사’로 되어 있다.

직성이 풀리다
`소망이나 욕망 따위가 제 뜻대로 성취되어 마음이 흡족하게 되다`의 뜻이다.
사람의 나이에 따라 그의 운명을 맡아 본다는 별을 가리켜 직성이라고 했다. 그 차례는 제웅직성, 토직성, 수직성, 금직성, 일직성, 화직성, 계도직성, 월직성, 목직성의 아홉 직성이 있다. 이 직성에는 흉한 직성이 있고 길한 직성이 있다. ‘직성이 풀리다’는 직성(直星)의 변화 여부에 따라 자신의 운명도 결정된다는 사고방식으로부터 생겨난 말이다.

쪽도 못 쓴다
상대해보지도 못한 채 기가 눌리어 꼼짝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본래 씨름판에서 나온 말이다. 씨름판에서 상대한테 배지기로 들렸을 때, 자신의 발등을 상대의 종아리 바깥쪽에 갖다 붙이면, 상대가 더 들지도 못하고 내려놓지도 못하고 힘은 힘대로 빼면서 애를 먹는다. 이런 기술을 `발쪽을 붙인다`라고 하는데 그런 기술도 써보지 못하고 당했을 때 `쪽도 못 쓴다`라고 한다.
또 사람이나 어떤 사물에 혹할 정도로 반하여 꼼짝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찬물을 끼얹다
이 말은 본래 흘레붙은 개들을 떼어놓을 때 쓰던 방법이다. 족보 있는 개가 종자도 모를 남의 개와 어울렸을 때 그 새끼를 밸 것을 염려하여 찬물을 한 동이 끼얹어 떼어놓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한참 진행 중인 일을 중단하게끔 하는 말이나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면서, 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어색하게 되거나, 신나게 일하고 있는 중에 그 일을 그만두게 만드는 어떤 요인이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을 말할 때 쓴다.

참치
다랑어는 영국에서는 튜나(tuna)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마구로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랑어를 참치라고도 부른다. 이 참치라는 명칭은 해방 후 해무청 어획 담당관이 당시 동해연안에서 ‘참다랭어’라 부르는 것을 잘못 알고 물고기를 뜻하는 ‘치’를 ‘다랭어’ 자리에 붙여 ‘참치’로 보고서에 기록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참치`의 우리나라 표준명은 ‘다랑어’다. 생물학회와 교육부에서도 다랑어라는 어명을 표준 명으로 결정하고 국정교과서에도 다랑어라는 어명을 활용하고 있다. 구미인들은 다랑어의 살색이 백색에 가까운 담홍색인데다가 그 맛이 닭고기 맛과 같다고 해서 다랑어를 바다닭고기(Sea-Chicken)이라고도 부른다. 구미인들은 통조림 원료로도 널리 활용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다랑어 생선회를 <마구로 사시미>라고 부르면서 바다 생선회 중의 일품으로 상미(賞味)하고 있다.

창피하다
체면 깎일 일을 당하여 부끄럽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한자어 창피(猖披)에서 온 말로, 원래 옷을 입고 띠로 매지 않은 채 헝크러진 모습이라는 뜻에서, 이는 남에게 보이기에 체면이 깎이는 일이므로 부끄럽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말이다. 창(猖)은 기운이 넘쳐 미쳐 날뛰는 것을 가리키는 글자로, 猖狂(창광)이라거나, 전염병이라든지 옳지 못한 세력들이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커지는 것을 뜻하는 창궐(猖獗)과 그 뜻이 일맥상통한다. 피(披)는 풀어헤치다는 뜻으로, 풀어헤치면 속의 것이 드러나게 되므로, 속에 감추어진 무엇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피(披)라고 한다. 이는 남 보기에 볼썽사나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천둥벌거숭이
`두려운 줄 모르고 철없이 덤벙거리나 날뛰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벌거숭이는 `벌거벗은 사람`이라는 뜻 외에 ‘붉은 잠자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벌거숭이가 천둥이 치는데도 두려운 줄 모르고 이리저리 날아다닌 데서 생겨난 말이다.

천애고아
`천애(天涯)`는 `천애지각(天涯之角)`의 준말로 하늘의 끝이 닿는 곳과 땅의 한구석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하늘과 땅처럼 서로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일컫는 말로서, ‘천애고아’란 서로 아무 인연이 없는 곳에 내던져진 고아를 가리킨다. 즉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핏줄이나 부모가 없이 오직 자기 혼자 남겨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철부지
계절의 변화를 가리키는 말인 ‘철’은 사리를 헤아릴 줄 아는 힘, 곧 지혜를 뜻하는 말이다. 그 뒤에 ‘알지 못한다’는 한자말인 ‘부지(不知)’가 붙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어린애 같은 사람을 일컬어 ‘철부지’라고 하게 되었다.

청기와 장수
`저만 알고 남에게는 알리지 않아 어떤 일을 자기 혼자서 차지하려는 사람`을 가리킨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청기와 굽는 법을 알아냈으나 이익을 혼자 차지할 생각으로 아무에게도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죽었다. 그 바람에 후세에까지 그 비법이 전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에서 비롯한 말이다.

촌닭
좀 어수룩해 보이는 시골 사람이 큰 도시에 오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 모습이 마치 시골 닭이 기웃거리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촌스럽고 어수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촌닭’이라고 하게 되었다.

총각
혼인할 나이가 된 성인 남녀를 지칭할 때에는 `처녀(處女)` `총각(總角)`이란 한자어를 사용한다. 그 중에서 `처녀`는 그 단어 속에 `여`가 들어 있어서 그 뜻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한자 `總(총)`은 지금은 `다 총` 등으로 `모두`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지만, 원래는 `꿰맬 총`, `상투 짤 총` 등으로 쓰이던 것이다. `각`은 물론 `뿔 각`이다.
중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이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뿔 모양으로 동여맨 머리를 `총각`이라고 했다. 이런 머리를 한 사람은 대개가 장가가기 전의 남자였다. 그래서 그러한 머리를 한 사람을 `총각`이라고 한 것이다. 옛날에는 어린 소년들에게도 `총각!`하고 불렀다.

추파
‘추파(秋波)’란 가을철의 잔잔한 물결이라는 뜻으로 잔잔하고 곱게 뜬 여자의 눈길을 말한다.
오늘날 ‘추파’라는 말은 은근히 남자의 마음을 사려고 알랑거리는 기색이나 태도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추호(秋毫)도 없다
추호(秋豪)의 한자는 ‘가을 秋, 터럭 毫’로, 본래 가을 짐승의 털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을이 되면 털갈이로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데 그 가늘어진 터럭 하나조차도 없을 정도라니 아주 없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흔히 아주 적거나 거의 없는 것을 강조해서 나타낼 때 쓰는 표현이다.

치가 떨린다
너무 분하거나 억울한 마음이 들 때 흔히 이를 악물거나 이를 간다. 그런데 이를 너무 악물거나 갈게 되면 이가 흔들린다. 그래서 ‘치(齒)가 떨린다’라는 말이 생겼다.
 
케케묵다
‘케케묵다’는 ‘켜켜이 묵다’에서 비롯되었다. ‘켜’는 포개어진 층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가령 시루떡을 찌면서 ‘켜’를 두껍게 안친다고 할 때 등에 쓰인다. 먼지 따위가 켜켜이 앉게 되면 자연히 ‘켜켜 묵은 것’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의 시작은 가시적(可視的)이었다. 그러나 케케묵은 것이 반드시 가시적인 데 그칠 수만은 없다. 사람의 생각도 새로운 물결이나 지식 같은 것으로 씻어내지 않으면 거기 켜켜이 먼지가 앉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켜켜이 묵은 생각’이 된다. 이 때는 추상적(抽象的) 의미가 되는 것이다.

코리아
고려가 통일국가를 이루고 문물이 발달하여 세계로 알려지면서 서방 세계에서 고려를 ‘코리아’로 부르게 되었다. 원래 스펠링이 Corea였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자기네 서방 이름인 Japan의 이니셜인 J가 C보다 뒤에 있는 것을 꺼려 J보다 뒤에 있는 K로 고쳐 Korea라 한 것이다. 광복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의 외국어 국호를 Corea로 고치는 것은 시급하고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큰손
`사채놀이나 주식 투자를 크게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같은 뜻을 지닌 일본말 `오오데(大手)`를 직역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다. 따라서 말 전체는 순우리말이지만 그 뿌리는 일본말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깡패를 흔히 `어깨`라고도 하는데 이 말도 ‘어깨’란 뜻의 일본말 `가다`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태질을 하다
이삭을 떨 수 있게 만든 농기구인 개상에 곡식 단을 메어쳐서 터는 것을 태질이라 한다. ‘메어꽂다’는 뜻을 가진 `태질을 하다`란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농기구가 발달한 지금은 이 말을 농사용어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에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세차게 메어치거나 집어던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쓰고 있다.

터무니없다
`이치나 도리에 맞지 않다`의 뜻이다.
터무니는 원래 터를 잡은 자취를 뜻하는 말이다. ‘무니’는 지금의 ‘무늬’라는 말이다. 터를 잡았던 흔적이 없다는 말이니 전혀 근거가 없거나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토끼다
`도망가다`의 뜻으로. ‘토끼(兎)+다’로 결합된 말이다. 토끼가 잘 달리는 특성에 빗대어 `도망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를 만들게 되었다. 비슷한 조어(造語) 방식으로 생긴 말로, `신(靴)+다`, `띠(帶)+다`, `자(尺)+ㅣ+다(재다)`, ‘안 +다’, ‘품+다’ 등이 있다.

토를 달다
`토`라 함은 한문을 읽을 때 그 뜻을 쉽게 알기 위하여 한문 구절 끝에 붙여 읽는 우리말로서 우리말의 조사에 해당한다. `토씨`라고 쓰기도 한다. -하야, -하고, -더니, -하사, -로, -면, -에 등이 토에 해당한다. 예: 有朋이 自遠訪來하니 不亦樂好아
오늘날에 얘기 중에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경우에 뒤에 덧붙여 하는 얘기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인다.

퇴고推敲
퇴고란 문장을 다듬고 어휘도 적절한가를 살피어 고쳐 쓰는 일을 말한다.
이 말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당(唐)나라의 시인 가도(賈島)가 나귀를 타고 가다 시 한 수가 떠올랐다. 그것은 ‘조숙지변수 승퇴월하문(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 새는 연못 가 나무에 잠들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라는 것이었는데, ‘달 아래 문을 민다’보다는 ‘두드린다[敲]’고 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골똘히 생각하다 그만 경조윤(京兆尹:首都의 市長) 한유(韓愈)의 행차 길을 침범하였다. 한유 앞으로 끌려간 그가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한유는 노여운 기색도 없이 한참 생각하더니 ‘역시 민다는 퇴(推)보다는 두드린다는 고(敲)가 좋겠군.’ 하며 가도와 행차를 나란히 하였다(《唐詩紀事》)는 고사(故事)에서 생겨난 말로 이로부터 퇴고란 말이 쓰이게 되었다.

투기
'투기 성향', '투기 심리', '인생 투기', '정치 투기', '아파트 투기', '땅 투기' 등에서 보듯, '투기(投機)'라는 말은 아주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확신도 없이 요행만 바라고 큰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 또는 '요행히 큰 이익을 얻으려고 행하는 매매 거래'가 '투기'인 것이다.
그러나 '투기'라는 말은 본래부터 그렇게 나쁜 의미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던 단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의미로 쓰이던 단어이다.
'투기'라는 단어는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다. 불가에서는 '수행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크게 깨닫는 일' 또는 '조사(祖師)'의 '기(機)'와 '학인(學人)'의 '기(機)'가 일치하는 일'을 '투기'라고 한다. 따라서 '투기'는 아주 심오한 수행의 경지를 나타내는 긍정적 의미의 단어였다.

튀기
'혼혈아'를 업신여기거나 낮추어 말하는 단어이다. '혼혈아'보다 '혼혈인'이 더 인격을 존중하여 말하는 단어입니다
'튀기'는 우리 옛 문헌 속에 등장하는 '특이'라는 말의 변형이다.
18세기 문헌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수말과 암소, 수소와 암말 사이에 태어난 것을 특이라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따라서 '특이'은 수말과 암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버새', 암말과 수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 등을 지칭하는 명사가 된 셈이다.
이것이 20세기 초 <조선어 사전>으로 이어져 '트기'로 표기되었고, 현대에는 '튀기'로까지 변모된 것입니다.
사전에서 확인한 것처럼 이런 과정을 거치며 그 의미 또한 혼혈 동물만을 뜻하는 말에서 혼혈 인간까지 포함하는 말로 변했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 조선 정조 때 실학자, 문장가.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 1741-93)의 시문(詩文)·예론(禮論)·사론(史論) 등을 망라하여 엮은 전집. 71권 33책. 필사본. 1795년(정조 19) 저자의 아들 광규(光葵)가 편집, 간행하였다.

트집 잡다
`공연히 조그마한 흠집을 잡아 말썽이나 불평을 하다`의 뜻이다.
원래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할 물건이나 한데 뭉쳐야 할 일이 벌어진 틈을 일컫던 트집이라는 말이 점차 그 뜻이 전이되어 쓰인 것이다.
 
파김치
파김치란 파로 담근 김치로, 파는 원래 잎이 빳빳하고 기운이 세어 만지면 톡톡 부러지지만, 소금기와 함께 여러 양념을 해두면 서서히 기운이 죽어 부드럽게 된다.
처음에는 힘이 있어 강건하던 사람도 일을 많이 하거나 오래하면 몸이 나른해지고 행동도 느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을 너무 많이 하거나 힘이 들어 기운이 쭉 빠진 것을 가리켜 ‘파김치가 되었다’고 한다.

파방치다
`살던 살림을 그만두다`의 뜻이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발표를 취소하는 것을 ‘파방(罷榜)’이라 했다. 파방을 하듯이 그전에 있었던 일을 도로 없던 일로 한다는 뜻으로 빗대어 나타낸 말이다.
같은 이유로 일이 깨져 다 끝난 것을 `파방판`이라고 한다.

판문점
분단의 현장인 판문점(板門店)은 원래 이름이 `널문리`다. `판문`은 우리말인 `널문`을 뜻에 맞춰 한자를 빌어 ‘널 板, 문 門’으로 표기한 것이다.
51년 휴전회담장이 되면서 근처에 있던 주막을 겸한 가게에서 당시 `중공군` 대표들이 알아볼 수 있게 한자로 `板門店`이라고 옥호를 적은 것이 그대로 지명이 된 것이다.
인근의 `널문다리`에는 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 후 `돌아오지 않는 다리` 라는 이름이 새로 붙었다.

팽개치다
하던 일을 포기하고 그만 두는 일을 말한다.
팽개는 `팡개`에서 왔는데 팡개는 논에 있는 참새를 쫓는 데에 쓰이는 대나무 막대기이다. 이렇게 논바닥에 팡개를 쳐서 흙이나 돌을 묻힌 다음 그것을 휘둘러 새를 쫓는 것에서 `팽개치다`라는 말이 나왔다.

푸념
`마음속에 품은 불평을 길게 늘어놓는 말`을 일컫는다.
원래는 굿을 할 때 무당이 신의 뜻(빙의 상태)이라 하여 정성들이는 사람에게 꾸지람(=넋두리)하는 것을 일컫던 말이었으나 일반적인 의미로 그 뜻이 변했다.

피죽바람
`모 낼 무렵 오랫동안 부는 아침 샛바람(동풍)과 저녁 높새바람(북동풍)`을 가리킨다. 모 낼 무렵에 이 바람이 불면 벼가 큰 해를 입어 큰 흉년이 들기 때문에 ‘피죽도 먹기 어렵다’고 생각한 데서 생겨난 말이다.
 
하룻강아지
하룻강아지는 ‘하릅강아지’가 변한 것이다.
그러면 이 ‘하릅’은 무엇인가? 요즘에는 이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아직도 시골 노인들에게서 들을 수 있다. ‘하릅’은 소·말·개 등과 같은 짐승의 ‘한 살’을 지시하는 단어이다.
‘하룻강아지’가 ‘하릅강아지’로부터 변형된 것이고 이것이 ‘한 살 된 강아지’라는 의미라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라는 속담은 ‘한 살 된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개에게 있어 생후 일년이면 천방지축 까불고 겁 없이 짖어댈 나이이다. 그러니 ‘범’인들 무서워하겠는가? 하루밖에 안 된 강아지라면 무섭고 자시고 할 거 있겠는가. 말은 ‘하룻강아지’로 굳어져버렸지만 의미만은 제대로 알아두는 게 좋겠다.

학을 떼다
`거북하거나 어려운 일로 진땀을 빼다`의 뜻이다.
말라리아를 한자어로 `학질(瘧疾)`이라고 한다. 그리고 `학을 떼다`는 `학질을 떼다`, 즉 `학질을 고치다`에서 나온 말이다. 학질은 열이 많이 나는 병임으로 자연히 땀을 많이 흘리게 된다는 점에서 어려운 곤경에 처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학을 떼는 것’은 여건 귀찮고 괴롭고 거북한 일에서 벗어나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 학질 : 학질모기가 매개는 말라리아 원충의 혈구내(血球內) 기생에 의한 전염병으로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고열이 나는 특징이 있어 3일열, 4일열 및 가장 악성인 열대열 등으로 구분한다. 특수한 열과 적혈구의 파괴로 빈혈 및 황달을 일으키는 수가 많다.

한가위
한[大]+갑[半分]+ㅣ(명사화 접미사)가 변한 말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그 당시 한가위를 기쁨과 잔치의 날로서 맞이했던 기록이 보인다. 왕녀(王女)가 길쌈을 장려하기 위하여 나라 안의 여자를 두 패로 갈라 7월 보름부터 길쌈 경쟁을 붙여 한 달 뒤인 8월 보름에 우열을 가린 끝에 진편이 이긴편에게 술과 음식을 바치면서 곁들여 춤과 놀이를 즐기던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곧 가위(嘉排)라는 것이었다.
이 한가위의 가위를 ‘가배(嘉排)’라 기록해 놓고 있으나 우리 옛말을 한자로 적어 놓고 있는 것(가차)뿐이다.
이러한 ‘가위’에 크다는 뜻의 ‘한’이 붙어 ‘한가위’라 하였는데 그 한가위는 결국 ‘한가운뎃날’이라는 뜻이었다. 보름날은 한달의 한가운데이고 또 한달의 절반이기도 하지만 8월의 가위는 유독 ‘큰(한) 가윗날’이라는 뜻의 한가위였다. 한자어 추석(秋夕)에 해당하는 고유어인 것이다.

한글
우리글인 훈민정음을 뜻한다.
한글은 세종 28년(1446년)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으로 반포된 우리글을 속칭 언문(諺文), 반절(半切)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런 이름은 모두 당시의 사대부들의 쓰던 한자(漢子)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낮추어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 뒤 갑오경장 이후로는 국문(國文)이라고 일컬었으나 특정 언어에 대한 명칭이라기보다는 그저 우리나라 글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리글을 한글이라고 처음 이름 붙이기는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1913년에 신문관(新文館) 발행의 어린이 잡지 [아이들 보이]에 집필한 글에서 ‘한글’이라고 표기한 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 널리 인식되지는 못하다가 1927년 2월부터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동인지로 창간된 국어국문 연구 잡지가 `한글`이라는 제호를 달고 월간으로 발행되었다. 또 그 전 년에 창설했던 훈민정음 기념일의 명창인 `가갸날`을 ‘한글날’로 고침과 함께 신문, 잡지 및 강연회 강습회를 통하거나 한글 맞춤법 통일안(1993) 의 보급에 의하여 한글이란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한글의 뜻은 글 중에 가장 큰(大) 글, 글 중에 오직 하나(一)인 좋은 글, 온 겨레가 한결(一致)같이 쓰는 글, 글 중에서 가장 바른(正) 글[똑 바른 가운데를 `한`가운데라 함과 같음], 결함이 없이 원만(滿한) 글[입에 꽉 찬 것을 `한입`이라 함과 같음]이란 뜻들을 겸한 것이다.

한참
`시간이 상당히 지나는 동안`이라는 뜻의 말이다.
두 역참(驛站)사이의 거리를 가리키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 역참과 역참사이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 사이를 오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 쓰던 말이었다. 공간 개념이 시간 개념으로 바뀐 경우라 하겠다. 그리고 새참이니 밤참이니 할 때도 `참`도 역참에서 나온 말들이다.
‘한참’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을 의미할 때도 있다.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에서 ‘밭이 한참갈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때는 길지 않은 시간, 곧 짧은 시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참이면 할 일을 뭘 그리 꾸물대냐’등의 경우도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 역참: 요즘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관가 등에서 먼 지방에 급한 공문을 전하거나 할 때에 주로 말을 이용했다. 이때에 일정한 거리마다 지친 말을 갈아타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을 역참(驛站) 이라고 했다. 각 역참에 딸려 공문을 가지고 역참 사이를 나르는 사람을 파발꾼(擺撥-)이라고 했으며 파발꾼이 타는 말을 파발마(擺撥馬)라고 하였다. 지하철 3호선의 ‘구파발’은 ‘옛 파발’이란 뜻이고, ‘역참’은 오늘날 ‘역’의 의미다.

함흥차사咸興差使
조선 태조(이성계)가 함흥에 있을 때 태종(이방원)이 태조의 환궁을 권유하기 위해 보냈던 사신(차사)을 일컫는 말이었다.
조선 초기에 이방원(李芳遠 : 뒤의 태종)이 2차례의 난을 일으켜 혈육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르자, 태조 이성계는 아들 방원에게 실망하여 고향인 함흥으로 가버렸다. 이에 태종은 태조에게 여러 차례 차사(差使)를 파견하여 환궁을 권유했으나, 태조는 이를 거부하고 사신으로 오는 자를 모두 죽여 버렸다. 이 때문에 어디 갔다가 아무 소식도 없는 것을 함흥차사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연려실기술 燃藜室記述〉등에 수록된 야사에 나오는 이야기로 실록에는 태조가 사신을 죽였다는 기록은 없다.
또 마지막 함흥차사로 갔던 박순(朴淳)의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실록에 따르면 그는 함흥차사가 아니라 조사의(趙思義)의 난 때 함경도민을 회유하기 위해 파견된 자로 군중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오늘날은 ‘심부름을 가서 아무 소식도 전하지 않거나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행주치마
여자들이 부엌일을 할 때 치마 위에 덧입는 앞치마를 말한다.
임진란이 일어난 이듬해(1593년) 왜적들이 행주산성을 침입할 때 권률장군이 지휘하는 군사가 왜적들과 싸우고 있었다. 이때 성 주변의 아낙네들이 앞치마에 돌을 날라다 행주산성 군사를 도왔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최세진의 <훈몽자회>(1527년)에 이미 ‘행주치마’란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또한 민간어원설에 의한 것이다.

허풍선이
`허풍만 떨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숯불을 피우는 손풀무의 한가지인 허풍선(虛風扇)에서 비롯한 말이다. 허풍선은 손풍금처럼 생긴 풀무의 손잡이를 잡고 폈다 오므렸다 하여 바람을 일으킨다. 허풍선처럼 알맹이는 없고 헛바람만 낸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헹가래
헹가래는 원래 가래로 직접 흙을 파기 전에 헛가래질로 손을 맞춰보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보기가 쉽지 않지만 농기구 가운데 가래라는 것이 있다. 삽 모양으로 생겼는데, 나무로 된 날에다 자루가 박혀 있다. 흙을 파는 날의 끝에는 쇠로 된 보습을 끼워 작업 중 쉬 부러지지 않도록 해놓았다. 외날이 있는가 하면 세 날 짜리도 있다. 밭의 이랑을 짓거나 농로 보수, 집터 고르기 등을 할 때 흙을 퍼서 옮길 때 주로 사용했다. 한 사람은 자루를 잡고 다른 두 사람이 가랫날의 넓죽한 위쪽 두 귀에 맨 줄을 한 가닥씩 잡고 앞에서 당겨 협동 작업을 할 수 있는 편리한 도구다. 가래꾼들은 본격 작업에 앞서 실수하지 않도록 손을 맞추기 위해 헛가래질을 해보곤 했다. 이 동작을 ‘헛(虛)가래’라고 했는데, 헌가래→헨가래를 거쳐 지금의 ‘헹가래’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좋은 일을 당한 사람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여럿이 그 사람의 네 활개를 번쩍 들어 던져 올렸다 받았다 하는 짓’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특히 운동경기에서 승리했을 때 감독이나 선수들을 헹가래치는 것을 많이 본다.

