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버들이 세계 최고의 바다를 꼽을 때 꼭 들어가는 나라가 팔라우다. 팔라우라고 하면 동남아의 섬나라 같기는 한데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팔라우를 한번 찾아보자. 워낙 작아서 팔라우가 아예 없는 지도도 있을지 모른다.

떠오르는 휴양 명소, 팔라우
평양과 제주를 잇는 경도를 따라 죽 내려오면 적도 바로 위에 팔라우가 보인다. 동경 133.3분, 위도 7도3분. 지도에는 하나의 점으로 나와 있지만 실은 4백여 개 섬으로 이뤄져 있다.

인구 19,129명. 거제도만 한 크기의 팔라우에서는 3층을 넘는 건물을 보기 어렵다. 어딜 가나 1차선의 좁은 도로. 기자가 팔라우를 찾았을 때는 고속도로는커녕 신호등도 나라 전체를 합쳐 딱 2개뿐이었다. 그나마도 작동하지 않아 점멸등처럼 깜빡거렸다. 팔라우 주재 미국대사관도 초라했다. 그저 별장으로 보이는 집 한 채뿐.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경비병도 따로 없었다. 아마 대사가 없는 건지, 아니면 대사가 방문할 때만 머무는 임시 거처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팔라우가 3~4년 전부터 유명해졌다. 국내 대형 여행사가 전세기를 띄우면서 팔라우라는 나라가 허니문 여행지이자 휴가 명소로 떠오른 것이다. 바다 물빛이 좋은 데다 고운 산호초가 많이 발달해 있어 ‘쉬는 여행’에는 딱이다. 해저의 산호 개펄도 유명하다. 보통 개펄 하면 검은색을 떠올리지만 산호가 부서져 진흙이 된 곳이 산호 개펄이다. 다만 쇼핑이나 놀거리는 그리 많지 않다.

1 산호머드를 몸에 바른 관광객들 2 팔라우 국무부 3 록 아일랜드의 다리모양을 한 바위 4 대통령궁
팔라우의 관광 포인트는 록아일랜드다. 록아일랜드는 팔라우에서 가장 유명한 다이빙과 스노클링 포인트다. 록아일랜드는 거대한 산호초가 수중보처럼 기다랗게 뻗은 지역에 흩어진 3백여 개 크고 작은 섬을 통틀어 일컫는다. 화산 활동으로 솟아난 섬이라 대부분 암초에 가까워 록(Rock)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 바위들의 모양이 기기묘묘하다. 꼭 송이버섯처럼 생기기도 했다. 파도가 바위를 깎아 먹어서 물 위에 뜬 부분은 볼록한데 물 아래는 가늘고 길기 때문이다. 열대 식물들이 이 송이 같은 바위를 덮어 겉모습은 푸르다. 크고 작은 섬과 환초대가 파도를 막아주는 잔잔한 바다는 물고기들의 천국이다. 팔라우 정부가 산호초 보호를 위해 주민들을 철수시켜 록아일랜드의 섬들은 모두 무인도로 남아 있다.

영원을 꿈꾸게 하는 작은 섬 바다 속
수도 코롤 섬에서 보트로 30분, 록아일랜드에 닿았다. 록아일랜드 섬 중에는 송이 같은 바위 외에도 제법 특이한 모습을 한 바위도 눈에 띄었다. 해금강처럼 이름을 붙였다면 코끼리섬, 주전자섬, 선녀섬, 방패섬 등으로 불렸을 것이다. 하지만 섬의 이름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고래를 빼닮은 고래섬, 유럽인들이 명명한 것으로 보이는 런던 브리지 정도이다.

록아일랜드의 매력을 이야기할 때 현지인들이 가장 먼저 꼽는 것은 바다 위가 아니라 바다 속이다. 일단 다이버가 아닌 일반인들도 스노클링을 통해 이렇게 화려한 바다 속을 엿볼 수 있다. 현지인들 말로는 포인트도 수십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스노클링 포인트의 규모는 크고 열대어도 많을 뿐 아니라 산호도 다양하다.
막상 죽은 산호초 몇 개 있는 열대의 나라에서 스노클링을 했다가 실망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팔라우는 다르다. 다이빙 못지않게 재밌다.

