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수학자

 

가르베르스(1898.5.16)

독일의 수학자 및 자연과학자. 1937~38년 베를린 의학사 자연사연구소 연구원이었고, 41~46년 라이프치히대학 강사를 거쳐, 47년 함부르크대학 강사가 되었다. 특히 이슬람교의 자연과학에 정통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Ein Werk Tabit bin Qurra’s 웑er ebene Sonnenuhren》(1936) 등의 역주(譯註)가 있다.

 

가생디(1592.1.22~1655.10.24)

프랑스의 철학자·물리학자·수학자. 프로방스 출생. 에크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 이 대학의 신학·철학 교수가 되었으나, 자연과학 연구에 전념하기 위하여 교수직을 사임하고, 1645년에 파리의 콜레주 루아얄의 수학교수가 되었다. 최초의 역작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에 대한 역설적 연구》(24)에서 명백히 밝힌 바와 같이, 사상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 철학 제파(諸派)에 대해 격렬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였으며, 수학을 비롯한 자연과학 방면의 활약에서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기조로 하였다. 그는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의 유물론적 원자론(唯物論的原子論)에 입각하여 물질과 독립된 시간과 공간의 존재를 논증하고, 이의 불멸(不滅)을 주장하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경험 지식을 모든 인식의 원천이라고 선언하여 R.데카르트의 합리주의와 형이상학적 개념에 반대하였다. 그가 주장한 원자론은 18세기 프랑스 계몽기의 감각론자(感覺論者)나 백과전서파(百科全書派)에게 큰 영향을 줌으로써 근대원자론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과학자로서는 천체의 관측과 지중해의 수로도(水路圖)작성에 업적을 남겼다.

 

갈루아(1811.10.25~1832.5.31)

프랑스의 수학자. 파리 교외 부르라렌 출생. 군(群)의 개념을 처음으로 고안하였고, ‘갈루아의 이론’으로도 유명하다. 파리의 고등이공과학교에 입학하려다 실패하였으나, 1829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30년 정치운동에 참가해서 퇴학당하였다. 또한 국왕을 탄핵하여 투옥되었는데, 가출옥 중에 경찰관이 도발한 것이라고도 하는 결투로 인해 21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방정식론에 관한 연구 결과도 프랑스 학사원에서 등한시되었으나, 그가 죽은 후, 결투 전날 밤에 친구인 A.슈발리에에게 보낸 유고(遺稿)에서 비로소 그 위대성이 알려졌다. 유고에는 타원적분(楕圓積分)과 대수함수(代數函數)의 적분에 관한 것, 방정식론에 관한 것이 요약되어 있다. 그 내용에는 군(群)의 개념 도입이나 갈루아 이론의 본질적인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갈루아의 사상에 포함된 군의 개념은 기하학이나 결정학(結晶學)에도 응용되었고, 물리학에도 풍부한 연구수단을 제공하였다.

 

가우스(1777.4.30~1855.2.23)

독일의 수학자. 대수학·해석학·기하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겨, 19세기 최대의 수학자라고 일컬어진다. 수학에 이른바 수학적 엄밀성과 완전성을 도입하여, 수리물리학(數理物理學)으로부터 독립된 순수수학의 길을 개척하여 근대수학을 확립하였다. 한편 물리학, 특히 전자기학(電磁氣學)·천체역학(天體力學)·중력론(重力論)·측지학(測地學) 등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브룬스비크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빈궁한 가운데 성장하였지만, 일찍부터 뛰어난 소질을 보였기 때문에, 어머니와 숙부의 노력으로 취학할 수 있었다. 10세 때 등차급수의 합의 공식을 창안하는 등 신동(神童)으로 알려져 브룬스비크공(公) 페르디난드에게 추천되어, 카롤링고교를 거쳐 괴팅겐대학에 진학하였다. 고교시절에 이미 정수론(整數論)·최소제곱법[最小自乘法] 등으로 독자적인 수학적 업적을 올렸는데, 괴팅겐대학 재학 시절에 정 17각형의 문제에 열중한 것이 수학의 길을 선택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가우스는 헬름슈테트대학으로 옮겨 22세 때 학위를 받았으며, 그 후 다시 브룬스비크로 돌아와 페르디난드공(公)의 도움을 받으면서 수학을 계속 연구하였다. 1801년에 간행된 명저(名著) 《정수론연구(整數論硏究):Disquistiones arithmeticae》는 2차의 상호법칙의 증명을 풀이하였으며, 합동식(合同式)의 대수적 기법을 도입하여 이 분야에 획기적인 업적을 쌓아 올렸고, 학위 논문에서 이룩한 대수학의 기본정리의 증명과 더불어 학계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그에게 대학에서의 지위를 가져다준 것은 오히려 천체역학에 관한 업적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의 학계에서 뉴턴역학의 영향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즉, 1801년 소행성 케레스(Ceres)가 발견되자, 이 별의 궤도결정이 문제로 대두되어, 가우스가 이를 계산해 내어 해결한 공을 인정받아 1807년에 괴팅겐대학 교수 겸 천문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800년 이후 가우스의 연구는 대략 4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소행성의 궤도결정을 시작으로 천체역학을 연구하던 20년까지의 시기이고, 이 시기의 연구는 《천체운동론》(1809)에 집대성되어 있다. 또한, 수학 분야에서는 초기하급수(超幾何級數)의 연구 및 복소변수(複素變數)의 함수론의 전개가 있다(베셀에게 보낸 서한에 적혀 있으며, 훗날의 코시의 정리도 포함한다). 제2기는 측지학(測地學)에 관계한 시기로서, 21년에 하노버 정부와 네덜란드 정부의 측지사업의 학술고문으로 위촉받은 일이 계기가 되어 곡면론(曲面論)의 검토, 즉 곡률(曲率)의 문제, 등각사상(等角寫像)의 이론, 그리고 곡면의 전개가능성 등을 고찰하였다. 이것은 미분기하학(微分幾何學)으로 향하는 최초의 일보였다. 한편, 정수론의 영역에서도, 주로 4차(次)의 상호법칙 연구에서 비롯하여 복소정수(複素整數)의 연구에 이르러 대수적(代數的) 정수의 이론을 창시하였고, 이것은 아이젠슈타인, 쿠머, 데데킨트 등에게 계승되었다. 또한, 데이터의 처리와 관련하여 21∼23년의 논문에서 최소제곱법을 이론화하여 통계에서 가우스분포의 의의를 강조하였다. 제3기는 30년부터의 10년간으로서, 주요 관심사는 물리학 쪽으로 옮겨져 갔다. 특히, W.E.베버와의 협력 아래 추진한 지구자기(地球磁氣)의 측정 및 이의 이론적 체계화가 두드러진 업적이다. 괴팅겐에 자기관측소를 설립하고, 측정을 위하여 자기기록계를 제작하였으며, 또한 절대단위계(絶對單位系)를 도입함으로써 전자기학의 기초를 닦는 데 공헌하였고, 한편으로는 퍼텐셜론(論)을 전개하여 이것의 수학적 기초의 수립을 추진하였다. 이 밖에, 전신기(電信機)의 발명과 모세관현상의 연구 등도 이 시기에 이룩한 것이다. 40년경부터 만년에 이르는 제4기에는, 오늘날의 위상해석학(位相解析學)인 위치해석학 및 복소변수의 함수와 관련된 기하학을 연구하였다. 이상과 같이 수학자이며 동시에 관측자이기도 했던 그는 ‘괴팅겐의 거인(巨人)’으로서 이름을 남겼지만, 우선권 다툼이라든지 후진의 업적에 대한 냉담한 태도 등으로 가끔 나쁜 평을 받게 된 것은 아마도 완전성을 중요하게 여긴 그의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그의 좌우명은 “수(數)는 적으나 완숙하였도다”였다.

 

갈루아(1811.10.25~1832.5.31)

프랑스의 수학자. 파리 교외 부르라렌 출생. 군(群)의 개념을 처음으로 고안하였고, ‘갈루아의 이론’으로도 유명하다. 파리의 고등이공과학교에 입학하려다 실패하였으나, 1829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30년 정치운동에 참가해서 퇴학당하였다. 또한 국왕을 탄핵하여 투옥되었는데, 가출옥 중에 경찰관이 도발한 것이라고도 하는 결투로 인해 21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방정식론에 관한 연구 결과도 프랑스 학사원에서 등한시되었으나, 그가 죽은 후, 결투 전날 밤에 친구인 A.슈발리에에게 보낸 유고(遺稿)에서 비로소 그 위대성이 알려졌다. 유고에는 타원적분(楕圓積分)과 대수함수(代數函數)의 적분에 관한 것, 방정식론에 관한 것이 요약되어 있다. 그 내용에는 군(群)의 개념 도입이나 갈루아 이론의 본질적인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갈루아의 사상에 포함된 군의 개념은 기하학이나 결정학(結晶學)에도 응용되었고, 물리학에도 풍부한 연구수단을 제공하였다.

 

갈릴레이(1564.2.15~1642.1.8)

이탈리아의 천문학자·물리학자·수학자. 피사 출생. 피렌체의 시민계급 출신이다. 성과 이름이 비슷한 이유는 장남에게는 성을 겹쳐 쓰는 토스카나 지방의 풍습 때문이다. 1579년 피렌체 교외의 바론브로사수도원 부속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마치고, 81년 피사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였는데, 이 무렵 우연히 성당에 걸려 있는 램프가 혼들리는 것을 보고 진자(振子)의 등시성(等時性)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84년 피사대학을 중퇴하고 피렌체에 있던 가족과 합류하였다. 이곳에서 아버지 친구이자 토스카나 궁정수학자인 오스틸리오 리치에게 수학과 과학을 배우면서 대단한 흥미를 느꼈다. 이때 습작(習作)으로 쓴 논문이 인정을 받아 92년 피사대학의 수학강사가 되었고, 같은 해 베네치아의 파도바대학으로 옮겼다. 파도바대학에서는 유클리드기하학과, 천동설(天動說)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을 가르치는 한편,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서 리치에게 배운 응용수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간단한 군사기술 입문》 《천구론(天球論) 또는 우주지(宇宙誌)》 《축성론(築城論)》 《기계학》은 이 시기의 저서이다. 베네치아의 여성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으며, 파오로 사르피 같은 당대의 뛰어난 학자·귀족 등과 친교를 맺었다. 1604년의 《가속도운동에 관해서》에서 발표한 근대적인 관성법칙(慣性法則)의 개념도 이미 그 전에 사르피에게 보낸 서한에 나타나 있다. 1609년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발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수 망원경을 만들어 여러 천체에 대하여 획기적인 관측을 하였다. 예를 들면, 당시에는 완전한 구(球)로 믿었던 달에 산과 계곡이 있다는 것,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생각하였는데, 목성(木星)도 그것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이었다. 10년에 이러한 관측결과를 《별세계의 보고》로 발표하여 커다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해에 교직생활을 그만두고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서 토스카나대공(大公)인 메디치가(家)의 전속학자가 되었다. 그 후로도 천문관측을 계속하여 12∼13년에 태양흑점 발견자의 명예와 그 실체의 구명(究明)을 둘러싸고, 예수회 수도사인 크리스토퍼 샤이너와 논쟁을 벌여, 그 내용을 《태양흑점에 관한 서한》에서 발표하였다. 이 무렵부터 갈릴레이는 자신의 천문관측 결과에 의거하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地動說)에 대한 믿음을 굳히는데, 이것이 로마교황청의 반발을 사기 시작하였다. 성서와 지동설과의 모순성에 관하여 제자들에게, 그리고 자신이 섬기는 대공(大公)의 어머니에게 편지형식으로 자기의 생각를 써 보냈는데, 이로 말미암아 로마의 이단심문소로부터 직접 소환되지는 않았지만 재판이 열려, 앞으로 지동설은 일체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제1차 재판). 18년에 3개의 혜성이 나타나자 그 본성(本性)을 둘러싸고 벌어진 심한 논쟁에 휘말리는데, 그 경과를 《황금계량자(黃金計量者)》라는 책으로 23년에 발표하였다. 여기서 직접적으로 지동설과 천동설의 문제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천동설을 주장하는 측의 방법적인 오류를 예리하게 지적하였으며, 우주는 수학문자(數學文字)로 쓰인 책이라는 유명한 말을 함으로써 자기의 수량적(數量的)인 자연과학관을 대담하게 내세웠다. 그 후 숙원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2대 세계체계에 관한 대화:Dia1ogo sopra i due massimi sistemi del mondo, tolemaico e copernicaon》의 집필에 힘써, 제1차 재판의 경고에 저촉되지 않는 형식으로 지동설을 확립하려고 하였다. 이 책은 32년 2월에 발간되었지만, 7월에 교황청에 의해 금서목록(禁書目錄)에 올랐으며, 갈릴레이는 로마의 이단심문소의 명령으로 33년 l월에 로마로 소환되었다. 4월부터 심문관으로부터 몇 차례의 신문을 받고, 몇 가지 위법행위가 있었음을 자인하였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심문소 당국이 증거로 제시한 서류 중 몇 가지는 그 진실성이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6월에 판결이 내려졌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여 앞으로는 절대로 이단행위를 않겠다고 서약하였다(제2차 재판). 그 뒤 갈릴레이는 피렌체 교외의 알체토리에 있는 옛집으로 돌아왔는데, 사랑하는 장녀와 시력마저 잃었지만 마지막 대작인 《두 개의 신과학(新科學)에 관한 수학적 논증과 증명:Discorsi e dimonstrazioni mathematiche intorno a due nuove scienze attenenti alla meccanica》의 저술에 힘썼으며, 일단 정리되자 신교국(新敎國)인 네덜란드에서 출판하였다. 이어 속편 집필에 착수하였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죽은 후에는 공적(公的)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었으므로 묘소를 마련하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만년에는, 스승의 전기를 쓴 V.비비아니와, 기압계(氣壓計)에 그 이름을 남긴 물리학자 토리첼리의 두 제자가 그의 신변에 있었다. 갈릴레이의 생애는 르네상스기와 근대와의 과도기에 해당되며, 구시대적인 것과 새로운 것이 그의 생활이나 과학 속에도 공존하고 있었다. 천문학에서는 지동설을 취하면서도 케플러의 업적은 전혀 이해하지 않았고, 물리학에서의 관성법칙을 발견했지만 이것의 정식화(定式化)는 데카르트에게 넘겨주었다. 또한, 일상생활에서도 자유가 주어지는 파도바대학을 떠나 봉건제후(封建諸侯)의 전속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인간다운 면은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 뛰어난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골즈브로(1881.5.19~1963.5.26)

영국의 해양학자·수학자. 더럼대학 수학교수(1928∼48), 이학부장(34∼36), 문학부장(36∼38)을 역임하였다. 동력학적 조석론(潮汐論), 증발(蒸發) 및 강우(降雨)의 불균일로 인한 해류 등의 이론적 연구가 있다.

 

괴델(1906.4.28~1978.1.14)

미국의 수학자·논리학자. 오스트리아 출생. 빈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후, 동대학 강사(1933∼38)로 있었다. 그 동안 과학적 방법 위에 철학의 기초를 세우려고 한 빈 학파에 속하여, 그 후 수학기초론이나 논리학의 방법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가져온 많은 ‘괴델의 정리’를 발표하였다. 특히 유명한 것으로는 1931년 발표한 ‘불완전성 정리’인데, 이것은 당시의 H.힐베르트나 B.러셀과 같이 공리적인 방법에만 의존하여 수학의 체계를 세우려는 확신을 좌절시킨 정리이다. 38년 나치스 정권의 박해로 미국으로 이주하여, 프린스턴고등연구소 연구원이 되었다. 주요 저서 논문으로는 《냕er formale unentscheidbare S둻ze der Principia Mathematica und verwandter Systeme》(1931) 《The Consistency of the Axiom of the Choice and of the Generalized Continuum-Hypothesis with the Axioms of Set Theory》(48) 등이 있다.

 

구르사(1858.5.21~1936.11.25)

프랑스의 수학자. 랑자크 출생. 툴루즈 이과대학 강사(1881∼85), 파리 이공과대학 연습교사(96 이래), 소르본대학의 미·적분학 교수(97)를 지냈다. 함수론·미분방정식론·불변식론(不變式論)·곡면론 등 분야에 대한 공헌이 크다. 주요저서로는 《Th럒rie des fonctions alg럃riques et de leurs int럊rales》(Appel과의 공저, 1896) 《Cours d'analyse math럐atique》(1905) 등이 있다.

 

굴베르그(1836.8.11~1902.1.14)

노르웨이의 화학자·수학자.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 출생. 크리스티아니아대학에서 화학·수학·물리학을 공부한 후, 1861년에 왕립 육군사관학교의 수학 및 열역학 교사를 지냈다. 69년에는 모교인 크리스티아니아대학의 응용수학 교수가 되었다. 64년 의형(義兄)인 화학자 P.보게와 함께 ‘질량작용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이는 P.E.M.베르틀로와 생지르의 화학평형에 관한 실험결과(1862)를 바탕으로, 보게가 300회 이상의 실험을 하고 굴베르그가 이를 수식(數式)으로 정리하여 법칙화한 것이다. 처음에 쓴 노르웨이어 논문과 두 번째의 프랑스어 논문(67)은 학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77년에 이 법칙을 독자적으로 발견한 J.H.반트호프의 영향을 받아 독일어로 쓴 세번째 논문(79)이 겨우 주목을 받았다. 굴베르그는 67~90년 분자론에 입각하여 기체·액체·고체의 일반상태식(一般狀態式)을 구하는 여러 가지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물리화학의 응용에도 관심이 있었으며, 또 75년에는 노르웨이에 미터법을 채택하게 하였다.

 

그라스만(1809.4.15~1877.9.26)

독일의 수학자·언어학자. 슈테틴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이곳의 중학교 선생으로 평생을 보냈다. 독학한 것으로 생각되는 수학에서는 《광연론(廣延論):Ausdehnungslehre》(1844)의 저자로서 유명하며, 언어학에서는 인도유럽 조어(祖語)의 대기음(帶氣音:有氣音)에 관한 ‘그라스만의 법칙’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광연론은 수(數)에 관한 기초이론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며, 20세기에 들어와서 주목을 끌면서 그라스만 대수(代數)로서 전개되게 되었다. 또 만년에 출판한 인도의 고전 《리그베다의 사서(辭書):W쉜ter-buch zum Rigveda》와 번역 《리그베다:Rigveda》(2권)는 인도의 옛 주해(註解)에 얽매이지 않고 서유럽 인도학의 새로운 학문적 입장에서 연구한 것이며, 특히 전자는 지금까지도 이를 대신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이다.

 

그레고리(1638.11~1675.10)

스코틀랜드의 수학자·발명가. 미적분학의 고안에 공헌하였으며, 반사망원경을 발명하여 이것을 저서 《Optica Promota》(1663)에 기재하기도 하였다. 또한, 기하학적 도형의 면적측정에 관한 독자적 방법을 발표하여 호이겐스와 논쟁을 벌였으며, 망원경에 관하여 I.뉴턴과 서신을 교환한 일도 있다. 세인트앤드루스대학(1669)과 에든버러대학(74) 교수를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Geometriae pars universalis》(68) 《Exercitationes geometricae》(68) 등이 있다.

 

그린(1793.7.14~1841.3.31)

영국의 수학자. 가업을 이어 빵 제조업에 종사하는 한편 수학을 독학했다. 학자들과는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연구 결과는 알려지지 않은 채 있다가, 그 일부분이 우연히 K.F.가우스에게 발견되었고 W.T.켈빈에 의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전자기현상(電磁氣現象)의 수학적 이론을 만들려고 시도, 퍼텐셜함수를 도입하여 ‘그린의 정리(적분정리)’를 유도하였고 그린함수를 결정하였다. 이렇게 하여 전자기학(電磁氣學)의 해석적 취급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수학의 일부분으로서의 퍼텐셜론(論)을 향한 길이 열렸다. 저서로는 《전기학 및 자기학(磁氣學)의 이론에 수학해석을 응용하는 시도》(1828)가 있다.

 

내시(1920)

미국의 수학자. 웨스트버지니아주(州) 블루필드 출생. 프린스턴대학에서 교환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1994년 J.하사니, R.젤텐과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수상하였다. 60년대 중반부터 내시는 기업체간의 상호작용과 시장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해, 체스나 포커와 같은 일반적인 게임에서 적용되는 전략에 초점을 두고 연구하여 내시균형이라는 개념을 정립하였다. 게임에서 각 경기자들이 어떤 특정한 전략을 선택하여 하나의 결과가 나타났을 때, 모든 경기자가 이에 만족하고 더 이상 전략을 변화시킬 의도가 없을 경우를 균형이라 한다. 그런데 이 중 상대방의 최적전략에 대해서만 최적인 전략을 찾아내서 균형의 개념을 정립하는 것, 즉 내시균형은 상대방의 최적전략에 대한 본인의 최적전략이라는 성격을 띤다.

 

네이피어(1550~1617.4.4)

영국의 수학자. 에든버러 근교의 머키스턴성(城) 출생. 스코틀랜드의 귀족 출신으로 남작이다. 13세에 세인트 앤드루스대학에서 공부하였다. 그 후 프랑스에 유학하여 앙드리크 하반(河畔)에서 오랫동안 체재하였으며, 1608년 이후로는 머키스턴성으로 돌아와서 살았다. 수학·신학·점성술 등을 좋아하였는데, 특히 신학에서는 열렬한 신교도로서 로마교황과 그 권위에 반대하여 《성 요한 묵시록 전체에서의 소박한 발견:A Plain Discovery of the Whole Revelation of Saint John》(1594)을 발표하였다. 또 점성술에서는 예언에 관한 저술을 하는 등 그 재능을 보였다. 특히 40여 년에 걸친 수학 연구로 산술·대수(代數)·삼각법 등의 단순화·계열화를 꾀하였으며, 연구영역이 ‘네이피어 로드’ 등 계산기계의 고안에까지 미쳤다. 그 중 계산의 간편화를 목적으로 한 로그의 발명은 수학사상 커다란 업적이었다. 즉, 1614년 《경이적인 로그법칙의 기술:Mirifici Logarithmorum Canonis Descriptio》로 로그의 성질을 명백히 하였으며, 16년에는 H.브리그스와 협력하여 10을 밑[底]으로 하는 상용로그표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완성시키기 전에 죽어 《경이적인 로그법칙의 구조》(1619)가 유고로서 출판되었고, 그 일은 브리그스에게 인계되었다. 그는 로그를 등차수열적 운동과 등비수열적 운동을 대응시켜서 발견해 냈다. 또한, 소수기호(小數記號)의 도입자로서도 알려졌다.

 

노이만(1832.5.7~1925.3.27)

독일의 수학자·이론물리학자. 브란덴부르크 출생. F.노이만의 아들이다. 바젤대학·튀빙겐대학·라이프치히대학 등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기하광학(幾何光學)·퍼텐셜론 등 수리물리학 방면의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 뉴턴 역학의 바탕인 관성의 법칙에 관해 그 성립 조건을 검토하고 공간 내의 고립물체의 운동을 인식하기 위해 기준절대좌표계를 상정했다(?軸系의 이론). 학술지 《Mathematische Annalen》의 창간에도 기여하였다.

 

노이만(1903.12.28~1957.2.8)

헝가리 출신의 미국 수학자.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 은행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였다. 1919년 베를린대학 및 취리히대학에서 공부하고 부다페스트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27년 베를린대학 강사로 있다가 30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대학 강사, 이어 수리물리학(數理物理學) 교수를 거쳐 33년 프린스턴고등연구소 교수가 되었다. 37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43년 이후에는 미국 원자력위원회에서 활약하였다. 그의 연구는 수학기초론에서 시작하여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설정 등 수리물리학적 과제를 대상으로 하고, 또한 수리경제학(數理經濟學)이나 게임의 이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였다. 현대적 수학기초론의 출발점이 된 《집합론의 공리화(公理化)》(28)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27) 《힐베르트 공간론》(27) 등은 모두가 20대에 이룬 업적이었다. 그리고 《게임의 이론》(28) 《에르고드이론의 연구》(32)를 집필하고, 또 《위상군론(位相群論)》에서는 《콤팩트 위상군에서의 힐베르트 제5문제의 해결》(33)이나 《군(群) 위의 개주기(槪週期) 함수론》(34)으로 군 위의 조화해석(調和解析)의 연구를 발전시켰다. 44년에는 O.모르넨슈테른과 《게임이론과 경제행동》을 저술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고속도 전자계산기(MANIAC:기상연구에 이용된 초기의 컴퓨터)의 연구·제작과 수치해석에 기여한 공로로 페르미상(Fermi賞)을 수상하였다. 그 외에 머리(Murray)와 함께 작용소환론(作用素環論)·연속기하(連續幾何)를 창시하였다. 45년에는 계산기계 연구소장, 54년에는 원자력위원이 되었다.

 

뇌터(1882.3.23~I935.4.14)

독일의 수학자. 에를랑겐 출생. 대수기하학자 M.뇌터의 딸이며, 동생 F.뇌터도 이론물리학 교수였다. 에를랑겐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후에 괴팅겐대학에서 연구를 계속하였다. 1922년 괴팅겐대학 교수가 되어, 19세기의 수학으로부터 현대 수학으로의 과도기적인 추상대수학을 추진하여 D.힐베르트, 바일 등과 함께 괴팅겐대학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18년 발표한 ‘가환환(可換環)의 이데알론(論)’으로 이른바 뇌터환(環)을 정식화한 것을 비롯하여 데데킨트환(環)의 분석(1926), 판별식 정리의 연구를 하였으며, 비가환대수(非可換代數)의 연구로 다원수론(多元數論)을 전개하여 접합적(接合積)·갈루아이론·국소유체론(局所類體論)과 추상대수학의 중심 과제를 거의 포괄하는 업적을 남겼다.

 

뉴턴(1642.12.25~1727.3.20)

영국의 물리학자·천문학자·수학자·근대이론과학의 선구자.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의 울즈소프 출생. 수학에서의 미적분법 창시, 물리학에서의 뉴턴역학의 체계 확립, 이것에 표시된 수학적 방법 등은 자연과학의 모범이 되었고, 사상면에서도 역학적 자연관은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아버지는 그의 출생 전에 사망하였고, 어머니는 그가 3세 때 재혼하는 등 불운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1661년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칼리지에 입학, 수학자 I.배로의 지도를 받아 케플러의 《굴절광학(屈折光學)》,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解析幾何學)》, 월리스의 《무한의 산수》 등을 탐독하였으며, 64년 학사학위를 얻었다. 64∼66년 페스트가 크게 유행하자 대학이 일시 폐쇄되어 뉴턴도 고향으로 돌아와 대부분의 시간을 사색과 실험으로 보냈다. 그의 위대한 업적의 대부분은 이때 싹트게 된 것이라고 하며, 사과의 일화도 이때 있었던 일이다. 67년 재개된 대학에 돌아와 이 대학의 펠로(특별연구원)가 되고 이듬해에는 메이저펠로(전임특별연구원)가 됨과 동시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69년 I.배로의 뒤를 이어 루카스교수직에 부임하였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의 최초의 강의도 광학(그 내용은 뉴턴 사후 《광학강의》로 1729년 출판되었다)이었으며, 초기 연구는 광학분야에서 두드러졌다. 광학에 대해서는 이미 울즈소프 시절부터 스스로 수집·정비한 실험기구를 이용해 빛의 분산현상을 관찰하였으며, 특히 굴절률과의 관계에 대하여 세밀히 조사하였다. 한편 망원경 제작도 연구, 굴절광은 스펙트럼을 만들지만, 반사광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기초로, 반사식(反射式)이 수차(收差:色收差도 포함)와 효율면에서 한층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68년 뉴턴식 반사망원경을 제작했다. 이 망원경은 천체관측 등에 크게 공헌하여 이 공적으로 72년 왕립협회회원으로 추천되었다. 그 해에 《빛과 색의 신이론(新理論)》이라는 연구서를 협회에 제출하였는데, 그 내용은 백색광이 7색의 복합이라는 사실, 단색(單色)이 존재한다는 사실, 생리적 색과 물리적 색의 구별, 색과 굴절률과의 관련 등을 논한 것이었다. 75년 박막(薄膜)의 간섭현상인 ‘뉴턴의 원무늬’를 발견하였으며, 빛의 성질에 관한 연구로 광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광학》(1704)을 저술했다. 수학에서는 65년 이항정리(二項定理)의 연구를 시작으로, 무한급수(無限級數)로 진전하여 66년 유분법(流分法), 즉 플럭션법을 발견하고, 이것을 구적(求積) 및 접선(接線) 문제에 응용하였다. 이것은 오늘날의 미적분법(微積分法)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성과를 69년에 논문 로 발표하였다. 유분법의 전개에 대해서는 에 수록되어 있다. 76년 그와 동일한 미분법을 발견한 라이프니츠와 우선권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졌는데, 이 무렵부터 그의 사고방식도 실험적 방법에서 수학적 방법으로 그 중점이 옮겨져 스스로를 수학자라고 하였다. 뉴턴의 최대 업적은 물론 역학(力學)에 있다. 일찍부터 역학 문제, 특히 중력(重力) 문제에 대해서는 광학과 함께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구의 중력이 달의 궤도에까지 미친다고 생각하여 이것과 행성(行星)의 운동(이것을 지배하는 케플러법칙)과의 관련을 고찰한 것은 울즈소프 체류 때 이루졌다고 한다. 7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당시 사람들도 행성의 운동중심과 관련된 힘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수학적 설명이 곤란해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는데, 뉴턴은 자신이 창시해낸 유율법(流率法)을 이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립하였다. 87년 이 성과를 포함한 대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가 출판되었으며, 이로써 이론물리학의 기초가 쌓이고 뉴턴역학의 체계가 세워졌다. 3부로 된 이 라틴어 저서는 간단한 유율법의 설명에서 시작하여 역학의 원리, 인력의 법칙과 그 응용, 유체(流體)의 문제, 태양-행성의 운동에서 조석(潮汐)의 이론 등에 이르기까지 계통적으로 논술되어 있다. 또 방정식론 등의 대수학(代數學) 분야의 여러 업적은 《Arithmetica universalis sive de compositione et resolutione arithmetica liber》(1707)로 간행되었다. 88년 명예혁명 때는 대학 대표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91년 조폐국(造幣局)의 감사(監事)가 되었으며, 96년 런던으로 이주, 99년 조폐국 장관에 임명되어 화폐 개주(改鑄)라는 어려운 일을 수행하였다. 1703년 왕립협회 회장으로 추천되고 1705년 나이트 칭호를 받았다. 한편 신학(神學)에도 관심을 보여 성서의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고대사 해석을 검증하고, 천문학적 고찰을 첨가해 연대기를 작성하였다. 이 성서 연구를 통해 삼위일체설을 부정하는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보냈으며, 런던 교외의 켄징턴에서 죽었다. 장례는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거행되고 그 곳에 묻혔다. 근대과학 성립의 최고의 공로자이며, 그가 주장한 ‘자연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라고 하는 역학적 자연관은 18세기 계몽사상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니코마코스(50~150?)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라비아의 게라사 출생. 신(新)피타고라스 학파이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산술서 《산술입문》을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 수론(數論)의 기초, 특히 수의 성질과 분류를 취급하고 있다. 중요한 것으로는, 세제곱수는 연속되는 모든 홀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법칙의 발견이 있다. 즉, 13=1, 23=3+5, 33=7+9+11,··· 이 책은 그 후 아풀레이우스, 보에티우스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되어, 중세에는 산술서로서 유클리드기하학과 함께 매우 높이 평가되었다. 음악에 관해서도 저서《화성학(和聲學)》을 남겼다.

 

다르부(1842.8.14~1917.2.23)

프랑스의 수학자. 파리에서 공부하며 C.에르미트의 지도를 받았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장기간 재직하면서 프랑스의 수학계를 이끌었으며 수학 및 천문학 잡지 《Bulletin des sciences math럐atiques et astronomiques》의 창간에 힘썼다. 19세기 초엽부터 기하학이 걸어온 좌표적·해석적 경향을 계승하여, 해석학과 상미분방정식론 또는 군론 등을 기초로 하여 기하학을 발전시켰으며, 그의 주요 저서인 《일반곡면론강의(一般曲面論講義)》(4권, 1887∼96)는 미분기하학의 명저로 알려져 있다. 곡면론과 미분방정식론의 관련, 도형의 연속적 변형, 가동좌표축(可動座標軸)의 도입, 허원소(虛元素)의 사용, 또 사원좌표(四圓座標), 오구좌표(五球座標)의 도입 등에서 창의성을 발휘하였고, 또 G.F.B.리만에 관한 이해도는 독일의 F.클라인과 비견된다고 한다. 그는 행정적·교육적 수완도 뛰어나 J.H.푸앵카레의 전기도 썼다.

 

달랑베르(1717.11.16~1783.10.29)

프랑스의 수학자·물리학자·철학자. 계몽사조기(啓蒙思潮期)를 대표하는 문인의 한 사람으로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며, 그 종신서기(終身書記)였다. 그는 섭정 오를레앙공(公) 시대에 저명한 살롱을 가진, 사교계의 꽃 드 탕생 후작부인의 사생아로 출생하여, 생후 곧 노트르담 성당 옆의 작은 교회 계단에 버려졌다 한다. 근처에서 살던 유리 직공 달랑베르의 아내가 주워다 길렀다. 그의 이름은 그가 20세 때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그의 친아버지인 데투시 장군이 그를 경제적으로 돌보았고, 죽은 후 거액의 유산을 남겼으며 또 장군의 유력한 친지가 그를 비호하여 23세에 아카데미 회원에 선출되었다. 12세 때 콜레즈 드 카틀 나시옹에 입학하여 신학·법률·의학을 공부하였으나, 얼마 후 철학·수학·물리학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특히 역학(力學)에서는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주저 《역학론:Trait?de dynamique》(1743)은 26세 때 공간(公刊)한 것인데, 그는 이 저서에서 그 당시에 프랑스에서 주류를 이루던 데카르트주의를 배척하고, 물체와 그에서 독립된 공간을 생각하는 뉴턴주의의 입장을 취하였다. 또, 물체의 운동을 정역학(靜力學)의 경우와 같은 평형상태(平衡狀態)로 옮겨서 고찰하는 ‘달랑베르의 원리’를 설명하고, 역학의 일반화의 기초를 닦아 해석역학으로의 전개를 마련함으로써 역학발전의 한 단계를 이룩하였다. 이 밖에 세차(歲差)와 장동(章動)의 문제(49), 달의 운동론에 관련된 3체(三體)문제의 연구 등, 천체역학 방면에도 공헌하였다. 사상가로서도 계몽사상가의 중심인물로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였으며, 특히 D.디드로와 공동으로 편집·간행한 《백과전서》는 유명하다. 이 전서에서 수학·물리학·천문학 항목을 집필하였으며, 이 점은 백과전서파의 주장이었던 수학과 자연과학에 역점을 둔 데서 비롯되었으며, 이 《백과전서》의 주류를 이루는 부분이었다. 그가 쓴 서론 속에 이 취지를 강조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동시에 F.베이컨의 사상을 기초로 과학의 기원과 역사적 발전을 고찰하고, 과학의 분류를 시도함으로써 과학편(科學編)에 큰 전망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그의 철학적 입장은 감각적 인식론에 머물러 종교적 견해에는 많은 의문을 제시하면서도 디드로처럼 철저하지도 못해 일종의 물심이원론에 시종하였다.

 

데데킨트(1831.10.6~1916.2.12)

독일의 수학자. 브라운슈바이크 출생. 법학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카롤린대학에서 수학하고 괴팅겐대학에 진학하여 M.A.슈테른, K.F.가우스, W.베버 등의 강의를 들었다. 또한 가우스의 후임이었던 디리클레의 영향도 받았다. 1854년 괴팅겐대학의 강사가 되었으며, 58년 취리히공과대학 교수를 거쳐 브라운슈바이크 고등기술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수학 활동은 넓은 의미의 ‘수(數)’ 전반에 걸친 거의 모든 영역에 미쳤으며, 추상성과 일반성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군(群)을 공리계(公理系)로 정의했던 초기의 연구에서도 이 경향은 명백했지만, 가장 유명한 역작인 《연속과 무리수》(1872)에서 풍족한 결실을 보였다. 여기에서 무한집합을 고찰하였고 절단개념(切斷槪念)의 도입으로 연속성을 규정하였으며, 무리수의 개념을 명확히 함으로써 해석학의 기초 수립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 밖에 이데알이라 불리는 집합의 소분해(素分解)의 연구로 대수적 수에 관한 이론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데자르그(1591.3.2~1661.10)

프랑스의 수학자. 리옹 출생. 건축가로서도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군(軍)의 건축기사로 일하였는데, 1628년 드 리슐리외경(卿) 휘하에서 라 로셸포위작전에 종군하였으나, 곧이어 파리로 은퇴하여 기하학을 연구하였다. 기술적인 투시도법의 이론면을 고찰하여 기하학에 무한원(無限遠)의 사상을 도입하고, 또 대응(對應)의 개념을 사용하여 사영적(射影的)으로 기하학적인 표시법의 체계를 건설하였다. 《원추곡선론》(1636)은 이러한 고찰을 근거로 원추곡선을 사영기하학적(射影幾何學的)으로 설명한 것으로서 근세 기하학의 기초를 이룩한 중요한 고전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뛰어난 업적이 당시에는 극히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사장되었다가 200년이 지난 1845년 M.샤를의 고서에서 발굴, 비로소 중요성이 재인식되었다. 그 사상은 파스칼이나 드라 히레 등에 의해 근세 기하학 전개에 영향을 끼쳤다. 또 건축가로서는 당시의 리옹시청사(市廳舍)를 설계했다. 작품으로는 《투시화법론:Trait?de la Section Perspective d’une atteinte aux럙럑ements des rencontres d’un c셬e avec un plan》(1636) 《평면과 원추와의 교합에 관한 연구계획 초안:Brouillon Project d’une atteinte aux evenements des rencontres d’un c퓆e avec unplan》(39) 《건축에서의 돌 절단법:La coupe des Pierres en I’architecture》(40) 등이 남아 있다.

 

데카르트(1596.3.31~1650.2.11)

프랑스의 철학자·수학자·물리학자. 투렌라에 출생. 근세사상의 기본틀을 처음으로 확립함으로써 근세철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그는 세계를 몰가치적(沒價値的)·합리적으로 보는 태도(과학적 자연관)를 정신의 내면성의 강조(정신의 형이상학)와 연결지워 이를 이원론(二元論)이라고 하였다. 이원론은 동시에 근세사상 전체에 통하는 이원성의 표현이다. 프랑스 중부의 관료귀족 집안 출신으로 생후 1년 만에 어머니와 사별하고 10세 때 예수회의 라 플레슈학원에 입학, 프랑수아 베롱에게 철학을 배웠다. 1616년 푸아티에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학교에서 배운 스콜라적 학문에 불만, 세상을 통해 배울 것을 결심하고 여행에 나섰다. 18년에는 지원장교로서 네덜란드군에 입대했다. 수학자 베이크만과 알게 되어, 물리수학적 연구에 자극을 받아 ‘보편수학(普遍數學)’의 구상에 이르렀다. 20년 군대를 떠나 유럽 각지를 전전하다가 25년부터 파리에 체재, 광학(光學)을 연구한 끝에 ‘빛의 굴절법칙’을 발견하였다. 29년 이후에는 네덜란드에 은거하며 철학연구에 몰두하여 형이상학 논문 집필에 종사하였으나, 같은해 3월 제자로부터 환일(幻日) 현상의 해명을 요청받고 중도에 자연연구로 전향, 결국 자연학(自然學)을 포괄하는 《우주론:Le Trait?de la monde》의 구상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 논문의 완성단계에 G.갈릴레오의 단죄사실(斷罪事實)을 듣고, 지동설을 주내용으로 한 이 책의 간행을 단념, 그 대신 37년 《방법서설(方法敍說):Discours de la m럗hode》 및 이를 서론으로 하는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의 세 시론(試論)을 출간하였다. 41년 형이상학의 주저 《성찰록: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44년에는 《철학의 원리:Principia philosophiae》를 출간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데카르트 사상의 혁신성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 ‘자유로운 나라’였던 네덜란드도 캘빈파(派) 신학자들의 박해로 살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그 무렵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49년 가을 스톡홀름으로 가서 지내던 중 폐렴에 걸려 생애를 마쳤다.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는 수학자로서는 기하학에 대수적 해법을 적용한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물체에는 무게라는 실재적 성질이 있기 때문에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는 스콜라적 자연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물리 수학적 연구를 통하여 물질, 즉 연장(延長)이라는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이끌려 갔다. 그의 형이상학적 사색은 이른바 방법적 회의(懷疑)에서 출발한다. 학문에서 확실한 기초를 세우려 하면, 적어도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것은 모두 의심해 보아야 하는데, 세계의 모든 것의 존재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치더라도 이런 생각, 즉 의심을 하는 자신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근본원리가 《방법서설》에서 확립되어, 이 확실성에서 세계에 관한 모든 인식이 유도된다. 의심하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에서 무한히 완전한 존재자의 관념이 결과할 리가 없다는 데서 신의 존재가 증명되고, 신의 성실이라는 것을 매개로 하여 물체의 존재도 증명된다. 더욱이 정신은 사고하는 것만으로, 다시 말하면 신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심신의 실재적 구별도 확정된다. 이리하여 정신과 물체가 서로 독립된 실체로 세워지고 이 물심이원론에 의해 기계론적 자연관의 입장의 기초가 마련된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심신결합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덕의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에, 이 물심분리와 심신결합의 모순 조정에 데카르트 이후 형이상학의 주요한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디리클레(1805.2.13~1859.5.5)

독일의 수학자. 뒤렌 출생. 정수론(整數論)·급수론(級數論)·수리물리학 등에 공헌하였다. 프랑스에서 이주해 온 집안의 아들로 파리에서 수학(修學)하고 당시 그 곳 수학의 대가들을 만났는데, 특히 J.J.푸리에와 친하게 지냈다. 훔볼트의 초청을 받아 독일의 여러 대학에서 수학을 강의하고, 1839년 베를린대학 교수, 그 후 55년 K.F.가우스의 후임으로 괴팅겐대학 교수가 되었다. 연구 방면에서도 가우스가 구축해 놓은 정수론을 계승, 이것을 심화부연(深化敷衍)하는 공적을 남겼다. 어떤 조건 밑에서 산술급수가 무한의 소수(素數)를 포함한다는 정리를 비롯하여, 디리클레의 급수를 제시하고 이것을 정수론에 응용함으로써 해석적 정수론을 창시하는 등, 그 자신의 정수론에 대한 공헌도 대단했다. 한편 전문가들도 어렵다는 가우스의 《정수론》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한 공적도 높이 평가되었다. 그 외에도 푸리에급수를 써서 함수의 근대적 개념 성립에 공헌하였고, 또 경계값 문제에서는, 이른바 ‘디리클레의 문제’를 다루어 퍼텐셜론(論)을 정밀화하는 등 여러 방면에 업적을 남겼다. 또, 명강의로도 유명하여 그의 강의 스타일은 후에 독일 각 대학의 강의 형식의 기초가 되었다. 주요저서인 《정수론으로의 미분적분학의 여러 응용에 관한 연구》(1839)는 오늘날의 해석적 정수론의 기원이 되었다.

 

드로비슈(1802.8.16~1896.9.30)

독일의 철학자·수학자. 라이프치히 출생. J.헤르바르트의 제자이자 1842년 라이프치히대학 교수이다. 논리학적으로는 형식논리학에서 존재와 사유(思惟)의 일치로서의 형이상학적 논리학으로 이행(移行)하고, 심리학적으로는 수학적 심리학의 입장에 섰다. 주요저서는 《신논리학:Neue Darstellung der Logik nach ihren einfachsten Verh둳tnissen》(1836) 《헤르바르트의 철학체계:Beitr둮e zur Orientierung 웑er Herbarts System der Philosophie》(43) 《수학적 심리학:Erste Grundlinien der mathematischen Psychologie》(50) 등이다.

 

드모르간(1806.6.27~1871.3.18)

영국의 수학자·논리학자·서지학자(書誌學者). 인도 마두라 출생.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1828년 22세의 나이로 신설된 런던대학 수학 교수에 취임, 명강의로 이름을 떨쳤다. 66년 교수직을 사임하고 스스로 수학협회를 창설, 초대 회장이 되었다. 수학자로서는 연구 주제를 엄밀한 기초 위에 둘 것을 강조하였고, 특히 집합연산의 기초적 법칙을 발견했는데 이 법칙은 그의 이름을 따서 ‘드모르간의 법칙’이라 한다. 근대적인 대수학(代數學) 개척자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논리학적 측면을 개척하여 선각자로서의 역할을 하였으며, 확률론에도 공헌하였다. 38년에는 ‘수학적 귀납법’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경험과학과 수학적 증명에서의 귀납법의 차이점을 강조하였다. 기지(機智)가 뛰어난 능변가이자 문장가로서도 유명하여 철학자 W.해밀턴과의 논쟁은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그는 수학·수학사상의 보급에 기여하였고, 산술·초등대수·유클리드기하학 등을 계몽하기 위하여 알기 쉬운 해설로 책을 저술하여 수학교육 혁신에 이바지하였다. 주요저서로는 《산술원론(算術原論)》(1831) 《대수원론(代數原論)》(35) 《대수학의 기초에 관하여》(41,47) 등이 있다.

 

드무아브르(1667.5.26~1754.11.27)

프랑스 출신의 영국 수학자. 위그노교도였기 때문에 1685년 낭트 칙령의 폐지에 따라서 프랑스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에서 가정교사로 생계를 꾸려갔다. 런던에서는 I.뉴턴 등과 친교를 맺고 97년 영국학사원 회원, 그 후에는 베를린·파리의 아카데미 회원에 선출되었다. 주요업적으로는 3각법에 관한 기본정리로서 ‘드무아브르의 정리’로 알려진 법칙과 확률론에 있어서의 정규확률곡선의 발견이 있고, 보건수학(保健數學) 분야에서도 연금에 관한 연구를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 《우연의 교의(敎義):The Doctrine of Chances》(1917) 《해석잡론(解析雜論)》(30) 등이 있다.

 

디리클레(1805.2.13~1859.5.5)

독일의 수학자. 뒤렌 출생. 정수론(整數論)·급수론(級數論)·수리물리학 등에 공헌하였다. 프랑스에서 이주해 온 집안의 아들로 파리에서 수학(修學)하고 당시 그 곳 수학의 대가들을 만났는데, 특히 J.J.푸리에와 친하게 지냈다. 훔볼트의 초청을 받아 독일의 여러 대학에서 수학을 강의하고, 1839년 베를린대학 교수, 그 후 55년 K.F.가우스의 후임으로 괴팅겐대학 교수가 되었다. 연구 방면에서도 가우스가 구축해 놓은 정수론을 계승, 이것을 심화부연(深化敷衍)하는 공적을 남겼다. 어떤 조건 밑에서 산술급수가 무한의 소수(素數)를 포함한다는 정리를 비롯하여, 디리클레의 급수를 제시하고 이것을 정수론에 응용함으로써 해석적 정수론을 창시하는 등, 그 자신의 정수론에 대한 공헌도 대단했다. 한편 전문가들도 어렵다는 가우스의 《정수론》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한 공적도 높이 평가되었다. 그 외에도 푸리에급수를 써서 함수의 근대적 개념 성립에 공헌하였고, 또 경계값 문제에서는, 이른바 ‘디리클레의 문제’를 다루어 퍼텐셜론(論)을 정밀화하는 등 여러 방면에 업적을 남겼다. 또, 명강의로도 유명하여 그의 강의 스타일은 후에 독일 각 대학의 강의 형식의 기초가 되었다. 주요저서인 《정수론으로의 미분적분학의 여러 응용에 관한 연구》(1839)는 오늘날의 해석적 정수론의 기원이 되었다.

 

디오판토스(246?~330?)

3세기 후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했던 그리스의 수학자. 대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주저 《산수론(算數論) Arithmetica》은 13권 중 6권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주로 1차부터 3차까지의 정방정식과 부정방정식의 문제와 해법이 다루어져 있다. 특히, 해법의 부정해석(不定解析)은 디오판토스의 해석이라고 불린다. 그는 마이너스(-)·미지량(未知量)·상등(相等)·거듭제곱 등의 기호를 조직적으로 채용했다. 그의 《산수론》은 아라비아어(語)로 번역되어 그곳 학자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뒤에 라틴어로 번역되어 중세 말기에 유럽으로 전파되어 대수학 발달에 공헌했다. 저서 중 ‘주어진 제곱수를 2개의 제곱수로 나누어라’라는 문제는 뒤에 페르마에게 영향을 끼쳐, 페르마의 정리가 되었다고 한다.

 

라그랑주(1736.1.25~1813.4.10)

프랑스의 수학자·천문학자. 이탈리아의 토리노 출생. 19세 때 그곳 왕립육군학교 수학 교수가 되었다. 1766년 프리드리히(2세) 대왕에게 초청되어 L.오일러의 후임으로 베를린 과학아카데미 수학부장에 취임하였다. 대왕 서거 후 87년 파리로 이사하여 혁명정부의 미터법 제정위원장으로 일하였다. 95년 신설된 고등사범학교(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의 교수가 되고, 그 후 파리의 이공과대학 초대 학장이 되었다. 학문적인 초기의 업적에는 등주문제(等周問題)에서 시작한 변분법(變分法)이 있으나, 이것은 오일러의 방법을 순수하게 해석적인 것으로 발전시킨 방법으로, 라그랑주는 이 변분법을 역학의 여러 문제에 응용하였다. 그가 해명한 해석역학은, I.뉴턴의 미적분에 의한 운동방정식이 확립된 후 100년만의 일로, 그때까지 발전한 해석학을 역학에 응용한 것이며, 그의 저서 《해석역학》(1788)에 의해, 역학은 하나의 새로운 발전의 단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라그랑주의 해석역학에 의한 운동방정식은 뉴턴의 방법에 비해 보다 일반적으로 운동의 미분방정식을 유도할 수 있다. 대수(代數)에 있어서의 그의 일반화 방향은 5차 이상의 대수방정식 해법에 대한 연구로서, 이 연구는 근(根)의 치환군(置換群)에 착안한 것으로, N.H.아벨과 E.갈루아의 업적의 선구자 역할을 한 것이다. 이 외에도 정수론·타원함수론·불변식론(不變式論) 등에 관해 많은 연구 업적이 있으며, 천체역학 분야에도 기여하였다. 특히 삼체문제(三體問題)의 연구는 유명하다.

 

라마누잔(1887.12.22~1920.4.26)

인도의 수학자.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관심을 가져오다가 15세 때 대학 도서관에서 빌린 수학책을 통해서 재능이 있음을 알았으나 집안이 가난한데다 신분이 낮고 학력이 없어 어려운 연구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영국의 수학자 G.H.하디(1877∼1947)에 의해서 특이한 재능이 높이 평가되어 정부의 연구비를 지원받게 되었고, 1914년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때까지 그는 근대수학이라는 것을 모르고 연구하였고, 또 추론(推論)에는 많은 오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방법에 의한 깊은 명찰과 직관과 귀납으로써 뛰어난 결과들을 많이 도출해 내었다. 그 뒤에 영국에서 발표된 연구 가운데는 현대 정수학(整數學)의 깊은 부분에 관계되는 중요한 예상이 몇몇 남아 있다. 특히 자연수 n의 분할수(分割數) p(n)에 관한 것이 유명하다. 18년 30세의 젊은 나이로 로열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뽑혔다. 19년 인도로 귀국하였으나, 병으로 32세에 세상을 떠났다.

 

라이프니츠(1646.7.1~1716.11.14)

독일의 철학자·수학자·자연과학자·법학자·신학자·언어학자·역사가. 라이프치히 출생. 그리고 외교관·정치가·기사(技師) 등 실무가로서도 유능하였다. 라이프치히대학의 도덕철학 교수의 아들로 어려서 아버지의 장서 중 철학·고전을 탐독하고 논리학에 흥미를 가졌다. 12세 때 거의 독학으로 라틴어에 통달하였고 1661년 15세 때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법률과 철학을 수학, 이어 예나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였다. 이 무렵에 쓴 논문 《개체의 원리:De Principio Individui》(1663) 《결합법론:De Arte Combinatoria》(66)은 주목할 만한 것으로, 그 내용은 후일까지 그의 사상을 일관하였다. 66년 라이프치히대학에 학위를 신청하였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였다. 67년 뉘른베르크의 알트도르프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였으나, 이 대학이 제공한 객원교수의 자리를 사퇴하고, 그곳에서 연금술사들의 결사 로젠크로이체르에 들어가 비서가 되어 화학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 그는 마인츠후국(侯國)의 정치가인 J.C.보이네부르크 남작과 알게 되어 70년 마인츠후국의 법률고문이 되었다. 정치생활에 들어가 마인츠후국의 외교사절로서 72년 이후 파리에서 활동하였으며, 루이 14세의 침략으로부터 독일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전념하면서도 형이상학을 연구하였다. 또 런던과 파리의 뛰어난 수학자·물리학자들과도 접촉하여 자연과학의 연구를 추진하였다. 《구체적 운동의 이론》 《추상적 운동의 이론》은 70년경에 쓴 것으로, ‘불가분의 점(點)’의 가설에 서서, 운동을 물질의 본질인 것으로 보려는 형태를 취하였다. C.호이겐스, A.아르노, N.말브랑슈, R.보일 등과의 접촉에서는 당시의 최고 수준의 수학이나 데카르트 철학을 흡수하여 많은 논문을 쓰고, 영국 왕립학회회원이 되어, 그 후 우수한 계산기를 발명하였다(74). 그러나 보이네부르크나 마인츠 선거후(選擧侯)가 잇달아 죽었으므로 그는 프랑스에 체류한 채 생활의 기반을 잃게 되었다. 프랑스 학술원의 연금을 받으려는 공작도 실패하여, 76년 브라운슈바이크 뤼네부르크후(侯) 프리드리히의 초청을 받아들여 하노버로 갔다. 그 도중 스피노자와 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노버가(家)에서는 궁정고문이나 도서관리 등의 일을 맡아, 죽을 때까지 이 자리에서 다면적인 활동을 하였다. 거기에는 공법학자·정치가로서의 활동, 독일 통일을 지향하는 신구 양 교회 및 신교 각파의 통일을 위한 노력, 《지구 선사(先史)》를 계기로 한 일반사의 연구, 언어 연구, 광산의 치수(治水)나 거기에 따른 풍차의 설계·건설, 백과전서의 계획, 아카데미 설립의 노력(1700년 베를린 과학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초대원장이 됨) 등이 포함된다. 이 밖에 그의 이름을 영원히 빛나게 한 수학·자연과학·철학상의 연구도 계속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말년은 불우하였으며, 실의 속에 70세의 생애를 하노버에서 마쳤다. 수학에서는 미적분법의 창시(1684∼86)가 유명하다. 이것은 뉴턴과는 별개로 전개된 것이며, 미분 기호, 적분 기호의 창안 등 해석학 발달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역학(力學)에서는 R.데카르트를 비판하여 ‘활력’의 개념을 도입하고, 그 개념을 주어 역학적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향해 커다란 진전을 남겼으며(86), 위상(位相) 해석의 창시도 두드러진 업적의 하나이다. 철학에서는 데카르트, 스피노자의 철학을 극복하고, 거기에 젊을 때부터의 ‘보편학’의 구상을 체계화한 《형이상학서설(形而上學敍說) Discours de M럗aphysique》(86)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둘러싼 논쟁을 통하여 발전시킨 ‘표현’과 ‘표출’ ‘실체’ 개념의 결실인 유고(遺稿) 《단자론(單子論):Monadologia》(1720)이 유명하다. 실체개념을 논한 논문 중에는 ‘예정 조화(豫定調和)’의 개념을 도입(1696)하기도 하여 베일과의 논쟁을 초래하였다. J.로크의 비평으로서의 유고 《신인간오성론(新人間悟性論)》(1765)이나 《변신론(辯神論):Th럒dic럆》(1710)도 유명하다. 그의 지우(知友)였던 프로이센 왕비 조피 샤를로테를 위해서 쓴 《변신론》은 예정 조화의 입장에서 철학과 종교의 융화를 꾀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상은 독창적인 것이었으나, 한편 신학적·형이상학적 요소(신과 예정 조화)를 지님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변증법적 요소(개별과 보편, 유한과 무한의 연관, 실체의 자립 개념 등)를 갖추고, 신앙고백과 논리적 논증이 공존하여, 기계론을 극복하려고 하면서 모순율을 기초로 하는, 말하자면 모순을 내포한 타협적인 것이었다. 그 배경을 당시 독일의 모순에 가득찬 사회적 생활에서 구하려는 견해도 있다.

 

라플라스(1749.3.23~1827.3.5)

프랑스의 천문학자·수학자. 칼바도스의 보몽타노주 출생. 1765년 육군학교 위탁학생으로 있을 때부터 수학의 재능을 나타냈다. 67년 파리에서 달랑베르의 인정을 받고 고등사범학교와 에콜폴리테크니크 교수로 취임하여 행렬론·확률론·해석학 등을 연구하였다. 73년 수리론(數理論)을 태양계의 천체운동에 적용하여 태양계의 안정성을 발표하였다. 또한 오일러와 라그랑주 이래 미해결문제로 남아 있던 목성과 토성의 상호섭동(相互攝動)에 의한 궤도의 이심률과 경사각은 오랫동안 변화하지 않고 장주기변동을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 후 이 변동 한계에 관해 라그랑주와 서로 반론이 거듭되었으나, 84∼86년 라플라스가 《파리과학아카데미 기요(紀要)》라는 잡지에 3편의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해결되었다. 87년 달의 공전가속도는 지구 궤도의 이심률 변동에 기인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와 같은 획기적 성과를 체계화하여 1799~1825년 《천체역학》(전 5권)을 출판하였다. 이것은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맞먹는 명저로 간주된다. 1796년 간행된 일반인을 위한 저서 《세계계도설(世界系圖說)》은 태양계의 기원에 관한 성운설의 구상을 내용으로 담고 있으며, 이것은 칸트의 설(說)을 보충·개정하는 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란다우(1877.2.14~1938.2.19)

독일의 수학자. 베를린 출생. 1909년 괴팅겐대학 교수가 되었으나, 33년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로 대학에서 쫓겨났다. 그 후에는 베를린으로 돌아가서 생활하였으며, 그 동안에 케임브리지대학 등의 초청으로 국외를 여행한 일도 있다. 저서나 논문이 많은데, 특히 해석적 수론(解析的數論)과 함수론에 크게 기여하였다. 초기의 저서 《소수분포론(素數分布論)》(1909)에서는 역사적으로 이론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자신의 최신의 기여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설명하였으나, 10년대 후기의 저서나 논문에서는 간결한 문체를 사용하였다. 수학논문의 이와 같은 문체를 란다우슈틸(Landau-Stil)이라고 부른다.

 

람베르트(1728.8.26~1777.9.25)

독일의 물리학자·천문학자·수학자·철학자. 알자스 뮐하우젠 출생. 재봉직공인 아버지를 돕기 위해 12세 때 학교를 그만둔 후 17세 때 법률가의 비서가 되면서 인문학·철학·과학을 독학하였다. 천문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광학을 연구, 《광도측정법》(1760) 《혜성궤도의 특이성》(61) 《세계의 구조에 대한 우주론적 서간》(61) 등 3권의 저서를 공간(公刊)하였다. 이 때문에 전 유럽에서 유명해져 프리드리히대왕에 의해 베를린아카데미회원, 교수의 지위까지 올랐으며, 토목측량과 같은 국가적 사업에도 중용되었다. 천문학 연구에서는 혜성의 궤도 결정의 기본문제 처리(람베르트의 정리)에서 시작하여 우주구조설(람베르트의 星辰系)을 통해 은하 설명을 시도하였고, 물리학에서는 광도측정에 대한 기초 확립에 뜻을 두고 실험(람베르트의 법칙)하여 람베르트의 광도계를 제작하였다. 또 자기장의 역제곱의 법칙을 발견하여 쿨롱의 선구자가 되었고, 열학에서는 습도측정 연구로 습도계·열도계를 제작해서 저서 《고온계측》(79)에서 열복사 연구의 기초를 세웠다. 또 기체의 부피가 0이 되는 점을 절대영도로 정의하여 그 값을 -273 ℃라고 정하였다. 수학에서는 《자유투시법》(59)을 써서 화법기하학(畵法幾何學)을 도입하였고, 평행선공리문제를 연구하여 비(非)유클리드기하학을 개척하였다. 람베르트급수 도입, 쌍곡선함수 발견 등도 뛰어난 업적이다. 철학저서로는 《신(新)오르가논》(64) 《체계학》(71) 등이 있다. 이들은 수학과 정밀한 증명을 철학에 결부시키려는 의도 아래 전개된 것으로 C.볼프의 이성론과 J.로크의 경험론을 서로 결합시켜 독특한 인식론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러셀(1872.5.18~1970.2.2)

영국의 논리학자·철학자·수학자·사회사상가. 몬머스셔 트렐렉 출생. 명문 귀족의 아들로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한때 동대학 강사로 근무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중의 반전운동(反戰運動)이 화근이 되어 대학에서 쫓겨났고, 18년에는 6개월간 옥고를 치르었다. 그 후 유럽 각국과 러시아·미국 등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대학의 강의도 맡았으나, 주로 저술에 주력하였다. 또한 여러 가지 사회운동을 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며,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논리학자로서의 러셀은 G.프레게의 업적을 계승, G.페아노, 쿠츨러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J.W.R.데데킨트, G.칸토르 등의 현대수학의 성과를 근거로, 19세기 전반에서 비롯된 기호논리학의 전사(前史)를 집대성하였다. A.N.화이트헤드와 공저(共著)인 《수학원리》(3권, 1910∼13)는 바로 이의 성과이다. 그는 논리의 개념이나 연산(演算)을 기본으로 하여 전체 수학을 그것으로부터 도출(導出)했으며, 나아가 수학적 대상을 실재라고 간주하는 논리주의의 구상을 밝혔다. 그는 이 시도를 실수(實數)의 도출에까지 성공시켰으며 그 외에도 집합론 역리(逆理)의 발견, 그리고 그것의 해결을 꾀하는 계형이론(階型理論), 환원의 공리(公理), 기술이론(記述理論) 등 다양한 창의에 의한 공헌을 하였다. 논리주의의 구상이나 위의 여러 이론은 그 후 K.괴델 및 다른 학자에 의해 부정 또는 수정되었지만, 이 분야에 남긴 그의 업적의 의의는 현재도 상실된 것은 아니다. 철학자 러셀의 성과는 특히 이론철학에서 현저하다. G.E.무어, L.비트겐슈타인 등과 함께 케임브리지학파의 일원으로, 19세기 말부터 영국에서도 유력한 학설이었던 관념론에 대해 실재론을 주장하였다. 다만 그의 입장에는 시대에 따른 변화가 크게 눈에 띈다. 예를 들면, 한때지만 그는 영국 헤겔학파의 영향 밑에 있었으며, 마이농류(流)인 개념실재론(槪念實在論)의 경향도 보였다. 이것에 관한 저서로는 《철학의 제문제》(1912)가 있다. 그러나 그의 인식론·존재론의 일반적 경향은, 한편으로는 자기의 논리를 소재(素材) 방법으로 삼았으며, 다른 면에서는 영국 고유의 경험론의 전통을 근거로 삼았다. 또한 논리적 원자론의 이름에서도 명백한 바와 같이 실재의 이론적 단위를 설정하여, 그것에의 환원이나 분석을 중시하는 입장을 취한 점도 명백하다. 그의 사상은 빈학파나 훗날의 영국 철학의 발전을 위해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윤리학에서는 처음에 무어와 거의 같은 입장을 취하였으나, 후에 논리실증주의자의 정서설(情緖說)에 가까운 입장으로 옮겼다. 사회사상가로서의 러셀은 케임브리지대학 졸업 직후 독일 사회주의자들과 교우하여 마르크스주의에 공명하였다. 그러나 러시아를 방문, 혁명지도자와 혁명 후의 실정에 접하게 된 그는 오히려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그의 경향은 서구적 자유를 근간(根幹)으로 하는 사회민주주의로서, 정치이론도 과학이론과 같이 이데올로기나 광신적 독단에서 해방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실천가로서의 러셀은 1907년 하원의원으로 입후보하여 낙선했고, 20년대는 일반대중을 위한 많은 책을 저술하였으며, BBC 방송 출연 등으로 유명해졌으나 크게 환영받지는 못했다. 60년 ‘100인 위원회’를 구성, 핵무장 반대 연좌농성을 이끌어 네번째 부인과 함께 금고형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철학적 경력은 길고 또 그 다룬 주제가 다양할 뿐 아니라 그 입장도 다양한 변천을 보인다. 기호논리학의 수법으로 철학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그의 영향은 20세기 철학에 유례가 없는 것이다. 저서로는 위에서 소개한 것 외에도 《외계의 지식》(14) 《수리철학 서설》(19) 《정신의 분석》(21) 《물질의 분석》(27) 《의미와 진실의 탐구》(40) 《서양 철학사》(45) 《자서전》(3권, 69) 등이 있다.

