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우젓을 넣은 호박 토마토 볶음
ⓒ2005 이효연

 

요즘 들어 식사 때면 어김없이 식탁을 앞에 두고 딸아이와 한바탕 신경전을 벌이게 됩니다. 다름 아닌 아이의 반찬 골라먹기 버릇 때문입니다. 말할 때는 아직 어눌한 입이 어떻게 음식 맛을 보고 골라내는 데는 그렇게 정확할 수 있는지 놀랍다 못해 얄미울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제 딸 아이도 야채를 싫어합니다. 빨갛고 파란 야채를 보기만 해도 도망가거나 아니면 입에 들어갔던 것도 도로 뱉어내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대개 잘게 다진 후 고기와 섞어 전을 부친다든지 볶음밥을 만들어 먹이는 등의 '수'를 써서 야채를 먹여 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정공법으로 야채를 먹는 훈련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급식을 먹으며 그렇게 야채를 골라냈다가는 정말 곤란할테니까요.

다른 재료에 숨겨 놓아도 용케 골라내던 당근, 호박을 있는 그대로 먹이려니 무척이나 힘이 들더군요. 달래도 보고 야단도 쳐 보았지만 소용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렇게 매일 같이 씨름을 하던 중 문득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생각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만, 너무나 단순한 방법인데다가 평소 딸아이가 보여 왔던 영악함을 감안할 때 그 정도의 꼬임에는 결코 넘어오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아예 시도도 안 했거든요.

'이번에도 실패하면 도로 '야채 숨겨 먹이기'로 회귀하는 수밖에 없다'는 비장한 각오를 맘 속에 다지고서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 주어 봤습니다.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란 노래에 '사과' 대신 '호박, 토마토, 당근'을 집어 넣어 노래 가사를 바꿔 불러 주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엄마가 그런다고 내가 어디 속나 봐라'란 듯이 실실 웃으며 저만치 도망갈 줄 알았던 딸아이가 쪼르르 곁에 다가오더니 노래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노래 또 불러 봐. 정말 '호박이'하고 '토마토'하고 다 먹으면 정말 예뻐져?"
"그럼, 예뻐지고 말고. 이 호박이랑 토마토 한 번 만져 보렴. 우리 안나 얼굴도 이렇게 예뻐질 텐데?"

냉장고에서 겉이 우둘투둘한 오이를 꺼내 호박, 토마토와 비교해 아이에게 직접 만져보게 하니 제법 고개까지 끄덕이며 알아듣는 척을 하네요. 게다가 "호박이랑 토마토를 먹어야 얼굴이 부드러워져요"라며 저녁에 퇴근한 아빠를 되려 가르치기까지 하더라니까요.

다행히도 이제 딸아이는, 아주 흔쾌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야채를 꽤 잘 먹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도 대견하기도 해서 아이 아빠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니 "유아원에서 맘에 드는 남자친구라도 생겼나 보지?"하며 껄껄 웃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가뜩이나 틈만 나면 거울을 보거나 치마만 입겠다고 고집을 하면서 '용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딸아이에게 '예뻐진다'는 카드가 분명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잘 된 일이지요.

그런데 노래 덕분에 아이에게 야채를 먹이느라 들였던 수고는 좀 덜게 되었지만 한가지 고민이 또 생겼습니다. 호박 한 입, 토마토 한 입을 먹을 때마다 노래를 한 절씩 부르라고, 그것도 엄마가 한 번, 아빠가 한 번씩 번갈아서 부르라고 호령을 하니 참 난감합니다.

불러 주자니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고, 안 불러 주자니 그러면 야채를 안 먹을 것이 뻔하니 그럴 수도 없구요. 아마도 당분간은 이 식탁위의 전쟁이 계속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요리는 몸에 좋은 토마토와 호박에 새우젓을 넣어 만든 볶음요리입니다. 토마토의 새콤한 맛이 호박의 달고 고소한 맛과 잘 어우러져서 먹기 좋구요. 간이 자극적이지 않아 아이들 반찬으로도 참 좋습니다. 색감이 예뻐서 식탁을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요리이기도 하지요. 호박 한 개 토마토 한 개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어요.

재료

애호박 1개
토마토 1개
새우 10개
다진 마늘 1큰술
올리브유(식용유) 1큰술
새우젓 약간
소금 약간
참기름 약간
물 3큰술


▲ 토마토의 씨를 제거해야 모양새가 깔끔해집니다.
ⓒ2005 이효연

 

1. 호박은 한 입 크기로 자르고 토마토는 세로로 6등분 한 후 씨를 빼 둔다. 새우는 껍질을 벗긴 후 소금물에 씻어 건져 둔다.

▲ 호박을 너무 익히면 물러져서 맛이 없어요.
ⓒ2005 이효연

 

2. 프라이팬에 기름을 넣고 달군 후, 다진 마늘을 넣어 볶다가 새우를 넣는다.

3. 2에 호박과 물, 새우젓을 넣고 호박이 노릇해질 때까지 익힌다.

▲ 토마토를 너무 익히면 껍질이 벗겨져서 지저분해집니다.
ⓒ2005 이효연

 

4. 어느 정도 호박이 익으면 토마토를 넣어 살짝 익힌다.

▲ 손님상에 올릴 때에는 새우젓 국물만 사용하면 좀 더 깔끔한 모양을 살릴 수 있어요.
ⓒ2005 이효연

 

5. 불을 끄고 참기름을 두른다(싱거우면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해 주시던 감자랑 두부 넣은 호박 새우젓찜을 응용한 요리라서 맛은 거의 똑같습니다. 토마토를 기름에 익혀 먹으면 그렇게 건강에 좋다고 해서 한 번 '내 멋대로' 넣어 만들어 보았는데 의외로 맛이 잘 어울리는 듯해요. 앞으로 토마토를 이용한 요리를 좀 더 많이 만들어 볼 계획입니다.


 

덧붙이는 글
'멋대로 요리' 이효연의 홍콩 이야기 http://blog.empas.com/happymc
아이들에게 야채를 먹이기 위한 방법의 연구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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