호랑이
‘호’(虎)는 ‘범’을, ‘랑’(狼)은 ‘이리’를 뜻하는 것으로, ‘호’와 ‘랑’을 합쳐 ‘호랑’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호랑’의 원래 뜻은 ‘범과 이리’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호랑’이 굳어져 쓰이면서 ‘호랑’ 자체가 ‘범’을 뜻하는 단어로 변화한 것이다. 물론 ‘이’는 명사 밑에 붙는 접미사이다.

호미곶
호랑이 꼬리를 닮았다 하여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의 해맞이 명소 `장기곶`의 명칭이 `호미곶(虎尾串)`으로 바뀌어 지도에 실리게 되었다.
호미곶은 원래 ‘말갈기’처럼 생겼다 해서 조선시대에는 장기곶으로 불렸으나, 조선 중기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南師古)는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錄)』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이 곳은 꼬리에 해당한다.’고 호미곶의 모양을 묘사했다.
한반도가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상징하는 호랑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셈이다.

호주머니
우리나라에는 호주머니가 없고, 중국옷에는 헝겊을 단 주머니가 있었다. 그것을 오랑캐 호(胡)자를 써서 `호주머니` 라고 부르게 되었다. `호떡`도 마찬가지다.

화수분
`재물이 자꾸 생겨서 아무리 써도 줄지 아니함`의 뜻을 지닌 말이다.
중국 진시황 때에 있었다는 하수분(河水盆)에서 비롯한 말이다. 중국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군사 십만 명을 시켜 황하수(黃河水)를 길어다 큰 구리로 만든 동이를 채우게 했다. 그 물동이가 얼마나 컸던 지 한번 채우면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황하수 물을 채운 동이라는 뜻으로 `하수분`이라고 하던 것이 나중에 그 안에 온갖 물화를 넣어 두면 새끼를 쳐서 재물이 샘솟듯 끝없이 나온다는 보배로운 그릇을 뜻하게 되었다.

환장하다
환장(換腸)은 `환심장(換心腸)`이 줄어서 된 말로서 마음과 내장이 다 바뀌어 뒤집힐 정도라는 뜻이다.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벗어나 아주 달라진 마음을 표현하는 말로서, `미치겠다`와 비슷한 의미이다.

활개치다
새의 두 날개나 사람의 두 팔을 가리켜 ‘활개’라고 한다. ‘활개치다’는 새나 사람이 활개를 치듯이 의기양양하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회(蛔) 동(動)하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뱃속에 있는 회충이 먼저 알고 요동을 친다 해서 생긴 말이다. 어떤 음식이나 일을 앞에 두었을 때 썩 입맛이 당기거나 즐거운 호기심이 일어나는 상태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후레자식
`배운 데 없이 제멋대로 자라서 버릇이 없는 아이`를 뜻하는 말이다.
원말은 `홀의 자식`이다. 즉, 아버지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버릇이 없는 아이라고 상스럽게 낮추어 부르던 말이다.
한편 같은 뜻으로 `호로자식`이르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호로(胡虜)’는 중국 북방의 이민족의 흉노(凶奴)를 일컫는 말로, ‘호로자식’은 ‘오랑케 자식’이란 뜻이다.

후미지다
`무서우리만큼 호젓하고 깊숙하다`의 뜻이다.
물가의 휘어서 굽어진 곳을 ‘후미’라고 한다. 따라서 `후미지다`고 하면 후미가 매우 깊은 곳을 가리키던 것이 점차 확대되어 지금과 같은 뜻을 지니게 되었다.

흐지부지
‘끝을 분명히 맺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넘겨 버리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다.
'흐지부지'는 단어의 구조로 보아 '흐지'와 '부지'로 분석되는 것으로 어원이 한자어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애지중지(愛之重之), 감지덕지(感之德之), 전지도지(顚之倒之), 좌지우지(左之右之)' 등의 한자어들이 있어서 그러한 추정을 하게 한다.
그렇다면 '흐지부지'의 이전 형태는 무엇이었을까?
조선총독부에서 1920년에 간행한 『조선어사전』에는 '흐지부지'란 어형은 올라 있지 않고, 대신 '휘지비지(諱之秘之)'란 한자어가 실려 있다. 그 뜻은 '기탄(忌憚)하여 비밀히 하는 것' 즉 '꺼려서 비밀히 하는 것'의 뜻이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줄여서 '휘비(諱秘)'라고 한다는 설명이 있다. 이어서 문세영의 『조선말사전』(1938년)에도 이 '휘지비지(諱之秘之)'가 실려 있고, ① 결과가 분명히 나타나지 아니하는 것 ② 꺼려서 비밀히 하는 것 이란 풀이가 있는데, '흐지부지'는 여전히 등재되어 있지 않다. 조선어학회의 큰사전에도 이 '휘지비지(諱之秘之)'는 실려 있는데, '남을 꺼려서 몰래 얼버무려 넘김'이란 풀이가 있다. 그리고 준말이 '휘비(諱秘)'라고 되어 있고, '휘비(諱秘)'는 '휘지비지'의 준말로 풀이되어 있다. 결국 '흐지부지'는 '휘지비지'란 한자어가 그 어원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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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는 차례상에 못 올리는걸까?


추석을 맞아 차례주(茶禮酒)는 뭘 쓸까? 이런 고민을 한번쯤 하는 사람은 그래도 멋을 아는 사람이다.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차례상이나 제사상에는 일본 청주인 정종이 많이 오르게 됐다. 망자(亡者)가 생전에 즐겼던 술을 쓰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망자가 생전에 바나나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제사상에 바나나를 올리듯이, 최근에는 소주가 제주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4대 봉사하거나 윗대 조상들을 함께 모시는 시제에서는 대개가 약주류의 전통주를 제주로 쓴다.

제주에는 금기가 많이 따르는데, 소주는 쓰지 않는다는 얘기들을 한다. 소주로 유명한 안동 지방을 찾아가서, 소주를 제주로 쓰느냐고 여러 차례 물어보았지만 아직까지 소주를 제주로 쓴다는 집안을 만나진 못했다. 왜냐고 물으면, 독한 소주를 제사상에 올리면 독한 후손, 쉽게 말해 독종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소주가 독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제사라는 규범이 생기고 보급될 무렵에 소주가 존재하지 않았거나, 소주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겠다.

세종실록 오례의’에는 제사에 쓰는 8가지 술 오제삼주(五齊三酒)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는데 모두가 탁주와 청주다.



오제는 범제(泛齊), 예제(醴齊), 앙제(?齊) 체제(?齊), 침제(沈齊)로 나뉘는데, 범제는 아직 지게미가 떠있는 덜 익은 상태이고 예제, 앙제, 체제로 갈수록 술이 익어가서 침제는 지게미가 다 가라앉은 상태의 술을 이른다. 크게 나누어 보면 범제와 예제는 탁한 술이고, 앙제와 체제와 침제는 맑은 술이다.

삼주는 사주(事酒), 석주(昔酒), 청주(淸酒)로 나뉘는데, 제사 일에 참여한 이들이 마시는 술이라 하여 사주라 하고, 겨울에 빚어 봄에 익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여 석주라 하고, 겨울에 빚어 여름에 만들어진 최고급 술을 청주라 했다.

이 ‘세종실록 오례의’의 오제삼주 얘기는 중국의 ‘문헌통고’를 참조한 내용이지만, ‘문헌통고’는 또 ‘주례’를 참고하여 내용을 구성했다. ‘주례’는 주나라 때에 작성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대체로 한나라(BC 206~AD 220년) 때에는 완성된 형태로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의 계보가 작성되고 나서 1000년이 흐른 뒤에야 원나라 몽골족에 의해서 증류주인 소주가 중국이나 한반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니, 소주가 제사상에 오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요즘은 이렇게 종류를 달리하여 술을 올리는 제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례의에 가장 가깝게 지내는 제사로 서울 성균관의 석전대제를 꼽을 수 있다. 석전대제에서는 식혜와 덜 익은 술과 잘 익은 술을 함께 올리니, 오제의 전통을 거칠게나마 잇고 있다 하겠다.


까다롭게 제주 이야기를 했지만,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처럼 술 또한 ‘이게 옳다, 저게 옳다’ 하는 것은 예(禮)가 아니다. 맑은 찬물을 뜻하는 현주(玄酒)를 올릴 수 있고, 감주(甘酒)만 올릴 수도 있다. 금주령이 심했던 영조 시대에 살았던 성호 이익(1681~1763)은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제사에 예(醴, 단술)만 쓰고 술은 쓰지 마라”고 했다. 금주령을 어기면 사형에 처했던 그 시절에, 혹시라도 자식 손자들이 효도한다고 술을 빚어 제사상에 올렸다가 죽임을 당할까봐 걱정하여 남긴 유언으로 보인다.

사실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상품화된 술을 올리는 행위는 인스턴트 밥을 사서 제사 지내는 거나 다를 바 없다. 제사 지내면서 옆집에서 밥 빌려오지 않듯이, 옛날에는 술 또한 빌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는데 어떡하겠는가? 그래도 전통을 지켜온 술들이라도 헤아려 제주로 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효도이고 정성이지 않겠는가.

지역별로 제주로 삼을 만한 전통 약주가 있다. 전라도의 해남 진양주, 충청도의 한산 소곡주, 아산 외암리 연엽주, 금산 인삼주, 청양 구기주, 경상도의 경주교동법주, 문경 호산춘 등이다. 이 술들은 밀주 단속이 심했던 금주령 시대에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보존, 지금에 이르러서 문화재가 되었다. 이 술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다. 모두 제주였다는 점이다. 장인들은 제사를 받들기 위해 목숨처럼 소중하게 이 술을 지켜온 것이다.

예로부터 술은 천상과 지상의 영혼을 연결해주는 음식으로 믿어져 왔다. 그래서 제사에 꼭 필요한 음식으로 술이 꼽히는 것이다. 제사상에서 움직이는 것은 하늘로 향하는 향 연기와 술밖에 없는 걸 보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술을 천상에 올린다지만, 이 술이 곧 복이 되어 지상에 내리니 제주가 곧 복술이다.

올 추석에는 무슨 술을 올려 음복할까? 아직 생각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생각해보시라. 제주를 올리면 복술이 생기고, 제주가 없으면 복술도 없나니.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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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절마다 일어나는 일이다. 자발적으로 혹은 타의에 의해 평상심과 자제력을 상실한 나머지 과식하고 과음하고 밤새 놀다가 몸과 마음에 무리가 오는 경우 말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음식을 잘만 골라 먹으면 웬만한 병이나 증상은 가뿐하게 해결할 수 있다. 추석 상황별 도움이 되는 음식을 소개한다.

    갈비 등 기름진 음식 너무 먹어서 속이 느글느글할 때 레몬

  • 기름진 음식을 과식해 속이 거북할 때는 레몬을 이용해보자. 약간 덜 익어 신맛이 강한 레몬을 고르는 것이 포인트. 신맛에 풍부한 비타민C와 구연산이 신진대사를 북돋우며, 침샘을 자극해 소화를 촉진시킨다. 레몬즙을 짜서 생수에 섞어 사이다, 설탕을 가미해 만든 레모네이드도 괜찮다. 얼음을 넣어도 되지만 기름기를 소화시키려면 따뜻하게 마시는 것이 좋다. 레몬은 살균효과도 있기 때문에 고기를 과식해 생기는 탈도 예방한다.

    맛난 음식 잔뜩 먹고 체했을 때 식혜

  • 체한 속을 달래는 데 추석 차례 음식인 식혜를 권한다. 주재료인 엿기름 때문. 엿기름의 원료인 맥아는 글루코스, 덱스트린, 말토오즈 등의 소화효소가 풍부해 한방에선 소화제로도 쓰인다. 특히 엿기름은 체내 멍울을 삭히는 작용이 강해 산모들에게 수유 후 나타나는 유방 통증을 가라앉히는 효과도 있다. 체증이 있을 때는 속을 한동안 비우는 것이 상책이므로, 당분 함량이 높아 만복감이 큰 식혜물만 마셔도 큰 도움이 된다.


    전 부치다 기름 냄새 너무 많이 맡아 속이 메슥거릴 때 누룽지

  • 기름냄새로 느글거릴때 탄산음료는 절대 금물. 위장장애를 더 일으킬 수 있다. 이럴 땐 누룽지를 끓인 숭늉을 권한다. 누룽지에는 덱스트린 같은 소화를 촉진하는 성분들이 들어있다. 쌀눈에 포함된 ‘감마아미노락산’이라는 성분은 지방을 분해하며 산성화된 몸을 알칼리로 중화하는 효과가 있다. 냄비에 찬밥을 얇게 깔고 약불로 노르스름하게 태운 다음 물을 붓고 푹 끓이면 구수한 숭늉이 된다. 영양분도 많으니 속이 진정될 때까지 밥 대신 먹자.

    귀성·귀경 정체로 차에서 20시간 보내고 온몸이 쑤실 때 유자

  • 추석연휴 후유증 중 하나인 근육통. 몸살로 갈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유자가 좋다. 유자 향에 포함된 시트럴, 리모넨 등의 성분이 혈관을 자극, 혈액순환을 도와 관절의 통증을 완화시킨다. 이들 성분은 살균, 진통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효과는 유자씨와 껍질에 많기 때문에 차로 마실 때는 건더기도 꼭꼭 씹어 먹도록 한다. 한편 유자에 풍부한 구연산은 근육에 쌓인 젖산을 배출하며, 비타민C는 감기몸살까지 예방한다.

    밤새 고스톱 치고 허리 아플 때 식초

  • 고스톱으로 경직된 근육과 피로를 푸는데 급처방으로 식초를 추천한다. 주성분인 아미노산이 타박상으로 인한 상처의 세포재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식초에 풍부한 초산, 구연산 등 유기산은 피로물질인 젖산을 분해해 소변 등으로 배출시킨다. 감식초, 사과식초 등 과일식초를 생수에 타서 마셔보자. 이와 함께 따뜻한 욕조 물에 식초를 종이컵 반 정도 붓고 뻐근한 허리를 20분 정도 담구고 있어도 좋다.

    시어머니 잔소리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코코아

  • 고부간에 스트레스가 남으면 홧병이 된다. 따뜻한 코코아 한 잔으로 과민한 신경을 차분히 풀어보시길. 코코아의 원료인 카카오에는 뇌의 피로를 풀어주는 당분과 기분을 밝게하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다. 또한 부드러운 카카오 향은 마음을 안정시키며, 소량의 카페인 성분은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왕이면 예쁜 찻잔에 담아 음악과 함께 마신다.

    성묘 갔다가 벌레에 물리거나 풀독 올랐을 때

  • 가벼운 ‘풀독’을 진정시키는데는 쑥이 좋다. 사람에겐 약이지만 벌레에겐 독이라는 말도 있듯, 시골에선 습진, 옻독 등에 쑥을 빻아 바르기도 한다. 영양적으로도 쑥은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해 면역효과가 크다. 또 알칼리성 식품으로 피를 맑게 해준다. 풀독에 쓸 때는 말린 쑥보다 송편 만들 때 사용한 생쑥이 더 좋다. 쑥즙으로 해 먹기 부담스러우면 생쑥을 된장국에 듬뿍 넣어 먹어본다. 아울러 쑥 훈증을 통해 풀독에 감염된 부위를 김에 쐬면 가려움증이 한결 가라앉는다.

    모처럼 만난 친지들과 술 먹고 속 쓰리고 머리 아플 때

  • 숙취로 괴로울 때는 역시 꿀물이다. 꿀에 함유된 포도당, 과당은 분해될 필요가 없는 단당체로 바로 간으로 흡수돼 주독을 풀어준다. 맹물에 타서 먹는 것도 좋지만, 식혜나 수정과에 타서 마시면 더욱 좋다. 숙취 증상 가운데 두통이 심할 때는 미나리즙과 꿀, 속쓰림이 심할 때는 양배추즙에 꿀을 타서 먹어보자.



    밤새 일드·미드·비디오 시청하고 눈이 침침할 때 참깨

  • 눈이 침침하면 참깨를 많이 먹자. 눈의 망막세포를 재생해 시력을 돕는 비타민A가 풍부하다. 에너지를 갑자기 소모해도 시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참깨에는 단백질, 탄수화물,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 등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다. 또 불포화지방산은 뇌의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며 누적된 독소를 해독하는 효과가 있다. 참깨를 따뜻한 물에 4~5시간 이상 불린 뒤 우유와 함께 갈아 마셔보자. 아니면 급한대로 추석상에 오른 참깨강정이라도 먹자.

    잠을 너무 많이 자서 머리가 멍할 때 국화차

  • 몽롱한 머리를 맑게 깨우는 데는 국화차가 잘 듣는다. 국화는 두통을 제거하고 열독을 해독하는 효과가 커서 민간에선 말린 국화꽃을 베갯속으로 쓰기도 한다. 잠들기 전 금기식품으로 여길 정도로 국화는 정신을 맑게 해주는 효과가 크다. 눈과 간기능 회복에 좋은 비타민A, 비타민B1, 콜린 등의 성분도 들어있다. 국화꽃 3~4송이를 따뜻한 물에 우러내 찻잔에 따른 뒤 꽃한송이를 띄워 마시면 기분도 맑아진다.

  •  

  • 글쓴이 : 김연수 푸드테라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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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면을 돕는 요가 동작 8가지

 

글/ 젝시라이터 조은자

<이브자리 수면환경연구소>

 

나른한 오후, 점심 식사 후에 밀려드는 졸음으로 상사 몰래 꾸벅꾸벅 조느라 괴롭다. 졸음 예방의 최선책은 적은 시간이더라도 자는 동안 숙면을 취하는 것. 숙면을 취하게 해 춘곤증 싹~ 달아나게 하는 요가 동작을 배워보자.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

보기에는 쉬운 자세라도 신체 깊숙이까지 자극이 전해지는 요가. 그런 요가의 효과를 최대한 얻기 위해 다음의 5가지 포인트에 주의해야 한다.

 

1. 식후 1~2시간 정도 지나서 한다. 위가 빈 상태에서 배변, 배뇨를 하고 나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2. 요가를 할 때는 천천히 호흡을 의식하면서 한다. , 호흡은 입이 아니라 코로 한다. 코 호흡을 해서 체내에 잡균,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고 건조방지도 된다.

3. 요가를 할 때는 활동하기 쉬운 복장을 하고, 양말을 벗는 것이 가장 좋다. 요가 매트를 준비하는 것도 좋다.

4. 격한 운동 직후나 입욕 직후에 요가를 하는 것은 피한다. 요가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신체를 릴렉스 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맥박을 정돈시키고 나서 한다.

5. 요가에서 중요한 것은 신체와의 대화. 자기 자신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한도에서 하는 것이 좋다. , 병이나 임신중인 경우에는 의사의 허가를 얻고 나서 무리 없는 범위에서 해야 한다.

 

1. 어깨의 피로를 풀어주는 요가 동작

오랜 시간 운전을 하거나 같은 자세로 계속 일을 하게 되면 몸이 긴장을 하게 되어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되지 못하고 뭉치게 된다. 이런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게 된다. 특히, 춘곤증으로 골치 아픈 직장인들은 간단한 요가를 함으로써 몸의 피로를 풀어주고 숙면을 취할 수 있다.

 

(1) 무릎을 굽히고 앉는다. 무릎은 주먹 하나 정도로 벌리고, 양 손은 무릎 앞의 바닥에 닿게 한다.

(2) 숨을 들이 쉬면서 등을 뒤로 젖히고, 목을 스트레치 하면서 천장을 본다.

(3) 숨을 토하면서 손을 앞으로 내민다. 이 때 엉덩이와 발꿈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이마를 바닥에 댄 채로 정지하고 자연스럽게 호흡을 한다.

그 후 (1)의 자세로 돌아가 숨을 토하면서 정좌에서 릴렉스 한다.

(1)~(3)을 한 세트로 2~3회 반복한다.

 


1. 등 근육이 스트레치되는 것을 의식한다

2. 상반신이 기분 좋게 늘어나는 것을 의식한다

3.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2. 목의 피로를 풀어주는 요가

목을 앞뒤, 좌우로 천천히 움직여 목 전체를 유연하게 해서 목의 피로를 풀어 준다. 목의 피로를 풀어 주면 머리도 상쾌하게 되어 릴렉스한 상태로 수면을 유도한다.

 

(1) 오른쪽 다리를 굽혀 발뒤꿈치가 몸의 중심에 오도록 한다. 다음에 같은 방식으로 왼쪽 다리를 굽혀 등 근육과 허리를 스트레치 하고, 턱의 힘을 뺀 가부좌 자세를 만들고 머리 뒤에 양 손을 놓는다.
(2)
오른쪽 손을 머리의 왼쪽에 놓고 왼쪽 손은 왼쪽 무릎에 놓는다. 등과 어깨가 움직이지 않게 하고 그대로 천천히 머리를 오른쪽으로 떨군다. 10~20초간 자연스럽게 호흡한 후 팔을 풀어 머리를 본래 자리로 되돌린다. 좌측도 같은 방법으로 한다
.
(1)~(2)
를 한 세트로 2~3회 반복한다.



1. 팔에는 힘이 들어 가지 않도록 주의한다.

2. 팔에 힘을 주지 말고 머리나 팔의 무게로 자연스럽게 목을 당긴다.

이 외에도 목에 힘을 빼고 좌우로 돌려 주는 것도 목의

이 외에도 목에 힘을 빼고 좌우로 돌려 주는 것도 목의 피로를 푸는데 좋다.

 

3. 머리의 피로를 풀어주는 요가

현대 사회에서는 컴퓨터나 TV등 생활 속에서 머리나 눈에 피로를 주는 요인들이 가득하다. 따라서 자기 전에 머리나 눈의 피로를 확실하게 풀어주면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을 준다.

(1) 정좌 상태에서 눈을 감고 등 뒤로 손을 모은다. 천천히 숨을 쉬면서 등 근육을 늘리고 천천히 숨을 토하면서 상체를 엎드린다.

(2) 천천히 엉덩이를 들면서 머리 꼭대기에 체중을 실어 팔을 높게 올린다. 눈을 감고 정수리 부분의 자극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호흡하고 10~20초 정지한다. 천천히 팔을 내리고 호흡을 토하면서 엉덩이를 내린다.

(3) 주먹을 쥐고 그 위에 이마를 올려 잠시 둔다. 갑자기 일어나지 말고 호흡을 정돈하고 나서 천천히 일어난다.

(1)~(3)을 한 세트로 2~3회 반복한다

 


이 외에도 이불 위에 머리를 대고 여러 방향으로 돌려주는 것도 좋다.

 

4. 손발을 따뜻하게 해주는 요가

계절에 관계없이 손발이 차면 쉽게 잠들지 못한다. 손끝, 발끝까지 혈액이 잘 돌도록 하여 심부 체온이 충분히 내려가면 잠이 잘 오게 된다. 이 동작은 손끝, 발끝이 확실하게 스트레치가 되도록 신경을 쓰면서 한다.

 

1) 양 다리를 모아 똑바로 선 다음 다리를 벌린다. 몸은 정면으로 한 채로 오른쪽 다리 끝을 90도 우로, 왼쪽 발 끝을 60도 우로 해서 숨을 쉬면서 손 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해서 양 팔을 평행으로 뻗는다.

(2) 숨을 토하면서 오른손을 무릎에 대고 왼쪽 손을 바로 위를 향해 뻗고 시선은 손 끝을 향하게 한다. 그리고 숨을 들이 쉬면서 왼손을 뒤집는다.

(3) 숨을 내쉬면서 오른손을 발 끝까지 내려 상체와 왼쪽 팔을 오른쪽으로 뻗는다. 그대로 정지하고 10초간 자연스럽게 호흡을 한다. 숨을 들이쉬면서 (2)의 동작으로 돌아 가고 숨을

내쉬면서 (1)의 동작으로 돌아 간다. 발의 각도를 바꿔 왼쪽도 같은 방법으로 한다.

 


1. 다리는 허리 폭의 3배 정도로 벌린다. 무리한  경우는 2배 정도가 적당하다.

2. 무릎을 굽히지 않도록 주의한다.

3. 왼쪽 손이 굽혀지지 않도록 손가락 끝까지 확실히 뻗는다.


5. 하반신의 혈액순환불량을 해소하는 자세

몸을 거꾸로 세워 하반신의 나쁜 혈액순환을 해소시켜 주면 다리의 피로가 풀려 편안한 잠을 유도한다. 다리를 올린 상태에서 움직여 주면 혈액 순환을 더욱 원활하게 해준다.

