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어ㆍ장비ㆍ 스키장의 진화


[커버스토리-‘은빛스릴’스키의 계절]

스키어와 스키장비, 스키장은 조금씩 변하면서 발전해왔다. 최근 몇년사이 스키장의 가장 큰 변화는 스노보더의 증가다. 2000년부터 불기 시작한 스노보드 붐을 타고 보드 라이더들이 스키장을 주름잡으면서 전통 스키어들을 밀어내는 형국을 맞이했다. 처음부터 스키어와 스노보더의 공존법을 터득했던 캐나다 일본 등 스키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 스키장은 스키와 스노보드의 충돌이 잦았다. 스키어들은 눈을 많이 쓸어내며 공간을 넓게 사용하는 스노보더들의 접근을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스노보더들로 인해 전통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하나둘 스키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스키장들은 떠나는 이들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그 결과 슬로프 폭을 넓게 사용하는 스노보더를 위해 좁았던 슬로프 폭이 크게 확장되고 길이도 길어졌다. 스노보더들만을 위한 하프파이프와 익스트림 파크도 조성됐다. 스키어와 스노보더는 각기 동선 자체가 달랐지만, 함께 즐길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면서 스키장은 활기를 되찾았다.

위축됐던 전통 스키어들을 스키장으로 다시 불러들인 건 스노보더들과의 교통정리 외에도 스키 장비의 변화도 크게 작용했다. 이른바 카빙스키의 유행이다. 조각하듯이 카빙(Carving) 턴을 한다고 해서 ‘카빙스키’로도 불리고, 모양이 변화된 스키라 하여 ‘셰이프트 스키(Shaped ski)’로도 불린다. 세계적인 스키메이커 엘란이 1993년 발표한 새로운 스키인 카빙스키는 가히 혁명과 다름없었다. 90년대 말부터 국내에도 확산되기 시작한 카빙스키는 기존의 전통스키에 싫증을 느끼던 스키어들을 단번에 다시 모으는 계기가 됐다.

전통스키와 카빙스키의 차이는 사이드컷(side cutㆍ플레이트 양면 중간의 움푹 들어간 부분)이다. 그래서 카빙스키를 일명 ‘모래시계 스키’라고 부르기도 한다. 카빙스키는 사이드컷이 있어 회전 호를 11자형의 전통스키보다 훨씬 작게 만들어 회전을 더욱 빠르고 급격하게 할 수 있다. 전통스키는 회전 반지름이 길어 원을 크게 그려야 하는 반면 카빙스키로는 약간의 누름 동작만으로 짧은 반지름의 원을 그릴 수 있어 스릴을 훨씬 잘 느낄 수 있다. 말하자면 일반핸들과 파워핸들간의 차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카빙 테크닉으로 스키를 타보면 역동적이면서도 미세한 재미를 잊을 수 없다. 카빙스키는 플레이트의 날(에지)을 지면에 세워 타기 때문에 레이싱을 하는 것 같은 추진력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지나간 자국이 기차 레일 같이 두 선을 그으며 나가는 모습은 카빙스키만의 묘미다.

스키는 제동의 스포츠다. 경사면에서 내려갈 때는 중력으로 인해 가속이 붙기 마련이다. 그러니 중력에 저항하기 위해 끊임없이 턴(회전)이라는 제동기술을 구사해야 한다. 카빙스키로 회전할 때마다 느끼는 짜릿함은 전통스키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재미다.

게다가 카빙스키는 전통스키보다 플레이트가 훨씬 짧아지고 넓어져 기동력에서도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카빙 회전기술을 익힌 스키어들이 설원을 누비면서 전통스키는 거의 사라진 상태다. 스키장들의 렌탈스키들도 모두 카빙스키로 대체됐다. 카빙스키외에도 좀 더 자유로운 스키를 원하는 마니아들의 욕구가 생기면서 모걸과 에어리얼 등 전진 후진 점프 회전을 가능케하는 프리스타일을 즐기는 ‘뉴스쿨’의 스키어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카빙스키의 보편화로 스키인구와 스노보드 인구는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됐다. 보광휘닉스파크는 스키와 스노보드의 비율이 5대5이며, 스키 상급자들의 천국인 용평은 7대3으로 스키어의 비율이 높은 편이며, 지산리조트는 4대6으로 스노보더의 숫자가 더 많다.

요즘 스키장들의 큰 고민중 하나는 스키를 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다. 스키장에 오는 사람이 모두 내장객은 아니다. 리프트권을 끊어야 내장객이 된다. 5명이 콘도에 투숙하면 2명 정도가 리프트를 끊어 스키를 타고 나머지 3명은 눈도 보지 않은 채 술만 먹고 돌아온다는 얘기가 있다. 이 잠재적 고객을 잡기 위해 보광휘닉스파크 등 스키장들은 스노빌리지, 스노테마파크를 조성해 스노봅슬레이, 이글루, 눈속의 미로 등을 즐길 수 있게 했다. 또 레스토랑과 스포츠 카페, 팝(Pub), 볼링장, 자쿠지 등을 활용해 ‘애프터 스키’ 문화를 만드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의 스키장들은 외형적 성장이 완만해지면서 내실 다지기에 나서고 있다. 스키를 오래 타다보면 더 이상 기술이 늘지않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든가, 나쁜 버릇이 배어있어 멋있는 자세가 나오지 않아 더 이상 스키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들를 위해 ‘원포인트 레슨’으로 어떻게 스키를 즐기는지에 대한 팁(Tip)을 제공해준다. 90년대 열심히 스키를 즐겼지만 생업에 바빠 스키장을 찾지 못했던 30~40대는 이제 자녀들을 데리고 스키장을 찾게 된다. 이들 자녀에게 무상으로 헬맷을 빌려주는 등 안전성 문제에도 신경을 쓰는 스키장이 나오고 있다.

카빙스키라는 장비도 계속 진화중이다. 무조건 스키는 짧아야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추세에 따라 키 173㎝의 성인이 길이가 155㎝밖에 안되는 카빙스키를 신었지만 너무 짧으면 오히려 회전이 어렵고 활강시 떨림 현상까지 나타나 160~165㎝로 플레이트 길이가 다시 약간 늘어났다.

지난 시즌 하이원스키장과 오크밸리스키장이 개장하면서 국내 스키장 수는 모두 15곳. 하이원이 중부 영남 스키어들을 흡수함에 따라 용평리조트등의 내장객 감소가 불가피해졌다. 스키장의 성장은 둔화됐지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 셈이다. 이제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의 실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스키장들은 서서히 도태될 수밖에 없게 됐다.

출저 : 헤럴드 생생뉴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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