 

레기오몬타누스(1436~1476)

독일의 천문학자·수학자. 쾨니히스베르크 출생. 본명은 Johann M웞ler. 1452년 빈에서 포이어바흐로부터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을 공부하였다. 61년 스승의 사망 후 로마로 유학, 그리스어 원전 《알마게스트:Almagest》 등 여러 과학서적을 번역하였다. 68년 이들 원전을 가지고 귀국한 후, 뉘른베르크의 부호 B.발터의 도움을 얻어 71년 독일 최초의 천문대를 건설하고, 새로운 천문기기(天文器機)의 제작과 천체관측에 힘썼다. 그리고 관측자료를 토대로 54년부터 60년까지 《천체위치추산표(天體位置推算表)》를 편집하였다. 또한, 항성과 달 사이의 각거리를 측정하여 원격(遠隔) 2지점의 시간을 비교하는 방법(태음거리법)을 창안하였다. 이를 이용함으로써 원양항해에서의 경도결정이 가능하게 되었고, 대항해(大航海)시대의 막이 올랐다. 72년 핼리혜성을 관측하고, 이것을 처음으로 천체로 인정하였다. 75년 로마교황청의 초청으로 개력(改曆)위원회에 참여하기 위해 로마로 갔으나 급환으로 사망하였다.

 

레비치비타(1873.3.29~1941.12.29)

이탈리아의 수학자. 파도바 출생. 1898년 파도바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1918~38년 로마대학 교수를 지냈다. 무솔리니가 이탈리아의 대학교수에게 파시스트당 정부에 대한 선서를 요구하였지만 과학자로서의 양심 때문에 선서를 할 수 없다고 거부하였다. 스승인 리치와 함께 절대미분학(絶對微分學)을 창시하고 그 결과를 《절대미분학의 방법과 그 응용》(1900)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유클리드공간에서의 평행의 정의를 리만공간으로 확장하였다. 텐서 해석(解析)은 리만기하학의 연구에 적절한 방법이고 아인슈타인에 의한 일반상대성이론, 그리고 중력장의 이론에도 사용되었다.

 

레코드(1510?~1558)

영국의 수학자·의사. 펨브룩셔의 템비 출생.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옥스퍼드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뒤에 궁정에 초빙되어 에드워드 6세와 메리 1세의 시의(侍醫)가 되었다. 영국에서 최초로 코페르니쿠스설(說)을 이해하고 주장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산술서(算術書) 《제예(諸藝)의 기초》(1540)는 당시 유럽의 수준을 능가하는 것으로서 기호를 사용하였고, 또 교사와 학생의 대화형식으로 썼다. 《기지(機智)의 숫돌:Whetstone of Witte》(1557)은 영국 최초의 대수서(代數書)로서, 이 책에서는 오늘날 많이 쓰이는 등호가 이미 사용되었다. 그 밖에 기하학서인 《지혜로의 길:The Pathway to Knowledge》(51)이 있다. 감옥에서 죽었는데, 투옥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레티쿠스(1514.2.16~1576.12.4)

독일의 천문학자·수학자. 본명은 Georg Joachim von Lauchen. 오스트리아의 펠트키르흐 출생. 뉘른베르크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1536년 비텐베르크대학, 42년 라이프치히대학 등에서 수학 교수를 지냈다. 1539∼41년 코페르니쿠스를 프라우엔부르크로 찾아가 그 밑에서 학문을 닦았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의 주요저서 《천구(天球)의 회전에 대하여》의 출판에 노력하였으며, 또 스스로 그 해설서 《코페르니쿠스설(說) 제1화》(40)를 발표하여 지동설의 보급에 힘썼다. 특히 수학부문을 보충하기 위하여 10초 간격의 사인표를 끈기 있게 계산하였으며, 탄젠트표와 시컨트표의 계산은 그의 사후에 제자 V.오토가 완성하였다(56).

 

로바체프스키(1792.12.1~1856.2.24)

러시아의 수학자. 1807년 카잔대학에 들어가 수학을 공부하였다. 학생시절에는 매우 난폭하여 감옥에 들어간 일도 있으나 수학에는 재능이 뛰어났다. 11년 카잔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에 남아 교편을 잡았고, 16년 젊은 나이로 정교수가 되어 수학 외에 천문학·물리학 등도 강의하였다. 그 뒤 대학 도서관장·박물관장을 겸하였고 수학·물리학부장이 되었다가 27년 학장이 되었다. 유클리드기하학의 기초공리를 검토하여 유클리드기하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하학의 성립 가능성을 상정(想定)하여 26년 카잔 수학·물리학 협회에서 발표하여 헝가리의 J.볼리아이와는 별도로 비유클리드기하학을 창시하였다. 이 연구에 대한 당시의 반응은 냉담하였고 연구 초고(草稿)마저 분실하였으나, 29년 카잔대학 학보에 다시 발표하고 그 구체적 전개에 힘을 기울였다. 그 후 그 성과를 40년 베를린에서 발표한 《평행선 이론의 기하학적 고찰:Geometrische Untersuchungen zur Theorie der Parallellinien》에 집약하여, K.F.가우스를 위시한 수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대수학에서는 《유한의 계산》(34), 수학해석(數學解析)에서는 《3각급수의 소멸》(34) 《무한급수의 수렴성》(41) 《몇몇 적분에 대하여》(52) 등이 있고, 함수의 미분 가능성과 연속성의 구별을 처음으로 지적하고 ‘로바체프스키 방정식’으로 불리는 대수방정식의 수치해법을 행하는 등 폭넓은 연구를 하였다.

 

르루아(1870.6.8~1954.11.11)

프랑스의 철학자·수학자. 처음에 과학을 배워 1898년에 과학박사가 되었고, 파리고교에서 수학을 가르쳤으나, H. 베르그송의 권유로 철학으로 전향하였다. 1921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되고, 45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다. 자유롭게 자기를 창조하는 자아(自我)를 바탕으로 프래그머티즘의 입장에서 과학과 종교를 논하였다. 과학은 실천을 목적으로 현실을 정리하는 것이고 종교적 도그마도 도덕적인 행위의 원천이라고 보고 진리의 인식을 삶에서 구하였다. 주요저서에 《도그마와 비판:Dogme et Critique》(1906) 《제1철학시론(試論):Essai d’une philosophie premi뢳e》(2권, 56∼58)이 있다.

 

르베그(1875.6.28~1941.7.26)

프랑스의 수학자. 에콜 노르말을 졸업하고, 파리대학과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되었다. 학위논문 《적분(積分)·길이·면적》에서, 리만이 정립해 놓은 적분의 정의를 더욱 일반적인 점집합의 관점에서 정의하였다. 이 이론은 근대적인 적분론의 단서도 되고, 확률론의 측도론적 연구를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푸리에 급수론 등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보다 일반적인 힐베르트공간론(Hilbert space)으로서 취급받게 되었다. 또한 위상기하학(位相幾何學)에 있어서도 밀집성의 정의와 밀집한 집합에 관한 르베그수(數)의 도입 등 기초가 되는 연구를 하였다.

 

르장드르(1752.9.18~1833.1.10)

프랑스의 수학자. 툴루즈 출생. 파리의 종교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775년 파리의 육군사관학교 교수가 되었고, 83년 아카데미 프랑스츠의 회원이 되었다. 또 에콜 폴리테크니크(이공과대학)의 시험관 및 측지감독관 등을 지냈다. 타원적분·오일러 적분 등의 적분학과 유클리드기하학의 기초 및 최소제곱법, 측지학 등에 걸쳐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1798∼1830년의 《정수론(整數論):Th럒rie des nombres》에서는 ‘2차 상반법칙’의 공식을 정립하여 그의 이름을 붙인 제곱잉여에 관한 기호(Legendre’s symbol)를 남겼다. 1806년 《최소제곱법에 관하여:Sur la M럗hode des Moindres Quarr럖》에서 ‘최소제곱법’을 K.F.가우스에 앞서 발표하였고, 25∼26년 《타원함수론:Trait?des fonctions elliptiques》에서 이른바 퍼텐셜(potential)의 개념으로 불리는 ‘르장드르함수’를 도입한 ‘타원적분’의 분류를 논하고 있는데 이는 19세기에 있어서의 타원함수론 발전의 선구가 되었다. 그의 저서 《적분학 연습》 《타원함수론》 《오일러 적분론》 등은 오랫동안 교과서로서의 권위를 지켜 왔는데 특히 《기하학의 요소들:El럐ents de g럒m럗rie》는 근대적인 초등기하학의 교과서로서 각국어로 번역되었으며, 또한 삼차원 조화함수와 관련되는 구함수(球函數)에 대하여 그의 이름을 붙인 미분방정식은 유명하다.

 

리(1842.12.12~1899.2.13)

노르웨이의 수학자. 노르드피오르데이드 출생. 크리스티아니아대학(현 오슬로대학)에서 수학한 후, 1869년 독일의 베를린으로 갔다. 그곳에서 F.클라인(1849∼1925)과 친교를 맺고 공동으로 수학연구를 하고 논문도 썼다. 그 후 71년 크리스티아니아대학으로부터 학위를 받고 이듬해에 이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73년 연속변환군의 연구를 시작하여 ‘리의 구면기하학(球面幾何學)’을 발견하였으며, 84년 이후 F.엥겔(1821∼96)과 협력하여 변환군 연구를 계속하였다. 86년 클라인의 뒤를 이어 라이프치히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98년까지 강의하였다. 98년에 건강을 해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변환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여 해석적인 형태로 이 운동을 추구하여 기하학적 변환의 이론에 신기원을 이루어 놓은 것과 함께 변환의 일반이론의 기초를 확립함으로서 연속군(連續群)의 이론을 창시하였다. 이 연속군을 리군(群)이라 부르는 것은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때문이다. 또한 미분방정식론에의 공헌도 컸다. 저서에는 F.엥겔과의 공저인 《변환군론(變換群論):Theorie der Transformationsgruppen》(3권, 1893)과 G.셰파스와의 공저인 《연속군론(連續群論) 강의》 등이 있다.

 

리만(1826.6.17~1866.7.20)

독일의 수학자. 하노버 출생. 괴팅겐대학과 베를린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851년 괴팅겐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51년 같은 대학 강사, 57년 조교수, 59년 디리클레의 후임으로 교수가 되었다. 폐결핵 때문에 만년을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그의 짧은 일생을 통해 발표한 논문의 수는 비교적 적지만, 수학의 각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복소함수론에서의 연구의 특징은, 유체역학적 고찰에 의해 수학의 다른 많은 영역과 복소함수론 사이에 광범위한 유사성이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또 복소함수의 기하학적인 이론의 기초를 닦아 준 점이다. 1851년의 학위논문에서, (x, y) 평면을 (u, v) 평면 위에 등각적(等角的)으로 사상(寫像)시켜, 한 평면 위의 임의의 단일연결역(單一連結域)이 다른 평면 위의 임의의 단일연결역으로 변형될 수 있는 함수를 증명하였다. 이것은 57년의 아벨함수에 관한 논문으로, 위상수학적 고찰을 해석학으로 도입한 리만면(面)의 개념으로 유도한 것이다. 54년의 교수자격 취득 논문에서, 리만적분을 정의하고, 삼각급수의 수렴에 관한 조건을 제시했는데, 이 적분의 정의는 함수가 적분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를 나타낸 것이었다. 이 정의는 20세기에 접어들어 H.르베그에 의해 더욱 포괄적인 정의가 부여되었다. 54년 취임강연에서 기하학의 기초를 논하면서, 리만공간의 개념을 도입하여, 리만공간의 곡률(曲率)을 정의하였다. 이 연구는 로바체프스키 등에 의해 발견된 비유클리드기하학도 어느 특별한 경우, 즉 곡률이 음[負]인 공간으로서 주어지는 것이었다. 곡률이 양[正]인 곡면상에서의 기하학은 리만기하학이라 불리며, 구면(球面)에서는 직선은 대원(大圓)으로 정의되며, 거기서는 두 개의 직선은 반드시 두 점에서 교차되며, 따라서 평행선은 없다. 그의 기하학의 기초가 된 것은 직선이란 무엇이냐, 또 그것을 정의하기 위한 장소는 어떤 곳이냐 하는 점으로 요약된다. 58년 소수분포에 관한 논문에서는 ζ함수를 응용하여 해석적 수론의 기초를 닦았다. ζ함수의 성질에 대한 리만의 가정 ‘ζ(s)는 s=x+iy에 대해서 생각할 때 x>1/2로 0점은 없다’는 오늘날까지 증명도 부정도 되지 않은 상태이다. 만년에는 W.E.베버의 영향을 받아서, 이론물리학에 흥미를 가졌으며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편미분방정식(偏微分方程式)에 대해서 강의하였다. 그가 죽은 뒤 베버에 의해 출판되었다.

 

리에스(1880.1.22~1956.2.28)

헝가리의 수학자. 함수해석학의 개척자로 유명하다. 1914년 클루지대학 교수, 45년 부다페스트대학 교수로 취임하였다. 리스 피셔의 정리(1907)에 의해서 초기 양자론 분야에 공헌하였고, 에르고드 이론, 반순서(半順序) 벡터공간 이론, 위상기하학 등의 분야에도 공헌하였다. 주요저서에 《Le뛬ns d’analyse fonctionnelle》(52)이 있다.

 

리우빌(1809.3.24~1882.9.8)

프랑스의 수학자. 1825년 파리 이공과대학에 입학하였다가 2년 후에 교량토목학교로 옮겼다. 31년 이공과대학 조교수, 38년 교수가 되었으며, 다음해 아카데미 데 시앙스의 회원이 되었고, 51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되었다. 업적은 거의 수학 전분야에 걸쳐 약 450편의 논문을 발표한 것 외에 잡지 《순수응용수학(일명 리우빌 잡지)》(36년)을 창간하였으며, 74년까지 그 편집을 맡았다. 논문 중의 초월수의 존재 증명과 미분·적분 및 해밀턴의 정준운동(正準運動) 방정식의 풀이는 이후의 연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정준방정식에 대한 보존정리는 통계역학에서 에르고드이론의 기초가 되었으며, E.갈루아가 대수방정식을 승근(乘根)으로 풀 수 있는 여러 조건을 밝힌 사실을 《순수응용수학》에 발표하여 세상에 소개하였다. A.L.코시와 협력하여 ‘리우빌의 정리’를 발표하였다.

 

리치쿠르바스트로(1853.1.12~1925.8.6)

이탈리아의 수학자. 라벤나의 루고 출생. 1890년 이래 파도바대학 교수로 있었다. G.F.B.리만의 이론을 계승하여 ‘리만기하학’을 2차 미분형식의 불변식론(不變式論)과 관련시켜 전개해서 절대미분학을 창시하였다. 텐서해석의 정식화는 그의 이론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리치의 텐서’ ‘리치의 공식’ 등으로 그 이름이 유지되고 있다.

 

린델뢰프(1870~1946)

핀란드의 수학자. 1887년 헬싱키대학에 입학했으며, 90년의 첫 논문은 미분방정식에 관한 것이었다. 93년 학위를 받고, 95년 헬싱키대학 강사가 되어 1903~38년의 정년퇴직에 이르기까지 동 대학의 교수로 있었고, 그 이후에는 명예교수가 되었다. 또 1907년부터는 북유럽의 대표지 《악타 마테마티카》의 편집에 종사하였다. 현재 상식화되어 있는 함수론의 기초사항에 대한 중요한 공헌은 이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어 정함수의 값분포 내지는 Ch.E.피카르의 정리 연구로 옮겼는데, E.프라그멘과의 공동연구에 의해 근대함수론에 끼친 공헌은 특히 눈부시다. 조화함수에 의한 평가라는 원리에 근거한 여러 성과는 R.네반리나, A.보이를링, L.V.알포르스 등에게 계승되어 기하학적 함수론의 기초를 이룩하였다. 한편, 이 사이에 그의 이름을 붙인 점집합론의 결과가 얻어졌다. 이어 1920년 무렵부터 등각사상론으로 옮기어 경계의 대응에 관한 업적을 성취하였다. 만년에 저술한 《해석학 교정(解析學敎程)》(5권)은 교과서로도 이용되었다. 헬싱키대학 재임 43년간을 통하여 직접 또는 교과서를 통해서 수학계에 끼친 영향은 크다. 특히 함수론 분야에서는 그의 문하에서 F.이베르센, P.J.미르베르크, 네반리나 형제, 알포르스 등 현대 함수론에 있어서의 세계적 지도자가 배출되었다.

 

매클로린(1698.2~1746.6.14)

영국의 수학자. 스코틀랜드의 킬모든 출생. 15세에 글래스고대학을 졸업, 19세에 애버딘의 매리셜 칼리지 수학 교수가 되었으며, 1725년 에든버러대학 교수가 되었다. 뉴턴의 학통을 이어, 플럭션법을 연구, 미분학에 이바지하고, 이것을 기하학에 응용하였다. 급수전개에 관한 ‘매클로린의 정리’를 발견하여 저서 《유율법(流率法)》(42)을 기술하였으며, 이 책에는 조석(潮汐)의 이론 등도 포함되어 있어 물리학에도 이바지하였다.

 

멀리스(1996.7.5)

영국의 수학자·경제학자. 스코틀랜드 미니개프 출생. 1957년 에든버러대학과 63년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컬리지에서 각각 석사 학위와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69~95년 옥스퍼드대학에서 강의를 한 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였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경제학 교수인 W.S.비크리 교수의, 정보가 불완전하거나 불균형한 상황하에서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분석적으로 연구한 이른바 ‘비대칭 정보하에서의 유인’이라는 이론에 대한 이론적 창의성을 보완하는 등, 비크리의 경제이론을 수학적으로 뒷받침하고 설명해 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비크리와 함께 96년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메넬라우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천문학자·물리학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출생. 98년 로마에 천문대를 건립하였다. 저서로, 원의 현에 관한 저작(6권)이 있었다고 하나 없어지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는 아라비아어·헤브라이어·라틴어 등으로 번역된 《구면학(球面學):Sphaerica)》(3권)이 있다. 이것은 구면삼각형을 취급한 것으로, 유클리드의 평면삼각형에 대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1권에는 구면삼각형의 개념과 정의 등이 있고 제2권은 천문학의 입장에서 구면학을 취급하였으며, 제3권에는 ‘메넬라우스의 정리’를 비롯하여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본》 제6권과 유사한 비례의 제명제(諸命題)가 있다.

 

몽주(1746.5.10~1818.7.28)

프랑스의 수학자. 본 출생. 어릴 때부터 재능이 뛰어나 소화(消火) 펌프·측량기 등을 만들었으며, 16세 때 리옹에서 물리학 교사가 되었다. 그 뒤 육군 공병학교 재학 중에 축성(築城)에 관한 문제를 종래의 산술적인 계산으로 풀지 않고 자기가 안출한 기하학적 방법으로 짧은 시간에 풀어 교관으로 발탁되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화법기하학(畵法幾何學)의 기원인데 당시에는 프랑스의 군사기밀로서 15년간이나 공개되지 않았다. 1780년 파리대학에서 수력학(水力學)을 강의하였고, 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후 군수품 생산기술과 조직에 진력하였으며, 새로운 도량형의 제정위원으로 활동하였다. 92년 혁명정부의 해군상(海軍相)이 되었고, 그의 제안으로 94년 에콜 폴리테크니크가 창설되자 그 곳의 중심 멤버로 활동하여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나폴레옹의 신임과 우대를 받아 이탈리아·이집트 등의 원정에 참가하였으며 이집트에서는 이집트 학회를 창립하였다. 왕정복고 후에는 당국의 손길을 피해야 했고 학사원에서도 추방당하여 실의 속에 세상을 떠났다. 주요저서 《화법기하학:G럒m럗rie descriptive》이 95년 간행되었고, 같은해에 《기하학에의 해석학(解析學)의 응용:Application d’analyse ?la g럒m럗rie》도 간행되어 오늘날의 적분기하학(積分幾何學)의 선구자가 되었다.

 

뫼비우스(1790.11.17~1868.9.26)

독일의 수학자·천문학자. 프로이센 출생. 라이프치히·괴팅겐·할레 등지의 여러 대학에서 공부하고, K.F.가우스의 문하생이 되었다. 1815년 라이프치히대학 천문학 교수, 44년 동 대학 천문대장이 되었다. 천문학 이외에도 기하학·역학 등을 연구하여 업적을 남겼다. 기하학에서는 동차좌표(同次座標)의 일종인 중심좌표를 처음으로 도입한 업적으로 유명해졌다. 주요저서로는 《중심해석(重心解析)》(27)이 있다. 사영기하학(射影幾何學)의 기초를 굳혔으며, 직선기하학 연구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면(面)의 표리(表裏)의 구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대한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민코프스키(1864.6.22~1909.1.12)

독일에서 활동한 러시아 출신의 수학자. 리투아니아의 코브노 근교 출생. 쾨니히스베르크대학에서 공부했다. 그 무렵부터 D.힐베르트와 평생에 걸친 친교를 맺기 시작했다. 1895년 쾨니히스베르크대학 교수가 되었고, 96년 취리히대학, 이어서 1902년 괴팅겐대학으로 옮겼다. 정수론에 기하학적 방법을 도입하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연구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민코프스키의 시공세계(時空世界)’ 즉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의 4차원적 시공(時空)의 기하학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상대성이론의 시간·공간개념을 논하였고, 또한 물리법칙의 로렌츠군(群)에 대한 불변성을 해명하여 상대성이론의 형성에 공헌을 하였는데, 4차원세계의 기하학은 그 묘상화에 기여를 한 것이었다. 주요저서로 《수의 기하학:Geometrie der Zahlen》(1896) 《디오판토스 근사론(近似論):Diophantische Approximationen, eine Einf웘rung in die Zahlentheorie)》(1907) 《공간과 시간:Raum und Zeit》(1909) 등이 있다.

 

밀른(1896.2.14~1950.9.21)

영국의 천문학자·수학자. 헐 출생.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1920년 케임브리지대학 태양물리천문대 부대장, 22년 천체물리학 강사, 25년 맨체스터대학 응용수학 교수, 28년부터 사망시까지 옥스퍼드대학 수학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초기에는 항성대기의 열전리(熱電離) 이론을 연구하고, 29년 이후 항성의 내부구조론을 연구하여, 완전기체에 의한 에딩턴의 항성모형을 비판하고, 축퇴(縮退)가스에 의한 백색왜성 이론을 전개하였다. 한편, 우주론에서는 우주팽창에 대한 독자적인 이론을 전개하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기초를 둔 우주공간에 대하여 균일성·등방성을 전제로 하는 뉴턴운동학에 의한 우주모형을 구상하여 《운동학적 상대론》(1948)으로 발표하였다.

 

바나흐(1892.3.30~1945.8.31)

폴란드의 수학자. 크라쿠프 출생. 1922년 루보프대학 강사가 되었고, 27∼45년 동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함수해석(函數解析)을 연구하여 위상공간(位相空間)의 이론을 창시·발전시켰다. 그는 벡터의 크기 개념을 확장한 놈을 통하여 거리를 도입한 바나흐공간으로 알려진 놈(norm) 선형공간의 개념으로 유명하다. 주요저서에 《선형연산론:Th럒rie des op럕ations lin럂ires》(1932)이 있다.

 

바이어슈트라스(1815.10.31~1897.2.19)

독일의 수학자. 바이에른주(州) 오스텐펠데 출생. 1834~38년 본대학에서 상업과 법률을 배운 뒤 뮌스터대학에서 C.구더만에게 사사하여 타원함수론을 연구하였다. 그 후 오랫동안 가톨릭 계통 김나지움의 교사직을 맡으면서 수학관계의 중요한 논문을 발표하고, 56년 베를린대학의 초빙을 받아 교수로서 종신토록 재직, 항상 용의주도하게 준비된 강의로 성가(聲價)를 높여 많은 청강생이 모여들었다. 김나지움 시대에는 초타원적분(超楕圓積分)·아벨함수, 나아가 대수적 미분방정식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가 발표한 복소변수의 해석함수(解析函數)에 대한 개념은 G.리만의 개념과 자주 비교된다. 바이어슈트라스가 엄밀한 해석적 표현을 중시한 데 반하여 리만은 기하학적·물리학적 직관에 의존하였다. 최대의 공헌은 멱승수(冪乘數)로서 복소함수이론의 기초를 이룬 일이다. 이는 J.L.라그랑주의 미적분 대수화(代數化)를 복소평면에서 더욱 완전하고 엄밀하게 기초를 이룩하고 다시 이를 발전시킨 것이다. 어떤 수렴원(收斂圓) 안에서 멱승수로서 전개되는 함수의 값을 다시 해석접속(解析接續)으로써 이를 확장하였다. 그의 엄밀성은 모든 연구결과에 나타나, 변분법(變分法)의 연구, 동일수렴(同一收斂)의 발견, 도처에서 미분할 수 없는 연속함수의 제시 등 그 이후의 수학의 엄밀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바일(1885.11.9~1955.12.8)

독일의 수학자·이론물리학자. 엘름스호른 출생. 1908년 괴팅겐대학을 졸업, 적분방정식에 관한 연구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취리히 공과대학 교수, 괴팅겐대학 교수, 프린스턴대학 객원 교수를 역임하고, 34년 이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연구에 전렴하였다. 업적은 수학·이론물리학의 기본적 연구에서부터 과학전반에 이르고 있다. 구체적으로 적분방정식, 리만면(面) 등의 해석학 연구, 무리[群]의 표현, 특히 콤팩트군(群)·반단순(半單純) 리군(群)의 표현론, 또한 군론(群論)의 지식을 널리 이용한 양자역학의 연구, 미분기하학, 수학기초론의 연구 등이 있는데, 특히 유리형함수(有理型函數)와 해석곡선(解析曲線)과의 관계를 밝힌 선구적 업적을 발표하여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저서로 《수학과 자연과학의 철학》 《시메트리》 등이 있다.

 

배로(1630.10~1677.5.4)

영국의 수학자·신학자. 런던 출생. 케임브리지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다녔다. 파리·이탈리아·콘스탄티노플에서 고전을 연구하고 1659년 귀국하여 사제가 되었으며, 60년 케임브리지대학의 그리스어(語) 교수로 임명되었다. 63년 수학의 루커스 교수직이 신설되자 초대 교수가 되었으며, 여기서 행한 광학(光學)과 기하학의 강의로 뉴턴에게 영향을 주었다. 69년 뉴턴에게 교수직을 물려주고 신학에 전념하기로 했으나, 70년 찰스 2세의 시승(侍僧)으로 뽑혔고, 이어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장이 되어(71) 죽을 때까지 재직하였다. 수학연구에 있어서는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등의 고전적 저작의 해석에 주력하는 한편, 광학과 기하학에서 독자적인 연구를 개척하였으며, 특히 페르마의 접선법의 발전과 미분·적분이 서로 역관계에 있다는 증명은 미적분학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서 유명하다. 열렬한 왕당파(王黨派)였으며 사상적으로는 케임브리지 플라톤파(派)에 속하여,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주장하였다.

 

버코프(1884.3.21~1944.11.12)

미국의 수학자. 하버드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하고, 나중에 프린스턴대학과 하버드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9세기 말경부터 J.H.푸앵카레, S.리야프노프 등이 정성적(定性的)·위상적 방법을 도입하여 크게 발전시킨 미분방정식론을 연구하였다. 정성적·위상적 방법을 계승하고, 푸앵카레가 못다한 정리도 증명하였으며, 1912년 역학계의 이론도 세워 이 분야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또 31년에 제시한 ‘에르고드 정리’의 성립조건도 통계역학의 기초를 닦는 데 기여하였다.

 

베르누이(1654.12.27~1705.8.16)

스위스의 수학자. 바젤 출생. 처음에는 성직자가 되려고 하였으나, 수학을 독학하다가 여러 나라의 여행을 계기로 수학에 전념하게 되었다. 1682년부터 바젤대학에서 물리학을 강의하였고, 이어 86년 수학 교수가 되었다. 그 후 84년 발표된 G.W.라이프니츠의 논문을 보고 흥미를 느껴 동생 요한과 함께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해석학을 전개하여 등하강곡선(等下降曲線)을 발견하였다(90). 라이프니츠는 베르누이 형제가 자기와 함께 미적분학의 건설자라고 말하고 있다. 베르누이는 나중에 동생과 사이가 나빠져, 요한이 제출한 최속강하선(最速降下線)의 문제를 푸는 동시에 등주(等周) 문제를 제출하는 등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한편 그들은 99년 파리 과학아카데미의 첫 외국인 회원으로 형제가 모두 뽑혔으며, 또 1701년 베를린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그 밖에 급수에 관한 업적, 확률론에 대한 공헌(여기에는 베르누이數와 대수의 법칙과 관련된 베르누이의 정리가 포함된다), 진자(振子)의 진동중심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유저로는 《추론의 예술 Ars Conjectandi》(1713)가 있다.

 

베르누이(1667.8.6~1748.1.1)

스위스의 수학자. 바젤 출생.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여 학위를 받았으며, 다시 의학을 공부하여 그 학위도 받았다(1694). 그러는 한편 수학에도 흥미를 가져, 87년경부터 형 야콥과 협력하여 해석학을 연구하였고, 그 전개에 공헌하였다. 90년부터는 파리에 머물며 ‘무한소해석(無限小解析)’‘적분법’을 체계적으로 강의하였다. 95년 그로닝겐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며, 형이 사망한 후로는 바젤대학에 초빙되었다(1705). 급수의 연구, 최속강하선(最速降下線)에 대한 문제 제출 등이 있은 후, 해석학을 물리학에 응용하는 문제에 관심을 돌려 실체진자(實體振子)를 다루었으며, 또 역학에 있어서의 가상변위(假想變位)의 원리를 정식화하였고, 뿐만 아니라 역학에서의 활력의 개념을 주장하여, 라이프니츠를 옹호하였다. 후계자 육성에도 주력하였는데, 18세기의 대수학자 L.오일러도 그의 제자였다.

 

베르누이(1700.1.29~1782.3.17)

스위스의 물리학자·수학자. 네덜란드 그로닝겐 출생. 베르누이가(家)의 요한 베르누이의 아들이다. 1725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이어 33년 바젤대학 식물학·해부학 교수를 거쳐 50년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50). 확률론 연구 등 수학 분야의 업적도 있지만, 물리학 분야에서의 공헌이 크다. 오르간파이프의 공기진동(空氣振動)·탄성현(彈性弦)·탄성곡선 연구가 있으며, 강체(剛體)운동에서 병진운동과 회전운동의 분리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특히 활력(에너지)의 이론을 추진, 그 보존원리(역학적에너지보존법칙)를 보편화하였다. 그와 같은 생각은 유체를 다루는 데도 활용되었으며, 38년 쓴 유명한 저서 《유체역학(流體力學)》에서는 ‘베르누이의 정리’를 논술하여, 유체역학의 정식화(定式化)를 시도했다. 또 열(熱)의 본성에 관해서는, 그것이 분자의 운동에 의한다는 설을 주장하여 기체분자운동론의 선구자가 되었고, 기체법칙(보일의 법칙)을 도출하였다. 아버지가 죽은 후, 파리 과학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이 되었다.

 

베블런(1880.6.24~1960.8.10)

미국의 수학자. 아이오와주(州) 데코라 출생. 프린스턴대학의 교수(1910∼32)로 있다가 1932년부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일원이 되었다. 미분기하학의 연구자로, 특히 ‘길[道]의 기하학’을 연구하여 바일이 발견한 아핀 접속(接續)의 사영변환을 검토하였고, 그 변환에 대하여 불변의 기하학(사영기하학이라 정의됨)을 전개하여 사영 접속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사영기하학과 G.F.B.리만기하학의 유사성을 해명한 공헌은 크다.

 

벨트라미(1835.11.16~1900.2.18)

이탈리아의 수학자. 피사대학·볼로냐대학·로마대학의 교수를 거쳐 1876년 파비아대학 교수가 되었다. 미분기하학을 연구하여 로바체프스키 기하학과의 관련을 평면에의 사상을 통하여 포착하고, 의구면(擬球面)의 내부기하학이 로바체프스키의 쌍곡평면 내부기하학과 동형임을 제시하였다. 68년의 논문 《비유클리드기하학의 해석 시론》에 기술한 이 내용은 로바체프스키 기하학의 무모순성을 나타낸 것으로서 비유클리드기하학의 진보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밖에 ‘탄성체의 휨’에 관한 연구도 있다.

 

보어(1887.4.22~1951.1.22)

덴마크의 수학자. 코펜하겐 출생. 물리학자 N.H.D.보어의 동생으로 17세 때 코펜하겐대학에 들어가 해석학·수론(數論)을 배웠고, 덴마크공과대학과 코펜하겐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독일 괴팅겐대학과 미국 대학의 객원 교수로 자주 초청되었다. 국제수학자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뉴욕에 머물던 중 병을 얻어서 코펜하겐으로 돌아와 죽었다. 젊었을 때 이미 디리클레급수·리만함수·ζ함수를 연구한 지도적인 해석학자였다. 1914년 ζ함수에 관한 ‘보어-란다우의 정리’를 세웠고, B.옌센과 ζ함수의 a점 분포를 공동연구하여 근대 해석학의 중요 부분을 형성한 공로가 크다. 죽은 뒤에 《보어 전집》이 덴마크 수학회에서 간행되었다.

 

볼차노(1781.10.5~1848.12.18)

체코의 철학자. 프라하 출생. 그곳에서 신학·철학·수학을 공부한 다음 1805년 성직자가 되었다. 동시에 프라하대학의 철학적 종교론 교수가 되었으나, 이단을 선전하였다는 혐의로 19년 면직당했으며, 출판금지 처분도 받았다. 독일 관념론에 반대하여 객관주의적이며 비역사적인 논리학의 구상을 전개하여, 뒤에 E.후설의 현상학(現象學)에 영향을 끼쳤다. 주저로는 《아타나지아:Athanasia》(1827) 《지식학:Wissenschaftslehre》(4권, 47) 《무한의 역설:Paradoxien des Unendlichen》(51) 등이 있다.

 

볼테라(1860.5.3~1940.10.11)

이탈리아의 수학자·물리학자. 안코나 출생. 1883년 피사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이어 토리노대학(1893)을 거쳐 로마대학 교수로 취임하였다(1900). 수리물리학의 문제에 관한 업적이 있으며, 탄성이론에서 편미분방정식을 연구하였다. 변분(變分) 문제와 관련하여 N.H.아벨이 만든 방정식을 일반화하고, 이른바 ‘볼테라의 적분방정식’을 연구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해석함수의 다가성(多價性)이 가산적인 데 불과하다는 것을 나타낸 ‘프앵카레-볼테라의 정리’ 등도 있으며, 현대수학의 중요한 분과인 위상해석학에서 선구적인 공헌을 하였다.

 

불(1815.11.2~1864.12.8)

영국의 수학자·논리학자. 링컨 출생. 빈민 자녀들을 위한 내셔널 스쿨에서 초등교육을 받았다. 라틴어·그리스어를 독습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으나 초등학교에서의 수학교육에 의혹을 느낀 것이 계기가 되어 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P.S.M.de 라플라스의 《천체역학》, J.L.라그랑주의 《해석역학》을 익힌 후 변분법(變分法)에 관한 하나의 발견에 도달하였고 계속하여 불변식론(不變式論)을 연구하여 중요한 성과를 얻었다. 그는 이를 《케임브리지 수학잡지》에 기고하여 많은 수학자를 알게 되었고, 대수학 전개의 중요한 일익을 맡은 영국학파 속에서 그 지위를 굳혀나갔다. 1849년 퀸스칼리지의 수학 교수가 되었다. 가장 유명한 업적은 기호논리학(記號論理學)의 창시와 논리대수(Boole 代數)의 전개였다. 논리 또는 추론을 수학적으로 다루려고 한 이 연구는 마침내 《논리와 확률의 수학적 기초를 이루는 사고(思考)의 법칙 연구:An investigation into the laws of thought on which are founded the mathematical theories of logic and probabilities》(1854)라는 불후의 노작(勞作)으로서 결실을 맺었다.

 

브로우베르(1881.2.27~1966.12.2)

네덜란드의 수학자. 1913년 이래 암스테르담대학 교수로서, 위상기하학과 수학기초론상의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위상기하학에 대해서는 10년대 초에 공간차원의 위상적 정의를 부여하였고, 사상도(寫像度)의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또한 ‘브로우베르의 부동점정리(不動點定理)’를 증명하였다. 그가 사용한 수법은 집학론적 위상기하학에 대수적 방법을 적용하는 기초를 만들었다. 수학기초론상의 업적을 발전시키기 시작한 것은 20년경부터이다. D.힐베르트 등의 형식주의에 반대하고, 수학의 기초는 자연수열의 직관에 있다고 하여, 직관의 기초가 없는 곳에 배중률(排中律)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주장에 의해 그는 수학적 기초론에서 직관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 ‘수학은 학문(Lehre)이기 보다는 오히려 행위(Tun)이다’라고 한 그의 말은 그러한 입장을 잘 나타내고 있다.

 

비노그라도프(1891.9.14~1983.3.20)

소련의 수학자. 가법적 정수론의 권위자로 유명하다. 어떤 종류의 삼각합의 평가에 관하여 독특한 기교를 고안하였고 유효 적절한 서클메소드를 창설하였다. C.골트바흐와 L.오일러 사이에 오고간 서한 속에 제기된 양의 정수를 소수의 합으로 나타내는 문제(1742)에 대해서는, 1937년 충분히 큰 홀수는 많아야 3개의 소수(素數)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E.웨링이제시한 유명한 문제(1770)에 대해서는 47년에, 충분히 큰 자연수는 기껏 3n(log n+11)개의 자연수의 n승멱의 합으로서 표시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 외 해석적 정수론의 여러 분야에 끼친 공으로, 스탈린상을 받기도 하였다.

 

비에트(1540~1603.12.13)

프랑스의 수학자. 퐁트네르콩트 출생.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수학을 연구하였다. 후일 앙리 3세와 4세를 섬겨 궁정 고문관이 되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삼각법의 개선에 노력하였으나, 나중에 대수학의 계통화에 착수하여, 1591년부터 투르에서 간행하기 시작한 《해석학입문》에서 그 새로운 대수학을 전개하였다. 여기서 처음으로 대수가 기호적으로 다루어지고, 간약(簡約)의 원리가 사용되었으며, 3차방정식을 중심으로 한 방정식의 일반적 취급이 제시되었다. 대수학을 기하학과의 관련에서 파악했기 때문에, 가령 방정식의 근과 계수 사이의 관계를 통찰하면서도 양의 근[正根] 이외는 버리는 등, 문제의 전면해결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한편으로는 17세기 해석기하학 전개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공헌하였다.

 

비오(1774.4.21~1862.2.3)

프랑스의 물리학자·천문학자·수학자. 파리 출생. 1795년 에콜 폴리테크니크(이공과대학)에서 배우고, 97년 보베대학 수학교수, 1800년 콜레주 드 프랑스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라플라스의 천체역학 해석》의 저자로서 널리 알려졌으며, 1803년 자연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1804년 게이뤼삭과 함께 기구를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 대기(大氣)에 대한 여러 현상을 연구했으며, 1806년 경도국(經度局)에서 일하면서 D.F.J.아라고와 함께 에스파냐로 가서 자오선(子午線)을 관측하였다. 1806년 파리대학 천문학 교수가 되었다. 전자기현상을 연구하여, 20년 전류의 자기작용(磁氣作用)에 대한 ‘비오-사바르의 법칙’을 발표했다. 광학(光學)에서는 니콜이 만든 프리즘을 이용해서 수정(水晶)의 광학작용을 연구, 원편광(圓偏光)과 쌍축결정(雙軸結晶)을 발견했다. 용액을 포함한 많은 물질에 대하여 실행한 편광면(偏光面)의 회전에 관한 연구는, 우회전성·좌회전성의 관찰에까지 미쳤으며 광학의 진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주요저서로는 《실험물리학과 수학논문집:Trait?de physique exp럕imentala et math럐atique》(1816)이 있다.

 

사케리(1667.9.5~1733.10.25)

이탈리아의 수학자. 밀라노의 예수회 신부로 파비아의 예수회 신학교 교수이며 비유클리드기하학의 선구자이다. 18세기 초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본》에 의한 기하학의 기초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 유클리드의 공리계, 특히 평행선의 공준에 대해 비판적인 논문을 많이 썼다. 그 중 사케리가 죽은 해에 나온 《모든 결점이 제거된 유클리드》는 J.H.람베르트의 논문 <평행선론> 등에 큰 영향을 주었고 19세기에 들어서자 J.보여이, N.I.로바체프스키 등의 비유클리드기하학으로 발전하였다.

 

샤를(1793.11.15~1880.12.12)

프랑스의 수학자·수학사가. 1841년부터 파리의 에콜 폴리테크니크 교수로 측지학(測地學)·역학을 가르쳤다. G.데자르그, B.파스칼의 시대에 싹이 나서 파리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J.V.퐁슬레에 의하여 정식화된 사영기하학(射影幾何學)에 대하여 그 사영적 성질과 개량적인 성질의 대응관계를 부여하는 문제를 연구하여 ‘대응원리’를 세워 종합적인 방법을 전개하였다. J.슈타이너(1796∼1863)와 함께 근세 종합기하학의 건설자로 지목받았다. 수학사가로서는 묻혀 있던 데자르그의 자료를 발굴하여 그를 재평가하였고, ‘유클리드의 서(書)’의 복원 등이 알려져 있다. 저서에 《기하학에 있어서 방법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개관:Aper뛳 historique sur l’origine et le developpement des methodes en geometrie》(1837) 《기하학의 진보:Rapport sur les progr쨞 de la geometrie》(71) 등이 있다.

 

세베리(1879.4.13~1961.12.8)

이탈리아의 수학자. 이탈리아학파(學派)의 지도자로서 대수곡선·대수곡면 및 이들을 일반화한 대수적 다양체의 일반이론을 다루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이 방면에 뛰어난 학자가 많이 나왔다. 세베리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 특히 대수적 대응의 개념을 구사하여 많은 결과를 얻었다. 이탈리아학파의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아 치밀성이 결여된 경우도 많으나 이 방면에서 많은 학자를 양성했다. 1905년 파도바대학 교수, 21년 로마대학 교수, 이어서 이탈리아 아카데미 회원, 고등수학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 이탈리아 수학계의 최고 지위에 있었다.

 

쉬케(?~?)

프랑스의 수학자. 파리 출생. 1500년경 르네상스시대에 최초로 대수학서를 집필하였다. 파리대학을 나와 리옹에서 의사로 일했다. 《수의 과학에 있어서의 세 부분:Le triparty en la science des nombres》을 저술했다. 이 책은 3부로 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유리수의 계산을 다루면서 합리적인 계산법과 인도, 아라비아수들을 설명해 놓았다. 2부는 무리수, 3부는 방정식으로, 가장 핵심 부분인 3부는 현대의 대수를 다루고 있다. ‘플러스’, ‘마이너스’라고 말로 표현했던 것을 ‘p聖? ‘m’이라는 기호를 사용하였고, 미지수의 거듭제곱에 대한 간편한 표기법을 고안하였다. 또한 명수법의 문제도 해결하였다.

 

슈바르츠(1843~1921)

독일의 수학자. 1867년 할레대학, 69년 취리히대학, 75년 괴팅겐대학의 교수를 역임하고, 92년 베를린대학 교수가 되었다. 편미분방정식의 해석적 이론 연구에서는 ‘슈바르츠의 함수’를 논하고, 변분법(變分法)에서는 리만의 존재정리(存在定理)의 증명에 성공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조화함수론(調和函數論)의 경계값 문제에서는 교대법(交代法)을 안출하였는데, 이것은 실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이론적 의의도 지니는 것이었다. 그 밖에 급수(級數)의 수렴성(收斂性)을 논하고, 이른바 ‘슈바르츠의 적분부등식(積分不等式)’을 제출하는(1905) 등 해석학의 여러 방면에 걸쳐 공헌하였다.

 

슈바르츠(1915)

프랑스의 수학자. 파리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분포이론을 통하여 미분개념을 확장하였으며 이후의 측도이론(measure theory)과 적분개념의 확장을 유발시켰다. 그 결과 해석학과 분포이론의 밀접한 관련성을 입증하였다. 종전의 해석학은 연속함수를, 분포이론은 이산함수를 주로 다루었다. 주요저서에 《분포 이론:Theorie des distributions》(1950∼51)이 있다.

 

슈타우트(1798.1.24~1867.6.1)

독일의 수학자. 1835년 에를랑겐대학 교수가 되었다. J.슈타이너와 M.샤를이 전개한 사영기하학(射影幾何學)의 일면을 발전시켰으며, 도형의 사영적인 성질은 그 어떤 계량(計量)과도 관계없이 논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계량을 포함하지 않은 위치관계만을 끌어낸 위치기하학을 창설하였다. 56년에서 60년에 걸쳐 공간(公刊)된 《위치기하학에 대한 기여(寄與):Beitr둮e zur Geometrie der Lage》에서 사영기하학에서의 허요소(虛要素:虛線·虛平面)를 기하학에 도입하여 여러 가지 좋은 결과를 얻은 바 있지만, 서술방법이 너무 간략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것이 학계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은 T.라이에가 《위치기하학:Geometrie der Lage》(1868)을 간행하여 소개한 후부터의 일이다.

 

슈타이너(1796.3.18~1863.4.1)

스위스의 수학자. 벽촌의 빈곤한 농가에서 태어나 14세까지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18세에 대교육가인 페스탈로치를 만나는 행운을 입어 이베르돈의 학교에 들어가 수학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1818년 하이델베르크대학에 들어갔고, 다시 베를린에 나가서 가정교사와 학교교사로 근무하면서 수학을 연구하다가 A.훔볼트에게 인정받아 베를린공업대학에 자리를 얻었으며, 34년 훔볼트와 K.G.야코비의 추천으로 베를린대학의 기하학 교수가 되었다. 뛰어난 순수기하학자로서, 여러 가지 도형의 상호 관련을 계통적으로 논하여 종합기하학의 체계를 세웠다. ‘쌍대원리(雙對原理)’의 1차변환이나 사영변환(射影變換)에서 전개한 연구는 사영기하학·대수기하학에 크게 공헌하였다. 기하학에 해석적 방법의 도입은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허요소(虛要素)를 채용하는 일에 대해서는 반대하였다.

 

스테빈(1548~1620)

네덜란드의 수학자·물리학자·기술자. 스테비누스라고도 불린다. 벨기에의 브뤼주 출생. 브뤼주 시청에 근무하였으며, 후에 네덜란드 군대의 경리부장이 되었다. 그의 과학적 연구는 여러 방면에 걸친 것이었으며, 문학적·군사적인 양면의 기술자로서도 활약하였고, 특히 축성(築城)기사로서의 명성은 매우 높았다. 1582년 이자 계산표의 서적을 출판하여, 상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였으며, 얼마 후에 《10분의 1에 관하여:De Thiende》(1585)라는 소책자에서 소수(小數)의 계산에 관한 최초의 조직적인 해설을 하였다. 여기서 소수(십진 분수)의 표기법과 계산법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이것의 사용을 장려하여 계산술 진보에 이바지하였다. 다소 복잡한 이 표기법은 훗날 비에타에 의해서 개량되었는데, 그가 정부에 진언하였던 십진법에 의거한 화폐 및 도량형 제도는 프랑스 혁명에 이르러 겨우 실현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응용 산술》이라는 저서에 간추려져 있다. 그의 최대의 공헌은 역학 분야의 업적으로서, 이른바 아르키메데스적인 정역학(靜力學)은 스테빈에 의하여 대성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균형의 원리》(86)에서는 고체의 정역학과 유체의 정역학이 다루어졌으며, 또한 도르래의 이론을 전개하여 가상(假想) 변위의 원리에 이르고 있다. 특히 영구 운동이 불가능한 것을 전제로 하여, 빗면에 관한 균형의 조건을 음미하였고, ‘힘의 평행사변형의 법칙’을 발견한 공적은 매우 크다. 이 밖에 정수압(靜水壓)에서 수압기(水壓機)의 가능성을 예상하였고, 부체(浮體)의 균형을 다루기도 하였다. 훗날 네덜란드의 수륙 영선(營繕) 최고 감독관의 지위에 올랐다.

 

스토크스(1819.8.13~1903.2.1)

영국의 수학자·물리학자. 아일랜드 스크린 출생. 1841년도 스미스상(賞) 수상을 계기로 모교인 케임브리지대학의 특별 연구원이 되었고, 49년 교수로 취임, 평생 교직에 머물렀다. 89년 귀족의 작위를 받고 한때 왕립학회 회장직도 맡았으며, 럼포드상(52), 코플리상(93)을 비롯한 많은 수상 경력도 있다. 특히 그의 연구분야는 광범위하여, 수학에서 미분·적분방정식론 등에 공헌한 바 컸고, 또한 물리학에서도 유체역학·광학·음향 등의 이론적 전개에 큰 업적을 남겼다. 한편, 실험에도 재능이 있어 X선이 전자기파라는 결론과 형광체(螢光體)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에 관한 ‘스토크스의 법칙’을 발견했다. 그는 이러한 실험을 통하여 흡수스펙트럼과 자외선부의 스펙트럼의 고찰에서 항성(恒星)의 물질 조성을 추측했으며, 이 밖에 점성(粘性) 유체 중에서의 물체의 낙하에 관한 ‘스토크스의 공식’이 있다.

 

스틸체스(1856~1894)

네덜란드 태생의 프랑스의 수학자. C.에르미트의 영향을 받아 1882년부터 해석학(解析學)을 연구하였고, 85년 파리로 이주한 후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86년 발산급수(發散級數)의 취급, ‘스틸체스 적분(積分)’의 창시 등으로 유명해졌고, 해석학에 새로운 전망(展望)을 가져왔다. 또한 해석함수론(解析函數論)의 기본개념의 정비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고, 툴루즈대학 교수를 지냈다.

 

실베스터(1814.9.3~1897.3.15)

영국의 수학자. 런던 출생. 일찍이 소년기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였으나, 케임브리지대학에서 A.드 모건의 지도를 받고 두각을 나타냈다. 15세에 리버풀 왕립지식보급회에 입회하여 2개의 상을 받았다. 1837년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후, 41년 더블린대학에서 석사(碩士) 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에 런던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영국학사원 회원으로도 선출되었다.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장애에 부딛쳐 교수직을 2년 만에 물러났으며,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버지니아대학 교수가 되었으나, 3개월 만에 그만두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갔다. 생명보험회사에 들어가 일하면서부터 수학과는 거리가 멀어졌으며, 46년 런던법학원에 들어가 변호사가 되어 개업을 하였다. 이 때 변호사 A.케일리와 알게 되어, 10년간의 수학 공백기를 끝내고 재차 수학 세계로 되돌아와 케일리와 함께 대수적 불변식론(代數的不變式論)의 전개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 행렬(行列)과 대수적 불변식의 기초 이론을 확립하여, 그 후의 과학이론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55년 육군사관학교 교수가 되었으며, 16년간 재직한 후 정년 퇴직하고 시작(詩作)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동안에 저술한 것이 《시(詩)의 법칙》이다. 76년 미국의 존스 홉킨스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부임하였으며, 그 곳에서 《아메리카 수학잡지》를 창간하는 등 수학계에 공헌하였다. 85년 옥스퍼드대학 교수로 초빙되었는데, 그 최초의 강의가 ‘미분불변식(微分不變式)의 이론’이었다. 업적은 불변식론의 개척과 소수분포(素數分布)에 관한 연구가 유명하며, 역학(力學)의 영역에서도 ‘1점의 둘레의 강체(剛體) 운동에 관한 정리’도 있다. 저서에 《The Collected Mathematical Papers of J.J.Sylvester》(4권,1904~12)가 있다.

 

아다마르(1865.12.8~1963.10.17)

프랑스의 수학자. 베르사유 출생. 에콜 폴리테크니크(파리 이공과대학) 및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고등 사범학교)에서 수학하였다. 보르도대학·소르본대학·콜레주 드 프랑스 등의 교수를 역임하고, 1912년 C.조르당의 뒤를 이어 에콜 폴리테크니크 교수가 되었다. 해석학과 대수학, 특히 변분법(變分法)·급수론·해석함수론에서의 업적은 두드러지며, 소수분포(素數分布)에 관한 극한정리와 멱급수(冪級數)의 수렴에 관한 정리는 흔히 그의 이름을 붙여 불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에 망명하여 전후에 귀국하였다. 주저에 《테일러급수와 해석접속(解析接續)》(1901) 《변분법 강의》(10) 등이 있고, 유체역학(流體力學)에 관한 명저 《파도의 전파와 유체역학》(1903)이 있다.

 

아르키메데스(BC 287?~BC 212)

고대 그리스 최대의 수학자·물리학자. 시칠리아섬의 시라쿠사 출생. 천문학자 피디아스의 아들로 태어나, 젊어서부터 기술에 재능이 있어, 그가 만든 수력천상의(水力天象儀)는 극히 정밀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집트에 유학 중 나선(螺旋)을 응용해 만든 양수기는 ‘아르키메데스의 나선식펌프’로 불리며, 지금도 관개용 등에 쓰이고 있다. 당시 문화의 중심이던 알렉산드리아의 대(大)연구소 무세이온에서 수학자 코논(Conon:BC 260년경 활약)에게 기하학을 배우고 시라쿠사로 돌아와 많은 수학서(數學書)를 썼다. 아르키메데스에 얽힌 일화 가운데는 그가 지렛대의 원리 응용에 뛰어난 기술자였다는 사실과 관계되는 것이 많다. 지렛대의 반비례 법칙을 발견한 그는 시라쿠사왕 히에론 앞에서 “긴 지렛대와 지렛목[支點]만 있으면 지구라도 움직여 보이겠다”고 장담하였다. 왕이 해변 모래톱에 올려놓은 군함에 무장병을 가득 태우고 이것을 물에 띄우라 하였더니,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를 응용한 도르래를 써서 이를 쉽게 해냈다. 또 하루는 왕이 갓 만든 금관을 구했는데, 그것이 위조물로 순금이 아니고 은이 섞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왕은 아르키메데스에게 명하여 그것을 감정하라고 하였다. 생각에 골몰한 아르키메데스가 우연히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 물 속에서는 자기의 몸의 부피에 해당하는 만큼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것을 문득 알아냈다. 흥분한 그는 옷도 입지 않은 채 목욕탕에서 뛰어나와 “알아냈다, 알아냈다(Heureka!, Heureka!)”라고 외치며, 집으로 달려가 그 금관과 같은 분량의 순금덩이를 물 속에서 달아 본즉 저울대는 순금덩이 쪽으로 기울어 금관이 위조품인 것을 알아내었다. 그는 이 원리을 응용하여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즉 위조왕관에는 은이 섞여 있어 같은 무게의 순금보다도 부피가 크고 따라서 그만큼 부력(浮力)도 커진다는 것이다.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싼 3차에 걸친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 중 제2차 포에니전쟁(BC 218∼BC 201) 때 시라쿠사는 카르타고의 편을 들어 로마군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게 되었다. 이 때, 아르키메데스는 이미 70세를 넘은 고령이었지만, 이 위기를 구하기 위하여 각종 투석기·기중기 등 지렛대를 응용한 신형무기를 고안하여 로마의 대군을 크게 괴롭혔다. 수년 후 시라쿠사가 함락되던 날,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기하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그날 아르키메데스는 뜰의 모래 위에 도형을 그리며 기하학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중, 다가오는 사람 그림자가 로마 병사인 줄도 모르고 “물러서거라, 내 도형(圖形)이 망가진다”고 외쳤다. 그러나 로마병사는 그를 몰라보고 그의 목을 쳤다. 또 만년에 죽은 뒤 건립하도록 유언된 그의 묘에는 뜻밖에도 구(球)에 외접(外接)하는 원기둥의 도형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그가 고심 끝에 발견한 정리(定理) “구에 외접하는 원기둥의 부피는 그 구 부피의 1.5배이다”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었다. 한편, 아르키메데스는 유클리드 등 다른 기하학자들과는 달리 기하학의 문제를 푸는 데도 역시 지렛대의 원리를 사용하였다. 즉 동질(同質)의 구와 원기둥을 만들고 이것을 저울에 달아 후자는 전자의 1.5배의 무게가 있음을 미리 알아 두고, 그 다음 이것을 귀류법(歸謬法)을 써 기하학적으로 증명하는 방법을 썼다. 같은 방법에 의한 다른 정리의 발견, 예컨대 포물선에 둘러싸인 넓이는 그와 동일한 밑변과 동일한 높이의 내접삼각형의 4/3배라는 것 등에도 사용되었다. 그는 기하학을 기술과 연결지은 학자로서 더 나아가 원주율이라든가, 우주의 크기를 나타내는 기수법(記數法) 등, 수학을 널리 실제문제 해결에 연결지음으로써 한층 더 그리스수학을 진전시킨 학자였다. 저작으로는 《평면의 균형에 대하여》 《포물선의 구적(求積)》 《구(球)와 원기둥에 대하여》 《소용돌이선[渦線]에 대하여》 《코노이드(conoid)와 스페로이드(spheroid)》 《부체(浮體)에 대하여》 《원(圓)의 측정에 대하여》 《모래 계산자(計算者)》 《가축문제(家畜問題) 기타》 등이 알려져 있다.

 

아리스타르코스(BC 310?~BC 230?)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수학자. BC 281∼BC 280년에 하지(夏至)의 관측을 하였고, 지구는 지축을 중심으로 일주운동(日周運動)을 한다고 제창하였다. 또한 지동설(地動說)을 제창한 최초의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지동설은 그 뒤 히파르코스 등에 의하여 부정되었다. 그는 항성의 겉보기의 부동성과 태양을 도는 지구의 회전궤도를 조정하기 위하여, 항성구(恒星球)는 지구의 궤도를 포함한 천구에 비하여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고 가정하였다. 즉 그가 생각한 우주는, 그 이전의 사람들이 생각한 우주보다 훨씬 컸다. 지금 남아 있는 그의 유일한 논문 <태양과 달의 크기와 거리에 관하여>는 본질적으로 기하학적 저술이지만, 이 속에서 3각법을 사용하고 몇 가지 가설을 마련한 뒤,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① 지구로부터 태양까지의 거리는 지구로부터 달까지의 거리의 18배나 되고, 20배보다는 짧다. ② 태양의 지름과 달의 지름의 비는 위와 같은 비율이다. ③ 태양의 지름과 지구의 지름의 비는 19:3 보다는 크지만, 43:6 보다는 작다. 이들 결과는 틀린 것이었지만, 그 방법은 옳았다. 시각(視覺)·빛·빛깔에 관하여도 저술하고, 개량 해시계도 발명했는데, 이 해시계의 바늘은 오목(凹)면구의 중앙에 세워져, 태양의 방향과 높이는 반구면(半球面)에 표시된 눈금으로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아벨(1802.8.5~1829.4.6)

노르웨이의 수학자. 오슬로 근교 핀드 출생.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세 때 아버지를 잃고 가난과 싸우면서도 수학공부에 뜻을 두었다. 다행히 뒷날 《아벨 전집》을 편집한 친구 B.M.홀름보에의 도움으로 크리스티아니아대학(지금의 오슬로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19세 때에는 그때까지 약 3세기 동안 수학상의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던 5차방정식의 대수적 일반해법(代數的一般解法)을 연구하여, 그 불가해성(不可解性)을 증명하였다. 아벨은 5차방정식에 관한 논문을 자비(自費)로 인쇄하여, 그 일부를 당시 수학계의 제1인자였던 K.F.가우스에게 보냈으나, 가우스는 그것을 읽어 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1822년 크리스티아니아대학을 졸업한 아벨은 홀름보에의 주선으로 정부 보조금을 얻어 수학연구를 계속하였으며, 25년에 독일·프랑스로 유학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 괴팅겐에는 가우스가 있었기 때문에 아벨은 괴팅겐을 피하여 베를린으로 갔고 거기에서 A.L.크렐레와 만나게 되었다. 크렐레는 아벨의 협력을 얻어 26년에 수학연구의 전문지인 《순수수학 및 응용수학 잡지》를 창간하고, 여기에 아벨의 논문을 게재하여 그 업적을 세상에 소개하였다. 아벨은 이어 프라이부르크, 드레스덴, 빈 등을 거쳐 이탈리아, 스위스, 파리로 갔으며, 그 동안에 ‘아벨의 정리(定理)’를 포함한 타원함수론을 써서 파리에 있는 프랑스 학사원(學士院)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한 채 병을 얻어 이듬해 27년에 베를린을 거쳐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도 고생스러운 연구를 계속하여, 타원함수론에 관한 우수한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29년 1월 신병이 악화되어 건강이 극도로 나빴으나, 프랑스 학사원에 제출했던 당시 아직 발표하지 않은 논문의 사상을 발전시켜 대수함수(代數函數)에 관한 ‘아벨의 정리’를 증명한 유명한 논문을 써서 베를린의 크렐레에게 보였다. 이 무렵에야 그의 업적이 수학계에 알려져 높이 평가되었고, 베를린대학에서 그를 교수로 초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초대장이 도착되기 이틀 전에 아벨은 26세의 불행한 생애를 마쳤다. 그의 이름은 ‘아벨의 적분(積分)’ ‘아벨의 정리’ ‘아벨방정식’ ‘아벨군(群)’ 등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많은 수학용어 속에 살아 있어, 수학계 불후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아이젠슈타인(1823.4.16~1852.10.11)

독일의 수학자. 베를린 출생. 집안이 가난하여, 프로이센 왕실의 비호로 수학을 공부하였다. 젊었을 때부터 재사(才士)로 소문이 나 1847년에 베를린대학 강사가 되었으나 아깝게도 요절하였다. K.J.야코비, P.G.L.디리클레, J.슈타이너 등과 함께 베를린에 수학 전성시대를 형성하여 B.리만 등 준재를 배출하게 하였다. 스승인 K.F.가우스는 그를 아르키메데스, I.뉴턴에 버금가는 위대한 수학자로 꼽았다고 한다. 짧은 생애에 정수론(整數論), 불변식론(不變式論), 타원함수론 등 많은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거듭제곱 잉여에 관한 ‘아이젠슈타인의 상호법칙’, 정수론이나 타원함수론에 쓰이는 ‘아이젠슈타인의 급수’, 유리정계수(有理整係數)의 다항식의 기약성(旣約性)에 관한 ‘아이젠슈타인의 정리’ 등에는 지금도 그의 이름을 붙여져 있다.