 

(1) 천천히 숨을 들이 쉬면서 천장으로 양 다리를 모으고 손 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해서 몸에 붙인다. 숨을 토하면서 양 다리를 모은 그대로 수직으로 올린다.

(2) 그대로 숨을 토하면서 엉덩이를 들고 양 다리를 바닥과 평행하게 하고 양 손을 허리에 붙인다.

(3) 양 다리를 바닥에서 60도로 올려 천천히 복식호흡으로 10초 정도 정지한다. 숨을 들이 쉬면서 (2)로 숨을 토하면서 (1)로 되돌아 간다. (1)~(3)을 한 세트로 2~3회 반복한다.

 


1. 다리는 90도 높이로 올린다.

2. 엉덩이가 올라가지 않는 경우는 무릎을 감싸서 탄력을 주면 올리기 쉬워진다.

3. 힘을 들이지 말고 천천히 동작을 한다.


6. 소화기의 피로를 제거하는 자세

과식이나 늦은 시간에 하는 식사는 내장에 부담을 준다. 불규칙한 생활 속에서는 암암리에 내장에 부담을 주는 일이 많으므로 자기 전에 내장에 자극을 주어 내장을 가뿐하게 해주면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을 준다.

(1) 양 다리를 엉덩이의 바깥으로 빼고 앉는다. 발 끝은 구부리지 말고 발 등을 편다.

(2) 팔꿈치를 한 쪽씩 바닥에 붙이면서 천천히 눕는다.

(3) 양 팔을 머리 위로 펴고 복식호흡으로 10~20초 정지한다.

(2) (1)로 몸을 바로 하고 다리를 아래로 뻗어 릴렉스 한다.

(1)~(3) 1세트로 2~3회 정도 한다.

 

 

1. 무릎을 벌리면 앉기 쉽게 된다.

2. 힘을 들이지 않고 한쪽 팔꿈치씩 천천히 한다.

3. 허리에 자극이 강한 자세이므로 무리하지 않도록 한다.

 

7. 등을 마사지해서 내장을 편안하게

보통 사용하지 않는 등 근육을 신장시키면 내장의 부담이나 긴장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고양이가 등을 스트레치 하는 이미지를 머리에 떠올리면서 2~3회 반복하면 내장을 편안하게 해서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을 준다.

 

1) 양 손을 어깨 폭으로, 양 다리를 허리 폭으로 벌려 네 발로 짚고 있는 자세를 한다. 가슴과 갈비뼈를 바닥에 가깝게 한 후 양 손을 앞으로 뻗는다.

(2) 양 손을 바닥에 댄 채로 앞으로 밀어 엉덩이를 발뒤꿈치로부터 뜨게 한다. 엉덩이와 팔꿈치가 90도 각도로 되면 10~20초간 자연스럽게 호흡을 하고 그 상태를 유지한다. 호흡을 들이쉬면서 처음 자세로 되돌아 간다.

(1)~(2)를 한 세트로 2~3회 반복한다.

 


1. 천천히 호흡을 내쉬면서 한다.

2. 옆구리,가슴,명치와 복근이 기분 좋게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


8. 수면을 깊게 하는 호흡법

지친 하루를 보내고 나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진정시키는 호흡을 하면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고 몸을 정돈하여 편안한 잠을 유도하도록 한다. 가부좌 자세에서 복식호흡을 하거나 등과 배의 근육을 스트레치 하면서 내장도 편안하게 하고 호흡도 가다듬어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한다.

 

1) 양 손을 어깨 폭으로, 양 발을 허리쪽으로 벌려 엎드린다.

2) 숨을 토하고 나서 배를 끌어 올리고 등을 위로 올린다.

3) 숨을 들이마시면서 배를 내리고 등을 내린다. (2) (3) 3회 정도 반복하면서 숨을 토하고 릴렉스 한다.

(1)~(3) 1세트로 해서 2~3세트 정도 반복한다.

 


1. 천천히 숨을 쉬면서 한다.

2. 팔꿈치는 쭉 펴고 몸이 앞뒤로 움직이지 않게 주의한다.

3. 천천히 숨을 쉬면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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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그림들은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는 공개 이미지들을 모은것입니다
더 좋은 이미지들도 많지만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만한 그림들은 모두 삭제하였습니다
그래도 완벽하게 삭제는 못했을겁니다..혹시 라도 다른분의 저작권을 침해 했다면 죄송합니다
저작권에 문제가 있는 그림을 알려주시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이곳 자료의 저작권은 solomoon.com 에 없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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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 어록>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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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  삶의 지혜


이상주의란, 장미 향기를 맡고서 그 향기에 취하여
장미꽃으로 양배추 스프보다 맛있는 스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것과 과격한 경계하는 말이다.
인생 에는 중용의 도가 중요하며 그것이 양식이면 안전이다.
무의미한 모허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현실 세계나 생활은 여러 가지 요소로 성립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의 요소에 치우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장미를 먹고자 하는 이상주의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사는 것이다.

젊은 사람 가운데서 이상주의자가 많고 늙은 사람들 중에서
보수주의자가 많은 것은 경험의 양에 비례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태인들이 <탈무드>나 유태의 고전들을 곰팡이 난 고서 정도로 취급하지 않고
지금 씌어진 책처럼 신선한 맛으로 읽는 것은
오랜 역사의 겨험에서 얻어진 교훈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유태 민족이 안식일을 지켜온 것이라기보다는
안식일이 유태인을 지켜온 것이다. 
유태인은 옛부터 너무 완고하다 싶게 제사나 자기들의 습관을 지켜왔다.
그러나 유태인이 여러 곳에 흩어져서 이민족들 사이에 살아오면서
유태인다움을 상실하지 않았던 것은, 유태교의 규칙을 굳게 지켜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습관이 없었고, 머리속으로만 유태인임을 생각해 왔다면
그들은 벌써 유태인다운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유태인답게 죽는 것은 대단한 것이 못된다.
하지만 유태인으로 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설사 온 세상의 바다가 잉크로 가득 차 있고,
온 세상의 갈대가 붓이며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있다 하더라도
1년간에 유태인이 받은 박해를 다 기록할 수는 없다.'

* 유태인을 올리브나무에 비유한다.
왜냐하면 올리브 열매는 누를수록 기름이 많이 나오는 것처럼
유태인은 박해 당할수록 큰 것을 이루어내기 때문이다.

* 유태인을 박해하는 나라는 오랫동안 번영하지 못한다.

* 세상이 잘 안돌아갈 때 유태인은 제일 먼저 그것을 느낀다.
세상이 잘 돌아갈 때에는 맨마지막으로 그것을 느낀다.

* 흔히 유태인은 비둘기에 비유된다.
다른 새들은 지치면 나뭇가지에 앉아서 쉬지만,
비둘기는 한쪽 날개로 날고, 한쪽 날개에 의지하며 쉰다.

* 한왕국이 흥했다가 망하면 또 새로운 왕국이 흥했다가 망하세 된다.
그러나 유태인은 역사 속에서 결코 망하는 일이 없다.

오래 앉아 있으면 치질에 걸리고,
오래 서 있으면 심장에 나쁘다.
또 너무 걸으면 눈에 나쁘다.
그러므로 이 세가지를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너무 걸으면 눈이 나쁘다'는 말이
동양인들에게는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겠다.
원래 이스라엘은 사막의 나라여서
너무 오래 걸으면 모래가 눈에 들어가 버린다.
유태인의 처세술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이든 알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도 이 책을 쓰면서 느낀 것인데,
이 점이 바로 이 책의 정수인 것이다.

유태인의 저력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자주 이와 같은 질문을 접하게 된다.
이에 대한 답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모든 것에 균형잡힌 생활을 하는 것이
힘의 원천이라는 것도 하나의 타당한 답이다.
이것은 하나의 비결이고 양식이다.

매일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매일을 당신의 첫번째 날이라고 생각하라. 
<탈무드>에 나오 는 말로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준다.
대개의 인간은 60년, 70년, 80년, 100년을 산다.
그러나 100년을 산다하더라도 한꺼번에 100번을 사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나아가서 시간시간, 1분1분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하루가 인생의 전부이며,
나아가서는 1분 1처가 전인생인 것이다.
인간이 오늘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가장 충실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최초의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활기차고 희망찬 하루를 보낼 것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것은 지금 한순간이다.
단지 한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0에서 1까지의 거리가 1에서 100까지의 거리보다 길다. 
사람들 중에는 1000을 구하려 한 나머지 1을 대수롭게 여거
0 밖에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번에 많은 재물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 1을 만드는 데에는 인내력이 필요하다.
0에서 1을 만들고 이를 소중히 여긴다면,
1000을 만들기도 생각보다 쉬울 것이다.

성공한 상인들을 보면, 모두 0에서 1을 만드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1000, 1만, 10만, 100만을 만들 수가 있다.

절약, 절약, 절약....



단번에 바다를 만들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선 냇물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한번에 바다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신뿐이 다.
인간이 바다를 만들고 싶으면 우선 작은 냇물부터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단번에 바다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냇물은 지류를 가지면 많은 지류가 큰 내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

작은 내라 업신여기고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바다를 만들 수 없는 법이다.
이것은 인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摸茸蹈?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검약이라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세상에는 운좋게 행운을 타고 단번에 바다를 만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그런 행운을 바라는 것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마치 자동차에 치이거나 항공기 사고를 당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여 두려워한 나머지 목을 매고 자살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자동차 사고나 항공기 사고 쪽이
일확천금하기보다는 훨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꽃양배추에 사는 벌레는 꽃양배추를 자기 세상으로 생각한다. 
이 세상은 무한히 넓다.
제아무리 제트기로 뉴욕까지 열 시간만에 갈 수 있다 하여도,
세게는 역시 크고 넓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칫 자신이 속한 작은 세계가 전세계인줄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일을 자기 세계의 습관이나 관점으로 판단한다.
사람은 어떤 마을이나 나라와 같은 제한된 지역에만 갇혀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성장이나 회사, 직업, 계급 같은 것에도 갇혀있게 된다.
꽃양배추는 각처에 있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그러한 것에 갇혀 지냄으로써 자유를 잃게 된다.

유태인은 세계로 흩어져서 방랑했기 때문에 한 세계의 포로가 되는 일은 적었다.
그러나 이러한 격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태인의 세게에도 꽃양배 추가 적지 않게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꽃양배추 속에 안주하는 것도 인생이다.
떨치고 일어서는 데에는 무한한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이 노인이라면 예상 밖으로 안주하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른다.


휴일이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지, 사람이 휴일에 주어진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말에는 세게는 더욱 풍족해지고 휴가도 늘어 날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쉬기 위하여 일한다는 생각이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노동이나 일은 자기 자신을 잃게 하는 것이므로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쉬고 즐겨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널리 번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 열심히 놀기는 하지만,
그 쉬는 방법이나 즐기는 방법을 보면 자기를 되찾고 재창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모하고 상실하려고 쉬는 것같이 보인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일이건 놀이건 인간은 무엇을 하느냐(What I do)
보다는 어떤 인간(what I am)이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일에 떠밀려 가듯 여가에도 떠밀려 가고 있다.
인간은 일이라는 괴수에게 던져진 먹이가 아니듯이
휴일이라는 괴수에게 먹이도 아니다.

휴일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계발하기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
우리가 한번쯤 휴일로부터 해방된 휴일도 생각해 봄직하다.


휴일이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지, 사람이 휴일에 주어진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말에는 세게는 더욱 풍족해지고 휴가도 늘어 날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쉬기 위하여 일한다는 생각이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노동이나 일은 자기 자신을 잃게 하는 것이므로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쉬고 즐겨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널리 번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 열심히 놀기는 하지만,
그 쉬는 방법이나 즐기는 방법을 보면 자기를 되찾고 재창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모하고 상실하려고 쉬는 것같이 보인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일이건 놀이건 인간은 무엇을 하느냐(What I do)
보다는 어떤 인간(what I am)이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일에 떠밀려 가듯 여가에도 떠밀려 가고 있다.
인간은 일이라는 괴수에게 던져진 먹이가 아니듯이
휴일이라는 괴수에게 먹이도 아니다.

휴일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계발하기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
우리가 한번쯤 휴일로부터 해방된 휴일도 생각해 봄직하다.



길을 열 번 물어보는 것이 한 번 길을 헤매는 것보다 낫다. 
이 속담은 인생의 기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흔히 유태인을 '율법의 민족'이라고 하는데,
그 율법이란 것은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는 인생의 기본적인 법칙이다.
그러나 인간은 의외로 기본을 가법게 여기기 일쑤이다.

걷는 법, 먹는 법, 앉는 법, 달리는 법으로부터 사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하는 것은 예로부터 별다른 변함이 없다.

대개 한 번 일어났던 일과 같은 일은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는 것이며,
기나긴 인류의 역사속에서 같은 일들이 형태를 바꾸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옛부터 내려오는 값진 교훈을 지킨다는 것은
수천 년에 걸친 인간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므로,
그러한 가르침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정확한 시장 조사 회사나 여론 조사 기관이라 할 지라도
과거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그 옛사람들과 만나서 통계를 낼 수는 없다.
유태의 율법이나 가르침도 그러한 것이다.
수천만 달러의 조사 비용을 들인다하더라도 결코 해낼 수 없는 것이 그것들이다.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이야기가
<탈무드>에 있다. 어떤 마을에 머리가 영리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닭이 알을 부화시킨다면,
그와 똑같은 온도를 만들어 주면 얼마든지 병아리를 부화시켜서
많은 돈을 벌 수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드디어 연구를 끝내고 장치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달걀을 사서 장치에 넣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자칫 부주의로 인해서 달걀 상자를 떨어뜨렸다.
그는 달걀을 떨어뜨리면 안된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잠깐 잊었던 것이다.

'소가 아무리 젖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다 짜낸 후에 젖이 든 통을 차버리면 아무 소용도 없다.'
높은 지혜와 깊은 생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도 항상 기본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책의 앞면과 뒷면같은 것이다. 
유태 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내려
주 위에 2대째나 3대째로 보기에 역겨운 자가 있거든
한 번 써 먹어 보아라.

옛날에 가문이 매우 좋은 여우와
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우가 길을 가다가 서로 마주쳤다.
여기서 가문이 좋은 여우와 나쁜 여우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서는 안된다.
진짜로 혈통이 좋은 인간이나 그렇지 않은 인간도 없을 테니까.

어찌되었건 가문이 좋은 여우가
그렇지 않은 다른 여우에게 자기의 집안을 자랑하였다.
그러자 그 천한 집안의 여우가 말하였다.

[너의 집안은 너로 끝나겠지만 우리 집안은 나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태어남과 죽음은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닌 것이 못된다.
마치 장식과 같은 것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 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가이다.
사는 방법의 내용이 중요하다.



정보에 대한 감성이 비즈니스를 좌우한다

1.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서라
2. 정보에 대한 감성이 비즈니스를 좌우한다
3. 최후의 경제 수단까지 빼앗지 말라
4. 위험이 클수록 이익도 증가한다
5. 철회는 하더라도 취소는 하지 말라
6. 고객을 끝까지 안전하게 보호하라
7. 상품을 확인한 후 장사를 시작하라
8. '나'보다는 '우리'를 소중히 생각하라

시간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9. 신속하게 소유권을 확보하라
10. 장사에 너무 빠지면 현명해지지 못한다
11. 자신의 힘으로 생활하라
12. 시간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13. 국제화는 행동으로 성취하라
14. 사람은 과오를 범하는 존재다
15. 위기에 미연에 방지하라
16. 지위가 높을수록 과실에 대한 책임은 무겁다

상대의 선의를 역으로 이용하지 말라

17. 원인을 제공했다면 반드시 책임을 져라
18. 처음부터 지침을 명확히 하라
19. 예견할 수 있는 위험은 책임져라
20.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책임 소재를 파악하라
21. 현인을 먼저 구출하라
22. 이익의 절반을 얻고 싶거든 직접 사업을 하라
23. 상대의 선의를 역으로 이용하지 말라
24. 변화를 포착하라

일관된 사람만이 성공한다

25. 빌려주는 것도 좋은 사업이다
26. 일관된 사람만이 성공한다
27.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는 쉬어라
28. 계약할 때는 해약도 생각하라
29. 적어도 세 방향에서 관찰하라
30. 스스로의 노력만이 소유권을 보장한다
31. 네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32. 만장일치가 더 위험하다

어설픈 프로보다 진취적인 아마추어가 낫다

33. 한 번의 거래라도 최선을 다하라
34. 비용 절약이 이익을 내는 지름길이다
35. 노하우가 알려지는 것을 도려워하지 말라
36. 소비자의 상품 지식이 시장을 발전시킨다
37. 권한을 부여했다면 책임도 함께 져라
38. 위기가 없을 때 미리 대책을 세워라
39. 어설픈 프로보다 진취적인 아마추어가 낫다
40. 컨설턴트에게 묻지 말고 고객에게 물으라
41. '답'을 가르치지 말고 '질문'하게 하라

최악을 대비한 후 최선을 기대하라

42. 젊은 사람부터 발언하게 하라
43. 물건을 빌릴 때는 용도를 분명히 밝혀라
44. 저비용·저위험을 지향하라
45. 여유 있을 때 배우겠다고 변명하지 말라
46. 비전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다
47.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인생을 지배한다
48. 비즈니스의 최종 목적은 고객 만족이다
49. 지혜를 활용해 부를 쌓으라
50. 최악을 대비한 후 최선을 기대하라

지혜로운 사람은 앞에서는 말을 아껴라

51. 배워서 깨달았다면 즉각 실천에 옮겨라
52.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가 고급 정보다
53. 충분히 이해될 때까지 의문을 제기하라
54. 지혜로운 사람 앞에서는 말을 아껴라
55. 기계를 과신하지 말라
56.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57.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다.
58. 재무와 상법을 배워라
59. 모든 발전의 원천은 혁신이다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축복도 먼저 받는다

60. 편견을 버리면 친구를 얻는다
61.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축복도 먼저 받는다
62. 물건을 사지 않겠다면 가격을 묻지 말라
63. 창조적인 지혜는 무(無)에서 나온다
64. 기적이나 이변을 기대하지 말라
65.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라
66.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67. 질책은 엄하게, 칭찬은 흡족하게 하라
68. 번뜩이는 직감이 발명을 낳는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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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별 호칭

정보의바다 2008. 3. 28. 11:20
나이별 호칭

♠ 해제(孩提) : (2~3세) 어린 아이(兒提)

♠ 지학(志學) (15세) : 15세가 되어야 학문에 뜻을 둔다는 뜻

♠ 약관(弱冠) (20세) : 남자는 스무살에 관례(冠禮)를 치루어 성인이 된다는 뜻

♠ 이립(而立) (30세) : 서른살쯤에 가정과 사회에 모든 기반을 닦는다는 뜻

♠ 불혹(不惑) (40세) : 공자가 40세가 되어서야 세상일에 미혹함이 없었다고 한데서 나온 말

♠ 지천명(知天命) (50세) : 쉰살에 드디어 천명을 알게 된다는 뜻

♠ 이순, 육순(耳順, 六旬) 60세) : 이순은 논어에서 나온 말로 나이 예순에는
생각하는 모든 것이 원만하여 무슨 일이든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는 뜻이다.
60세 때의 생신인 육순(六旬)이란 열(旬)이 여섯(六)이란 말이고,
육십갑자(干支六甲)를 모두 누리는 마지막 나이

♠ 환갑, 회갑(還甲, 回甲) (61세) : 61세 때의 생신으로 60갑자를 다 지내고 다시
낳은 해의 간지가 돌아왔다는 의미

♠ 진갑(陳/進甲) 62세) : 62세 때의 생신으로 다시 60갑자가 펼쳐져 진행한다는 의미

♠ 미수(美壽) : (66세) : 66세 때의 생신이다. 현대 직장의 거개가 만 65세를 정년으로
하기 때문에 66세는 모든 사회활동이 성취되어 은퇴하는 나이이면서도 아직은 여력이
있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나이이므로 `美壽'라 하고, `美'자는 六十六을 뒤집어 쓰고
바로 쓴 자이어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

♠ 고희/칠순/ 종심(古稀/七旬/從心)(70세) : 70세 때의 생신이다.
두보(杜甫)의 곡강(曲江) 시에 「술빚은 보통 가는 곳마다 있으니 결국 인생은
기껏 살아 본들 70세는 옛날로부터 드물다.(酒債尋常行處有하니 人生七十古來稀라.) 란 승구 중 고(古)자와 희(稀) 자만을 써서 고희(古稀)란 단어를 만들어 70세로 대신 쓴 것이다. 또한 뜻대로 행하 여도 도(道)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데서 종심이라 하였다.

♠ 희수(喜壽) (77세) : 77세 때의 생신이다. 오래 살아 기쁘다는 뜻.
희(喜)자를 약자로 쓰면 七十七이 되는 데서 유래

♠ 팔순/산수(八旬/傘壽) (80세) : 80세 때의 생신이다. 산(傘)자의 약자가 팔(八)을 위에 쓰고 십(十)을 밑에 쓰는 것에서 유래

♠ 미수(米壽) (88세) : 88세 때의 생신이다. 미(米)자를 풀면 팔십팔(八十八)이 되는 것에서 유래

♠ 졸수(卒壽) (90세) : 90세 때의 생신이다. 졸(卒)의 속자(俗字)가
아홉구(九)자 밑에 열십(十)자를 사용하는데서 유래

♠ 백수(白壽) (99세) : 99세 때의 생신이다.
백(百, 100)에서 일(一)을 빼면(99세) 즉, 백자(白字)가 됨 

♠ 천수(天壽) : 병없이 늙어서 죽음을 맞이하면 하늘이 내려 준 나이를 다 살았다는 뜻으로 천수라 한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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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시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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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생태기행
그린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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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약재 되살리기 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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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산물을 애용합시다
막사발 정인수 님 홈페이지
15기 엄익복 님 홈페이지
종산가족의 고향가꾸기

하늘마음농장의 귀농일기
금성포도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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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자가 환불해 주지 않는다면?
소비자 보호원의 피해 구제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보호원 상담팀(02-3460-3000)에 사례를 접수하면 30일 내에 사실 조사와 합의 권고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분쟁 조정 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할 수 있다. 분쟁 조정 위원회 또한 30일 동안 조정을 진행한다. 이때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법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Check! 몰라서 못 받는 환불 상식
● 상품권은 유효 기간이 지났더라도 상법상 소멸 기간인 5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환불을 받을 수 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상품권 권면 금액의 90%에 해당하는 상품이나 현금을 받을 수 있다.

● 사은품 선물은 계약 철회 시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단, 계약서에 사은품의 가격이나 품목이 명시되어 있는 경우에는 상품과 함께 돌려줘야 한다.
소비자에게 불리한 특약은 무효 처리된다. ‘계약 해지 불가’, ‘교환·환불 불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소비자에게 불리한 정도는 표준 약관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 하자 있는 상품은 환불 기간 이후에도 환불이 가능하다. 이 부분은 환불 기간의 예외 조항으로 명시되어 있다.
● 방문 판매는 환불의 룰이 다르다. 소비자가 단순 변심으로 계약을 철회하더라도 반품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다. 계약 철회 기간 또한 14일로 길다.
● 택배 물건이 실종되면 운송장에 쓴 물품 수량, 가격, 종류만큼 환불 받을 수 있다. 내용을 기재하지 않으면 각 운송 업체의 손해 배상 한도액 내에서 임의로 환불 받게 된다.
● 피치 못할 사정인 경우 소비자의 과실이어도 환불이 가능하다. 당사자나 직계 존비속이 사망·입원한 경우에는 취소 수수료 없이 여행 상품의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초고속 인터넷을 장기간 계약했더라도 이사나 전근으로 인한 계약 해지의 경우에는 취소 수수료를 물지 않는다.

환불의 지름길, 모두 다르다
고객 센터를 이용한다 → 백화점과 쇼핑몰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의 고객 센터는 매장 전체의 고객 불만을 총괄하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백화점, 쇼핑몰의 전체 이미지를 관리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입점한 매장과 소비자의 다툼을 중재할 때 소비자의 손을 들어 주는 경우가 많다. 일단 매장에서 환불을 받지 못하면 고객 센터로 연락한다.

빨리, 유연하게 흥정한다 → 보세 상점

보세 상점의 특징은 무조건 ‘환불 NO’를 외친다는 것이다. 매장의 특성상 상품 회전이 빨라야 하기 때문에 구매 후 시간이 흐른 상품은 환불을 해주지 않으려고 한다. 구매 전에 매장에 적혀 있는 환불 규정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구매 후에 문제가 생기면 되도록 빨리 환불을 요구한다. 다른 물건을 살 수 있는 교환권을 대신 받겠다든지 다른 물건을 사고 차액을 돌려받겠다는 등의 유연한 제안을 차선책으로 내놓으면 협상이 수월해진다.

