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가 무섭다고? 발밑에 원인이 있다"
"탕, 탕, 탕!"

지난 1일 찾은 서울 외곽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수개월 후 입주를 앞둔 이 아파트 공사장에서는 온돌마루 까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통로마다 온돌마루, 접착제 등이 가득 쌓여 있었다. 비좁은 자재 더미를 헤쳐가며 소리 나는 곳을 찾았다. 온돌마루가 깔리는 현장을 보려면 그 소리를 따라가야 한다는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10여 분을 헤매고서 '2인 1조'로 온돌마루 까는 현장을 찾았다. 이제 막 작업을 시작했는지 거실의 3분의 1 정도에 온돌마루가 깔려 있었다. 한 사람이 1m 정도 길이의 온돌마루 판을 배치해 놓으면, 다른 한 사람은 나무망치로 이를 때려 서로 홈에 끼워 맞추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된다.

'탕, 탕, 탕' 하는 소리는 바로 이 온돌마루 판을 나무망치로 칠 때 나는 소리다. 꽤 꼼꼼한 작업이 요구돼 한 집의 일을 끝내는 데 한나절 정도가 걸린다.

접착제 깔린 아파트…난방 시작하면 공기 중으로 '스멀스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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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돌마루를 시공하는 모습. 바닥에 접착제를 부어 고루 편 다음 위에 온돌마루를 재단해 붙여나간다. 40평대 아파트에서 현관과 화장실을 제외하고 거실, 부엌, 방 등 실내 대부분에 온돌마루가 깔린다고 보면 30평 정도의 면적에 모두 120kg의 접착제가 바닥에 깔리는 셈이다. ⓒ프레시안

온돌마루 까는 현장에 들어서자 접착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온돌마루가 깔릴 거실 바닥에는 접착제가 가득했다. 보통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은 단풍나무, 떡갈나무(oak) 등의 무늬가 보기 좋은 온돌마루만 본다. 그러나 그 온돌마루 밑에는 1평(약 3㎡)당 약 4㎏의 접착제가 깔린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일단 눈에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건설회사가 분양한 이 40평(약 120㎡)대 아파트에는 거실, 방에 모두 온돌마루가 깔린다. 약 120㎏의 접착제가 쓰이는 것.

온돌마루 생산업체의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접착제 없이 온돌마루만 깔면 시간이 지나면서 뒤틀릴 가능성이 크다. 접착제로 온돌마루를 시멘트 바닥과 밀착시키는 게 필수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접착제가 시멘트와 섞여 온돌마루, 접착제, 시멘트 바닥이 거의 한 덩어리가 된다. 일단 온돌마루를 한 번 깔고 나면 뜯어내는 게 몹시 어렵다. 한 덩어리로 엉켜 있어 온돌마루를 뜯어내면 시멘트 바닥에까지 손상이 가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주택에서 바닥은 말 그대로 '직접 살을 맞대며' 생활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불과 1㎝ 폭도 안 되는 온돌마루 밑에 온갖 유해 화학물질을 방출하는 접착제가 가득한 것이다. 시중에서 널리 쓰이는 유성 접착제는 에폭시수지와 메탄올, 톨루엔, 자일렌 등을 섞어서 제조한다. 에폭시수지는 대표적인 환경호르몬 비스페놀A를 원료로 만들어진다. 톨루엔, 자일렌 등은 새집증후군을 유발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다.
현장을 찾자마자 코를 찌르는 접착제 냄새는 바로 이런 유해 화학물질이 공기 중으로 방출되고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다.

동행한 서울환경연합 고영자 간사는 뜻밖의 설명을 덧붙인다. "현장에서 화학물질이 방출되면 차라리 다행이다. 벤젠, 톨루엔, 자일렌처럼 접착제에 포함된 대표적인 유해 화학물질은 분자량이 커서 쉽게 공기 중으로 방출되지 않는다. 이런 유해 화학물질은 주민이 입주한 후, 난방을 시작하면 그때야 스멀스멀 공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이다."

더구나 일단 온돌마루를 깔린 후에는 그 위에 골판지가 덮인다. 온돌마루에 흠집이 안 나게 하려는 조치다. 이 골판지 덮개는 아파트 입주 직전에야 제거된다. 마침 이 아파트의 입주 시점 역시 오는 겨울이다. 환기가 쉽지 않은 계절과 침대를 놔두고도 겨울에는 따뜻한 온돌마루를 찾는 한국인의 생활 습관을 염두에 두면 난방한 후에 유해 화학물질이 더 많이 방출될 수 있다는 고 간사의 지적은 섬뜩한 경고다.