 

아폴로니오스(BC 262?~BC 200?)

그리스의 수학자. 소아시아의 페르가에서 태어났고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하였다. 저서 《원뿔곡선론[圓錐曲線論]》 8권은 고대 최고의 과학서 중 하나이다. 오늘날까지 최초의 4권은 그리스어(語)로, 다음 3권은 아랍어로 남아 있으나, 최후의 한 권은 일실되었다. 원을 밑변으로 하는 원뿔이라면 어떤 것이든 3개의 마디점[切面]이 생긴다고 하는 정의를 세웠다. 그리고 이 마디점들에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포물선·쌍곡선·타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의 일반화는 방법론상의 진보를 가져 왔고, 원뿔곡선으로 일괄하여 취급할 수 있게 되었다. 원뿔곡선의 특질과 응용은 그에 의하여 거의 마무리지어졌다. 또 행성(行星)의 운동에 관하여 ‘주전원설(週轉圓說)’과 ‘편심원설(偏心圓說)’도 처음으로 주창하였다. 이 밖에 ‘아폴로니우스의 원’도 유명하다.

 

알렉산드로프(1896~1982)

러시아의 수학자. 모스크바 출생. 위상기하학(位相幾何學)의 중심적 존재이다. 1913년 모스크바대학 수학과에 입학, 집합(集合)의 농도 문제(濃度問題)와 연속체 문제의 연구에 착수하였다. 한때 수학에 자신을 잃고 민중교육과 연극 등에도 종사하였으나, 20년부터 위상기하학을 연구한 끝에 우리손과 함께 위상기하학의 모스크바 학파를 창립하였다. 우리손이 죽은 뒤 그 학파의 핵심멤버로 활약하면서 폰트리야킨, 코르모그로프 등의 준재(俊才)들을 이 학파에서 배출시켰다. 독특한 공간이론을 세우고, 또 일반차원론의 기초 위에 조합적 위상기하학의 대수적 방법을 집합론적 분야에 이입(移入)시켜 위상기하학에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모스크바대학 교수, 러시아과학아카데미 회원, 모스크바 수학회 회장을 지냈고 레닌 훈장을 받았다. 저서에 《조합적 위상기하학》(1947) 《일반집합론과 함수론 입문》(48) 등이 있다.

 

알콰리즈미(780~850)

알마문치세(813∼833)에 활약한 페르시아계 수학자·천문학자·지리학자인 당시의 최대 과학자. 이슬람교도로서, 아랍식 기수법(記數法)을 뜻하는 알고리즘(algorism)은 이 이름에서 전용된 것이다. 그리스와 인도의 지식을 종합하였으며, 그 산수는 아랍인과 유럽인에게 인도의 기수법을 소개하였다. 대수학 저서인 《복원(復元)과 대비의 계산》도 중요한 것으로, 거기에는 1차방정식과 2차방정식의 해석적 해법이 포함되어 있다. 또 2차방정식의 기하학적 해법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대수학을 뜻하는 영어의 algebra는 아랍어로 복원을 뜻하는 al-jabr에서 유래한다. 그의 천문표와 삼각법의 표에는 사인함수나 탄젠트함수도 포함되어 있다. 지구의 경·위도 측정에도 종사하였는데,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의 본문과 지도의 양쪽을 개정하여 《지구의 표면》이라고 개제하였다.

 

알포르스(1907.4.18)

핀란드의 수학자. 헬싱키 출생. 프랑스·독일·스위스에 유학하였고, 1930년 헬싱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36년 오슬로에서 개최된 국제수학자회의에서는 유리형함수(有理型函敷) 및 리만면(面)의 연구로 필즈상(賞)을 받았다. 헬싱키대학(1938∼44), 취리히대학(44∼46), 하버드대학(46∼78)의 교수를 역임했고, 미국 및 핀란드의 과학아카데미 회원이다. 학위논문은 <등각사상(等角寫像) 및 정함수(整函數) 이론의 연구>(1930)이다. 1907년 A.단조와가 “계수(階敷) ㉯?정함수가 n개인 유한점근치(有限漸近値)를 가진다면, 반드시 n???될 것이다”고 예상하였다. 학위논문에서 대상영역(帶狀領域)의 등각사상에 관한 새로운 왜곡정리(歪曲定理)를 사용하여 단조와의 예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각미계수(角微系敷)의 이론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32년 기하학적인 새로운 방법으로 R.네반리나의 유리형함수론을 간결하게 하여, 33년에 ‘삼영역정리(三領域定理)’를 얻었다. 35년의 피복면(被覆面)의 이론 연구는 매우 뛰어난 것이었다. 그것은 위상기하학(位相幾何學)에서의 고전적인 A.후르비츠의 공식을 계량적이며 위상적인 방법으로 확장하여 얻은 피복면의 주요정리에서 유리형함수의 이론을 도출한 논문이다. 리만면상의 아벨적분이론, 리만면의 분류, 준등각사상극치적(準等角寫像極値的) 길이의 이론 등에 관하여 중요한 기여를 했다. 주저에 《Complex analysis》(53) 《Riemann surfaces》(60) 《Conformal invariants》(73) 등이 있다.

 

야코비(1804.12.10~1851.2.18)

독일의 수학자. 포츠담 출생. 1825년에 베를린대학을 졸업하였고 43년까지 17년 동안 쾨니히스베르크대학 교수를 지냈다. 만년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이탈리아에 체재하면서 정양했으며 훗날 베를린대학 교수를 지냈으나 이때는 별다른 업적이 없었다. 그의 강렬한 성격은 빈번히 사람들의 반감을 샀고, 또한 자유주의 사상가라는 입장도 당시 독일에서는 환영받지 못하였다. 수학상의 업적은 주로 쾨니히스베르크 시절의 연구 결과로서 타원함수의 이론을 전개하여, 이것으로부터 삼각법의 sin ? cos ? tan 슴?아주 비슷한 함수 sn x, cn x, dn x의 기초를 닦았다. 오늘날 야코비안이라고 불리는 함수행렬식은 그의 연구에 대해서 J.실베스터가 이름을 붙인 것이다. 42∼43년의 역학의 강의 중에서 훗날의 ‘해밀턴-야코비의 편미분방정식(Hamilton-Jacobische Partielle Differentialgleichung)’을 도입하였으며, 이 방정식은 양자역학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에라토스테네스(BC 273?~BC 192?)

그리스의 수학자·천문학자·지리학자. 큐레네 출생. BC 244년경에 아테네에서 이집트로 옮겨 BC 235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왕실 부속학술연구소의 도서관원이 되었다. 소수(素數)를 발견하는 방법으로서, 에라토스테네스의 체(코스키콘)를 고안하고, 정입방체(正立方體)의 배가(倍加)문제를 푸는 기구(器具:메소라본)를 발명하였다. 같은 자오선 위에 있다고 생각되었던 시에네(현재의 Aswan)와 메로웨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여, 해시계로 지구 둘레의 길이를 처음으로 계산하였다. 그 결과 약 4만 5000 km(정확한 거리는 약 4만 km)라는 근사값을 얻었다. 저서 《지리학:Geographica》(3권)에는 지리학사·수리지리학(數理地理學) 및 각국 지지(地誌)와 지도 작성의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지리상의 위치를 위도·경도로 표시한 것은 그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별의 목록을 포함한 논문도 썼고, 사학(史學)이나 언어학에 관한 저술도 남겼다.

 

에르미트(1822.12.24~1901.1.14)

프랑스의 수학자. 로렌주 디유즈 출생.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수학계를 이끈 거장으로서, 대수학(代數學)·해석학(解析學)의 분야에서 큰 공헌을 남겼고, 수론(數論)·불변식론(不變式論)·공변식론(共變式論)·정적분론(定積分論)·방정식론·타원함수론(楕圓函數論) 등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낭시에서 파리로 유학하여, 앙리 4세 중학에서 유명한 고등학교인 루이 르 그랑(Louis le Grand)으로 진학했으나 학교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20세 때 파리 이공과대학에 진학했으나, 1년만에 그만두고 수학 연구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갔다. J.L.라그랑주의 수치방정식의 논문과 가우스의 《정수론(整數論) 연구》로 대수학을 공부했다. 그 후, 《신수학 연보(新數學年報)》 창간호에 실린 <5차방정식의 대수적 해법(代數的解法)>으로 독창성을 보였으며 이어 아벨함수로 관심을 돌려 K.G.J.야코비 등의 지우(知遇)를 얻어, 이 문제에 관한 그의 뛰어난 업적이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 파리 이공과대학과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 34세에 학사원 회원, 이어서 에콜 노르말(1869) 및 소르본대학(70) 교수가 되어, 퇴직할 때까지 27년간 교직에 종사하였다. 그 동안 보렐, H.푸앵카레 등 많은 준재(俊才)를 기르고, 또 저작으로 수학계에 공헌하였다. 그의 아벨함수에 관한 최초의 이론은, 가우스의 수론(數論)의 기초 위에서 전개되었지만, 이것은 일찍이 가우스가 좌절하고, 아이젠슈타인이 착수한 일반적인 2차 형식의 수론적 연구에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형식의 이론’이 진척되어 ‘에르미트형식’의 연구가 되었지만, 이것은 그 후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量子力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편, 그의 대수적(代數的) 불변식론은 최고의 업적이라고 평가되며, 또 일반 5차방정식을 타원함수로 푸는 해법은 대수학·해석학에 새로운 분야를 열어, 푸앵카레의 보형(保型) 함수에 인계(引繼)되는 것이다. 그 밖에, 자연로그 한계(限界)의 초월성 증명도 있다.

 

에우독소스(BC408?~BC355?)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천문학자. 소아시아의 쿠니도스 출생. 피타고라스학파의 대학자인 아르큐타스에게서 기하학을, 의학은 테오메돈에게서, 철학은 플라톤에게서 배웠다. 아테네에서 연구하고 있다가 추방당하여, BC 381년 플라톤과 함께 이집트로 가서 1년 4개월을 지낸 후 귀국길에 플라톤과 작별하고 큐지코스에 머물러 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당시의 여러 가지 수학상의 대문제를 연구하였으며, 주어진 정육면체의 2배의 부피를 가진 정육면체를 작도하는 문제(立方倍積問題)를 독자적인 방법으로 풀어서 무리수(無理數)에도 적용되는 일반 비례론을 세웠다. 또한 문제의 철저 검토법(method of exhaustion)에 의하여 평면기하학과 입체기하학의 여러 문제를 엄밀하게 증명하였다. 그의 업적은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본》 제5권에 정리되어 있다. 천문학 연구와 관련하여 구면상(球面上)의 곡선의 문제도 연구했다. 황금분할(黃金分割)의 이론을 발전시켜 각뿔과 원뿔의 체적에 관한 제정리를 증명하였고, 원의 넓이는 그 반지름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하였다. 천문학에서는 동심천구설(同心天球說)을 주장하여 과학적 우주상(宇宙像)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 설은 행성·달·태양의 불규칙한 운동을 지구를 중심으로 한 27개의 천구의 회전운동의 결합으로 해명하려고 한 것이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채용되었다.

 

오용진(吳龍鎭/1906~1983)

교육자·수학자. 호 석봉(石峰). 세례명 요한. 경북 출생.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1926년 대구고보(大邱高普:현 경북고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32년 히로시마[廣島]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귀국하여 대구고보 교사로 재직하면서 35년 이효상·최재복·김주석·서정섭·김용화와 ‘육우회(六友會)’를 조직, 선교와 문맹퇴치에 힘썼으며, 《천주교회보》를 간행하는 등 대구교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후 경북중학교장을 거쳐 48년 대구사범학교(현 경북대학) 교수로 부임, 71년 정년퇴직 때까지 경북대학교 대학원장·대한수학회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75년에서 79년까지는 대구대교구 사제양성후원회 회장직을 맡아 교구 내의 사제양성에도 헌신하였다. 교육과 교회사업에 대한 공헌으로 70년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으며, 74년에는 교황청으로부터 평신도 사도직 수훈포상을 받았다.

 

오일러(1707.4.15~1783.9.18)

스위스의 수학자·물리학자. 바젤 출생. 주로 독일·러시아의 학사원을 무대로 활약하였고, 해석학의 화신(化身), 최대의 알고리스트(algorist:數學者) 등으로 불렸다. 그의 연구는 수학·천문학·물리학뿐만 아니라, 의학·식물학·화학 등 많은 분야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처음에는 목사가 되기 위하여 바젤대학에서 신학과 헤브라이어를 공부하였으나, 수학에서 J.베르누이의 관심을 끌어 곧 D.베르누이, N.베르누이와 사귀었다. 이와 같이 베르누이가(家) 사람들의 조언과 상트페테르부르크학사원에 간 베르누이 형제의 소개로, 처음에는 그 학사원의 의학부에 이어서 수학부에 적을 두었다. 40년 프리드리히대왕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24년간 베를린학사원의 수학부장으로서 연구에 몰두하였으나 점차 궁정에서의 인기가 떨어져 다시 예카테리나 여제(女帝)의 청을 받자 66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후에 시력을 잃고 장님이 되었으나 천부적인 기억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연구를 계속하였다. 수학자로서의 연구를 시작한 시기는 뉴턴이 죽은 시기에 해당하여 해석기하학·미적분학의 개념은 갖추어져 있었으나 조직적 연구는 초보단계로 특히 역학·기하학의 분야는 충분한 체계가 서 있지 않았다. 이러한 미적분학을 발전시켜 《무한해석 개론:Introductio in Analysis Infinitorum》(1748) 《미분학 원리:Institutiones Calculi Differontial》(55) 《적분학 원리:Institutiones Calculi Integrelis》(68∼70), 변분학(變分學:극대 또는 극소의 성질을 가진 곡선을 발견하는 방법)을 창시하여 역학을 해석적으로 풀이하였다. 이 밖에도 대수학·정수론(整數論)·기하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큰 업적을 남겼다. 그 중에도 삼각함수의 생략기호(sin, cos, tan)의 창안이나 ‘오일러의 정리’ 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베를린 시대에 프리드리히대왕의 질녀에게 자연과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쓴 《독일 왕녀에게 보내는 편지》는 당시 계몽서로서 유명하였으며 7개 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오트레드(1574.3.5~1660.6.30)

영국의 수학자. 수학 교수를 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저서 《수학의 열쇠:Clavis Mathematicae》(1631)에서 산술과 대수를 논하여 영국의 수학계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 책은 수학기호의 역사상 중요한 것이며, 17세기 말경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수학기호의 ∼, 곱셈의 ×는 이 책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스위스의 뷔르기 방법을 개량한 생략 곱셈(오트레드 방법)을 안출했고, 또 계산자의 발명자로도 알려져 있다. 1657년의 《삼각법:Trigonometry》에서는 평면 및 구면(球面) 삼각법을 다루었고 sin, tan, sec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와이트먼(1922)

미국의 물리학자·수학자. 뉴욕주 로체스터 출생. 1942년 예일대학을 졸업, 49년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51∼52년과 56∼57년 코펜하겐의 이론물리학연구소에 유학하였고, 60년 프린스턴대학 수리물리학(數理物理學) 교수가 되었다. 소립자(素粒子)의 현상론적 분석에서의 상대론적 불변성의 역할을 강조했고, 장(場)의 양자론의 수학적 기초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초함수론(超函數論)을 기초로 한 ‘와이트먼형식’을 제출했다. 공리론적(公理論的) 장(場)의 이론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이며, 많은 우수한 제자들을 배출했고, 구성적 장이론도 추진했다. 저서로 《PCT, Spin and Statistics and All That》(64년, R.F.스트리터와 공저)가 있다.

 

우마르하이얌(1040?~1123)

페르시아의 수학자·천문학자·시인. 카얌이라고도 한다. 니샤푸르에서 태어나 셀주크 왕조의 마리크샤왕(王)의 천문대를 운영하였다. 중세 최대의 수학자의 한 사람으로, 대수학에서는 회교도 가운데 태두(泰斗)로 숭앙된 학자이다. 2차방정식의 기하학적·대수학적 해법(解法)을 연구하고, 방정식에 대해서도 괄목할 만한 분류를 하였다. 예를 들면, 13종류의 3차방정식을 알아내어 그 해법을 시도하고, 그 대부분에 대해 부분적인 기하학적 해법을 확립하였다(단, 陰根은 고려하지 않았다). 1074년경에는 또 자라르 알 딘왕의 요청으로 새로운 역법(曆法)을 고안하였다. 그것은 《자라르 연대기》로 불리며 매우 정확하였다. 여가를 이용하여 근대 페르시아어로 4행시(루바이)를 썼는데, 그 가운데 250여 수가 《루바이야트》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의 4행시는, 그에 선행하는 같은 장르의 시인들의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보이지 않고 자유주의·합리주의에서 비롯된 무신론적 색채가 짙다.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않고 술과 꽃, 노래와 미녀를 사랑하며, 현재를 즐기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루바이야트》는 영국의 시인 E.피츠제럴드(1809∼1882)의 번역으로 유명해졌다.

 

월리스(1616.11.23~1703.10.28)

영국의 수학자.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성직자가 되었으나, 점차 수학·물리학에도 관심을 가져 1649년 옥스퍼드대학의 기하학 교수가 되었다. 수학 이외에도, 천문학·역학(曆學)·역학(力學)·음향학·식물학·생리학·문법·음악 등 여러 방면에 걸친 저술이 있으며, 암호해독에도 재능을 보이는 등 다재다능하였고, 뉴턴과도 친근하였다. 국왕 측근의 목사였으며, 로열 소사이어티 창설자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수학에서는 F.B.카발리에리나 데카르트의 생각을 발전시켜 극한의 개념을 수학적으로 다룬 한편, 미적분법(微積分法)에의 길을 연 《무한소산술(無限小算術)》(55)을 펴내고, 교묘한 귀납법으로 원주율(圓周率) 뭏?무한곱[無限乘積]으로 전개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또 원뿔곡선을 좌표에 의하여 해석적으로 논한 《원뿔곡선에 대하여》(55)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무한대에 대해 ∞의 기호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이 밖에도 영국에서 최초의 수학사(73)를 저술하였으며, 물리학에서는 조석론(潮汐論)·공명(共鳴)·충돌(衝突) 등의 연구 업적이 있다.

 

위너(1894.11.26~1964.3.18)

미국의 수학자·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의 창시자. 미주리주(州) 컬럼비아 출생. 유대계의 언어학자 L.위너의 아들이다. 매우 조숙하여 9세에 고등학교, 14세에 하버드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18세에 학위를 받았다. 영국으로 건너가서 B.A.W.러셀에게 수리철학(數理哲學)을, G.H.하디에게 수학을 배운 후, 하버드대학의 철학강사·수학교수·제너럴일렉트릭사의 견습공·백과사전편집원·신문기자 등을 거쳐서 1924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들어가 32년 교수가 되었다. 수학에서는 실함수론(實函數論)·조화해석(調和解析)·급수론·확률론을 연구하였으며, 이 밖에도 물리학·전기통신공학·신경생리학·정신병리학 등 분야에도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특히 ‘위너 측도(測度)’를 기초로 하는 브라운 운동의 이론과, 후에 R.F.파이만이 확장하여 물리학에 널리 응용된 위너 적분론, 통신과 제어공학의 분야에 통일을 이룬 시계열(時系列)의 평활(平滑)과 예측의 이론, 필터의 이론 등은 획기적인 업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전기회로를 통하여 자동조절하는 자동조준의 연구에 종사한 일이 계기가 되어 48년 새로운 학문으로서 사이버네틱스를 제창, 동물과 기계에 있어서 제어와 통신을 통일적으로 취급하려고 시도하였고, 인간의 정신활동부터 사회기구에까지 미치는 통일과학을 세우려고 하였다. 주요저서로는 그 의도를 단적으로 나타낸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or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Animal and Machine》(48)이고, 기타 수학에 관한 많은 논문 및 자서전도 저술하였다.

 

유클리드(?~?)

BC 300년경에 활약한 그리스의 수학자. 그리스식 표기는 Eukleides. 그리스기하학, 즉 ‘유클리드기하학’의 대성자이다. 그의 일생에 관해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게 수학을 가르쳤다는 것 외에는 확실한 것이 없다. 그의 저서 《기하학원본(기하학원론 또는 단지 원론·원본으로 불리기도 한다):Stoikheia》(13권)은 플라톤의 수학론을 기초로 한 것으로, 그 이전의 수학(기하학)의 업적을 집성(集成)함과 동시에 계통을 부여하여 상당히 엄밀한 이론체계를 구성하였다. 기하학에 있어서의 경전적 지위(經典的地位)를 확보함으로써 유클리드라 하면 기하학과 동의어로 통용되는 정도에 이르고 있다. 그 밖에 현존하는 저서로는 《보조론(補助論)》 《도형(圖形)의 분할에 대하여》가 있으며, 응용수학서로는 《구면천문학(球面天文學)》 《광학(光學)과 반사광학》 《음정(音程)의 구분과 화성학입문(和聲學入門)》이 있다.

 

이선란(李善蘭/1810~1882)

중국 청(淸)의 수학자. 자 임숙(壬叔), 호 추인(秋). 저장성[浙江省] 하이닝[海寧] 출생. 어려서부터 수학에 뜻을 두어, 1845년 자싱[嘉興]에 체재하며 많은 수학자들과 교유하였다. 52년 상하이로 나와 A.와일리, J.에드킨스 등과 알게 되어 그들의 협조로 《기하학원본(幾何學原本)》 후반 9권, F.W.허셸의 《담천(談天)》과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rincipia mathematica philosophiae naturalis》 등 많은 영미(英美)의 과학서를 번역하였다. 그 밖에도 자신의 저작이 4∼5가지 전하지만, 친구들의 저작을 편집한 《칙고석재산학(則古昔齋算學)》(13종 24권)도 유명하다. 68년부터 죽을 때까지 베이징의 동문관(同文館) 산학총교습(算學總敎習)의 자리에 있으면서 후진을 지도하였다.

 

이순지(李純之/1406~1465)

조선 전기의 수학자(數學者). 본관 양성(陽城). 자 성보(誠甫). 시호 정평(靖平). 음보로 동궁행수(東宮行首)로 있다가 1427년(세종 9) 문과에 급제, 왕명으로 산법(算法)을 전공한 후 의상(儀象)을 교정하고 간의규표(簡儀圭表)·태평현주(太平懸珠)·앙부일구(仰釜日晷)·자격루(自擊漏) 등을 만들었다. 57년(세조 3) 예조참판에 올랐고, 59년 한성부판사(漢城府判事)가 되었으며 성격이 치밀하여 산학(算學)·천문(天文)·음양(陰陽)·풍수(風水) 등에 밝았다.

 

이치(李治/1192~1279)

중국 금말(金末)·원초(元初)의 수학자. 《원사(元史)》에는 이야(李冶)로 되어 있다. 자 인경(仁卿). 호 경재(敬齋). 허베이성[河北省] 롼청[欒城] 출생. 1230년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고, 대시인인 원호문(元好問)과도 교유하였으며, 《경재문집(敬齋文集)》(40권)을 남겼다. 처음에는 금나라에서 벼슬을 지내며 국사편찬에 종사하였으나, 금나라가 멸망하자 한때 산야를 유랑하였다. 원나라 세조(世祖)의 부름을 받아 61년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취임하였다가 후에 봉룡산(封龍山)에 들어가 은둔생활로 여생을 마쳤다. 신수학(新數學)을 터득하여 천원술(天元術:代數計算法)을 상설(詳說)한 《측원해경(測圓海鏡)》(12권, 1248)을 저술하였고, 《익고연단(益古演段)》(3권, 59)도 펴냈다. 이 두 저술은 한때 세상에서 잊혀졌다가, 청조(淸朝)에 이르러 그 가치를 재평가받았다.

 

자리스키(1899)

미국의 수학자. 러시아의 코브린 출생. 키예프대학과 로마대학에서 대수·기하학을 공부한 후, 1927년 미국으로 건너가 존스 홉킨스대학의 교수(37∼45)가 되었고, 46∼47년 일리노이대학 수학연구 교수, 47∼69년 하버드대학 수학교수로 있다가, 69년부터 명예교수로 재직하였다. 대수 다양체(多樣體)의 기본군(基本群) 및 대수 곡면론(曲面論)에 관하여 저술하였고, 30년경부터 추상대수적 방법으로 전환, 대수기하학의 기초를 닦았다. 쌍유리변환론(雙有理變換論), 3차원까지의 대수다양체의 특이점환원(標數 0), 연결성정리(連結性定理), 유리곡면론(有理曲面論) 등 많은 업적이 있으며, 가환환론(可換環論)에 대해서도 국소환(局所環)의 해석적 정규성의 연구로 새 시대를 열었다. 주요저서로 《Algebraic Surfaces》(1935) 《Commutative Algebra》(58∼60, P.Samuel과 共著) 《Collected Papers》(72∼79) 등이 있다.

 

자이델(1821~1896)

독일의 수학자·천문학자. 1854년부터 뮌헨대학 수학 교수로 있었다. 여러 가지 항성(恒星) 및 행성(行星)의 광도(光度)에 대하여 광범위한 연구를 하였고, 광학기계에 관해서 수리적(數理的)인 많은 연구를 하여 수차론(收差論)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자이델의 5수차(五收差)’의 연구, 불유계조건(不遊系條件)의 연구는 오늘날까지도 광학기계의 설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Untersuchungen 웑er die gegenseitigen Helligkeiten der Fixsterne etc.》(1852) 《Untersuchungen 웑er die Lichtkr둭te der Planeten Venus, Mars, Jupiter und Saturn》(56) 등이 있다.

 

정대위(程大位/1533~1592)

중국 명나라의 수학자. 자 여사(汝思), 호 빈거(賓渠). 허난성[河南省] 신안현(新安縣) 출생. 어렸을 때부터 수학을 좋아하여, 강남(江南) 등지를 여행하는 동안에도 진귀한 수학책을 보면 그것을 구하여 연구하였다. 1592년 예로부터 전하여 오는 수학을 편집하여 《산법통종(算法統宗)》(17권)을 간행하였는데, 그것은 《구장산술(九章算術)》의 형식에 따른 별로 독창성이 없는 통속 수학서이지만, 송(宋)·원(元) 시대에 발달한 방정식·마법진(魔法陣)·주산도 취급하고 있다. 이 책은 후세에 크게 유행하였고, 그 판본이 수십 종류에 이른다.

 

제르곤(1771.6.19~1859.5.4)

프랑스의 수학자. 기하학(幾何學)의 ‘쌍대원리(雙對原理)’를 누가 먼저 발견하느냐로 J.V.퐁슬레와 경쟁하였는데, 착수는 그에게 기선을 빼앗겼지만, 하나의 독립 원리로서의 정립 및 그 의의(意義)의 통찰에서는 그를 앞질렀다. 《순수 및 응용 수학 연지(年誌):Annales de math럐atiques pures et appliqu럆s》를 간행하였는데(1810∼31), 이것은 그 당시 유일한 수학 전문잡지였다.

 

조르당(1838.1.5~1922.1.20)

프랑스의 수학자. 리옹 출생.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공부한 후 모교를 거쳐 1883년 이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되었다. 19세기에 접어든 후부터 서서히 진보해온 군론(群論)을 수학의 넓은 분야에 전개, 진일보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유한차원(有限次元)의 선형군(線型群)의 수에 관한 ‘조르당의 정리(定理)’는 고차원의 정다면체론과 결부되어 고차원공간(高次元空間) 안에서의 이산유한군(離散有限群)의 고찰로 발전하였으며, 또한 대수함수를 해답으로 가지는 선형 미분방정식의 이론과 리만면(面)의 이론에 도입되었다. 저서 《치환론(置換論)과 대수방정식론(代數方程式論)》(1870)은 유한군론을 수론(數論)·함수론·대수기하학에 응용한 성과의 집대성으로서 알려졌으며, 《해석학교정(解析學敎程)》(3권, 82∼87)은 19세기 후반 당시 프랑스의 종합적 교과서의 대표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F.클라인과 M.S.리 등을 지도하였다.

 

주세걸(朱世傑/?~?)

중국 원(元)나라 초기의 수학자. 옌산[燕山] 출생. 중국 각지를 찾아다니며 수학을 배우고 마침내 수학자로서 이름을 떨치자, 각지에서 제자들이 운집하였다. 저서에 《산학계몽(算學啓蒙)》(3권,1299) 《사원옥감(四元玉鑑)》(3권,1303)이 있다. 《산학계몽》은 당시의 최첨단을 걷는 교과서로서 일원방정식의 해법인 천원술(天元術)이 소개되어 있으며 급수구화법(級數求和法)에 대한 계산예(計算例)도 많이 싣고 있다. 《사원보감》은 《산학계몽》을 발전시킨 저서로, 사원술(四元術)이란 천원(天元)·지원(地元)·인원(人元)·물원(物元)의 4원방정식의 해법이며, 보간법(補間法)인 초차술(招差術)의 계산예도 포함되어 있다.

 

진구소(秦九韶/?~?)

중국 남송(南宋) 때의 수학자. 자 도고(道古). 쓰촨성[四川省]출생. 소년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당시의 수도 임안(臨安:浙江省 杭州)에 올라가 태사(太史)에게서 역법(曆法)을 공부하는 한편 어느 은사(隱士)로부터 수학을 공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년시절에는 촉(蜀)나라로 진공해 온 원군(元軍)과 10년간 싸운 사실도 있었다. 그 후 역학에 관한 지식이 인정되어 중앙의 부름을 받고 임안으로 올라가 1244년에는 통직랑통판건강부(通直郞通判建康府)가 되었고, 47년 《수학구장(數學九章)》을 저작하였다. 55년경에는 연강제치사참의관(沿江制置司參議官)에 올랐으나, 당시의 재상 오잠(吳潛)과 가까웠기 때문에 60년 오잠이 실각하자 이에 연루되어 광둥[廣東]지방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채프먼(1888.1.29~1970.6.16)

영국의 지구물리학자·수학자. 맨체스터·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배웠고, 그리니치 관측소원(1910~14), 케임브리지 대학의 직원을 거쳐(13~19), 맨체스터대학 수학 교수(19~24), 그 후 런던의 임피리얼 칼리지의 주임교수, 옥스퍼드대학 물리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의 연구원을 거쳐, 1951년 이후 알래스카대학 지구물리학 교수를 지냈고, 국제지구관측년의 국제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수학에서는 발산급수(發散級數)의 연구가 있으나, 물리학 연구로 전향하여 기체의 운동학적 이론을 전개, ‘마르코프 과정’의 전이확률(轉移確率)에 관한 채프먼 방정식을 성립시켜 지구자기(地球磁氣)·전리층·기상학·기상광학 등의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올렸다. 《불균일 기체의 수학적 이론》(Cowling과 共著) 《지구자기학》은 명저로서 널리 애독되고 있다.

 

처치(1903)

미국의 수학자·논리학자. 워싱턴 출생. 프린스턴대학 졸업 후, 1927∼29년 국비 특별연구원으로 하버드대학과 괴팅겐대학 및 암스테르담대학에서 연구하였고, 29∼67년 프린스턴대학 수학 및 논리학의 조교수·부교수·교수를 역임하였다. 36년부터는 《The Journal of Symbolic Logic》을 편집하였고, 67년부터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대학 논리학 및 수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계산이 가능한 함수를 귀납적 함수로 정의할 것을 제창하는 등, 수학기초론과 기호논리학에 많은 업적이 있다. 주요저서로 《The Calculi of Lambda-Conversion》(41) 《Introduction to Mathematical Logic》(제1권, 56) 등이 있다.

 

체르멜로(1871.7.27~1953.5.21)

독일의 수학자·물리학자. 베를린 출생. 1910년 취리히대학 교수, 26년 프라이부르크대학 교수가 되었다. 수학 분야에서는 집합론·기초론을 연구하였으며, ‘체르멜로의 선택 공리’(1904)가 있다. 또한 통계역학도 연구하여, J.W.기브스의 통계역학을 번역하고 소개하였으나, L.볼츠만의 H정리에 관해서는, 이른바 ‘재귀성(再歸性)의 반론’을 제출하여 이를 비판하고 논쟁하였다. 이것은 J.H.푸앵카레의 정리를 기초로 하여 역학적인 가역성(可逆性)을 근거로 H정리의 비가역성의 모순을 지적한 것으로서, 통계 역학의 확률적 의미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비가역성을 해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체비쇼프(1821.5.16~1894.12.8)

러시아의 수학자. 보로프스크 출생. 모스크바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이미 학생시절에도 발표회에서 상을 타는 등 일찍부터 재능을 나타냈으며, 졸업 후에도 모스크바대학에서 연구를 계속하였다. 1847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 가서 브니아코프스키에게 배우고, L.오일러의 수론(數論)을 연구하였으며, 또 《활동론》(1849)을 저술하여 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50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교수가 되어, 연구를 계속하면서 많은 후진을 양성하여 페테르부르크학파를 형성하였다. 80여 편의 논문은 수론·확률론·함수근사론(函數近似論) 그리고 다항식의 일반론과 적분론에까지 이른다. 그 중에서도 수론에서의 함수 π(x)의 평가와 디오판토스방정식의 해답의 연구, 확률론에서의 ‘큰수의 법칙’과 중심 극한정리(中心極限定理)의 연구, 특히 해석적(解析的) 방법의 확립 등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함수근사론에서 보여 준 구성적 함수론으로의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최윤식(崔允植/1899~1959)

수학자. 호 동림(東林). 평북 선천(宣川) 출생. 1917년 경성고등보통학교, 18년 동교 사범과를 졸업했다. 22년 히로시마[廣島] 고등사범학교 제1부, 26년 도쿄[東京]대학 이학부 수학과를 나와, 귀국 후 휘문고등보통학교·전주고등보통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32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조교수, 36년에는 교수를 역임했으며, 40년 경성광산전문학교 교수로서 연희전문 등의 강사를 겸임했으며 45년 경성광산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46년 서울대학 교수가 되었고 대한수물학회(大韓數物學會) 회장에 선임, 48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장이 되었다가 49년 사임했다. 54년 대한수학회회장, 학술원 추천회원이 되었으며 55년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수학을 연구하고 귀국, 56년 서울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고 이어 서울대학 대학원장·문교부고시위원 등을 지냈다.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수학자로, 수학계의 수준향상을 위해 공헌했다. 저서에 《고등대수학》 《입체해석기하학》 《미분방정식해법론(微分方程式解法論)》이 있다.

 

카라테오도리(1873.9.13~1950.2.2)

독일의 수학자·수리물리학자(數理物理學者). 베를린 출생. 하노버·브레슬라우·괴팅겐·베를린·스미르나(그리스)대학 등을 거쳐 뮌헨대학 교수가 되었다. 특히 스미르나대학에서는 그 창립에 공헌이 컸다. 해석함수론(解析函數論) 및 실변수함수론(實變數函數論)을 연구하였으며, 변분법(變分法)에도 업적을 남겼다. 열역학(熱力學)에서는 엄밀한 수학적 취급을 시도한 끝에 그 공리론화(公理論化)를 달성, 이른바 ‘카라테오도리의 이론’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도 특수상대론(特殊相對論)에 관한 연구가 있다.

 

카르다노(1501.9.24~1576.9.21)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의 수학자·의사·자연철학자. 파비아 출생. 파비아 및 파도바대학을 마치고 밀라노대학·파비아대학·볼로냐대학에서 수학·의학을 강의하였다. 한때는 파비아 시장(市長)으로도 있었다. 점성술자(占星術者)로서 철학을 연구하였고, 도박군인 반면 대수학자(代數學者)였으며, 실험에 특기를 가진 물리학자인 동시에 전혀 신용할 수 없는 거짓말장이로 일컬어졌다. 또한, 산적(山賊)의 딸을 아내로 삼는 등 이상성격의 소유자로, 미치광이 천재라고 불렸다. 의사로서는 스코틀랜드의 어떤 추기경의 천식을 치료하는 데 침대에 깃털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알레르기 현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학자로서는 당시의 제1인자였으며, 1545년 대수학의 저서 《아르스 마그나:Ars magna seu de regulis algebrae》를 출간하였는데, 그중 3차방정식의 대수적인 해법은 타르탈리아(본명 폰타나:1499∼57)가 발견한 것인데도 마치 자기가 고안(考案)한 것처럼 무단 발표함으로써, 영구히 인격적 손상을 입게 되었다. 자연인식의 문제에 대해서는 피타고라스, 플라톤과 같은 물활론적(物活論的)인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범신론적·반가톨릭적이라 하여, 70년 이단(異端)으로 몰려 6개월간 투옥당하기도 하였다. 그 후에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연금(年金)을 받으며 여생을 보냈다.

 

카발리에리(1598~1647.11.30)

이탈리아의 수학자. 밀라노 출생. 불가분량(不可分量)의 기하학을 전개해서 적분법의 선구를 이루었다. G.갈릴레이의 제자로서 귀족 출신이었으나 예수회 수도사가 된 뒤 수도원에서의 임무가 그의 학문적 활동을 마침내 수학으로 이끌게 되었다고 한다. 갈릴레이의 추천으로 1629년 볼로냐대학의 수학교수가 되어 천문학·계산기술·원뿔곡선·삼각법 등에 이어 일련의 저술을 하였으며, 32년 11자리의 삼각함수 로그표를 출판하였다. 그러나 수학사에 남긴 보다 큰 공적은 《연속체(連續體)를 불가분량을 사용한 새로운 방법에 의해 설명한 기하학》(1621∼35)이라는 저술에 정리한 불가분량의 방법의 창시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는 정적분의 개념 도입이었다. 그 후 E.토리첼리 등의 지지를 받았으며, 파스칼에 의해 발전되어 근대 미적분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칸토어(1829~1920)

독일의 수학사가(數學史家). 만하임 출생. 1877년 하이델베르크대학 교수가 되었다. 저서 《수학사(數學史):Vorlesungen 웑er Geschichte der Mathematik》(1880∼1908)는 그가 친필로 쓰고 감수(監修)한 고대에서 18세기까지의 제1~3권과 9인의 수학사가가 집필한 제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수학사의 저서로 알려졌다. 이 밖에 《수학사론집(數學史論集):Abhandlungen zur Geschichte der Mathematik》(1877∼1912)을 편집·창간하였다.

 

칸토어(1845~1918)

독일의 수학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집합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유대계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서 1850년 아버지와 함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이사한 후로는 그 곳에서 성장하였다. 취리히대학과 베를린대학에서 공부하였고 괴팅겐대학에서도 한 학기를 보냈다. 베를린에서는 E.E.쿠머, K.바이에르슈트라스, L.크로네커 등의 강의를 들었으며, 가우스의 정수론(整數論)에 심취하였다. 69년 할레대학 강사와 조교수를 거쳐 79년 정교수가 되었으나, 그 사이에 전개한 혁명적인 무한집합(無限集合)에 관한 연구는, 당시의 학계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크로네커를 대표로 하는 일부 사람들의 비난·공격은 치열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으나 84년부터 정신장애를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여생을 마쳤다. 칸토어의 중요한 연구는 72년의 삼각함수의 급수 연구에서 출발하였다. 이것으로부터 해석학의 기본적 문제로 향하고, 근방(近傍)·집적점(集積點)·도집합(導集合) 같은 개념을 확립하여 실변수 함수론의 기초를 구축하였다. 한편 대수적 수의 집합 문제를 논하고, 무한집합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분석하여 고전집합론을 창시하고, 이의 본질적 부분을 완성하였다. 유명한 저서로 《초한적(超限的) 집합론의 기초에 대한 기여:Beitr둮e zur Begr웢dung der trnsfiniten Mengenlehre》(1895∼97)가 있다.

 

코발레프스카야(1850~1891)

러시아의 수학자. 모스크바 출생. 편미분방정식론·함수론(函數論) 등을 역학에 응용하는 주요업적을 남겼다. 퇴역 육군 중장의 딸이었으며 뛰어난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고 수학에 뜻을 두었으나, 당시의 러시아에서는 여성의 대학 진학이 인정되지 않았고, 독신자의 국외유학도 허가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V.O.코발레프스키와 형식적인 결혼을 하여, 베를린대학에서 바이에르슈트라스에게 수학을 배우고, 1874년 괴팅겐대학에서 편미분방정식론, 제3종 아벨적분, 토성의 고리 모양 등에 관한 세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남편과 실제로 결혼하였으나 남편은 사업실패로 자살하였다. 그 후 1884년 스톡홀름대학의 초청을 받아 교수로 갔으며, 그 곳에서는 고정점(固定點)을 둘러싼 강체(剛體)의 회전에 관한 논문으로, 88년 파리과학 아카데미로부터 수상하였다. 자서전적 소설 《라에프스키가(家)의 자매》 등의 문학작품도 남겼다.

 

코시(1789~1857)

프랑스의 수학자. 파리 출생. 높은 교양을 지닌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고 16세 때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그 후에 토목기사가 되어 셰르부르의 축항 공사에 종사하면서 수학을 연구하였다. 1815년 수학상의 업적이 인정되어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교수가 되었고, 이듬해에 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이며, 정치적으로는 발자크와 같은 정통 왕당파(王黨派)였으며, 왕당원으로서의 지조를 지켜 나갔다. 왕당파로서의 지조 때문에 30년의 7월 혁명으로 왕위에 오른 루이 필립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프랑스 내에서는 일체의 공직 취임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이탈리아의 토리노로 피신하였으며, 여기서 그를 위해 창설된 새로운 강좌를 맡아 강의하기도 하였다. 그 후 5년간을 프라하에서 지내다가 38년 파리로 돌아왔다. 48년 나폴레옹 3세가 즉위한 뒤에야 공직에의 취임이 허용되어 소르본대학 교수가 되어 평생 이 교수직에 있었다. 주요업적으로 복소변수함수론(複素變數函數論)과 해석학에서의 엄밀성을 주장한 것을 들 수 있다. 18세기에 발견된 미적분학(微積分學)은 달랑베르 시대로부터 코시와 같은 시대 사람인 가우스, 아벨, 볼차노에 의해 대표되는 새로운 엄밀성의 시대로 바뀌고 있었다. 이것의 대표적 예를, 적분의 존재를 증명한 ‘존재증명’에서 볼 수 있다. 복소변수함수론은 코시에 의해 유체역학과 공기역학에서의 유용한 도구로부터 수학연구의 독립된 분야가 되었다. 1814년 이후로는 끊임없이 함수론에 관하여 논문을 썼으며, 25년 유수(留數)를 지니고 있는 코시의 적분정리를 발표하였다. 파리의 과학아카데미가 학회지 《Comptes Rendus》에 보내오는 그의 논문의 길이를 제한해야 할 정도로 그의 연구는 다방면에 걸쳐 대단히 많았다고 한다. 그의 연구에서, 빛의 이론과 역학에 대한 공헌도 있으며, 탄성(彈性)의 수학적 이론을 L.M.H.나비에와 함께 기초작업을 이루어 놓은 점 또한 중요한 것이다. 《해석학 교정》에서는 현재 교과서에서 쓰이고 있는 미적분의 기초를 남겼으며, 38년에는 미분방정식의 풀이에 관하여 최초의 존재증명을 하였다. 이 밖에 그의 모든 연구는 《?vres compl뢶es d’Augustin Cauchy》(27권, 1882∼1901)에 수록되어 있다.

 

콜모고로프(1903~1987)

소련의 수학자. 탐보프 출생. 1925년 모스크바대학을 졸업하고 31∼59년 모교의 교수로 있었다. 후에 이 대학의 수학역학 연구소장에 취임하였고, 39년 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되고, 확률과정의 연구에 의해 40년 스탈린상을 수상하였다. 모스크바 수학회의 중심적인 인물이었던 N.N.루진에게 배워 그 영향을 받았고, 모스크바수학회의 전통을 계승하여 확률론 개척에 노력하였다. 확률의 수학적 연구는 이미 시작된 뒤였으나, 20세기 초에 그 참다운 뜻이 모스크바학파와 파리의 E.보렐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었다. 그들은 복권의 화살이 표적의 어떤 범위의 어디에 맞는가의 확률을 정확히 고찰하기 위해서는, ‘범위’와 ‘어디냐’를 명백히 하여야 한다는 점을 밝혔다. 또한 적분학에서도 어느 범위에서 적분해야 하는지, 그 범위를 밝혀내는 것이 문제였다. 이와 같이 확률과 적분학은 범위를 확실하게 하는 것, 즉 ‘어떤 집합을 대상으로 하느냐’의 공통된 문제에 귀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 콜모고로프는 르베그적분을 바탕으로 확률론을 공리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확률론에 대한 공헌 이외에도 푸리에급수론·위상수학(位相數學) 분야, 또한 그 응용면에서도 크게 공헌했다. 주요저서로 《확률론의 기초개념:Grundbegriffe der Wahrscheinlichkeitsrechnung》(36) 등이 있다.

 

쿠란트(1888.1.8~1972.1.27)

독일 출신 미국의 수학자. 괴팅겐대학 교수(1920∼34)로 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활약하였고, 미국에 귀화하였다. 미국에서는 뉴욕대학 교수로 수학·역학연구소장을 지냈으며, 해석학(解析學)·수론(數論)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D.힐베르트와 공동으로 저술한 《수리물리학의 방법》은 유명한 저술로서 물리 학자들 사이에 널리 읽혀지고 있다.

 

쿠르노(1801.8.28~1877.3.31)

프랑스의 수학자·철학자·경제학자. 소르본대학 등에서 수학을 배우고 리옹대학에 초빙되어 수학 교수가 되었다. 저작은 경제학·수학·철학 등 각 분야에 걸쳐 있으며, 특히 《부(富) 이론의 수학적 원리에 관한 연구:Recherches sur les principes math럐atiques de la th럒rie des richesses》(1838)는 유명하다. 이것에 의하여 수요의 법칙이나 독점이론의 기초를 이루는 독점가격(쿠르노의 점)의 원리를 밝힘으로써 근대 수리경제학(數理經濟學)의 시조로 불리게 되었다. 또 확률론 분야를 개척하였으며, 《과학 및 역사에서의 기본적 관념의 연쇄에 대하여》(61) 《근세의 사상과 사건의 진행에 관한 고찰》(72) 《유물론, 생기론(生氣論), 합리론》(75) 《경제학설 개관》(77) 등을 저작하였다.

 

쿠머(1810.1.29~1893.5.14)

독일의 수학자. 폴란드의 조라우 출생.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빈곤 속에서 자랐다. 1828년 할레대학 신학부에 들어갔으나, 셰르크의 영향으로 수학으로 바꾸었다. 31년 대학을 졸업, 조라우의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이어 리그니츠의 중학교로 옮겼는데, 여기서 L.크로네커를 가르쳤다. 42년 브레슬라우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55년 P.G.디리클레의 후임으로 베를린대학 교수, 베를린학사원(學士院) 회원이 되었다. 연구분야는 해석학·기하학·대수학·정수론(整數論) 및 응용수학 등 광범위한 것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정수론에서의 P.페르마의 문제에 관한 연구가 중요하며, 이 연구에서 ‘이상수(理想數:ideale Zahl)’를 도입하였다. 페르마의 문제는 부분적으로밖에 해결하지 못하였는데, 파리의 과학학사원(科學學士院)은 이 ‘이상수’를 높이 평가하여, 57년 아카데미상을 수여하였다. 이 이상수 개념은 후세의 수학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크레모나(1830.12.7~1903.6.10)

이탈리아의 수학자. 롬바르디아주 파비아 출생. 1860년 볼로냐대학 교수, 66년 밀라노대학 교수를 거쳐 73년 로마대학 교수가 되었다. 화법기하학(畵法幾何學)의 연습문제 중에 사영기하학(射影幾何學)을 더하여 이탈리아 기하학 교육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후 이탈리아가 기하학에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은 그의 공헌에 의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의 M.샤를(1793∼1880)의 영향을 많이 받아 기하학을 지망한 듯 하며, 63~65년에 걸쳐 연구한 쌍유리변환(雙有理變換)은 곡선의 중복점 환원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서 기하학 등의 연구에 불가결의 요소가 되었다.

 

크렐레(1780.3.11~1855.10.6)

독일의 수학자·공학자. 브란덴부르크 출생. 기술전문 학자로서 건설관계 관리(官吏)로서의 지위와 정치력을 이용하여 순수수학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1828년 독일의 문화문제를 담당하는 내각 고문으로 임명되었으며, 잇달아 베를린 학사원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프로이센 대로(大路) 건설에 이바지하였으며, 독일 최초의 철도부설을 계획하여 실현하였다. 이 밖에 철도관계의 많은 일에 공헌하였으며, 26년 《순수·응용 수학 잡지:Journal f웦 die reine und angewandte Mathematik》 《크렐레지:Crelle’s Journal》를 창간하였다.

 

크로네커(1823.12.7~1891.12.29)

독일의 수학자. 슐레지엔 리그니츠 출생. 베를린대학에서 브레슬라우대학으로 이적하여 E.E.쿠머의 지도를 받아, 대수체(代數體)의 단위원(單位元)에 관한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1849). 1857년 ‘크로네커의 청춘의 꿈’이라는 부제(副題)를 붙인 논문에서, 허2차체상(虛二次體上)의 아벨체(Abel體)가 허수곱셈법[虛數乘法]에 의하여 행해짐을 예상하여, 수학계에 과제를 제시하여 주목을 받았다. 원외(員外) 교수로 베를린대학에서 강의하였으며, 만년 쿠머의 뒤를 이어 이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83). 주요연구는 타원함수, 이데알론(論), 2차 형식론(形式論) 등인데, 이들 연구는 항상 정수론(整數論)과 관련되어 있으며, “정수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며, 그 밖의 모든 수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수학의 산술화(算術化)가 신념이요 염원이었다. 이 때문에 동시대에 오늘날의 수론(數論)의 기초를 만든 K.바이어슈트라스 등과 자주 논쟁하였으며, 또 연속체(連續體)를 점집합(點集合)에서 논하려고 한 G.칸토어(1845∼1918)와 대적한 일은 유명하다.

 

클라인(1849.11.25~1925.6.22)

독일의 수학자. 뒤셀도르프 출생. 본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베를린에서 M.S.리와 함께 수학을 연구하고, 함께 파리에 유학하였다. 그러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일어나 귀국했으며, 괴팅겐대학 강사(1871), 에를랑겐대학 교수(72), 뮌헨공업대학 교수(75), 라이프치히대학 교수(80), 괴팅겐대학 교수(86)를 역임하였다. 기하학·방정식론·함수론·역학 등의 분야에서 다채로운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유명한 것은, 군론(群論)의 입장에서 기하학을 분류하고 기하학에 새로운 장을 열었던 이른바 ‘에를랑겐목록(Erlangen Programm)’과, 복소변수함수론의 한 첨단이 되는 ‘오토모르프함수(一次變換으로 값이 달라지지 않는 解析函數)’의 연구이며, 이는 푸앵카레와의 논쟁 속에서 진행되었다. 수학에 대한 클라인의 태도는 융합적·직관적이었으며, 물리학적인 사고방식을 추상적인 수학에도 활용하였다. 한편, 대학에서부터 중등학교에 이르는 수학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여, 국제수학조사회(國際數學調査會)의 중앙위원이 되었고(1908), 종합통일의 재능과 열의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저서로는 수학사에 관한 것이 있다. 괴팅겐은 클라인의 힘으로 세계 수학의 중심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클레로(1713~1765)

프랑스의 수학자·물리학자. 선천적으로 수학에 재능을 보였는데, 13세 때 파리 아카데미에 수학 논문을 제출하였다. 18세 때 《공간곡선(空間曲線)의 곡률(曲率)에 관한 연구:Recherches sur les courbes ?double courbure》를 써서 해석적 곡선론의 선구를 이루었고, 이에 의하여 그 해 학사원(學士院) 회원이 되었다(1731). 1736년 프랑스 정부는 지구가 구형(球形)에서 어느 정도 어긋나 있는가를 결정하기 위하여 랍란드에 원정대를 파견하였는데, 클레로는 이때 모페르튀와 동행하였다. 그 결과 측정값의 해석을 계기로 지구의 유체역학적 고찰(流體力學的考察)을 하고, 《지구형상론(地球形狀論):Theorie de la figure de la terre》(43)을 저술하였다. 이것은 지구의 형상에 대한 중요한 연구로서, 유체의 평형과 회전타원체의 인력의 문제를 획기적으로 다루었으며, ‘클레로의 정리’도 여기에 들어 있다. 52년 《달의 이론:Theorie de la lune》을 발표하여 페테르스부르크 학사원상(學士院賞)을 받았는데, 이것은 달의 운동에 대한 해석학의 최초의 적용이며, 삼체문제(三體問題)도 구명되어 있다. 이와 같이 그의 연구는 주로 천체역학·측지학에 관한 것이었지만, 한편 수학 자체에 대한 공헌도 커서, 선적분(線積分)·미분방정식의 연구(클레로의 방정식)와 퍼텐셜론(論)에의 선구적 업적이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대수학·기하학의 교과서도 저술하여 프랑스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타르스키(1902.1.14~1983.10.26)

폴란드 출생의 미국 수학자·논리학자. 바르샤바대학에서 레스니에프스키, J.루카셰비치에게 배웠다. 폴란드 학파(學派)의 일원으로서 1935년 《형식언어(形式言語)에서의 진리개념(眞理槪念):Der Wahrheitsbegriff in den formalisierten Sprachen》을 발표하여 인정을 받았다. 42∼68년 버클리의 캘리포니아대학 강사·부교수·교수를 역임하고, 68년 명예교수가 되었다. 주요저서는 《수학적 논리학 서설》 《논리학 및 연역과학(演繹科學) 방법론 서설》 《논리학·의미론·대수론(代數論):Logic, Semantics, Metamathematics》(56) 등이다.

 

탈레스(BC 624?~BC 546?)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 7현인(七賢人)의 제1인자이며, 밀레토스학파의 시조이다. 소아시아의 그리스 식민지 밀레토스 출생. 페니키아인의 혈통이며, 당초에는 상인으로 재산을 모아 이집트에 유학하여 그곳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배웠다. BC 585년 5월 28일의 일식(日蝕)을 예언하였는데, 그것은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적 지식에 의했던 듯하다. 그는 이집트의 경험적·실용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최초의 기하학을 확립하였다. ‘원(圓)은 지름에 의해서 2등분된다’, ‘2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의 크기는 같다’, ‘두 직선이 교차할 때 그 맞꼭지각의 크기는 같다’ 등의 정리(定理)는 그가 발견한 것이다. 또, 닮은꼴을 이용하여 해안에서 해상에 있는 배[船]까지의 거리를 측정하였고, 자석(磁石)이 금속을 끌어당기는 작용도 그의 발견으로 전한다. 또한 만물의 근원을 추구한 철학의 창시자이며 그 근원은 ‘물’이라고 하였다(형이상학). 물은 생명을 위하여 불가결한 것이며, 또 물이 고체·액체·기체라는 3가지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에서 그렇게 추정한 듯하다(물활론). 변화하는 만물에 일관하는 본질적인 것을 문제로 한 점에 그의 불후의 공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대지(大地)는 둥근 편평상(扁平狀)이며 물 위에 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테일러(1685~1731)

영국의 수학자. 미들섹스주(州) 에드먼턴 출생.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712년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고, 14∼18년에는 간사(幹事)의 일을 맡아보았다. 미분학에서 유명한 ‘테일러의 정리(이것을 급수로 전개한 것이 테일러 급수이다)’를 저서 《증분법(增分法):Methodus Incrementorum directa et inversa》(15)에서 밝혔는데, 테일러의 도출(導出)로는 급수의 수렴성(收斂性)에 관한 고찰이 불충분하였다. 그 후, C.매클로린이 무한급수의 고찰로 이것을 재정식화하여 그 저서에 기술함으로써(1742), 흔히 ‘매클로린의 정리(또는 급수)’로도 불린다. 그 진정한 의의는 L.오일러가 《미분학(微分學)》(55)에 응용하여 알려지게 되었으며, 또 J.L.라그랑주가 이에 잉여항(剩餘項)을 추가하고 A.코시가 다시 증명하였다.

 

파스칼(1623.6.19~1662.8.19)

프랑스의 수학자·물리학자·철학자·종교사상가. 오베르뉴 지방의 클레르몽페랑 출생. 3세 때 어머니와 사별하고 소년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왔다. 학교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독학으로 유클리드 기하학(幾何學)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16세에 《원뿔곡선 시론(試論)》을 발표하여 당시의 수학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사영기하학(射影幾何學)에서 나오는 《파스칼의 정리》는 이 시론에 포함되어 있다. 1604년 아버지와 함께 루앙으로 옮겨, 세무장관이던 아버지가 하는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계산기를 고안, 시작(試作)하였다. 루앙에 있을 때 얀센주의의 신앙혁신운동(信仰革新運動)에 접하여 최초의 회심을 경험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토리첼리의 실험을 행한 이래, 진공(眞空)에 관한 문제, 유체정역학(流體靜力學)에 관한 문제에 흥미를 가졌고, 마침내 《진공에 관한 신실험(新實驗)》을 발표하였다. 47년 질병의 진단을 받기 위해 파리로 돌아와, 그 무렵 귀국 중에 있던 R.데카르트의 방문으로 서로 만나게 되었다. 이듬해 처남 페리에에게 부탁한 퓌드돔 산정(山頂)의 실험에 의해 대기의 압력을 확인하였다. 51년 아버지가 죽은 후 여동생 자클린이 포르 루아얄 수도원으로 들어간 것과는 달리, 파스칼은 로아네스공(公), 슈발리에 드 메레 등과 친교를 맺고 사교계에 뛰어들어 인생의 기쁨을 추구하였다. 노름에서 딴 돈을 공정하게 분배해주는 문제에서 확률론을 창안하여, 《수삼각형론(數三角形論)》 및 그 《부대논문(附帶論文)》을 썼다. 파스칼은 이 논문으로 수학적 귀납법의 훌륭한 전형(典型)을 구성하였으며, 수의 순열·조합·확률과 이항식(二項式)에 대한 수삼각형의 응용을 설명하였다. 또 물리실험의 결과를 《유체의 평형》 《대기의 무게》라는 두 논문으로 정리하였다. 초등 물리학에서 나오는 ‘파스칼의 원리’는 《유체의 평형》 속에 포함되어 있다. 54년 여름부터 사교계에 대한 혐오감이 점점 싹텄고, 11월 23일 깊은 밤, 결정적인 회심의 환희를 체험하고 포르 루아얄 수도원의 객원(客員)이 되었다. 이 점은 수녀인 여동생 자클린에게서 입은 감화가 컸다고 한다. 《죄인의 회심에 대하여》 《초기의 그리스도 신자와 오늘의 그리스도 신자의 비교》 《요약(要約) 예수 그리스도전》 등의 소품은 바로 그 무렵의 저작이다. 또 포르 루아얄 데샹에서는 《드 사시씨(氏)와의 대화》를 남겼다. 당시 프랑스의 가톨릭교회 내에서는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있던 예수회와 포르 루아얄에 모인 얀센파 사이에 신학상의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파스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논쟁에 말려들었다. 그는 《시골 친구에게 부치는 편지(프로뱅시알)》라는 제목의 서한체(書翰體)의 글을 익명으로 속속 간행하여 예수회 신학의 기만을 폭로하는 한편, 그 오만불손한 윤리를 공격하였다. 56년 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8편의 서한문을 발표하였다. 파스칼은 이 서한문에서 구사한 경쾌하고 솔직한 표현에 의해 프랑스어에 새로운 문체(文體)를 도입한 결과가 되었다. 58년 우연한 동기에서 사이클로이드 문제를 해결하고 적분법(積分法)을 창안해 냈다. 《사이클로이드의 역사》 《삼선형론(三線形論)》 《사분원(四分圓)의 사인론[正弦論]》 《원호론(圓弧論)》 《사이클로이드 일반론》 등 일련의 수학논문 속에 그 이론이 나타나 있다. 그 외에도 《기하학적 정신에 대하여》 《설득술(說得術)에 대하여》 《질병의 선용(善用)을 신에게 비는 기도》 등의 소품을 쓴 것도 그 무렵의 일이다. 《그리스도교의 변증론(辨證論)》을 집필하기 위하여, 단편적(斷片的)인 초고를 쓰기 시작하였으나 병고로 인하여 완성하지 못한 채, 39세로 생애를 마쳤다. 사망 후 그의 근친과 포르 루아얄의 친우들이 그 초고를 정리·간행하였는데, 이것이 《팡세:Pensees》의 초판본(1670)이다.

 

파치올리(1445?~1510?)