본사에 연락한다 → 브랜드 대리점

브랜드의 본사 또한 단기 수익에 목매는 대리점보다 소비자의 편의를 봐주게 된다. 본사의 홍보 담당자에게 브랜드 대리점과의 마찰에 대해 설명하면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직접 보상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상위의 책임자와 얘기한다 → 레스토랑, 헬스장, 보험 등

서비스업과 관련된 환불에서는 상위의 책임자와 대화할수록 성공률이 높아진다. 서비스 일선에 있는 일반 사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실적이 줄어들거나 실수가 드러나는 것이 겁나서라도 일단 환불이 힘들다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책임자와 직접 협상을 하면 환불 결정 이후의 일 처리도 일사천리다. 레스토랑에서는 ‘매니저를 불러 주세요’라는 말 한마디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환불이 쉬워지는 5가지 방법
구입 전에 환불에 대한 여지를 남긴다 |
선물이어서, 혹은 입어 보고 살 수 없는 옷이어서 환불할 가능성이 있는 제품은 구매 전에 환불이 가능한지 물어 본다. 구두로라도 약속을 받아 놓으면 추후에 환불 받기가 쉽다.

물품을 판매한 점원 앞에서 환불을 거론한다 |
물건 살 때의 정황을 기억하는 점원 앞에서 환불 얘기를 꺼내면 딴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점원에게 물건을 둘러보며 나눴던 대화를 환기시키며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죠?’라고 사실 관계를 확인한다. 이때 판매 매니저가 옆에 있으면 더욱 좋다.

거래 내용을 증명으로 보관한다 |
영수증이 없다면 물품의 라벨이라도 보관한다. 백화점처럼 판매 관리가 잘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구매한 날짜와 시간대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물품 구입을 증명할 수 있다.

현금보다 신용 카드 거래를 한다 |

상품 구매와 지불 사이에 생기는 시차를 이용한다. 환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신용 카드 회사에 연락하여 지불 거부를 행사할 수 있다. 판매자에게 실질적인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방법이다.

환불을 위해 다른 방편을 쓸 의향이 있음을 거론한다. |
무조건 환불을 해주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업자들에게는 소비자 보호원에 상담을 요청할 의향이 있다고 말해 보자. ‘이쯤이면 물러서겠지’라는 예상이 빗나가면 사업자들도 환불을 재고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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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리나라의 시대별 전쟁


기원전 300년
고조선이 연나라의 진개(秦開)의 공격으로 서쪽 2천여 리의 땅을 상실하고 만번한(滿藩汗)을 경계로 함(진개의 고조선 침공)
*출전 : <<위략>>

기원전 109년
한나라 군대 5만여명이 조선을 공격하여 왕검성(王儉城)에서 패배함
*출전 : <<사기>>, <조선열전>

기원전 108년
한나라 군대에 왕검성(王儉城)이 함락되어 조선이 멸망함(고조선 멸망)
*출전 : <<사기>>, <조선열전>

기원전 16년
백제의 북부 국경을 침범한 말갈(靺鞨)을 온조왕(溫祚王)이 공격하여 격퇴시킴.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3년 9월

기원전 11년
말갈(靺鞨)의 군대 3천 명이 백제 위례성(慰禮城)을 포위하였으나 실패함.

철수하는 말갈 군대를 대부현(大斧峴)에서 격파함.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8년 2월

기원전 9년
고구려 유리왕(琉璃王)이 선비(鮮卑)를 쳐서 항복을 받고 복속시킴.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명왕 11년 4월

기원전 6년
부여왕 대소(帶素)가 군사 5만명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범하였으나 실패하고 철수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명왕 14년 11월

기원전 2년
낙랑이 백제를 침공하여 위례성(慰禮城)을 불태움.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7년 봄.

4년 7월
낙랑의 군대가 신라를 침입하여 금성(金城)을 포위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남해 원년 7월

14년 8월
고구려가 양맥(梁貊)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이어서 한나라의 고구려현(高句麗縣)을 공격하여 탈취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명왕 33년 8월

14년
왜(倭)의 병선 1백여 척이 신라의 해안을 공격함. 낙랑이 이를 틈타 신라의 금성(金城)을 습격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남해 11년

22년 2월
고구려가 부여를 공격하여 국왕 대소(帶素)를 죽임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5년 2월

26년 10월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이 개마국(蓋馬國)을 정벌하여 그 지역에 군현(郡縣)을 설치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9년 10월

28년 7월
한나라의 요동(遼東) 태수(遼東太守)가 고구려를 공격하여 위나암성(尉那巖城)을 포위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1년 7월

34년 9월
말갈이 마수성(馬首城)을 침공하여 함락시키고 10월에 병산책(甁山柵)을 습격함.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다루왕 7년 9월

36년 8월
낙랑의 군대가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타산성(朶山城)을 함락시킴.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 13년 8월

49년
봄에 고구려가 한나라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 등을 공격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모본왕 2년

77년 8월
신라의 아찬(阿湌) 길문(吉門)이 황산진(黃山津)에서 가야군을 격파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 21년 8월

102년 8월
신라가 음즙벌국(音汁伐國), 실직국(悉直國), 압독국(押督國)을 공격하여 병합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 23년 8월

108년 5월
신라가 비지국(比只國), 다벌국(多伐國), 초팔국(草八國)을 정벌하여 병합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 29년 5월

111년
부여왕 시(始)가 기병과 보병 7-8천 명을 거느리고 낙랑(樂浪)을 공격함
*출전 : <<후한서>>, <동이열전> 부여

115년 2월
가야가 신라의 남쪽 변경을 침략하자,

7월 신라왕이 가야를 공격하다가 황산하(黃山河)에서 가야의 복병에게 패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마 4년 2월

116년 8월
신라가 가야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마 5년 8월

121년 4월
고구려가 선비(鮮卑)의 군대와 함께 요대현(遼隊縣)을 공격하고,

요동(遼東)태수 채풍(蔡諷)을 신창(新昌)에서 살해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왕 69년 4월

121년 12월
고구려 태조왕이 마한(馬韓)과 예맥(濊貊)의 기병 1만여 명을 거느리고 현토성(玄菟城)을 공격하자

부여가 한나라가 합세하여 크게 패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왕 69년 12월

125년 7월
신라가 말갈의 침입을 받아 백제에 구원을 청하자 백제 기루왕(己樓王)이 장군 5명을 보내 구원함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루왕 49년 7월

146년 8월
고구려 태조왕이 한나라 요동(遼東)군 서안평현(西安平縣)을 습격하여 대방령(帶方令)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잡아옴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왕 94년 8월

167년 7월
백제가 신라의 서쪽 두 성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주민 1천여 명을 사로잡음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아달라 14년 7월

185년 2월
신라의 파진찬 구도(仇道)와 일길찬 구수혜(仇須兮)가 좌우의 군주(軍主)가 되어

소문국(召文國)을 정벌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벌휴 2년 2월

212년
보라국(保羅國)과 고자국(古自國), 사물국(史勿國) 등 여덟 나라가 힘을 합하여

신라의 변경을 침입하자 태자 날음(捺音) 등이 격퇴함
*출전 : <<삼국유사>>권5, <피은>

214년 7월
백제가 신라의 요거성(腰車城)을 공격하여 성주 설부(薛夫)를 죽임.

이에 신라의 이벌찬 이음(利音)이 정병 6천명을 거느리고 백제의 사현성(沙峴城)을 격파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내해 19년 7월

216년 8월
말갈이 적현성(赤峴城)을 포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퇴각함.

퇴각하는 말갈을 사도성(沙道城) 밖에서 격파함.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구수왕 3년 8월

231년 7월
이찬 우로(于老)를 대장군으로 삼아 감문국(甘文國)을 정벌하고 군현을 설치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조분 2년 7월

242년
고구려가 요동(遼東)의 서안평(西安平)을 공격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 16년

246년 8월
위나라의 관구검(毌丘儉)이 고구려를 침입하여 10월에 환도성(丸都城)이 점령됨(관구검의 고구려 침공)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 20년 8월

285년
선비의 모용외(慕容廆)가 부여를 공격하여 국왕 의려(依慮)가 자결하고

그 자제들은 옥저(沃沮)로 달아남
*출전 : <<진서>>, <동이열전> 부여

296년 5월
선비의 모용외(慕容廆)가 고구려를 공격하여 고국원(故國原)에 진출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봉상왕 5년 8월

302년 9월
고구려 미천왕(美川王)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현토군(玄菟郡)을 공격하여 8천명을 사로잡음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미천왕 3년 9월

311년 8월
고구려가 요동(遼東)의 서안평(西安平)을 습격하여 빼앗음.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미천왕 12년 8월

313년 10월
고구려가 낙랑군(樂浪郡)을 침공하여 남녀 2천여 명을 사로잡음(고구려의 낙랑, 대방군 축출)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미천왕 14년 10월

314년 9월
고구려가 대방군(帶方郡)을 침공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미천왕 15년 9월

320년 12월
고구려가 군사를 보내어 요동(遼東)을 침공하였으나 모용인(慕容仁)이 대항하였으므로 패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미천왕 21년 12월

339년 9월
연나라 국왕 모용황(慕容皝)이 고구려를 침입하여 신성(新城)에 도달함. 화의가 성립되어 철수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국원왕 9년 8월

342년 11월
연나라 군대 4만 명이 고구려를 침입하여 환도성(丸都城)이 함락됨(연나라의 고구려 침입)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국원왕 12년 11월

345년 10월
연나라의 모용각(慕容恪)이 고구려의 남소(南蘇)를 공격하여 함락시킴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국원왕 15년 10월

371년 10월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평양성(平壤城)을 공격하여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사함.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26년 10월

377년 10월
백제가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평양성(平壤城)을 공격함.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구수왕 3년 10월

385년 6월
고구려 고국양왕(故國壤王)이 후연(後燕)의 요동(遼東)과 현토(玄菟)를 함락시키고 남녀 1만 명을 사로잡음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국양왕 2년 6월

392년 7월
고구려 광개토왕(廣開土王)이 군사 4만을 거느리고 백제 북쪽 변경을 공격하여

석현성(石峴城) 등 19여 성을 함락시킴(광개토왕의 정복사업)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진사왕 8년 7월

394년 8월
광개토왕(廣開土王)이 패수(浿水)에서 백제군 8천여 명을 격파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 4년 8월

400년
광개토왕(廣開土王)이 군사 5만 명을 보내어 왜(倭)의 침입을 받은 신라를 구원함
*출전 : <<광개토대왕비>>

404년
대방(帶方) 지역을 침입한 왜의 군대를 고구려 군이 격파함.
*출전 : <<광개토대왕비>>

410년
고구려가 동부여(東扶餘)를 공격하여 64개 성을 점령함.
*출전 : <<광개토대왕비>>

468년 2월
고구려 장수왕이 말갈의 군사 1만을 동원하여 신라의 실직주성(悉直州城)을 점령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 56년 2월

475년 9월
장수왕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백제의 수도인 한성(漢城)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백제 개로왕(蓋鹵王)을 죽임(고구려의 한강 유역 점령)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 63년 9월

494년 7월
신라의 장군 실죽(實竹)이 고구려군과 살수(薩水)의 들판에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견아성(犬牙城)에서 포위됨. 백제군의 지원으로 포위를 품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소지왕 16년 7월

501년 11월
백제 달솔 우영(優永)이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수곡성(水谷城)을 습격함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령왕 원년 11월

507년 10월
고구려군이 말갈군과 함께 백제의 한성(漢城)을 공격하였으나 백제군의 반격으로 퇴각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명왕 16년 10월

512년 6월
신라가 이사부(異斯夫)를 보내어 우산국(于山國)을 정복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21년 5월

529년 10월
고구려 안장왕(安臧王)이 백제 북쪽 변경의 혈성(穴城)을 함락시킴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안장왕 11년 10월

551년 3월
신라 거칠부(居柒夫)가 고구려를 공격하여 10개 군을 함락시킴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12년 3월

551년 9월
돌궐(突厥)이 고구려의 신성(新城)을 포위하고 백암성(白巖城)을 침공하였으나 패배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양원왕 7년 9월

553년 7월
신라가 백제의 동북 변경을 점령하여 신주(新州)를 설치함.

이후 나제동맹 파기됨(신라의 한경유역 점령)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14년 7월

554년 7월
백제 성왕(聖王)이 신라의 관산성(管山城)을 공격하다가 전사함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성왕 32년 7월

562년 9월
신라의 이사부(異斯夫)가 대가야(大伽倻)를 정벌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23년 9월

598년 2월
고구려가 말갈병 1만 명으로 요서(遼西) 지방의 영주(營州)를 공격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 9년 2월

598년 6월
수나라 문제(文帝)가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함(수나라의 1차 고구려 침공)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 9년 6월

603년 8월
고구려의 장군 고승(高勝)이 신라의 북한산성(北漢山城)을 공격하였으나 신라군의 반격으로 실패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평왕 25년 8월

612년 1월
수나라의 양제(煬帝)가 113만 군사를 동원하여 고구려 침공을 개시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 23년 1월

612년 7월
수나라 우문술(宇文述)이 지휘하는 별동부대 30만 명이

평양성(平壤城)에서 철수하던 중 살수(薩水)에서 고구려 군의 반격으로 전멸함(살수대첩)
*출전 : <<삼국사기>>, <열전> 을지문덕

613년 4월
수나라 왕인공(王仁恭) 부대가 고구려의 신성(新城)을 포위 공격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 24년 4월

629년 8월
신라가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하여 점령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왕 년 월

631년 2월
고구려가 당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여

부여성(扶餘城)에서 비사성(比斯城)에 이르는 천리장성(千里長城) 축조에 착수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유왕 14년 2월

638년 10월
고구려가 신라의 칠중성(七重城)을 공격하였으나 11월에 알천(閼川)의 신라군에 패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여왕 7년 10월

642년 7월
백제의 의자왕(義慈王)이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침공하여 40여 성을 점령함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2년 7월

642년 8월
백제의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성주인 도독 품석(品釋)을 죽임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2년 8월

644년 7월
당나라 태종(太宗)이 영주도독 장검(張儉)을 보내어 유주(幽州),

영주(營州)의 군사와 거란, 해(奚), 말갈군을 거느리고 요동(遼東)을 공격하게 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3년 7월

645년 4월
당나라 대군이 요수(遼水)를 건너 고구려를 침입하여 신성(新城)을 포위하고 개모성(盖牟城)을 함락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4년 4월

645년 5월
당나라 군이 요동성(遼東城)을 공격하여 점령함.

고구려 군사 1만여 명과 주민 4만여 명이 포로가 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4년 5월

645년 8월
당나라 군이 안시성(安市城)을 60여일 간 포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철수함. (안시성전투)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4년 8월

647년 7월
당나라의 우진달(牛進達)이 거느린 수로군(水路軍)이 고구려의 석성(石城)을 공격하여 점령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6년 7월

647년 10월
백제군이 신라의 무산(茂山), 감물(甘勿), 동잠(桐岑)의 세 성을 공격하였으나

김유신(金庾信)의 반격으로 실패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덕여왕 원년 10월

648년 9월
장군 설만철(薛萬徹)이 이끈 당나라군이 압록강 어귀의 박작성(泊灼城)을 포위 공격하였으나 실패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7년 9월

655년 1월
고구려가 백제와 말갈의 군사와 연합하여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입하여 33개의 성을 빼앗음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대종무열왕 2년 1월

660년 7월
나당연합군이 황산(黃山)과 웅진(熊津)에서 백제군을 물리치고 사비성을 점령함.

18일 웅진성(熊津城)으로 피난한 의자왕이 항복함으로써 백제멸망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20년 6월

661년 1월
복신(福信), 도침(道琛), 흑치상지(黑齒常之) 등이 일본에 있던 왕자 부여풍(扶餘豊)을 맞이하여

주류성(周留城)을 거점으로 백제 부흥군을 일으킴
*출전 :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20년 6월

661년 2월
백제 부흥군이 사비성(泗沘城)을 공격함. 신라 무열왕이 이찬 품일(品日)을 보내어 구원하게 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8년 2월

661년 8월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패강(浿江)에서 고구려 군을 격파하고 평양성(平壤城)을 포위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방왕 20년 8월

663년 5월
나당연합군이 백제 부흥군의 주 근거지의 하나인 주류성(周留城)을 함락시킴(백제부흥운동)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3년 5월

664년 3월
백제 유민이 사비성(泗沘城)을 근거로 부흥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웅주도독(熊州都督)의 군사에 패배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4년 2월

667년 9월
이적(李勣)이 이끈 당나라 군이 고구려의 신성(新城)을 점령하고 이어서 16개 성을 점령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26년 9월

668년 2월
이적(李勣)이 이끈 당나라군이 고구려 부여성(扶餘城)을 함락하고 주변의 40여 성을 항복받음.

고구려군 5만 명이 부여성을 구원하고자 출동하였으나 당나라군에 패하고 물러남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27년 2월

668년 9월
나당연합군이 평양성(平壤城)을 포위하자 보장왕이 항복함. (고구려 멸망)
*출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27년 9월

670년 4월 4일
신라의 사찬 설오유(薛烏儒)와 고구려의 고연무(高延武)가 각각 1만명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당나라 말갈 군사를 격파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0년 4월

670년 7월
신라군이 당나라의 웅진도독부 관할하의 백제 지역을 공격하여 80여 성을 점령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0년 7월

673년 9월
신라군이 신라의 북쪽 경계를 침범한 당나라, 거란, 말갈군과 9차례 전투를 벌여 승리함.

그해 겨울에 당나라 군이 고구려 부흥군의 근거지인 우잠성(牛岑城) 등을 점령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3년 9월

675년 9월
당나라군이 아달성(阿達城), 칠중성(七重城), 석현성(石峴城)을 공격함.

신라군이 18회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6천여 명의 당나라군을 죽임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5년 9월

675년 9월 29일
신라군이 매초성(買肖城)에 주둔한 이근행(李謹行)의 20만 당나라군을 대파함(매초성전투)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5년 9월

676년 11월
사찬 시득(施得)이 거느린 신라 수군이 금강하구 기벌포(伎伐浦)에서

설인귀(薛仁貴)의 당나라군을 격파함(기벌포전투)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왕 년 월

696년
고구려 유민 대조영(大祚榮)이 천문령(天門嶺)에서

이해고(李楷固)의 당나라군을 격파함. (천문령 전투)
*출전 : <<신당서>>, <북적열전> 발해

731년 4월
일본의 병선 3백 척이 신라의 동쪽 변경을 침입하였으므로 이를 격파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성덕왕 30년 4월

732년
발해 무왕이 장문휴(張文休)가 이끈 수군을 보내어

당나라의 등주(登州)를 공격하여 자사 위준(韋俊)을 죽임(등주 공격)
*출전 : <<구당서>>, <북적열전> 발해말갈

733년 7월
당나라의 요청으로 발해 공격을 위해

김사란(金思蘭)이 이끈 신라군이 출동하였으나 눈이 많이 와서 철수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성덕왕 32년 7월

768년 7월
일길찬 대공(大恭)과 아찬 대렴(大廉)이 반란을 일으켜 33일간 왕궁을 포위하였으나 평정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혜공왕 4년 7월

822년 3월
웅천주 도독 김헌창(金憲昌)이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慶雲)이라 함 (김헌창의 난)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덕왕 14년 3월

828년 4월
장보고(張保皐)가 군사 1만명을 받고 완도 청해진(淸海鎭)의 대사로 임명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흥덕왕 3년 4월

838년 2월
김양(金陽)이 청해진 대사 장보고(張保皐)와 함께 김우징(金祐徵)을 받들어 반란을 일으킴(신무왕)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민애왕 원년 2월

839년 윤1월 19일
김양(金陽)이 이끈 군사가 달구벌(達丘伐)에서 김흔(金昕)이 이끈 관군을 격파하고,

도망한 국왕을 죽임
*출전 : <<삼국사기>>, <열전> 김양

889년
국내의 여러 주군에서 반란이 일어남.

원종(元宗)과 애노(哀奴)가 사벌주(沙伐州)에서 반란을 일으킴.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성여왕 3년

891년 10월
북원(北原)의 양길(梁吉)이 부하 궁예(弓裔)를 보내어 주변 10여 군현을 습격하게 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성여왕 5년 10월

892년
완산(完山)의 견훤(甄萱)이 반란을 일으켜 후백제를 세우니 무주(武州) 주변 군현들이 항복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성여왕 6년

895년
궁예(弓裔)가 저족(猪足), 성천(狌川), 부약(夫若), 금성(金城), 철원(鐵圓) 등 10여 군현을 격파하고

임금을 자칭함.
*출전 : <<삼국사기>>, <열전> 궁예

898년 7월
궁예(弓裔)가 패서도(浿西道)와 한산주(漢山州) 관내 30여 성을 빼앗고

송악군(松岳郡)에 도읍을 정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효공왕 2년 7월

899년
궁예(弓裔)가 왕건(王建)에게 명하여

광주(廣州), 충주(忠州), 당성(唐城), 청주(淸州), 괴양(槐壤) 등을 공격하여 평정하게 함.
*출전 : <<삼국사기>>, <열전> 궁예

904년 7월
궁예(弓裔)가 상주(尙州) 등 30여 주현을 공격하여 빼앗음.
*출전 : <<삼국사기>>, <열전> 궁예

907년
견훤(甄萱)이 신라의 일선군(一善郡) 이남 10여 성을 빼앗음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효공왕 11년

919년 1월
6위(六衛)를 설치함. (2군6위(二軍六衛))
*출전 : <<고려사>>, <병지1>, 병제

920년 10월
견훤(甄萱)이 대야성(大耶城)을 함락시키고 진례성(進禮城)으로 진격함.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명왕 4년 10월

925년 10월
태조와 견훤(甄萱)이 조물성(曹物城)에서 대전함.
*출전 : <<삼국사기>>, <열전> 견훤

927년 9월
견훤(甄萱)이 신라의 경주를 공격하여 경애왕(景哀王)을 죽임.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애왕 4년 10월

930년 1월
태조가 고창군(古昌郡) 병산(甁山)에서 견훤(甄萱)과 싸워 크게 승리하고

견훤(甄萱) 지배하의 30여 군현을 항복받음.
*출전 :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순왕 4년 1월

936년 9월
태조가 일리천(一善)에서 후백제 신검(神劍)의 군사를 격파하고 후삼국을 통일함(일리천 전투)
*출전 : <<삼국사기>>, <열전> 견훤
*연표>주제 : 전쟁연표>전투
945년 9월
왕규(王規)가 반란을 일으키자 서경(西京)의 대광(大匡) 왕식렴(王式廉)이 이를 진압함
*출전 : <<고려사절요>> 권2

993년 윤10월
제1차 거란 침입. 서희(徐熙)가 거란 장수 소손녕(蕭孫寧)과 담판하여 화약(和約) 체결.
*출전 : <<고려사>>, <세가3>

994년
서희(徐熙)가 여진족을 축출하고 장흥진(長興鎭), 흥화진(興化鎭), 곽주(郭州), 구주(龜州)에 축성함.
*출전 : <<고려사절요>> 권2

1010년 11월
거란 왕이 군사 40만을 이끌고 고려 침입. 제2차 거란 침입. 강조(康兆)가 패배하고 죽임을 당함.
*출전 : <<고려사>>, <세가>, 현종 원년 11월

1012년 5월
동여진이 청하현(淸河縣), 영일현(迎日縣), 장기현(長鬐縣)에 침입하여 강민첨(姜民瞻) 등이 격퇴함
*출전 : <<고려사>>, <세가>, 현종 3년 5월

1014년 10월
거란군이 통주(通州)와 흥화진(興化鎭)을 침입하여 장군 정신용(鄭神勇) 등이 격퇴함.
*출전 : <<고려사>>, <세가>, 현종 5년 10월

1018년 12월
거란의 소손녕(蕭遜寧)이 군사 10만으로 고려 침입. 제3차 거란 침입.