먼저, 왜 바다 속이 아름다운지 그 이유부터 살펴보자.
팔라우 앞바다에는 4백여 종의 산호가 있다. 단일 지역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열대어 종류도 세계 최대. 북마리아나제도는 9백40종, 하와이는 5백70종인 데 비해 팔라우는 1천4백 종의 형형색색 열대어가 산다. 연산호, 경산호, 시 아네모네스, 튜브 아네모네스, 불산호, 흑산호 등 꽃보다 예쁜 산호 지대에 천사고기, 나비고기, 앤시아스, 붉은줄 개구리고기 등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당연히 스노클링이 재밌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팔라우의 열대어들은 사람들과 친숙하다. 일부 국가에선 바다 오염을 우려해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팔라우는 아직 이런 규제까지는 없다. 그래서 소시지나 닭다리 하나만 들고 있어도 물고기가 떼를 지어 모여든다. 닭다리 하나를 떨어뜨리면 가라앉기 전에 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물고기들의 먹성도 좋다. 산호도 독특하다. 산호들의 무덤이라는 ‘로즈가든’에는 정말 장미를 닮은 산호들이 펼쳐져 있다. 무게가 200㎏이나 되는 조개가 사는 산호 지대의 이름은 자이언트 클램이다. 조개 속에 여신이 들어 있는 서양화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 팔라우다. 참고로 팔라우의 해삼은 어른 팔뚝만 하다.

우윳빛 바닷가로 한나절 소풍
피크닉을 즐기기에도 손색이 없다. 섬에서 즐기는 피크닉을 보통 ‘아일랜드 호핑’이라고 한다. 아일랜드 호핑은 쉬기 좋은 무인도에 들어가 한나절 노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현지 가이드들이 보트에 먹을거리를 싣고 섬에 내려준다. 여행객들은 눌러앉아 수영을 하거나 독서를 하며 쉬는 동안 현지인들이 바비큐를 만들어준다. 바비큐에 맥주 한 잔. 그리고 잔잔한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 보면 작은 섬에 눌러앉아 살고 싶을 정도다.

실제로 산호바다와 모래사장을 끼고 있는 섬에는 여유 있게 피크닉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베트남의 하롱베이보다 낫다는 사람도 있고, 몰디브와 견줄 만하다며 감탄사를 터뜨리는 여행자들도 있다.

산호개펄 머드 팩은 팔라우에서 꼭 해봐야 할 프로그램이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밑바닥에는 산호 가루가 부서져 마치 개펄처럼 쌓여 있다. 연한 옥색을 띠는 우윳빛 바다라고 해서 현지인들은 ‘밀키 워터’라고 부른다. 원주민들이 노련하게 바다 속에서 산호 진흙을 퍼 올려주면 이 산호 팩을 온몸에 바른다. 산호 머드 팩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팔라우에만 존재한다. 여성 여행자들은 “요즘 화장품에도 진주 성분이 들어간다는데 진짜 산호 가루를 몸에 바르면 더 좋지 않겠느냐”며 즐거워했다. 현지인들도 피부가 하얗고 고와지는 데 최고라고 자랑한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5. 버섯 모양의 바위가 둥둥 떠있는 록 아일랜드 앞바다. 6 팔라우 바다. 7·8 팔라우 퍼시픽 리조트 9 록 아일랜드로 아일랜드 호핑투어를 나온 관광객들.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해파리 스노클링도 팔라우의 자랑거리다. 해파리는 바다에 산다. 하지만 수만 년 동안 지각 변동이 일어나 바다가 막혀 호수가 돼버렸다. 사방이 막혀 있는 호수에 살아온 해파리들은 독성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쏘여도 아프지 않다. 아니 사람을 쏘지 않는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수없이 떠다니는 해파리와 함께 수영하는 재미는 압권이다.