이탈리아의 수학자. Luca di Borgo라고도 한다. 토스카나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로서, 페루자·나폴리·밀라노·피렌체·로마·베네치아 등 각지에서 수학을 교수하였으며, 1494년 《산술집성(算術集成):Samma de arithmetica, geometria, proporcioni e proporcionalit닡렝?저술하였다. 이것은 당시의 산술·대수(代數)·삼각법(三角法)에 관한 모든 지식을 집대성한 것으로서, 피보나치의 《주판서(珠板書)》 이래 가장 광범위한 수학서로 일컬어진다. 특히 이 저서에서 처음으로 복식부기가 기술(記述)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교우관계가 있었다.

 

페르마(1601~1665)

프랑스의 수학자. 툴루즈 근처 보몬 드 로마냐 출생. 수학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 수학자였으나 여러 방면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으므로, 17세기 최고의 수학자로 손꼽힌다. 1631년부터 법률가로서 툴루즈의 청원위원(請願委員)이 되었으며, 이어 48년부터는 툴루즈 지방의회의 칙선의원(勅選議員)이 되어 생애를 마칠 때까지 그 직에 종사하였다. 데카르트, 메르센 등과 서간을 통하여 연구 성과를 통보하였으며 생전에는 그 연구 내용을 공간(公刊)하지 않았다. 또 이 서간은 결론으로서 얻어진 정리(定理)만을 표시하고, 증명방법을 풀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의 수학자에게 많은 과제를 남기게 되어 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연구 성과 가운데 우선 미적분(微積分)에 관한 업적을 들 수 있다. 연속곡선(連續曲線)에 접선(接線)을 긋는 방법으로서 제기된 이 문제는 페르마를 ‘극값[極値]의 문제’로 유도하여 미분의 개념에 도달시킨 것이며, 미적분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뉴턴이나 라이프니츠가 태어나기 10여 년 전에 이런 성과가 얻어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 이것과 관련하여 극대극소(極大極小)의 문제를 연구하고, 이를 광학(光學)에 응용하여 ‘최단 시간의 원리(페르마의 원리)’를 발견했다. 또 빛의 반사·굴절의 법칙을 유도해냈고, 후년의 역학 전개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기하학 분야에서는 데카르트와는 별도로 해석기하학을 수립하여 3차원 공간을 취급하였다(데카르트는 2차원). 파스칼과의 서간에서는 확률을 논하여, 오늘날 파스칼과 함께 확률의 수학적 이론의 창시자로 인정된다. 연구 활동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정수론(整數論) 분야이다. 디오판토스의 수론서(數論書)에 자극되어 관여하게 된 이 분야에서는 소수수열(素數數列:페르마형 소수)의 추측에서 시작하여, 페르마의 대정리(np-n의 정리), 4n+1형 소수에 관한 제곱수[平方數]의 합의 정리, n=2의 디오판토스방정식의 해답의 정리 등에서 이른바 ‘최후의 정리’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통찰력이 발휘되어 정수론 연구사상 커다란 전기가 되었다. 사실 페르마가 발견하고 스스로 증명했다고 하는 정리의 증명에 후년의 수학자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최후의 정리’는 오늘날까지도 미해결인 채 과제로 남아 있다.

 

페아노(1858~1932)

이탈리아의 수학자·논리학자. 직관(直觀)에 얽매이지 않고 기하학을 건설하겠다는 기하학의 공리화(公理化)를 시도하여, 정의(定義)·공리·미정의어(未定義語)의 선택과 채용을 확립하여 일종의 수학적 논리학을 의도, 후에 드디어 D.힐베르트의 《기하학의 기초:Grundlagen der Geometrie》(1899)로 결실을 맺었다. 1889년의 결합의 공리와 순서의 공리에 관한 연구는 유명하며, 90년 토리노대학 교수가 되었다. 저서 《수학공식안(數學公式案):Formulario Mathematico》(5권, 1895∼1905)는 ‘페아노의 기호’로 쓰여졌으며, ‘페아노의 공리’가 서술되어 있다. 기호논리학의 개척자로도 꼽힌다. 이 밖에 코시 문제의 해(解)와 조르당곡선에 관한 연구 등 불변식론·미분방정식론에도 공헌하였다. 일종의 국제어인 ‘굴절 없는 라틴어(Latino sine flexione)’를 창안하기도 하였다(1903).

 

폰트랴긴(1908.9.3~1988.5.3)

소련의 수학자. 장님이었으나 24세 때에 모스크바대학 교수가 되었고, 31세 때에 과학아카데미의 준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대수적(代數的) 위상공간론의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 1930년대부터 상대정리(相對定理)의 대수적 정식화에 착수하여 코호모토피 연산자(演算子)를 발견하였고, 코호모토피적인 구면군(球面群)의 계산을 행하여 리군(群)과 그라스만 다양체(多樣體)의 이론을 전개하고 특성 클라스(폰트랴긴類)를 발견하였다. 이와 같은 위상공간 아벨군(群)의 특성 이론의 건설은, 대수뿐만 아니라 일련의 다른 수학부문에 영향을 끼쳤으며, 위상대수 및 리군의 영역 연구는 많은 수학자에게 계승되고 있다. 또 비선형진동론(非線型振動論)에서는 A.A.안드로노프와 함께 ‘조계(粗系)’를 도입하여 미소(微小)파라미터를 가지는 미분방정식론에 중요한 성과를 얻어 공학적 대상의 제어(制御) 문제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푸리에(1768.3.21~1830.5.16)

프랑스의 수학자·수리과학자. 오제르 출생. 8세 때에 고아가 되어, 베네딕투스파(派)의 성직자에게 맡겨져 양육되었는데, 군인이 되는 학교에 입학하였다. 신분상의 장애 때문에 군인이 되는 길을 단념하고 성직에 뜻을 두었으나, 1789년 혁명이 일어나자 다시 뜻을 바꾸어 94년 나폴레옹 집권하에 설립된 사범학교 교사가 되었고, 이어 고등이공학교에서 수학을 강의하였다. 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에 수행하였다가 나폴레옹이 귀국한 후에도 카이로에 체류하여 행정관으로서의 공적을 인정받았다. 1801년 귀국한 후 이제르현(縣)의 지사로 임명되었고, 그르노블에서 살았다. 그 곳에서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한편, 열전도론(熱傳導論)을 연구하여 1807년 ‘열의 해석적 이론’을 제출하였고, 12년 프랑스 학사원의 대상(大賞)을 획득하였다. 22년 완성된 이 이론에는 ‘푸리에의 정리’가 포함되어 있으며, ‘푸리에급수’의 전개에 따라서 그 후의 수리물리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16년 프랑스 학사원 회원으로 추천되었다. 또 실계수방정식의 해법에 관한 연구로도 알려져 있다.

 

푸아송(1781.6.21~1840.4.25)

프랑스의 수학자·물리학자.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J.라그랑주, P.라플라스에게 배웠으며, 1802년 J.B.푸리에의 후임으로서 모교 교수가 되었으며, 1809년 소르본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수학·응용수학의 넓은 분야에 걸쳐 업적이 있으며, 정적분·미분방정식론을 연구하여, 13년 퍼텐셜 개념을 도입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푸아송방정식’은 잘 알려져 있다. 그 밖에 변분법(變分法)·푸리에급수·확률론의 연구, 물리학에 대한 응용면에서의 열학(熱學)·모세관 현상·전자기장론(電磁氣場論)·인력론(引力論) 등의 연구가 있으며, 탄성(彈性) 실험에서는 ‘푸아송비(比)’를 도입하였다. 프랑세즈 아카데미 회원이었으며, 후에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했다.

 

프레게(1848.11.8~1925.7.26)

독일의 논리학자·수학자·철학자. 메클렌부르크슈베린 출생. 명제논리(命題論理)와 술어논리(述語論理)를 공리체계(公理體系)로 해서 조직화하여 기호논리학(記號論理學)에의 길을 열었고, 1879∼1918년 예나대학 교수를 지냈다. 논리학을 기초로 하여 수학의 구성·도출을 시도, 논리주의를 처음으로 주창하였다. 그는 또한 개념에 대한 전통적인 외연(外延)과 내포(內包)의 구별을 명제로까지 확장, 전자를 명제의 진리치(眞理値), 후자를 그 의미라고 생각하고, 또한 표현에 대하여는 문장적인 규칙으로서 결정되는 그 의의와 대상과의 지시관계에서의 의미를 구별하였다. 그리고 후의 ‘언어의 계층의 구별’을 이미 확인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그 특이한 기호표기 때문에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는데, J.러셀에 의해서 발견된 이래 현대논리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주요저서에는 《산술의 기초》(1884) 《산술의 원리》(1893∼1903) 등이 있다.

 

프로베니우스(1849.10.26~1917.8.3)

독일의 수학자. 베를린 출생. 1874년 베를린대학 교수가 되었으나, 이듬해 취리히 공업대학으로 옮겨 1902년까지 재직한 후, 다시 베를린대학으로 돌아왔다. 19세기 후반의 대수학(代數學)의 발전, 특히 그 추상화(抽象化)와 군론(群論)의 시기에 중요 추진자의 한 사람이 되어, 군(群)의 지표(指標)의 개념을 도입하여 유한군(有限群)의 표현론을 실질적으로 완성하였다. 대수적 정수론(代數的整數論)에서의 ‘프로베니우스 치환(置換)’의 중요한 지적을 하였으며, 또 L.푹스의 미분방정식의 이론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플뤼커(1801.6.16~1868.5.22)

독일의 수학자·물리학자. 앨버펠트 출생. 본대학·하이델베르크대학·베를린대학 등에서 공부하고, 파리로 가 프랑스 수학의 영향을 받았다. 본대학·베를린대학·할레대학 등의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835년 《해석기하학의 체계》를 저술하였다. 슈타이너의 선속(線束)에 대응하는 일차함수를 도입하여 해석기하학에 가동적 요소를 첨가하고 사영기하학(射影幾何學)과의 종합에 진력하였으며, 만년에는 대수기하학 개척에 공헌하였다. 47년 본대학 실험물리학 교수가 되었는데, 그 곳에 살고 있던 가이슬러가 제작한 방전관을 이용하여 진공방전(眞空放電:低壓氣體放電)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스펙트럼의 휘선(輝線)이 물질에 고유하다는 사실과 이에 의해 물질을 검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수소스펙트럼의 3개의 주선(主線)을 부여하였다. 그 후 J.W.히토르프와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여 온도변화에 의한 이종(異種) 스펙트럼의 발생을 확인하고 이를 수소와 질소에 대하여 실증하였다. 59년 방전관의 음극에 가까운 유리벽에서 형광의 발생을 발견하고, 그 원인이 음극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의한 것임을 밝혔다.

 

피보나치(1170?~1250?)

이탈리아의 수학자. 피사 출생. 피사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도 불린다. 아라비아에서 발달한 수학을 섭렵하여 이를 정리·소개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여러 나라의 수학을 부흥시킨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아버지가 아프리카 북안(北岸) 부지항(港)의 피사의 상무관장(商務館長)으로 있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수판(數板)에 의한 계산법을 배우고 또한 이슬람교 학교에서 인도 기수법(記數法)을 익혔다고 한다. 그 후 이집트·시리아·그리스·시칠리아 등지를 여행하여 갖가지 계산법을 습득한 다음 피사로 돌아와, 1202년 《주판서(珠板書)》를 저술하였다. 15장으로 된 이 책은 아라비아의 산술 및 대수(代數) 지식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당시의 수학서의 결정판으로서 그 후 수세기 동안 유럽 여러 나라에서의 수학원전(數學原典) 구실을 하였다. 기하학에 대한 저서 《기하학의 실용》(1220)에서는 유클리드를 소개하고 몇 가지 정리를 증명하기도 하였다.

 

피타고라스(BC582?~BC497?)

그리스의 종교가·철학자·수학자. 에게해(海)의 사모스섬[島] 출생. 남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 크로톤에서 비밀교단을 결성하고, 그 후 메타폰티온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당시의 밀의종교(密儀宗敎)의 형식에 따라 절제·질박(質朴)·심신의 단련을 목표로 하고, 신들과 양친·친구·계율에 대하여 절대적 신실(信實)과 자제·복종을 설파하였다. 그의 종교적 교의는 윤회(輪廻)와 사후의 응보로서 동시에 인간과 동물과의 유사성을 강조하고 육식을 금하였다. 이론적 방면의 연구에서는 음악과 수학을 중시하였는데, 음악에서는 일현금(一絃琴)에 의하여 음정이 수비례(數比例)를 이루는 현상을 발견하고 음악을 수학의 한 분과로 보았다.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업적이 그 자신의 것인지 또는 초기 제자들의 것인지의 구별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제자인 필로라오스와 기타 학자들의 저술의 단편에 의하여 당시 피타고라스와 그 일파의 업적이 알려져 있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을 ‘수(數)’로 보았다. 그 수는 자연수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 수와 기하학에서의 점과를 대응시켰다. 예컨대 자연수 계열의 연속항의 임의의 항까지의 합은 삼각형수이고, 마찬가지로 기수계열의 합은 정사각형수, 우수계열의 합은 직사각형수라는 방법으로 정의하였다. 또 완전수, 인수의 합, 비례와 평균의 연구, 상가평균, 조화평균 등도 분류하였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그 자신의 업적인지 제자들의 업적인지는 불분명하며 그의 증명법도 오늘날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오늘날의 그 정리의 증명법은 유클리드에 유래한다). 그런데 이의 정리에서 의외로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정사각형의 한 변과 그의 대각선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이 경우 대각선의 길이는, 한 변을 1이라 할 때 ?가 되어 약분이 불가능한 무리수가 된다. 이것은 자연수만을 수로 생각한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에 있어서는 극히 난문제였기 때문에 수로부터 제외시켰던 것이다. 또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임의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2직각(180°)과 같음을 발견하고 이를 증명하였다. ‘플라톤의 다면체(多面體)’로 불리는 정사면체·정육면체·정팔면체·정십이면체·정이십면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정십이면체는 정오각형의 작도를 필요로 하지만 한 선분을 중외비(中外比)로 끊는 문제로 환원시켜 이 작도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피타고라스는 이 정오각형에서 생기는 성형오각형(星形五角形)을 그의 교단의 휘장(徽章)으로 채택하였다고 한다. 피타고라스가 수학에 기여한 공적은 매우 크며, 그의 영향은 플라톤, 유클리드를 거쳐 근대에까지 미치고 있다. 천문학에서는 지구가 구형(球形)임을 확신하고, 또 중심화(中心火)의 주위에 지구와 태양 및 기타 행성이 원궤도로 회전한다는 일종의 지동설을 제창하였으나, 다른 학자들의 인정은 받지 못하였다.

 

하디(1877.2.7~1947.12.1)

영국의 수학자. 잉글랜드 서리주 출생. 옥스퍼드대학에서 기하학을 강의하고,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순수수학 교수로 있었다. 해석적 정수론에 많은 업적이 있고, 가법적 수론(加法的數論)에서의 오일러법의 개량, 제타함수에 관한 ‘리만의 예상’의 연구 등이 알려져 있다. 푸리에급수에 대한 기여도 중요하다. 1908년에는 독일의 의사 W.바인베르크와 동시에 하디-바인베르크의 법칙을 제시했다.

 

하세(1898.8.25~1979.12.26)

독일의 수학자. 카셀 출생. 할레대학·괴팅겐대학·베를린대학을 거쳐 1950년 함부르크대학 교수가 되었다. 대수학(代數學)의 연구에서 뇌터를 중심으로 하는 독일의 학파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특히 19세기 말 이래의 J.W.데데킨트, 힐베르트 등이 창시한 대수학의 공리화(公理化) 방향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유체론(類體論)의 정리(整理)와 대수함수론·정수론(整數論) 분야에서의 업적이 두드러진다.

 

하승천(何承天/370~447)

중국 남북조 시대의 수학자·천문학자. 송(宋)의 동해담(東海:山東省) 출신. 저작좌랑(著作佐郞)이라는 관직으로 국사를 편찬하는 일을 맡았다가 나중에 어사대부(御史大夫)의 지위에 올랐다. 모든 학문에 조예가 깊었는데 특히 산학(算學)과 역학(易學)에 뛰어나서 원가력(元嘉曆)을 만들었다. 《달성론(達性論)》을 저술하였고, 인간은 한 번 죽으면 형신(形神:신체와 영혼)이 함께 멸하며 내세의 응보는 없다고 주장하여 종병(宗炳)·안연지(顔延之)와 논쟁을 벌였고, 육조사상계(六朝思想界)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우스도르프(1868~1942)

독일의 수학자. 브레슬라우 출생.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배우고, 1902년 이 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후에 본대학 교수가 되었다. 집합론·위상공간론(位相空間論)을 연구하고, 특히 위상공간을 공리계(公理系)에 의해 정의(定義)하려고 시도하여, 이른바 ‘근방(近傍:Umgebung)’의 개념을 수립, 이 방면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근방공간 또는 그의 이름을 붙여서 ‘하우스도르프공간’이라 불리는 것은,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주요저서에 《집합론 강요:Grundz웗e der Mengenlehre》(1914) 《집합론》(27)이 있다.

 

호퍼(1906~1992)

그레이스 호퍼는 뉴욕에서 태어나 Vassar대학과 예일 대학교에서 교육받았다. Vassar에서 수학 부교수였던 호퍼는 1943년 해군에 합류했다. 그녀는 하버드 대학교에 있는 Howard Aiken 전산 연구소에서 최초의 대형 U.S.컴퓨터인 Mark 1의 프로그래머로서, 전기 컴퓨터의 선구자로서 일했다. 1950년에서 1960년에 걸쳐 Eckert - Mauchly Computer Corporation에서의 그녀의 업적이 알려지면서 호퍼는 최초의 컴파일러를 발명해 냈다. 이 컴파일러는 영어를 기계어로 컴퓨터에 대한 명령을 번역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녀는 Flow - Matic 프로그래밍 언어와 일반 상업 중심 언어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경영과 프로그래머를 오가며 컴퓨터에 대한 산업과 사업에서 흑자를 보았다. 그녀는 미국 해군 연구소에서 퇴임했으나 컴퓨터 프로그램과 언어를 표준화하는 해군의 프로그램의 감독을 위하여 다시 기용되기도 했다. 1973년 그녀는 영국 회의 특별 조치로 해군대령이 되었으며 1983년에는 해군 소장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호퍼는 1986년 해군에서 전역하여 Digital Equipment Corporation (디지털 장치 회사)의 수석 고문으로서 봉사했다. 그 후 1992년에 타계했다.

 

해리엇(1560~1621)

영국의 수학자·천문학자.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후, 월터 롤리경(卿)의 수학 가정교사가 되었다가 그 인연으로 1585년 미국으로 가서 측량사가 되었다. 천문학자로서는 G.갈릴레이와 거의 같은 때에 망원경을 이용한 천체관측을 시작하여 목성(木星)의 위성을 관측하였으며, 태양의 흑점을 발견하고 물질의 밀도와 굴절률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고찰을 하였다. 특히 유명한 것은 수학 영역에서의 방정식 연구인데, 인수분해를 이용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한다. 또 근(根)과 계수와의 관계를 정식화(定式化)하고, 부등기호를 도입하는 등 방정식의 해법을 포함하는 대수학의 근대적 정식화에 공헌하였다. 저서에 《해석학의 실제》(1631) 등이 있으며 영국 최초의 대수학자로 꼽힌다.

 

해밀턴(1805~1865)

영국의 수학자·이론물리학자. 아일랜드 더블린 출생.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통하였다. 백부(伯父)의 외국어 교육으로 13세 때에 이미 10여 가지 외국어를 익혔다고 한다. 수학에 흥미를 가지고 뉴턴·라그랑주·라플라스 등의 저서를 읽어, 대학 입학 당시에는 이미 수학을 거의 통달하였으며, 또 광학계(光學系)에 관한 뛰어난 이론과 아이디어를 창안하였다. 1824년 더블린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 27년 재학 중인 칼리지의 천문학 교수로 선임되었으며, 던싱 천문대장을 겸하였다. 이듬해 《광선계의 이론》 제1부를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해밀턴의 특성함수(特性函數)를 도입한 것으로, 광학계에 대한 일반적인 대수적 이론을 세운 것이며, 기하광학(幾何光學)의 기초이론이었고, 후년의 역학이론을 출발시키는 기본이 되었다. 이어 원뿔굴절[圓錐屈折]을 예견하였는데(1832), 이것은 H.로이드에 의하여 실증되었다. 그 무렵부터 광학을 도입한 역학의 모든 분야에 이를 확장시키려는 시도에서 특성함수를 사용한 빛의 전파(傳播)와 질점(質點)의 운동을 통일, 34년 변분원리(變分原理)라고 하여 ‘해밀턴의 원리’를 확립하였다. 또한 ‘해밀턴의 정준운동(正準運動) 방정식’을 수립함으로써, 해석역학(解析力學)의 기초를 확립하기도 하였다. 한편, ‘4차원법’을 착상하여 그 이론의 전개에 노력하였고, 이론물리학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유용성을 밝히려 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 의하여 대수계(代數系)에 대한 다양한 길이 열렸고, 그 후의 대수학 및 물리학에 대한 응용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워즈워스·콜리지 등과도 교유하였다.

 

헤론(?~?)

그리스의 기계학자·물리학자·수학자. 62~15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하였다. 이론보다 수학·역학의 응용면에서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조준의로 토지를 측량하거나 월식(月蝕)을 이용하여 로마∼알렉산드리아의 거리측정하였다. 또 일종의 증기터빈인 ‘헤론의 기력구(汽力球)’와 수력(水力) 오르간, 주화(鑄貨)를 넣으면 물이 나오는 ‘성수함(聖水函)’, 기타 여러 가지 자동장치를 발명하였다. 그 일부는 선배들의 발명을 모방·개량한 것이라 한다. 수학에서는 꼭지부분을 잘라낸 피라미드(사각뿔대)의 부피나 제곱근·세제곱근의 근사값을 구했으나, 유명한 ‘헤론의 공식(3각형의 3변의 길이에서 그 넓이를 구하는 방법)’은 헤론 자신의 발견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그 많은 유용한 고안이 당시의 사회제도(노예제도)에서는 놀이감으로 밖에 쓰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저술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주요한 것으로는 《측량술》 《조준의(照準儀)에 대하여》 《기체장치(氣體裝置)》 《자동장치의 제작법에 대하여》 《발사무기의 제작술》 《구적법(求積法)》 《입체기하학》 등이다.

 

헤세(1811~1874)

독일의 수학자. 쾨니히스베르크대학·하이델베르크대학 교수를 거쳐 1869년에는 뮌헨 공업대학 교수가 되었다. 대수곡선론(代數曲線論)에서는 헤세곡선, 유클리드기하학에서는 평면 간의 거리에 관련하여 초(超)평면의 방정식으로서 헤세의 표준형을 제출하였다. 또한 불변식론(不變式論)의 연구에 있어서 유명한 ‘헤세 형식’은 대역변분법(大域變分法)에도 쓰이고, ‘헤세 행렬’의 정칙성(正則性)이 임계점(臨界點)의 퇴화의 판정조건(判定條件)으로 여겨지고 있다.

 

화뤄겅(華羅庚/화나경/1910.11.12~1985.6.12)

중국의 수학자. 장쑤성[江蘇省] 출생. 15세에 다른 학업을 중단하고 수학을 독학하였고, 1931년 칭화[淸華]대학 부속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그 후 이 대학 수학과 조수가 되었고, 수년 후에는 강사로 발탁되었다. 36년 케임브리지대학에 유학,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귀국하여 쿤밍[昆明]의 시난연합대학[西南聯合大學] 수학 교수가 되었다. 45년 소련을 방문하였다가 이듬해에 귀국하였고, 한때 중국의 박해를 피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대학에서 강좌를 가졌다. 50년 중국으로 돌아가 칭화대학 교수로 복직하였다. 그 후로 58년 중국기술대학 부학장, 78년 과학기술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수학상의 업적 《퇴루소수론(堆累素數論:加算的素數論)》은 41년에 완성되었으나 출판이 되지 못하였고, 46년에 소련에서 출판하였다. 그밖에 《수론도인(數論導引)》(57) 등의 저서가 있다.

 

화이트헤드(1861.2.15~1947.12.30)

영국의 철학자·수학자. 램즈게이트 출생.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후 1885∼1911년 동 대학의 강사, 14∼24년 런던대학 교수, 24∼37년 미국 하버드대학 철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처음에 G.W.라이프니츠, L.A.쿠튜라, H.G.그라스만 등의 영향하에 수학적 논리학(기호논리학) 연구에 종사하였고, B.러셀과의 공저 《수학원리:Principia Mathematica》(3권, 1910∼13)를 저술하여 수학의 논리적 기초를 확립하려 하였다. 이어 근대의 새로운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의 철학적 기초를 고찰하여 《자연인식의 제원리(諸原理):An Enquiry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Natural Knowledge》(19) 《자연의 개념:The Concept of Nature》(20) 《상대성 원리:The Principle of Relativity》(22)를 집필하여 ‘사상(事象:event)’의 개념을 사용해서 자연에서의 모든 사상 상호간의 확급(擴及) 및 상입(相入)의 원리를 구명하였는데, 그는 이러한 자연과학에서도 항상 경험과 구상성(具象性)을 존중하고, 사변적(思辨的)·추상적 태도를 배척하였다. 도미(渡美) 후의 저서 《과학과 근대 세계: Science and Modern World)》(25) 《관념의 모험:Adventures of Ideas》(33)은 ‘유기체(organism)’의 개념을 중핵으로 하는 그의 발전적·창조적 형이상학을 전개한 것이다. 그 밖의 주요저서에는 《보편대수학(普遍代數學):A Treatise on Universal Algebra》(1898) 《상징주의:Symbolism》(1928) 《과정과 실제:Process and Reality》(29) 《이성(理性)의 기능:The Function of Reason》(29) 《자연과 생명:Nature and Life》(34) 등이 있다.

 

힌친(1894~1959)

소련의 수학자. 1922년 모스크바대학 교수가 되었다. 러시아 혁명 후의 수학 발전에 공헌한 모스크바 학파의 유력 멤버이다. 1920년대에 이루어진 반복로그법칙에 관한 연구에 이어서, 생물학·물리학·통계학·공학에 대한 확률론의 응용을 전개하여 우연과정(偶然過程)에 대한 극한정리의 연구(그 안정성과 무한분할법칙)로 알려져 있으며, 또 신뢰도이론(信賴度理論)·제어이론(制御理論)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한편, 확률론과 동역학계(動力學系)와의 관계에서 정수론(整數論)의 디오판토스 근사(Diophantos 近似) 분야에서도 중요한 업적(整數不等式의 解)을 남겨 스탈린상(賞)을 받았다(1940). 주요저서로는 《통계역학의 수학적 기초》가 있다.

 

힐베르트(1862.1.23~1943.2.14)

독일의 수학자. 쾨니히스베르크 출생. 현대수학의 여러 분야를 창시하여 크게 발전시켰다.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을 졸업한 뒤 이 대학의 강사를 거쳐 1893년 교수가 되었다. 95년 괴팅겐대학으로 옮겨, A.후르비츠, H.민코프스키와 함께 괴팅겐대학을 세계 수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힐베르트의 학풍을 찾아 우수한 수학자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만년에는 나치스의 박해를 받았지만 전혀 굽히지 않았고, 괴팅겐에서 죽었다. 업적은 수학의 거의 모든 부문에 미치고 있으나, 특히 대수적 정수론(代數的整數論)의 연구, 불변식론(不變式論)의 연구, 기하학의 기초확립, 수학의 과제로서의 몇몇 문제의 제시, 적분방정식론의 연구와 힐베르트공간론의 창설, 공리주의수학기초론(公理主義數學基礎論)의 전개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저서 《기하학의 기초》(1899)에서 제시한 공리계(公理系)에 의한 기하학의 이론 구성 문제는 그가 1900년 파리의 수학자회의에서 행한 수학의 전망에 관한 강연과 함께 수학에서의 공리주의의 방향을 자리잡게 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열어 준 획기적인 것이었다.

펌:http://blog.daum.net/hanlim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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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바다 2007. 11. 2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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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는 계절 가늠의 기준이 될 뿐 아니라, 이 가운데에는 명절 또는 그에 버금하는 날들도 있다.
세시풍속은 음력을 기준으로 하여 다달이 행해지는 주기전승의례로서, 계절에 따른 의례라 하여 계절의례, 또는 계절제라고도 한다.

우리의 계절은 음력 정월을 시작으로 3개월 단위로 춘하추동(春夏秋冬)을 구분하여 왔다.
우리가 흔히 음력이라 말하는 것은 원래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의 준말로서 동양에서는 계절을 바로 알기 위해 12절기와 12중기로 된 24기(氣)를 음력의 역일(曆日)에 배당하여 썼다.

태음태양력(음력)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알기 어려울 때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역일과 계절 사이에 한 달의 차이가 생기기도 한다. 특히 음력 윤달이 든 해에는 같은 달이 반복되기 때문에 계절을 가늠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그래서 음력에서는 24기를 정하여 쓴다. 이는 춘분점을 기준점으로 하여 황도(黃道)를 동쪽으로 향해 15도의 간격으로 1기(氣)씩 배당한 것이다.

태양은 황도상을 동으로 이동하여 1태양년에 천구를 1주하는데 각 기(氣)를 양력의 대략 일정한 날에 지나게 된다. 그래서 양력으로는 날짜가 일정하지만 음력으로는 일정하지 않을 뿐더러 24기가 우리 기후와 정확하게 들어 맞지 않는다.

우리 속담에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왔다가 얼어죽었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대한 때보다 소한 때가 더 춥다는 뜻으로, 이러한 속담은 24기가 우리 나라의 기후에 맞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원래 24기의 이름은 주(周)의 왕조가 득세할 때 화북(華北)의 기상상태에 맞춰 붙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체로 계절을 알려줄 뿐 아니라 음력에 윤달을 두는 지표가 된다는 데에 뜻이 있다.

24절기에서, 12개의 절기는 양력 월 상순에, 12개의 중기는 하순에 1개씩 들어있다. 동양에서는 4계절을 각각 입춘ㆍ입하ㆍ입추ㆍ입동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하고 중춘(仲春)의 월중을 춘분, 중하(仲夏)의 월중을 하지, 중추(仲秋)의 월중을 추분, 중동(仲冬)의 월중을 동지로 정함으로써 4계절의 구분이 분명하다. 서양에서는 2분(分) 2지점(至點)을 경계로 하여 4계절을 나누고 있다.

24기에 순차로 매겨 둔 번호를 기번(氣番)이라고 말한다. 대개의 경우 동지를 0 으로 하고 소한 1, 대한 2 등으로 기번을 매겨 나간다. 이와 같이 동지의 기번을 0 이라 한 까닭은 고대 동양력에서 역의 계산의 출발점을 동지에 두었기 때문이다. 태음태양력에서는 동짓날을 1월에 두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기번이 언제나 고정된 것은 아니다. 송나라의 원가력(元嘉曆)의 경우는 우수(雨水)를 기번으로 했다.

계절을 가늠하게 하는 24절기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봄의 첫 달인 정월에는 24기 가운데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立春)과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된다는 우수(雨水)라는 절기가 있다. 입춘이 때로는 음력 섣달에 드는 수도 있다. 원래 24절기가 태양년을 태양의 황경에 따라 24등분하여 계절을 세분한 것이기 때문에 양력 날짜에 고정되어 있어 입춘은 양력 2월 4일께가 되며 우수는 2월 19일이 된다.

2월에는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깨어 나온다는 경칩(驚蟄, 양력 3월 6일께)과 봄 기운이 이미 가운데로 들어섰다는 춘분(春分, 양력 3월 21일께)의 절기가 들어 있다.

3월에는 만물이 맑고 깨끗하며 밝고 정결하게 생장케 한다는
청명(淸明, 양력 4월 5일께)과 비가 충분히 내려서 곡식이 잘 자도록 한다는 곡우(穀雨, 4월 20일께)의 절기가 들어 있다.

여름의 첫 달인 음력 4월에는 여름철이 이미 들어섰다는
입하(立夏, 양력 5월 6일께)와 작물이 자라나서 약간의 곡식이 여문다는 소만(小滿, 양력 5월 21일께)이 들어 있다.

5월에는 보리를 베고 벼를 심는다는
망종(芒種, 양력 6월 6일께), 여름에 이르렀음을 알리며 음기(陰氣)가 처음으로 생기고 해가 북쪽으로 이동한다는 하지(夏至, 양력 6월 21일께)의 절기가 들어 있다.

6월은 아주 더운 달임을 대(大)와 소(小)로 나누어서, 더위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소서(小暑, 양력 7월 7일께)대서(大暑, 7월 23일께)의 절기가 들어 있다.

가을의 첫 달인 7월에는 가을에 들어섰다는 뜻의
입추(立秋, 양력 8월 8일께)와 더운 기운이 장차 물러나고 더위가 점차적으로 그친다는 처서(處暑, 양력 8월 23일께)의 절기가 들어 있다.

8월에는 음기(陰氣)가 점점 더해가면서 이슬이 백색으로 된다는
백로(白露, 양력 9월 8일께)와 가을 기운이 이미 가운데로 접어들었다는 추분(秋分, 양력 9월 23일께)의 절기가 들어 있으며, 9월에는 이슬이 차가운 기운에 의하여 장차 응결되려고 한다는 한로(寒露, 양력 10월 8일께)와 이슬이 응결하여 장차 서리가 되어 내린다는 상강(霜降, 양력 10월 23일께)의 절기가 들어 있다.

겨울의 첫 달인 10월은 겨울철이 이미 다가왔다는
입동(立冬, 양력 11월 7일께)과 서리가 더하여 눈이 되지만 적게 내린다는 소설(小雪, 양력 11월 23일께)의 절기가 있다.

동짓달은 매우 춥고 눈이 많이 온다는 대설(大雪, 양력 12월 7일께)과 겨울이 극에 달았지만 양기(陽氣)가 비로소 생기고 태양이 남쪽에 이른다는 동지(冬至, 양력 12월 22일께)의 절기가 들어 있으며, 섣달은 추위가 극심함을 알리는 소한(小寒, 양력 1월 6일께)대한(大寒, 양력 1월 21일께)의 절기가 들어 있다.

이처럼 절기와 중기가 다달이 들어 있으면서 계절의 특성을 말해주지만 이들 24기와 우리 나라의 기후가 정확하게 들어 맞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24기의 이름은 주(周)왕조 때 화북의 기상상태에 맞춰 붙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과 같이 생태계가 엄청나게 달라진 상황에서는 더욱이 들어맞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 기후와는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의 오랜 주생업이었던 농경과 관련하여 24기는 상당한 구실을 했다. 그래서 24기 가운데에는 동지처럼 큰 명절도 있고 비록 명절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하는 날들도 상당히 있었다. 이는 24기가 우리의 세시명절, 그리고 이 때에 행하는 세시풍속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절기와 중기로 된 24기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기후의 연간 변동을 나타낸 것이 72후(候)이다.
이는 중국의 춘추시대에 이미 주공(周公)이 제정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역에 채택되기는 위시대(6세기초)의 정광력(正光曆)부터이다. 이에 따르면 1년은 4계, 1계는 3개월, 1월은 2기, 1기는 3후, 1후는 5일, 1일은 4진(辰), 1진은 3시(時)로 나뉘어 1년은 72후가 된다.

각 기를 초후(初候)ㆍ중후ㆍ말후의 3후로 구분하였다.
24기와 72후는 중국의 화북 지방의 기후를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우리 나라의 기후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을 뿐 더러 72후의 내용이 수시로 약간씩 바뀌기도 하였다.

(春)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夏)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입춘(立春)
24절기 중의 첫번째 절기.
음력 1월, 양력 2월 4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15에 와 있을 때인 봄으로 접어드는 절후이다. 정월은 새해에 첫번째 드는 달이고, 입춘은 대체로 정월에 첫번째로 드는 절기이다.

음력으로는 정월의 절기로 동양에서는 이 날부터 봄이라고 한다. 입춘 전날이 절분(節分)인데 이것은 철의 마지막이라는 뜻으로 이날 밤을 해넘이라고 부르며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서 마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이날 여러 가지 민속적인 행사가 벌어진다.

그 중 하나가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이는 일이다. 이것을 춘축(春祝), 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하며, 각 가정에서 대문기둥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 것을 말한다. 글씨를 쓸 줄 아는 사람은 손수 입춘축을 쓰거니와,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남에게 부탁해서 써 붙이기도 한다. 다만 상중에 있는 집에서는 하지않는다. 한편, 대궐에서는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사대부집에서는 흔히 입춘첩을 새로 지어 붙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쓴다.

대춘부 (待春賦) 신석정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거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은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뻐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신방(首神房)이 맡아서 하며, 많은 사람들이 굿을 구경하였다. 이때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동네에서 특별한 경비가 필요할 때, 여러 사람이 단체를 조직하여 풍장과 복색을 차리어 가지고 각처로 다니면서 풍장을 치고 재주와 익살을 부리면서 돈이나 곡식을 얻는 일. 걸립에는 일정 분량의 곡식이나 금전을 집집마다 균등하게 부담시키지 않고 각 집안의 형편에 따라서 성의껏 내도록 하는 관행이 특징이다. 자신의 경제 여건 안에서 마을의 행사에 최선의 성의를 보이는 것이다)을 하고, 상주(上主),옥황상제,토신,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입춘일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첬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풍흉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행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한다. 입춘문은 대개 정해져 있으나 가장 널리 쓰이는 입춘축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 부모천년수(父母千年壽), 자손만세영(子孫萬世榮) 천증세월인증수(千增歲月人增壽), 춘만건곤복만가(春滿乾坤福滿家), 문영춘하추동복(門迎春夏秋冬福) 호납동서남북재(戶納東西南北財) 와 같은 문구가 가장 널리 쓰여진다.

(春)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夏)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우수( 雨水)
24절기의 두번째 절기.
입춘과 경칩 사이에 있으며, 입춘 15일 후인 양력 2월 19일 또는 20일이 된다.
흔히 양력 3월에 꽃샘추위라 하여 매서운 추위가 잠시 기승을 부리지만, 이맘때면 날씨가 많이 풀리고 봄기운이 돋고 초목이 싹튼다.

예로부터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라는 말이 있다. 태양의 황경이 330 에 올때 우수입기일(雨水入氣日)이 되는데, 음력으로는 정월 중기이다. 옛날 중국사람들은 우수입기일 이후 15일 동안의 기간을 삼후(三候)로 5일간씩 세분하여 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즉 첫 5일간은 수달(水獺)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고, 다음 5일간은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마지막 5일간은 초목에 싹이 튼다고 하였다.

한편, 우수 무렵이 되면 수달은 그동안 얼었던 강이 풀림과 동시에 물 위로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아 먹이를 마련한다. 원래 추운 지방의 새인 기러기는 봄기운을 피하여 다시 추운 북쪽으로 날아간다. 그렇게 되면 봄은 어느새 완연하여 마지막 5일간 즉 말후(末候)에는 풀과 나무가 싹이 튼다.

(春)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夏)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경칩(驚蟄)
24절기의 하나.
우수와 춘분 사이에 들어 있으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345˚에 해당될 때이다.
음력으로는 2월 중에, 양력으로는 3월 5일 경이 된다. 경칩은 글자 그대로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무렵이 된다.

개구리들은 번식기인 봄을 맞아 물이 괸 곳에 알을 까놓는데, 그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픈 데 좋을 뿐 아니라 몸을 보한다고 해서 경칩일에 개구리알을 먹는 풍속이 전해오고 있다. 지방에 따라서는 도롱뇽 알을 건져 먹기도 한다.

또, 경칩에는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한다. 경칩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는 지방도 있다.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 방 네 귀퉁이에 놓아 두면 빈대가 없어진다는 속설이 전한다.

한편, 경칩날에 보리쌀의 형상을 보아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예측할 수 있다고도 한다. 또한, 단풍나무나 고로쇠 나무를 베어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을 마시면 위장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약으로 먹는 지방도 있다.

(春)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夏)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춘분(春分)
24절기의 하나.
태양의 중심이 춘분점(春分點) 위에 왔을 때이며, 음력 2월, 양력 3월 21일 경이다. 태양은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고 지구상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 춘분점은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이다.

춘분을 전후하여 철 이른 화초는 파종을 한다. 그리고 아울러 화단의 흙을 일구어 얼마 남지 않은 식목일을 위하여 씨뿌릴 준비를 한다.

춘분에 즈음하여 농가에서는 농사 준비에 바쁘다. 특히, 농사의 시작인 초경(初耕)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해 동안 걱정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또 음력 2월 중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2월 바람은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차다. 이는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게 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꽃샘'이라고 한다. 한편, 이때에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먼 길 가는 배도 타지 않는다.

(春)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夏)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청명(淸明)
24절기의 하나.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들며, 음력 3월 양력 4월 5일 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이 15˚에 있을 때이다.

이 날은 한식(寒食)의 하루 전날이거나 때로는 한식과 같은 날이 된다. 동시에 오늘날의 식목일과도 대개 겹치게 된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청명을 기하여서 봄 일을 시작하므로 이 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논ㆍ밭둑의 손질을 하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특히 논농사의 준비작업이 된다. 다음 절기인 곡우 무렵에는 못자리판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농사를 많이 짓는 경우에는 일꾼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청명ㆍ곡우 무렵이면 서둘러 일꾼을 구하기도 하였다.

<동국세시기> 청명조에 "대궐에서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 불을 일으켜 각 관청에 나누어주는데, 이것은 중국의 주나라 이래 당나라, 송나라에서도 행하여지던 예로부터의 제도이다."라고 하였다.

<열양세시기>에서는 이와 같이 불을 나누어주는 일을 한식조에 기록하고 있고, 청명에 대하여서는 언급이 없다. 불은 한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 고 있으니, 한식조에 기록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최남선(崔南善)은 한식의 풍속을 고대의 종교적 의미로 해석하여, 해마다 봄에 신화(新火)를 만들어 구화(舊火)를 금지하던 예속(禮俗)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다.

청명과 한식은 흔히 같은 날이 되기 때문에 뒤섞이는 경우가 많으나, 청명은 농사력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하나이므로 농사관계사항을 기록 하는 것이 옳다.

(春)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夏)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곡우(穀雨)
24절기의 하나.
청명(淸明)과 입하(立夏)사이에 들어 있으며 태양의 황경이 30˚에 해당 할 때이다. 음력 3월, 양력 4월 20일 경이 되며, 그 때부터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된다.

곡우 때쯤이면 봄비가 잘 내리고 백곡이 윤택해진다. 그래서 '곡우에 가 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즉 그해 농사를 망친다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곡우 무렵이면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하기 위해 볍씨를 담갔는데, 이때 볍씨를 담가 두었던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두며 밖에서 부정한 일을 당했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집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에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보지 않는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잘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속신이 있다.

곡우 무렵은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시기이다. 그래서 전라남도나 경상남북도, 강원도 등지에서는 깊은 산이나 명산으로 곡우물을 먹으러 간다. 곡우물은 주로 산다래나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에 상처를 내 그기서 나오는 물을 말하는데, 그 물을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하여 약수로 먹는다. 곡우물을 먹기 위해서는 곡우 전에 미리 상처낸 나무에 통을 달아두고 여러날 동안 수액(樹液)을 받는다. 강진이나 해남 등지에서는 곡우물을 먹으러 대흥사(大興寺)로 가고, 고흥 등지에서는 금산으로, 성주 등지에서 는 가야산으로 가서 먹는다. 거자수(자작나무 수액)는 특히 지리산 아래 구례 등지에서 많이 나며 그곳에서는 곡우 때 약수제를 지낸다. 특히 신병이 있는 사람이 병을 고치기 위해 그 물을 마시는데, 그것은 외지 사람들에게 더 약이 된다고 한다.

경칩 무렵에 나오는 고로쇠나무 물은 여자물이라 하여 남자들에게 더 좋고, 거자수는 남자물이라 하여 여자들에게 더 애용되고 있다. 곡우 때가 되면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가 북상해 격렬비열도 부근에 올라온다. 그때 잡는 조기를 특히 '곡우살이'라 한다. 곡우살이는 살은 아주 적지만 연하고 맛이 있어서 서해는 물론 남해의 어선들도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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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입하(立夏)
24절기의 하나.
곡우(穀雨)와 소만(小滿)사이에 들어있으며, 음력으로는 4월, 양력으로는 대개 5월 6일 전후에 해당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45도에 이르렀을 때이다. 이맘때면 곡우에 마련한 못자리도 자리를 잡아 농삿일이 좀더 분망해진다. 여름이 다가온 것을 알리는 입하는 신록을 재촉하는 절기이다. 그래서 입하가 되면 농작물도 자라지만, 아울러 해충도 많아지고 잡초까지 자라서 이것들을 없애는 작업도 많다.

송파지역에서는 세시행사의 하나로 입하 무렵 쑥무리를 절식(節食)으로 마련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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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小滿)
24절기의 하나.
입하와 망종 사이에 들며, 음력 4월, 양력 5월 21일께가 된다. 태양이 황경 60도의 위치에 올 때이다.

이때부터 여름 기분이 나기 시작하며 식물이 성장한다. 소만 무렵에는 모내기 준비에 바빠진다. 이른 모내기, 가을보리 먼저 베기 작업들에, 여러 가지 밭농사의 김매기들이 줄을 잇게 된다. 모판을 만들면 모내기까지 모의 성장기간이 옛날에는 45 ~ 50일이 걸렸으나, 지금의 비닐모판에서는 40일 이내에 충분히 자라기 때문에 소만에 모내기가 시작되어 1년 중 제일 바쁜 계절로 접어들게 된다.

옛날 중국에서는 소만입기일(小滿入氣日)로부터 망종까지의 시기를 다시 5일씩 삼후(三候)로 등분하여, 초후(初候)에는 씀바귀가 뻗어오르고, 중후(中候)에는 냉이가 누렇게 죽어가며, 말후(末候)에는 보리가 익는다고 했다. 씀바귀는 꽃상추과에 속하는 다년초로서 뿌리나 줄기, 잎은 이무렵 식용으로 널리 쓰인다.
또, 초후를 전후하여 즐겨 시식하는 냉잇국도 늦봄 내지는 초여름의 시절식으로 예로부터 유명하다. 보리는 말후를 중심으로 익어 밀과 더불어 여름철 주식을 대표한다.

소만 무렵 심하게 가무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에 대비하여 물 준비를 부지런히 해두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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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망종(芒種)
24절기의 하나.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들며, 음력 4ㆍ5월, 양력 6월 6,ㆍ7일께 가 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75도에 달한 때이다.

망종이란 벼,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이 시기는 옛날에는 모내기와 보리베기에 알맞은 때였다. 그래서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다는 망종' 이라는 말도 있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 는 속담이 있듯이 망종까지는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 망종을 넘기면 바람에 쓰러지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닐 모판에서 모의 성장기간이 10일 정도 단축되었기 때문에, 한 절기 더 앞선 소만 무렵에 모내기가 시작된다. 특히 모내기와 보리베기가 겹치는 이 무렵의 바쁜 농촌의 상황은 보리농사가 많았던 남쪽일수록 더 심했고, 보리농사가 거의 없던 북쪽은 상황이 또 달랐다.

남쪽에서는 이 때를 '발등에 오줌싼다'고 할만큼 1년 중 제일 바쁜 때였다.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망종날 '보리그스름' 이라 하여 아직 남아 있는 풋보리를 베어다 그스름을 해서 먹으면 이듬해 보리 농사가 잘 되어 곡물이 잘 여물며 그해 보리밥도 달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날 보리를 밤 이슬에 맞혔다가 그 다음날 먹는 곳도 있다. 이렇게 하면 허리 아픈 데 약이 되고 그 해를 병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또 '망종보기'라 해서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들음에 따라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음력 4월내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잘 되어 빨리 거두어 들일 수 있으나 5월에 망종이 들면 그해 보리농사가 늦게 되어 망종내에도 보리 수확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전라남도와 충청남도, 제주도에서는 망종날 하늘에서 천둥이 요란하게 치면 그해 농사가 시원치 않고 불길하다고 한다. 경상남도 도서(島嶼) 지방에서는 망종이 늦게 들어도 안좋고 빠르게 들어도 안좋으며 중간에 들어야 시절이 좋다고 한다. 특히 음력 4월 중순에 들어야 좋다고 하며, 또 망종이 일찍 들면 보리농사에 좋고, 늦게 들면 나쁘다는 말도 있다.

망종날 풋보리 이삭을 뜯어 와서 손으로 비벼 보리알을 모은 후 솥에 볶아서 맷돌에 갈아 채로 쳐 그 보릿가루로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에 보리 밥을 먹고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제주도 지역에서는 망종이 일찍 들면 보리가 좋지 않다고 하며 또 이날 우박이 내리면 시절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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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夏至)
24절기의 하나.
망종과 소서 사이에 들며, 음력으로 5월, 양력으로 6월 21일께가 된다. 북반구에 있어서 낮이 가장 길며, 정오의 태양 높이도 가장 높고, 일사 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날이다.

북극지방에서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으며,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에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동지에 가장 길었던 밤 시간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여 이날 가장 짧아지는 반면, 낮 시간은 14시간 35분으로 1년 중 가장 길다.

남부지방 농촌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이전이면 모두 끝난다. 강원도지역에서는 파삭한 햇감자를 캐어 쪄서 먹거나 갈아서 감자전을 부쳐 먹는다. 옛날 농촌에서는 흔히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의 예를 들면, 하지까지 기다려도 비가 오지 않을 때 이장(里長)이 제관이 되어 용소(龍沼)에 가서 기우제를 지낸다. 제물로는 개나 돼지 또는 소를 잡아 그 머리만 물 속에 넣는다.

그러면 용신(龍神)이 그 부정함을 노하여 비를 내려 씻어내린다고 믿는다. 머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삶아서 기우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함께 먹는다. 충청북도 중원군 엄정면 목계리의 경우, 이장이 제관이 되어 한강지류의 소(沼)속에 있는 용바위에서 소를 잡아 용바위에 피를 칠하고 소머리만 소속에 넣는다.
이때 흔히 키로 물을 까불어서 비가 내리는 듯한 유사주술적(類似呪術的)인 동작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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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小暑)
24절기의 하나.
하지와 대서 사이에 들며, 음력 6월, 양력 7월 7일이나 8일께가 된다. 태양이 황경 105°의 위치에 있을때이다.

이 시기에는 장마전선이 우리 나라에 오래 자리잡아 습도가 높아지고, 장마철을 이루는 수가 많다. 예전에는 한 절기 앞선 하지 무렵에 모내기를 끝내고, 모를 낸 20일 뒤 소서 때는 논매기를 했으나, 지금은 제초제를 뿌리고 논김은 매지 않는다.

팥·콩·조들도 가을보리를 하지 무렵에 심고, 소서 무렵에 김을 매준다. 또, 이때 퇴비(堆肥) 장만과 논두렁의 잡초깎기도 한다. 소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므로 온갖 과일과 소채가 풍성해지고 밀과 보리도 먹게 된다.

특히, 음력 5월 단오를 전후하여 시절식으로 즐기는 밀가루 음식은 이맘 때 가장 맛이 나며, 소채류로는 호박, 생선류는 민어가 제철이다. 민어는 조림·구이·찜이 다 되지만 이 무렵에는 애호박을 넣어 끓인다.

특히, 민어고추장국과 회의 맛이 두드러진다. 애호박에서 절로 단물이 나고 민어는 한창 기름이 오를 때여서 그 국은 고추장 특유의 매운 맛이면서도 단물이 흥건히 괴어 맵고 달콤한 맛이 첫 여름의 입맛을 상큼하게 돋우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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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大暑)
24절기의 하나.
소서와 입추(立秋)사이에 들며, 음력 6월, 양력 7월 23일께이다. 태양의 황경이 120도가 되는 때이다.

이 시기는 대개 중복(中伏)때이며 더위가 심한 시기이다. 옛날에는 논의 김을 매어주었으나 지금은 제초제를 뿌리고 논김은 매지 않는다. 그러나 밭김은 매어주고 논밭두렁의 잡초베기와 퇴비장만 등이 이 무렵에 계속된다.

옛날 중국에서는 대서입기일(大暑入氣日)로부터 입추까지의 기간을 5일씩 끊어서 삼후(三候)로 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썩은 풀이 변하여 반딧불이 되고, 중후(中候)에는 흙이 습하고 무더워지며, 말후(末候)에는 큰비가 때때로 내린다고 하였다.

이 무렵에는 몹시 더우며, 소서 때로부터 장마 전선이 한반도에 동서로 걸쳐 큰 장마를 이루는 때가 자주 있다. 또한, 참외나 수박 등이 풍성하고 햇밀과 보리를 먹게되고 채소가 풍족하며 녹음이 우거지는 시기로, 과일은 이때가 가장 맛이난다.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오면 과실의 단물이 없어지는 반면 가물었을 때 과실 맛이 난다고 한다. 특히 수박은 가뭄 뒤에 가장 제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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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立秋)
24절기의 하나.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들어 있으며, 음력 7월, 양력 8월 7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이 135°에 있을 때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뜻으로, 화성(火星)은 서쪽으로 흘러 있고 미성(尾星)은 중천에 떠 있다.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칠월칠석을 전후하므로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때부터 가을채비를 시작하여야 한다. 특히, 이때에 김장용 무·배추를 심고 9, 10월 서리가 내려 얼기 전에 거두어서 겨울 김장에 대비한다.

김매기도 끝나가고 농촌도 한가해지기 시작하니‘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거의 전국적으로 전해진다. 이 말은 5월이 모내기와 보리수확으로 매우 바쁜 달임을 표현하는“발등에 오줌싼다”는 말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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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처서(處暑)
24절기의 하나.
입추와 백로 사이에 들며, 음력 7월, 양력 8월 23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이 150°에 있을 때이다.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불렀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깍아 벌초를 한다. 여름 동안 장마에 적은 옷이나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도 이 무렵에 하며,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파리·모기의 성화도 사라져가는 무렵이 된다. 또한 백중의 호미 씻이도 끝나는 무렵이라 그야말로 ‘어정칠월 건들팔월’로 농촌은 한가한 한때를 맞이하게 된다.
한편, 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에 천석 감한다.’고 하여 곡식이 흉작을 면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영남·호남·제주 등 여러 지역에서 전하여지고 있다.

(春)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夏)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백로(白露)
24절기의 하나.
처서와 추분사이에 들며, 음력 8월, 양력 9월 9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165°에 올때이다.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전히 나타난다.

옛 중국 사람들은 백로입기일(白露入氣日)로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그 특징을 말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候)에는 제비가 강남을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이때 우리 나라에는 장마도 걷히고 중후와 말후에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된다.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곡식을 넘어뜨리고 해일(海溢)의 피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백로가 음력 7월 중에 드는 수도 있는데 제주도와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그러한 해에는 오이가 잘 된다고 한다. 또한 제주도 지방에서는 백로에 날씨가 잔잔하지 않으면 오이가 다 썩는다고 믿는다.

경상남도의 섬 지방에서는‘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十里) 천석(千石)을 늘인다.’고 하면서 백로에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생각한다. 또 백로 무렵이면 고된 여름 농사를 다 짓고 추수까지 잠시 일손을 쉬는 때이므로 근친(覲親)을 간다.

(春)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夏)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추분(秋分)
24절기의 하나.
백로와 한로 사이에 들며, 음력 8월, 양력 9월 23일 경이다. 이 날 추분점(秋分點)에 이르러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추분점이란 천구상(天球上) 황도(黃道)와 적도(赤道)의 교점 가운데에서 태양이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으로 적경(赤經)·황경(黃經) 모두 180°, 적위(赤緯)·황위(黃緯) 모두 0°이며, 현재는 사자자리와 처녀자리의 중간에 위치한다. 추분도 다른 24절기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히 절일(節日)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다만 춘분과 더불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으므로 이날을 중심으로 계절의 분기점 같은 것을 의식하게 된다.

즉,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므로 비로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이 무렵의 시절음식으로는 버섯요리를 대표적으로 꼽는다. 또한, 추분 즈음이면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목화를 따고 고추도 따서 말리는 등 잡다한 가을걷이 일이 있다.
호박고지·박고지·깻잎·호박순·고구마순도 이맘때 거두어들여야 하지만 산채를 말려 묵은 나물을 준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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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한로(寒露)
24절기의 하나.
추분과 상강 사이에 들며, 음력으로 9월, 양력으로 10월 8일경 이다.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말뜻 그대로 찬이슬이 맺힌다. 세시명절인 중양절(重陽節:重九)과 비슷한 때이다.

중양절에는 특별한 민속행사가 있으나 한로에는 이렇다 할 행사는 없고, 다만 24절기로서 지나칠 따름이다. 하지만 한로를 전후하여 국화전(菊花煎)을 지지고 국화술을 담그며, 온갖 모임이나 놀이가 성행한다. 한편, 이무렵 머리에 수유(茱萸)를 꽂거나, 높은 데 올라가 고향을 바라본다든지 하는 내용이 한시에 자주 나타난다.

두보(杜甫)의 "내년 이 모임에 누가 건재할지 아는가, 얼근히 취한 눈으 로 수유를 쥐고 자세히 들여다보네(明年此會知誰健 醉把茱萸仔細看)." 라는 시가 유명하다.
이무렵 높은 산에 올라가 수유열매를 머리에 꽂으면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는데, 이는 수유열매가 붉은 자줏빛으로 붉은색이 벽사력(벽邪力)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로 즈음에는 찬 이슬이 맺힐 시기여서 기온이 더욱 내려가기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하므로 농촌은 타작이 한창인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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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상강(霜降)
24절기의 하나.
한로와 입동 사이에 들며, 음력9월, 양력 10월 23·24일께가 된다. 태양의 황경이 210°되는 때이다. 이 때에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며 밤에는 기온이 매우 낮아지므로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의 계절이다.

옛날의 중국사람들은 상강으로부터 입동 사이의 기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세분하여 초후(初候)에는 승냥이가 산짐승을 잡고, 중후(中候)에는 초목이 누렇게 떨어지며, 말후(末候)에는 겨울잠을 자는 벌레가 모두 땅에 숨는다고 하였다.

말후에 가서 벌레가 이미 겨울잠에 들어간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계절적으로 추울 때이다. 이는 농경시필기(農耕始畢期)와도 관련된다. 봄에 씨뿌리고 여름에 가꾸어서 가을에 거두어 겨울을 나는 것이 농본국인 우리 나라 사람들의 생활인 것처럼, 9월 들어 시작된 추수는 상강무렵이면 마무리가 된다.

<농가월령가>도 9월령에서는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마침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로 율동감 있게 바쁜 농촌 생활을 읊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기술의 개량으로 이러한 행사들이 모두 한 절기 정도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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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입동(立冬)
24절기의 하나.
상강과 소설사이에 들며, 음력 10월, 양력 11월 8일경으로, 태양의 황경이 225°에 이를 때이다. 입동을 특별히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지만 우리의 겨울 생활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겨울 동안의 김치를 장만하는 김장은 입동 전 혹은 입동 직후에 하여야 제 맛이 난다. 입동이 지난 지가 오래면 얼어붙고, 싱싱한 재료가 없으며, 일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때가 되면 시장에는 무·배추가 가득 쌓이고, 또한 옛날에는 냇가에서 부녀자들의 무·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전라남도지방에서는 입동의 날씨를 보아 그해 겨울 날씨를 점친다. 즉, 입동날 추우면 그 해 겨울은 몹시 춥다고 한다. 경상남도 도서 지방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고 하며, 밀양지방에서는 갈가마귀의 배에 흰색의 부분이 보이면 이듬해에 목화가 잘 된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입동날씨점을 본다. 즉, 입동에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 해 바람이 독하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이른바 고사를 지낸다. 그 해의 새 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토광·터줏단지·씨나락섬에 가져다 놓았다가 먹고, 농사에 애쓴 소에게도 가져다 주며,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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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雪)
24절기의 하나.
입동과 대설사이에 들며, 음력 10월, 양력 11월 22일이나 23일 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240°에 오는 때이다. 이때부터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 기분이 든다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어 소춘(小春)이라고도 불린다.

옛날부터 중국사람들은 소설로부터 대설까지의 기간을 5일씩 삼후로 구분하여, 초후에는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나지 않고, 중후에는 천기(天氣)가 올라가고 지기(地氣)가 내리며, 말후에는 폐색되어 겨울이 된다고 하였다.

소설 무렵, 대개 음력 10월 20일께는 관례적으로 심한 바람이 불고 날씨가 차갑다. 이 날은 손돌(孫乭)이 죽던 날이라 하고 그 바람을 손돌바람이라 해서, 외출을 삼가고 특히 뱃길을 조심한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에 왕이 배를 타고 통진과 강화 사이를 지나는데 갑자기 풍랑이 일어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왕은 사공이 고의로 배를 흔들어 그런 것이라고 호령을 하고 사공의 목을 베었다. 사공은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어버린 것이다. 그 사공의 이름은 손돌이었다. 그래서 그 손돌이 죽은 곳을 손돌목이라 하고 지나갈 때 조심한다. 해마다 그 날이면 강풍이 불고 날씨가 찬데, 이는 손돌의 억울하게 죽은 원혼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강화에서는 이 날 뱃길을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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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대설(大雪)
24절기의 하나.
소설(小雪)과 동지(冬至) 사이에 들며, 음력 11월, 양력 12월 7,8일 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225°에 도달한 때이다.

이 시기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대설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원래 재래 역법의 발생지이며 기준 지점인 중국의 화북지방(華北地方)의 상황을 반영하여 붙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꼭 이 시기에 적설량이 많다고는 볼 수 없다. 중국에서는 대설로부터 동지까지의 기간을 다시 5일씩 삼후로 나누어서, 초후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에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치며, 말후에는 여지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한편, 이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는 믿음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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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
24절후의 하나.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로부터 차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동짓날에 이르러 극에 도달하고, 다음날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고대인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렸다. 중국 주(周)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역경의 복괘(復卦)를 11월, 즉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부터 시작한 것도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동짓날에 천지신과 조상의 영을 제사하고 신하의 조하(朝賀)를 받고 군신의 연예를 받기도 하였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동짓날은 ‘아세(亞歲)’라 했고, 민간에서는 흔히 ‘작은 설’이라 하였다고 한다.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 가는 작은 설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 유풍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를 지나야 한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

동짓날에는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동지시식(冬至時食)이라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큼한 크기로 하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祀堂)에 올리고 각 방과 장독·헛간 등 집안의 여러 곳에 담아 놓았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다.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時節食)의 하나이면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즉, 팥죽에는 축귀(逐鬼)하는 기능이 있다고 보았으니, 집안의 여러 곳에 놓는 것은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내기 위한 것이고,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薦新)의 뜻이 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데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으며 민속적을 널리 활용되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며,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축귀 주술행위의 일종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팥떡·팥밥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짓날에도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동짓달에 동지가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동지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疫神)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

동짓날에 궁 안에 있는 내의원에서는 소의 다리를 고아, 여기에 백강·정향·계심·청밀 등을 넣어서 약을 만들어 올렸다. 이 약은 악귀를 물리치고 추위에 몸을 보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동짓날에는 관상감에서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치면 나라에서는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세(옥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누어주었다. 각사(各司)의 관리들은 서로 달력을 선물하였으며, 이조(吏曹)에서는 지방 수령들에게 표지가 파란 달력을 선사하였다. 동짓날이 부흥을 뜻하고 이 날부터 태양이 점점 오래 머물게 되어 날이 길어지므로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 달력을 만들어 가졌던 것이다.