강감찬(姜邯贊)을 상원수로, 강민첨(姜民瞻)을 부원수로 임명하여 막게 함.
*출전 : <<고려사>>, <세가>, 현종 9년 12월

1019년 2월
강감찬(姜邯贊)이 거란군을 귀주(龜州)에서 대파함. (귀주대첩)
*출전 : <<고려사>>, <세가>, 현종 10년 2월

1033년 8월
북쪽 국경 일대에 천리장성(千里長城) 축조를 시작함
*출전 : <<고려사>>, <병지2>, 성지

1080년 12월
동번(東蕃)이 난을 일으켰으므로 보병과 기병 3만 명을 정주(定州)로 보내어 토벌함.
*출전 : <<고려사절요>>권5, 문종 34년 12월

1104년 12월
윤관(尹瓘)의 건의로

신기군(神騎軍), 신보군(神步軍), 항마군(降魔軍)으로 편성된 별무반(別武班)을 창설함.
*출전 : <<고려사>>, <병지1>, 병제

1107년 12월
윤관(尹瓘)이 지휘하는 17만 여진 정벌군이 135개 촌락을 격파하고 적병 3,740명을 참살함.
*출전 : <<고려사절요>>권7, 예종 2년 12월

1108년 3월
윤관(尹瓘)이 여진을 평정한 지역에 9개소의 성을 축성함
*출전 : <<고려사절요>>권7, 예종 3년 3월

1109년 7월
여진족의 간청으로 9성을 여진족에게 돌려줌
*출전 : <<고려사절요>>권7, 예종 4년 7월

1135년 1월 4일
묘청(妙淸) 등이 서경(西京)에서 반란을 일으킴.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로 정함 김부식(金富軾)을 원수로 삼아 토벌하게 함. (묘청의 난)
*출전 : <<고려사절요>> 권10, 인종 13년 1월

1149년 8월
군제를 개편하여 5군을 3군으로 고침.
*출전 : <<고려사>>, <병지1>, 병제

1174년 9월 25일
조위총(趙位寵)이 서경(西京)에서 반란을 일으켜 절령(岊嶺) 이북 40여 성이 호응함
*출전 : <<고려사절요>>권12, 명종 4년 9월

1216년 8월
수만 명의 거란 유민들이 고려에 침입하여 영주(寧州), 삭주(朔州) 등을 공격함.

김취려(金就礪) 등을 보내어 거란을 막게 함.
*출전 : <<고려사절요>>권14, 고종 3년 8월

1219년 1월
고려, 몽고, 동진 연합군이 강동성(江東城)을 함락시키고 농성 중인 거란 유민을 섬멸함. (강동성 전투)
*출전 : <<고려사절요>>권15, 고종 6년 1월

1231년 8월 10일
몽고 원수 살리타이(撒禮塔)이 고려에 침입하여 함신진(咸新鎭)을 공격함.

다음날 함신진의 고려군 항복. 몽고 1차 침입
*출전 : <<고려사>>, <세가>, 고종 18년 8월

1231년 9월 3일
몽고군이 귀주성(龜州城)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에 실패함.

이듬해 1월까지 수 차례 공격하였으나 실패함. (귀주성 전투)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민족전쟁통사2>>, 1993, 212-221쪽.

1232년 12월 16일
처인성(處仁城)에서 승장(僧將) 김윤후(金允候)가 지휘하는 고려군이 몽고군을 공격하여

몽고 원수 살리타이(撒禮塔)를 사살함.
*출전 : <<고려사>>권103, <열전>, 김윤후

1235년 윤7월
몽고 원수 탕꾸(唐古)가 지휘하는 몽고군이 고려를 침입함. 몽고 2차 침입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민족전쟁통사2>>, 1993, 248쪽.

1253년 7월
예꾸(也窟)이 지휘하는 몽고군이 고려 침입. 주민들을 산성과 섬으로 대피시킴.
*출전 : <<고려사>>권24, <세가> 고종 24년 7월

1253년 10월
방호별감(防護別監) 김윤후(金允候)가 지휘하는 고려군이

충주성(忠州城)을 공격한 몽고군을 12월 중순까지 70여일 동안 방어함.
*출전 : <<고려사>>권103, <열전> 김윤후

1259년 4월
고려 태자의 입조(入朝)를 조건으로 몽고와 강화 성립. 몽고군 철수
*출전 : <<고려사>>권24, <세가> 고종 46년 4월

1270년 6월 1일
장군 배중손(裵仲孫), 노영희(盧永禧) 등이 강화(江華)에서 삼별초(三別抄)를 이끌고 봉기함.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을 왕을 삼음. (삼별초의 항쟁)
*출전 : <<고려사절요>>권18, 원종 11년 6월



1270년 8월
삼별초(三別抄) 군이 진도(珍島)로 들어가 근거지로 삼음.
*출전 : <<고려사절요>>권18, 원종 11년 8월

1270년 11월
삼별초(三別抄) 군이 탐라(耽羅)를 공격하여 함락시킴.
*출전 : <<고려사절요>>권18, 원종 11년 11월

1271년 5월 15일
고려와 몽고 연합군이 삼별초(三別抄) 군의 근거지인 진도(珍島) 용장성(龍藏城)를 함락시킴.

배중손(裵仲孫), 노영희(盧永禧) 등 전사.
*출전 : <<고려사절요>>권18, 원종 12년 5월

1273년 4월
김방경(金方慶) 등이 이끄는 고려와 몽고 연합군이

삼별초(三別抄) 최후의 근거지인 탐라성(耽羅城)를 함락함. 대장 김통정(金通精) 자결
*출전 : <<고려사절요>>권19, 원종 14년 4월

1274년 10월
고려와 몽고 연합군 3만 여명이 일본 원정. 일기도(一岐島)에 상륙하였으나 폭풍으로 실패함.
*출전 : <<고려사절요>>권19, 원종 15년 10월

1281년 5월
김방경(金方慶), 흔도(忻都), 홍다구(洪茶丘) 등이 일본 정벌 출발
*출전 : <<고려사절요>>권19, 충렬왕 6년 5월

1281년 6월
고려, 몽고군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음
*출전 : <<고려사절요>>권19, 충렬왕 6년 6월

1290년 5월
원나라의 반란군인 합단(哈丹)의 군사가 해양(海陽)에 침입. (합단의 침입)
*출전 : <<고려사절요>>권21, 충렬왕 16년 5월

1354년 7월
원나라의 요청으로 한족(漢族) 부흥 세력인 장사성(張士誠) 토벌을 위해

유탁(柳濯) 등 장수 40명과 군사 2000여명을 파병함.
*출전 : <<고려사절요>>권26, 공민왕 3년 7월

1356년 7월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함락하여 함주(咸州) 이북의 영토를 99년만에 수복함.
*출전 : <<고려사절요>>권26, 공민왕 5년 7월

1359년 12월
홍두적(紅頭賊) 4만명이 고려를 침공하여 의주(義州), 서경(西京) 등을 점령함. (제1차 홍건적의 침입)
*출전 : <<고려사절요>>권27, 공민왕 8년 12월

1361년 10월
반성(潘誠), 사유(沙劉) 등이 지휘하는 홍두적(紅頭賊) 10만여 명이 고려를 침공. (제2차 홍건적의 침입)
*출전 : <<고려사절요>>권27, 공민왕 10년 10월

1361년 11월
홍두적(紅頭賊)이 절령(岊嶺)의 책문(柵門)에서 고려군을 격파하고 개경(開京)을 점령함.

국왕은 복주(福州)로 피난함(12월)
*출전 : <<고려사절요>>권27, 공민왕 10년 11월

1362년 1월 18일
정세운(鄭世雲)이 지휘하는 20만 고려군이 개경(開京)을 탈환함.

10만 명의 홍두적이 사살되고 잔존 군사들은 요동(遼東)으로 완전히 퇴각함.
*출전 : <<고려사절요>>권27, 공민왕 11년 01월

1364년 1월
여진족인 삼선(三善)과 삼개(三介) 등이 여진족을 이끌고 함주(咸州)를 점렴함.

이성계(李成桂)의 반격으로 격퇴
*출전 : <<고려사절요>>권28, 공민왕 13년 1월

1370년 11월
지용수(池龍壽), 이성계(李成桂) 등이 만주의 동녕부(東寧府)를 점령함. (동녕부 정벌)
*출전 : <<고려사절요>>권29, 공민왕 19년 11월

1374년 8월
최영(崔塋)이 제주(濟州)의 목호(牧胡)들이 일으킨 난을 평정함. (목호(牧胡)의 난)
*출전 : <<고려사절요>>권29, 공민왕 23년 8월

1376년 7월
최영(崔塋)이 홍산(鴻山)에서 왜구를 대파함. (홍산대첩)
*출전 : <<고려사절요>>권30, 신우 2년 7월

1380년 8월
나세(羅世), 최무선(崔茂宣) 등이 이끈 고려 수군이 진포(鎭浦)에서 화약 무기를 사용하여

왜구의 전선 500척을 격파함.
*출전 : <<고려사절요>>권31, 신우 6년 8월

1380년 9월
이성계(李成桂)가 이끈 고려군이 황산(荒山)에서 왜구를 대파함. (황산대첩)
*출전 : <<고려사절요>>권31, 신우 6년 9월

1383년 5월
남해현(南海縣)에 침입한 왜구 선단을 정지(鄭地)가 관음포(觀音浦)에서 화포 공격으로 격파함.

관음포 전투
*출전 : <<고려사절요>>권32, 신우 9년 5월

1383년 8월
여진족인 호발도(胡拔都)가 단주(端州)를 침입하자 이성계(李成桂)가 격퇴함.
*출전 : <<고려사절요>>권32, 신우 9년 8월

1388년 4월 18일
이성계(李成桂), 조민수(曹敏修)가 지휘하는 요동(遼東) 정벌군이 출정함. (요동정벌)
*출전 : <<고려사절요>>권33, 신우 14년 4월

1389년 2월
경상도원수(慶尙道元帥) 박위(朴葳)가 대마도(對馬島)에 있는 왜구 근거지를 정벌함.
*출전 : <<고려사>>권137, <세가> 공양왕 원년 2월

1396년 12월 3일
김사형(金士衡)을 오도병마도통처치사(五道兵馬都統處置使)로 삼아

일기도(一歧島)와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함
*출전 : <<조선왕조실록>>

1419년 6월 17일
삼군도체찰사(三軍都體察使) 이종무(李從茂)가 이끄는 병선 227척, 조선군 17,000여명이

대마도 정벌을 위해 거제도 출항. (대마도정벌)
*출전 : <<조선왕조실록>>

1433년 5월 7일
평안도 도절제사 최윤덕(崔潤德)이

평안도와 황해도 군사를 이끌고 파저강(婆猪江) 일대의 여진족 이만주(李滿住)를 토벌함.
*출전 : <<조선왕조실록>>

1460년 1월 28일
여진족 아비거(阿比車)가 1,500명을 이끌고 회령(會寧)에 침입하였다가

함길도 도절제사 양정(楊汀)의 반격으로 패주함.
*출전 : <<조선왕조실록>>

1467년 5월 16일
전 회령절제사 이시애(李施愛)가 길주(吉州)에서

절도사 강효문(康孝文) 등을 죽이고 난을 일으켜 함길도 전역으로 확산됨. (이시애의 난)
*출전 : <<조선왕조실록>>

1510년 4월
삼포(三浦)에 거주하던 왜인들이 난을 일으켜 부산포(釜山浦)와 제포(薺浦)를 점령함. (삼포왜란)
*출전 : <<중종실록>>권11, 중종 5년 4월 8일

1554년 4월 12일
고성(固城) 사량진(蛇梁鎭)에 왜구가 침입하여 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물러감. (사량진왜변)
*출전 : <<조선왕조실록>>

1555년 5월 11일
왜구 선단 60여 척이 달량성(達梁城)을 공격하여 함락함.

이후 영암(靈巖) 등을 공격함. (을묘왜변(乙卯倭變))
*출전 : <<조선왕조실록>>

1592년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일본군 제1군이 절영도(絶影島)에 상륙. 임진왜란 시작.
*출전 : 이이화, <<조선과 일본의 7년 전쟁>>, 한길사, 1999, 124쪽

1592년 4월 14일
일본군이 부산진성을 공격하여 첨사 정발(鄭撥)이 전사하고 방어군 천여 명 전사함.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33쪽

1592년 4월 15일
동래성이 함락되고 부사 송상현(宋象賢), 양산 군수 조영규(趙英珪) 등이 전사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35-38쪽

1592년 4월 25일
상주(尙州)에서 순변사 이일(李鎰)이 패배하여 충주(忠州)로 철수.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45-47쪽

1592년 4월 28일
충주(忠州) 탄금대에서 삼도순변사 신립(申砬)이 이끄는 부대가 패배하고

신립, 종사관 김여물(金汝岉)등 전사(탄금대전투)
*출전 : 이이화, <<조선과 일본의 7년 전쟁>>, 한길사, 1999, 137-141쪽

1592년 5월
부원수 신각(申恪)이 양주의 해유령(蟹踰嶺)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60여명의 목을 벰.
*출전 : <<장바록>>

1592년 5월 7일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 함대가 옥포(玉浦) 앞바다에서 일본 함선 26척을 격파하고,

이어서 합포(合浦)의 일본 함선 5척을 격파함.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121-122쪽

1592년 5월 8일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 함대가 적진포(赤珍浦)에 정박 중인 일본 함선 11척을 격파함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122-123쪽

1592년 5월 17일
임진강 방어선의 붕괴. 조방장 유극량(劉克亮) 전사.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60~63쪽

1592년 5월 25일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의 의병 부대가

정암진(鼎岩津)을 도하하는 안코쿠지 에케이(安國寺惠瓊) 휘하의 일본군을 공격하여

함안 방면으로 격퇴시킴.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98-99쪽

1592년 5월 29일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 함대가 사천(泗川) 앞바다에서 일본 함대 13척을 격파함.

새로 건조한 장갑선인 거북선(龜船)이 최초로 실전에서 사용됨. 일본군의 총탄에 이순신 부상.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125-126쪽

1592년 6월 2일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 함대가

미륵도(彌勒島)의 당포(唐浦)에 정박 중인 일본 함대를 공격하여 21척 모두를 격파함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126-128쪽

1592년 6월 5일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3도 관찰사가 거느린 근왕병이

용인(龍仁) 문소산(文小山)에서 와키사카 사헤이(脇坂左兵衛)의 일본군에게 패배.

선봉장 백광언(白光彦), 이시지(李時之) 전사.
*출전 : 이이화, <<조선과 일본의 7년 전쟁>>, 한길사, 1999, 202-204쪽

1592년 6월 5일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이 지휘하는

연합 함대가 고성(固城) 당항포(唐項浦)에서 일본 함대 26척을 격침시킴.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128-129쪽

1592년 6월 5일
고령(高靈) 의병장 정인홍(鄭仁弘) 부대가

낙동강변의 무계(茂溪)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밤에 기습함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101-102쪽

1592년 6월 15일
평양성(平壤城) 함락. 선조 의주(義州)로 피난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65-68쪽

1592년 7월 7일
진안의 웅치(熊峙)에서 나주 판관 이복남(李福男)이

전주(全州)로 침입하려는 안코쿠지 에케이(安國寺惠瓊)의 일본군을 맞아 방어하였으나 실패하고

김제 군수 정담(鄭湛) 전사.
*출전 : 이이화, <<조선과 일본의 7년 전쟁>>, 한길사, 1999, 207-209쪽

1592년 7월 8일
이치(梨峙)에서 광주 목사 권율(權栗)이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의 일본군을 맞아 격퇴함.

이치 전투로 일본군의 전라도 석권을 저지함.
*출전 : 이이화, <<조선과 일본의 7년 전쟁>>, 한길사, 1999, 209-211쪽

1592년 7월 8일
이순신(李舜臣), 이억기(李億祺), 원균(元均)의 조선 함대 72척이 한산도 견내량(見乃梁)에서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가 이끄는 일본 함대 66척을 격침시킴.
*출전 : 이이화, <<조선과 일본의 7년 전쟁>>, 한길사, 1999, 211-213쪽

1592년 10월 5일
진주 목사 김시민(金時敏)이 6일 동안 진주성을 공격하는 일본군을 방어하여 격퇴하고 전사.

이 전투는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
*출전 : 이이화, <<조선과 일본의 7년 전쟁>>, 한길사, 1999, 255-258쪽

1593년 1월 6일
이여송(李如松)의 명나라 군과 김명원(金明元) 휘하의 조선군 연합군이

평양성(平壤城)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일본군을 공격하여 평양 탈환.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148-151쪽

1593년 2월 12일
전라 감사 권율(權慄)이 거느린 2,300명이 행주산성(幸州山城)에서 3만 여명의 일본군을 대파함.

이 전투에서 변이중(邊以仲)이 제작한 화차(火車)가 큰 역할을 함.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161-165쪽

1597년 7월 8일
일본군의 침공군 주력이 6백여 척의 선단에 의하여 경상도 남해안 일대에 상륙. 정유재란 발발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218쪽

1597년 7월 15일
삼도수군통제사 원균(元均)이 거느린 조선 수군이 칠천량(漆川梁)에서

일본 수군의 기습으로 패배하고 원균, 이억기(李億祺) 등 전사. (칠천량 해전)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237-239쪽

1597년 9월 7일
경기도 직산(稷山)에서 부총병 해생(解生)이 지휘하는 명나라군이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의 일본군 우군을 격파함. 일본군의 북상 좌절. (직산 전투)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233쪽

1597년 9월 16일
명량(鳴梁) 수로에서 이순신(李舜臣) 함대 12척이 일본 함대 130여 척을 격파.

전라도 해안의 제해권 회복.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241-243쪽

1598년 11월 19일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조선 수군과 진린(陳璘)의 명나라 수군 연합 함대가

노량(露梁) 앞 바다에서 일본군 선단을 공격하여 2백여 척을 격파함. 이순신은 일본군의 유탄에 전사.
*출전 : <<임진왜란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263-267쪽

1624년 1월 22일
평안 병사 겸 부원수인 이괄(李适)이 안주(安州)에서 반란을 일으킴. (이괄의 난)
*출전 : <<조선왕조실록>>

1627년 1월 13일
후금군 3만 명이 압록강을 도하하여 의주(義州)성 포위. 정묘호란(丁卯胡亂) 발발.

14일 의주성 함락.
*출전 : <<조선왕조실록>>

1636년 12월 8일
청나라 선봉군이 압록강을 도하하여 의주(義州) 점령. 병자호란 발발.
*출전 : <<조선왕조실록>>

1654년 7월 2일
변급(邊岌)이 지휘하는 조선군이 흑룡강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귀국. (제1차 나선정벌(羅禪征伐))
*출전 : <<조선왕조실록>>

1658년 6월 10일
경상북도 병마우후 신유가 지휘하는 조선군이 청군과 흑룡강 어귀에서 러시아군 격파. (제2차 나선정벌)
*출전 : 박태근, 〈조선군의 흑룡강출병〉, <<한국사론>>9, 국사편찬위원회, 1981, 250쪽

1811년 12월 18일
홍경래(洪景來)가 평안도에서 반란을 일으켜

가산(嘉山), 정주(定州) 등 여러 군현을 점령함. (홍경래의 난)
*출전 : <<조선왕조실록>>

1866년 7월 18일
중군(中軍) 이현익(李玄益) 등이 제너럴 셔먼호 선원들을 추격하다 납치됨(19일 석방)
*출전 :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병인신미양요사>>, 108쪽

1866년 8월 12일
로즈(P. G. Roze) 제독의 프랑스 동양함대 경기도 남양 앞바다에 도착(병인양요의 배경)
*출전 :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1, 1967,

1866년 10월 2일
양헌수(梁憲洙)의 조선군 정족산성(鼎足山城)에서 프랑스군 150명과 교전,

30여명의 사상자를 내게 하고 격퇴(양헌수와 정족산성전투)
*출전 : 국사편찬위원회,<<고종시대사1>>,1969 289~290쪽 ;

국방군사연구소, <<한민족전쟁통사4>>, 1997, 73쪽

1871년 3월 27일
주청미국공사 로우(Low)와 로저스(Rodgers)사령관 휘하의 미국함대,

나가사키에서 조선으로 출발(신미양요의 배경)
*출전 :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병인신미양요사>> 205쪽 ;

이광린, <<한국사강좌>>5, 일조각, 1991, 51쪽 ;

김원모, <<근대한미관계사>>, 철학과 현실사, 1992, 397쪽

1871년 4월 24일
어재연(魚在淵)의 조선군, 광성보(廣城堡)에서 미군과 교전하여

부상자 20여명 외 전원 전사(광성보 전투)
*출전 : 김원모, <<근대한미관계사>>, 철학과 현실사,

1992, 468-472쪽, 504-507쪽 ;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병인신미양요사>> 226~231쪽, 13 560쪽

1875년 8월 20일
강화도(江華島) 수비대, 초지진(草芝鎭) 앞바다에 나타난

일본군함 운요오(雲揚)호와 포격전(운요오호 사건)
*출전 : <<고종실록>> 12년 8월 25일 ;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1>>,1969 799쪽

1882년 6월 5일
무위영과 장어영 군인들이 급료 체불과 지급 급료의 부정에 격분, 임오군란을 일으킴
*출전 : <<고종실록>> 고종 19년 6월 9일

1884년 10월 17일
김옥균(金玉均), 박영효(朴泳孝) 등 개화파, 우정국(郵政局) 낙성식을 이용 쿠데타를 일으킴(갑신정변)
*출전 : 국사편찬위원회,<<고종시대사2>>,1969 675-676쪽

1885년 3월 1일
영국 주청(駐淸)함대가 거문도를 불법 점령(1887년 2월 7일 물러남)
*출전 : 국사편찬위원회,<<고종시대사2>>,1969 732쪽 ;

이광린, <<한국사강좌>>5, 일조각, 1994, 197쪽

1894년 3월 20일
전봉준(全奉準)의 동학농민군 3,000여명 전라도 무장(茂長)에서 봉기함. 이른바 무장기포(茂長起包)
*출전 : 김인걸, <1894년 농민전쟁의 1차봉기>, <<1894년 농민전쟁연구>>, 1995, 역사비평사, 85쪽

1894년 6월 23일
일본군, 풍도(楓島) 앞바다의 청국군함을 격침시킴으로써 청일전쟁 시작됨
*출전 : 피터 두우스 저, 김용덕 역 <일본근대사>, ,지식산업사, 1989, 138쪽

1894년 11월 8일
동학농민군, 11월 11일까지의 우금치 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에 패배하고 남쪽으로 퇴각
*출전 : 한국역사연구회, 1995, <<1894년 농민전쟁연구>>4, 역사비평사 141-166쪽

1895년 8월 20일
일본 군인과 낭인들 경복궁에 난입하여 훈련연대장 홍계훈(洪啓薰)전사하고

명성황후가 시해됨(을미사변)
*출전 :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3, 1969, 989쪽

1904년 2월 8일
일본연합함대, 뤼순(旅順)항 밖에서 러시아 군함 공격. 러일전쟁 시작됨
*출전 : 후지와라 아키라 저, 엄수현 역, <일본군사사>, 시사일본어사, 1994, 119-139쪽

1905년 5월 27일
5월 28일까지의 동해해전에서 일본군 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
*출전 : 후지와라 아키라 저, 엄수현 역, 〈일본군사사〉, 시사일본어사, 1994, 119-139쪽

1907년 8월 9일
수원진위대(鎭衛隊) 강화분견대가 봉기하여 일본군과 전투.

