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밀라노·뉴욕발 허리 밑 20㎝‘나노미니’ 서울 상륙
작년보다 길이 더 짧아져 엉덩이선 위협
레깅스와 앞축에도 굽이 있는 플랫폼 구두 매치
퓨처리즘과 결합 플라스틱·금속 소재도 유행
▲ photo Preen

마감이 끝난 날 오후 느긋하게 TV 앞에 앉았는데 주부 열 명이 소개팅 대열로 마주앉아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화면 중앙에 써 있는 주제를 보니 ‘노출’. 잠시 들어보니 한쪽에서는 ‘타인을 너무 배려하지 않고 상식 수준을 넘어 옷을 입는다’라는 게 요지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마다 제각기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그 기준에 다 맞춰 옷을 입을 것인가’라는 게 요지였다.


여름만 되면 늘 반복되는 주제라서 별반 신선할 것도 없지만 올해의 주요 타깃은 바로 미니다. 몇 년 전에는 경범죄로 처벌될 만큼 배꼽티가 화제였고, 그 다음엔 일명 ‘끈달이 나시’라고 불리는 캐미솔이 물망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 노출의 핵심에는 단연코 미니가 있다.


패션 잡지에 몸담고 있는 만큼 어떤 옷에도 관대한 편이다. 아름다운 옷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옷에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올해의 미니는 나도 두려울 만큼 짧!다! 미니 열풍은 지난해 파리와 밀라노, 뉴욕의 패션쇼에서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이 앞다투어 미니를 내놓을 때부터 이미 예감되었던 것이지만 1년여의 숙성 기간을 거치더니 이제는 더 이상 짧아질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인 초미니도 등장했다. 이름도 마이크로 미니(micro-mini)를 너머 나노 미니(nano-mini)라고 불린다. 무릎 위 20~30㎝로, 허리에서부턴 한 뼘 정도밖에 안되는 길이다.


유행이라는 게 ‘막가파적 성질’이 있어 일단 시작되었다 하면 바닥을 짚고 하늘을 쳐야만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법이다.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이다 맨 아래 갈비뼈를 잘라내기까지 했고, 나팔바지가 유행하던 무렵에는 거리의 낙엽을 바지 밑에 달고 다녔으니까. 미니 역시 처음에는 소박하게 치마 길이가 무릎 위로 올라서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엉덩이 바로 밑까지 치받고 있다. 1970년대에 경찰관들이 풍기문란 단속을 한다고 30㎝ 자를 들고 무릎을 기준 삼아 스커트가 얼마나 짧은가를 쟀다면 이제는 그 기준점이 엉덩이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 Prada

미니가 유행할 때마다 경기가 좋지 않다거나 혹은 불경기에 대한 예고 신호라는 등의 경제적 해석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경제와 무관하다. 그저 여성적이고 낭만적인 사조에서 장식이 배제된 모던한 미니멀리즘으로 옮아가는 과도기에서 젊고 발랄한 1960년대 스타일에 1980년대 스타일이 가미되어 회고되고 있을 뿐이다. 1960년대는 엄마 옷을 흉내내어 입던 젊은이들이 어른들이 넘볼 수 없는 자신만의 패션을 만들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때 비소로 1950년대까지 짧다고 해봐야 무릎을 스치던 치마 길이를 무릎 한참 위로 댕강 잘라버렸고, 오렌지, 그린, 블루 등 강한 원색 컬러를 겁 없이 믹스했으며, 가슴이나 엉덩이의 여성스러운 볼륨은 무시한 채로 덜 자란 듯한 깡마르고 미성숙한 몸매로 어른 되기를 거부했다.


이번 시즌 유행하는 미니 원피스를 봐도 허리선을 조이지 않고 밑단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A라인이나 가슴선 바로 밑에서 잠시 한숨 고르고 빵실하게 부풀린 베이비돌(baby doll) 스타일이 많은데 이 역시 1960년대에 시작되었다. 이름에서도 쉽게 짐작되겠지만 ‘베이비 돌’ 원피스는 실루엣만 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생에게나 어울릴 만큼 귀엽고 깜찍한데 최근에는 연령 불문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많은 남성이 ‘나잇값을 못 한다’며 탐탁지 않게 여기는 데 비해 여성들은 최소 서너 살은 어려 보이는 점이나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하는 점, 또 배꼽 주변으로 집중되어 있는 군살을 교묘하게 숨겨준다는 이유로 선호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에어로빅 열풍과 함께 급부상했던 ‘레깅스’가 미니와 함께 재등장하여 행동을 자유롭게 해주니 더 이상 미니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 레깅스는 스타킹처럼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지만 면 티셔츠 정도의 두꺼운 소재라서 속옷이 아닌 겉옷이라는 느낌이고 스커트나 반바지와 겹쳐 입기에도 아주 편하니 주변 시선 거리낄 것 없이 과감하게 미니에 도전할 수 있다. 게다가 레깅스만 입었을 때 수습되지 않는 허벅지 살이나 엉덩이 군살은 미니스커트가 가려주니 이것이야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스타일링 아닌가.


트위드 재킷과 일명 ‘샤넬 라인’이라고 불리는 무릎을 살짝 가리는 정도의 점잖은 스커트 정장으로 유명한 샤넬 패션쇼도 예외없이 미니의 향연이었다. 끊임없이 나오는 모델의 미끈한 다리들을 보고 있자니 패션쇼가 은빛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맑은 시냇물처럼 느껴졌다. 상의인지 원피스인지 헛갈릴 정도의 짧은 미니스커트와 여자 배구선수 유니폼만큼이나 짧은 쇼트팬츠였지만 이번 시즌의 미니스커트가 1960년대와 다른 점은 훨씬 성숙하고 여성스럽게 해석되었다는 것이다.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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