팔라우에 스민 한국의 아픈 역사
지금은 팔라우가 평화로운 섬처럼 보이지만 우리에겐 뼈아픈 상처가 남은 곳이다. 2차 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필리핀과 남태평양을 잇는 주요 항로였던 팔라우에 1914년부터 일본군이 진출했다. 1920년대에는 인구가 4만 명으로 늘어났다. 가미카제 자살 공격으로 호주의 브리스베인까지 퇴각한 맥아더는 팔라우와 사이판에서 다시 일본군을 철저하게 격퇴시켰다. 열세에 몰린 일본군이 군함을 나무로 가려 섬처럼 위장했지만 미군은 섬마다 폭격을 가했다고 한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미국령이 됐다가 1994년 독립했다. 지금도 스노클링을 하면 바다에 가라앉은 난파선을 볼 수 있다. 2차 대전 때 일본인들이 기름 창고로 쓰던 해식동굴도 만날 수 있다.

한국인 징용자들도 이 섬까지 끌려왔다.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팔라우의 코롤 섬과 응게카페상 섬을 잇는 아이고 다리. 한국인 노동자들은 낮에는 다리 공사를 하고 밤에 숙소에 돌아와 ‘`아이고, 아이고’하면서 앓았다. 한국인들의 신음을 듣고 원주민들이 붙인 이름이다. 지금은 징용 한인들의 후예를 찾기 힘들다. 대부분 가까운 괌이나 사이판으로 떠났다고 한다. 현재 팔라우에 정착한 교민은 80명. 대부분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이민을 온 사람들이다. 팔라우 사람들은 처음 기자가 입국할 때만 해도 콧대가 높았다. 일제강점기 때 징용으로 여기까지 끌려왔던 한국인을 목격했던 주민들은 어떻게 가난한 한국민들이 팔라우에 놀러올 수 있겠느냐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지금은 시각이 변했을 게 분명하다.

쇼핑하는 즐거움이 없어도
팔라우는 시내 구경은 별로다. 시내라고 해봐야 우리 면 단위 시골 읍내보다 못하다. 쇼핑하는 재미나 떠들썩한 도심 관광의 재미는 없다. 코롤 섬에 있는 대통령궁은 부대 막사같이 생겼다. 우리나라 시골마을의 마을회관 정도로 작은 대통령궁에는 정문을 지키는 수위조차 없다. 호텔과 은행이 팔라우에서 가장 번듯한 건물이다. 호텔이 가장 호화스럽다. 실은 좋은 호텔은 모두 이 나라의 지도층이 소유하고 있다. 가장 좋은 호텔이라는 ‘팔라우 퍼시픽 리조트’는 전직 대통령 소유라고 한다. 자연 환경은 좋지만 개발이 안 된 것은 외국인이 투자를 할 때는 반드시 현지인들과 합작을 해야 하는 까다로운 투자 규정 때문이다.

팔라우는 이런 여행자에게 알맞다. 그냥 쉬고 싶다거나, 수중 레포츠 마니아들. 어쨌든 지도상에서 점보다 작은 나라에 ‘태평양의 오아시스’ ‘천국이 빠진 바다’ 등 여행자들이 붙여놓은 찬사는 세상 어느 곳보다 화려하다.


▶여행 길잡이
팔라우와 한국은 시차가 없다. 화폐는 미국 달러를 쓴다. 평균 기온 27도. 기후는 고온다습하다. 호텔에서 전화를 할 경우 요금이 비싼 편이다. 공중전화도 찾기 힘들다. 시내에서 전화카드(10달러)를 구입해 호텔 전화로 카드 뒤에 적힌 고유번호를 눌러 통화하면 전화요금을 절약할 수 있다. 전화 연결료를 받지만 1달러 미만이다. 물가는 사이판보다 30% 정도 높다.

해변을 끼고 있는 팔라우 퍼시픽 리조트와 시내의 팔라시아 호텔이 유명하다. 리조트 시설은 괜찮다. 쇼핑 시설은 열악해서 공항 면세점이나 리조트 기념품점도 우리의 구멍가게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거북의 등껍질을 이용한 수공예품을 팔지만 외부 반출은 불법이다.

우리나라에서 팔라우로 가는 직항편은 아직 없다. 하나투어(1577-1212)가 전세기를 운영한다. 괌에서 팔라우까지 항공편이 매일 있지만 항공료가 비싸다.


글&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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