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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12 상업미술의 거장 - 앤디워홀 (Andrew Warhola, Andy Warh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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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화가 이름이라고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밖에 알지 못하는 미술 문외한 이라해도 마릴린 먼로가 갖가지 색으로 반복되어 찍혀있는 그림을 한 번쯤은 접해 보았을 것 이다.
이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 왜 유명한 걸까... 하는 의구심도 가져 보았을 것 이고 말이다.
유럽의 전통미술이 절대적 미적가치의 기준이며 화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을때, 세계 경제 와 미술시장의 큰 손이 된 미국의 자국 출신의 '슈퍼화가'가 없다는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 준 팝 아트의 거장 앤디워홀.
그 상업적이고 속물적인 (비하의 뜻이 아니다.) 예술의 세계를 들여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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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접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이스터 또한 그러했고,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을만한 점은 "대체 왜?" 이 작품이 유명한가 하는 점 일 것이다.
앤디워홀은 뉴욕이 세계 경제 시장의 수도로 떠오르던 무렵 큰 부와 명성을 꿈꾸고 뉴욕으로 건너온 화가 지망생 이었다.
그는 색다른 화풍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켜 유명해지고자 했고, 첫 시도는 만화를 진지한 화단에 등장 시키려는 것 이었으나 리히텐슈타인 이 먼저 시도한 것을 알고서 다른 소재를 찾아나섰고,
그리고... 그 어떤 화가도 생각지 못한 세속적인 소재들에게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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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벨수프'
앤디워홀이 어려서부터 먹으며 자란 깡통. 모든 미국인에게 친숙한 이미지의... 그러나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깡통들의 나열..
그것은 화단의 충격이었고,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앤디워홀을 성공의 길로 단숨에 끌어올렸다. 신문에 까지 이 작품이 실릴 정도로 센세이셔널 했으니 말이다.
전통 화풍에 익숙하던 사람들에게 생각지 못했던 세속적 소재들도 캔버스에 옮겨져 겔러리에 걸릴 수 있다는 충격을 심어준 그는 그 누구와도 차별된 화풍과 색다름으로 미술계의 '슈퍼스타'가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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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가 앤디워홀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독특하고 생명력 넘치는 화풍에 매력을 느껴서 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의 뉴욕에 와서 얻은 첫 직업은 말 그대로 상업 미술가로 신문 등의 저널에 삽화를 그리는 일을 한 것 이었는데 그 중 '신발 시리즈'를 그리다가 유명해져 많은 돈을 번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패션삽화를 그리는 일이 그의 첫 직업 이었던 것 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그리는 데 뛰어난 소질을 보인 그는 이 일로 많은 돈을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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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은 그 소재 선택에 있어서도 파격적인 면을 보였지만 그림을 그리는 기법 또한 파격적 이었다고 한다.
이스터 역시 많이 들어본 그의 '실크 스크린' 기법은  도판화된 그림에 여러겹의 물감을 묻혀 (맞나? 미술전공인 분들 틀렸음 지적해 주시길;;) 판화형식으로 여러개의 같은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 이었는데
당시에만 해도 그것은 공장에서나 쓰던 방식으로 앤디워홀이 처음 이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을때는 전통화단에서 많은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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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앤디워홀은 대중스타의 영향력을 일찍부터 깨닫고 그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을 시도하는 대담함을 보였고 그것이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가 평생 돈과 인기를 쫓았듯이 그것을 쥐고 있는 유명인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낸 것 이다.
그리고 물론, 그도 나중에는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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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마릴린 시리즈 만큼이나 유명한 '더블 엘비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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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업은 단지 캔버스에서만 끝난것은 아니었는데, 공산품을 똑같은 사이즈로 제작하여 전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위에 보이는 Brillo 박스를 본뜬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공항을 통과하다가 미술품이 아닌 공산품으로 오해받아 세금을 물어야 했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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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 출처는 KBS 다큐멘터리 이다.>
공산품으로 취급받은 자신의 작품들과 포즈를 취한 앤디워홀. 꽤나 점잖아 보이는 그의 모습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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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앞이 에디 세지윅, 가장 끝이 앤디워홀>
그는 작품으로 많은 부와 명예를 얻으면서 단순히 화가에 그치지 않고 영화를 찍는등 다양한 작업을 펼쳤다.
그는 자신의 작업공간을 팩토리라고 부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하곤 했다.
그리고 그의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을 '슈퍼스타'라고 불렀고, 한국에서 그중 가장 익숙한 이름에는 얼마전 '팩토리걸'이라는 이름의 시에나 밀러 주연의 영화의 모델이었던 에디 세지윅이 가장 대표적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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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워홀.
그는 자신이 아끼는 사람의 초상일 수록 실크스크린 사용시 많은 색을 들여 정성스럽게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돈을 벌기 위해 유명인들의 초상을 대충 그려주다 사교계 화가 라는 비아냥을 샀다고 까지 하지만...
그래도 이스터는 그에게 반했다.
단 한마디로 이스터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그의 말은.
"신문의 내용에 신경쓰지 마라. 그 신문의 길이에만 신경써라."
였다.
일반적인 도덕관념에서 벗어난 진정 자유로운 예술가였던 앤디워홀. 돈과 명예를 쫓으며 거짓된 위선과 허영으로 가득찬 예술계에 속하면서도 그 예술계를 마음껏 비웃을 수 있었던 그의 모습.
봐서 즐거우면 되는 것이 예술이라고 외칠 수 있는 첫 예술가 였으며 세상 모두가 열망하면서도 겉으로 그 욕망을 드러내기 부끄러워 하는 돈과 명예에 대한 사랑을 거침없이 보여준 그 광기어린 솔직함이...
이스터에게는 너무도 매력적 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과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 대한 동경과도 같은 종류의 것 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원하던 것을 당당히 말하고 원하던 것을 당당히 성취하고 간 앤디워홀.
그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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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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