군대해산을 계기로 다수의 해산군인들이 의병합류(의병전쟁의 전개2(전면적인 민족전쟁 1907. 8-1909))
*출전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3, 1999, 416쪽

1908년 1월 29일
13도창의군 선발대, 서울 진공 작전을 개시하여

동대문 밖 30리 지점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나 후퇴(서울진공)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민족전쟁통사4>>, 1997, 279

1920년 6월 7일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부대가 길림성 봉오동(鳳梧洞)에서 일본군을 공격, 150명의 사상자를 내게함
*출전 : 이재 외, <<한민족전쟁사총론>>, 1988, 교학연구사, 304쪽

1920년 10월 21일
김좌진, 이범석의 북로군정서 부대가 길림성 청산리 전역에서 일본군 5,000여명을 섬멸시킴
*출전 : 이재 외, <<한민족전쟁사총론>>, 1988, 교학연구사, 304쪽

1930년 1월 29일
이청천의 한국독립군 유격독립여단과 중국구국군 연합부대 서란현 전투에서 승리
*출전 : 이재 외, <<한민족전쟁사총론>>, 1988, 교학연구사, 315쪽

1933년 7월 20일
이청천 등의 독립군부대와 중국군 연합부대인 한중연합토일군(韓中聯合討日軍),

대전자(大甸子)전투에서 승리
*출전 : 이재 외, <<한민족전쟁사총론>>, 1988, 교학연구사, 322

1941년 12월 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
*출전 : 국사편찬위원회,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12, 855~856쪽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14연대, 지창수 상사 등이 주도하여

제주도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킴(14연대 반란(여순반란)사건의 발발)
*출전 : 황남준, <전남지방장치와 여순사건>, <<해방전후사의 인식3>>, 한길사, 1995, 446-447쪽

1948년 10월 20일
14연대 반란군 미명에 여수읍 장악, 오후에는 경찰대를 격파, 순천 점령하고 보성과 곡성, 구례로 진출
*출전 : 황남준, <전남지방장치와 여순사건>, <<해방전후사의 인식3>>, 한길사, 447-449쪽

1948년 10월 22일
국군 12연대, 4연대, 2연대 등 진압군이 반란군의 저항을 분쇄하고 23일 오전 11시 순천 탈환
*출전 : 황남준, <전남지방장치와 여순사건> <<해방전후사의 인식3>>, 한길사, 1995, 452쪽

1948년 10월 27일
오후까지 국군 진압부대 여수 시내를 완전히 점령하고 소탕전을 완료

(14연대 반란(여순반란)의 진압과 영향)
*출전 : 황남준, <전남지방장치와 여순사건>, <<해방전후사의 인식3>>, 한길사, 1995, 455쪽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부터 인민군, 남한에 대한 전면공격 개시(한국전쟁의 원인과 성격)
*출전 : 와다 하루키, <<한국전쟁>> ,창작과 비평, 1999, 70쪽

1950년 6월 25일
09시 30분까지 인민군 6사단 개성을 점령,

국군 1사단 임진강 대안의 방어선으로 후퇴(옹진, 개성 지역 전투)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117쪽

1950년 6월 25일
국군 6사단, 인민군 2사단과 12사단의 공격으로부터 6월 28일까지 춘천 사수(춘천-홍천전투)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1995, 130-141쪽

1950년 6월 26일
13시경 인민군 의정부 점령, 국군은 창동으로 퇴각(의정부 전투)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1995, 126쪽

1950년 6월 28일
미아리의 국군 방어선 붕괴, 오전 11시 30분경 인민군 서울 중심부 진입.

저녁까지 시내 전역을 장악(서울의 함락)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164쪽

1950년 7월 5일
스미스 부대, 오산에서 인민군 4사단 선두 전차대와 교전하였으나 큰 피해를 입고 후퇴(오산전투)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1995, 211쪽

1950년 7월 20일
미제 24사단의 대전방어선이 무너지고 사단장 딘 소장 고립되어 포로가 됨(대전전투)
*출전 :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 요약>>, 1986, 224쪽

1950년 7월 26일
7월 25일 미군지시에 따라

충청북도 영동군 주민 500여명, 황간읍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터널에서

미군의 공습과 기총사격으로 학살당함(노근리 양민학살)
*출전 : 서중석, <<조봉암과 1950년대 (하)-피해대중과 학살의 정치학>>, 1999, 역사비평사, 610-613쪽

1950년 8월 3일
인민군 제13사단 왜관 북방에서 낙동강 도하 개시, 8월 공세 시작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09쪽

1950년 8월 10일
인민군 5사단에 의해 국군 3사단이 영덕에 고립되고, 8월 11일 인민군 포항 점령(포항-영덕전투)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36쪽

1950년 8월 13일
국군 1사단과 6사단, 방어선을 축소하여 다부동과 군위를 잇는 선으로 이동.

인민군 3사단, 13사단, 15사단이 공격해옴으로써 다부동전투 시작.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13쪽

1950년 8월 31일
인민군 제1군단이 낙동강 서부지역에서 일제히 총공세를 감행, 9월 공세 시작.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41쪽, 357-362쪽

1950년 9월 15일
미제10군단 병력. 해병대를 선두로 인천에 상륙작전 개시(인천상륙작전)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406쪽

1950년 9월 28일
국군과 유엔군, 서울시 전역을 완전히 장악 (29일 환도식)(서울탈환작전)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423쪽

1950년 10월 19일
중국인민해방군 13병단 소속 4개 군, 최초의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압록강을 넘어옴(중국군의 참전)
*출전 : 洪學智 저, 홍인표 역, <<중국이 본 한국전쟁>>, 1993, 47쪽

1950년 10월 25일
중국군 40군 118사단이 국군 6사단 2연대를 매복 기습하고

온정리를 점령(중국군과 유엔군 간 최초의 교전)
*출전 : 洪學智 저, 홍인표 역, <<중국이 본 한국전쟁>>, 1993, 75 ;

와다 하루키, <<한국전쟁>>, 창작과 비평사, 1999, 200쪽 ;

자위대 육전사연구보급회 저, 이원복 역, <<한국전쟁(4)>>, 명성출판사, 1991, 340쪽

1950년 11월
1950년 11월 중순부터 2월 8일까지 전남 함평군 월야면, 해보면,

나산면 일원에서 다수의 민간인들이 빨치산으로 몰려 학살당함(함평양민학살)
*출전 : 서중석, <<조봉암과 1950년대 (하)-피해대중과 학살의 정치학>>, 1999, 역사비평사, 620-625

1950년 11월 1일
중국군 한국전쟁에서 최초의 공세를 시작, 39군 운산에서 미제1기병사단 격파(운산전투)
*출전 : 洪學智 저, 홍인표 역, <<중국이 본 한국전쟁>>, 1993, 84-88쪽

1950년 11월 24일
미 제8군 서부전선에 전쟁 종식을 위한 크리스마스 공세 돌입
*출전 : 자위대 육전사연구보급회 저, 이원복 역, <<한국전쟁(4)>>, 명성출판사, 1991, 281쪽

1950년 11월 25일
중국군, 덕천과 영변의 국군 7, 8사단을 목표로 역습. 총공세 시작(중국군의 2차 공세)
*출전 : 洪學智 저, 홍인표 역, <<중국이 본 한국전쟁>>, 1993, 117 ;

자위대 육전사연구보급회 저, 이원복 역, <<한국전쟁(4)>>, 명성출판사, 1991, 286-288쪽

1950년 11월 27일
중국의 심양(瀋陽)에서 소련 제64전투항공군단 창설, 극비리에 한국전에 참전하기 시작(소련군의 참전)
*출전 : 기광서, <소련의 한국전쟁관과 개입과정>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전쟁50주년 학술심포지움 발표문>> 68쪽

1950년 11월 27일
중국군 9병단 동부전선에서 공세 개시. 장진호에서 미해병1사단을 포위(장진호 전투)
*출전 : 洪學智 저, 홍인표 역, <<중국이 본 한국전쟁>>, 1993, 141-144쪽

1950년 11월 29일
중국군 38군과 42군, 군우리-순천 간 협곡지대에서 12월 1일까지 전투를 통해

미 제2사 단을 포위 섬멸함(군우리 전투)
*출전 : 洪學智 저, 홍인표 역, <<중국이 본 한국전쟁>>, 1993, 128-135쪽 ;

자위대 육전사연구보급회 저, 이원복 역, <<한국전쟁(4)>>, 명성출판사, 1991, 305-320쪽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중)>>, 1995, 217~227쪽

1950년 12월 14일
미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 흥남에서 철수 시작(24일 철수 완료)(흥남철수작전)
*출전 :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 요약>>, 1986 243-244쪽

1951년 1월 4일
유엔군, 서울에서 전면 철수하여 북위 37도선으로 후퇴(1.4후퇴)
*출전 : 군사문제연구소, <<한국전쟁일지>>,1991, 182쪽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중)>>, 1996, 308-318쪽

1951년 2월 10일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서 2월 9일부터 11일까지 11사단 9연대 3대대에 의해

수백명의 양민이 학살당함(거창양민학살)
*출전 : 서중석, <<조봉암과 1950년대 (하)-피해대중과 학살의 정치학>>, 1999, 역사비평사, 625

1951년 2월 11일
중국군 13병단의 40, 42, 66군 및 39군 117사단, 제4차 전역(2월 공세)개시(중국군의 제4차전역(2월공세))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중공군의 한국전쟁>>, 1994,(원제 : <<抗美援朝戰爭簡史>>), 31쪽 ;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 요약>>, 1986, 245쪽

1951년 3월 16일
유엔군, 서울을 재탈환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 (중)>>, 1997, 436쪽

1951년 4월 29일
국군 1사단, 미제1기병사단, 미제 25사단 등 미제1군단이

한강 하구-구파발-쌍문동을 잇는 선에서 중국군의 4월공세를 최종 격퇴함(4월 공세 종료)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 (중)>>, 1997, 536-538쪽 ;

국방군사연구소, <<중공군의 한국전쟁>>, 1994,(원제 : <<抗美援朝戰爭簡史>>), 36쪽

1951년 5월 16일
중국군과 인민군, 제5차전역 2단계작전(5월 공세)을 개시하여

동부전선을 집중 공격하기 시작(중국지원군과 인민군의 제5차 전역2(5월공세))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 (중)>>, 1997, 550쪽 ;

국방군사연구소, <<중공군의 한국전쟁>>, 1994,(원제 : <<抗美援朝戰爭簡史>>), 37쪽

1952년 7월 11일
미 공군 평양지역에 집중적인 공습을 감행하여

1,400톤의 폭탄과 23,000갤런의 네이팜탄 투하(미군의 폭격)
*출전 : 이신철, <전쟁피해와 북조선사회의 변화>,

<<역사문제연구소 심포지움 발표문 : 한국전쟁은 민중에게 무엇이었나>>, 50쪽

1952년 8월 1일
미 제2사단, 중국군 106사단의 2주일에 걸친 공격을 격퇴하고 불모(Old Baldy)고지 확보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 (중)>>, 1997, 379-382쪽

1952년 9월 18일
조중연합사령부, 추계공세를 개시,

10월 31일까지 60개 진지에 77차례 공격(중국군과 인민군의 1952년 추계공세)

1952년 10월 15일
국군 9사단, 10월 6일부터 공격해온 중국군 38군을 12차례의 전투 끝에 격퇴하고

백마고지를 확보(백마고지 전투)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 하>>, 1997, 389-395쪽

1953년 6월 10일
중국군, 최후공세의 제2단계(6월 공세) 본격적으로 개시하여

금성돌출부 공격 시작(중국군과 인민군의 최후공세)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 하>>, 1997, 530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 조인(휴전협정의 체결)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 하>>, 1997, 583 쪽

1961년 11월 14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백악관을 방문하여 베트남 파병의사를 밝힘
*출전 : 홍규덕, <베트남 참전 결정과정과 그 영향>,

<<1960년대의 대외관계와 남북문제>>, 1999, 백산서당, 56쪽

1964년 5월 21일
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 심의를 거쳐 베트남파병을 결정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국방정책변천사>>, 1995, 149쪽

1964년 9월 11일
제1차 베트남파병부대 출국, 9월 22일 베트남 도착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국방정책변천사>>, 1995, 151쪽 ;

국방군사연구소, <<건군50년사>>,1998, 205쪽

1965년 10월 3일
수도사단(맹호부대)과 해병2여단(청룡부대)의 3차 파월부대 중 해병대,

부산항에서 베트남으로 출발(11월 2일까지 파병 완료)(한국군의 월남참전)
*출전 : 국방군사연구소, <<국방정책변천사>>, 1995, 155쪽

1966년 8월 9일
수도사단 3대대 9중대, 1개 대대 규모의 북베트남군 공격을 격퇴(둑코 전투)
*출전 :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주월한국군전사2>>, 1968, 129-135쪽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특수부대 남파, 청와대 기습 시도(1.21사건)
*출전 : 나종삼,<<월남파병과 국가발전>>,국방군사연구소, 1996, 254쪽

1968년 1월 31일
북베트남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남베트남 전역의 도시와 촌락에 대한 기습 감행(구정공세)
*출전 : 나종삼, <<월남파병과 국가발전>>, 1996, 국방군사연구소, 62쪽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쿠앙남성 디엔반현 퐁니촌에서 한국군에 의한 마을 주민 50여명 집단 학살됨.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2000년 9월 현재 약 80여건의 의혹이 제기됨.
*출전 : 고경태,

<진실을 말해 준 사람들-참전군인들의 증언을 통해 본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파병에 관한 심포지움 발표문>>, 2000

1972년 4월 11일
수도사단 기갑연대, 북베트남군 3사단 12연대가 차단한 19번 국도를 개통하기 위한 안케 패스 전투 시작
*출전 : 나종삼, <<월남파병과 국가발전>>, 1996, 국방군사연구소, 75쪽

1972년 8월 11일
미군, 마지막 전투 부대가 베트남에서 철수하고 소수의 정리요원만 남김
*출전 : 나종삼, <<월남파병과 국가발전>>, 1996, 국방군사연구소, 79쪽

1973년 1월 27일
미국과 북베트남, 파리 휴전협정 체결
*출전 : 이영희, <<베트남전쟁>>, 두레, 88쪽

1973년 1월 30일
국군 9사단 베트남에서 철수 시작, 3월 23일까지 베트남 파병 국군 완전 철수 완료
*출전 : 나종삼,<<월남파병과 국가발전>>,국방군사연구소, 1996, 218쪽

1973년 3월 29일
미국의 철군 정리 부대가 떠남으로써 월남에서 완전히 철수
*출전 : 나종삼, <<월남파병과 국가발전>>, 1996, 국방군사연구소,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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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계의 전쟁사

키루스 대왕의 정복 전쟁 B.C. 547-529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B.C. 499-448
펠로폰네소스 전쟁 B.C. 431-404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전쟁 B.C. 395-362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전쟁 B.C. 334-323
1차 포에니 전쟁 B.C. 264-241
2차 포에니 전쟁 B.C. 218-202
3차 마케도니아 전쟁 B.C. 171-168
3차 포에니 전쟁 B.C. 218-202
갈리아 전쟁 B.C. 58-52
1차 삼두정치 전쟁 B.C. 60-44
2차 삼두정치 전쟁 B.C. 32-31
로마-게르만 전쟁 B.C. 16- A.D 16
로마에 대한 유대인의 폭동 66-73
훈족 아틸라의 전쟁 433-454
예언자 마호메트의 정복 전쟁 622-632
마호메트 계승자들의 정복 전쟁 632-732
샤를마뉴 대제의 정복 전쟁 771-814
바이킹의 유럽 침공 800-955
마자르족의 유럽 침공 895-955
에스파냐 국토회복운동 912-1492
노르만인의 유럽-지중해 정복 1061-1108
1차 십자군 전쟁 1095-1099
2차 십자군 전쟁 1186-1187
3차 십자군 전쟁 1189-1193
칭기즈칸의 정복 전쟁 1206-1227
알비주아 십자군 전쟁 1208-1229
튜턴 기사단 전쟁 1223-1466
칭기즈칸 계승자들의 정복 전쟁 1227-1287
스위스 독립 전쟁 1291-1394
스코틀랜드-영국 국경 전쟁 1295-1328
투르크-비잔틴 전쟁 1302-1461
백년 전쟁 1337-1453
태머레인의 정복 전쟁 1370-1405
장미 전쟁 1455-1485
스위스-부르고뉴 전쟁 1474-1477
에스파냐의 멕시코 정복 1519-1522
위그노 전쟁 1562-1598
네덜란드 독립 전쟁 1568-1648
에스파냐-영국 전쟁 1580-1603
30년 전쟁 1618-1648
영국 시민 전쟁 1642-1649
메타코멧의 전쟁 1675-1676
아우크스부르크 동맹 전쟁 1689-1697
북유럽 대전쟁 1700-1721
에스파냐 계승 전쟁 1701-1714
젠킨스의 귀 전쟁 1739-1744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 1740-1748
7년 전쟁 1756-1763
푸가초프의 난 1773-1774
미국 독립 전쟁 1775-1783
프랑스 혁명기의 전쟁 1793-1799
나폴레옹 전쟁 1800-1815
트리폴리 해전 1801-1805
미영 전쟁 1812-1814
페루 독립 전쟁 1821-1823
그리스 독립 전쟁 1821-1832
프랑스의 알제리 정복 1830-1847
텍사스 독립 전쟁 1836
1차 아편 전쟁 1840-1842
1차 아프간 전쟁 1838-1842
미국-멕시코 전쟁 1846-1848
2월 혁명 1848-1849
태평천국의 난 0850-0864
크림 전쟁 1853-1856
2차 아편 전쟁 : 애로호 사건 1856-1860
세포이의 항쟁 1857-1858
이탈리아 독립 전쟁 1859-1860
아메리칸 인디언 전쟁 1860-1890
남북 전쟁 1861-1865
프랑스의 멕시코 원정 1861-1867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1866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1870-1871
2차 아프간 전쟁 1878-1880
줄루 전쟁 1879
스페인-미국 전쟁 1898
보어 전쟁 1899-1902
러일 전쟁 1904-1905
발칸 전쟁 1912-1913
1차세계대전 1914-1918
러시아 혁명 1917
국공내전과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 1930-1949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1935-1936
스페인 내전 1936-1939
히틀러의 유혈 정복 1936-1939
중일 전쟁 1937-1945
2차세계대전 0939-1945
냉전 1945-1990
프랑스-인도차이나 전쟁 1946-1954
인도 내전과 인도-파키스탄 전쟁 1947-1948
이스라엘 독립 전쟁 1948-1949
한국 전쟁 1950-1953
쿠바 혁명 1956-1959
베트남 전쟁 1956-1975
6일 전쟁 1967
욤 키푸르 전쟁 : 4차 중동 전쟁 1973
아프가니스탄 내전 1979-1989
이란-이라크 전쟁 1980-1988
걸프 전쟁 1990-199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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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예술은 일단 기발함이 

첫번째로 갖추어야 할 예술의 존재가치를 좌우하는가보다

그런 점에서 이토록 기발한 발상과

쌀알 한 톨 한 톨을 세밀하게 계산한

치밀하고 집요한 작업은

가히 칭찬 할만한 작가의 근성으로 인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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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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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면 처음엔 시작프로그램으로 등록되어 있던 것이 불과 몇 개되지 않았던 것이

자꾸만 불어나서 부팅이 더뎌지거나 많은 메모리를 차지함으로 인해 시스템이 느려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가끔씩 정리하고 싶지만 어떤 걸 삭제해야 될지 함부로 지웠다가 혹시? 컴퓨터가 심하게 말썽이나 피우진 않을지 걱정스러워

손대지 않아 갈수록 더 느려터진 컴을 쓰게 됩니다.

사실은 XP의 MSCONFIG에서 봤을 때 꼭 필요한 시작 프로그램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XP에서는 운영체제상에서 꼭 필요한 프로그램들은 절대로 요기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냥 내부명령에 의해 실행되죠...
하지만...필요없어 보이는 그것들이 자기의 필요에 따라 설치되었던 것들이라, 중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불편하지 않다면 그대로 놓고 사용하셔도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정말 필요없는 것은 프로그램 추가제거에서 프로그램 자체를 없애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그래도 꼭 정리해야만 할 필요를 느끼셨다면

위 그림과 아래 설명을 참조하시고 필요하지 않으면서 메모리만 차지하는건 과감히 삭제하세요~

HP 컴을 사용하는 위 이미지를 예로들어 참조하여 살펴봅니다.



hpsysdrv - HP장치의 시스템 드라이버입니다 (그대로 둠)

HpSrvUI  - HP장치와 사용자간 연결 프로그램 (그대로 둠)

scanerfb - 스케너관련 (스캐너 사용자라면 그대로 둠)

KBD - 키보드 관련 (그대로 둠)

PECGUARD - 악성코드관련인듯합니다 ^^; : 사용안하면 삭제

ConnectionManager - 넷스팟 이용자라면 그대로 둠

NvCpl.dll,NvStartup - 비디오카드 관련 (그대로 둠)

install - 그대로 두세요

HPWuSchd2 - HP 업데이트 관련 (삭제추천)

AhnSD - 바이러스 관련 (그대로 둠)

NvMcTray.dll,NvTaskbarInit - 비디오카드관련 (그대로 둠)

ADSpider - 악성코드 관련 (사용안하면 삭제)

ctfmon - IME 한글 입력 관련 (그대로 둠)

ctfmon - 원래 두개 뜨는게 정상입니다.

msmsgs - MSN 메신저 관련 (사용안하면 삭제)


위의 프로그램으로 삭제 후 꼭 필요한 시작프로그램이라 판단된다면

시작 > 실행 > msconfig > 시작프로그램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체크해주고
리부팅 해주면 됩니다.


아예 꼭 필요한 것만 남겨두고 싶다면~

시작버튼 => 실행 =>열기란에 "msconfig"입력한후 =>확인을 눌러 줍니다.

화면이 뜨면 시작프로그램탭에 진입후 " 모두 사용 안함"을 눌러주시고 그림에 체크되어있는

IMJPMIG ,TINTSETP , AhnSD ,ctfmon항목에만 체크 해준다음 적용 =>확인버튼을 눌러 줍니다

"시스템구성"창이 뜨면"다시 시작"을 누르고 재부팅 합니다.

재 부팅후 "시스템구성유틸리티" 창이 뜨면  "체크"하시고 "확인 "버튼을 눌러 줍니다.

<이건 가장 기본적인 것만을 남기는 것이므로 제 각기 필요에 따라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그 항목도 체크해 주세요>


조금 더 덧붙이자면

프로그램마다 설치시에 시작프로그램에 등록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시스템에 많은 프로그램이 설치되다 보면 시작프로그램에 등록이 되어

시스템 구동시 시계표시부분의 트래이에 자리잡고 실행중이라는 것을 알리게 됩니다.

우측의 트레이 아이콘이 하나 생길때마다 메모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최적화 시켜주면 컴이 부하가 없이 돌아갈테고 많아지면 당연히 시스템에 부하가 걸릴테죠. 그래서 정리하는 거랍니다.

시작프로그램이 적으면 부팅시간이 조금은 줄어듭니다.


트레이 아이콘이 여러개 있을때 Ctrl + Alt + Del 키를 눌러서 '성능' 탭을 보시면 cpu 사용양과 메모리 사용량이 나옵니다.

이때 트레이 아이콘 하나를 종료시켜보면 메모리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윈도우 NT4이상 사용시 확인가능)


즉 메모리 최적화하여 컴퓨터를 조금은 빠르게 만들어 쓰기위해

시작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있는 아이콘들을 정리해 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

컴퓨터의 모든 작업은 램에서 이루어집니다.

만약 램의 용량이 부족하면 큰 프로그램에 부딪쳐 버벅거리기가 일쑤입니다.

그러므로 램을 불필요하게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정리 해줘야 합니다. 제 능력에 맞게 원활한 컴 사용을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컴퓨터들이 성능들이 워낙 좋긴 하지만...

아직 신형 컴을 마련하지 못해 자신의 컴이 매일 골탕만 먹고 짜증나게 느려터진 분들은 유용할 듯....


==============================================================================================================


1. 대부분 알고있으시겟지만 여러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띄워놓으면...컴퓨터 느려지는건...다들 아시겟죠?

그리고 빠른실행(시작단추 오른쪽에있는거) 이나 아님 시계 옆에 늘어선 프로그램이 많으면 많을수록 컴퓨터는 느려집니다.

특히 시계옆에 아이콘을 많이 설정 해놓을 수록 부팅할때 윈도우뜨는 속도가 느려지게 됩니다.


빠른 실행은 최소한으로 - 시작프로그램 옆에도 최소한만!!(시작->실행->msconfig입력  하면 윈도 시작할때 시작되는 시작프로그램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여러작업 동시에 하지 말고, 바탕화면에 아이콘은 최소한으로 정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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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윈도우 로그인 할때 로그인 페이지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 화면을 띄우기 위해서 메모리에 몇메가의 공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황당하게도 이것이 컴퓨터를 끌때까지 메모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그인 페이지를 당장 능지처참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ㅎㅎㅎ


제어판 -> 사용자 계정 클릭 ->사용자 로그온 또는 로그오프 방법 변경 클릭.(아마도 두개가 체크 되어있을 것임)

둘다 체크 해제 하고 옵션 적용 합니다.  


그런 다음  재부팅하시면 직접 로그인 이름이랑 비밀번호를 써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메모리의 낭비를 막을 수 있죠!!!!( 레지스트리의 작업으로 이 창을 마저 없애는 방법은 일전에 올려 둔 팁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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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작 메뉴의 작업표시줄에서 오른쪽 클릭-> 속성 클릭 한다음.

이전 시작메뉴를 선택. 보시면 시작메뉴에... '인터넷, 전자 메일 및 자주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쉽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라고 나옵니다.