삼성, 대림 등은 수성 접착제로 전환…대다수 건설사는 '무시'

2004년 새집증후군이 큰 화제가 된 후, 유성 접착제와 비교했을 때 유해 화학물질을 덜 방출하는 수성 접착제가 등장했다. 수성 접착제 역시 에폭시수지를 원료로 쓰지만 유화(emulsion) 가공 처리를 해 물, 알코올 등을 섞기 때문에 유해 화학물질의 함량이 많이 감소한다. 단병호 의원실과 서울환경연합이 건설교통부 산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수성 접착제의 유해 화학물질 함량은 유성 접착제의 10분의 1 수준이다.

그렇다면, 과연 '친환경'이 전 국민의 화두가 된 마당에 수성 접착제 사용은 늘었을까? 이를 확인하고자 경기도 하남을 찾았다. 하남은 국내 온돌마루 유통업의 중심지다. 한 온돌마루 유통업체 대표는 "직접 건설회사로 납품되는 물량을 제외한 국내의 모든 온돌마루, 접착제가 하남을 거쳐 가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공언했다. 하남에는 현재 약 40개 온돌마루 유통업체가 있으며 월 3000평(약 9000㎡) 이상 온돌마루를 공급하는 업체는 약 30개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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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남의 온돌마루 유통업체 창고에 쌓여 있는 유성 접착제. ⓒ프레시안
<프레시안>은 이 중에서 상위 7개 업체를 직접 방문했다. 그러나 취재는 쉽지 않았다. 이미 몇 차례 온돌마루, 접착제의 문제점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뒤라 취재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각 업체의 창고를 직접 돌아보면서 사용되는 접착제가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사진을 찍지 않는 조건으로 창고를 돌아보는 것은 허용되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7개 업체의 창고에서는 유성 접착제만 발견됐다. 이런 사실은 국내 대표적인 수성 접착제 생산업체 2곳에서도 확인을 해주었다. 한 수성 접착제 생산업체 관계자는 "수차례 하남을 찾았지만 납품을 거절당했다"며 "무조건 '단가'만을 따지니 수성 접착제가 하남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수성 접착제는 유성 접착제와 비교했을 때 1㎏당 500원의 단가 차이가 있다.

정작 온돌마루 유통업체 관계자의 설명은 달랐다. "한때 언론에서 새집증후군 등을 보도하면서 유성 접착제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금세 지나갔다. 수성 접착제는 접착력이 유성 접착제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환경 친화적이라고 무턱대고 쓸 수 없다. 더구나 지금은 유성 접착제도 많이 개선돼서 방출량 면에서 보면 수성 접착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온돌마루 유통업체는 100% 유성 접착제를 취급한다.


수성 접착제 생산업체 관계자는 "삼성건설, 대림건설 등에는 100% 수성 접착제가 공급되지만 그간 접착력에 문제가 있다는 불만이 접수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대형 건설업체, 온돌마루 유통업체가 단가를 이유로 수성 접착제를 피하면서도 정작 소비자의 질타를 우려해 접착력 탓을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품질에 문제가 있다면 삼성건설, 대림건설, GS건설, 포스코건설 등이 수성 접착제를 쓰겠느냐?"고 덧붙였다.

다세대 주택, 상가 건물은 더 위험해…환경부도 '소극적'

하남의 온돌마루 유통업체에서 대부분 유성 접착제를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문제 역시 심각하다. 보통 대형 아파트 단지는 완공과 입주 시점 사이에는 수개월의 차이가 있다. 즉 온돌마루가 깔린 후 바로 그 위에서 생활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에 하남 온돌마루 유통업체로부터 온돌마루를 공급받는 소규모 아파트 단지, 다세대 주택은 온돌마루가 깔린 후 바로 입주해 생활할 가능성이 크다.

고영자 간사는 "소규모 아파트 단지, 다세대 주택, 상가 건물 등의 경우 일단 온돌마루가 깔린 후 바로 입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접착제에서 방출되는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더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며 입주자의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그는 "유성 접착제가 쓰였는지를 확인한 후, 가능하면 바로 난방을 해야 하는 겨울에는 입주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은 아파트, 다세대 주택에 입주하는 시민이 알아서 조심하는 방법뿐인가? 현재까지는 그렇다. 방출량만을 따지는 현재의 인증제도 아래에서는 일부 유성 접착제도 '친환경'이라는 딱지를 부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상품을 장려해야 할 환경부조차 "외국에서도 실내 공기 질은 방출량 기준만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유해 화학물질 함량 기준 설정의 필요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의 견해"라며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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