매년 동지 무렵이 되면 제주목사는 특산물로서 귤을 상감에게 진상하였다. 궁에서는 진상 받은 귤을 대묘(大廟)에 올린 다음에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 주었고, 멀리에서 바다를 건너 귤을 가지고 상경한 섬사람에게는 그 공로를 위로하는 사찬(賜粲)이 있었으며, 또 포백(布帛) 등을 하사하였다. 멀리에서 왕은에 감화되어 진기한 과일을 가져온 것을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해서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황감제(黃柑製)라 하였다.

동짓날 부적으로 뱀 '사(蛇)’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한다고도 전해지고 있으며, 또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 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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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小寒)
24절기의 하나.
동지와 대한 사이에 있으며 음력 12월, 양력 1월 5일 경이다. 태양이 황경 285。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절후의 이름으로 보아 대한 때가 가장 추운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은 우리 나라에서는 소한 때가 가장 춥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는 속담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온 것이다.

옛날의 중국 사람들은 소한으로부터 대한까지의 15일간의 기간을 5일씩 삼후로 나누어, 초후에는 기러기가 북으로 돌아가고, 중후에는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며, 말후에는 꿩이 운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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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冬)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대한 (大寒)
24절기의 마지막 절후.
양력 1월 20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00。되는 날이다. 대한은 음력 섣달로 매듭을 짓는 절후이다.

원래 겨울철 추위는 입동 (立冬)에서 시작하여 소한(小寒)으로 갈수록 추워지며 대한에 이르러서 최고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는 중국의 경험에 입각한 것이고 우리 나라에서는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 15일께이므로 다소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죽었다.'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즉 소한 무렵이 대한 때보다 훨씬 춥다는 뜻이다.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 수리 따위를 비롯한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간(新舊間)에 하는 것이 관습화 되어있다. 이 때의 신구간은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간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 1주일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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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음악 파일을 올려 다른 사람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했다면 처벌 받을까.

검찰은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처벌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인터넷에서 음악 파일을 개인 용도로 내려 받은 사람은 지금껏 무혐의 처분해 왔으나 파일을 무작위로 올린 사람에 대해서까지 처벌하지 않기로 한 것은 처음이다.

저작권 침해 고소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이건리 부장검사)는 16일 인터넷상 저작권 침해사범 처리 예규를 마련, 전국 검찰 업무에 반영토록 했다고 밝혔다.

주된 처벌 기준은 영리목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불법 음악 파일을 돈을 받고 제공하거나 사이버머니를 많이 얻기 위해 조회 수를 높이려고 인터넷에 올린 경우는 처벌 받는다. 개인이 아닌 회사가 음악 파일을 무단 이용한 경우도 처벌 대상이다.

반면 개인이 불법 다운로드 받은 파일을 영리목적 없이 인터넷에 올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제공한 경우에는 기소를 유예하기로 했다. 위법이지만 선처하겠다는 것. 그러나 이 경우도 한 차례 이상 ‘기소 유예’ 전력이 있거나 저작권자의 경고를 받고도 삭제하지 않은 때에는 처벌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에 따라 저작권 보호 대행업체인 ‘노프리’가 음악 파일을 무단으로 배포한 혐의로 고소한 네티즌 1만3,000여명은 대부분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전망이다.

검찰은 “1만 명이 넘는 사람을 수사하는 데 따른 인력과 비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법적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피고소인의 대부분인 10대 청소년들을 전과자로 만들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현행 저작권법은 불법 다운로드 받은 사람이라도 개인적으로 이용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지만(27조) 파일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은 ‘전송권(저작물을 제공하는 권리)’을 적용해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서울고법은 개인간 컴퓨터 파일공유(P2P)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음악 파일을 제공한 네티즌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음반 제작사 등 저작권 관련 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노프리의 김영기 법무팀장은 “수사상 편의를 이유로 검찰이 저작권법을 무효화한 셈”이라며 “음반 등 문화산업 위축은 물론 저작권자와 사용자 간의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네티즌들은 “인터넷 시대에 적합한 결정”이라며 대부분 환영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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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중에서 발췌 

 

당신이 지식을 함양하지 않는 것은, 실은 지식을 감소시키고 있는 결과 가 된다.
자기의 높은 직함을 여러 사람들에게 과시하려는 인간은, 이미 자기의 인격을 손상시키고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지 않고는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배우려는 학생은 부끄러워해서는 안된다.
인내력이 없는 사람은 스승이 될 수 없다.
만약 당신 주위에 특출한 사람이 없다면, 당신 자신이 특출한 인물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이 자신을 위해 하지 않으면, 누가 당신을 위해 해 줄 것인가?
지금 그것을 하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인생 최대의 목표는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찾고, 평화를 가져오는 일 이다.
자신의 일만을 생각하고 있는 인간은 그 자신도 될 자격조차 없는 인간 이다.
인간은 마음 가까이에 유방이 있으며, 동물은 마음 멀리에 유방이 있다. 이것은 신의 깊은 배려이다.
반성하는 자가 서 있는 땅은 가장 위대한 랍비가 서 있는 땅보다 더 가 치가 있다.
세계는 진실. 법. 평화의 세 기반위에 서 있다.
휴일은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지, 인간이 휴일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백성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
인간은 사소한 남의 피부병은 걱정해도, 자기의 중병은 아랑곳하지 않 는다.
거짓말장이에게 주어지는 최대의 벌은, 그가 진실을 말했을 때에도 사 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년 걸려서 배운것을 년안에 잊을수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세가지 이름을 갖는다. 태어났을 때 양친이 붙여주는 이름, 친구들이 친구의 정을담아 부르는 이름, 그리고 자기 생애가 끝 났을 때 얻어지는 명성의 세 가지이다.
인간은 장면에 의해서 명예가 높여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장면의 명예를 높이는 것이다.
요령이 좋은 인간과 현명한 인간의 차이 - 요령이 좋은 인간은 현명한 인간이었더라면 절대로 모면하기 어려운 상황을 잘 빠져나갈 사람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젊고도 늙었고, 어떤 사람은 늙었어도 젊다.
자기의 결점만을 걱정하고 있는 인간은, 딴 사람이 갖는 결점은 알지 못한다.
음식을 장난감으로 취급하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은 자다.
수치스러움을 모르는 것과 자부심은 형제지간이다.
하루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이틀 걸린다. 이틀 공 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나흘걸린다. 년 공부하지 않 으면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년 걸린다.
성질이 나쁜 사람은 이웃 사람의 수입에 신경을 쓰고, 자기의 낭비에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 것 보다는 마음이 보이지 않는 쪽이 더 두렵다.
만난 사람 모두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현 명하다.
강한사람 - 그것은 자기를 억제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은 적을 벗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
풍족한 사람이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람을 찬미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다운 명예스런 사람이다.
인간은 세가지 벗을 가지고 있다. 아이. 부. 선행
아내를 고를 때에는 한 계단을 내려가고, 벗을 고를 때에는 한 계단을 올라가라.
벗이 화가 나 있을 떼에는 달래려과 하지말라, 그가 슬퍼하고 있을때에 도 위로하지 말라.
당신의 친구가 당신에게 있어서 벌꿀처럼 달더라도 전부 핥아 먹어서는 안된다.
어떤 남자라도 여자의 야릇한 아름다움에는 버틸 수 없다.
여자의 질투심은 하나의 원인밖에 없다.
여자는 자기의 외모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여자는 남자보다 육감이 예민하다.
여자는 남자보다 정이 두텁다.
여자는 불합리한 신앙에 빠지기 쉽다.
불순한 동기에서 시작된 애정은 그 동기가 사라지면 바로 죽어 버린다.
사랑을 하고 있는 자는 사람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른다.
여성이 술을 한 잔 마시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두잔 마시면 그녀 는 품위를 떨어 뜨린다. 석 잔째는 부도덕하게 되고, 넉 잔째에서는 자 멸한다.
정열 때문에 결혼하여도, 그 정열은 결혼보다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최초의 여자를 남자의 머리로 만들지 않았던 이유는, 남자를 지배해서는 안되지 때문이다. 그리고 발로 만들지 않았던 것도, 그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갈비뼈로 만든것은 여자가 언제나 그의 마음 가까이에 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술이 머리에 들어가면 비밀이 밖으로 밀려 나온다.
웨이터의 매너가 좋으면 나쁜술이라도 미주가 된다.
악마가 사람을 방문하기에 너무 바쁠 때에는, 악마 대신으로 술을 보낸 다.
포도주는 새 술일 때에는 포도와 같은 맛이 난다. 그러나 오래되면 오래 될 수록 맛이 좋아진다. 지혜도 이 포도주와 똑같은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지혜는 연마된다.
아침 늦게 일어나고 낮에는 술을 마시며 저녁에 쓸데없는 이야기로 소 일하게 되면 인간은 일생을 간단히 헛되게 만들 수 있다.
포도주는 금이나 은 그릇으로는 잘 양조 되지 않지만 지혜로 만든 그 릇이라면 매우 잘 양조된다.
부부가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다면, 칼날 폭 만큼의 좁은 침대에서 도 누워 잠잘 수 있지만, 서로 미워하기 시작하면 미터나 폭이 넓은 침대로도 더욱 좁아진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현처를 가진 남자다.
남자는 결혼하면 죄가 늘어간다.
아내를 이유없이 학대하지 말라. 하나님은 그녀의 눈물 방울의 수를 주의깊게 헤아리고 계시다.
모든 병 중에서 마음의 병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모든 악 중에서 악 처만큼 나쁜 것은 없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것 - 젊은 때에 결혼하여 살아 온 조강지처
남자의 집은 아내이다.
아내를 고를 때에는 겁장이가 되라.
아이는 어렸을 때 엄하게 꾸짖고, 크게 자라면 꾸짖지 말라.
어린 아이는 엄하게 가르쳐야 하나 아이가 두려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아이를 꾸짖을 때는 한번만 따끔하게 꾸짖고 언제나 잔소리로 계속 꾸 짖어서는 안된다.
어린이는 양친이 이야기하는 모양을 흉내낸다. 성격은 그 이애기하는 모습으로 알 수 있다.
아이에게 무언가 약속하면 반드시 지켜라. 지키지 않으면 당신은 아이 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결과가 된다.
가정에서 부도덕한 일을 하는것은 과일에 벌레가 붙은것과 같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퍼져 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자리에 아이가 앉아서는 안된다.
아버지에게 말대꾸를 해서는 안된다.
아버지가 만약 다른 사람과 다투고 있을 때에는 다른 사람의 편을 들 어서는 안된다.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 세 가지가 있다. 번민. 말다툼. 텅빈 지갑. 이 중에서도 가장 크게 상처를 입히는것은 텅빈 지갑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죄는 처음에는 여자처럼 약하나 방치해 두면 남자처럼 강하게 된다.
죄는 처음에는 거미집의 줄처럼 가늘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배를 잇는 밧줄처럼 강하게 된다.
죄는 처음에는 손님이다. 그러나 그대로 두면 손님이 그 집 주인이 되 어버린다.
남을 헐뜯는 고십은 살인보다도 위험하다. 살인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지만 고십은 반드시 세 사람의 인간을 죽인다. 즉 고십을 퍼뜨리는 사람 자신,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 그 화제가 되고 있 는 사람.
중상자는 무기를 사용해서 사람을 해치는 것보다 죄가 무겁다. 무기 는 가까이 가지 않으면 상대를 해칠 수 없으나, 중상은 멀리서도 사람 을 해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불타고 있는 장작에 물을 뿌리면 심지까지 차갑게 되지만 중상으로 노 하고 있는 사람에게 사죄해도 마음속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아무리 선인이라도 입버릇이 나쁜 인간은 훌륭한 궁전 이웃에 있는 악 취가 심하게 풍기는 가족 공장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둘이다. 이것은 듣는 쪽을 두배로 하라는 뜻이 다.
손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고십을 듣지 않기 위해서이다. 고십 이 들려오면 얼른 귀를 막아라.
물고기는 언제나 입으로 낚인다. 인간도 역시 입으로 걸린다.
여우의 머리가 되기보다는 사자의 꼬리가 된다.
선행에 문을 닫는자는, 의사를 위하여 문을 열지 않으면 안된다.
좋은 항아리를 가지고 있으면 그날 안에 사용하라. 내일이 되면 깨어 질지도 모른다.
정직한 자는 자기의 욕망을 조종하지만 정직하지 않은 자는 욕망에 조 종된다.
남의 자선으로 살기보다는 가난한 생활을 하는 편이 낫다.
남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사람과 자기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사람 사이 에는 커다란 거리가 있다.
명성을 얻으려 달리는 자는 명성에 따라갈 수 없다. 그러나 명성에서 도망쳐 달리는 자는 명성에 붙잡힌다.
당신의 혀에게 나는 잘 모릅니다 라는 말을 열심히 가르치십시오
나무는 그 열매에 의해서 알려지고 사람은 업적에 의해서 평가된다.
행동은 말보다 목소리가 크다
남에게 자기를 칭찬하게 하는 것은 좋으나 자기 입으로 자기를 칭찬해 서는 안된다.
훌륭한 사람이 아래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노인이 젊은이가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세계는 축복받아야 할 것이다.
노화를 재촉하는 네가지 원인 - 공포. 분노. 아이들. 악처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세가지 - 명곡. 조용한 풍경. 깨끗한 향기
사람에게 자신을 갖게하는 세가지 - 좋은 가정. 좋은 아내. 좋은 의복
자선을 행하지 않은 인간은 아무리 풍부한 부자일지라도, 맛있는 요리 가 즐비한 식탁에 소금이 ?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일생에 한 번 닭을 실컷 먹고, 다른 날에는 굶주리고 있기보다는 일생 동나 양파만을 먹는 편이 낫다.
인간은 태어날 때에는 손을 쥐고 있으나, 죽을 때에는 반대로 손을 펴 고 있다. 왜 그럴까? 태어날 때에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붙잡으 려고 하기 때문이며, 죽을 때에는 모두 뒤에 남은 사람에게 주어서, 아 무것도 없는 빈 손이라는 뜻이다.
넓은 지식보다는 배우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지식보다도 지혜를 더 소중히 한다.
지혜는 겸허를 낳는다.
졸은 수입만큼 좋은 약은 없다.
지식을 너무 가지면 사람은 늙지만, 돈을 너무 가지면 사람은 젊어진 다.
마음의 문은 입이고, 마음의 창은 귀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뿌릴 때에 자기에 게도 몇 방울 정도는 묻는다.
행복을 추구하려면 만족에서 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해버린 일을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않았을 때의 후회가 더 크다.
바른 것을 배우기보다 바른 것을 행하는 것이 훨씬 낫다.
인간의 가장 친한 벗은 지성이며, 최대의 적은 욕망이다.
돈이 없어졌을 때는 인생의 절반을 잃게 되고, 용기가 없어졌을 때는 모두를 잃게 된다.
실패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일은 실패하는 일보다 더 나쁘다.
바른 것을 배우리 보다는 실천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자기 결점을 고쳐질 수 없다고 자기 향상의 노력을 체념해서는 안 된 다.
아주 어리석은 자보다 반쯤 어리석은 자가 더 어리석다.
아무리 외모를 꾸며도 내용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어리석은 자에게는 노년은 겨울이고 현명한 자에게는 노년은 황금기 다.
몸의 무게는 잴 수 있으나 지성의 무게는 잴 수 없다. 왜냐 하면 체중 에는 한도가 있지만, 지성에 는 한도가 없기 때문이다.
교사에게서 배우는 것보다 친구에게서 배우는 것이 더 크고, 학생으로 부터 배우는 것이 더욱 크다.
한번 뱀에게 물린 자는 새끼를 보고도 놀란다.
물에 빠진 자는 내미는 칼날이라도 붙든다.
현인은 돈의 고마움을 알지만, 부자는 지혜의 고마움을 모른다. 그러므 로 현인이 더 훌륭하다.
개가 의자에 오르는 것을 내버려 두면 식탁에까지 올라온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현명한 아들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미련한 자식은 어머니를 슬프게 한다.
쓸데 없는 수다는 장례식에 흥겨운 음악을 틀어 놓음과 같다.
사람은 지껄이는 것은 쉽게 배우지만, 침묵은 좀처럼 배우기 힘들다.
본인 앞에서는 지나치게 칭찬하면 안 된다. 사람을 칭찬할 때에는 그늘 에서 칭찬하라.
거짓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 진실 가운데도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진실도 거짓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다. 진실도 면도칼처럼 조 심하여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대의 친구는 친구를 가졌고, 그 친구에게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에게 또 친구가 있다. 그러므로 친구에게 말하는 걸 조심하라.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릴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현인은 눈으로 본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어리석은 자는 귀로 들 은 것을 이야기 한다.
맞은 아픔은 언젠가는 없어지지만, 모욕당한 말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 는다.
쉽게 답하는 자는, 쉽게 과오를 범한다.
침?은 어진 자를 더 한층 현명하게 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에게는 침묵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 지 헤아릴 수 없다.
아무리 친한 벗이라도 지나친 접근은 삼가하라.
자기가 바르게 살고 가족이나 사람들의 도움이 되려면, 자기를 확립하 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 자기를 주의깊게 지키고 있어야 한다.
싸움은 졸렬한 자기 주장의 방편이다. 현자일수록 자기를 주장할 때에 는 보다 온화한 방법을 취하는 법이다.
손님은 비와 같다.적당히 내리면 기뻐하지만 계속 내려서는 안된다.
자기를 웃을 수 있는 자는 남을 웃을 때에는 온건하다. 웃었다해도 그 웃음 때문에 남을 상처입히 는 일이 드문 것이다.
싸움은 냇물과 비슷하다. 한 번 작은 시내가 되면, 큰 강이 되어 다시는 작은 시내로 되돌아가지 않게 된다.
세 가지 유형의 친구가 있다. 끼니와도 같아서 매일 거를 수가 없는 친 구, 약과 같은 것이어서 가끔 있어야만 할 친구, 그리고 질병과 같아서 피하지 않으면 안 될 친구다.
만일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으면 인사치레 하는 것울 배워라.
누구든 붙임성 있는 자를 조심하라.
동료가 없어도 자기만으로 해나갈 수가 있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 이다. 동료 없이는 자기만으로 해나갈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잘못된 것이다.
만일 자기의 정당한 평가를 듣고 싶거든 이웃 사람의 떠도는 말에 귀를 기울려라.
돈으로 시간을 살 수는 없으나, 시간으로 돈을 살 수는 있는 것이다.
악인은 눈과 비슷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순백하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금방 흙탕과 진창이 된다.
우리는 사람을 유혹해서는 안된다. 유혹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물쇠를 잠글 필요가 있다.
성공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밀거나 당기든가 하니 않으면 안된다.
무엇이 선인지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 쓸모가 없다. 선을 행함으 로써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세 가지 것으로 지탱된다. 즉,그의 자식들, 그의 부, 그리고 그의 선행이다.
사람은 사람이 말하는 것보다 낮고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높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한 가지를 선택한 결과가 된다.
행운에 혜택을 받기 위해서 지혜가 필요없다. 그러나 이 행운을 활용하 시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건강처럼 큰 보배는 없다.
수면만큼 좋은 의사는 없다.
알콜은 정신과 육체를 결합시킨다.
인생은 현인에게 있어서는 꿈이고, 어리석은 자에게는 놀이이며, 부자 에게는 희극이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비극이다.
현인은 누구냐?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람이다. 강한 사람 은 누구냐? 감정을 누를 줄 아는 사람이다. 풍부한 사람은 누구냐? 자 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사람에게 사랑 받는 사람 은 누구냐?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다.
남보다 앞서기보다 남과 다르게 되라.
지혜에 뒤지는 자는 매사에 패배한다.
만약 당신이 살아 남고 싶어도 먹는 것, 마시는 것, 춤, 일에 의존해서 는 살아 남을 수가 없다. 오직 지혜를 가짐으로써만이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
싫으면 하지 말고, 할테면 최선을 다하라.
배움은 흉내로부터 시작한다.
친구를 사귈 때는 한 계단 올라서라.
좋은 친구는 위인을 만든다.
남의 백마디 중상보다 친구의 한마디 실언이 더 큰 상처를 입힌다.
친절은 인생 최대의 지혜이므로 누구에게나 친절하라.
큰 부자에게는 자녀는 없다. 상속인이 있을 뿐이다.
금전은 무자비한 주인이 되기도, 유익한 종이 되기도 한다.
분 동안에 다 말할 수 없다면 말하지 말라.
지혜 없는 자가 행운에 혜택받는 것은 구멍 뚫린 자루에 가루를 넣고 짊어지는 것과동 같다.
작은 불이라도 큰 것을 태울 수가 있다.
좋은 일을 하려 할 때 처음에는 가시밭 산길을 걷지만, 이윽고 평탄한 길로 들어선다. 나쁜 일을 하려 할 때 처음에는 평탄한 길이지만, 얼마 안 있어 가시밭 산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 세상에서 그대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을 계획하 라. 그리고 저 세상을 위해서는 내일 죽는다 생각하고 계획하라.
인생은 어두운 밤과 같은 것이다.
인생은 언제나 좋은 곳과 나쁜 곳이 있다.
세상에는 의견을 물어서는 안 되는 것 세 가지가 있다. 여자에게 그녀 의 친구에 대해서, 겁장이에게 전쟁에 대해서, 장삿군에게 에누리에 대 해서.
훌륭한 예의범절이란 어떤 것일까? 남의 무례함을 용서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에게 한 번 속으면 그 사람을 저주하라. 만일 같은 사람에게 두 번 속으면 자기를 저주하라.
현명한 적은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지만, 어리석은 친구는 사람을 어리 석게 만든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라. 그러나 그만큼 의심하라.
적에게 숨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은 친구에게도 숨겨라.
두 사람이 싸웠을 때, 타협을 구하는 쪽이 인격이 높아진다.
싸움은 냇물과 비슷하다. 한 번 작은 시내가 되면 큰강이 되어 다시는 작은 시내로 되돌아가지 않 는다.
혀는 마음의 펜이다.
친구를 원수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을 빌려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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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바로잡기

정보의바다 2007. 11. 21. 14:45
 주로 절벽, 계곡, 암석지대에 둥지를 짓고 산다. 다리나 빌딩 턱 같은 인공구조물에 집을 짓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좋아한다. 하지만 나무에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이런 둥지를 굳이 찾아내 '습격'하지 않는 한, 우리는 새끼 비둘기를 볼 수 없다.

비둘기는 극도로 활발한 신진대사 능력을 갖고 있다. 새끼 비둘기는 매일 자기 몸무게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양의 먹이를 먹는다. 그 결과 성장속도가 눈부시게 빨라, 엄마 비둘기가 자식을 둥지 밖으로 내찰 때쯤 되면 벌써 몸집이 어른 비둘기와 같거나 비슷해져 버린다. 그렇게 되기까지 태어나서 한달이 채 안 걸린다. 따라서 새끼 비둘기가 엄마 품에서 독립해 나와 사람들 눈에 띌 즈음이면 이미 여느 비둘기와 구별이 되지 않는다.

혹시 어미 비둘기와 어린 비둘기가 사이좋게 종종거리는 장면을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십중팔구 다른 종류의 두가지 새를 본 것이다. 몸집이 비슷한 비둘기들 사이에서 나이든 비둘기와 어린 비둘기를 구분하는 유일한 방법은 깃털 관찰이다. 어린 비둘기들은 깃털이 상대적으로 세련되지 못하고 누덕누덕한 느낌을 준다. 꼬리 부분이 특히 그렇다. 같은 색깔의 비둘기 중에서는 나이든 비둘기의 깃털 빛깔이 더 밝다.
 

 ♣ X등급 영화

  흔히 'X등급 영화'는 포르노를 뜻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XXX등급은 정도가 훨씬 노골적인 포르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본래 'X등급=포르노'는 아니다.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미드나잇 카우보이'나 스탠리 큐브릭의 명작 '클락웍 오렌지'도 X등급이었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영화에 MPAA(미국영화협회)가 등급을 매긴다. G(미성년자 관람가), PG(부모동반 필요), PG-13(13세 이하 부모동반 필요), R(미성년자 관람불가)의 4등급이 있다. 영화사가 MPAA로부터 등급을 받으려면 1천달러 안팎의 심의료를 내야 한다. 그렇다고 등급 부여가 법적 강제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60년대 등급제가 도입된 이후 영화들은 등급의 울타리 안에서 표현의 자유를 더 확장할 수 있게 됐고, 많은 신문들이 등급 없는 영화 광고 접수를 거부함으로써 대부분의 영화사들이 자발적으로 이 제도에 참여하게 됐다.

X등급은 처음엔 오로지 성인용으로만 적합한 모든 영화를 가르키는 용어였다. MPAA는 X등급에 대해서는 협회 승인 없이 원하는 제작자가 마음대로 붙일 수 있게 했다. 저예산 영화 제작자들에게 심의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던 것이 X등급은 점차 포르노영화를 말하는 것으로 의미가 변질돼갔다. 그러자 메이저 영화사들은 X등급 영화 배급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포르노 제작자들은 그들대로 다른 장르의 진지한 영화들이 X등급을 표방하는 것을 꺼렸다. 관객을 헷갈리게 만들어 자기네 장사를 망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짜 포르노'를 '사이비 X등급'과 구별하기 위한 일종의 농담으로 'XXX등급'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한번 인플레가 시작됐으므로, 앞으로는 X가 5개나 10개쯤 붙은 포르노가 나올는지도 모를 일이다.
 

 ♣ 도로변 아파트 소음

  큰길이나 고속도로변에 있는 아파트는 아래층이 시끄러울까, 아니면 고층이 더 시끄러울까? 그것은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 소음의 정도가 밤낮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소리는 공기를 통해 전달된다. 공기의 밀도가 높을 수록 소리는 잘 전달된다. 낮에는 더운 공기가 밑에 있다. 더운 공기는 팽창하므로 밀도가 낮다. 상대적으로 위에 있는 공기는 차고 밀도도 높다.

따라서 소음을 포함한 소리는 낮 동안에는 위쪽에서 더 잘 전달된다. 고층이 시끄럽다는 얘기다. 새벽에는 반대가 된다. 위가 덥고 아래가 차가워져 아래쪽에서 소리가 더 잘 전달된다. 새벽에 취객이 떠드는 소리가 멀리 가는 것은 그런 이치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본뜻이 무엇이건 과학적으로도 일리가 있는 셈이다.

실제로 94년 환경부가 동대구역 부근 아파트에서 기차 소음 전달정도를 시험한 결과를 보면, 주간의 경우 1층 61.8㏈(데시벨), 5층 71.5㏈, 10층 72.9㏈로 위로 올라 갈수록 소음이 심했다. 15층은 71.7㏈로 다시 떨어졌지만, 그것은 소음원으로부터의 거리가 일정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같은 아파트를 밤에 조사한 결과 5층은 72㏈로 낮과 별 차이가 없었으나, 10층의 소음도는 69.3㏈로 눈에 띄게 감소했다.

고속도로변에 세우는 방음벽은 소음원과 방음벽 꼭대기를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선의 아래쪽 범위에만 효과가 있다. 소리가 거의 직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란다에서 내려다볼 때 방음벽 너머의 자동차들이 보인다면, 방음벽의 소음 차단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얘기가 된다.
 

 ♣ 시간 여행 모순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를 볼 때 당혹스러운 것은 과거나 미래로 날아간 주인공이 또다른 자신 혹은 주변사람들을 만나는 장면이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이 가능할까?

'그래니 파라독스'라는 것이 있다. '할머니(granny)의 모순'이다.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처녀 시절의 할머니를 만난다. 나와 함께 등산을 간 '할머니'가 실수로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나의 아버지는 세상에 나올 수 없고 나도 같은 운명이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할머니의 사고 현장에 서 있다.

미래여행도 마찬가지다. 1주일 후로 가서 TV를 보니 어떤 사람이 복권에 당첨돼 웃고 있다. 현재로 돌아와 내가 그 번호를 산다. 1주일 후 이번엔 내가 TV에 나가 축하인사를 받는다. 미리 봤던 미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이 파라독스를 설명하는 가설은 크게 두 가지다. 첫번째는 시간여행자가 과거나 미래를 볼 수는 있지만 개입할 수 없다는 가설이다.

두번째는 '여러 세계' 이론이다. 1957년 프린스턴 출신 물리학자 휴 에버레트가 양자물리를 바탕으로 처음 제기한 가설로, 지지자가 많다. 이는 우주가 매 순간 관찰자의 선택에 따라 무한한 수의 복사 세계로 갈라진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관찰자는 항상 하나의 사건만을 본다. 그래니 파라독스의 할머니는 한 세계에서는 죽지만, 또다른 오리지널 세계에서는 살아있다. 두 세계는 영원히 따로 진행된다.

이 가설이 참인지 아닌지는 증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이 이론을 알고 타임머신 영화를 보면 혼란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이다.
 

 총 맞으면 바로 죽나?

  요즘 영화들은 숱하게 사람을 죽인다. 총으로 쏴서도 죽이고 칼로 찔러서도 죽인다. 주인공은 여러 발 맞고도 끈질기게 할 말 다하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그 즉시 쓰러져 숨이 넘어간다. 실제로도 그럴까? 총상의 치명성은 총알의 크기, 속도, 맞는 부위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속도다. 운동에너지(즉 파괴력)는 질량에 비례하고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알이 작고 속도가 느린 권총으로 사람을 즉사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총알이 중요 동맥이나 뇌를 직접 손상시킬 경우는 빨리 죽을 수 있지만, 그 경우에도 숨을 거두기까지는 최소한 몇분이 소요된다.

일반적으로 총상이 사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출혈과 뇌손상, 혹은 오염균에 의한 조직 괴사 때문이다. 복부에 상처를 입었을 때에는 내장에서 새어 나오는 배설물에 의한 감염이 사망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자동소총 실탄을 비롯, 구경이 크거나 속도가 빠른 총알들은 이런 일반적인 경과를 거치지 않고 즉사를 유발할 수 있다. 그것은 강력한 회전이 걸린 이 총알들이 저격부위를 말 그대로 '짓뭉갬'으로써 일어난다.

그밖에 유체역학적인 쇼크가 죽음을 야기하는 수도 있다. 인체는 주로 물로 구성돼있기 때문에, 전체를 일종의 수압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인체의 어느 한 부분에 고속으로 날아온 총알의 충격이 가해지면, 이 충격이 마치 수압기처럼 순식간에 온몸으로 전달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광범위한 인체 조직이 타격을 입고 신경전달 기능에 장애가 일어나게 된다. 팔이나 다리에 입은 총상이 간혹 치명적이 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물론 이외에도 많은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영화의 총격 장면은 현실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 달걀세우기

  콜럼버스는 신대륙 발견이 별 것 아니라고 비웃는 사람들에게 "달걀을 세워보라"고 역공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흔들자, 그는 달걀 한쪽을 깨뜨려 탁자에 세우고 나서, "모든 것은 시작이 어려운 법"이라고 훈계했다. 콜럼버스는 깨뜨리지 않은 달걀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달걀 세우기는 노력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달걀을 세울 수 있는 것은 1년중 단 하루 춘분날 뿐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춘분에는 태양이 적도를 지나고 지구의 중력도 고르게 분포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그럴듯한 설명을 곁들이기도 한다. 실제로 춘분이 되면 세계 여기 저기서 달걀 세우기 행사가 열린다. 알래스카대학의 켄 그레이 예술학과장은 1985년 춘분날 동료 20명과 함께 무려 170개의 달걀을 세우는 이벤트를 벌였다. 달걀은 모두 싱싱했고 어미닭도 여러 종류였다.

그러나 달걀 세우기가 춘분에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러 실험들이 이뤄졌지만, 춘분이 아니라도 달걀은 잘 섰다. 달걀을 세우는 데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은근과 끈기 뿐이다. 균형을 최대한 잘 잡은 뒤 살며시 손을 떼면 된다. 달걀에 따라서는 비교적 쉽게 서는 것도 있고, 며칠씩 걸리는 것도 있다. 잘 안되는 것은 일찍 포기하는 게 좋다. 일종의 속임수지만, 달걀을 세게 흔들어주면 더 쉽게 세울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노른자를 중심에 고정시키는 알끈이 끊어져 노른자가 아래쪽으로 처지기 때문에 균형 잡기가 용이해진다.
 

 ♣ 녹음 내 목소리 왜 낯설지?

  녹음기에서 나오는 자기 목소리를 처음 듣는 사람은 백이면 백 "내 목소리가 아니다"고 부인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음성이 이렇게 형편없단 말야?" 하고 실망한다. 그러나 그것이 남들이 듣는 객관적인 자 신의 목소리다. 왜 그런 차이가 생길까.

음성은 성대의 진동에 의해 만들어진다. 성대가 진동하면 그 일부는 입밖으로 나와 공기를 통해서 전파된다. 이것이 타인이 듣는 목소리다.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되는 음성도 마찬가지다.

성대 진동의 또 다른 일부는 본인의 두개골과 속귀(내이), 가운데귀 (중이)를 거쳐 고막에 직접 전달된다. 두개골의 단단한 뼈, 속귀에 차 있는 액체, 가운데 귀에 들어있는 공기가 진동을 전달하는 매질 역할을 한다.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 듣는 목소리는 이처럼 입 밖 공기를 통해 전달 되는 음성과 인체 내부를 통해 전달되는 음성이 혼합된 소리다. 뇌에 는 이목소리의 기억이 깊이 각인돼 있기 때문에, 녹음기를 통해 나오는 목소리를 들을 때에는 어색하고 낯선 느낌을 받는 게 당연한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녹음된 음성이 자기 본래 음성보다 높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 둘의 차이를 일률적인 패턴으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음향의 충실도(Fidelity) 만큼은 인체 내부를 통해 전달되는 음성이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음성보다 우수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녹음기에서 나오는 자기 목소리를 듣는 것은, 평소 익숙해있는 심포니를 성능이 나쁜 라디오로 듣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 익사

  물에 빠졌을 때 세번째 가라앉으면 죽는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 장면을 진짜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익사 전에 몇번 오르락 내리락 하느냐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가령 전체 익사자의 25% 이상은 술에 취한 사람들인데, 이들은 대개 몸부림도 치지 않고 한번에 깊숙히 가라앉는다. 대부분의 익사가 비슷한 단계를 거쳐 진행되는 것은 사실이다.

①공황 상태에서의 격렬한 저항 ②헤엄을 치려는 시도 ③질식 또는 호흡정지(이 단계에서 많은 물을 삼킨다) ④구토, 헐떡거림, 물 들이킴(삼키는 것과는 다르다) ⑥경련, 그리고 죽음의 단계가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몇 차례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할 수는 있으나, 세번째 가라앉으면 마지막이라는 말은 일률적으로 할 수 없다. 또 익사자의 10% 가량은 물속에서 전혀 호흡을 하지 않고 물도 들이키지 않은 채 후두가 경직되면서 사망하기도 한다.

같은 익사라도 민물과 바닷물의 메커니즘은 크게 다르다. 민물에 빠졌을 때에는 허파로 들어온 물이 빠르게 허파를 빠져나와 혈액으로 흡수된다. 이때 물이 허파꽈리의 표면활성제를 씻어내 쪼그라뜨리고, 그 결과 산소가 혈액으로 공급되지 못해 목숨을 잃게 된다. 바닷물은 반대로 혈액의 혈장을 허파쪽으로 빨아들임으로써 허파꽈리의 활동을 방해해 생명을 빼앗는다.

익사 직전에 구조된 사람 중엔 조직의 산소부족상태(저산소증)가 가시지 않고 며칠 또는 몇주씩 지속되는 사례가 있다. 이런 저산소증은 바닷물로 인한 경우가 민물보다 해롭고, 치료도 더 어렵다. 따라서 같은 사고라도 바닷물에 빠지는 것이 민물에 빠지는 것 보다 더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 나의 30대 조상은 10억명?

  한번 생각해 보자. 누구나 2명의 부모, 4명의 조부모, 8명의 증조 부모, 16명의 고조부모 가 있다. 물론 친가와 외가를 합친 숫자다. 이렇게 계산해 올라가면 30대 선조만 돼도 이론적으로 조상의 숫자는 10억7374만1824명에 이른다. 다시 31대는 이 숫자의 2배, 32대는 31 대의 또 2배 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인류가 지구에 처음 나타날때 그 숫자가 극소수(가령 아담과 이브)였음을 알고 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모순이 생기는 것일까.

원인은 '근친 결혼'에 있다. 어느 가족이나 가계도를 그려 올라가 다 보면 중간 중간에 중복되는 조상이 나타난다. 극단적인 예로, 갑과 을이 결혼해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다고 하자. 이 아들 딸이 성년이 돼 자기네끼리 결혼해 다시 아이 하나를 낳았다고 가정하자. 이

아이는 이론상으로는 4명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어야 하지만, 실은 2명 밖에 없다. 아버지의 부모(즉 친조부모)와 어머니의 부모(외조부 모)가 동일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아닐지라도, 과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친혼이 많았다. 사촌끼리의 결혼이 가장 흔했다. 스페인의 알폰소 8세는 왕족끼리의 근친결혼으로 인해 고조부모가 16명이 아니라 10명 뿐이었다. 이런 까닭에 모든 가계도는 역피라미드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모양이 된다.

조상 숫자가 처음엔 기하급수로 늘어나지만 올라갈수록 점차 증가 속도가 느려지고, 어느 시점엔가 증가를 멈춘뒤 그때 부턴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가계 붕괴'라 한다. 따라서 많은 유전학자들은 현재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추적해보면 서로 먼 친척간(50번째 사촌쯤?)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 달에서 정말로 만리장성 보일까?

 [중국 만리장성은 달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지구의 유일한 인공 구조물]이라는 얘기를 혹시 지금도 믿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거짓말에 속아 산 세월을 한탄할 일이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38만4400㎞다. 달에서 보이는 지구는 우리가 보는 달보다 지름이 3.7배쯤 큰 둥그런 공이다. 알렌 빈이라는 우주 비행사가 써놓은 지구 감상기에 따르면 "지구는 대부분 하얗고(구름), 일부는 푸르며(바다), 군데 군데 노란 덩어리가 있고(사막), 또 얼마간은 초록색(산야)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구"일 뿐이다.

그는 덧붙여 "육안으로는 지구의 어떤 인공구조물도 볼 수 없다"고 썼다. 과학적으로 계산하면, 이 거리에서 최고의 시력을 가진 사람이 식별할 수 있는 이상적인 한계는 새하얀 배경에 두께 700 이상으로 선명하게 그려놓은 검은 직선 정도다. 만리장성의 폭은 4 에서 기껏해야 12 를 넘지 않는다.

사실, 만리장성은 달은 고사하고 지구로부터 몇천㎞만 멀어져도 보이지 않는다. 만리장성이 보일 정도의 상공이라면 만리장성 뿐 아니라 고속도로, 철도, 운하 같은 다른 인공구조물도 모두 관측할 수 있다.

그런데도 도대체 어디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NASA(미항공우주국) 관계자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이 질문을 해대는 통에 골치가 아플 지경이라고 한다. 아마도 우주여행 초창기에 우주비행사중 누군가 식사 자리에서 허풍을 떤 것이 와전된 것이 아닐까, NASA 사람들은 추측하고 있다.
 

 ♣ 개의 1년은 사람의 7년?

  개의 나이 1년은 사람의 7년과 같다는 설이 있다. 사실일까. 개는 사람과 무척 가까운 동물이면서 늙기는 매우 빨리 늙는다. 그래 서 사람들은 개의 나이를 인간의 나이로 환산해보려는 시도를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 결과 그럴듯한 공식들이 여럿 만들어졌다. 개의 1년을 사람의 7년과 동일하게 보는 계산법도 그중 하나다. 이 공식은 처음 나왔을 땐 상당한 호응을 받았지만, 개의 나이가 많아지면 적용하기 어려운 약 점이 있어 요즘은 별로 인용되지 않는다.

동물학자들 사이에 가장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공식은 '21+ 4n'이다. 즉 태어난 첫 1년을 인간의 21년과 같게 놓고, 그 다음부터는 한해에 4년씩 더해주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10살짜리 개는 사람으로 치 면 21+(9 4)=57살이 된다.

이 계산법은 잘 알려진 개의 일생과 매우 그럴듯하게 들어맞는다. 개 는 6∼7살이면 중년으로 치는데, 이 공식으로 환산하면 사람 나이 41∼45 살과 맞먹는다. 또 대부분 개의 평균수명인 12∼15살은 61∼77살로 환산 할 수 있어 우리 통념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드물지만 20살까지 장수하는 개는 사람나이 97살인 셈이니, 그만하면 '천수'를 누렸다고 축복해 줘도 별로 어색할 게 없다.

만약 종래의 계산법대로 '1년=7년' 공식을 쓰면 20살 개는 140살 노인 과 같다는 얘기가 돼 납득하기 어려워진다. 세계 최장수 개로 알려진 '블루이'라는 호주의 양치기 개는 죽을 때 나이가 29살이었는데, 이 계산법을 쓰면 무려 사람나이 203살을 살았다는 믿기 힘든 결과가 나온다.
 

 ♣ 나방은 왜 등불에 달려들까

  나방은 왜 불빛을 보면 달려들까. 등불이 있으면 그 주위를 자꾸 맴도는 이유는 뭘까.

나방은 야행성 곤충이다. 낮에는 자고 밤에만 활동한다. 먹이 찾기나 번식도 모두 밤에 한다. 어두운 밤에 움직이기 위해선 뭔가 나침반이나 지도 역할을 해줄 것이 필요하다. 나방은 수백년에 걸친 진화 끝에 하늘에 떠있는 별 들, 특히 달빛을 나침반 대용으로 이용할 줄 알게 됐다. 달빛을 기준으로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목표물을 찾아 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인공 조명을 발명하면서 나방들은 헷갈리게 됐다. 특히 달빛과 비슷한 은은한 등불이 근처에 있으면 나방의 착각 은 더욱 심해진다. 나방은 등불을 기준으로 삼아 날아갈 방향을 탐색하게 된다. 특정한 광원과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비행하는 방법은 광원을 중심으로 선회하는 것 밖에 없다. 나방은 점점 작아지는 동심원을 그리며 광원을 향해 맴돌아 들어가다 결국 전구에 부딪히거나 타 죽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달빛 보다 훨씬 밝은 조명 주변에도 나방이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곤충학자들 가운데는 나방이 이를 낮으로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이 많다. 잠을 자야 할 시간으로 알고 자꾸 밝은 등불에 내려 앉으려 한다는 것이다.
 

 ♣ `검은 돈'의 천국 스위스 은행

  '스위스은행 계좌'라고 하면 매우 비밀스런 냄새를 풍기지만, 과장된 측면이 있다. 스위스의 은행들은 이름과 번호로 돼있는 일반 계좌와 달리 번호로만 거래하는 계좌를 따로 운영한다. 이른바 '비밀계좌'는 이런 번호계좌에 붙여진 별명이다.

'번호계좌'는 조회와 거래를 모두 번호로만 한다. 은행 내 장부 작성도 번호로만 이뤄진다. 그러나 은행은 이 계좌 주인의 신원 기록을 갖고 있다. 어떤 고객이 애초부터 자기 이름을 숨기고 익명으로 예금할 수는 없다. 단지 이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이 극히 제한돼 있을 뿐이다.

스위스 은행들이 유명한 것은 번호계좌 때문만은 아니다. 스위스 법은 일반계좌를 포함한 모든 은행계좌에 대한 정보 누출을 금지하고 있다. 심지어 '아무개의 계좌가 있느냐 없느냐' 같은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언급도 불법으로 돼있다.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 한 길은 스위스 법원의 명령을 받아내는 것 뿐이다. 실제로 지난 82 년 로마에서 불법자금 유치 혐의로 체포된 한 스위스 은행원은 예금주의 신원을 알려주고 석방됐지만, 고국에 돌아와서는 5만프랑의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나 스위스 은행이 검은 돈의 온상이라는 악명이 높아지자 계좌 개설 절차도 많이 까다로워졌다. 번호계좌를 열려면 반드시 본인 이 은행에 가서, 신원증명을 하고, 번호계좌를 만들어야 하는 합법적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 바다는 왜 파랄까?

  바다는 파랗다. 그렇지만 그릇에 떠놓고 보면 바닷물도 강물이나 수돗물과 다름없이 맑다. 왜 바닷물은 파랗게 보일까. 하늘이 반사 돼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흐린 날에도 바다는 여전히 파랗다.

태양광선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빨강에서 보라까지 여러 단색광 들이 나타난다. 우리 눈에 비치는 모든 물체의 색깔은 그 물체가 태양광선의 어느 빛을 흡수하고 어느 빛을 반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모든 빛을 다 흡수하는 물체는 검은 색, 모두 반사하는 물체는 흰색으로 보인다.

태양광선이 맑은 물에 부딪치면 먼저 적색광과 적외선부터 흡수되기 시작한다. 열길 물속(약 18m)까지 내려가면 적색광은 완전히 흡수돼 사라져버린다. 반면 청색광은 흡수 속도가 가장 느리다. 청색광은 물밑을 관통해 들어가면서 극히 일부만 흡수되고 나머지는 물분자에 부딪쳐 사방으로 반사된다(이를 산란이라고 한다). 이 산란된 빛이 다시 물을 뚫고 밖으로 나와 바다가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 컵에 따라놓은 물은 왜 파랗게 보이지 않는 것일까. '청색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물 깊이가 최소 3m는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다가 아니라도 깊은 호수나 강은 파랗게 보일 수 있다.

바다가 늘 파란 것 만은 아니다. 그 중에는 녹색이나 적색으로 보이는 곳도 있다. 이것은 태양광선의 흡수나 반사에 따른 광학적 효과가 아니라, 바닷물에 섞여있는 유기물, 해조류, 부유물 등 때문이다. 노란색 계통의 이물질이 많이 섞여있는 바다는 파란빛에 노란색이 합쳐져 녹색으로 보인다. 적색바다는 해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데, 주로 물 표면 가까이 떠있는 조류나 플랑크톤 탓이다.

 

 ♣ 뉴욕 밤거리에 솟아오르는 김

  뉴욕 밤거리가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화면이 있다. 맨홀에서 뜨거운 김이 솟아오르는 장면이다. 특히 공포영화나 갱 영화, 음울한 미래 SF영화에는 단골로 나와 관객을 긴장시키는 게 이 이상한 뉴욕 밤거리다.

맨홀에서 나오는 김의 정체는 도시 지하를 흐르는 난방용 스팀이다. 뉴욕시의 전기, 천연가스, 스팀은 100년 넘게 '콘 에디슨' (Consolidated Edison)이라는 회사가 대부분 공급하고 있다. 자산 150억달러의 이 회사는 뉴욕시 전역의 전기, 맨하탄과 브롱스 지역 의 천연가스, 맨하탄의 스팀 서비스를 거의 전담하고 있다.

이래서 뉴욕의 가장 번화한 맨하탄 지역의 땅 밑에는 콘 에디슨이 배설한 스팀 파이프가 이리 저리 얽혀있다. 줄잡아 맨하탄의 2000 개 대형 빌딩과 사업장이 이 스팀을 공급받아 난방을 해결한다. 그런데 파이프가 오래되다 보니 곳곳에서 균열이 생겨 스팀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파이프에서 누출된 스팀들은 지하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 이리 저리 헤매이다 결국 맨홀을 통해 지상으로 분출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파이프 균열 정도가 심해 스팀이 너무 자욱하게 새나오는 바람에 지상의 자동차들이 통행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콘 에디슨은 이런 때에는 맨홀에 기다란 원통을 세워 김을 공중으로 뽑아내기도 한다.

물론 맨하탄 거리의 맨홀에서 나오는 김이 전부 콘 에디슨의 스팀 파이프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도로 지하 공간에는 때로 과도한 습기가 들어차는 수가 있다. 수도관에 금이 가 물이 새거나 비가 많이 내릴 때, 하수관이 터졌을 때 등이 다. 이 습기들이 뜨거운 스팀 파이프의 열을 받으면 수증기로 변하고, 역시 맨홀을 통해 맨하탄 거리 위로 솟아오르는 것이다.


 ♣ 비행기도 더위 탄다?

  한여름 공항 활주로 노면은 뜨거운 지면 반사 때문에 주변보다 5∼10 도 온도가 높다. 높은 기온은 공기 밀도를 낮춰 비행기 이륙에 필요한 양력을 떨어뜨린다. 이 때문에 비행기는 충분한 양력을 얻기 위해 활주 로를 더 달려야 한다. 점보기의 경우 평소에는 1500∼1700m의 활주로를 달리면 되지만, 섭씨 40도에 가까운 날씨에는 3000m 이상을 달려야 된다. 이에 따라 이륙 에 필요한 연료도 평소의 2배 이상을 소모하게 된다.

비행기 이륙 중량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물을 덜 싣게 된다. 30도 이상의 날씨에서는 기온이 2도 상승할 때마다 화물 탑재량을 2.5∼3t씩 감량한다. 결국 항공사의 수입이 그만큼 줄게 되는 것이다. 비행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에는 맞바람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날개를 위로 밀어올리는 힘, 즉 양력이 날개에 부딪치는 공기의 흐름이 빠를 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김포공항의 활주로는 북서-남동 방향으로 나있다. 북서풍이 주로 부는 겨울철에는 비행기 조종사들이 북서쪽(강화도 방향), 여름철에는 남동쪽(관악산 방향)을 바라보며 뜨고 내린다. 대한항공 윤종근기장은 정상적인 조건에서 747 점보여객기가 이륙하기 위해서는 대략 6000피트(약 1800m) 정도의 활주로가 필요하지만, 뒷 바람이 불면 바람 1노트당 140피트(약 40m)씩 활주 거리를 늘려 계산한 다고 말했다. 1노트는 시간당 1해리(1852m)를 움직이는 속도다.

기술적으로 이착륙에 가장 어려운 것은 옆바람이다. 30노트 이상의 옆바람이 불면 이착륙이 금지된다. 조종사들은 착륙할 때 옆바람이 불면 기수를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틀어 마치 게걸음을 하듯 옆으로 비스듬히 내리는 고난도의 기술을 구사한다.


 ♣ 인체의 신비

손톱은 잘 쓰는 쪽이 빨리 자란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손 손톱이 더 빨리 자란다는 얘기다. 다섯 개 손가락 중에서는 가운데 손가 락 손톱의 성장속도가 으뜸이다. 손톱과 머리카락은 사람이 죽은 후에도 자란다는 얘기가 사실일까? 물론 아니다. 손톱이나 머리카락은 그 자체가 생명이 없는 '케라틴' 조직이다. 피부에서 매일 떨어져 나가는 마른 피부조각과 비슷하다.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살아있는 부분은 쪼그라들지만 손톱이나 머리카락은 그대로 있기 때문에 마치 자란 것처럼 착각을 일으 킬 수는 있다.

보통사람의 피부를 몽땅 벗겨 모으면 무게가 2.8㎏ 쯤 된다. 피부이식은 본인, 또는 일란성 쌍둥이의 것만 가능하기 때문에, 젊고 팽팽한 피부를 옮겨 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공상은 부질없는 짓이다. 나이가 들면 변하는 것이 많다. 고음을 듣는 능력이 줄어들고, 미각도 떨어진다. 잠이 줄어 어린이는 8∼9시간 자야 하지만, 어른은 4∼6시간으로 견딜 수 있다.

인체의 신비한 구석은 이밖에도 많다. 우주 비행사들이 무중력 상태에 오래 있으면 뼈의 무게와 두께가 줄어든다. 임신중에는 자궁이 평상시의 500배까지 팽창하고, 생리중에는 여성의 가운데 손가락 감각이 무디어진다. 성행위에 소모되는 에너지는 2개층 계단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남자는 10대후반∼20대초반에 최고의 성적 파워에 도달하고, 여자는 20대후반∼30대 초반에 최고에 달해 60대 초반까지도 그 수준을 유지한다. 20%의 수분을 잃으면 우리는 고통스런 죽음을 당한다. 평균적인 사람은 1주일반까지 물 없이 견딜 수 없다. 그것이 한계다. 최고 기록은 11일이다.
 

 ♣ 인체의 신비 - 눈

 미소를 짓는 데에는 17개의 근육이, 찡그리는 데에는 43개의 근 육이 필요하다. '일소일소 일노일로'라는 격언에 과학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이처럼 인체에는 모르고 지나치는 신기한 사실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먼저 눈. 눈은 무척 예민해서, 달이 없는 맑은 날 밤 산꼭대기 에 있는 사람은 80㎞ 밖에서 켜는 성냥불을 볼 수 있다. 동시에 일어나는 100만개 이상의 시각적 인상을 감지할 수 있고, 800만 종류 이상의 색상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

어두운 곳에 들어가 완전히 적응하는 데까지는 한시간이 걸린다 그렇지만 한번 적응하면 밝은 햇빛 아래 있을 때보다 10만배나 예민해진다. 매몰 사고때 구조반이 생존자의 눈에 안대부터 하는 것 은 어둠 속에서 예민해진 눈에 갑자기 빛이 들어갈 경우 시신경을 크게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처럼 푸른 눈이 빛에 더 예민하고, 동양인의 진한 갈색 눈이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보통 사람들의 평균 시야는 180도다. 책을 읽을 때 글자를 연속 적으로 쫓아가며 읽을 수는 없다. 눈동자는 단어 묶음 별로 점프하면서 움직이게 돼있다. 즐거운 장면을 볼 때에는 동공이 45%까지 확대된다. 동공은 또 조그만 소음에도 반사적으로 확대된다. 수술하는 의사, 시계 만드는 사람, 세밀한 수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소음에 신경질을 내는 것은, 소음이 동공을 확대시켜 순간적으로 시각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재채기를 하면 눈알이 튀어나온다는 말은 사실일까?. 재채기의 속도가 시속 160㎞에 달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럴 듯 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실험해본 과학자는 없다. 그러나 재채기를 할 때에는 본능적인 반사작용으로 반드시 눈이 감기게 돼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인체의 신비 - 뇌, 심장

 뇌는 무거운 것 같아도 전체 체중의 2% 밖에 안된다. 그러면서도 인체가 필요로 하는 산소의 25%를 소비한다. 뇌를 둘러싸고 있는 두개골은 단단하지만, 정작 뇌 자체 성분의 80%는 물이다. 피(78%)보다 더 묽은 것이다. 뇌는 고통에 둔감하다. 두통은 뇌에서 오는 게 아니라 뇌를 연결하고 있는 신경과 근육에서 비롯된다. 머리가 크다고 지능이 높은 것은 아니다. 최초의 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의 뇌 용량은 현대인보다 100㏄ 쯤 더 컸다.

인체의 혈관 총 길이는 11만2000㎞에 달한다. 심장은 이 미로에 매분 한번씩 피를 펌프질해 보내고 다시 돌려받는다. 이를 위해 평균인의 심장은 하루 10만번 뛴다. 72년을 산다고 하면 25억번 이상을 박동한다는 계산이다. 여자의 심장은 남자보다 더 빨리 뛴다. 지구상에서 혈액의 구성성분과 가장 가까운 액체는 바닷물이다. 혈액형 가운데는 O형이 가장 많고, AB형이 가장 드물다.

인체에는 30조개의 적혈구가 있다. 무슨 이유에서건 일산화탄소를 몇번 들이마시면, 적혈구속 헤모글로빈의 절반 이상이 일산화탄소와 결합하고 나머지 절반만 산소를 나르게 된다. 이것은 적혈구 절반을 갑자기 상실하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입술이 붉은 것은 피부 바로 아래 미세한 모세혈관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보통땐 산소가 많아 붉은 색을 띠지만, 피를 많이 흘리거나 빈혈인 사람은 산소가 모자라 입술이 창백해진다. 견딜만 하다 싶은 정도의 햇볕도 곧잘 피부 아래 혈관을 손상시킨다. 혈관은 한번 손상되면 다시 회복되는데 4∼15개월이 걸린다.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 예를 들어 안데스 산맥에 사는 인디언들은 평지 사람보다 2∼3.5 의 피가 더 있다.
 

 ♣ 인체의 신비 - 위의 기능

한참을 토하거나 공복으로 속이 쓰릴 때 입으로 쓴 물이 올라올 때 가 있다. 위에서 분비되는 위액이 역류해 올라오는 것이다.

위액의 주성분은 염산과 효소다. 산성이 PH1∼1.5로 금속을 녹일 수 있을 만큼 엄청나게 강하다. 이 강한 산성으로 음식물을 분해해서 죽처럼 만드는 일차 소화작용을 하고, 세균이 십이지장으로 옮겨가는 것을 막는 살균작용도 한다. 이런 위액이 식사를 한번 할 때마다 500㎖ 씩, 하루 1.5∼2.5 가량 나온다. 배가 출렁거릴 정도로 많은 양이다. 이처럼 독한 위액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 위 자체는 어떻게 해서 멀쩡할 수 있을까? 위액은 왜 위벽을 다른 음식물처럼 소화해버리지 않을까?.

위벽에서는 위액 뿐 아니라 끈적끈적한 점액이 함께 분비된다. 점액은 위액과 반대로 강한 알칼리성을 띠고 있다. 이 알칼리성이 위액 의 산성을 중화해주는 까닭에 위가 무사한 것이다. 아울러 점액은 딱 딱한 음식물이나 이물질이 들어왔을 때 위벽이 상처를 입는 것을 막아 주는 역할도 한다.

만약 과음 과식을 한다든지 지나친 스트레스가 쌓이면 위벽을 흐르는 피의 흐름이 나빠진다. 그러면 점액을 분비하는 세포들은 산소 결핍으로 '질식'상태에 빠지고, 그 결과 점액 분비활동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위액을 중화해야 할 점액이 제 할일을 하지 못하면, 그때부터 위액은 위벽을 침범해 소화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위궤양이다.
 

 ♣ "가볍다" "무겁다" 투수 구질 차

이는 야구 중계방송에서 해설자가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저 투수는 스피드는 좋은데 공이 가벼워서 홈런을 자주 맞습니다", 혹은 "저 선수 는 강속구 투수는 아니지만 공이 무거워 큰 걸 좀처럼 안 내줘요" . 야구공 무게가 저마다 다를 리 없는데 왜 그런 표현을 하는 걸까. 구질의 가볍고 무거움은 공의 회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공에 회전이 많이 걸리면 그만큼 장타를 맞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면 된다.

투수가 던지는 직구에는 보통 공의 아래에서 위쪽으로 백스핀(역회전)이 걸린다. 백스핀이 걸린 공을 타자가 배트의 중심보다 약간 위쪽 부위로 정확하게 받아치면, 공은 반대방향으로 다시 강력한 백 스핀을 먹게 된다. 강하게 뻗는 공에 백스핀까지 걸리면 공은 윗쪽으로 솟구치게 된다. 공의 윗 부분은 공기 흐름이 빨라지고 아래쪽은 느려짐으로써, 공을 아래에서 위로 밀어올리는 양력이 생기는 것이다.

비행기 날개 윗면이 아래보다 둥근 탓에 공기 흐름이 빨라져 비행기가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무거운 공은 그 반대다. 공에 회전이 적거나 거의 없으면 양력을 그만큼 덜 받게 되고, 타자가 힘껏 때려도 땅볼이 되거나 멀리 뻗지 못하게 된다. 정통 직구를 구사하는 박찬호의 공은 비교적 가벼운 편에 속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구질이 가벼우냐 무거우냐는 투수의 체격, 공을 잡는 방법(그립) 등에 크게 좌우된다. 야구 해설가 김소식씨에 따르면 손가락 길이와 도 적지 않은 관련이 있다. 손가락이 짧으면 아무래도 공의 회전을 죽이거나 살리는 컨트롤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거운 공을 던지기 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할 수 있다. 그밖에 선천적인 요인도 상당히 작용하며, 한 투수가 가벼운 공과 무거운 공을 함께 구사하기란 사실 상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비행기는 지상에서 후진 못하나?

 비행기는 지상에서 자력으로 후진을 못한다고 한다. 사실일까. 비행기는 자동차와 달리 엔진의 힘을 바퀴로 전달하는 장치가 없다. 엔진에서 내뿜는 배기가스의 반작용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따라서 자동차처럼 [후진기어]를 넣어 진행방향을 바꿀 수가 없다.

그렇지만 실제로 공항에 가보면 비행기들이 활주로로 나가기 위해 후진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그건 비행기가 자체 엔진의 힘으로 후진하는 것이 아니라, 토잉카(견인차)가 쇠밧줄을 걸어 끌어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행기가 자력으로 후진하는 게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 엔진에서 분출되는 배기가스의 방향을 반대로 바꿔주면 가능하다. 이를 "역추진"이라고 한다. 역추진이라 해서 엔진을 거꾸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 뒤로 내뿜는 공기를 중간에서 차단, 엔진 몸체의 덮개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 앞 방향으로 흐르게 하면 된다.

이런 기능이 있는데도 비행기가 지상에서 자력으로 후진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게가 수백t에 달하는 항공기를 역추진만으로 움직일 경우 엔진에 엄청난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역추진은 그보다는 착륙할 때 속도를 줄이기 위한 브레이크 용도로 유용하게 쓰인다. 착륙할 때 엔진 쪽에서 들리는 "화-악"하는 강한 바람소리가 바로 역추진 때문에 생기는 소리다.
 

 ♣ 하늘에서 떨어지는 총알에 맞으면  

공중에 위협사격한 총알, 오발돼 하늘로 날아간 실탄은 언젠가 다시 떨어진다. 낙하하는 총알은 땅에 다다를 쯤이면 엄청나게 가속될텐데, 여기에 맞으면 어찌될까?.

자유낙하하는 물체는 중력 때문에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 지상 200m 에서 떨어지는 물체가 지표에 닿을 때 속도는 초속 63m가 된다. 그러나 이는 진공 속에서 낙하할 때 얘기다. 공기중에서는 마찰로 인한 저항을 받는다. 마찰력은 낙하속도에 비례해서 커지는데, 낙하속도가 점차 빨라져 공기의 마찰력이 중력과 같아지면 물체는 그때부터 더 이상 빨라지지 않고 등속운동을 하게 된다.