자주 사용하는 걸 컴퓨터가 알아서 미리 준비 해 놓는다는걸 알 수있죠. 메모리를 잡아먹으면서......

이걸 사용안함으로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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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컴퓨터에서 특별한 작업을 하지 않는 이상 가장 많은연산을 하는 부분이 바로..그래픽 연산 부분입니다.....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것들을 일일이 연산하고 계산해서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단히 말해서  

"그래픽 사용을 최대한 줄이면 CPU의 연산작업량이 그많큼 적어지고 따라서 다른 연산을 할 수있는 여유가 생긴다." 

는 말이지요...ㅎㅎㅎ

그럼 그래픽 최적화를 해야겠죠?

바탕화면에서 오른쪽 마우스 클릭->속성(속성인지 등록정보인지..뭐시긴지...암튼 맨 밑에꺼요...)

-> 테마 탭에서 -> Windows 고전을 선택 ->바탕화면 탭에서 배경을 없음으로 합니다.

그다음 오른쪽 색 지정 하는 부분에서 검은색을 선택 합니다.


이러케 설정 함으로써 그래픽 사용을 최대한 줄여주게 됩니다. 그러므로써 CPU의 연산량이 줄어들게 되는것이죠

바탕화면을 검은색으로 해준 이유는 검은색은!!! 연산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 색은 색 정보를 실시간으로 계속 뿌려주게 되는것이죠 까망색일 경우 CPU에서 그래픽 정보를 뿌려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연산 자체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바탕화면을 까망으로 해준 것입니다.



이상 몇가지 작업을 하시면 이전과 비교해서 컴이 매우 빠르게 구동되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메모리 용량이 아주 크고 cpu도 듀얼 시스템 정도되는 분들을 아예 이런 작업은 쓸데없는 일이겠지만...

불쌍하게도 아직도 구형버전의 컴으로 많은 사용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모쪼록 많은 도움되시길~~**

펌:http://blog.daum.net/hanlimpark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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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더 메이드(ORDER MADE : 주문생산), 스킨십(SKINSHIP : 신체접촉), 콘센트(CONCENT : 전기 콘센트)라는 영단어가 사실은 일본에서만 쓰이고 있는 일본식 영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본래 일본에 존재하지 않던 외래어들을 카타카나(カタカナ)로 표기하는 일본어의 외래어 표기법, 그 중에 일본에서만 통용되는 일본식 영어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많은 일본인들이 놀라고 있다고 합니다.

포털사이트 goo가 일본제 영어에 관한 리서치를 해본 결과, 1위를 차지한 표현이 바로 이 오더 메이드(ORDER MADE)라고 합니다. 이것은 본래 영어권에서는 커스텀 메이드(Custom Made)라고 하는 것인데, 일본 내에서는 원래 표현보다 오더 메이드가 훨씬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2위인 스킨십도 일본에서는 '신체적인 접촉을 통한~'이라는 의미로는 가장 자주 쓰이는 영어 표현이지만, 사실 영어권에서는 피지컬 컨텍(Physical Contact)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출처 : 펀누리
그리고  3위를 차지한 콘센트는 원래 아웃렛(Outlet), 4위를 차지한 키홀더(Key Holder : 열쇠고리)는 원래 키링(Key Ring)이라고 합니다.

또한 중국에서는 올림픽 개최가 예정되어 있는 북경의 음식점 등에서 급조된 영어들이 등장하면서 웃지 못할 해프닝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영어가 비록 국제어로 통용되고 있긴 하지만, 그 때문에 고생하는 나라가 많다는 것도 사실인 듯합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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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보고(MS전송) 창 나타나지 않게 하는 방법
1) 시작->제어판->성능 및 유지 관리->시스템
2) 시스템 등록정보창이 나타나면 [고급]탭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오류보고 버튼을 클릭한다.
3) 오류보고 대화상자에서 `오류 보고 사용 안 함`을 선택하고 확인버튼을 누른다.
입력도구모음 없애는방법
제어판-국가 및 언어 옵션
[제어판-국가및언어옵션-언어-자세히...-설치된서비스]에서 [한글입력기(IME2002)]만 있으면 [추가]를 눌러서 [영어]를 추가해준다.
[한글입력기(IME2002)]를 선택하고 [기본설정-입력도구모음]에서 모든 체크를 없애면 입력도구모음이 없어진다.(추가한 영어는 제거한다)
한자를 쓸때 입력도구모음이 필요하면 [작업표시줄-오른클릭-도구모음-입력도구모음]에 체크하면 다시 나타난다.
폴더창 속도 향상하는 방법
제어판에서 ``폴더옵션``을 실행한 다음, ``보기`` 메뉴탭을 선택하고 ``고급설정`` 부분에서
``폴더 및 바탕화면 항목에 팝업 설명 표시``와 ``압축된 파일과 폴더를 다른 색으로 표시`` 그리고
``독립된 프로세스로 폴더창 실행``의 체크를 해제하여 속도 향상
임시인터넷 파일크기 최대한 줄이기.(100~200정도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한다)
다운로드 갯수 변경하는 방법
1. [시작]→[실행]에서 ``regedit``를 입력하고 레지스트리 편집기를 실행한후, 다음키 값을 찾는다.
2.HKEY_CURRENT_USERSOFTWAREMicrosoftWindowsCurrentVersionInternet Settings
3. 이 키 또는 오른쪽 창의 빈 공간을 마우스 오른쪽 버튼으로 클릭하고 [등록]→[DWORD 값]을 선택한다.
4. 새 DWORD 값의 이름에 ``MaxConnectionsPerServer``라고 입력한다.
5. 이 값을 더블클릭하고 값의 데이터 란에 원하는 다운로드 갯수를 입력한다.
<시작>에서 도움말메뉴 삭제하는 방법
도움말 항목을 안보이게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단계를 거친다
1.시작-실행-REGEDIT
2다음 경로를 찾아간다
[HKEY_CURRENT_USERSOFTWAREMicrosoftWindowsCurrentVersionPoliciesExplorer]
이 경로에서 [새로만들기]에서 [DWORD값]을 하나 만들고
이름을 [NoSMHelp]으로 한다
3.더블 클릭해서 데이터 값을 1로 지정한다
4.재부팅하거나 로그오프하면 설정이 적용된다
5.복원하시려면 값을 0으로 한다
윈도우 창이 뜨는 속도 높이는 방법
윈도우즈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높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창의 최대화 , 최소화에 따른
애니메이션 효과도 속도를 저하 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다.여기서는 그 속도를 높여주는
방법을 소개한다.
*레지스트리 편집기를 실행한다.
변경 할 사항: HKEY_CURRENT_USERControl Paneldesktopwindowmetrics로이동
우측 화면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른후 ``문자열 값``을 선택하고
MinAnimate라고 입력한다.그다음 이 값을 더블클릭하여 값을 ``0``으로 설정
한다. 이것으로 창이 열리거나 닫힐때 최대화 , 최소화 애니메이션 표시가
되지 않아 창의 표시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진다.
폴더를 열었을때 화일아이콘의 화면출력(Refrash rate) 속도 향상하는 방법
* 레지스트리 편집기를 실행한다.
변경 할 사항: 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ControlUpdate 로 이동.
오른쪽 창의 ``UpdateMode`` 에서 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클릭하고 수정을
선택,value를 1에서 0으로 바꾼다.
실시간 동영상을 끊김없이 감상하는 방법
미디어 플레이어를 이용하면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감상할수 있다. 하지만 용량이 큰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감상하다 보면 연결이 끊기거나 잠깐 멈췄다가 다시 재생되는 등 여러 가지 접속
에러가 자주 생긴다. 이럴 때는 미디어 플레이어의 버퍼를 늘리는 방법으로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
한다. 미디어 플레이어를 수행하고 [도구]→[옵션] 메뉴를 누른다. `옵션` 대화 상자가 나타나면
[성능] 탭을 고른다. `내 연결 속도` 옵션을 고르고 목록 버튼을 눌러 `T1(1.5Mbps)`를 선택한다.
`네트워크 버퍼링` 항목에서는 버퍼를 10초로 지정한다.다시 [네트워크] 탭을 누르고 `UDP` 항목의
체크 표시를 없앤다. `프록시 설정` 항목에서 HTTP를 마우스로 두 번 누른다. `프로토콜 구성` 대화
상자가 나타나면 `프록시 서버 이용 안함` 옵션을 선택한다.
아이콘에 오른쪽 클릭해서 [보내기 메뉴]에 메모장등을 추가하는 방법
`C:Documents and Settings****SendTo`라는 폴더가 있는데,이곳에 메모장아이콘을 복사해
넣기만 하면 된다.`SendTo` 폴더는 숨겨져있으므로 보이지 않는다면 탐색기의 [도구]→[폴더옵션]
메뉴를 고르고 창이 뜨면 [보기] 탭으로 이동한 뒤 `숨김 파일 및 폴더 표시` 항목에 체크 표시하면
된다. 이미지 프로그램이나 동영상, 사운드 재생 프로그램 등도 등록해두면 요긴하게 쓸 ?있다.
L2캐쉬 지정으로 속도향상 시키는 방법
Secondlevel Datacache(L2Cache) 는 CPU의 작업속도에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펜3코퍼마인에 내장된 CPU와 같은 속도로 동작하는 이 빠른 L2캐쉬에 데이타를 일정량
올려놓을 수 있기때문에 상대적으로 엄청 느린 메모리로만 데이터를 처리할때보다
작업효율이 더욱 뛰어날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xp가 cpu와 L2Cache의 값을 자동으로 인지하게 된다. 그러나, 종종 xp가
이것을 할 수 없을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cpu의 작업속도를 향샹시키기 위해서는
레지스트리 값을 조작해줘야 한다.
1.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ControlSession ManagerMemory Management에서 오른쪽에 SecondLevelDataCache항목을 고른다
2.자신의 cpu에 맞는 10진수 값을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AMD Duron → 64입력 CeleronA/celeron2 → 128입력
PII mobile/PIII E(EB)(칩형태 256K L2캐쉬내장 펜3 코퍼마인)/P4/AMD K6-3/AMD THUNDERBird/Cyrix III → 256입력
AMD K6-2/PII/PIII katmai(초기 카트리지형식 펜3 카트마이)/AMD Athlon → 512입력
PII Xeon/PIII Xeon → 1024입력 재시작한다.
캐쉬메모리 체적화로 속도 높이는 방법
디스크캐시는 윈xp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지만, xp의 기본 입출력 페이지
파일 셋팅은 매우 민감해서 xp의 작업속도를 제한하게 된다. 다음은 램의 크기에 따른 몇
가지 값들이다. 램의 크기에 맞게 다음을 수정하시면, xp의 작업속도를 가속시킬 수 있다.
1.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ControlSession ManagerMemory Management
IoPageLockLimit
2. 자신의 램 사이즈에 맞는 16진수(hex)값을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64M: 1000;
128M: 4000;
256M: 10000;
384M: 22000;
512M or more: 40000. 3. 재시작한다.
무응답 응용프로그램 타임아웃 시간줄이는 방법
윈도우 XP는 해당 응용프로그램이 정지하면 해당 프로그램이 응답이 기다리는 시간이
설정되어 응답이 없으면 해당프로그램을 정지시킨다 이 타임아웃시간을 조절해서 윈도우 XP
정지시간을 줄일 수 있다
[HKEY_CURRENT_USERControl PanelDesktop]
HungAppTimeout
다음 값이 기본적으로 5000(5초)으로 설정되어있을 것이다.
이 값을 더블 클릭해서 1000 (1000 = 1초)로 설정해준다.
프로그램오류시 시스템재부팅 방지 하는 방법
간단한 오류에도 XP가 저절로 부팅되어 버리는 난감함을 볼수 있는데 방지하는 방법이다.
내컴퓨터 -> 속성 -> 고급 -> 시작및복구 -> 설정 에서 "시스템오류"항목의 "자동으로 다시시작"을 체크해제하면 됨
익스플로러 시작시 풀스크린으로 항상 하는 방법
1.HKEY_CURRENT_USER > Software > Microsoft >Internet Explorer > Main
2. Main 항목 오른쪽 창에서 FullScreen 항목을 찾으세요.
3. 이젠 FullScreen 를 더블 클릭해서 no를 yes 바꿉니다.
4. 레지스트리 프로그램을 종료 후 재부팅 하시면 됩니다.
종료로고만 나오고 전원안꺼질때 하는 방법
[시작-제어판-새 하드웨어 추가]를 클릭한다.
[하드웨어 추가 마법사] ---> [다음]을 눌러 윈도우 XP가 새로 설치된
장치를 찾으면 [하드웨어가 연결되어 있습니까?]하고 물어 보는데
[예, 하드웨어를 연결했습니다] 라는 단추를 선택하고 [다음]을 누릅니다.
[설치된 하드웨어] ---> [새 하드웨어 장치 추가] 를 선택하고 [다음]을 누른다.
[원하는 작업을 선택하십시오]라고 나오면 [목록에서 직접
선택한 하드웨어 설치(고급)]을 선택하고, [다음]을 클릭.
[일반 하드웨어 종류]에서 [ NT APM/레거시 지원 ] 을 선택하고 [다음]을
누르고, 하드웨어 추가 마법사를 계속 따라 하시면 무사히 설치 됩니다.
그러면 자동으로 종료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레지스트리 편집기를 실행해서 속도올리는 방법
변경 할 사항: HKEY_CURRENT_USERControl Paneldesktopwindowmetrics로 이동
우측 화면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른후 ``문자열 값``을 선택하고 MinAnimate라고 입력한
다.그다음 이 값을 더블클릭하여 값을 ``0``으로 설정 한다. 이것으로 창이 열리거나 닫힐때 최
대화 , 최소화 애니메이션 표시가 되지 않아 창의 표시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진다.
* 레지스트리 편집기를 실행한다.
변경 할 사항: 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ControlUpdate 로 이동.
오른쪽 창의 ``UpdateMode`` 에서 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클릭하고 수정을
선택,value를 1에서 0으로 바꾼다.
배경화면은 없음과 무늬도 없음으로 해놓는것이 좋은방법이다.
아이콘은 최대한 정리한다
윈도우즈 사운드
제어판-> 사운드에 가면 소리 정하는 것이 있죠?
기본적인 경고메시지의 사운드만 빼놓고 모두 삭제해보세요.
효과 있구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건 윈도우 시작음과 종료음이랍니다.
시작 프로그램 정리
시작버튼->실행을 누르고 msconfig 입력
맨 마지막 탭인 `시작 프로그램`선택.
필요한 것만 사용하고 모두 지우세요.
메뉴 애니메이션
바탕화면 오른쪽클릭-> 등록정보-> 효과
밑 체크하는 곳이 여러가지 있죠?모두 체크를 지우세요.
그런데..가능한 색을 모두 사용하여 아이콘 표시의 체크를 없에면
아이콘이 지저분해집니다. 그냥 이것만 하시는것도 괜찮은 방법이죠.
시스템 CPU 사용율 향상을 위한 설정하는 방법
: 시작->실행->regedit->엔터 로 레지스트리 편집기를 실행시킨 후 다음 키를 찾아들어간다.
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ServicesVxDBIOS
그런다음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클릭하고 팝업메뉴에서 DWORD 값을 선택한 후
이름을 CPUPriority 라고 써넣는다.
다시 생성된 값을 더블클릭하여 십진값을 선택한후 1 이라고 입력한다.
이것은 테스트한 결과 어떠한 프로그램을 실행하든 간에 거의 99% 정도의 CPU 활용도를
가능하게 하는 설정이다. 윈도우9x 에서의 기본값은 3이다.
만일 여러분 시스템의 실시간 성능을 살펴보려면 1대신 0을 입력하면 된다.
하지만 이 값은 Microsoft 측이 권장하지 않는 값임을 알려둔다.
몇몇 경우에는 레지스트리 상에 BIOS 관련 키가 없을 수도 있는데 이는 바이오스상에 전원관리
설정이 활성화되고 윈도우9x의 ACPI BIOS 확장이 비활성화된 경우이다.
그렇다면 먼저 'Plug and Play BIOS' 아이템 리스트를 제어판 -> 시스템 -> 장치관리자 -> 시스템
장치 순으로 찾아들어가 확인해야 한다. 여하튼 여기 그외에 몇가지 DWORD 값을 소개한다.
이러한 설정을 이용해 CPU 작업 우선순위를 알맞게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PCIConcur = 1 (활성)
FastDRAM = 1 (활성)
AGPConcur = 1 (활성, 만일 여러분이 사용하고 있는 그래픽카드가 AGP 기반이라면...)
몇몇 AMD K7 기반 시스템상에서는 이러한 설정이 불가능할 수도 있음을 확인했으므로
자신의 레지스트리 편집기상에 위에서 언급한 키가 없다고 너무 속상해 할 필요는 없다.
윈98 리소스 확실히 올리는 방법
Windows 98 기준
윈도우의 리소스란 그래픽 환경으로 이루어진 윈도우에서 그래픽 요소들이 저장되는 128KB를 가진 지역 힙(Heap)이라는 곳이 있는데 128KB의 지역힙만을 우리는 리소스라고 부른다.
이 영역에서 저장되는 것은 윈도우의 바탕화 면이나 아이콘, 폰트, 사운드 등의 그래픽 요소와 기타 레지 스트리 등의 시스템 자원들이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한가지 궁금증 하나. 만일 하드웨어 램의 용량을 크게 늘리면 128KB의 리소스 영역도 늘어나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이 영역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128KB 공간을 사용하는가가 리소스 확보의 최대 주안점이 되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시스템 리소스`라는 걸 많이 확보하는 방법을 설명하겠다.
(1). 화면보호기, 배경화면, 배경무늬, 테마를 없애야 한다.
(2). 디스플레이 등록 정보에서 화면 배색은 `윈도우즈 표준`으로 선택한다.
(3). 바탕화면을 웹 설정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4). 색상수는 16비트면 충분하므로 그 이상 올리지 말고, 해상도도 현재 설정 값에서 한 두 단계 설정 값 을 내린다.
(5). 제어판의 사운드 항목에서 `사운드 구성표` 항목의 드롭다운 단추를 클릭하여 `사운드 없음`을 선택 한다. 윈도우의 효과음을
모두 없애주는 것이 리소스 확보에 가장 확실한 도움이 된다. 그리고 윈 시작음과 종료음도 아쉽지만 없애주면 좋다.
(6). `시작`단추의 `실행` 메뉴를 실행하여 `MSCONFIG`를 실행한다.
그다음 CONFIG.SYS 탭에 있는 선택항목을 전부 꺼준다.
윈도우는 별도의 메모리 관리자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AUTOEXEC.BAT 탭의 선택항목도 모두 꺼준다.
그리고 가장 오른쪽의 시작 프로그램 탭에서 윈도우에서 쓰는
기본적인 4가지(레지스트리 검사, TASKMONITOR, SYSTEM TRAY, LOADPOWERPROFILE)만 빼놓고 전부 체크표를 없애준다.
(7). 레지스트리를 정리해준다. 방법은 `시작`단추에서 ` 실행`창에서 `REGEDIT`라고 입력하여 레지스트리 편집기를 실행시킨다.
가. 화면색 구성표 삭제: 바탕에서 많이 사용되는 화면
색 구성표를 줄여보자. 우리가 사용하는 화면구성표는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에 많은 수의 색 구성표 를 놔둘 필요가 없다.
편집기의 왼쪽 선택에서 `HKEY_CURRENT_USER` 항목을 더블 클릭 한 후 하위 항목이 나타나면 `Control Panel `-`Appearance`-`Schemes`로 이동한 후 많이 사 용하지 않는 가지색, 겨자색, 고대비 등의 색을 마우스를 이용하여 파일을 삭제하듯 삭제하여 준다.
나. 사운드 구성표 삭제: 필요없는 사운드 구성표는 지워도 상관없다.
`HKEY_CURRENT_USER`-`AppEvents`-`Schemes`-`Names`로 이동하여
`Names`앞의 (+)를 클릭합니다. 삭제를 원하는 사운드 구성 폴더를 삭제한다.
다. 마우스 포인터 구성표 삭제:
`HKEY_CURRENT_USER`-`ControlPanel`-`Cursors`_`Schemes`로 이동하여 사용하지 않는 값을 삭제하여 준다.
라. 키보드 설정 값 삭제:
특별한 사용자가 아니라면 한국과 미국 이외의 키보드 값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등록되어 있는 다른 여러 나라들에 대한 키보드 설정값은 지워도 된다.
`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control`-`KeyboardLayouts`으로 이동한 후 한국어와 미국 영어를 제외한 모든 키보드 설정 값 폴더를 삭제한다.
한국어는 뒷 세자리가 412이며 미국어는 409가 붙는다. 이외의 모든 키보드 설정값은 삭제한다.
마. 언어 설정 값 삭제
키보드 설정과 마찬가지로 언어 설정도 삭제하도록 한다. 인터넷을 통해 자주 방문 하는 사이트의 언 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삭제하도록 한다.
`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Control`-`Nls`-`Locale` 로 이동한다.
자신에게필요한 언어설정값을제외하고[예:영어(409)와 한국어(412)] 모든 언어 설정값을삭제한다.
이렇게만 해주면 시스템 리소스가 무려 `94%`가 된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속도 UP!
(1). 임시 파일 줄여 하드디스크 공간을 절약하자
브라우저는 우리가 찾아간 웹 페이지의 버튼, 로고 등 갖가지 자료를 내 하드디스크 폴더에 임시 파일로 저장한다.
내가 다시 그 사이트에 방문할 때 하드디스크에 있는 자료를 읽어 바로바로 웹 페이지가 뜬다.
하지만 그것은 모뎀을 쓰던 옛날 얘기라고나 할까? 초고속 인터넷이라면 웹 페이지를 빠르게 긁어오므로 임시 파일을 저장하는 하드디스크 공간을 쓸데없이 크게 만들 이유는 없다. 인터넷 임시 파일을 저장하는 공간을 적당히 줄이자. 초고속 인터넷이라도 하드디스크에서 읽어오는 것이 더 빠를 때가 있으므로 너무 작게 하지는 말자. 30~100MB가 적당하다.
1). 도구 → 인터넷 옵션 → 일반 탭을 열고 ‘임시 인터넷 파일’에서 ‘설정’ 버튼을 누르자.
2). '사용할 디스크 공간'을 30~100MB로 맞추자. 확인을 눌러서 끝낸다.
열어 본 페이지 목록을 줄인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전에 방문했던 웹 사이트 기록을 남긴다.20일 동안 방문한 기록을 보관하는데
길수록 하드디스크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열어본 페이지 목록의 보관 일을 줄여 쓸데없이
하드디스크 공간을 낭비하는 것을 막자. 0으로하자
1). 도구 → 인터넷 옵션 → 일반 탭에서 ‘열어본 페이지 목록’을 찾는다. 기본 값은 20일이다.
2). 3일이나 7일로 바꾸자. 하루로 해도 문제없다.
프락시서버를 지운다
프록시 서버는 즐겨 찾는 웹 페이지를 저장하고 다른 사람이 그곳에 접속할 때 미리 저장한 페이지를 먼저 보낸다. 하지만 프록시 서버를 찾느라 웹 페이지가 더디게 뜬다. 익스플로러는 프록시 서버를 자동으로 찾는다. 웹 브라우저 아래 막대에서 `프록시 서버 검색중`이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웹 페이지가 한참 뒤에 뜬다. 프록시 서버를 쓰지 않으면 프록시 서버를 켜 둘 이유가 없는법, 과감히 옵션에서 지우자. 그러면 프록시 때문에 웹 페이지가 늦게 뜨는 일은 없다.
1). 도구 → 인터넷 옵션 → 연결 탭에서 ADSL을 쓰는 사람은 `전화 연결 및 가상 사설망(VPN) 설정` 에 나오는 것을 고른다. 케이블 서비스를 쓰는 사람은 `LAN 설정` 버튼을 누른다.
2). `자동으로 설정 검색`에 있는 체크를 지운다. ADSL을 쓰는 사람은 `전화 걸기 설정`에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그대로 둔다.
Windows 98의 문제해결 방법
    1) 메모리가 부족할 경우
    • 현재 실행중인 프로그램을 모두 종료한 후 [시작]-[시스템 종료]-[시스템 다시 시작] 실행
    • 시스템을 재시작해도 문제가 생기는 경우 하드디스크의 불필요한 파일들을 삭제
    • 시작 메뉴의 시작 프로그램 폴더에서 불필요한 프로그램을 확인한 후 삭제
    2) 디스크 공간이 부족할 때
    • [휴지통] 비우기 실행
    • [디스크 검사]를 통해 디스크 오류를 검사하여 수정
    • 불필요한 파일은 백업한 후 하드디스크에서 삭제
    • 사용하지 않는 한글 Windows 98 구성 요소를 하드디스크에서 삭제
    • [디스크 공간 늘림]을 수행하여 디스크 공간을 넓힘
    • 디스크 정리를 사용하여 필요없는 파일 제거
    • 3) 하드웨어 충돌
      두 개 이상의 장치가 동일한 자원을 사용하려고 할 때 하드웨어 충돌이 일어나게 됨
    • 도움말의 문제 해결사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음(도움말의 하드웨어 충돌문제 해결사를 실행)
    • [장치 관리자]에서 직접 문제 해결
    4) 인쇄중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일부만 인쇄될 경우
    • 인쇄 방향(가로/세로)을 제대로 설정했는지 확인
    • 프로그램이나 등록정보의 설정이 맞게 되었는지 확인(용지 설정이 맞게 되었는지 확인)
    텍스트와 그래픽이 잘
    못 인쇄되거나 전혀
    인쇄되지 않을 경우
    • 프린터 공유기를 사용할 경우 접속상태 확인
    • 프린터 캐이블이 병렬일 경우 케이블의 길이는 1.8m 이하이어야 하므로 그 이상이면 짧은 케 이블로 교체
    글꼴이 잘못 인쇄될경우
    사용하는 글꼴 확인(트루타입 글골이나 프린터 글 꼴을 사용할 것, 화면 글골은 인쇄했을 때 화면에 서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음
    인쇄속도가 느릴 경우
    • 프로그램에서 인쇄나 다른 작업을 수행하는 속 도가 느릴 경우 [프린터]의 [등록정보]를 열어 스풀(SPOOL) 설정 여부 확인
    • 뭄서의 추력 속도가 느린 경우 [프린터]의 [등록정보]를 열어 스풀(SPOOL) 설정을 해제하거나[스풀 데이터 형식]을 [RAW]로 변경항 후 확인
    5) 부팅이 되지 않을 경우
    • 하드웨어 장치에 문제가 있거나 프로그램의 충돌로 인해 부팅이 안될 경우 안전모드(Safe-mode)로 시작하여 잘못된 부분을 수정한 후 정상모드(Normal-mode)로 재부팅
    • 시스템 파일이 손상되었다면 시동 디스크로 부팅하여 시스템 파일을 하드디스크로 복사한 후 재부팅
    •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경우,시동 디스크로 부팅하여 백신프로그램으로 바이러스퇴치
    6) 한글 Windows 98에서 자주 생기는 문제들과 해결 방법
    시스템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질 경우
    • COMS SETUP 설정이 잘못되었는지 확인
    • [제어판]-[프로그램 추가/제거]를 통해 불필요한 프로그램 제거
    • [디스크 조각 모음]으로 하드디스크의 단편화 제거
    Windows 사용 도중 잘못된 연산을 수행하여종료한다는 메시지가나올 때
    • 문제를 일으키는 프로그램 재설치
    • [디스크 검사]로 하드디스크에 에러가 있는지 확인
    • [제어판]의 [시스템]을 실핼하여 [시스템 등록정보]에 표시된 장치 중 문제를 일으키는 장치
      ('!' 표시가 나타남)
    • 위의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indows
      재설치(문제를 일으키는 파일만 골라 설치할 수도 있음)
    시스템 사용 도중 전혀 무반응일 경우
    [Ctrl] + [Alt] + [Del]를 무르면 현재 작업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의 [프로그램 종료] 창이 나타나는데, 이 중응답이 없는 프로그램 종료
    Windows 기동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Windows 시동시에 [F8]을 눌러 부팅 메뉴를 선택
    하여 기동할 것
    네트워크 로그온되지 않거나 자신의 컴퓨터를 찾을 수 없을 경우
    • 네트워크 어댑터가 올바르게 설치되었는지 확인
    • 케이블 네트워크 어댑터에 올바르게 연결되었는지 확인
    • 자신의 컴퓨터가 올바른 작업그룹으로 설정되
      었는지 확인
    • 네트워크 구성요소(네트워크 클라이언트, 어댑
      터, 하나 이상의 네트워크 프로토콜)가 설치되었는지 확인
    • 실행중인 네트워크 프로그램이 올바른지 확인
익스플로러 옵션을 미리 조정해 놓는게 좋은방법
음악이나 동영상을 트는 웹 페이지나 움직이는 이미지 광고 배너를 단 곳에 접속하면 뜨는 속도가 느리다. 익스플로러 옵션을 미리 조정해 놓았다면 그런 일은 없다.
웹 페이지 뜨는 시간을 잡아먹는 요소를 없애서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막자. 익스플로러 창에서 도구 → 인터넷 옵션 → 고급 탭을 누른다.
2). 멀티미디어 항목이 나오면 `웹 페이지에서 비디오 재생` `웹 페이지에서 소리 재생` `웹 페이지에서 애니메이션 재생` `이미지 디더링`에 있는 체크를 해제한다.
3). 아래로 내려 오면 보안이 나온다.`브라우저를 닫을 때 임시인터넷 파일폴더 비우기`에 체크한다.
4). 탐색 항목에서 `예약시 동기화할 오프라인 항목 표시` `주소 표시줄에 [이동]단추 표시` `URL을 항상 UTF-8로 보냄`에 있는 체크를 없앤다.
5). 적용과 확인을 누르고 PC를 다시 시작한다.
익스프로빠르게하는 방법
아래 있는 레지스트리 지우시면 익스플로어가 굉장히 빨라지는군요.
원래 최적화 해서 저도 사용하고 있지만 이거 지우고 더 빨라 졌습니다.
진짜로 익스플로어 날라다니는 군요...
이거 지우고 특별한 이상 증상은 없었습니다.
우선 지우시기전에 regedit에서 Shell Browser에다가 마우스포인트 갖다놓으신다음에 오른쪽 클릭하면 내보내기 있거든요.아무이름정해서 저장해놓고 지우시고요..나중에 문제 생기면..저장하신 화일 더블클릭하시면 다시 만들어집니다..(아직 특별히문제있는경우는 못봤습니다..)

HKEY_CURRENT_USERSoftwareMicrosoftInternet ExplorerToolbarShell Browser

이 Shell Browser는 웹브라우저 처럼 탐색기 즉 컴퓨터 내의 파일 및 폴더를 검색하는겁니다. 따라서 탐색기나 내 컴퓨터 같은데서 주소표시줄을 사용하시는 분은 아무리 지워도 다시 생깁니다. 따라서 효과를 보실려면 내 컴퓨터나 탐색기 같은데서 주소 표시줄릉 없애고 레지 삭제해야 될것 같습니다^^
이건 상절회원분들도 많이 아시리라 생각합니다..윈비에 올라온건데 문제가 없기에 제가 덧붙여 정리해서 올립니다..
인터넷 속도 제한 푸는방법
***순서대로 따라하기만하면된다.펜과 종이가 준비되었으면 받아적으라!그리고 분명히 해둘것은 기존설정의 변경이전에 반드시 당신의 컴퓨터에 설정되어있는 기존 값들을 메모해두어야 한다.
만에하나 잘못되더라도 복구시키면 돼니까.***

1. 컴의시작메뉴에서 실행을선택한다>>그러면 열려는 프로그램을 선택하라는창이뜰것이다.
2. 실행란에 regedit 라고쓴다>>그러면 창이 바뀔것이다
3. HKEY_LOCAL_MACHINE 을더블클릭한다
4. System 을더블클릭한다
5. CurrentControlSet 을더블클릭
6. Services 을더블클릭
7. Class더블클릭
8. NetTrans더블클릭
9. 그러면 0000부터000n까지의 숫자가 있을것이다.(어떤사람은0000만있을수도있고
n개다있을수도있다)

!여기까지의 경로>>> 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ServicesClassNetTrans

10. 0000부터000n까지 하나씩선택하며 우측창을 살펴보면 TCP/IP 라는항목이 보이는가?
보인다면그창의 빈공간 아무곳에나대고 마우스 우측버튼을 클릭한다.그리면 등록이라는 작은창이뜰것이다.그리고 문자열을 선택한다.

11. 자 그러면 NewValue라는것이뜰것이다.여기다 이렇게쓴다.>> MaxMTU >>그리고엔터
(대소문자주의)
12. 그러면 문자열값을 입력하라는메시지가뜬다.그러면 이값을 넣는다.>> 1500 >>그리고 확인
13. 10번의방식으로 또하나만든다.다시 NewValue가나오면 같은 방법으로쓴다.>> MaxMSS >>엔터
다시문자열값입력>> 1460 >>확인

여기까지 하나의 작업이 끝났다.자이제 두번째작업으로들어가자
(주의!이미MaxMTU 와 MaxMSS가있는분은 값을수정하고 없는분만 새로만들어 추가하면된다)

이전까지는 잘모르는 분들을위해 상세히 편집할레지스트리까지 찾아가는방법을 하나하나 적어두었지만 이제부터는 어느정도 편집에 익숙해졌으리라 생각하고 편집할항목이있는 곳까지의 경로만 쓰겠다.아직도 이해가안가는 분을위해 앞의 첫번째작업에서 편집했던곳의
경로는 >> 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ServicesClassNetTrans 였다.

1. 우선여기까지 찾아들어가라.>
> 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ServicesVxDMSTCP >>Services 까지는 처음과같다.Class가아닌 VxD를 찾아 선택하라.
2. MSTCP항목을 더블클릭 하지말고 선택한상태로 우측을보면 MSTCP의 레지스트리정보가있는 창이있다.거기다대고 첫번째와같은 작업을 시작한다.

3. 마찬가지로 다음의값이 있는사람은 수정하고 없는분은 등록하라.앞으로도마찬가지다.
총4가지의값을등록하거나 변경한다.
첫번째.--------------------------------------
DefaultRcvWindow(문자열을선택)
값은 윈도우95든98이든 "373300"으로하라(바보같이 따옴표찍지마라.숫자만 써라)

두번째.---------------------------------------
DefaultTTL(문자열을선택)
값은 "128"로한다

세번째.---------------------------------------
PMTUBlackHoleDetect(DWORD십진수선택)
값은 "0"으로한다

네번째.---------------------------------------
PMTUDiscovery(DWORD십진수선택)
값은 "1"로한다

==========================================================================
**자 윈도우의 95의유저의경우 수정하는 레지스트리의값은 모두끝났다.밑에적히는 부분은 윈도우98의경우로서 95를쓰는사람은 절대 변경하지말길바란다.느려진다.분명히윈도우 98이다!!**
==========================================================================

자두번째작업까지하는라 수고많았다.98을쓰는당신은 몇가지더 수정해야한다.그럼이제
세번째작업으로 들어가자.

1. 다음의경로를찾아들어가자.
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ServicesVxDMSTCPParameters
(두번째작업을했던 VxD레지스트리의 하위항목이다)

2. 찾았는가?그러면 다음에따른다
Parameters 항목을 선택하면 우측에 레지스트리값들이표시된다.여기서 위에했던 작업들과마찬가지로 세가지를 등록하거나 수정하자.

첫번째.---------------------
Tcp13230pts(문자열을선택)
값은 "3"이다

두번째.----------------------
SackOpts(문자열을선택)
값은 "1"이다

세번째.-----------------------
MaxDupAcks(DWORD십진수를선택)
값은 "3"이다



메모리 최적화하기
캐쉬는 메모리를 일종의 중간창고로 해서 보조기억장치의 속도를 보다 빠르게 해줍니다. 시스템 메모리/캐시관리를 통해 시스템의 속도 및 안정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시스템 유틸리티인 캐쉬맨을 사용하여 속도를 개선해 보세요
Cacheman의 자료를 다운 받고 자세한 내용을 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시스템메카닉을 이용한 최적화
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면 시스템에 불필요한 파일이 많이 쌓이고 레지스트리가 복잡해져서 점점 컴퓨터는 느려지고 불안해집니다. 하지만, 일반 사용자들이 일일이 불필요한 파일을 찾아서 지우고 레지스트리를 정리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럴 때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간단히 컴퓨터의 내용을 정리하여서 컴퓨터를 부드럽게 사용할수 있습니다.
시스템메카닉의 자료를 다운 받고 자세한 내용을 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EasyWinCleaner 2002를 이용한 인터넷 최적화
이프로그램의 장점은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전문가 수준의 최적화가 가능하다. 바로 인공지능 최적화를 실행하면 됩니다. 시스템메카닉과 비슷한 유틸리티이나 이것은 프리웨어로 사용에 제한이 없으며 국산 프로그램입니다. 인터넷/네트워크 최적화로 인터넷을 가장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인터넷/네트워크 관련 설정값을 최적화 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테스트 해본 결과 실재로 인터넷 속도가 개선되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EasyWinCleaner 2002를 다운 받고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아래 №2 부터는 윈도우XP에서 레지스트리나 설정을 바꾸어서 속도를 개선 하는 팁 모음입니다.
웹페이지 로딩을 빠르게
윈도탐색기 -> 도구 -> 폴더옵션을 선택하신 후 [보기]탭에 보시면 [네트워크 폴더 및 프린터 자동검색]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이 항목의 선택을 지운다.
프린터 자동검색을 해제하시면 웹페이지가 단번에 뜹니다.
화면 이동을 부드럽게?
익스플로러에서 화면이동할때 마우스의 휠기능을 사용하는데 좀 무겁게 느껴진다거나 끊기는 느낌이 있을때 유용한것 같네요.특히 저사양 컴퓨터에서..익스플로러 -> 도구 -> 인터넷옵션 -> 고급 -> 부드러운 화면이동 체크를 해제.
메뉴 팝업속도 높이기
시작을 클릭하거나 하위 프로그램메뉴가 나타날때 속도를 높이는 레지수정방법입니다.
(1).시작-실행-regedit
(2).다음 경로를 찾아갑니다
HKEY_CURRENT_USERControl PanelDesktop
(3).여기서 MenuShowDelay 의 값을 더블 클릭해서 원하는 값으로 변경해주
면 메뉴팝업속도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최소 0(가장 빠름)~65534(가장 느림)까지 설정할 수 있습니다.
윈도 9X/me의 경우 기본값이 250이고 윈도 XP/2000/NT의 경우 400입니다
기본보다 빠르게 설정하려면 값을 400보다 낮게 설정하면 되겠죠
윈도우 xp 인터넷익스플로러 로딩속도 향샹법
(1) DNS캐쉬수정으로 브라우저속도 높이기
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Services
DnscacheParameters에서
다음항목의 값을 입력한다(없으면 새로 오른쪽 마우스 클릭하여 새로만들
기->DWORD값-10진수로 만든다)
※. 반드시 10진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CachehHashTableBucketSize---->1

CachehHashTableSize---------->384

MaxCacheEntryTtlLimit-------->64000

MaxSOACacheEntryTtlLimit----->301
폴더창 속도향상하기
제어판에서 [폴더옵션]을 실행한 다음,
[보기]=>[고급설정] 부분에서
[폴더 및 바탕화면 항목에 팝업 설명 표시]와
[압축된 파일과 폴더를 다른 색으로 표시] 그리고,
[독립된 프로세스로 폴더창 실행]의 체크를 해제하여 속도 향상
윈도우 창이 뜨는 속도 높이기
윈도우즈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높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창의 최대화 , 최소화에 따른 애니메이션 효과도 속도를 저하 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다.여기서는 그 속도를 높여주는 방법
레지스트리 편집기를 실행한다.
변경 할 사항: HKEY_CURRENT_USERControl Paneldesktopwindowmetrics 로이동 우측 화면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른후 [문자열 값]을 선택하고 MinAnimate라고 입력한다.그다음 이 값을 더블클릭하여 값을 "0"으로 설정한다. 이것으로 창이 열리거나 닫힐때 최대화 , 최소화 애니메이션 표시가 되지 안 아 창의 표시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진다.
윈도우 탐색기를 좀 더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
일단 시작버튼-> 실행을 선택한 후 -> regedit 를 입력하고 엔터를 눌러서 레지스 트리 편집기를 엽니다.
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Control/
여기에 update 로 가서 오른쪽에 보면 updatemode라고 있을겁니다.
updatemode에서 오른쪽 버튼 눌러서 수정해주면..값이 나오는데.
0000 01 이라고 아마 나올겁니다..거기서 01을 00으로 고쳐주면 됩니다..
아마 0만 치면..자동으로 00 이 될겁니다..
이렇게하시고 윈탐색기를실행시켜서..폴더를 돌아다니다보면..좀빨라졌다는걸 느끼실겁니다..
CMOS SETUP설정으로 PC속도 향상하는 방법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양의 컴퓨터를 가지고 있을때 자신의 컴퓨터의
부팅시간이 배이상이나 느릴때는 CMOS SETUP설정을 제대로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바이오스 조정에 대한 몇가지 팁을 알려 드립니다. 위에 설명들을 보시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설정을 해주시면 빠른 부팅속도를 얻을수 있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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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명령어]
calc (계산기)
charmap 문자표
cleanmgr 디스크정리
clipbrd (클립보드에 복사된 내용 표시)
cmd(도스명령프롬프트 실행) 단, 윈98은 command
control (제어판)
dfrg.msc 디스크 조각모음
dxdiag (다이렉트X 진단도구 및 그래픽과 사운드의 세부정보를 보여줌)
eudcedit 사용자 정의 문자 편집기
explorer 탐색기
magnify 돋보기
mobsync 동기화
msconfig(시작프로그램 제어등 많은기능 제공)
msinfo32 시스템정보
mstsc 원격 데스크톱 연결
netstat -na(현재 열린포트와 TCP/IP 프로토콜정보를 보여줌)
         열린포트로 트라이목마형 바이러스 침투 유무확인가능
notepad 메모장
ntbackup 백업 및 복원 마법사
osk 화상키보드
pbrush 또는 mspaint (그림판)
ping 사이트주소(핑테스트 해당 사이트의 인터넷연결 유무 확인)
regedit(레지스트리 편집기)
sfc(시스템 파일 검사기)
   - 시스템 파일을 검사한후 깨지거난 손실된 파일을 원본 압축파일에서 찾아서 복원시켜줌
     단, 윈2000에서는 cmd실행 후 sfc사용 - 마지막 설정된 값을 다음 윈도우부팅시 곧바로 실행됨[수정]
sndrec32 녹음기
sndvol32 (시스템 사운드 등록정보,볼륨조절)
sysedit(autoexec.bat, config.sys, win.ini, system.ini 시스템구성편집기)
systray(사운드 볼륨설정 노란색 스피커 아이콘을 트라이목록에 띄움)
telnet open 사이트주소(텔넷접속명령어)
tourstart (윈도우 기능안내 html 문서표시)
wab 주소록
winipcfg(인터넷에 접속된 자신의 아이피 주소를 보여줌) 단, 윈2000은 ipconfig로 변경됨
winmine (지뢰찾기)
winver (윈도우 버전확인)
wmplayer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
wordpad 워드패드
wscui.cpl 보안센터
wupdmgr 윈도우업데이트
 
[MSC 명령어]
certmgr.msc : 인증서 관리
ciadv.msc : 인덱싱 서비스
compmgmt.msc : 컴퓨터 관리
devmgmt.msc : 장치관리자
dfrg.msc : 디스크 조각 모음
diskmgmt.msc : 디스크 관리
eventvwr.msc : 이벤트 뷰어 (이벤트 로그)
fsmgmt.msc : 공유 폴더 (공유 폴더 관리)
gpedit.msc : 그룹 정책
lusrmgr.msc : 로컬 사용자 및 그룹
ntmsmgr.msc : Removable Storage
ntmsoprq.msc : 이동식 저장소 운영자 요청
perfmon.msc : 성능
rsop.msc : 정책의 결과 집합
secpol.msc : 로컬 보안 설정
services.msc : 서비스
wmimgmt.msc : WMI 서비스 구성
comexp.msc : comexp 구성 요소 서비스
control userpasswords2 : 사용자 계정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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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제한 없애주는 프로그램
TRIAL버전 같이 날짜제한 있는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쓸수있게 해주는 프로그램DateCrack 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rack ver 1.05 의 사용방법
 
 이 프로그램은 시간제약을 없애는 프로그램입니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데모버전은 1달가량(일정기간)
 동안 사용자에게 사용해보도록 날짜를 정해서
 그 이후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따라서, 기존의 방법으로는 윈도우의 날짜-시간을
 바꿔서 사용하는데 이건 다른 프로그램의 시간감각을
 상실할 수 있어 안전하면서도 내키지 않는방법.
 두번째 방법으로는 일정 시간이 되어서 사용을 못하면
 다시 모든 파일을 지우고 다시 세팅을 한다.
 이 방법 역시 매우 불편합니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이런 불편함을 없애고자 또한
 프로그램 장사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돈없는
 학생들을 위하야 시간제약을 가하는 프로그램을 완존
 히 해부해서 완존히 그 프로그램만 시간이 정지된
 상태로 평생을 보내게 만드는 막강한 프로그램입니다.
 

  우선, 다운 받은 Datacrack.zip 압축을 푼다.
 
  step1  우선 Crackcfg.exe
             Datacrck.exe
             Cmdialog.vbx
             Datacrck.txt (이건 선택 사양)
             이런 화일을 시간제약을 가하는 프로그램의
             실행화일이 들어있는 디렉토리에 카피한다.
            (예를 들어, Paint Shop Pro 디렉토리가 있다면
             Psp.exe 라는 실행화일 있는데 그 디렉토리에
            위의 4개의 화일을 카피한다.)
 
  step2  Crackcfg.exe 화일을 실행시키면 날짜를 입력하는
            부분과 (월-일-년), write close, Program To Run
            부분이 있는데_
            1. 날짜를 입력하는 부분에 자기가 시간정지 하고픈 날짜를 적는다.
               예를들어, 1997년 10월 10일이 1달데모 프로그램 만기일이라면
               대략 1997년 09월 15일로 적어두면 이 프로그램은 항상 세팅한지
               5일밖에 안된걸로 착각을 합니다.
            2. Program To Run 부분은 데모프로그램의 실행화일 입력란인데...
               버튼을 누르셔서 골라만 주면 됩니다.
               예를들어, Paint Shop Pro 프로그램이라면 Psp.exe 을 골라주면 되겠죠.
            3. 그 후 Write 버튼을 강하게 한번 눌러만 주신다면 세팅은 완전히 끝납니다.  
 
  step3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그러면 crack.dat 라는 화일이 생성됩니다.
            이 화일이 시간 정지를 시켜버리는 데이타를 가지고 있죠.
            그리고, 실행을 하실때 기존의 실행화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까 카피를 했던
            Datacrck.exe 을 실행하세요.
         
            Psp.exe 화일이 있다고 하면 step2 을 거친 후, Datacrck.exe 을 실행하면
            Datacrck.exe -> Psp.exe 의 순서로 실행.
         
  step4  (선택사양)
            Datacrck.exe 화일을 알아보기 좋게, 예를 들어 PspCrack.exe로 화일명을
           바꿔주면 보기 편하겠죠.

  step5  꼭 vbrun300.dll 을 windows의 system디렉토리에 카피해 놓으세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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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ED사용법

인터넷관련 2008. 3. 28. 11:14

일반적으로 embed 속성을 사용 하면 나타나는 미디어 플래이어 입니다.

이것을 아래와 같은 형태 또는, 이중에서 필요한 부분만 사용하는 방법 입니다.
 

플래이어의 형태를 변경 할려면 우선 embed 의 type 을 넣어주고  pluginspage 를 넣어 주어야 합니다.

pluginspage='http://www.microsoft.com/windows/mediaplayer/download/default.asp'>

파라미터의 속성 입니다.
각각의 값은 1 이면 보이고 0 이면 보이지 안습니다.


**파라미터의 속성**

SHOWCONTROLS
 


SHOWSTATUSBAR
 


SHOWDISPLAY
 


SHOWGOTOBAR
 


**SHOWCONTROLS 만 나타내기.**

FileName="http://음악주소" width=300  SHOWCONTROLS=1 SHOWSTATUSBAR=1 SHOWDISPLAY=1
SHOWGOTOBAR=1 AUTOSTART=1 PlayCount=0>


결과보기
 


**SHOWSTATUSBAR 만 나타내기.**

SHOWCONTROLS, SHOWDISPLAY, SHOWGOTOBAR,은 각각 0 으로 하고

SHOWSTATUSBAR 만 1 로 합니다.




펌:http://blog.daum.net/hanlimpark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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