이를 '종단속도'(Terminal Velocity) 라고 한다. 빗방울의 경우 종단속도는 대략 초속 0.3m, 높은 곳에서 자유낙하하 는 농구공은 초속 20m다. 팔다리를 활짝 펴고 떨어지는 사람은 초속 60m, 낙하산을 펴면 초속 5m가 된다. 진공에서는 새털이나 쇠공이나 똑같이 떨어지지만, 현실 세계에선 이처럼 달라진다.

총알도 마찬가지다. 명지대 물리학과 전동렬교수가 M-16 자동소총의 경우를 계산했다. M-16 총탄의 탄두 무게는 10원짜리 동전과 비슷한 약 4g.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발사했을 때 탄두가 총구를 떠나는 속도는 초속 700m 쯤이다. 공기 마찰이 없다면 24㎞까지 상승할 수 있지만, 실 제로는 500∼1,000m 정도에서 자유낙하를 시작한다. 총알은 점점 가속 되다가 100m쯤 내려오면 종단속도인 초속 45m에 도달하고, 이후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

이렇게 되면 발사당시의 운동에너지는 대부분 상실돼 불과 0.4% 정 도만 남게 된다. 아울러 총구를 떠날때의 강력한 자전도 없어지기 때문 에, M-16 탄환의 살상력은 거의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 박찬호의 최고 구속이 초속 45m 정도이므로, 박찬호가 야구공 대신 4g짜리 쇠구슬을 힘껏 던지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물론 빠른 야구공을 머리에 맞으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듯, 총알을 맞는 신체 부위에 따라서는 생각 밖의 부상도 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 `레임 덕' 어원은?

클린턴 섹스 스캔들 이후 자주 거론되는 시사용어 중에 '레임 덕'이 있다. 보통 임기 말 대통령의 권력누수 현상을 일컫는 말로, 우리도 대통령 선거가 있을 즈음이면 흔히 쓰는 용어다. 레임 덕(lame duck)은 직역하면 '절름발이 오리' 쯤 된다. 왜 하필 이면 이런 비유를 쓰게 됐을까?.

레임 덕이란 용어는 18세기 런던 증권시장에서 처음 등장했다. 빚을 갚지못해 시장에서 제명된 증권거래원을 가리켜 레임 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불구자 또는 무능자가 됐음을 빗댄 조어였는데, 이 의미는 지금도 살아있다.

레임 덕은 19세기에 미국으로 건너가, 재선거에 낙선하고 남은 임기를 채우고 있는 의원 지사 대통령 등을 칭하는 용어가 됐다. 힘 빠진 정치인의 한심한 신세를 뒤뚱뒤뚱 걷는 오리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레 임 덕 빌(bill)' 같은 합성어도 생겼다. 낙선자가 제출한 법안, 즉 통 과될 가능성이 희박한 법안을 뜻하는 표현이다.

이런 풍자적 표현에 돼지나 펭귄 따위가 아니라 굳이 오리를 끌어들 인 것은 "이미 쓰러진 오리에 탄약을 낭비하지 말라"는 사냥꾼들의 '금 언'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낙선한 정치인도 총맞고 쓰러진 오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죽는 것은 아니다. 남은 임기동안 남이야 뭐라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정부 보조금을 타먹고, 정적을 괴롭히고, 자기를 떨어뜨린 선거구민들에게 될대로 되라식 '보 복성' 권한 행사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부작용이 심각해지자 미 국의회는 1933년 수정헌법 20조를 제정, 매2년 11월초에 뽑히는 새 의 원들이 종전처럼 이듬해 3월까지 기다리지 않고 새해 1월3일에 막바로 임기를 시작하도록 했다.
 

 ♣ 농구 공격시간 제한 24초의 유래는  

 프로농구가 한창이다. 농구 경기를 박진감있게 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공격 제한시간이다. 공격 시작 후 24초 이내에 슛을 하지 않으면 공격권을 빼앗기는 규칙이다. 이 룰을 고안해낸 주인공은 엉뚱하게도 농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문외한이었다.

 1953-1954 시즌, 미국프로농구(NBA)는 빈사상태였다. 관중은 줄고, 많은 팀이 파산 위기에 빠져있었다. 게임이 너무 재미없어서였다. 당시 NBA 팀들이 구사하는 전략은 단순했다. 게임을 리드하고 있을 때는 팀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가 자기 진영에서 끝없이 드리블을 하면 서 시간을 끌었다. 견디다못한 상대팀이 파울을 하면 자유투를 얻어 득점하곤 하는 식이었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1953-1954시즌 도중, 볼링장을 경영하던 대니 비아손이라는 사람이 시라큐스 내셔널스팀을 단돈 1,000달러에 인수했다. 시즌이 끝난 뒤 그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냈다. 공격시간에 제한을 두면 골이 더 많이 들어갈 것이고, 그러면 손님을 끌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이었다. 한 게임에 평균 120개의 슛이 나온다는 통계에 따라, 게임시간 48분(2,880초)을 120으로 나눴더니 간단하게 '제한시간 24초'라는 답이 나왔다.  

시범경기에 초대된 구단주들은 좋아서 껑충껑충 뛰었다. 이 룰은 1954-1955 시즌부터 바로 채택됐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평균득점이 14점이나 늘어났고, 관중도 급증했다. 스타의 유형도 변했다. 룰이 바뀌기전 스타플레이어는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의 조지 미칸이었다. 그러나 느리고 둔중한 조지 미칸의 플레이는 더이상 통하지 않았다. 평균득점 22점을 자랑하던 그는 1955- 1956 시즌 득점이 10점에 그치자 코트를 떠났다.

 비아손은 룰을 바꾼 첫해 시라큐스를 우승시켰다. 그리하여 24초 룰의 채택은 프로농구의 중흥을 이룬 전환점으로, 비아손은 NBA의 영화를 가능케한 역사적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 눈 많이 내리면 왜 다음해엔 풍년?

  올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적어 걱정들이 많다. 예로부터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이듬해 풍년이 든다고 한다. 과연 근거가 있는 말일까. 눈과 농작물 사이에는 상상하는 이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단순히 겨울 가뭄을 덜어주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눈은 물에 비해 매우 듬성듬성한 구조로 돼있다. 눈의 결정체들 사이 사이에 공기가 들어차 있다. 이 공기층은 단열재 구실을 한다. 두꺼운 옷을 하나 입는 것보다 얇은 옷 여러개를 껴입는 편이 따뜻한 이유는 옷 사이의 공기층이 열의 이동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눈은 마치 이불처럼 땅을 덮어줘 땅속의 온도 저하를 막아준다.

 눈에는 또 공중에서 흡수한 질소화합물이 많이 들어있다. 같은 부피의 물보다 5배쯤 되는 질소를 함유하고 있다. 이 질소화합물은 땅에 녹아 들어가 비료역할을 한다. 돈 안들이고 질소비료를 주는 셈이다.

 눈이 갖고 있는 또다른 중요한 역할은 구충(구충)작용이다. 눈은 이불처럼 땅을 따뜻하게 덮어주지만, 땅만 덕을 보는 게 아니다. 땅속에 살고 있는 온갖 해충들도 눈 덕분에 혹한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눈이 녹을 때가 되면 상황이 반전된다. 고체가 녹아 액체가 될때, 또 액체가 증발해서 기체가 될 때에는 주위에서 그에 필요한 열을 빼앗아간다. 눈이 녹아 증발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땅의 열을 빼앗아 온도를 급격히 떨어뜨린다. 땅밑에 살고 있던 해충들이 이때 한꺼번에 얼어죽는 것이다.


 주민번호 보면 고향 알수 있나?

 주민등록번호를 보면 고향을 알 수 있다고들 한다. 비슷하기는 하지만, 정확한 얘기는 아니다.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1이면 남 자, 2이면 여자라는것은 대개가 알고있는 상식이다. 하지만 이 역시 완전한 지식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75년부터 생년월일 6자리, 개인정보 7자리로 구성된 지금의 주민등록번호를 쓰기 시작했다. 뒷부분 7자리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가 들어있는지 알아보자.

 맨 앞 숫자는 성별을 나타낸다. 1은 남자, 2는 여자다. 그러나 이 구분은 내후년 출생자부터는 달라진다. 2000년 출생자부터는 남자는 3, 여자는 4를 부여받는다. 앞서 1800년대에 출생한 노인들의 성별코드는 남자 9, 여자0이었다.

 성별코드 다음 네개의 숫자는 지역코드다. 이것은 고향이 아니라 출생신고를 처음 한 지역을 뜻한다. 우리나라에는 3천7백여 개의 읍-면-동이 있는데, 이들 각각에 4자리로 된 지역코드가 붙어있다. 따라서 아버지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자식을 낳아 출생 신고를 했다면 두사람의 지역코드는 달라지게 된다.

 그 다음 한자리는 출생신고 당일, 그 출생신고가 해당 읍-면-동사무소에 몇 번째로 접수된 것인가를 나타낸다. 한 동네에서 하루 에 몇 사람씩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므로, 이 숫자는 1이나 2,커봐야 3을 넘지 않는 게 보통이다.

 마지막 숫자는 '검증번호'다. 생년월일을 포함한 앞 12개 숫자 모두를 특정한 공식에 대입해서 산출한다. 따라서 앞의 12자리 숫자가 차례로 정해지면, 마지막에 올 수 있는 번호는 딱 하나로 결정된다. 컴퓨터통신 ID를 만들면서 엉터리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할 경우 컴퓨터가 금방 '그런 번호는 없다'고 거부하는 것은, 이 마지막 번호가 공식에 안 맞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 여자옷 단추는 왜 왼쪽에 있나?

  남자옷은 단추가 오른쪽에 있고 여자옷은 그 반대다. 보통의 오른 손잡이에게는 단추가 오른쪽에 있는 것이 훨씬 채우기 편하다. 그런 데 여자옷은 왜 불편하게 단추위치가 반대로 됐을까.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몇 가지 유력한 설이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옛날 귀부인들이 대개 하녀 도움을 받아 옷을 입어버릇한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드레스나 블라우스 같은 의상을 갖출 수 있는 계층은 적어도 중산층 이상이었고, 그들은 대체로 하녀를 거느렸다. 하녀가 주인마님이나 아씨의 옷을 입혀줄 때, 단추 가 어느 쪽에 달려있는 것이 채우기 편했을 지는 자명하다. 왼손잡이 하녀는 예외였겠지만 .

 또 하나 개연성이 있는 설은 육아 관련설이다. 여성들은 아기를 안을 때 대부분 왼팔로 아기의 머리쪽을 받치고 오른팔로 다리를 감 싸 안는다. 이 자세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려면 단추가 왼쪽에 달려 있는 옷이 열기 편하다. 또 날이 춥거나 바람이 불 때에도, 단추가 왼쪽에 있어야 쉽게 옷자락을 세워 아기 얼굴을 덮어줄 수 있다. 첫 번째 설보다는 좀더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추론이다.

소수설로는 상업적인 관찰도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일부 유럽국가 들이 의류를 수입할때 남자옷과 여자옷에 차등을 두어 관세를 매겼는데, 수입업자들이 구별을 쉽게 하기 위해 생산업자에게 여자옷의 단 추방향을 바꿔달라고 주문했다는 설이다. 그랬을 법도 하지만, 그리 설득력있는 말은 아니다.


 ♣ 크리스마스를 왜 X-mas라 부를까

  크리스마스(Christmas)는 Christ(그리스도)와 Mass(미사)를 합친 말이다. [그리스도 예배]라는 의미다. 이 크리스마스를 X-mas라고 쓰기도 한다. X는 무슨 뜻일까. 또 [점잖은 사람은 가급적 이 표현을 쓰지 말라]고 하는 까닭은 뭘까.

 X-mas의 X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희랍어     < 희랍어 타우>  (크리스토스)의 머릿글자를 딴 것이다. 영어철자로 바꾸면 Christos다. 즉 X는 영어 알파벳이 아니고, 영어의 Ch에 해당하는 희랍어인 것이다. 따라서 X-mas는 [크리스마스]라고 읽어야지, [엑스 마스]라고 읽는 것은 난센스다.  

X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100년대 정도로 추정된다. 이후 지금까지 X는 그 자체가 그리스도를 뜻하는 글자로 통용되고 있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영어의 알파벳 X가 갖고 있는 여러가지 뜻이 [성스러움]과 거리가 멀다는 점도 한 이유다. 영어 X는 10달러 지폐, 미지수, 글을 모르는 사람들의 서명 대용, 연애편지 끝이나 겉봉투에 표시하는 키스 부호, 포르노 영화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성탄 세일을 알리는 백화점 플래카드 등 상업적인 용도 외에는 X-mas라는 표현이 점차 자취를 감춰가는 추세다. 미국의 대표적인 퀄리티 페이퍼 뉴욕타임스는 기사작성 교범(스타일북)에서 "불가피한 경우라 생각될 지라도 X-mas는 [절대] 쓰지 말라"고 가르친다.


 ♣ 왼손잡이 투수 `사우스 포' 유래

 아시안게임에서 박찬호가 보여줬듯, 야구 경기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역시 투수다. 투수와 관련된 아리송한 궁금증 몇가지.

 첫째, 타석에서 투수 마운드까지의 거리는 왜 60피트6인치(약 18.44m) 로 정했을까. 처음부터 이런 묘한 숫자는 아니었다. 19세기 중반 미국 에서 야구가 시작될 당시에는 알기 쉽게 45피트였다. 그러다 1881년엔 50피트로 늘어났다. 활발한 공격야구를 위한 조치였다. 이후 투수가 공 을 오버핸드로 던지는 것이 허용되자 강속구에 대한 대응이 다시 필요해졌다. 그에 따라 1893년 지금의 60피트6인치로 연장됐다. 간단하게 60 피트로 하지 않고 왜 번거롭게 6인치를 덧붙였는지 확실치 않으나, 애초 구장 설계도에 60피트0인치라고 써있었던 것을 시공자가 잘못 읽어 그렇게 됐다는 설이 꽤 유력하게 전해진다.

 둘째, 왼손잡이 투수를 사우스포(South Paw)라고 부르게 된 유래. 초창기 야구장은 타석에서 볼 때 투수 마운드가 동쪽이 되도록 하는 것이 관례였다. 오후 경기에서 타자가 투수로부터 날아오는 공을 잘 보려면 해를 등져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수는 서쪽을 보게 되고, 그 경우 왼손잡이 투수의 손은 자연히 남쪽을 향하는 까닭에 사우스포라 부르게 된것이다.  

셋째, 삼진(스트럭 아웃)의 약칭을 K로 쓰는 이유. 'Kill(죽이다)' 에서 오지 않았나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야구경기 기록에는 많은 약부호가 동원된다. 초창기 교범은 1, 2, 3루를 각각 A, B, C로 표기하고, 그 밖의 용어들은 영어 단어의 앞 글자 또는 뒷 글자를 따 쓰도록 했다. 홈베이스나 플라이아웃은 첫글자를 따서 H와 F로 표기했다. 땅볼은 Bound의D, 파울은 Foul의 L, 삼진은 Struck의 K 등 뒷글자를 썼다. 뒷글자를 쓰는 경우는 첫 글자가 같은 용어들 사이의 혼동을 피하 기 위해서였지만, 헷갈릴 염려가 없는 삼진의 약칭을 S로 하지 않고 굳이 K로 한 이유만은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다.


 ♣ 우주비행사 무중력훈련방법

   우주선 안을 둥둥 떠다니는 우주비행사의 모습은 동화속 환상처럼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위아래 개념도 없고 무게도 느낄 수 없는 우주공간에서 실제 활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우주비행사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 지상 기지에서 무중력에 대비한 충분한 훈련을 받는다.

그러면 무중력 훈련은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것일까. "공기를 모두 뺀 커다란 통 안에서 하는 거 아니냐"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무중력과 진공의 의미를 혼동하고 하는 소리다. 무중력은 지구가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지, 공기가 있고 없고를 말하는 게 아니다. 지구의 인력권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지지 않는 한, 중력은 어떤 장치로도 차단할 수 없다.

 미항공우주국(NASA)에서는 이런 무중력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제트비행기를 이용한다. 비행기가 고공으로 날아오르다 급강하하면 순간적으로 무중력과 같은 상태가 된다. 놀이기구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갈때 허공에 붕 뜬 느낌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이때 강하하는 비행기에 계속 가속도를 붙이면 무중력 상태를 한동안 더 지속시킬 수 있다. NASA의 숙련된 조종사들은 이 상태를 30∼60초까지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우주비행사들은 이처럼 짧은 무중력 상황을 반복해 만들어가며 훈련한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아폴로 13]에 나오는 무중력 장면들도 눈속임이 아니라 이와 똑같이 급강하하는 제트기 안에서 촬영됐다.  


 ♣ 감기 걸리면 물 많이 먹어라?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면 의사는 대부분 "물이나 음료수를 많이 마시라"고 충고한다. 감기에 걸린다고 반드시 갈증이 나는 것도 아닌데, 왜 예외없이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하는 걸까.  이유는 탈수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감기와 탈수는 언뜻 직접적 인 인과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감기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우리 몸에서는 그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열이 난다. 열이 나면 인체의 대사가 가속되고, 자연히 산소를 많이 필요로 하게된다. 이에 따라 산소를 많이 얻기 위해 호흡이 빨라지고, 내쉬는 숨에 섞여 몸 안의 습기가 빠져나가는 것이다.  동시에 인체는 열을 끌어내리는 메커니즘의 하나로 피부를 통해 습기를 공중에 증발시킨다. 땀을 흘리는 것도 이 메커니즘에 따른 습기발산 작용이다.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는 물기를 보충하지 않고 방치하면 자칫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변비가 생기거나 악화될 수 있고, 기관지점액을 끈끈하게 만들어 허파로부터 나오는 노폐물의 배출을 방해할수도 있다. 심하면 허파조직이 상해 폐염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감기에 걸리면 목이 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는 게 좋은 것이다. 맹물 뿐 아니라 차, 스포츠음료,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주스 등이 모두 도움이 된다.


 ♣ 파리떼 겨울철 어디로?

   여름철 우리를 성가시게 하던 파리떼는 계절이 바뀌면 어느 샌가 사라져 눈에 띄지 않는다. 파리들은 겨울엔 어디에 가있는 것일까. 겨울잠(동면)을 자고 있을까. 아니면 따뜻한 남쪽나라로 날아가 살고 있는 것일까.

  둘다 아니다. 파리는 겨울철엔 죽는다. 파리의 수명은 7∼21일에 불과하다. 그것도 가장 좋은 환경에 있을 경우에나 수명을 다 누릴 수 있다. 파리가 알을 까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따뜻한 온도, 충분한 먹이, 적당한 습도가 필요하다. 겨울엔 이 모든 조건이 최악이 되고, 파리는 죽을 수 밖에 없다.

  알이나 번데기 따위 형태로 잠복해 겨울을 나는 것도 불가능하다. 파리는 알을 땅이나 벽 틈, 나무, 배설물 같은 곳에 낳는다. 알은 몇시간만 지나면 곧장 부화해 애벌레가 된다. 애벌레로 1∼4일 지나면 번데기가 되고, 그후 닷새 쯤 지나면 성충으로 태어난다. 이 기간을 마음대로 연장해서 숨어 있을 수는 없다. 기후가 따뜻한 남반구로 이동하는 것 역시 생각할 수 없다. 파리는 비행거리가 짧아 출생지로부터 반경 16㎞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듬해에 다시 보는 파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끈질긴 파리들이 다시 번식해 나타나는 것이다. 헛간이나 집안 구석진 곳, 알을 깔 수 있는 따뜻함과 먹이가 있는 곳에서 소수의 파리들이 살아남는다. 비밀의 열쇠는 그 파리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번식력에 있다. 한쌍의 파리가 여름 한철 동안 퍼뜨릴 수 있는 개체수가 최대 325조9천2백32억 마리에 달한다는 계산을 해낸 과학자도 있다.


 ♣ 안경 오래 쓰면 눈 튀어 나온다?

 안경을 오래 쓰면 눈이 튀어나온다고들 한다. 그 때문에 거울을 들여다보며 근심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실제로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안경을 오래 낀다고 눈이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눈이 나쁜 사람,특히 청소년기에 근시가 된 사람의 눈은 십중팔 구정상인보다 돌출하는 게 사실이다. 안경을 쓰건 말건, 안경이 비싸건 싸구려이건 결과는 마찬가지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이재범(안과)교수에 따르면, 보통 사람의 안구 는 7∼10살쯤 되면 성장을 멈춘다. 근시의 95%는 안구의 성장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데서 비롯된다. 촛점거리는 일정한데 안구만 커 지면물체의 상이 망막보다 앞에 맺히게 되기 때문이다. 정상인의 안구 앞뒤 길이는 2.3∼2.4㎝인데, 4∼5디옵터의 근시가 되면 이 길이가 2.7∼ 2.8㎝로 늘어난다고 한다.

안구가 커질 때는 까만동자(각막)는 단단해서 별 변화가 없고 주로 흰자위 부분이 늘어난다. 결국 흰자위가 많이 노출되면서 전체적으로 눈이 다소밀려나온다. 그래서 외견상 눈이 크다는 느낌을 주며, 경우에 따라서는 더 예쁘게 보이기도 한다. 대개 20살이 넘으면 근시는 더이상진행되지 않고, 눈도 더이상 커지지 않는다.  

안경을 오래 쓴 사람의 눈알이 튀어나와 보이는 것은 다른 부차적 요인도 있을 수 있다. 안경을 끼고 있다 벗으면 눌려있던 콧잔등 때문에 눈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일 수 있고, 햇볕을 받지 못한 눈주위가 다른 부위보다 선명하게 보일 수 있으며, 평소 돋보기 렌즈 안에서 작아보이던 눈이 안경을 벗으면 커보이는 현상도 있을 수 있다.  눈이 나쁘지도 않은데 눈알이 튀어나와 있는 것은 선천적이거나, 갑상선기능 항진증 같은 질환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 화투의 유래

  화투는 서양 트럼프의 영향을 받은 놀이로 19세기 중반 쓰시마(대마도) 상인들이 우리나라를 오가면서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50년 경과)

 ♣ 욕조 물 빠질땐 왜 소용돌이 치나

   욕조나 싱크대, 배수구에서 물이 빠질 때에는 어느 한쪽 방향으로 소용돌이치며 빠진다. 유심히 살핀 사람은 소용돌이의 방향이 늘 일정하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소용돌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지구 북반구에서는 '시계 반대방향',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남반구에서는 '시계방향'으로 생긴다. 이것은 지구의 자전으로 인한 전향력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를 처음 발견한 프랑스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코리올리 힘'이 라 부른다. 코리올리 힘은 북반구에서는 진행방향의 오른쪽, 남반구에서는 그 반대쪽으로 작용한다. 크기는 적도에서 가장 강하고, 극에서 0이 된다.

  태풍이나 대포의 탄도 등은 코리올리 힘이 잘 반영되는 사례다. 적도 근방에서 발생해 북상하는 태풍의 진로는 오른쪽, 즉 동쪽으로 휘게 된다. 태풍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 또한 이 힘 때문에 시계 반대방향으로 일어난다. 대포를 적도부근에서 북쪽을 향해 발사할 경우 탄도는 동쪽으로 휘고, 북극에서 남쪽을 향해 발사할 경우에는 서쪽으로 휜다.  

  문제는 이처럼 지구적 범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욕조의 물 같이 미세한 운동에서도 생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많은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외부에서 전혀 힘을 가하지 않는 조용한 상태의 물은 태풍과 동일한 방향으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빠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지구의 자전이 욕조의 물에 가하는 힘은 대단히 미약하기 때문에, 이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물을 오랫동안 고요한 정지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처음 물을 채울 때 반대방향으로 채웠다면, 그 영향 은 상상 이상으로 오래 간다. 과학자들은 이 오차를 극소화하기 위해 물을 채운 뒤 최소한 하루, 길게는 일주일 이상 기다렸다고 한다.


 
 ♣ 해발고도 어떻게 재나

 산 높이나 비행 고도 등을 말할 때 '해발 몇 m'라고 한다. 해발고도는 말 그대로 바다로부터의 높이다. 그렇다면, 바다가 전혀 안 보이는 대륙 오지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해발고도를 잴까?.  

각 나라는 저마다 해발고도 측정을 위한 기준수면을 갖고 있다. 우리 나라는 인천 앞바다가 기준이다. 바닷물의 높이는 조석 해류 기압 바람에 따라 늘 변하지만, 몇년에 걸쳐 평균을 내면 '해발 0m'인 기준수면을 얻을 수 있다.

 그 다음엔 이 기준을 가까운 육지 어디엔가 옮겨 표시해 놓아야 한다. 이것이 '수준원점'이다. 우리나라의 수준원점은 인하공업전문대 구내에 있다.  웬만한 지각변동에 끄덕 없도록 지반을 다진 뒤 박아놓은 일종의 대리석 기둥으로, 1963년 국립지리원이 설치했다. 수준원점은 모든 해발고도 측정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지 그 자체가 '해발 0m'라는 뜻은 아니다. 이 수준원점, 즉 대리석 꼭대기 중앙점의 정확한 해발고도는 26.6871m다.  

이후 국립지리원은 수준원점을 출발, 릴레이식으로 높이를 비교해가며 국토 전역에 2㎞ 간격의 '수준점' 5천여개를 설치했다. 국도변이나 시골 학교교정, 면사무소 화단 등지를 잘 살펴보면 소숫점 4자리까지 해발고도 가 적힌 대리석 수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측량사들은 이 수준점에 자 (표척)를 세워놓고 멀리서 망원경(수준의)으로 들여다보면서 주변지형의 해발고도를 비교-측정한다.
 

 ♣ 음치는 못고치나?

  음의 높낮이를 구별하지 못하거나 노래를 부를 때 현저히 음정을 못 잡는 사람을 음치라고 한다. 좌중은 그들의 터무니없는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하기도 하지만, 당사자로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병리학적으로는 음치를 감각적음치(청음 음치)와 운동적음치(발성 음치)로 나눈다. 전자는 음높이 리듬 음량 등을 판별하는 능력이 없거나 불완전한 것, 후자는 그런 감각은 있지만 정작 노래를 부를 때 정확 한 음정을 내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전문가에 따라서는 간명하게 선천성과 후천성음치로 구분하기도 한다. 선천성은 태어날 때부터 두뇌의 음 인식기능이 결핍돼 있거나, 성대에 이상이 있는 경우 등이다. 가령 쌍으로 돼있는 성대의 어느 한쪽이 길다든지 두께가 차이가 나는 사람은 아무리 정확한 음정 정보를 뇌에서 내려보내도 그음을 재생할 수 없다. 후천성은 이런 선천적 이상이 없는데도 음악과 괴리된 성장환경이나 자신감상실 같은 정신적 요인에서 비롯되는 음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최현수(성악·바리톤)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음치 소리를 듣는 사람 가운데 선천성은 10% 미만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90%에 해당하는 나머지 후천성 음치는 노력만 하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음감과 리듬감은 악기연주나 음악을 들으면서 흉내내기를 반복하면 길러질 수 있다. 어릴 때부터 하는 훈련이 더욱 효과적임은 물론이다. 또 음치탈출을 위해서는 인내와 끈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노래에 대 한 공포를 덜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가 필요하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할 때 자신에 맞는 음정 키로 부르는 것도 음치 악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 문제는 자신의 음치가 선천성인지 후천성인지 판별하는 일인데, 일반인이하기는 어렵다. 제일 좋은 방법은 발성과학에 조예가 깊은 전문 성악가로부터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다.


♣  24절기는 양력?

  지난 8일은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었다. 오는 22일은 땅이 얼고 차차 눈이 내린다는 소설이고, 다음달 22일은 낮이 가장 짧은 동지다. 1년에는 이처럼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는 절기가 24개 있다. 이 절기들은 양력으로는 매년 같은 날, 간혹 하루 정도 차이를 두고 돌아온다. 당연히 음력으로는 해마다 다르다. 그렇지만 우리 선조들은 양력이 도입되기 훨씬 전부터 절기를 챙기고 그에 맞춰 농사를 지었다. 그렇다면 24절기는 음력인가, 아니면 양력인가.  

24절기가 처음 고안된 것은 고대 중국 주나라 때였다. 음력(엄격히는 태음 태양력)은 날을 세는 데는 문제가 없었으나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일어나는 기후의 변화는 반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천문학 지식을 동원, 지구의 태양 공전 주기를 24등분했다. 그 다음 지구가 태양을 15도 만큼 돌때 마다 황하유역의 기후를 나타내는 용어를 하나씩 붙여 24개의 절기를 완성했다.  

절기는 이처럼 음력을 쓰는 농경사회에서 필요에 따라 양력과 관계없이 만들었지만, 태양의 운동을 바탕으로 한 탓에 결과적으로 양력의 날짜와 일치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달력을 놓고 보면 24절기는 양력으로 매월 4∼8일 사이와 19∼23일 사이에 온다.  절기와 절기 사이는 대부분 15일이며, 경우에 따라 14일이나 16일이 되기도 한다. 이는 지구의 공전 궤도가 타원형이어서 태양을 15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24절기의 이름은 음력 정월에 드는 입춘을 시작으로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등이다. 한식 단오 초복 중복 말복 추석 등은 24절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 '데자뷔'라는 기억의 착오현상

  분명히 처음 보는 장면, 처음 겪는 일, 처음 나누는 대화인데, 일찍이 경험했던 것이라고 느끼는 때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확신이 들기도 한다. 소름이 쫙 끼치는 순간이다. 이런 현상을 '기시감'이라고 한다. 프랑스어로 '데자뷔(d j vu)'라 한다.

일부 심령학계에서는 이를 전생의 기억이나 예지력 같은 초능력현상으로 보기도 하지만, 현대 의학에서는 '지각 장애'의 일종으로 파악한다. 과거에 매우 보고 싶어 했던 것, 누구한테인가 생생하게 들은 것 따위가 잠재해있다가 어떤 찰나 현실에 겹쳐지는 '기억의 착오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경험했으나 자신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재생되는 수도 있다. 따라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그림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완벽하게 같지는 않다고 한다.  

기시감은 정상인이나 비정상인 모두에게 가능하다. 고려대안암병원 이민수(정신과)교수에 따르면, 정상인의 기시감은 대개 몸이 피곤하거나 술을 마셔 정신 통제능력이 떨어졌을 경우 처럼 신체의 조절기능이 저하됐을 때 나타난다. 하지만 정상인은 그것이 착각임을 금방 깨닫고, 빈도도 잦지 않다.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은 여기서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반면 병적인 경우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가져온다. 떠오르는 모양이나 색깔, 강도는 정상인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좀더 자주 나타나고, 다른 사고장애나 환청, 망상을 동반하기 쉽다. 주로 신경증, 정신분열, 간질환자들이 잘 겪는다.  

기시감은 감기가 걸리면 콧물과 기침이 나오듯 하나의 증상일 뿐이므로, 그 자체를 독립적인 질환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기시감과 반대로 잘 알고 있는 장소를 처음 보는 장소로 여기는 현상은 '미시감'이라고 한다.

 

진셍과 인삼

 캐나다 로키 산맥을 여행하다 보면 이따금 인삼밭이 나타나곤 한다. 자연삼이 나는 곳은 지구상에서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북미주의 동해안이 고작이다.  

옥스퍼드 어원사전에 보면 인삼을 뜻하는 진셍(Ginseng)은 그 뿌리가 사람 모양 같다 해서 얻은 중국말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인삼은 동양권을 벗어나 지금은 서양권에서 보다 각광받는 세계적 영약이다. 김치 온돌불고기가 세계어로 정착됐듯이 인삼하면 고려인삼이다.  

한국이 종주국이며 한국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데도 진셍으로 국제화 되어가는 것에 저항하여 농림부는 고려인삼(Korea Insam)으로 미국과 일본 중국등지에 상표 등록을 하고 캐릭터를 정해 여타 제품과 차별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미 약효에 있어 중국삼과의 차별은 당나라 때부터 상식이 되어 있었다. "인삼은 백제에서 나는 것을 상등품으로 치고 고려(고구려)산이 버금이다"('명>>>>별록주'). "중국 요동삼은 황삼이라 하여 고려삼에 비해 몸체나 약효가 허하다"('본초몽전)'.  

중국에서 한국산 삼이 얼마나 귀물이었던지는 당나라 시인 양만리가 신라삼을 선물받고 '사신라삼'이란 시를 남겼고, 문인 장식이 소동파의 집에 놀러갔다가 신라삼을 구경만 하고도 '신라삼참견부'라는 시를 남겼을 정도다.

 미국 작가 새뮤얼 애덤스의 '어느날 밤의 이야기'에 보면 서부개척 시절 산삼을 캐오면 뿌리당 두 갈래지고 큰놈은 개당 10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이에 골드러시에 못지 않게 인삼러시가 일어 씨를 말렸고 이 삼들은 모조리 홍콩 등지로 수출돼 그중 80%가 고려인삼으로 둔갑하여 팔려나 갔다 했다.  

지금 떡삼으로 불리는 중국 인삼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인삼시장을 교란시킨 것도 그렇다. 고려인삼 이미지에 대한 역사적 세계적 상식을 말 해주는 사례들이다. 그래서 인삼을 진셍과 차별화하는데 별로 힘들지 않으리라 보는 것이다.  (이규태)
 

좌측통행 1호선

  지하철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왜 1호선은 전동차가 좌측통행을 하는지 궁금해한다. 나머지 2∼8호선은 일상 자동차 통행처럼 오른쪽으로 가는데, 유독 1호선만 왼쪽 레일을 달리는 까닭이 뭘까.  

지하철 1호선이 좌측통행을 하는 것은 서울시가 지하철 건설 초창기에 기존 철도청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호선 부터는 지상 도로교통과 같은 우측통행을 채택했다. 하지만 2호선 이후 노선이라도 전 구간이 우측통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중간 중간 철도청이 운영하는 국철 구간에서는 여전히 좌측통행 방식을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일도 벌어진다. 지하철 4호선은 남태령역을 지나면 운영주체가 서울시에서 철도청으로 바뀌는데, 그바람에 굳이 통행방법을 바꾸느라 지하터널에서 레일을 X자로 꼬아놓았다.  

철도청의 좌측통행은 우리나라에 철도를 처음 건설한 일제의 방식 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일본의 철도와 지상교통은 모두 좌측통행 을 한다. 일본은 이 시스템을 영국으로부터 도입했다. 산업화가 가장 빨랐던 영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은 모든 산업의 기반을 다졌다. 일본말고도 영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나라들은 마찬가지로 좌측통행을 한다. 홍콩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철도뿐 아니라 자동차 교통도 좌측통행 방식이다. 그래서 자동차 핸들도 모두 오른쪽에 붙어있다.  우리나라는 철도는 영국식, 지상교통은 미국식을 따르는 바람에 사람들이 헷갈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영국은 왜 좌측통행을 시작했으며,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은 그 반대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다음회 상식여행에서 알아보자.

 

좌측통행 영국도로

  영국 자동차가 좌측통행이고 핸들이 오른쪽에 있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어느 것도 100% 확증되진 않았지만,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것은 '마차 기원설'이다.  

자동차가 나오기 전 대중 교통수단은 마차였다. 쌍두마차건 사두마 차건, 마차를 모는 마부의 자리는 오른쪽에 있었다. 오른손잡이가 채찍을 잡고 말을 다루는 데는 오른쪽 자리가 편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통행방법은 좌측통행이 됐다. 마주보며 교행할 때 접촉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왼쪽통행을 하는 것이 유리한 까닭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영국은 마차를 대체하는 교통수단으로 자동차를 발명했다. 말은 엔진으로 바뀌고, 마부석은 운전석이 됐다. 그러나 이후 세계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영국식 자동차는 불합리한 점을 노출했다. 마차와 달리 자동차는 기어 조작을 해야 하는 데, 왼손으로 기어를 넣는게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보면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미국을 중심으로 왼쪽 핸들 자동차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영연방 국가나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왼쪽 핸들이 보편화됐다.

영국의 좌측통행 기원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있다. 템스강에 런던 교가 있다. 17세기 초, 이 다리는 집과 상점들이 다닥다닥 들어서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사람과 마차는 무질서하게 밀치고 다녔다. 1625 년 어느 여름날, 말 한 마리가 마차를 끌다 쓰러져 죽었다. 그러자 런던 시와 지방을 잇는 유일한 교통로가 한동안 완전히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당시 런던시장이 "시내로 들어가는 마차는 강 상류쪽(즉 왼쪽), 나가는 마차는 하류쪽으로 진행하라"는 런던교 통행원칙을 선포했다. 이것이 영국 최초의 교통법규였으며, 곧 영국 전역과 바다 건너까지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축구 `해트 트릭'유래

  축구경기에서 자주 듣는 용어에 '해트 트릭'이 있다. 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3골을 넣을 때 이 말을 쓴다. 'Hat Trick'이라는 영어 단어만 봐서는 이 용어가 왜 '3골'을 뜻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해트 트릭'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3세기 영국에서 생긴 크리켓 게임에서였다. 크리켓은 한팀당 11명씩의 선수가 공과 배트를 가지고 하는 야구 비슷한 게임이다. 11명 타자 가운데 주장을 제외한 10명이 모두 아웃되면 1회전이 끝나는데, 이것이 보기보다 쉽지 않아 하루 경기가 보통 2회전으로 치러진다. 그러니 투수가 세 타자를 연속 아웃 시킨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크리켓 클럽에서는 이런 '위업'을 이룬 선수에게 근사한 모자 (Hat)를 선물했다. 또 다른 클럽에서는 모자를 관중들이 손에서 손으로 돌려 선수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해트 트릭이라는 말은 이래서 생긴 것으로, 여기서 트릭(Trick)은 '속임수'가 아니라 '장난' 또는 '묘기' 정도의 뜻으로 쓰인 단어다.  

이후 이 용어는 득점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다른 스포츠에도 확산됐다. 하키나 축구가 대표적이지만, 경마에서 한 기수가 3승을 올렸을 때 쓰기도 한다. 진정한 의미의 해트 트릭은 한 선수가 3골을 넣되 반드시 연속득점, 즉 3골을 넣는 도중에 다른 선수의 득점이 없어야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따지지는 않는다.

 

`거꾸로 도는' 바퀴

  서부영화에 나오는 마차바퀴는 왜 가끔 거꾸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까. 영화는 1초당 24장의 정지사진을 연결해서 보여주는 빛의 예술이다. 영사기는 한 정지사진에서 다음 정지사진으로 옮겨갈 때 셔터로 재빨리 스크린쪽으로 나가는 빛을 가려준다. 따라서 관객은 초당 24번 깜박이는 빛을 보는 것이지만, 우리 눈의 잔상작용 때문에 마치 연속사진을 보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 뿐이다.

 영화 속 마차바퀴가 어떻게 보이는가는 이 각각의 정지사진에서 바퀴살의 위치가 어떻게 돼 있느냐에 달려있다. 가령 어떤 바퀴살이 있던 자리에 정확히 24분의1초 뒤 그 다음 바퀴살이 오고, 다시 24분의 1초 후에 그 다음 바퀴살이 온다면, 마차바퀴는 마치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만약 같은 주기에 다음 바퀴살이 앞 바퀴살이 있던 곳보다 조금 못미치는 곳에 도달하는 일이 반복될 경우, 그때는 거꾸로 도는 것처럼 비치게 될 것이다. 깜깜한 디스코 테크에서 번쩍번쩍하는 사이키조명을 받으며 춤추는 사람들의 동작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전문적으로는 '스트로브(strobe·섬광) 효과'라고 부른다. 이 스트로브 효과를 이용한 장치에 '스트로보스코프 (Stroboscope)'라는 것이 있는데, 영사기도 실은 일종의 스트로보 스코프인셈이다.  스트로보스코프는 주기적으로 깜박이는 빛을 운동하는 물체에 비추어 회전속도나 진동주기를 측정하는 계기다. 물체의 운동주기가 조명의 점멸주기와 일치할 때, 또는 운동주기가 조명주기의 2배, 3배, 4배 등 정수배가 될 때 물체는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서로 주기가 조금이라도 다르면 실제보다 느리게 움직이거나 반대방향으로 도는 것처럼 보인다.

 형광등 같은 일상 조명 역시 일종의 스트로보스코프라고 할 수 있다. 교류 전기는 1초에 60번 전류가 양극과 음극으로 바뀌는데, 그때마다 순간적으로 전류가 0 이 되면서 깜박이기 때문이다. 휘황한 조명을 받는 카지노의 룰렛이나 선풍기의 날개가 가끔 반대방향으로 도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원리다.


 ♣ 1번없는 TV채널

  TV채널에는 왜 1번이 없을까.  TV채널은 정부가 배정한다. 전파끼리의 무분별한 섞임을 막기 위한 것이다. 현재 사용 가능한 TV채널은 VHF(초단파) 2∼13번, UHF(극초단파) 14∼83번까지 모두 82개다. VHF채널이 쓰는 주파수는 54∼216MHz(메가헤르츠), UHF채널이 사용하는 주파수는 470∼890MHz다. 각 채널에 할당되는 주파수 대역은 6MHz 씩이다. 예를 들어 채널2는 54∼60MHz, 채널9(KBS 1TV)는 186∼192MHz 의 주파수로 전파를 발사한다.  

이같은 채널 배정방식은 미국식이다. 미국은 1941년부터 연방차원 에서 채널 배정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채널1번이 있었다. 1번채널의 사 용주파수는 48∼54MHz였다. 그러다가 1948년 이 주파수를 이동통신, 아마추어무선, 무선전화, 실험방송국 등에 양보했다. 이 대역은 잡음이 많이 섞여 영상 전파신호를 송신하는 데는 다소 품질이 떨어지는 대역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61년 TV방송을 시작하면서 미국의 방식을 그대로 도입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예 1번채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식은 미국식과 채널별 주파수대역도 좀 다르고, 1번채널도 있다.  

참고로, 채널을 배정할 때는 바로 인접한 채널은 전파 간섭 염려가 있어 가급적 피한다. 그래서 7, 9, 11번 식으로 나간다. 그럼 SBS는 왜 7번(KBS2)과 이웃한 6번을 택했을까? 6번과 7번은 번호는 하나 차이지만 실은 무척멀리 떨어져 있는 채널이기 때문이다. 6번채널의 주파수대 역은 78∼84MHz인데, 7번은 다른 채널이 15개쯤 들어갈 만큼의 구간을 훌쩍 건너뛰어 174MHz부터 시작된다. 그 사이의 주파수, 즉 84∼174MHz 대역은 FM방송과 항공기교신 등에 사용된다.
 

 

TV채널 지역차이

   7일자 '1번 없는 TV채널'을 읽고 많은 독자들이 또 다른 궁금증들을 물어왔다.  그중 가장 많은 질문이 '같은 방송국의 채널이 왜 지역마다 다르냐' 는 것이었다. KBS 1TV가 서울에서는 9번인데 서울만 벗어나면 번호가 바뀌고, 자동차 여행을 하다보면 라디오 채널이 뒤죽박죽이 돼 무슨 방송을 듣는지 알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TV가 사용하는 전파는 초단파(VHF) 또는 극초단파(UHF)다. 이처럼 파장이 짧은 전파는 직진성이 강하다. 높은 산이나 커다란 빌딩을 만나 면 구부러져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도로 튀어나온다. 방송국은 이런 장애물 때문에 생기는 난시청을 해소하기 위해 중계소를 설치한다. 중계소는 앞 전파를 받아 장애물 뒤로 넘기는데, 이때 채널을 바꾸어준다. 동일한 채널로 중계하면 앞전파와 새로 가다듬은 뒷전파가 섞여 품질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양쪽에서 같은 소리를 한꺼번에 내면 듣 는 사람이 불편해지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이렇게 해서 남산송신소를 9번으로 떠난 KBS1 채널은 관악산을 지날 때는 25번으로, 용문산을 넘을 때는 32번이 된다. 이런 중계소가 전국 에 4백개쯤 있으므로, 채널도 그만큼의 빈도로 바뀐다.  

라디오 역시 FM의 경우는 TV와 같은 범위의 주파수를 쓰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채널이 바뀐다. 하지만 파장이 비교적 긴 중파를 사용하는 AM방송은 전파가 웬만한 장애물을 구부러져 넘어가는 성질(회절성) 을 갖고 있기 때문에 FM만큼 많은 중계소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케이블TV와 공중파TV의 차이를 묻는 질문도 많았다. 케이블TV도 공중파TV와 비슷하게 54∼750MHz(메가헤르츠) 범위의 전파를 채널당 6MHz 씩 잘라 쓴다. 현재 사용가능한 채널은 110개다. 케이블TV 방송사는 수 십개채널을 하나의 전기신호로 묶어 유선을 통해 가입자 가정에 보내고, 가입자의 TV수상기는 이를 다시 분리해 원하는 채널을 골라 영상을 재현한다. 따라서 전파의 섞임을 막기 위해 인접채널 사용을 가급적 피하 는 공중파와 달리, 케이블TV는 다닥다닥 붙은 채널 분배가 가능한 것이다.
 

 

술의 돗수

 "나 어젯밤에 80도짜리 양주 마셨어"하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십중팔구 뭘 모르는 사람이다. 그 양주는 80도가 아니라 80 PROOF였을 것이다. 술이 독한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에는 도, %, PROOF가 있다. 이 가운데 '도'와 %는 같은 의미다. 25 도 짜리 소주는 알콜농도 25% 짜리 소주를 말한다. 이 소주의 용량이 100㎖라면 그중 25㎖가 알콜, 75㎖는 물이다.

PROOF는 부피나 질량을 정확히 잴 도구가 없었던 19세기 이전 영국에서 나온 단위다. 영국인들은 물과 알콜 혼합액에 화약을 터뜨릴 때, 알콜농도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야만 불이 붙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불길이 일어나면 '알콜이라는 것이 입증됐다'는 뜻으로 "Proof!"라고 외쳤다.

 이렇게 해서 영국에서는 농도 57.1%의 알콜이 100 PROOF로 규정됐다.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좀 달라졌다. 미국인들은 복잡한 숫자 대신, 단순히 퍼센트 농도의 2배를 PROOF로 정해 버렸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50% 알콜이 100 PROOF가 됐다.

 이후 프랑스인들은 이런 헷갈리는 PROOF를 아예 무시하고 자기네 와인에 막바로 %농도를 표기함으로써 이를 세계에 확산시켰으나, 아직도 버본을 비롯한 독주 메이커들 상당수는 여전히 PROOF 표기를 고집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 영국산 80 PROOF 위스키를 마셨다면 그는 우리 식으로 46도 짜리 위스키를, 미국산 80 PROOF 라면 40도 짜리 위스키를 마신 것이다.

 

 보기힘든 새의 사체

   새의 시체를 본 적이 있는가? 간혹 자동차에 부딪치거나 엽총에 맞아 '횡사'한 시체는 본 경험이 있을지 모르지만, 수명이 다 해 '자연사'한 새의 시체는 아마도 거의 보지 못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시골은 말할 것 없고, 도시에서도 근교로 조금만 나가면 우리는 쉽게 각양 각색의 새들을 볼 수 있다. 그 수많은 새들 모두가 언젠가는 죽을텐데, 왜 그들의 최후는 목격되지 않는 것일까. 혹시 야생 코끼리처럼 새들도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면 자기네만 아는 비밀의 장소를 찾아가는 것일까.

해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새들이 죽는데 장소를 가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죽자마자 그 시체는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돼버린다. 고양이, 개, 쥐, 곤충, 심지어 박테리아에 이르기까지 순식간에 달려들어 크고 작은 새의 시체를 해치워 버리는 것이다. 미국의 한 생물학자는, 들판에서 막 숨을 거둔 새가 몸뚱어리의 대 부분을 잃는 데 한 시간이 채 안 걸렸으며, 24시간 이내 깃털만 남기고 사라졌다는 관찰기를 학계에 보고하기도 했다.

 만약 철새들이 머나먼 대양을 건너는 도중 기력이 다해 떨어 져 죽는 일이 있다면, 그것도 시체를 볼 수 없는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행하는 동안 잠시 내려 먹이를 구할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나 상정 할 수 있는 사례일 뿐이다. 병이 들어 날 힘이 없는 새들은 애초부터 앉은 자리에서 날개를 펴지도 않는다고 한다.

 

`밤새 마시는'맥주

   젊은 시절 한번쯤은 '입 떼지 않고 맥주 1000㏄ 마시기' 같은 호기를 부려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밤새도록 수십 병의 맥주를 먹었다는 주당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주량이 센 사람 이라고 해도 맥주 만큼 물을 마시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 그럴까.

 맥주와 물은 몸에서 흡수되는 소화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이 다. 식도를 지나 위에 이르는 단계까지는 둘 사이에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후 물은 위벽에서 거의 흡수가 되지 않는다. 그냥 고여있으면서, 조금씩 십이지장을 거쳐 소장과 대장을 따라 내려간다. 그 과정에서 장벽을 통해서만 흡수가 이루어진다. 마시면 마실수록 배가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알콜은 위에서부터 즉각 흡수가 시작된다. 이때 알콜과 더불어 얼마간의 물도 함께 흡수된다. 또 맥주에 포함돼 있는 이산화탄소는 위벽을 자극해 위액 분비를 촉진함으로써 소화작용 을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맥주의 주원료인 홉 성분은 침과 위액, 담즙 분비를 촉진시키며, 아울러 이뇨기능 까지 발휘한다. 정신만 말짱하게 견딜 수 있다면, 화장실을 왔다갔다하면서 그야말로 밤 새 마실 수도 있는 것이다.

 


테니스 스코어

    테니스 경기에서는 스코어를 매길 때 1, 2, 3, 4라고 하지 않고 15, 30, 40, 게임(game) 이라고 한다. 0도 '제로(zero)'가 아니라 '러브 (love)'라고 부른다. 왜 이런 괴상한 방식을 쓰는 것일까?.  

현대 테니스는 125년 전 북웨일스의 윙필드소령이라는 사람이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와 유사한 경기는 중세 유럽에서부터 있었다. 코트테니스 또는 리얼테니스라 불린 옛 테니스 게임이 채택한 스코어링 시스템은 '15, 30, 45, 게임' 방식이었다. 이 때는 세번째 포인트가 40이 아니라 15의 배수인 45였다. 한 포인트를 왜 15점 단위로 매겼는지는 명확지 않으나, 유럽인들의 천문학 선호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천체를 관측할 때 쓰던 기구에 다리가 60도까지 벌어지는 콤파스(육분의)가 있었는데, 유럽인들은 이 6분의1 원의 개념을 테니스 경기에 적용했다. 한 경기를 6세트로 정함으로써, '60도 짜리 조각 6개를 맞추어 온전한 360도 원을 만드는 사람이 곧 승리자' 라는 논리를 만들었다. 각 세트는 다시 4게임으로 구성돼 있었으므로, 60 도 짜리 한 세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15 도 짜리 조각 4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후 언제부터인가 세번째 포인트인 45가 40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순전히 발음상의 편의 때문이었다. 심판이 스코어를 소리쳐 선언할 때 "45(fortyfive)"는 아무래도 불편하고 다른 숫자와 헷갈릴 우려도 있었다."45 대 30 (fortyfive-thirty)"와 "40 대 30(forty-thirty)"를 소리내 발음해보면 그 차이를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0을 "러브"라고 부르는 것은 '달걀'을 뜻하는 프랑스어 l'oeuf(뢰프) 에서 온 것으로 추측된다.  

 

달리는 차에서 책읽기

   달리는 차에서 책을 읽으면 왜 기분이 나빠질까. 이는 차멀미의 일종으로, 몸의 감각기관에 혼란이 일어나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가 서있거나 걸을 때 몸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신체의 평형감각 기관들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평형감각의 3요소는 눈(시각), 세반고리관, 그리고 이석이다. 세반고리관과 이석은 모두 귀의 내부에 있는 기관들로, 몸이 앞뒤로 움직이거나 회전할 때 그 느낌을 뇌에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눈에서 들어오는 시각 정보가 결합돼 평형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차에 탔을 때도 마찬가지. 차가 속도를 내거나 위아래로 진동할 때, 또는 커브를 돌 때 귓속 평형기관들은 이에 대한 반응을 뇌에 보낸다.  

동시에 눈은 주변 정경의 움직임을 포착해 뇌로 보내준다. 이 정 보와 귓속 평형기관들의 반응이 일치해야 우리는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책을 읽느라고 눈이 한 곳을 응시하고 있으면 평형감각 의 3요소 가운데 시각정보가 누락되게 된다. 자연히 뇌에서는 이들 정보를 취합하는 시스템에 혼란이 생겨, 메스꺼움이나 불쾌감 같은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얀'담배연기?

   재떨이에 놓아둔 담배, 즉 생담배가 타면서 나오는 연기는 색깔이 파란데, 깊이 들이마셨다 다시 내뱉는 연기는 하얗다. 대부분의 애연가들은 이를 보고 담배의 독한 성분을 폐가 다 빨아들였기 때문이라며 자책한다. 실제로 그럴까.  

재떨이에서 혼자 타고 있는 담뱃잎에서 나오는 연기는 크기가 매우 작은 탄소성분의 미립자들이다. 이 미립자들은 지름이 빛의 파장과 엇비슷할 만큼 작다. 이런 미립자들을 빛이 통과할 때에는 가시광선의 7가지 색 가운데 파장이 짧은 청색계통 빛이 가장 강하게 산란된다. 그 때문에 우리 눈에 파란 빛으로 보이는 것이다. 공기 분자나 미세한 먼지밖에 없는 맑은 날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그러나 이 연기를 빨아들이면 몸 속의 수증기가 연기 미립자를 핵으로 삼아 뭉침으로써 아주 작은 물방울을 형성하게 된다. 입 밖으로 나온 이 입자들의 크기는 빛의 파장보다 조금 더 큰 정도. 그렇게 되면 청색광뿐 아니라 모든 파장의 빛이 작은 물방울들에 이리 저리 부딪히면서 반사돼 결과적으로 하얀 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이 하얀 것과 같은 원리다.

물론, 담배연기의 광학적 메커니즘이 이렇다고 해서 흡연의 위험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니코틴이나 타르 같은 유해성분들이 몸에 흡수돼 마약과 다름없는 중독성과 폐암유발 등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정맥은 왜 푸를까

   피는 빨간색이다. 그런데 고함치는 사람 목에 불끈 솟는 핏줄, 우 리 손등이나 팔뚝에 보이는 크고 작은 핏줄들은 색깔이 푸르다. 왜 그럴까.  

본래 피의 색깔이 붉은 것은 핏속 적혈구에 들어있는 헤모글로빈이 라는 성분 때문이다. 헤모글로빈은 허파에서 신선한 산소를 잔뜩 담아 다가 체내 곳곳의 조직에 나눠주는 역할을 한다. 이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을 때는 선홍색, 산소를 모두 잃어버린 뒤에는 검붉은 색으로 변한다.  

따라서 심장에서 처음 분출되는 피는 무척 밝은 선홍색이다. 피가 흘러다니는 핏줄엔 두 종류가 있다. 심장에서 산소를 싣고 나오는 피가 다니는 핏줄은 동맥, 산소를 소진하고 심장으로 돌아가는 피가 다니는 핏줄은 정맥이다. 우리가 보는 피부 가까이의 굵은 핏줄들은 모두가 정맥이다. 이 정맥을 흐르는 피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실은 검붉은 색이지만, 주위를 덮고 있는 혈관벽과 피부 때문에 어두워져 우리 눈에는 다소 푸르죽죽하게 비치는 것이다.  진짜 빨간 피가 흐르는 동맥들은 피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다.
 


한 라운드는 왜 18홀?

박세리 이후 골프에 대한 관심들이 부쩍 높아졌다.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들도 '파' '보기' '버디'같은 경기 용어나 골프 룰을 곧잘 화제로 삼을 정도다. 골프란 간단히 정의하면 '한 라운드를 18홀로 해서 누가 더 적은 타수로 각 홀에 공을 집어 넣느냐를 겨루는 게임'이다. 그러면, 한 라운드를 하필이면 왜 18홀로 정했을까? 10홀이나 20홀로 해서는 안될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까?.

'1라운드=18홀' 원칙이 특별한 계기나 정교한 계산에 따라 만들어 진 것은 아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골프가 탄생할 때는 골프장마다 지형이나 땅 넓이에 따라 홀 수가 제각각 이었다. 불과 5홀밖에 없는 코스도 있었다고 한다.

골프코스의 원조격인 '세인트 앤드루스 왕립 골프클럽(Royal and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의 저 유명한 '올드 코스'에도 원래 22개 홀이 있었다. 아웃코스 11홀, 인코스 11홀의 구성이었다. 그러다가 개장 10년만인 1764년, 18홀로 개조했다. 몇개 홀은 통폐합하고 몇개 홀은 길이를 늘렸다. 이유는 하나, 코스 전체를 어렵게 만들어 아무나 함부로 도전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특정 홀의 길이를 늘리거나 파5홀을 파4홀로 개조하는 것은 요즘도 큰 대회를 주최하는 골프장들이 난이도를 높이고 싶을 때 애용하는 수단이다.  그 뒤 모든 골프코스는 이 세인트 앤드루스를 모델로 삼아 18홀을 정규 라운드 기준으로 삼게 됐다.

 

 ♣ `구름의 색깔'

올 여름비가 많이 왔다. 비는 구름에서 떨어지는 물이다. 물에는 원래 색깔이 없다. 그렇다면 물이 모여 만든 비구름도 당연히 무색이어야 할텐데, 왜 비를 잔뜩 머금은 구름은 그리 시커먼 것일까? 어떤 형태의 구름이건, 구름은 모두 물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는 그 물 입자들의 크기다. 물 입자가 매우 작을 때, 즉 수증기 상태에서는 이 입자들이 밖에서 들어오는 빛을 모두 산란시킨다. 빛은 수증기 입자 들 사이를 이리 저리 어지럽게 부딪혀 다니다가 결과적으로 거의 100% 반사돼 나온다. 어떤 물질이 빛을 모두 반사하면, 그 물질은 우리 눈에 흰색으로 보인다. 새털구름이 하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물 입자들이 조금씩 커져서, 빗방울을 이룰 정도의 크기가 되면 반대가 된다. 빛을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빛을 이 물방울들이 흡수해버린다. 그러면 우리 눈에 그 구름은 시커먼 '먹구름'으로 보이는 것이다. 빛을 모두 삼켜버린 빗방울들은 흡수한 빛의 에너지 때문에 온도가 약간이나마 올라가게 된다. 주변 날씨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먹구름이 새털구름보다 속은 오히려 '따뜻'하다고나 할까?.


 ♣
겨울에 술 마시면

 여름에 술을 마시면 더 덥게 느껴지고, 겨울에 술을 마시면 더 춥게 느껴진다는 얘기가 있는데,사실이 아니다. 사람은 술을 마시면 날씨나 계절에 관계없이 더 더운 느낌을 갖게 돼있다. 그렇다면, 겨울 노숙자 가운데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보다 술 마신 사람이 동사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은 왜일까.

음주는 기본적으로 체온을 떨어뜨린다. 알콜은 혈관, 특히 피부 바로 아래 분포돼있는 정맥을 확장시키는 작용을 한다. 혈관이 확장되면 평소보다 많은 양의 피가 피부쪽으로 운반된다. 술을 마실 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몸의 열이 피부 표면을 통해 공기중으로 방출됨으로써 오히려 체온은 떨어지게 된다. 열을 감지하는 신경 대부분이 피부 아래 집중돼있는 까닭에 우리는 술을 마시면 더 덥다고 느끼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느낌일 뿐 실제 체온은 내려가는 것이다.

이런 메커니즘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겨울에는 바깥공기가 차기 때문에 열의 이동이 더 빨라진다. 그 결과 인체에 비축돼있는 신진대사 열량이 더 빨리 소모돼 동상이나 저체온증 (Hypothermia)을 유발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다. 거리나 공원 같은 곳에서 자다가 동사할 위험도 자연히 정상적인 사람보다 높아질 수 밖에 없다.


 ♣
쇠갈퀴 음향

손톱이나 못 따위로 칠판을 긁을 때 나는 소리는 소름끼칠 정도로 신경을 날카롭게 한다. 왜 그럴까.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일단의 연구진이 10여년 전 국립과학재단(NSF)의 자금 지원을 받아 이 궁금증에 도전했다. 연구진은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이 소리가 정말 모든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실험했다. 실제로 실험 대상자들은 쇠갈퀴로 칠판을 긁는 소리에 가장 민감하고 괴로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대상자들이 두번째로 싫어한 소리는 스티로폼 조각을 비벼댈 때 나는 소리였다.

연구진은 「쇠갈퀴 음향」에서 가장 고음 영역을 제거해보았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고음영역을 제거하고 남은 소리에도 대상자들은 여전히 고통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오히려 고음을 남겨둔 채 낮은 주파수의 음역을 제거하자 실험대상자들은 편안해했다. 따라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고주파가 아니라 저주파~중간주파수 범위의 소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남은 과제는 같은 음역의 소리 중에서 왜 특정한 「음색」은 사람의 신경을 날카롭게 하느냐는 의문이었다. 연구진은 인간의 이 같은 반응의 원인을 인간의 「조상」인 원숭이에게서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아래, 쇠갈퀴(또는 손톱)로 칠판 긁는 소리의 파형을 짧은 꼬리원숭이가 내는 여러 종류의 소리와 비교했다. 그러자 원숭이가 적의 침입 같은 위험을 동료들에게 경고할 때 울부짖는 소리와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따라 연구진은 칠판 긁는 소리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진화 초기 단계에 습득된 방어본능의 잔재일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을 세워 학계에 보고했다.

 

 ♣ 손마디 꺾는 소리

  손마디를 꺾을 때 나는 우두둑 소리는 왜 나는 것일까. 손마디를 자주 꺾으면 마디가 굵어지거나 관절염에 걸린다는 말은 사실일까.

손가락 관절은 윤활 역할을 하는 깨끗한 액체 주머니로 둘러싸여 있다. 액체 성분에는 15% 가량의 이산화탄소가 포함돼있다. 손마디를 잡아당기거나 비틀면 액체 주머니 속에 압력이 낮아지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이 압력이 낮아진 곳으로 이산화탄소가 모여들어 기포가 만들어지고, 거의 동시에 그 기포가 터지면서 우리가 듣는 뚝 소리가 나는 것이다.

물론 이 소리는 일반적인「폭발음」이 아니라, 기포가 소멸하면서 그곳으로 주위의 액체가 일제히 몰려들어 부닥치는 소리다. 한번 기포가 터지면 주변에 작은 기포가 남는다. 작은 기포 속의 이산화탄소가 다시 윤활액 속에 완전히 녹아 들어가는 데에는 15~20분이 걸린다. 그 동안에는 손마디를 다시 잡아당겨도 새로운 기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껏 생긴다 해도 아주 미세한 것 들 뿐이다. 같은 손마디를 연달아 꺾어 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손마디를 습관적으로 꺾으면 그 부위가 흉하게 굵어진다든지, 나중에 관절염으로 고생하게 된다는 얘기는 분명히 입증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의사들은 이것이 해로우면 해로웠지, 그다지 바람직한 습관은 아니라고 충고하고 있다.

 

 ♣ 뇌는 10%만 활용?

사람은 평생 자기 뇌의 10%밖에 쓰지 않는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아인슈타인은 그보다 몇%를 더 활용했다는 그럴듯한 얘기가 덧붙여지기도 한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한발 더 나가 그 비율이10%가 아니라 6%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누가 이 말을 처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19세기 심리학자 윌리암 제임스라는 설이 유력하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사람에 따라 뇌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90%라는 방대한 용량의 뇌를 전혀 쓰지 않고 방치한다고 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덩치는 몸무게의 2%밖에 안되면서 인체 산소의 20%나 소비할 만큼 할 일이 엄청나게 많은 뇌가 용량의 90%를 놀린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비상식적이라고 과학자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지적 작용의 중심지인 대뇌 피질을 분석한 과학자들은, 그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쓸모 없는 영역을 찾아내지 못했다.

물론 뇌 전체가 동시에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뇌 속의 수백억개에 달하는 뉴런(신경단위) 중에서 특정한 시점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5% 가량이라는 연구가 있다. 뇌의 각 부분은 매우 전문화돼있기 때문에, 주어진 과제에 따라 어떤 영역은 활동을 하고 어떤 영역은 쉴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뇌의 대부분을 사용할 수 밖에 없게 돼있는 것이다.

몸 근육도 부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쓰임새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나이가 들면 뇌의 가용 용량은 줄어든다. 30살이 넘으면 매일 10만개 이상의 뇌세포가 소실되며, 성인이 돼서 90살을 먹을 때까지 10~30%의 뉴런을 잃는다는 연구가 있다. 이런 자연 노화 외에 뇌세포를 인위적으로 죽이는 것은 과도한 음주와 흡연이다.

 

 ♣ 비행기 내려갈때 귀가 왜 더 아프지?

상식여행? 비행기 내려갈 때 귀가 더 아픈 까닭 - 비행기가 떠오를 때나 내려갈 때엔 항상 귀가 먹먹해진다. 그런데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그 정도가 더 심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왜일까.

사람의 귀는 외이(겉귀), 중이(가운데귀), 내이(속귀)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외이와 중이의 경계를 이루는 것은 고막이다. 이 고막을 사이에 두고 외이와 중이의 기압이 차이가 날 때 귀가 먹먹해진다. 어느 한쪽의 공기 압력이 낮으면 고막이 그쪽으로 빨리듯 쏠리면서 떨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소리가 잘 안들리고 때로 통증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중이는 일종의 공기 주머니인데, 여기에 공기를 공급해 외이와 중이의 압력을 같도록 조절해주는 것을 유스타기오관이라고 한다. 유스타기오관은 중이와 인두(코의 뒷부분)를 연결하는 대롱같은 기관이다. 가만히 앉아서 침을 삼켜보면 귀에서 「짤깍」소리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공기 방울이 유스타기오관을 통해 중이로 들어가는 소리다. 이처럼 침을 삼키거나 하품을 할 때마다 유스타기오관의 밸브가 열리면서 공기가 중이로 공급되게 돼있다.

비행기가 뜰 때에는 고막 안쪽 기압은 높고 바깥쪽은 낮은 상태가 된다. 이 경우엔 유스타기오관을 통한 공기의 흐름이 평소처럼 순방향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침을 몇번 삼켜주기만 해도 큰 어려움 없이 안팎 기압이 균형을 이뤄 먹먹한 증세가 곧 사라진다.

그러나 내려올 때엔 반대가 된다. 바깥에서 밀고 들어오는 공기가 유스타기오관을 통해 올라오려는 공기와 서로 싸우는 형국이 된다. 이 때문에 기압 조절에 시간이 더 걸리고 그만큼 고통을 더 받게 된다. 빨리 이를 극복하고 싶으면 코를 두 손가락으로 꼭 막고, 입을 다문 상태에서, 힘껏 숨을 불어 입 안 공기를 귓속으로 뿜어 올리면 된다.

 

 ♣ 케이블TV의 공중파채널 재배정

케이블 TV의 채널들을 보면 원래 2~13번인 공중파 TV가 대부분 다른 번호, 예컨대 52번 57번 등으로 바뀌어 배정돼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의 번호를 그대로 쓰면 안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낮은 번호의 채널은 큰 숫자의 채널에 비해 주목도에서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리모콘으로 이 채널 저 채널 뒤지고 다닐 때 무의식적으로 낮은 번호대를 선호한다는 사실이 입증돼있다. 이때문에 케이블 TV 프로덕션들도 가급적 낮은 번호 채널을 차지하려고 애를 쓴다.

그렇다면 공중파 채널이 다른 번호로 밀려나는 것은 케이블 방송사의 장삿속에 「희생」당한 결과일까? 낮은 번호나 외우기 쉬운 번호의 채널을 힘있는 사업자가 선점하는 것은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공중파 채널 번호를 재배정하는 주된 이유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원래의 공중파 채널을 케이블 TV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전파간섭을 막기 위한 것이다. 케이블 TV가 깨끗한 화질을 유지하려면 케이블을 통해 들어오는 전파신호 외에 공중으로 날아드는 외부 전파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케이블 수신장치의 성능이 떨어진다든지, 또는 공중파 방송국에 가까이 있을 경우엔 외부전파를 완벽하게 차단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공중으로 날아드는 전파신호와, 케이블 방송국을 한차례 거쳐 전달되는 전파신호 사이에는 미세하지만 시간차가 생긴다. 따라서 공중파 채널 번호를 그대로 쓸 경우엔 주 화상 위에 다른 화상이 그림자처럼 겹치는 고스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케이블 TV에서는 공중파 방송에 아예 동떨어진 번호의 채널을 부여하는 것이다.
 

 ♣ 팁의 유래 - 팁은 언제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팁의 어원은 「선물」을 뜻하는 라틴어(stips)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중세 영어에서는 tip이 단순히 give(주다)와 동의어로 쓰이는 사례들이 나타난다. 소수설로는 「To Insure Promptness」(신속한 서비스 보장)의 머릿글자를 따 TIP이라 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에 팁 문화를 전해준 것은 식민지 시절 영국이었다. 독립전쟁 직후 미국인들은 팁을 영국 귀족계급 제도의 쓰레기같은 유산이라고 경멸하면서 한동안 일상 생활에서 몰아냈다. 하지만 얼마 안지나 그같은 「자부심」은 사라지고, 지금은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팁이 발달한 나라가 돼있다. 미국에서 식당이나 택시 운전사 등에게 주는 팁의 비율은 오랫동안 10%에서 15% 사이를 오갔으나, 요즘은 15% 미만은 거의 없어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20%까지 주는 사람도 있다.

팁을 주고 안주고는 손님 마음이어야 옳지만, 지금은 사실상 전체 상품가격의 일부처럼 취급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식당종업원들은 고정 월급이 별로 많지 않고 수입의 상당 부분을 팁에 의존하는데, 팁으로 받은 액수를 정규 수입과 마찬가지로 세무서에 신고해 소득세까지 낸다. 이런 판에 팁을 안내고 걸어나오기란 웬만한 강심장 아니면 힘들다. 과거엔 음식값은 신용카드로 계산해도 팁만은 현금으로 탁자 위에 놓고 나오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요즘은 카드 결제용지에 아예 팁 란이 따로 있어 거기에 팁 액수를 적어넣을 수 있게 돼있다


 ♣ 라면? 라멘!

일본 사람들은 무척이나 라면을 좋아한다. 어디에나 '라멘 전문점'이 즐비하고, 전통과 맛으로 소문난 집은 한시간 이상씩 줄을 서는 것이 예사다. 그들이 라면 한 그릇에 그토록 공을 들이는 이유는 무얼까?

사실 일본 라면은 튀김요리를 즐겨 만드는 중국에서 유래했다. 일본은 워낙 개방적인 나라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음식을 받아들여 곧바로 자기화 시키는 경향이 라면에서도 나타난 것. 이미 막부시대부터 중국으로부터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라면은 1958년 '안도후 시로후꾸' 라는 사람이 그 제조법을 생각해내고 이듬해 식품회사에서 인스턴트 라면을 제품화하면서 점차 대중화되었다.

일본 라면은 우리 라면과는 달리 기름에 튀기지 않고 생면을 이용하는 특징이 있다. 즉석에서 뽑아내는 생면은 느끼하지 않고 개운한 맛 때문에 더욱 인기가 좋다. 그리고 우리나라 라면은 매콤하고 얼큰한 맛을 내는데 비해 일본 라면은 육수나 된장 국물을 이용한 담백한 맛을 낸다. 또한 일본인들은 라면을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우동, 소바와 더불어 고유의 음식으로 여길 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즐겨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라면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63년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을 모델 삼아 삼양라면에서 첫선을 보인 후 정부의 혼분식 장려정책과 맛물려 급속히 발전하였다.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처음에는 구수한 된장 맛의 라면이 선보였지만 현재는 역시 우리 입맛에 맞는 얼큰한 국물맛의 라면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신세대들은 '라면 마니아' 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다양한 라면 요리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저 있으며, 일본의 생면과는 달리 스프를 첨가한 인스턴트 라면이 압도적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의 입맛에 맞게 발전된 얼큰한 인스턴트 라면이 원조격인 일본으로 역수출되어 일본 라면보다 비싸게 팔리고, 동남아에서는 우리나라 라면의 상표를 위조할 정도로 종주국의 위상은 뒤바뀌고 있다.(id BUNDANG no.07 2000.12)


여름밤 불청객 모기 퇴치법 올 가이드


 여름밤 불청객을 막으려면 "모기는 땀냄새를 좋아해"  애 앵, 찰싹, 긁적긁적 , 애  앵 .  회사원 윤모씨(37)는 요즘 밤마다 모기와 전쟁을 치른다. 잠을 설치다보니 낮에 업무 효율이 뚝 떨어졌다. "전기료 누진제 때문에 에어컨을 제대로 못켜 가뜩이나 짜증나는데 이놈의 모기들 ." 윤씨는 가끔 이같이 중얼거린다.

'모기의 과학'을 알면 뇌염이나 말라리아을 옮기는 무서운 모기의 공습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국립보건원 의동물과 이원자 연구관과 성균관대의대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송재훈 교수의 도움말로 모기의 세계를 알아본다.

 왜 모기가 극성인가?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모기 수가 늘었다. 모기는 웅덩이 등지에서 10 16일 걸려 '알-유충(장구벌레)-번데기' 단계를 거쳐 태어나는데 기온이 높으면 이 기간이 짧아져 모기가 많아진다. 특히 요즘은 장마 뒤 웅덩이가 많아져 모기가 태어나기 좋아졌다. 잠자리가 많을 때엔 잠자리 유충이 장구벌레를 먹어치워 모기가 적어지지만 올해엔 예년보다 잠자리가 적어 모기가 많다.

 모기는 앵앵거리는 까닭은? 모기의 소리는 날개에서 난다. 모기는 1초에 600번까지 날개친다. 미국 버지니아대 데이비드 스미스박사는 "모기의 날개를 움직이는 가슴 근육은 동물이 발전시킨 가장 눈부시게 활동적인 조직"이라고 말했다.

모기는 날개짓으로 목소리를 대신한다. 암모기는 숫모기를 유혹할 때 특별한 음역의 날개짓을 한다. 소리굽쇠를 거즈망으로 감싸고 암컷의 날개짓 소리와 음역이 비슷한 소리를 내면 숫모기가 몰려들어 거즈망 또는 다른 수컷을 붙잡고 교미하려 한다.

모기 연구가인 핀란드 헬싱키대의 야코 시라마키박사가 실험실에서 핀란드 민요를 흥얼거리며 G자로 시작하는 소절을 시작하자 입으로 모기 떼가 몰려들었다. 모기는 F와 A자에도 반응을 나타냈지만 E와 B자에는 무관심했다.

초음파 모기 퇴치기는 이런 모기의 특성을 이용한 것. 산란기의 암컷 모기는 숫모기를 기피하는데 이 기기는 숫모기의 소리 대역인 1만2000 1만7000㎐의 초음파를 발생시켜 '흡혈의 주범'인 암컷 모기를 쫓는다.

 왜 가려운가? 모기에 물렸을 때 가려운 것은 모기가 피를 빨 때 분비하는 침의 성분 때문. 모기의 침에는 마취 성분이 있어 당장 가렵지 않고 몇 초 뒤 인체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면서 가렵다.

 모기에 물리지 않으려면? 체열, 특정한 색깔, 사람의 움직임 등은 모기를 유인할 수 있다. 모기마다 좋아하는 색이 다르지만 빨강 파랑 검정색을 좋아하는 모기가 많다. 모기는 밤에는 주로 사람의 냄새를 맡고 표적으로 삼는데 사람마다 분비하는 '유인물질'이 다르기 때문에 남보다 모기에 잘 물리는 사람이 있다.

과학자들은 1920년대 사람이 숨쉴 때 내뿜는 이산화탄소가 모기를 유인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60년대엔 사람의 대사과정에서 나오는 젖산이 모기를 '유혹'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국 농림부와 플로리다대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젖산 뿐 아니라 인체가 지방을 태울 때 생기는 아세톤, 박테리아가 단백질을 분해할 때 생기는 이염기이황화물이 모기를 유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뚱뚱한 사람은 대사작용이 활발한 경우가 많아 '유인물질'이 잘 분비되고 이 때문에 모기에 잘 물린다. 저녁에 달리기 조깅 등 유산소 운동을 한 뒤 씻지 않고 자면 아세톤이 나오는데다 땀과 함께 젖산이 나오기 때문에 모기의 표적이 되기 쉽다. 향수나 비누 헤어스프레이 등도 모기를 유인할 수 있으므로 잘 때는 깨끗이 목욕해 땀과 몸의 화학물질을 씻어내야 한다. 방충제를 과신하는 사람이 많지만 방충제는 농도가 낮을 때 간혹 모기의 유인제가 되기도 한다.

 circle01_lightblue.gif 우리 모기는요  "번식기 암모기만 동물의 피 빨아요

저는 모기! 파리와 남남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아요. 중고교 때 생물의 분류 기준인 '종속과목강문계'를 외우신 적 있죠? 저는 족보 상으로 '파리 목(目) 모기 과(科)'에 속해요. 저의 영어 이름 'mosquito'는 파리란 뜻의 스페인어 'mosca'에서 따온 말이어요. 제가 풀잎 위에 알알이 맺힌 이슬을 먹고 산다고 하면 개도 소도 웃는데 정말 억울해요. '모기 드라큘라'라는 소리를 들으면 분통이 터져요. 평소 저희는 이슬이랑 식물의 꿀, 수액 등을 먹고 살아요. 다만 암컷이 '회임'했을 때 뱃속에 꽉 찬 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만 동물의 피를 빨아 먹죠. 얘들이 먹겠다는데 모성애도 죄인가요? 물론, 우리 중에서도 동족을 잡아먹는 나쁜 놈도 있지만 인간 세상은 안 그런가요?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복달인데 .

 circle01_lightblue.gif 음, 이제부터 우리들의 '은밀한 얘기'를 해볼까요?

저희 중 토고숲모기는 '둘 만의 섹스'를 고집하지만 대부분은 땅거미진 때나 해돋기 직전 언덕 위 허공에서 군무(群舞)를 이룬 다음 관계를 갖죠. 암컷 10 30 마리가 '노닐고' 있으면 수컷 몇 백 마리가 몰려와 기둥을 이루며 '폼'을 잡죠. 그러다가 눈맞은 암수가 땅으로 내려와 '음, 음, 음'하는거죠. 저희에겐 6개의 다리마다 한 쌍의 발톱이 있어 천장에 쉽게 매달릴 수 있는데 성 관계 때 수컷은 이 발톱으로 암컷의 요동치는 몸을 꽉 잡아 무사히 일을 끝냅니다. 그렇다고 '그룹 섹스하는 문란한 벌레'로 저희를 매도하진 마셔요. 암컷은 13번 정도 한번에 150여 개씩 알을 낳지만 그렇다고 13번 관계를 가졌다는 뜻은 절대 아니어요. 암컷은 몸 속에 정자 주머니가 있어 필요한 만큼 정자를 꺼내 수정시킬 따름이여요. 놀라지 마셔요. 암모기는 일생에 단 한 번만 관계를 갖는답니다. 일부종사(一夫從事)하는 곤충, 바로 저희랍니다.

 circle01_lightblue.gif 해외여행전 예방접종 필수

국내의 '모기병' 일본뇌염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이지만 삼일열말라리아는 비교적 가벼운 병. 일본뇌염은 돼지 등 동물의 피를 빨아먹은 작은빨간집모기가 사람을 물어 걸리기 때문에 축사(畜舍)에 유문등(誘蚊燈)을 설치해 모기를 채집한다. 작은빨간집모기가 한 마리라도 발견되면 '주의보'가 발령되고 하룻밤에 500마리 이상 잡히고 전체 모기 중 절반 이상이면 '경보'가 내려진다. 작은빨간집모기에 물려도 95%는 증세가 없지만 3 15세 어린이나 노약자는 꼭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

삼일열말라리아는 원충에 감염된 모기를 통해 사람에게 직접 전염되므로 가정집에 유문등을 설치한다. 매개모기인 중국얼룩날개모기가 전체 모기의 절반 이상이거나 50마리 이상에다 환자가 10만명에 10명 이상이면 '위험지역'으로 지정된다. 아주 드물게 발생하지만 토고숲모기에 물려 사상충증(絲狀蟲症)에 걸릴 수도 있다. 이 병에 걸리면 다리가 붓고 고환이 커진다. 완치 뒤에도 변형된 신체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들 질병을 예방하려면 피서지에서는 오후 10시 오전 5시 외출을 삼가고 굳이 돌아다니려면 긴팔을 입는다. 피부에는 디트 성분의 살충제를 바르고 옷에도 피복처리용 살충제를 바른다. 해외의 모기병 열대열말라리아는 삼일열말라리아와 달리 매년 200만 300만명의 목숨을 빼앗는 무서운 병. 예방을 위해선 출국 1주 전부터 귀국 뒤 4주까지 예방적 항생제를 복용토록 한다. 황열은 치사율 60%의 무서운 병으로 아프리가나 남미에 여행할 때엔 출국 10일 전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예방주사는 10년 마다 맞는다. 댕기열은 낮에 모기에 물린 다음 5 7일 잠복기를 거쳐 3 5일 고열 관절통 식욕부진 등의 증세가 나타나며 숨지는 경우는 드물다. 백신이 없고 대증(對症)요법으로 치료한다.
 

 ♣ 생활속의 특수종이

종이와 담배잎을 따로 태우면 종이가 훨씬 빨리 탄다. 그러나 담배에 불을 붙이면 담배잎과 종이가 같이 타들어간다. 담배종이 속에 ‘탄산칼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담배종이와 함께 탄산칼슘이 타면서 이산화탄소가 나오고, 이산화탄소가 종이에 불이 붙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또 담배 종이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수없이 나 있는데 이 구멍도 담배종이가 타는 속도를 늦춘다.

요즘 녹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녹찻잎은 티백이라는 종이봉투에 담겨 있는데 티백 종이도 첨단 기술이 담긴 특수 종이다. 티백은 한 겹의 종이봉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두 겹의 종이다. 티백이 두 겹인 것은 ‘브래지어 광고’에서 나온 말처럼 봉제선을 없애기 위해서다. 티백에 실로 꿰맨 봉제선이 있으면 이 부분으로 오염물질이 들어갈 수 있다. 이 때문에 티백은 안쪽 종이에 열가소성 수지를 넣은 뒤 열을 가해 본드처럼 붙인다.

티백의 겉 봉지도 일반 종이처럼 목재 펄프로 만든 것이 아니다. 화장용 티슈를 상자에서 꺼내면 먼지 같은 것이 날린다. 목재 펄프에서 나온 부스러기다. 이런 부스러기를 없애기 위해 티백은 필리핀에서 나온 ‘마닐라삼’이라는 마 섬유로 만든다. 때로는 바나나 나무 줄기나 잎사귀에서 나온 섬유로 티백을 만들기도 한다.

프린터나 복사기에 넣는 종이에는 돌가루가 들어 있다. 종이는 눈에는 깨끗해도 사실은 표면이 아주 울통불퉁하다. 이 종이에 인쇄를 하면 잉크가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 그래서 돌가루를 뿌려 움푹 들어간 부분을 메운다. 복사지에는 활석을 넣고, 사전 종이는 얇게 만들기 위해 이산화티탄을 넣는다.

 ♣ 스텐에 녹이 잘 안 스는 이유는?

  스테인리스 스틸(stainless steel)은 녹슬지 않는 강철이란 뜻. 보통의 강철에 크롬을 섞은 탓에 크롬강(chrome steel)이라고도 한다.

 철이 쉽게 녹스는 것은 원자 상태의 철이 산화철 분자보다 훨씬 작기 때문. 철과 산화철 분자가 촘촘히 결합하지 못해서다. 크롬은 공기 속의 산소와 아주 급속히 반응한다. 크롬 원자와 산화크롬 분자의 크기도 비슷해 둘은 쉽게 결합하며, 이때 산화크롬은 안정된 표면층을 형성한다. 이 산화물 층에 흠이 생기면 재빨리 산화물 층이 또 생겨 노출된 표면을 보호한다. 이 때문에 크롬은 더 이상 부식하지 않을 뿐더러 표면의 광택도 유지할 수 있다.

 다량의 크롬을 강철에 섞어도 똑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크롬강의 표면층은 산화반응만 막아 주므로, 다른 형태의 부식은 제한적이긴 하나 여전히 가능하다. 스테인리스 스틸이라고 해서 완전 스테인리스는 아니라는 뜻. 하지만 일반 가정용품 용도에서는 스텐이 다른 금속보다는 훨씬 녹이 덜 슬고 오래간다. 스텐에 표면 보호막을 생성시키려면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물속에서는 녹방지 효과를 그다지 기대할 수 없다.

 

 ♣ 신발 닳을땐 바깥쪽부터?

 구두 뒤축은 왜 대부분 바깥쪽부터 닳을까. "지구가 둥글어서 그렇다" 는 우스개가 있지만, 딱 부러지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신발 바깥쪽이 먼저 닳는 것은 몸의 자세와 발의 구조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엉덩이와 다리, 발로 이어지는 골격 구조상 사람 은 두 발을 서로 30도쯤 벌리고 있는 자세가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이 적당한 팔자 자세는 걸음을 걸을 때 필연적으로 발 바깥쪽에 힘을 주게 만든다.

 발의 구조도 관련이 있다. 편평족(평발)은 예외지만, 발바닥 안쪽 일 부는 돔 모양으로 떠서 땅에 닿지 않게 돼있다. 장심이라 부르는 이 부 위는 보행의 충격을 완화시켜 뇌를 보호하고, 발바닥의 혈관과 신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몸무게는 평소 이 장심을 제외한 활 모양의 바깥쪽 평면에 얹혀있다. 걸을 때에는 체중이 발뒤꿈치에서 장심의 바깥 가장자리를 거쳐 앞쪽으로 이동되고, 마지막으로 엄지발가락이 바닥을 차며 앞으로 나가게 된다.

 결국 서있든지 걷든지 힘은 주로 발 바깥쪽에 실리도록 돼있고, 신발 바깥이 먼저 닳는 현상은 그로 인한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이런 걸음걸이 패턴은 만 7살 정도의 어린 시기에 완성된다. 두 발의 각도에 약간씩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각자의 신체구조에 가장 편하고 에너지 소모가 적은 보행패턴이 이때 프로그램 된다.

 따라서 이를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것은 무리를 수반한다. 섹시한 엉 덩이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한 직업 모델들의 변형된 걸음걸이를 일반 여 성들이 무작정 따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심지어 신발 바깥쪽이 닳는 게 비정상인 줄 알고 억지로 걸음걸이를 고치려 애쓰는 것은 더더욱 부질없는 짓이다.
 
 

 ♣ 음주전 우유 마시면 속 덜 버리나?

 술 마시기 전에 우유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우유에 들어있는 지방과 단백질이 위벽에 보호막을 만들어 속을 덜 버린다는 믿음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답은 '아니오'다. 우유가 위벽에 일시적으로 막을 형성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강력한 위액은 그 보호막을 금방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다.  

물론 술마시기 전 우유를 마시는 것이 전혀 무익한건 아니다. 다만 통념과 다른 것은 우유의 효과가 발휘되는 곳이 위가 아니라 간이라는 점이다.  간은 알콜의 독성을 분해하는 작용을 한다. 여기에는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이 필요하다. 이런 성분이 부족하면 간의 알콜분해작용이 더뎌지고, 자연히 더 취하게 된다.

우유는 이런 영양분이 많기 때문에 간의 해독작용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유는 또 강한 산성을 띄고 있는 위액을 어느 정도 중화시켜 주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공복감을 덜 느끼게 되고, 그만 큼 과음과식의 유혹을 덜 받을 수 있게 된다.  결국 우유는 핏속에 흡수된 알콜 성분을 해독하는 데에는 얼마 간 도움이 되지만, 망년회장에서 들이킨 독주로부터 위장을 직접적으로 보호해주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 적목현상은 왜 생길까?

   분위기 좋은 밤 마음 먹고 찍은 사진이, 눈동자가 외계인처럼 빨갛게 나오는 바람에 낭패를 경험해본 사람이 적지 않다. 이를 '적목(red-eye)현상'이라 하는데 플래시를 터뜨려 촬영할 때, 특히 밤에 찍을 때 잘 나타난다.

  적목현상은 눈의 동공을 통해 입사한 플래시 빛이, 망막에서 반사돼 되돌아나와 그대로 카메라 렌즈에 들어가면서 생긴다. 이때 반사된 빛은 눈 안의 혈관 때문에 적색을 띄게 되고, 그 결과 인화된 사진에는 눈동자가 붉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파란 눈을 가진 서양인이라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적목현상은 낮보다 동공이 활짝 열려있는 밤중에 더 생긴다. 사람에 비해 동공 자체가 큰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에서는 한층 잘 관찰된다. 적목현상을 피하고 싶으면 플래시 위치를 렌즈 중심축으로부터 가급적 멀리하면 된다. 입사 각도를 어긋나게 함으로써, 동공으로 들어왔다 나가는 빛이 렌즈에 정통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플래시와 렌즈 중심이 8∼10㎝ 쯤 떨어지면 웬만한 적목현상은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플래시 위치를 조정할 수 없는 일반 자동카메라로 찍을 때도 적목현상을 피하는 방법은 있다.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으면 된다. 단체사진을 보면 유독 몇몇 사람 눈동자만 빨갛게 나온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하나, 둘, 셋" 할 때 렌즈를 열심히 노려본 사람들이다. 촬영 직전 밝은 빛을 잠깐 쳐다봐 동공을 축소시켜놓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시계방향의 유래

  시계바늘은 왜 '시계방향', 즉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게 만들어 졌을까? 야구장, 경마장, 스케이트장, 육상트랙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반시계방향',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도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어째서 시계만은 반대방향일까?.  

가장 유력한 설명은 '해시계 기원설'이다. 시계를 발명하기 전 인류는 시간의 흐름을 알기 위해 해시계를 사용했다. 지구의 북반구에서 해시계 막대기의 그림자는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움직인다. 그후 발명된 시계의 바늘은 이 해시계의 그림자를 모방해 만들어졌다.

만약 시계가 지구의 남반구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면 '시계방향'의 개념도 정반대가 됐을 것이다. 인류 문명이 북반구에서 일어난 까닭에 시계방향이 오늘날처럼 정해진 것이다.  

참고로, 해시계는 기원전 이집트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유럽을 거쳐 중국에도 전해졌다. 우리 나라는 정확한 문헌상 기록은 없으나 경주에서 발굴된 해시계 파편으로 보아 6∼7세기경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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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세상보기] 전자파 유해논란 언제까 circle01_lightblue.gif



전자레인지와 같은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고압 송전선이나 휴대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무서운 암이나 신경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논란이 십여년째 계속되고 있다. 전자파의 인체보호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법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에서 방출되는
전자파는 자칫하면 인체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자파의 일종이면서 세상을 밝혀주는 빛(가시광선)도 너무 밝으면 문제가 된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전자파
는 정확하게 말하면 전자레인지나 휴대폰에 쓰는 `마이크로파`와 60㎐의 교류에서 발생하는 `초저주파(ELF)복사`다.

마이크로파의 광자는 그 에너지가 매우 작다. 그래서 분자의 진동이나 회전에 영향을 주어서 물질을 뜨겁게 만들기는 하지만 화학결합을 파괴하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강력한 마이크로파는 몸에 화상을 입힐 수는 있어도 DNA나 단백질 분자의 화학결합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암을 유발시킬 수는 없다. 마이크로파가 문제라면 광자 에너지가 훨씬 더 큰 적외선과 가시광선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되어야만 한다.

초저주파 복사의 경우에는 진동하는 자기장이 인체의 신경계에 전류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고압 송전선이나 가전제품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의 세기는 지구 자기의 수백분의 1에 지나지 않아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결론은 몇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다. 현대과학으로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미국의 과학학술원.국립암연구소.물리학회 등은 물론이고 캐나다와 프랑스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실시한 대규모 역학조사에서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논란이 왜 사라지지 않을까. 정체불명의 선정적이고 신비적인 주장을 퍼뜨리는 무책임한 언론 때문이다.
전자파
의 유해 가능성은 정보국을 출입하던 폴 브로더라는 미국 기자에 의해 1976년에 처음 제기되었고, 우리의 경우에도 과학과는 관련이 없는 어느 재미동포에 의해 92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요란스러운 언론보도로 사회문제가 돼버린
전자파의 유해성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91년에 법을 제정하고, 지금까지 무려 2백50억달러를 낭비해야만 했다. 그렇게 밝혀진 결론을 1백억원을 들여 다시 확인하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막힌 정책이다. 전자파
가 나라에 따라 다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더구나 우리 언론은 97년부터 공개된 믿을 만한 연구결과들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우리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것은 정확하게 파악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만 모든 위험 요인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나친 결벽증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근거 없는 선동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면 아까운 돈과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그런 주장을 악용해 부당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도 있다. 정확한 과학상식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지키기도 어려운 것이 현대생활이다.
< 2001.11.12/중앙일보/이덕환(서강대 교수 · 이론화학)>
 

 

circle01_lightblue.gif [과학] 황사의 원인- -지나친 개간.방목 circle01_lightblue.gif


황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황사는 중국의 무리한 개간과 방목이 초래한 것이다. 하지만 황사는 수천만년 동안 히말라야와 티베트고원이 치솟으면서 중국 북부 지역이 건조해져 나타난 현상이다.

중국과학원 과학자들은 바람에 의해 모래와 진흙이 200m 이상 쌓인 황토(뢰스)고원을 조사한 결과 황사 현상은 지금까지 생각보다 1400만년이나 앞선 2300만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과학권위지 ‘네이처’ 14일자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중국 내륙의 사막화는 인도대륙판이 아시아대륙판에 충돌해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고원이 융기하면서 시작됐다. 중국 북부 내륙은 세계 최고의 산맥에 가로막혀 인도양과 태평양으로부터 수분 공급이 차단된 반면 산맥 양 옆의 인도와 동남아는 상습적인 홍수지대가 되었다는 것. 기상청 기상연구소의 황사 전문가인 전영신 박사는 “중국의 황사기록은 기원전 115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우리나라에서도 서기 174년 신라 아달라왕 때부터 흙이 비처럼 떨어지는 우토(雨土) 기록이 있을 만큼 황사의 역사는 오래됐다”고 말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박순웅 교수는 22일 과학기술한림원 주최로 열린 황사토론회에서 10여명의 한중 과학자들과 3월10일까지 2주 동안 황사가 빈발하는 중국 북부지역을 조사한 내용을 발표했다. 대부분이 이 사막인 이 지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300㎜미만이다.

박 교수는 “전에는 초원이었던 지역이 과도한 경작과 양떼 방목으로 모래 토양으로 바뀌고 있는 곳이 많은 반면 근처의 군사통제지역은 산이 수목으로 뒤덮여 무리한 개간이 사막화 초래의 원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 북서부 자란사막에 98년 세운 기상탑은 지표면의 모래가 바람에 깎여 1m나 낮아져 있었다.

박 교수는 “중국이 방풍림과 초지를 조성하고, 방목금지지역 등을 지정하고 있지만 광활한 사막을 다스리기에는 중과부적이다”며 “특히 파괴된 생태계의 복원은 그 곳 주민의 생활 수준 향상 없이는 어려워 보였다”고 말했다.

중국정부의 추정에 따르면 현재 한반도의 4배에 달하는 사막과 황토고원이 내몽고, 간쑤, 신장을 중심으로 매년 2330㎢씩 늘어나고 있다. 한해에 제주도보다 넓은 면적이 사막화되는 것이다. 국제농업기구(FAO)는 중국의 인구가 13억명으로 불어나면서 소 염소 양 등 가축은 1961년 1억7100만 마리에서 2000년 4억700만 마리로 늘어나 사막화가 가속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건조한 중국 북부지역 초원의 경작과 방목은 지하수의 고갈을 초래했다. 이 결과 지하수 수위가 크게 떨어져 호수가 사라지고, 강물도 말라붙었다. 미국의 위성이 30년 동안 중국을 관찰한 결과 중국 북부지역에서는 수천 개의 호수가 사라졌다. 이런 물 부족이 마치 부메랑처럼 사막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의 한 지리학자는 “중국 정부가 1994년 해안 도시의 팽창으로 농지가 잠식되자 이를 다른 곳에서 벌충토록 하는 토지정책을 취함으로써 중국 북서부지역의 과도한 개간을 초래했다”고 얼마전 ‘랜드유즈폴리시’라는 잡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월드워치연구소 레스터 브라운 박사는 “바람에 의한 토양 침식으로 살 수 없게된 농민들이 앞으로는 중국 도시로 대거 이주해 커다란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사막주변에 거대한 풍력발전단지를 세우면 바람의 속도를 줄여 토양 침식을 막을 수 있다”며 “풍차가 전기를 생산하면 땔감을 얻기 위해 숲을 벌목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2002/03/24)



circle01_lightblue.gif [과학으로 본 세상]"뇌는 첫인상 가장 오래 기억" circle01_lightblue.gif


선거에서 신념과 정책 못지 않게 표를 좌우하는 게 정치인의 인상이다. 요즘 대선 후보 곁에는 늘 이미지 메이커가 붙어 다닌다. 이미지 메이커에게 ‘대부’ 같은 존재가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폴란드 태생의 미국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아쉬이다. 그는 어떤 인상이 호감을 주는지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험은 이랬다. 두 집단의 대학생들에게 어떤 사람의 특성들을 설명하고 인상을 마음 속에 그려 점수를 매기게 했다. 먼저 한 집단에게는 ‘지적인’ ‘솜씨 있는’ ‘부지런한’ ‘단호한’ ‘현실적인’ ‘신중한’ ‘따듯한’을 보여주었고, 또 다른 집단에게는 이 중 ‘따듯한’만 ‘차가운’으로 바꿔 제시했다.

그 결과 ‘따듯한’이란 단어를 들은 대학생들은 관대함, 현명함, 정직함 등 대부분의 평가항목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반면 ‘차가운’으로 기술된 사람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나쁜 점수를 주었다. 차가운 인상은 대인관계에서 결정적 손해라는 게 실험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이처럼 차가우냐 따듯하냐는 주변적 특성과 달리 인상을 결정적으로 좌우해 ‘중심 특성’이라고 한다. 원래 인상이 그런지, 이미지 메이커의 작품인지 모르나 선거로 당선된 이승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인상이 부드럽다. 반면 총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은 차갑고 딱딱했다.

차가운 인상으로 손해를 보는 대표적 인물이 ‘대쪽’ 이회창 총재다. 그래서 “테 있는 안경을 써야 부드럽게 보인다”는 권유에 수십 년 써온 무테를 얇은 금속테로 바꾸었다. 또 참모진이 시사만화가들에게 뾰족한 턱을 부드럽게 그려달라고 부탁도 한다. 하지만 일단 형성된 인상을 바꾸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이처럼 첫인상이 나중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초두 효과’라고 한다. 솔로몬 아쉬는 이 효과도 이론화했다. 사람은 일단 첫인상이 형성되면 후에 들어오는 정보에 잘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대개 첫인상은 나중에 들어오는 정보를 해석하는 기준이 된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의 뇌는 낯선 장소가 안전한지, 상대가 사기꾼은 아닌지 재빨리 판단해 움직이는 ‘생존 기계’로 진화해온 결과다.

흔히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한다. 물론 자꾸 볼수록 인상이 달리지는 경우도 있어 이를 ‘빈발효과’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초두효과’에 비해 약하다. 실제로 나쁜 첫인상을 줘 두고두고 고생하는 사람이 주변에는 많다. 첫 대면, 면접, 첫선에서 따스한 첫인상을 주느라 노력하는 편이 나쁘게 각인된 첫인상을 지우느라 애먹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2002/04/02)

  

circle01_lightblue.gif '제왕절개' 용어의 유래 circle01_lightblue.gif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는 분만의 고통을 벌로 받았다. 이브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먹은 아담 역시 평생 일을 해야 먹고 사는 벌을 받았다. 출산과 노동의 고통을 인간의 원죄로 설명하는 구약성서 창세기의 내용이다.

여성에게 가장 큰 공포는 뭐니뭐니 해도 출산의 고통이다. 이 때문에 고통 없는 분만, 즉 무통(無痛)분만은 태고적부터 여성들의 숙원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여러 무통분만법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제왕절개다.

제왕절개는 독일어 '카이저슈니트(Kaiserschnitt)'를 일본어로 직역한 '데이오셋카이'(帝王切開)를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로마의 율리우스 케사르(시저)가 이 수술로 태어나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속설일 뿐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이를 처음 사용한 로마의 작가 플리니우스는 '절개한다'는 뜻의 'caesum'이란 말에서 '섹티오 카이사레아(sectio caesarea)'란 말을 만들었다. 이 말의 발음이 케사르와 비슷해 생긴 오해라는 것이다. 18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종교적 미신에 의한 제왕절개가 유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9년 대구 동산의료원에서 초대 원장이던 존슨 박사가 처음 시술했다.

제왕절개는 전신을 마취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대수술이기 때문에 출산 때는 고통이 없다. 그러나 마취가 깨면 진통제를 맞아야 하는 등 자연분만보다 더 고통이 심하다는 게 의사들의 충고다. 게다가 출혈 등 합병증 발생 위험이 자연분만의 두배, 임신부 사망률은 네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지난해(2001년) 우리나라 여성의 제왕절개 비율은 39.6%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1999년의 43%에 비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세계보건기구의 권고치 5~15%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이처럼 우리나라 여성의 제왕절개 비율이 높은 이유는 산모들의 오해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들의 부추김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진료비가 비싸 수입이 좋은 데다 의료분쟁이 발생할 경우 의사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흡연율.교통사고율.고아수출 등과 함께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부끄러운 세계 1위가 아닐 수 없다. <2002.07.11 중앙일보>

 

circle01_lightblue.gif 곰탕 · 설렁탕 · 사골 circle01_lightblue.gif


평소 '곰탕', '설렁탕', '사골' 등의 음식을 즐겨 먹는데, 이들 음식은 재료와 요리법에서 어떻게 구별되나?

‘곰국’이란 소의 양지, 사태, 양, 곱창 등의 부위를 많이 넣고 끓이는 국을 말하며 '육탕(肉湯)'이라고도 한다. 보양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 밥을 말았을 때 ‘곰탕’으로 부릅니다. 푹 ‘고아’ 만든다 해서 ‘곰탕’이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반면 ‘설렁탕’은 소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소에서 나올 수 있는 거의 모든 부위를 함께 넣고 푹 끓인 국, 또는 그 국에 밥을 만 음식을 가리킨다.

‘설렁탕’의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선농단(先農壇)에서 제사를 지낼 때 비가 장대처럼 퍼부어 먹을 것이 마땅치 않자 논에 있던 소를 잡아 푹 끓여 먹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설렁탕’으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또 국물 색깔이 눈처럼 뽀얗다고‘설농탕(雪濃湯)’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 사골은 소의 다리 뼈를 가리킨다.

 

circle01_lightblue.gif 범칙금·벌금·과태료 circle01_lightblue.gif

고속도로 버스전용차선 위반 고지서를 우송받았습니다. 범칙금을 기한 내에 내지 않아 법원으로 통고되면 벌금을 내는 것인가요? 과태료와 범칙금, 벌금 등의 차이가 뭔가요?

▶ 고속도로에서 버스전용차선을 위반했을때 부과되는 것은 '범칙금'에 해당된다.

'범칙금'
은 도로교통법 경범죄처벌법 위반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경미한 범죄행위에 대해 부과하는 것으로 경찰서장이 법규 위반자에게 발부한다. 경범죄처벌법상 '쓰레기 방치ㆍ자연훼손·노상방뇨·담배꽁초 버리기·도로 무단횡단ㆍ공공장소에서의 흡연ㆍ공중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 등도 범칙금 부과 대상이다. 만약 부과된 범칙금을 내지 않을 경우경찰서는 사건 처리를 법원에 넘긴다. 이 때는 즉결심판에 회부되는데 판사가 사건의 내용을 파악, ‘범칙금’이 아닌 ‘벌금’을 부과하게 된다.

'벌금(罰金)'
이란 재판절차를 거쳐 일정금액을 국가에 납부하게 하는 형사처벌로서 전과 기록에도 남는다는 점에서 범칙금과 큰 차이가 있다. 고속도로 버스 전용차선 위반 경우 승용차 기준으로 보통 6만원의 범칙금과 벌점 30점이 부과되는데 법원으로 넘어가면 벌금 액수가 더 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범칙금을 내지않고 법원에서 벌금을 납부하게 되면 ‘벌점은 받지 않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과태료'
란 행정법규 등 형벌의 성질을 가지지 않는 법령 위반에 대해 시청, 군청 등이 부과하는 ‘금전적 징계’를 가리킨다. 주차위반을 했다거나 주민등록법 규정을 위반했을 때 부과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지방자치법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조례(條例)로도 과태료를 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서울시청 법무과 서성만 법제팀장은 “과태료와 벌금, 범칙금은 위반내용과 단속 및 부과기관이 어디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 버스 전용차선 위반자는 경찰관으로부터 범칙금을 부과 받는다.

하지만 버스 전용차선에 끼어들었다가 감시카메라에 찍혔는데 위반자, 즉 운전자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에는 차량소유자에게 ‘차량에 대한 관리’ 책임을 물어 범칙금 대신 과태료(일반차량 기준 9만원)가 부과됩니다.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 시내도로에서 버스전용차선을 위반했을 경우에는 단속권자인 시청이 과태료를 부과하게 된다.
 

 

circle01_lightblue.gif 휴대폰 배터리 얼리면 성능 좋아지나 circle01_lightblue.gif


오래된 휴대폰 배터리를 랩이나 1회용 비닐팩으로 꽁꽁싸서 냉장고 냉동실에 24시간 정도 얼린 후 다시 사용하면 새것처럼 성능이 부활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과연 그런가요 ?

▶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얘기이다. 우선 이해의 편의를 돕기 위해 충전 배터리의 구조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충전 배터리의 골격은 양극판과 음극판, 그리고 이 둘을 분리해주는 '세퍼레이터'라는 분리판으로 구성돼 있다.

이 기본 구조물을 일반 건전지처럼 원통형으로 혹은, 휴대폰 배터리처럼 사각 형태로 말아 용기에 집어 넣는데 용기안은 전해액으로 채워진다. 전해액은 화학작용에 의해 극판 사이에 전류를 흐르게 해준다. 이 때 전해액이 어떤 이유로 양극판에 잘 스며들지 못할 수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충전 배터리로서의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전해액을 급속히 얼렸다가 다시 녹이게 되면 그 과정에서 전해액이 배터리 내부에서 종전보다 더 잘 퍼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별로 타당성이 없는 얘기이다. 비 충전용 일반건전지의 경우 사용하고 있지 않는 동안에 냉장고 등에 넣어두면 기온저하로 전자의 활동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소모량을 다소 줄일 수는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얘기들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포항공대 박수문교수(화학과)는 "화학적으로 배터리를 냉동시켰다고 성능이 더 좋아질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한다.  배터리를 냉동시키는 것과 동작이 안되는 가전제품을 한번 '툭'친 후 작동이 잘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이다. 국내 휴대폰 배터리생산 업계 역시 "오래된 배터리를 얼렸다 녹여 다시 사용하면 성능이 개선됐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은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circle01_lightblue.gif 제2의 심장을 보호하는 신발 circle01_lightblue.gif


지금은 맨발로 다니는 사람이 이상해 보이지만 신발을 신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에 비해 짧은 편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귀족이나 성직자, 전사만 신발을 신을 수 있었는데, 손윗사람 앞에서 벗고 성전과 같은 성역에서는 절대로 신지 않았다고 한다.

신발은 수렵이나 어로를 생업으로 삼던 산간지대 사람 또는 북방 민족들이 동물을 잡아먹고 남은 가죽을 발싸개로 이용하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기후, 풍토, 문화에 따라 여러 종류로 구분되는데 주로 샌들과 나막신, 짚신 등의 개방형과 구두 같은 폐쇄형으로 나뉜다.

11세기 이후 십자군 원정을 통해 이슬람의 선진문물이 유럽에 전해지자 왕실을 비롯한 부유층 상안들은 아시아의 호화찬란한 각종 장신구로 한껏 멋을 내 권력과 부를 과시하였다. '폴레인스' '크래카우라'로 불리는 신발은 구두코를 최고 45cm 길이로 꼬챙이처럼 뾰족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구두코를 늘여 사슬로 정강이에 연결시키면서 걸음을 걷지 못할 지경에 이르자 15세기 중반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구두코의 길이를 규제하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끝이 넓게 퍼진 소가죽 구두와 가운데만 뾰족한 오리너구리 신발이 유행하였고 상류층 여성들은 50cm나 되는 나무밑창을 댄 '쇼핀' 이라는 신발을 신었다. 품위있게 보이려고 높은 굽을 단 것이지만 두 사람의 하인이 부축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남성이 여성옆에서 팔을 부축해주는 풍습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프랑스 노동자들은 해고 위협을 받고 있을 때, 그들이 신고 있던 사보를 던져 잘 맞추기만 하면 단번에 기계 전체를 못쓰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보는 프랑스 노동자들이 전통적으로 신어 온 나무 신발로, 태업을 의미하는 '사보타주(sabotage)'는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제2의 심장'이라고 부르는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편안하고 기능적인 신발을 신어야 한다. 구두를 살 때는 발이 가장 길고 넓어지는 저녁 시간을 택한다. 또 구두 뒷부분의 밑창과 뒷굽은 딱딱해야 체중이 고루 실려 통증이 없다. 구두 앞부분을 구부렸을 때 완전히 휠 정도로 부드러워야 편하고 천연재료로 만든 것이 박테리아 번식이 없다. 여름에 즐겨 신는 샌들의 경우 양 옆을 죄는 끈이 있고 앞뒤는 구두처럼 발을 감싸 주는 것이 좋다. 하이힐은 굽 높이가 3.5cm 이하의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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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집중탐구

정보의바다 2007. 11. 21. 14:16

<소주에 관한 30가지 이야기>

1. 곡류를 발효시켜 증류하거나, 알코올을 물로 희석하여 만든 술을 소주(燒酒)라 부른다.

2. 유식한 척 하는 이들은 노주(露酒) ·화주(火酒) ·한주(汗酒) · 백주(白酒) ·기주(氣酒)라고도 부른다.

3. 참나무통 맑은 소주, 참眞이슬露, 참나무통 맑은 소주 스페셜(21도), 참소주, 독도소주, 영의 정, 뉴그린, 미소주(여성을 위한 소주), 그린, 곰바우 소프트(보해의 소주), 천년의 아침, 화이 트, 화이트生 등의 소주가 있다. "세계는 넓고 마실 소주는 많다." 참고로 개소주는 소주가 아니 다.

4. 소주의 원산지는 페르시아라고 하며 아라키주라 부른다한다. 어떤 이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3000년경 서아시아의 수메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어찌 되었든 아주 옛날에 어떤 놈이 소주를 만들어 내었다. <- 기특한 놈!!

5. 이 영향으로 개성지방에선 아직도 소주를 아락주라 한다. 개성에 가서 소주를 마시고 싶으면 참이슬 달라고 하지 말고 아락주 달라고 하기요! 알겠소. 동무?

6. 우리나라의 소주는 원나라로부터 전래되었다고 하는데 고려때부터 성행했다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땅에서 빚은 청주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그럼 청주는 어디서 전래?

7. 향토 소주로는 안동소주·개성소주·진도홍소주·제주민속주 등이 유명하다. 공통점은 맛있지만 졸라 비싸다.

8. 예전에는 25도가 주종을 이뤘지만(삼바25는 소주가 아니다) 요즘은 23도가 주종을 이루며 참나무통 스페셜은 21도짜리 소주다. 개인적으론 도수가 이보다 더 내려가면 소주라 부르지 않겠다. "20도를 사수하라. 투쟁!!"

9. 알콜중독자가 소주병을 들고 있어야지 캔맥주를 들고 있으면 왠지 어색하다.

10. 소주에는 증류식과 희석식이 있는데 동네 슈퍼에서 파는 소주의 대개는 희석식이다. 간단히 구분하면 증류식 소주는 매우 비싸고 희석식 소주는 싸다. 옛날 소주는 모두가 증류식이어서 지체높은 양반만 마실 수 있었다 한다.
"네 이놈 돌쇠야! 네가 감히 소주를 마시다니"

11. 소주 매니아는 병목의 두께 변화나 밑홈의 깊이에도 민감하다.

"이런 이런 신제품이 나오며 소주 밑병의 홈이 1mm 깊어졌군. 이걸 적분을 이용해 계산해보 면..."

12. 1916년 주세법이 공포 시행됨으로써 소주를 마시면 소주보다 세금을 더 마시게 되었다. 소주를 열심히 마시는 자는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공적자금을 조성해주는 애국자이다.

13. 소주의 용량으론 2홉, 4홉, 댓병, 팩소주가 있는데 요즘엔 주로 360ml 를 마신다.

야구장 밀반입시엔 생수병이 이용된다. "내가 물로 보여?"

14. 소주의 안주로는 족발, 회, 삼겹살등 다양하지만 스프를 곁들인 생라면이나 새우깡도 애용된다.

15. 요즘 소주방은 술집의 한 명칭이지만 옛날 소주방(燒廚房)은 조선 때, 대궐 안의 음식을 만들던 곳이었다.

16. 소주병은 화염병으로도 쓰이는데 걔중엔 막걸리병으로 화염병을 만드는 놈도 있다.
"병에 맞으면 아프잖아요! 덜 아프라고 플라스틱으로"

17. 소주와 잘 어울리는 동물은 두꺼비다. 두꺼비는 소주에 절어 지내거나 콩쥐의 깨진 독을 메 우거나 헌집줄게 새집달라는 인간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시달리는 불쌍한 동물이다.

18. 소주를 잔에 따르면 보통 여섯잔반에서 일곱잔반이 나오는데 병나발로 한큐에 끝내는 인간도 있다.

19. 소주를 엽기적으로 마시는 방법은 필자가 목격한 바 냉면사발로 마시기, 신발로 마시기, 재떨이로 마시기, 빨대로 마시기, 숟가락으로 퍼마시기, 냅킨에 적셔마시기가 있는데 공통점은 일찍 맛이 간다.

20. 소주에 불순물을 섞어 마시기도 하는데 콜라나 사이다를 섞는건 양반이고 커피를 타마시기도 하며 포카리스웨트를 타서 마시면 흡수가 빠르다고 한다. 알았다! 게토레이, 파워에이드도 비슷한 효능을 지닌다.

21. 보통사람은 소주 석잔 정도 마시고 운전하면 음주단속에 걸린다.

(난 한병 마셨는데도 음주 단속 안걸렸다고 메일 보내지 마라. 그건 자랑이 아니다!!)

22. 중국의 지명에 소주가 있는데 전술한 바, 소주의 원산지가 아니며 거기 사람들이 소주를 잘마시는지 모르겠다.

23. 맥주는 노랗다. 양주도 노랗다. 막걸리는 허여멀건하다. 소주만이 내맘처럼 투명하다. 왠지 찔린다.

24. 부산에는 C1(시원) 소주가 있고 제주도엔 한라산이라는 소주가 있다. 북한에 백두산이란 소주가 있는지는 모른다.

25. 소주는 에탄올 1g당 7.1kcal의 열량을 가지고 있으며 열량 이외의 다른 영양소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과다 섭취하면 비만의 원인이 된다. 그걸 우리는 흔히 술배라 한다.

26. 흡수된 에탄올의 2-10%만이 신장이나 폐를 통하여 오줌이나 내쉬는 호흡으로 체외로 배출 되고 섭취된 에탄올의 90%이상의 빠른 속도로 간에서 대사된다. 간에서 에탄올은 산화되어 아 세트알데하이드를 생성하고 다시 아세트산으로 변화되어 물과 탄산가스로 분해된다. 이때 중 간생성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가 숙취의 원인 물질이며, 얼굴을 붉게 하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며 두통과 위통을 유발시킨다. <- 뭔소리냐?? 하여튼 이리 알아라! 복잡하다!

27. 체중 60kg인 사람이 소주 1병(360ml, 25%)을 마신 경우에는 모두 산화되는데 약 15시간이 소비된다. 하지만 건강한 간이라해도 정상으로 회복되는 72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식후 30분 복용이 아니라 소주는 3일에 한번씩 복용하는게 만수무강에 도움이 된다.

28. 소주는 혈중알콜농도가 0.1% 정도 될만큼 적당히 마셨을 때 위산분비 촉진으로 소화에 도움을 주며 혈중 콜레스테롤 중 몸에 이로운 HDL의 양을 늘려줌으로써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 중추신경을 억제하여 안정제, 마취제 역할을 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 매일 소주 세병씩 마시는 자는 위 사항에 전혀 해당하지 않으며 가까운 정신병원을 찾아 상담키 바란다.

29. 소주를 깨기 위해 소주를 마시는 이른바 해장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다. 이러면 정말 술이 깬다는데 정말 깨는 인간들이다.

30. 술의 종류엔 보드카, 데킬라, 꼬냑, 고량주 등등이 있지만 역시 우리 소주가 우리 입맛에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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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꽃이 피는 식물
겨울에 꽃을 볼 수 있는 식물은 몇 가지로 한정된다. 미니 거베라, 바이올렛, 미니 장미, 베고니아, 시클라멘 등이 해당. 모두 양지에 두는 것이 좋다. 장미와 거베라, 베고니아처럼 화려한 꽃이 피는 식물은 습하게 두고, 나머지는 건조한 쪽을 좋아한다.
꽃을 피우려면 액체 비료를 줘라
겨울 식물의 경우, 대개 물과 비료를 절제한다. 식물이 ‘휴면기’에 들어가기 때문. 단, 꽃을 피우는 식물일 경우 예외.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즉효성이 있는 액체 비료를 준다.

물은 1주일에 한 번만, 충분히
물은 충분히 줘서 화분 밑으로 물이 빠져나올 정도로,
화분 받침에 고인 물은 반드시 버릴 것. 물조리개를 흙 쪽에 가깝게 대고 꽃에 닿지 않도록 주는 것이 좋다.
칼랑코우에
다육식물로 온실용 다년초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꽃과 잎을 감상할 수 있다.햇볕을 충분히 쬐어주고 다소 건조하게 기르는 것이 좋다. 습한 곳에서 키우면 꽃 색상이 변하면서 꽃이 떨어지게 되므로 주의. 월동 온도는 15℃ 이상이 되어야 한다.
관리법
① 4∼5일에 한번 정도, 표면의 흙이 다소 말라보일 때 물을 준다. 꽃잎에 물이 묻지 않도록 주의한다.
② 꽃이 진 꽃대는 가위로 잘라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새로운 꽃대가 잘 자라 계속 예쁜 꽃을 보게 된다.
시클라멘(cyclamen)
너무 직사광선이 쬐는 곳보다는 반그늘에서 잘 자라는 화초. 건조한 흙을 좋아하는 칼랑코우에와는 달리 다소 습한 것을 좋아하는 식물이어서 흙이 항상 축축하게 젖어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특히 꽃이 있을 때 건조하면 꽃이 금방 시들어버린다. 10∼21℃ 정도의 서늘한 기온을 좋아한다.
관리법
너무 더운 실내보다는 서늘한 베란다 쪽에서 키운다. 물은 자주 충분히 주도록 하고, 꽃잎에 물이 닿지 않도록 주의한다. 특히 분갈이를 할 때 잎이 쉽게 부러지므로 조심해야 한다.

열매가 있는 식물
천량금
6월경에 하얀색 꽃을 피우고 9월 가량에 빨간 열매가 맺는데, 이 열매는 이듬해 5월까지 달려있게 된다.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로 실내에서 키우기에 적합하다. 물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으므로 제때 충분히 주어야 한다.
관리법 온도가 10℃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실내가 건조한 경우 2∼3일에 한번, 보통 4∼5일에 한번 정도 뿌리 부분에 물을 충분히 준다.

산호수(Ardisia pusilla DC)
한국과 일본이 원산지인 식물인 만큼 우리나라 기후에 잘 맞는다. 줄기가 옆으로 뻗어나가는 특성이 있으므로 양옆으로 공간을 넉넉히 마련해주는 것이 좋다. 생육 적정온도는 20∼26℃ 정도로 온도만 잘 맞춰주면 일년 내내 하얀꽃이 피고 붉은 열매가 열린다. 직사광선보다는 반그늘이 좋고, 물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2∼3일에 한번 정도 듬뿍 물을 준다.
관리법
① 물을 줄 때에는 가능한 한 뿌리 부분에 가깝게 해서 밑으로 준다. 2∼3일에 한번 정도 준다.
② 화분 주변에 스프레이를 자주 해주어 공기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한다. 가습기를 틀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 ③ 6개월 정도가 지나면 앰플형의 비료를 화분에 꽂아서 영양을 보충해준다.

푸른 잎이 싱그러운 관엽식물
파키라(Pachira)
벤자민과 함께 실내에서 가장 많이 키우는 식물 중 한가지. 가지를 보기좋게 꼬아서 멋을 부릴 수 있고 건강한 잎에서는 보기 좋게 윤이 난다. 햇볕을 좋아하는 식물이므로 창가에 놓는 것이 좋고 다소 높은 기온에서 잘 자라는 것이 특징. 겨울철에 환기가 잘 되지 않을 경우 응애, 진딧물 등의 병충해 해를 입기 쉬우므로 각별히 유의한다.
관리법
① 주변 온도가 10℃ 이하로 내려갈 경우 화분 전체를 검정 비닐로 감싸서 보온에 신경을 쓴다. 이때 낮에는 반드시 환기를 시켜서 병충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한다.
② 아파트 실내라면 4∼5일에 한번 정도 물을 준다. 온도가 낮을 경우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번꼴로 물주기를 해줘도 괜찮다.
③ 깨끗한 물수건이나 페이퍼타월로 잎의 표면을 잘 닦아주면 기공이 열리게 되어 생육에 도움이 된다.

싱고니움(Syngonium podophyllum 'White Butterfly')
햇볕이 없는 욕실에서도 생육이 가능하고 수경재배할 수도 있어서 실내 원예 식물로 다양하게 이용된다. 여름에는 강한 직사광선을 피하고 겨울에는 약한 햇볕을 받도록 해준다. 월동온도는 약 10℃ 가량. 물은 흙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준다.
관리법
한달에 2∼3번 정도 물에 희석해서 주는 비료인 액비를 주면 푸른 잎이 건강하게 잘 자란다. 실내가 건조한 경우 주변에 스프레이를 자주 해주면 좋다.
호야(Hoya)
잎이 작고 단단하며 길게 늘어지는 성질이 있다. 잎에 반점이 있는 것과 없는 종류로 나뉘는데, 반점이 있는 것이 햇볕에 더 약한 편으로 봄부터 초가을까지는 반그늘에서 키우도록 한다. 반점이 없는 것은 약한 정도의 햇볕이면 괜찮다. 적정온도는 20℃ 안팎. 물주기는 봄부터 여름에는 충분히 주고, 겨울에는 건조하게 관리한다.
관리법
4∼5일에 한번 정도 물을 주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놓아둔다. 베란다보다는 실내에 들여놓는 것이 좋겠다.

그 밖에 자주 키우는 식물들
호접란(Phalaenopsis)
보라색의 화려한 꽃을 피우는 양란으로 특히 선물용으로 인기가 좋은 식물. 물주기는 화분의 흙 표면이 하얗게 건조된 다음 1∼2일을 기다려서 해준다. 비료는 줄 필요가 없다. 햇볕은 특히 주의를 요하는데, 강한 햇볕을 받게 되면 잎이 타기도 하고 포기가 탈수상태가 되기도 한다. 온도는 15∼20℃ 정도로 일정하게 맞춰주는 것이 좋다. 습도도 50∼70% 정도를 유지하도록 한다.
이때 꽃잎에 물이 닿도록 직접 스프레이를 하면 꽃이 금방 떨어져버리므로 절대 금물.
관리법 따뜻한 곳에 들여놓고 물은 4∼5일에 한번 정도표면 흙이 말랐을 즈 음에주도록 한다. 꽃잎에 물이 닿지 않도록 주의한다.

허브(herb)
종류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충분한 햇빛과 물을 필요로한다. 실내에서 키울 때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환기를 잘 시켜주어야 한다는 것. 신선한 공기를 쐬지 못하면 금방 시들어 버린다.
관리법
① 잎이 어느 정도 자라면 잘라서 종류에 따라 차나 샐러드 등에 넣어 먹거나 말려서 포푸리로 활용한다.
② 허브가 담아져 있던 플라스틱 화분은 한달 이내에 분갈이를 해주어야 한다. 배수가 잘 되는 배양토를 담아준다.
③ 해가 잘 드는 곳에 놓아두고 물은 2∼3일에 한번 정도로 자주 준다.

선인장(仙人掌 , cactus)
충분한 햇빛을 필요로 하며 습하거나 지나친 비료를 싫어하므로 부식질이 많은 토양보다는 배수가 잘 되는 토양(하이드로볼:모래를 7:3의 비율로 혼합한 토양)을 쓰는 것이 좋다. 온도는 따뜻한 곳이 적당하다.
관리법
물은 한달에 한번 정도로 가끔만 주도록 하고 해가 잘 드는 따뜻한 곳에 놓아둔다
초록이끼와 야생화의 세상 구경
이슬 맺힌 촉촉한 이끼. 자연의 신선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야생화. 생각만 해도 머리가 맑아지는 듯하다. 작은 이끼 하나에서도, 한 송이 야생화에서도 초록빛 물결이 퍼져나가 마음까지 행복해진다. 이번 겨울엔 올망졸망한 이끼와 야생화로 집안 가득한 싱그러움을 느껴보자.


오늘, 지구로 놀러왔다
귀여운 아기별 야생화

너무나도 작고 앙증맞은 하얀 꽃이 별모양으로 생겨서 ‘아기별’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이름만큼이나 예쁜 꽃과 작고 가느다란 잎들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은 어린 왕자가 사는 별을 연상시킨다.
‘아기별’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새하얀 접시에 고이 담아두면, 오늘밤 꿈 속에 어린 왕자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숲에서 폭~ 떠왔다
세레기아 이끼 두 그릇

싱싱한 초록 이끼 세레기아를 조금씩 떠서 작은 그릇에 담아 식탁 위에 놓아두자. 보기만 해도 입안 가득 싱그러움이! 밥맛도 좋아지고, 식사시간도 즐거워진다.
소박한 그릇에 정성스레 담은 작은 이끼만으로도 테이블은 신선한 초록 세상이 된다.



차 한 잔, 맑은 공기 두 스푼
티테이블 위 미니 정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속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정크 화분. 자연스럽게 흐드러진 아지안탐, 난타나 등의 관엽식물 사이사이로 물기를 가득 머금은 와소니아와 세레기아 이끼가 깔려 있다.
초록 이끼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숲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는 기분이 들어 티타임이 한결 여유롭고 상쾌하다.

tip : ☞ 이끼는 그늘진 곳에 두고 습도가 충분히 유지되도록 물을 주되 많이 주면 쉽게 상하니 주의할 것. 야생화는 화분 위의 흙이 마르면 1회씩 흠뻑 주는 것이 원칙.
집안 가득 늘푸른 향기 - 허브 연출법



나무 상자를 이용한 미니가든

여러 가지 종류의 허브를 자연스럽게 기르기 위해서는 나무상자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내추럴한 느낌의 나무상자를 구해 사포로 문질러 깔끔하게 정리한 후 아크릴 물감으로 예쁜 글씨를 써 넣어주기만 하면 나만의 화분 정리대가 완성. 작은 선반에 올려주면 더 많은 양의 화분을 보기 좋게 정리할 수 있다.
비용 : 20,000~30,000원
화이트 그릇에 담은 레몬타임&바질

요리에 많이 사용하는 레몬타임이나 바질 같은 허브는 주방에 놓고 키워 바로 요리에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 이가 빠진 그릇이나 자주 사용하지 않는 그릇에 허브 화분을 심어 주면 주방 분위기와도 잘 어울린다.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릇을 이용하면 더 색다른 느낌을 연출 할 수 있다.
비용 : 12,000~15,000원
우드락으로 만든 사각화분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다면 사각으로 된 예쁜 화분을 한번 만들어보자.
우드락을 사다리꼴로 네 개를 잘라 글루건으로 고정시켜 만든 다음, 아랫부분에는 물빠지는 구멍을 만든다. 은색 라커를 뿌려 색을 입혀 말린 후 허브의 이름을 적어 둔다.
허브 종류별로 예쁜 화분에 심어 거실 한 켠에 둔다. 모던한 분위기와 어우러진 초록의 자연이 색다른 느낌으로 연출된다.
비용 : 15,000~20,000원
시험관에 꽂은 허브잎들...
어디에 둬도 싱싱함이 살아난다.


허브 잎들은 생수에 담가두면 2-3일 정도 유지할 수 있다. 시험관을 준비해 다양한 종류의 허브잎을 잘라 잎이 잠기도록 꽂아두면 집안 어디에 둬도 잘 어울린다.
비용 : 30,000~50,000원
유리화분에 담긴 라벤더와 레몬밤

모일반적이니 토분이 좀 밋밋하다면 페인팅을 하는 등 분위기를 바꿔보면 허브가 더 돋보인다. 유리화분을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
유리화분에 심은 라벤더와 레몬밤이 투명함과 함께 더욱 돋보인다.
비용 : 20,000~30,000원
2~3월에 즐기기 좋은 꽃들


모던 감각 튤립 데커레이션
프로방스나 네덜란드를 떠올리게 하는 이국적인 꽃, 튤립. 봄과 초여름이 제철이지만, 겨울에도 구할 수 있다. 꽃이 오래 지속되며 다른 꽃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가장 쉽게, 하지만 평범하지 않게 탐스런 튤립을 즐길 수 있는 방법. 투명한 유리병이나 아크릴병에 튤립을 쏙 빠뜨려보자. 똑같은 모양의 꽃병 두세 개를 일렬로 총총 세워놓으면 더욱 감각적이다. 줄기나 잎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세우면 되는데, 잘 세워지지 않는 꽃이라면 유리병 바닥에 하얀 돌을 깔아도 좋다.


일렬종대 수선화 군단

같은 키로 촘촘히 늘어선 수선화 꽃병이 깔끔하고 심플한 실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 직사각형의 꽃병에 꽃을 같은 키로 나란히 세우는 간단한 방법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세련미를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꽃을 나란히 늘어세울 때는 직사각형의 유리 꽃병이나 스틸 꽃병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다른 꽃과 함께 꽃꽂이할 때는 표백제 한 방울을 떨어뜨린 물에 24시간 정도 담가두었다가 꽂으면 좋다.



총총총 포피 오형제
동양에서는 양귀비로 불리며 노랑, 주황 등 컬러풀한 색깔이 눈길을 끄는 포피. 초봄이 제철이라 값싸게 구할 수 있으며 꽃이 피기 전 잔털이 송송 붙은 열매 모양의 꽃봉오리 또한 매력적이다.

포피(양귀비)의 아름다운 꽃송이와 단아한 줄기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아이디어. 가느다란 시험관에 포피를 한 송이씩 멋스럽게 꽂고, 이끼를 심은 예쁜 접시에 율동감 있게 배열한다. 큰 꽃병을 놓기에는 부담스러운 작은 테이블이나 좁은 창틀에 올려놓기에 안성맞춤. 세 송이나 다섯 송이 등 홀수로 꽂으면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더할 수 있다.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려요!

봄철에 가장 예쁘고 가격도 저렴한 스톡!
아무렇게나 뭉쳐 꽂아도 나름의 멋이 나지만 투명한 화기에 줄기를 트위스트해서 꽂으면 색다른 느낌을 즐길 수 있다.
꽃을 거의 같은 길이로 잘라 꽃병에 곧게 세운 다음, 꽃 바로 아랫 부분의 줄기를 양손으로 감싼다. 그리고 한 방향으로 열번 정도 줄기를 회전시키면 멋지게 트위스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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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從姪)
3종질
(三從姪)
4종질
(四從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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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從兄弟)
내재종형제
(內再從兄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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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3종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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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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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3종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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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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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再從姪)
외3종질
(外三從姪)

  친족간 계촌법(親族間 計寸法) 


촌수(寸數)란

친족간의 멀고 가까움을 나타내기 위하여 고안된 숫자 체계. 대나무의 '마디'를 친등(親等)을 표시하는데 전용(轉用)되었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우리와 같이 친족성원을 촌수로 따지고, 그것을 친족 호칭으로도 사용하고 있는 경우는 발견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촌수는 어느 친척이 나와 어떤 거리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말하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어느 문화에서도 찾아볼 수도 없는 우리 고유의 제도이다.
이 촌수 제도는 12세기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증하고 있으며, 조선의 [경국대전]에 종형제를 4촌형제로, 종숙(從叔)을 5촌숙으로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촌수 계산- 계촌법

촌수는 기본적으로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를 한 마디(1촌)로 간주하여 계산된다. 즉, 나와 부모사이는 한 마디로 1촌관계에 있다.
형제자매와 나의 촌수는 같은 부모의 자식이기에, 나와 부모간의 1촌과 부모와 나의 형제·자매까지의 1촌을 합하여 2촌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버지의 형제들은 나와 아버지 1촌, 아버지와 할아버지 1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들 1촌을 더하여 3촌 관계에 있는 셈이다.
3촌의 자녀들은 나의 4촌이며, 그들의 자녀들은 나의 5촌 조카들(당질)이다.

친족의 호칭과 촌수

이런 친소(親疎- 가깝고 먼 정도)의 관계를 나타내는 촌수가 친족 호칭으로 대용되고 있는 것은 대체로 3, 4, 5, 6, 7, 8촌에 국한되어 있는 것 같다. 친족호칭으로서 촌수 중 가장 먼거리에 있는 것이 8촌인 점은 조상 제사를 고조(高祖)까지의 4대 봉사(奉祀)를 원칙으로 하였고, 이러다보니 8촌까지의 친족원들은 빈번한 접촉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짝수는 모두 나와 같은 항렬이 사람들이고, 홀수는 모두 나의 윗항렬(아저씨) 아니면 아랫항렬(조카)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촌수는 친소(親疎)관계의 척도로서는 효과적이지만, 이것이 어느 세대임은 분명히 해주지 못한다.(예, 5촌은 당질(조카) 이기도 하고, 당숙(아저씨)이기도 하다.)

숙(叔)은 아저씨, 질(姪)은 조카

그래서 친족호칭에서 조(祖), 숙(叔), 형(兄), 질(姪), 손(孫) 등의 세대를 표시하는 호칭과 종(從), 재종(再從), 삼종(三從) 등의 친소의 정도를 표시하는 접두어의 조합으로 다양한 호칭이 발달되었지만, 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중국의 영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고유의 것으로 개발된 것이 바로 촌수라 하겠다.



| 남 자 | 여자(고모계) | 외 가 | 친족간 계촌법 | 친가 호칭 | 외가 호칭 |

 
  촌수호칭 : 친 가 


☞증조 : 촌수-3촌
◇ 증조를 부를 때 → 증조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님

◇ 증조를 남에게 말할 때 →증조부, 증조 할아버지

◇ 증조가 나를 부르실 때→ 이름

◇ 증조가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증손자, 증손녀

☞증조모 : 촌수-3촌

◇ 증조모를 부를 때 → 증조 할머니, 증조 할머님

◇ 증조모를 남에게 말할 때 →증조모, 증조 할머니

◇ 증조모가 나를 부르실 때→이름

◇ 증조모가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증손자, 증손녀

☞종증조 : 촌수-5촌

◇ 종증조를 부를 때 → 종증조 할아버지, 종증조 할아버님

◇ 종증조를 남에게 말할 때 → 종증조부, 종증조 할아버지

◇ 종증조가 나를 부르실 때 → 이름

◇ 종증조가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종증손자, 종증손녀

☞조부 : 촌수-2촌

◇ 조부를 부를 때 → 할아버지, 할아버님

◇ 조부를 남에게 말할 때 → 조부, 왕부(사후에는 조고, 왕고, 선조고, 선왕고)

◇ 남의 조부를 말할 때 → 조부장, 왕대인, 왕존장(사후에는 왕고장, 선왕존장, 선왕대인)

◇ 조부께서 나를 부르실 때 → 이름

◇ 조부께서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손자애, 손아, 손녀, 손녀딸

◇ 조부께서 남의 손자를 말할 때 →영손, 영포, 손녀 따님

☞조모 : 촌수-2촌

◇ 조모를 부를 때 → 할머니, 할머님

◇ 조모를 남에게 말할 때 → 조모 (사후에는 조비, 선조비)

◇ 남의 조모를 말할 때→ 왕대부인, 존왕대부인(사후에는 선왕대부인)

◇ 조모께서 나를 부르실 때 → 이름

◇ 조모께서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손자애, 손아, 손녀, 손녀딸

◇ 조모께서 남의 손자를 말할 때→ 영손, 영포, 손녀 따님

☞종조 : 촌수-4촌

◇ 종조를 부를 때 → 종조부, 종조 할아버지

◇ 종조을 남에게 말할 때 → 종조부, 종조 할아버지(사후에는 선종조)

◇ 남이 종조를 말할 때 → 귀종조장(사후에는 선종조장)

◇ 종조이 나를 부르실 때 → 얘야

◇ 종조이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종손자, 종손녀, 맏형손자, 아우 손녀

☞종조모 : 촌수-4촌

◇ 종조모를 부를 때 → 종조모, 종조 할머니

◇ 종조모를 남에게 말할 때 → 종조모, 종조 할머니(사후에는 선종조모)

◇ 남의 종조모를 말할 때 → 귀종조모님 (사후에는 선종조모님 )

☞재종증조 : 촌수- 6촌

◇ 재증조를 부를 때 → ∼할아버지

◇ 재증조를 남에게 말할 때 → 재종조

◇ 재증조가 나를 부르실 때 → 이름, 얘야

◇ 재증조가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재종손, 재종손녀

☞부 : 촌수-1촌

◇ 아버지를 부를 때 → 아버지, 아버님

◇ 아버지를 남에게 말할 때 → 가친, 엄친, 노친 (사후에는 선친, 선고, 선군, 돌아가신 아버님)

◇ 남의 아버지를 말할 때 → 춘부장, 대인, 존당, 어르신, 어르신네 (사후에는 선고장, 선대인, 선부군)

◇ 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실 때 → 남 : 아들, 큰애, 작은애, 몇째애, ∼아비, 이름 / 여 : 딸, 큰애, 몇째애, 작은애, ∼어미, ∼집, 이름

◇ 아버지께서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남 : 가아, 돈아, 아들애, 자식놈 / 여 : 여아, 여식, 딸애, 딸년

◇ 아버지께서 남의 자식을 말씀하실 때 → 남: 영식, 자제, 아드님 / 여 : 영애, 따님

◇ 어머니를 부를 때 → 어머니, 어머님

◇ 어머니를 남에게 말할 때 → 모친, 자친, 노모 (사후에는 선비)

◇ 남의 어머니를 말할 때 → 대부인, 자당, 영당 (사후에는 선대부인, 선자당)

◇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실 때 → 남 : 아들, 큰애, 작은애, 몇째애, ∼아비, 이름 / 여 : 딸, 큰애, 몇째애, 작은애, ∼어미, ∼집, 이름

◇ 어머니께서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남 : 가아, 돈아, 아들애, 자식놈 / 여 : 여아, 여식, 딸애, 딸년

◇ 어머니께서 남의 자식을 말씀하실 때 → 남 : 영식, 자제, 아드님 / 여 : 영애, 따님

☞숙부 : 촌수-3촌

◇ 숙부를 부를 때 → 백부, 큰아버지, 몇째 아버지, 작은아버지, 숙부, 삼촌, 중부, 계부 (사후에는 선백부, 선숙부, 선계부)

◇ 숙부를 남에게 말할 때 → 백부, 큰아버지, 몇째아버지, 작은아버지, 숙부, 삼촌 중부, 계부(사후에는 선백부, 선숙부, 선계부)

◇ 남의 숙부를 말할 때 → 백부장, 완장, 중부장, 계부장, 숙부장(사후에는 선백부장, 선계부장, 선종부장)

◇ 숙부가 나를 부르실 때 → 이름

◇ 숙부가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조카, 질녀

☞숙모 : 촌수-3촌

◇ 숙모를 부를 때 → 백보, 큰어머니, 몇째 어머니, 작은어머니, 숙모

◇ 숙모를 남에게 말할 때 → 사백모, 사숙모(사후에는 선백모, 선숙모)

◇ 남의 숙모를 말할 때 → 존백모, 손숙모, 존백모부인, 존숙모부인 (사후에는 선백모부인, 선숙모부인)

◇ 숙모가 나를 부르실 때 → 이름

◇ 숙모가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조카, 질녀

☞종숙(당숙) : 촌수-5촌

◇ 종숙를 부를 때 → 종숙, 당숙, 아저씨

◇ 종숙을 남에게 말할 때 → 비종숙, 비당숙 (사후에는 선당숙, 선종숙)

◇ 남이 종숙를 말할 때 → 당숙장, 종숙장, 당완장 (사후에는 선당숙장, 선종숙장, 선당완장)

◇ 종숙이 나를 부르실 때 → 이름, 종질

◇ 종숙이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종질, 종질녀

☞종숙모(당숙모) : 촌수-5촌

◇ 종숙모를 부를 때 → 종숙모, 당숙모, 아주머니

◇ 종숙모을 남에게 말할 때 → 종숙모, 당숙모

◇ 종숙모이 나를 부르실 때 → 이름, 종질

◇ 종숙모이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종질, 종질녀

☞재종숙 : 촌수-7촌

◇ 재종숙을 부를 때 → ∼아저씨, ∼아제.

◇ 재종숙을 남에게 말할 때 → 재종숙

◇ 재종숙이 나를 부르실 때 → 이름, 재종질 (재종질 나이가 10살 이상 연상인 경우)

◇ 재종숙이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재종질, 재종질녀

☞형제 : 촌수-2촌

◇ 형을 부를 때 → 형, ∼째형, 큰형, 작은형

◇ 형을 남에게 말할 때 → 사백, 사중, 사형, 가백, 가중, 가형 (사후에는 선백, 선형, 선중형)

◇ 남의 형을 말할 때 → 백씨, 백씨장, 중씨장, 중씨, 백씨장 (사후에는 선백씨장, 선중씨장)

◇ 동생을 부를 때 → 아우, 동생, 사제, 가제, 사계 (사후에는 망제)

◇ 동생을 남에게 말할 때 → 아우, 동생, 사제, 중제, 계제, 가제 (사후에는 망제, 망중제, 망계)

◇ 남의 동생을 말할 때 → 영제씨, 영계씨, 현제씨, 현계씨 (사후에는 선제씨, 선계씨)

☞형수, 제수 : 촌수-2촌
◇ 형수를 부를 때 → 아주머니, 형수님, 형수씨, 형수

◇ 형수를 남에게 말할 때 → 영형수씨

◇ 남의 형수를 말할 때 → 형수씨

◇ 형수가 나를 부르실 때 → 결혼전-도련님, 결혼후-아주버님, 서방님

◇ 형수가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시동생. ∼째 시동생

◇ 제수를 부를 때 → 아주머니. 제수씨, 계수씨

◇ 제수를 남에게 말할 때 → 제수, 계수

◇ 남의 제수를 말할 때 → 영제수씨. 영계수씨

◇ 제수가 나를 부르실 때 → 아주버님

◇ 제수가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시형, 시아주버니

☞종형제 : 촌수-4촌

◇ 종형을 부를 때 → 종형, 사촌형, 형

◇ 종형을 남에게 말할 때 → 비종형, 비종백, 당백 (사후에는 선종백, 선종형)

◇ 남의 종형을 말할 때 → 영종씨장, 영종백씨장 (사후에는 선종씨장, 선종백씨장)

◇ 종형이 나를 부르실 때 → 종제, 사촌동생

◇ 종형이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비종제, 당제 (사후에는 망종제)

◇ 남의 종제를 말할 때 → 영종제. 영종계씨 (사후에는 선종제씨)

☞재종형제 : 촌수-6촌

◇ 재종형을 부를 때 → 형, ∼형

◇ 재종형을 남에게 말할 때 → 재종형

◇ 재종아우을 부를때 → 이름, 아우

◇ 재종아우을 남에게 말할 때 → 재종

☞삼종형제 : 촌수-8촌

◇ 삼종형을 부를 때→ 형님, ∼형님

◇ 삼종형을 남에게 말할 때 → 삼종형

◇ 삼종동생을 부를때 → ∼아우, 이름

◇ 삼종종생을 남에게 말할 때 → 삼종제




| 남 자 | 여자(고모계) | 외 가 | 친족간 계촌법 | 친가 호칭 | 외가 호칭 |

 
  촌수호칭 : 외 가 


< b 촌수-2촌 : ☞외조부>

◇ 외조부를 부를 때 →외조부, 외할아버지

◇ 외조부를 남에게 말할 때→외조부, 외왕부

◇ 남의 외조부를 말할 때→외왕대인, 외왕존장

◇ 외조부가 나를 부를 때→이름

◇ 외조부가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외손자, 외손녀

☞외조모 : 촌수-2촌

◇ 외조모를 부를 때 → 외조모, 외할머니

◇ 외조모를 남에게 말할 때 → 외조모

◇ 남의 외조모를 말할 때 → 외왕대부인

◇ 외조모가 나를 부를 때 → 이름

◇ 외조모가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외손자, 외손녀

☞이모부 : 촌수-3촌

◇ 이모부를 부를 때 → 이모부, 이숙

◇ 이모부를 남에게 말할 때 → 비이숙

◇ 남의 이모부를 말할 때 → 귀이숙장

☞이모 : 촌수-3촌

◇ 이모를 부를 때 → 이모, 아주머니

◇ 이모를 남에게 말할 때 → 비이모

◇ 남이 이모를 말할 때 → 귀이모부인

◇ 이모가 나를 부르실 때 → 이름

◇ 이모가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이질, 이질녀

☞모 : 촌수-1촌

◇ 어머니를 부를 때 → 어머니, 어머님

◇ 어머니를 남에게 말할 때 → 모친, 자친, 노모 (사후에는 선비)

◇ 남의 어머니를 말할 때 → 대부인, 자당, 영당 (사후에는 선대부인, 선자당)

◇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실 때 → 남 : 아들, 큰애, 작은애, 몇째애, ∼아비, 이름 / 여 : 딸, 큰애, 몇째애, 작은애, ∼어미, ∼집, 이름

◇ 어머니께서 나를 남에게 말씀하실 때 → 남 : 가아, 돈아, 아들애, 자식놈 / 여 : 여아, 여식, 딸애, 딸년

◇ 어머니께서 남의 자식을 말씀하실 때 → 남 : 영식, 자제, 아드님 / 여 : 영애, 따님

☞외숙 : 촌수-3촌

◇ 외숙을 부를 때 → 외숙, 외삼촌, 외아저씨

◇ 외숙을 남에게 말할 때 → 비외숙, 비표숙

◇ 남의 외숙을 말할 때 → 귀외숙, 귀표숙

◇ 외숙이 나를 부르실 때 → 이름

◇ 외숙이 나를 남에게 말할 때 → 생질, 생질녀

☞외숙모 : 촌수-3촌

◇ 외숙모를 부를 때 → 외숙모, 표숙모

◇ 외숙모를 남에게 말할 때 → 비외숙모, 표외숙모

◇ 남의 외숙모를 말할 때 → 귀이숙모, 귀표숙모

◇ 외숙모가 나를 부르실 때 → 이름

◇ 외숙모가 나를 남에게 말할 때 → 생질, 생질녀

☞이종 : 촌수-4촌

◇ 이종형을 부를 때 → 이종형, 이종사촌형

◇ 이종형을 남에게 말할 때 → 비이종형

◇ 남의 이종형을 말할 때 → 귀이종씨

◇ 이종제를 부를 때 → 이종제, 이종사촌형

◇ 여종제를 남에게 말할 때 → 비이종제

◇ 남의 이종제를 말할 때 → 귀이종

☞외종 : 촌수-4촌

◇ 외종형을 부를 때 → 이종형, 표종형, 외사촌형

◇ 외종형을 남에게 말할 때 → 비외종형, 비표종형

◇ 남의 외종형을 말할 때 → 귀외종씨, 귀표종씨

◇ 외종제를 부를 때 → 외종제, 표종제, 외사촌 동생

◇ 외종제를 남에게 말할 때 → 비외종제, 비표종제

◇ 남의 외종제를 말할 때 → 귀외종, 귀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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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리

 제부도

 조개골

 주문도

 콩돌

 큰풀안

 하나깨

 수기






강원도


 가진리

 거진

 거진11리

 거진2리간이

 경포

 공현진

 교암리

 궁촌

 낙산

 남애

 남애1리

 남애3리

 남항진

 노봉

 남이섬

 대진1리간이

 덕산

 동산포구

 동호

 등명

 마차진

 망상

 맹방

 명파리

 문암1리

 문암2리

 북분리

 반암

 백도

 봉수대

 봉포간이

 승공

 사천

 삼척

 삼포2리

 설악

 소돌

 속초

 송정

 송지호

 수산

 영금정

 아야진

 안인

 어달

 연곡

 연봉

 옥계

 오산

 용화

 월천

 임원

 위도

 의상대

 정동진

 중도

 주문진

 죽도

 지경리

 증산

 청간정

 청간리

 초도1리

 초도리

 추암

 천진간이 

 하조대

 한치밑

 호산

 화진포




충청남도


 갈목해변

 갈음리해수욕장

 구레포

 구멍바위

 그누굴

 기지포

 금명몽돌밭

 꾸지나무골

 꽂지

 난지도

 대천

 달산포

 두여

 만리포

 몽산포

 무창포

 백리포

 방포

 밭고개

 바람아래

 밧개

 백사장

 벌천포항

 사목

 삼봉

 샛별

 신두

 안면

 어은돌

 용 두

 원산도

 의항

 음포

 연포

 원항

 장돌

 천리포

 청포대

 춘장대 

 통개

 파도리

 학암포

 호도








경상북도


 고래불

 구룡포

 구산

 남양

 나곡

 대진

 대본

 망양

 봉평

 북부

 송도

 월포

 장사

 칠포

 화진

 후정

 오류




경상남도


 광암

 광안리

 구영

 구조라

 남일대

 농소몽돌

 다대포

 덕포

 물건방조

 명사

 비진도

 사촌

 쌍족

 상주

 송정

 송도

 송정(해운대)

 와현

 욕지도

 일광

 일산

 여차해변

 월포

 임랑

 죽림

 진하

 통영

 황포

 학동몽돌해변

 흥남

 해운대







전라북도


 구시포

 격포

 고사포

 동호

 변산

 선유도

 상록

 위도







전라남도


 가사리

 가마미

 금갑

 금일

 남열

 남성리

 나로도

 내발

 대광

 대전

 덕흥

 돌머리

 돈목

 동고리

 두우리

 만성리

 명사십리

 미라리

 발포

 분계

 방죽포

 배알도

 백바위

 백길

 비금원평

 사도

 사구미

 소록도

 송호리

 수문리

 시목

 신도

 신전

 신지명사십리

 안도

 예송리

 율포

 외달도

 우전

 익금

 장등

 정동리

 중리

 진리

 지리

 추포

 톱머리

 하누넘

 홍도






 

제주도


 곽지

 김녕

 섭지코지

 신양

 용머리해안

 이호

 중문

 지삿개

 표선

 하모

 함덕

 협재

 화순

 우도

 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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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유적지

정보의바다 2007. 11. 21. 13:04

서울경기


고려공양왕릉

김포향교

광릉

권율장군묘

고달사지부도

구산성지

강화산성

경기도박물관

공순영릉

광주백자도요지

국립묘지

국악박물관

갑곳돈대

광성보

남한산성

남양성지

남이장군묘

동구릉

독산성

대동법시행비

덕진진

덕포진,교육박물

도라전망대

등잔박물관

미리내성지

매산서원

마재다산유적지

마니산참성단

명성황후생가

문수산성

목아불교박물관

북한산성

삼랑성

수원성

서운산성

숭의전

석봉도자기미술

오두산성

영녕릉

이천도예촌

임진각/망배단

안성향교

영월루

융건릉

장릉

중남미박물관

유엔군초전기념비

정다산마을

자운서원

제암리유적지

천진인암성지

처인성지

초지진

토지박물관

크리스탈박물관

판문점

황희선생 영당

행주산성

한국상업사박물관

화산서원

함왕성터

홍릉유릉

함허동천

혜소국사비

연주암,연주대

화석정


강원도


강릉향교

경포대

객사문

간성향교

건봉사지

김삿갓묘

강원민속촌

구미정

관풍헌

권금성

금강정,낙화암

고석정

두타산성

대관령박물관

선교장

만경대

매월대

신리 너와집

선교장

선돌

선림원지

송담서원

양구향교

영모전

왕곡마을

요선정

왕검성

이승복기념관

오죽헌

영금정

의상대

영월향교

원주향교

장수대

장릉

죽서루

준경묘

천학정

춘천향교

청간정

청령포

참소리박물관

통일전망대

팔효자각

해운정

강원도전통가옥




충청북도


길상사

금성대군사우

관란정

고인쇄박물관

구봉팔문

국립청주박물관

금남루,응청각

노은영당

난계사당

덕주산성

미륵산성

만뢰사

빙옥정

송강사

서한순효자문

송시열묘

수운정

삼년산성

신항서원

석문

신채호사당

배론성지

방곡도예촌

영국사

온달산성

의림지

옥천지석묘

자양영당,칠의사총

자풍서당

적성산성

진천향교

충추박물관

충주향교

충원탑

충주산성

충렬사

탄금대

후율당

향산석탑

상당산성

호서루,관어대




충청남도


공산성

귀래정

귀암사

금산향교

금이성

능산리고분군

국립공주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남연군묘

독립기념관

돈암서원

덕산사

대재각

문헌서원

면천읍성

무령왕릉

수북정

성흥산성

박문수묘

부소산성

송산리고분군

의병승장비

용강서원

오천성

운주산성

유관순열사유적지

우산성

안회당/여하정

임존성

용호석

어필각

조헌사당

진산향교

조양문

충무공묘

충의사

탑선리탑

태조대왕태실

청풍사

칠백의총

충렬사

최영장군묘

홍주성

해미읍성

현충사






경상북도


감은사지

금관총

김유신장군묘

고령지산군고분군

가산산성

국립경주박물관

고령지산동고분

도계서원

도산서원

문무대왕

문경새재

망양정

병산서원

세종대왕태실

선덕여왕

삼사해상공원

소수서원

석빙고

오능

옥산서원

안동민속박물관

월송정

임고서원

자인계정숲

진남교반

조양각

지례예술촌

천마총

첨성대

청제비

태종무열왕릉

포석성

하회마을

석굴암





경상남도


거열산성

고소성

국립진주박물관

금정산성

남해대교

논개사당

대방진굴암

비음산진례산성

삼성

수로왕릉

선진리성

성산패총

세병관

악양루

아랑각

영남루

울산반구대

제승당

정암루

전구형왕릉

진주성

청학동

촉성루

통영충렬사

표충사

포로수용소유적관

한려해상국립공원

해저터널




전라북도


고창지석묘군

구암리지석묘

광한루원

경기전

관성묘

고부구읍성지

남원향교

남고산성

무성서원

백산성지

의암사

오목대와이목대

우금산성

적상산성

장수향교

조경단

적상산사고터

전주향교

춘향사당

충렬사

충경사

치명자산

한풍루

한벽당

풍남문

피향전







전라남도


곡성향교

금성산성

순천향교

검단산성

고산윤선도유적지

남도석성

낙안읍성

내산서원

다산초당

단군전

덕산리고분군

대안리고분군

송재서제필생가

소쇄원

순천왜성

석창성지

시가문화유적지

신촌리고분군

원불교성지

왕인박사유적지

용장산성

운림산방

장도청해진유적

진남관

충무공유적지

충민사

충무사

필암서원

화순향교

향일암



제주도


관덕정

명월대

법화사지

불탑사

산굼부리

산방굴사

성읍민속마을

삼성혈

연북정

오현단

자연사박물관

제주목관아지

제주향교

추사적거지

항몽유적지

혼인지

김녕미로

제주민속박물관

산천단

신천지 미술관

중문박물관

항일기념관

오설록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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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


금광관광농원

개미관광농원

마음밭관광농원

밀성관광농원

부림관광농원

백산관광농원

서일농원

서운농원

오하관광농원

양평프라자농원

운악산관광농원

이천관광농원

양지말관관농원

청암관광농원

풍천관광농원

황새울관광농원




강원도


광치관광농원

고사리관광농원

궁동관광농원

고드래미농원

가리왕산농원

두메관광농원

담정관광농원

모둘관광농원

마평관광농원

매산관광농원

사우당화전

바우개관광농원

부원관광농원

심밭골관광농원

서리솔섬 관광농원

샘마을관광농원

인재쉼터

아우라지

우리집농장

오봉산타령

입암관광농원

모곡관광농원

삽교오성

새말관광농원

허브나라

용평청농원

황소지구

보광관광농원

송천농원

초연관광농원

춘천관광농원







충청북도


갈기산관광농원

대잠관광농원

보광산관광농원

배론관광농원

마그실관광농원

수산관광농원

서당골농원

소백산관광목장

샘터관광농원

안골관광농원

충주호관광농원

화양동관광농원

괴강관광농원

마니산관광농원

거문골관광농원

삼흥관광농원





충청남도


남면관광농원

대천관광농원

동원관광농원

매화관광농원

상양관광농원

성림관광농원

솔감관광농원

홍산관광농원

한밭관광농원

석수랜드

신평관광농원

서해안관광농원

두룡관광농원

화현관광농원

화림관광농원

태안관광농원

덕산농협농원

밤나무관광농원

팔봉관광농원

이인관광농원

개삼터관광농원






경상북도


무릉도원

옥천관광농원

울릉도관광농원

영천댐관광농원

은해관광농원

영천약수농원



경상남도


구천관광농원

서지관광농원

산천자연농원





전라북도


두남관광농원

대아관광농원

모항일신농원

화양관광농원

두승산관광농원

학원관광농원

감골관광농원

안성 관광농원

운호 관광농원

강천산 서원

청산 관광농원

백운 관광농원

백학 관광농원








전라남도


광양종합농원

낙양민속농원

대곡관광농원

대한다원

대화관광농원

동일관광농원

낙안관광농원

무슬목지구

보성흑비

보림관광농원

수양관광농원

섬지관광농원

심원관광농원

사천관광농원

진강관광농원

천관산관광농원

운암관광농원

유풍관광농원

옥룡관광농원

오봉산관광농원

화산관광농원

월등향토농원

애플관광농원

덕룡산관광농원

태산관광농원

봉산관광농원

웅치 관광농원

두란관광농원

서촌관광타운

추암관광농원

광장관광농원

천지관광농원







제주도


갈산관광농원

감귤농장

늘푸른레저

눈오름

남서관광농원

귤림성관광농원

서원관광농원

서부레저

수관광농원

수산관광농원

제주관광농원

제광농원

영보관광농원

오렌지파크

웅지관광농원

한일농원

한라레저

화랑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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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


고달사지

궐리사

망월사

묘수사

봉업사지

범륜사

봉선사

보문사

보광사

선원사지

상원사

수리사

신륵사

연주암

용문사

와우정사

용주사

적석사

전등사

정수사

청룡사

칠장사

청계사

천은사

청평사

태고사

흥국사

현등사

회암사지

적석사


강원도


건봉사

금강사

굴산사지

권조암

구룡사

국향사

낙산사

등명락가사

도피안사

보광사

법흥사

백담사

보덕사

보현사

봉정암

삼화사

선림원지

삼불사

신흥사

상원사(치악산)

상원사(오대산)

수타사

영원사

영은사

월정사

정암사

진전사지

창절사

천은사

청평사

화암사

홍련암

황산사

흥국사




충청북도


각연사  

구인사

공림사

길상사

덕주사

무암사

반야사

보살사

배론성지

백련사

법주사

영국사

용암사

안심사

정방사

정송강사

중화사

청절사

채운사

충렬사

충민사

흥덕사

대흥사




충청남도


갑사

개태사

관촉사

고란사

간월암

개심사

각원사

광덕사

광명사

고산사

귀암사

덕산사

동학사

대원정사

마곡사

무량사

모덕사

부석사

비암사

보덕사

보원사지

봉곡사

수덕사

수북정

성주사지

성불사

신원사

성곡사

신안사

쌍계사

세심사

영탑사

장곡사

충의사

충렬사

청풍사

태고사

현충사

향천사






경상북도


고운사

기림사

직지사

김룡사

남장사

보경사

봉정사

부석사

불국사

불영사

석굴암

수도암

심원사

오어사

운문사

용문사

은해사

유금사

직지사

청량사

초암사

환성사





경상남도


내원사

다솔사

대원사

문수암

미래사

범어사

보리암

쌍계사

석남사

송계사

장안사

제승당

청량사

청곡사

충렬사

칠불사

표충사

해인사








전라북도


강천사

개암사

금산사

내소사

내장사

백련사

선운사

송광사

실상사

정읍사

안국사




전라남도


금탑사

능가사

도림사

대원사

도갑사

대둔사(대흥사)

무의사

미황사

불회사

불갑사

보림사

백양사

성불사

선암사

쌍봉사

송광사

운주사

연곡사

중흥사

천관사

천은사

태안사

화엄사

한산사

향일암








제주도


 관음사

모충사

산방굴사

약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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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


 경반계곡

 고동산계곡

 곡달계곡

 광악골

 귀목계곡

 깊이울계곡

 녹수계곡

 도마치계곡

 동막계곡

 명지계곡

 물안골계곡

 백운계곡

 백둔리계곡

 봉미산 용수골

 벽계구곡

 비금계곡

 사나사계곡

 송추계곡

 수입리계곡

 안골

 약사동계곡

 약수골계곡

 열두개울

 운계폭포

 용계계곡

 용소계곡

 유명계곡

 익근리계곡

 입구지계곡

 조무락골

 장재울계곡

 조무락골

 조종천계곡

 중원계곡

 현등사계곡

 화악계곡

 화야큰골

 용추계곡폭포

 재인폭포

 수락폭포




강원도


 가야동계곡

 개령폭포

 검룡소

 가령폭포

 공수전 계곡

 광대계곡(정선)

 광덕계곡(화천)

 구곡담계곡

 금당계곡

 구성폭포

 내리계곡

 내린천계곡

 단경골계골

 덕풍계곡

 도수암계곡

 동활계

 둔전계곡

 대관대첩협곡

 대승폭포

 도적폭포

 동강

 독주폭포

 두몽폭포

 둔전계곡

 등선폭포

 막동계곡

 명개리계곡

 무릉계곡(오대산)

 만산동계곡

 무릉계곡

 미천골

 미산계곡

 미천골계곡

 백담계곡

 백운동계곡

 병지방계곡

 법수치리계곡

 비선대/와선대

 비룡폭포

 보현천계곡

 보광천계곡

 서봉사계곡

 소승폭포

 수렴동계곡

 수타사계곡

 수항계곡

 숙암리계곡

 순담계곡

 일계곡

 심적리 계곡

 12선녀탕계곡

 어라연계곡

 와석계곡

 용소계곡

 안개자니폭포

 여랑아우라지

 용수골계곡

 오련폭포

 어성전계곡

 용연동계곡

 장전계곡

 주전골 계곡

 자개골

 지암계곡

 직연폭포

 천은사계곡

 조경동계곡

 진동계곡

 청평사 계곡

 칠랑이계곡

 하추리계곡

 회동계곡

 뇌운계곡

 흥정계곡






충청북도


 갈론계곡

 고산9경

 남천계곡

 능강계곡

 다리안계곡

 도담삼봉

 덕동계곡

 만수계곡(보은)

 물한계곡

 만수계곡(충주)

 선암계곡

 선유동구곡

 송계계곡

 수옥폭포

 쌍곡구곡

 사인암

 삼선9곡

 서원계곡

 설마동협곡

 양산8경

 어의계곡

 용담폭포

 용하구곡

 용추폭포

 옥계계곡

 옥화구경

 죽령폭포

 중화사계곡

 천동계곡

 탁사정계곡

 화양계곡

 







충청남도


 갑사계곡

 강당골

 광덕사계곡

 명대골

 수락계곡

 심연동계곡

 용현계곡

 12폭포

 작천계곡

 화장골계곡





경상북도


 고산골

 고선계곡

 광천계곡

 대가천계곡

 덕구계곡

 달기폭포

 동산계곡

 명봉봉사계곡

 반야계곡

 백운대계곡

 백천계곡

 병암계곡

 보경사12폭포

 불령동천

 불영계곡

 빙계계곡

 본신계곡

 봉래폭포

 사미정

 삼의계곡

 쌍룡계곡

 석천계곡

 선시골

 선유동 계곡

 수하계곡

 신성계곡

 약수폭포

 오성폭포

 얼음골

 옥계계곡

 여근곡계곡

 용유계곡

 옥양동계곡

 용추계곡(문경)

 용추계곡(영덕)

 우구치계곡

 운달계곡

 월매계곡

 월외계곡

 절골계곡

 주방천계곡

 주왕산폭포

 죽계9곡

 진남교반

 찬새골

 치산관광지

 청도남산

 청도남산

 포천계곡

 희방폭포







경상남도


 거림계곡

 고운동계곡

 내원사계곡

 달천계곡

 대원사계곡

 무지개폭포

 배내골

 백무동

 백운동

 벽계계곡

 불일폭포

 송계사계곡

 선유동폭포

 쇠점골

 수월폭포

 얼음골

 용추계곡

 월성계곡

 장유계곡

 작천정계곡

 중산리계곡

 천황산계곡

 청암계곡

 칠선계곡

 통도사계곡

 한신계곡

 호박소계곡

 홍룡폭포

 홍류동계곡

 화개계곡

 화림동계곡

 황계폭포






전라북도


 갈거계곡

 강천사계곡

 구룡계곡

 금선계곡

 구천동계곡

 덕산계곡

 달궁계곡

 동상계곡

 두남월평계곡

 방화동계곡

 백운동계곡

 뱀사골

 불출계곡

 삼거리폭포

 선운산계곡

 수락계곡

 심원계곡

 운일암계곡

 위봉폭포

 직소폭포

 칠연계곡

 토옥중계곡





전라남도


 가마골계곡

 금릉경포대계곡

 남창계곡

 도림사계곡

 수락폭포

 용추폭포

 피아골계곡

 불일폭포







제주도


 남원큰엉

 돈내코

 무수천

 소정방폭포

 안덕계곡

 아흔아홉골

 엉또폭포

 정방폭포

 천제연폭포

 천지연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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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명산

정보의바다 2007. 11. 21. 12:54

서울경기

 94

 가덕산

 가리산

 감악산

 강씨봉

 검단산

 계명산

 고동산

 고래산

 곡달산

 관산

 관인봉

 광교산

 광덕산

 구나무산

 귀목봉

 깃대봉

 각흘산

 고대산

 관악산

 구룡산

 국망봉

 금물산

 낙가산

 남산

 도봉산

 도마치봉

 대금산

 대부산

 도드람산

 도일봉

 마리산

 명성산

 명지산

 몽덕산

 무갑산

 문안산

 문형산

 민둥산

 북한산

 백봉

 백운봉

 백운산

 봉미산

 불곡산

 불암산

 뾰루봉

 사패산

 사향봉

 삼성산

 상  산

 서리산

 서운산

 수락산

 수덕산

 수리산

 설봉산

 소리산

 소요산

 석룡산

 신로봉

 오갑산

 인왕산

 애기봉

 앵자봉

 양자산

 어비산

 연인산

 옥녀봉

 옥산

 왕방산

 용마산

 용문산

 운길산

 운악산

 유명산

 일당산

 장락산

 종자산

 주금산

 죽엽산

 중미산

 중원산

 지장봉

 천덕봉

 천마산

 청우산

 축령산

 칠장산

 태화산

 통방산

 함왕봉

 화악산

 화야산

 청계산

 



강원도

 87

 가리봉

 가리산

 가리왕산

 고대산

 검봉

 계림산

 계방산

 계족산

 곰배령

 공작산

 구봉대산

 구학산

 금병산

 감악산

 가칠봉

 개인산

 고양산

 광덕산

 근산

 금당산

 금대봉

 금물산

 노인봉

 노추산

 대암산

 덕고산

 덕항산

 대공산성

 두타산

 대청봉

 동대산

 두류산

 두위봉

 민둥산

 매봉산

 명성산

 몽덕산

 미륵산

 마등산

 마적산

 매화산

 미륵산

 방태산

 발왕산

 발교산

 백병산

 백운산

 범안산

 백덕산

 부용산

 봉래산

 봉복산

 비봉산 

 십자봉

 사명산

 사자산

 삼악산

 석룡산

 설악산(내설악)

 설악산(남설악)

 설악산(외설악)

 석병산

 선자령

 운문산

 안   산

 어답산

 아미산

 연엽산

 오대산

 옥갑산

 오봉산

 용화산

 육향산

 응봉산

 제왕산

 지각산

 점봉산

 청태산

 청옥산

 치악산

 청태산

 태백산

 태기산

 팔봉산

 한계령

 황병산

 함백산






충청북도

 116

 가령산

 가은산

 각호산

 갈기산

 계명산

 구녀산

 구담봉

 구왕봉

 구학산

 국망봉

 군자산

 금수산

 금적산

 낙영산

 남군자산

 남산

 금단산

 대야산

 덕가산

 덕절산

 덕주봉

 도담산봉

 도락산

 도명산

 도솔봉

 동산

 두타산

 등곡산

 대성산

 묘적봉

 메밀봉

 말목산

 마니산

 망덕봉

 만수봉

 만뢰산

 무제봉

 문수봉

 민주지산

 마역봉

 묘봉

 발치봉

 백마산

 백악산

 백운산

 백족산

 백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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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개산

 보광산

 보련산

 보배산

 부산

 북바위산

 비봉산

 백화산(괴산)

 박달산

 박쥐봉

 성불산

 소백산

 속리산

 수레의산

 수리봉(제천)

 수주팔봉

 승대산

 시랑산

 사봉

 삼도봉

 삼태산

 수리봉(단양)

 삼봉산

 신선봉(괴산)

 신선봉(제천)

 십자봉

 식장산

 이만봉

 양천산

 악휘봉

 오갑산

 연내봉

 월악수리봉

 양성산

 월이산

 인등산

 올산

 용두산

 용마산

 용암봉

 우암산

 월악산

 월유봉

 월항삼봉

 지등산

 작성산

 주봉산

 주월산

 장용산

 주행봉

 저승봉

 제비봉

 조령산

 조봉산

 조항산

 주론산

 칠보산

 천등산

 천태산

 청화산

 포암산

 희양산

 하설산

 환희산

 황정산

 꾀꼬리봉

 꾀꼬리봉

 구병산(구봉산)








충청남도

 26

 가야산

 계룡산

 계족산

 광덕산

 구봉산

 대둔산

 대성산

 덕숭산(수덕산)

 도비산

 만뢰산

 만수산

 보문산

 성주산

 서대산

 식장산

 아미산(당진)

 아미산(부여)

 용봉산

 오서산

 우산봉

 위례산

 장태산

 진락산

 진악산

 천태산

 칠갑산

 팔봉산







경상북도

 42

 가야산

 가지산

 갑장산

 금성산

 금오산

 구병산(구봉산)

 구왕봉

 내연산

 노음산

 대야산

 도솔봉

 문수봉

 묘   봉

 민주지산

 백암산

 백화산(문경)

 백화산(상주)

 비슬산

 비봉산

 성인봉

 소백산

 속리산

 수도산

 운달산 

 운문산

 이만봉

 의왕산

 일월산

 장성봉

 지룡산

 조령산

 주왕산

 주흘산

 천주산

 청량산

 청화산

 태백산

 토함산

 팔공산

 포암산

 황악산

 희양산




경상남도

 58

 가야산

 가지산

 간월산

 거류산

 계룡산

 관룡산

 광려산

 금산

 금원산

 기백산

 노자산

 대금산

 대운산

 덕유산

 망산

 망운산

 매화산

 무척산

 무학산

 미륵산

 백운산

 백원산

 벽방산

 별유산

 봉림산

 봉명산

 불모산

 비계산

 삼봉산

 수도산

 신불산

 신어산

 악견산

 여항산

 연화산

 옥녀봉

 와룡산

 운문산

 웅석산

 원효산

 자굴산

 장복산

 재약산

 정병산

 황석산

 지리산

 천성산

 천장산

 천주산

 천태산

 천황산

 취서산(영취산)

 칠현산

 토곡산

 향로산

 호구산

 화왕산

 황매산

 황석산




전라북도

 24

 강천산

 구봉산

 내장산

 대덕산

 대둔산

 덕유산

 만락산

 모악산

 문수산

 미륵산

 민주지산

 바래봉

 변   산

 선운산

 성수산

 마이산

 운장산

 적상산

 지리산

 장안산

 천둥산

 채계산

 추월산

 회문산




전라남도

 33

 강천산

 내장산

 도솔봉

 제암산

 동악산

 두륜산

 만덕산

 모후산

 무등산

 백운산

 불갑산

 수인산

 상황봉

 수월산

 석문산

 승달산

 영취산

 오산

 월출산

 유달산

 유달산

 적대봉

 적자산

 조계산

 주지봉

 지리산

 천관산

 첨찰산

 추월산

 칠락산

 팔영산

 희아산

 흑석산







제주도

 12

 검은오름

 단산

 물장오름

 산방산

 성널오름

 성산일출봉

 송악산

 성판악

 수월봉

 알오름

 억새오름길

 한라산

산굼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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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위 뉴질랜드 북섬

 

인구 약 273만 3천(1996). 남섬과는 쿡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대한다. 북단 노스곶에서 남단의 팰리서곶까지의 길이는 816km이다. 형태상으로는 북서쪽이 좁고 긴 오클랜드 반도가 돌출해 있으며, 북동쪽에 플랜티만(), 동쪽에 호크만이 있어 변형된 마름모꼴을 이룬다. 지형상으로는 섬의 중앙부에 활화산 루아페후(2,799m)를 주봉으로 하는 타우포 화산대가 있으며, 섬 전체는 고원 형태를 이룬다. 섬 중앙에는 화산이 집중되어 있고 온천이 분포하며, 타우포호()가 있어 경치가 아름다워 통가리로 국립공원을 이룬다. 서부에도 에그몬트산(2,518m)을 중심으로 에그몬트 국립공원이 있다. 섬에서 가장 큰 강은 와이카토강, 호수는 타우포호이다. 유제품 ·목재 ·석탄 ·아마 등이 산출되며, 중심도시는 오클랜드와 뉴질랜드의 수도인 웰링턴이 있다.

 

24위 미국 하와이

 

면적은 1만 6729㎢, 인구는 127만 400명(2004)이다. 주도(州都)는 호놀룰루이다. 북태평양의 동쪽에 있는 하와이제도(별칭 샌드위치제도)로 구성된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하와이섬 남단의 사우스케이프[南串]는 북위 19°에 위치한다. 하와이제도는 니하우·카우아이·오아후·몰로카이·라나이·마우이·카호올라웨·하와이 등 8개 섬과 100개가 넘는 작은 섬들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완만한 호(弧)를 그리면서 600km에 걸쳐 이어져 있다.
그들 섬 사이에는 카울라카히·카우아이·카이위·칼로히·파일롤로·아우아우·케알라이카히키·아랄라가이키·알레누이하하 등의 해협이 있다. 최대의 섬은 하와이섬이며 주민의 대부분은 오아후섬에 살고 있다. 모든 섬은 화산섬이고 대체로 남서쪽으로 갈수록 화산 형성의 시기가 늦다.

 

23위 미국 요세미티국립공원

 

면적 3,061㎢. 189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캘리포니아주의 중부, 시에라네바다산맥의 서쪽 사면 일대에 전개되는 대자연공원이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국립공원 중의 하나이다. 샌프란시스코에 근접해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 광대한 면적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도로는 몇 개밖에 없으며, 끝에서 끝까지 관통하는 도로는 그나마 동서 횡단로 하나뿐이다. 공원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남서부에 있는 머세드강의 상류이며, 빙식으로 생긴 거대한 엘캐피탄·하프돔 등의 절벽과 브라이들베일·요세미티·네바다 등의 폭포가 있다. 그 밖에도 북부의 투올러미강 상류에는 투올러미 협곡의 웅대한 경관이 있다. 공원의 동쪽 경계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주맥에 상당하며, 해발고도 3,000m의 고산이 이어져 있다. 공원의 서쪽과 남쪽의 입구 일대에는 세쿼이아의 거목들이 늘어서서 장관을 이룬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22위 홍콩

 

중국 대륙의 남동부에 있는 특별행정구.
면적은 1,091㎢, 인구는 678만 5000명(2002)이다. 정식명칭은 ‘영국령 홍콩’이었으나 중국으로 반환 뒤부터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SAR:Special Administrative Region)’로 바뀌었다. 주도(主都)는 홍콩섬의 빅토리아시(홍콩市)이다. 주장강[珠江] 하구의 동쪽 연안에 있는 홍콩섬과 주룽반도[九龍半島] 및 그 밖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홍콩섬·스톤커터섬과 주룽반도의 선단(先端)에 있는 주룽시(市)는 영국 영토이고, 주룽시의 후배지인 신제[新界:New Territories]와 230개의 부속도서는 조차지(租借地)이다.
전인구의 99%가 중국인이고, 그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둥인[廣東人] 외에 커자인[客家人:Hakka]·푸젠인[福建人]·차오저우인[潮州人]이 있다. 그 밖에도 영국인·미국인·유럽인·아시아인들이 살고 있다. 공용어로는 영어와 베이징어[北京語]가 함께 쓰이고 있으나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는 광둥어이다.

 

21위 빅토리아폭포

 

해발고도 약 90m의 고원에서 흘러내리는 잠베지강의 물이 너비 약 1,500m의 폭포로 바뀌어 110∼150m 아래로 낙하한다. 폭포 위에는 몇 개의 섬이 있어서 레인보 폭포 등 다른 이름을 가진 폭포로 갈라져 있다. 수량이 많은 11∼12월에는 1분간에 낙하하는 수량이 무려 30만m3에 달한다. 이 폭포는 아래쪽의 강폭이 50∼75m에 불과하여 반대쪽 낭떠러지 끝에서 내려다볼 수 있을 뿐이며, 멀리서는 치솟는 물보라만 보이고 굉음밖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옛날부터 ‘천둥소리가 나는 연기’라고 불렸는데 1855년 영국 탐험가 D.리빙스턴이 발견하여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라고 명명하였다.

 

20위 중국 만리장성

 

총연장은 약 2,700km로 우주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다. 중국의 거리 단위 리(里=0.5km)로 환산하면 1만리를 넘기 때문에 '만리장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진시황이 흉노족의 침입에 대비해 10여 년 간 쌓았으며, 현재의 모습은 명나라 때 완성되었다. 10여 년 전부터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개방하는 곳 중에 많이 찾는 곳은 팔달령(八達嶺)·모전욕·사마대(司馬臺) 장성 등이다.


19위 몰디브

 

정식명칭은 몰디브공화국(Republic of Maldives)이다. 수도는 말레이며, 디베히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스리랑카의 남서 약 650km에 있으며, 8°선해협(Eight Degree Channel)에서 동경 73°선을 따라 적도 남쪽까지 남북으로 약 760km, 동서 128km의 해역에 흩어져 있는 1,300여 개의 작은 산호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202개 섬에서만 사람이 산다.

 

18위 이탈리아 베니스

 

영어로는 베니스(Venice)라고 한다. 베네치아만(灣) 안쪽의 석호 위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섬과 섬 사이의 수로가 중요한 교통로가 되어 독특한 시가지를 이루며, 흔히 ‘물의 도시’라고 부른다. 대안의 메스테르와는 철교·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나, 철도역은 철교가 와 닿는 섬 어귀에 있고, 다리를 왕래하는 자동차도 시내에는 들어올 수 없다. 시가지는 본래 석호의 사주(砂洲)였던 곳에 들어섰기 때문에 지반이 약하고, 따라서 근래 지반침하와 석호의 오염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17위 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초기왕조시대의 마스타바에서 발전된 것으로, 제18왕조 초에 왕묘가 암굴묘()의 형식을 취할 때까지 계속된다. 최성기는 제3∼5왕조로 '피라미드시대'라 부른다. 최고()의 피라미드는 사카라에 있는 제3왕조 제2대 조세르왕의 '계단식피라미드'로 재상 임호테프가 설계한 것이다. 처음에는 한 변이 63m인 직사각형 석조 마스타바로, 중앙에 깊이 28m의 수혈()을 파고 그 밑에 매장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확장공사가 시작되어, 결국 마스타바를 6단 포개 놓은 모양의 밑변 109×126m, 높이 62m의 계단 피라미드가 완성되었다. 이것은 종교적으로는 헬리오폴리스를 중심으로 예로부터 존재했던 태양신 숭배가 피안()의 신앙과 결부된 결과로, 계단은 죽은 국왕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16위 요르단 페트라

 

아랍계 유목민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해발 950m의 산악도시로서 최고 높이 300m의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교역로의 교차지점에 있어서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며 번영을 누렸다. 시가지 입구는 동쪽의 시크, 남쪽의 투그라, 북쪽의 투르크 마니에라라는 3개의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곳곳에 뛰어난 기술로 세워진 건축물과 수로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유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카즈네피라움은 장례사원으로 추정되는 건축물로서 바위산 벽면을 깎아 만들었다. 사원 정면에는 높이 약 30m, 너비 약 25m의
파사드가 있고 앞에는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다. 파사드는 2개의 박공벽, 프리즈, 기둥, 조각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5위 나이애가라폭포

 

5대호 중에서 이리호(湖)와 온타리오호로 통하는 나이아가라강에 있다. 폭포는 하중도(河中島)인 고트섬(미국령) 때문에 크게 두 줄기로 갈린다. 고트섬과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와의 사이에 있는 폭포는 호스슈(말발굽) 폭포, 또는 캐나다 폭포라고도 하며 높이 48m, 너비 900m에 이르는 것으로, 중앙을 국경선이 통과하고 있다. 고트섬 북동쪽의 미국 폭포는 높이 51m, 너비 320m에 이른다. 나이아가라 강물의 94%는 호스슈 폭포로 흘러내린다.

 

14위 페루 마추피추

 

1534년 정복자인 에스파냐인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던 만코 2세 이하 사이리 토파크, 티투 쿠시, 토파크 아마르 등의 잉카가 거점으로 삼았던 성채도시로 보인다. 그 시대에 세운 건조물이 주체를 이루고 있으나, 정복 전의 잉카시대에 속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출토된 유물은 후기 잉카의 토기 ·금속기가 대부분이며, 1911년 미국인 하이람 빙엄이 발견하였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목록에 수록되어 있다.

 

13위 멕시코 치첸이트사

 

멕시코 유카탄반도 북서부의 도시 메리다의 동쪽 약 110km 지점에 있는 마야문명의 대유적지이다. 건조한 석회암 지대에 있고, 유적은 석회암, 회반죽한 흙·목재 등으로 되어 있다. 이트사족(族)에 의한 최초의 취락 건설은 530년 이전의 일이라 하며, 7세기에 일단 포기되었다가 10세기에 재건되었고, 11세기 이후는 마야 신제국(新帝國)의 종교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 13세기 초에 이트사족은 아스테크-톨테카족의 연합군에 패하였으나, 이후 가장 번영시대를 맞아 많은 건물이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15세기 무렵에 갑자기 폐허가 되었다. 유적은 8㎢의 넓은 지대에 걸쳐 있고, 카스티요(높이 25m의 피라미드)와 그 동쪽의 ‘전사(戰士)의 신전(神殿)’, 도로 건너편의 ‘천문대’ 등이 알려져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12위 호주 에어즈락(울룰루)

 

오스트레일리아 노던주의 앨리스스프링스에서 남서쪽으로 약 340㎞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 중앙부의 사막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총면적은 1,325㎢이다. 이 지역은 원래 백인이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오스트레일리아원주민(애보리진) 부족인 아난그족의 거주지로, 정부에 의하여 '남서부 애보리진 보호구'로 지정되어 있던 곳이다. 그러나 1958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이 보호구 안에 있는 에어스록과 올가산 인근 지역을 보호구에서 제외시켜 '에어스록·올가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1987년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 의해 생물권 보호구로 지정되었고, 1994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목록 중 복합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우루루(에어즈록)와 카타쥬(올가산)는 6억 년 전의 지각변동과 침식에 의하여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암석들인데, 우르르는 단단한 1장의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 암석이며, 카타쥬는 36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해발고도 1,069m(지표에서 546m)의 기암군(奇岩群)이다.

 

11위 루이스호수

 

해발고도 1,732m, 최대수심 70m, 길이 2.4km, 폭 1.2km이다. 캐나다 앨버타주 밴프국립공원 안에 있다. 1884년 캐나다퍼시픽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캠프를 설치하면서 마을이 들어섰다. 빙하에 의해 깊게 팬 땅에 빙하가 녹으면서 호수가 되었다.
1882년 철도 노동자가 발견하였으며, 빙하에 깎인 미세한 진흙이 호수 바닥에 가라앉으면서 햇빛에 반짝여 물 빛깔이 청록색을 띤다. 처음에는 에메랄드 그린 호수라고 이름이 붙었지만 후에
빅토리아여왕의 딸 루이스 공주의 이름을 따서 루이스호수가 되었다. 호수 주위에는 빽빽한 침염수림으로 덮인 산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호수 바로 앞에는 높이 3,264m의 빅토리아산이 있다.

 

10위 인도 타지마할

 

우타르프라데시주 아그라 교외 아그라성 동쪽 약 2km, 자무나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만들어진 궁전형식의 묘묘(墓廟)이다.
타지마할은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으로, 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이 사랑했던 여인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1630년부터 18년 동안 국가의 재정이 기울어질 정도의 거액을 들여 완성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길 중앙에 있는 일직선의 풀이 양 옆의 나무의 녹색을 비추고, 우윳빛의 대리석으로 된 돔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다. 태양 광선은 대리석을 그물모양으로 투조(透彫)한 이중장치를 통하여 돔 내부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고, 그곳에 황제부처의 묘관을 안치하였다. 특히 달밤의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형언할 수 없으며, 인도·페르시아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서 세계적으로 이름높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9위 미국 뉴욕

 

면적 약 787㎢, 800만 8278명(2000)이다. 미국 최대의 도시로서, 1790년 이래 수도로서의 지위는 상실했으나, 미국의 상업·금융·무역의 중심지로서, 또 공업도시로서 경제적 수도라 하기에 충분한 지위에 있으며, 또 많은 대학·연구소·박물관·극장·영화관 등 미국 문화의 중심지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교외를 포함하여 1600만이 넘는 방대한 인구를 수용하는 이 거대도시는 미국 내에서도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는 독특한 도시이다. 국제적으로는 대무역항으로서 대서양 항로의 서단에 위치하는 가장 중요한 항구이며, 1920년대 이후에는 런던을 대신하여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국의 국제적인 지위향상과 더불어 세계 경제에 대한 지배적 지위는 한층 강화되었으며, 1946년 국제연합(UN) 본부가 설치된 후에는 국제정치의 각축장이 되었다.

뉴욕주의 남동단, 뉴욕만()으로 흘러드는 허드슨강 어귀 일대에 위치한다. 허드슨강·이스트강·할렘강·뉴욕만 및 롱아일랜드 수로() 등에 의하여 구획된다. 대도시권으로서의 뉴욕은 시역 밖으로 뻗어, 뉴저지·코네티컷의 두 주에도 미치고 있다.

시는 맨해튼·브롱크스·브루클린·퀸스 및 스태튼섬의 5개구(boroughs)로 이루어져 있다. 맨해튼은 시의 중심부이며, 그 남단에 금융 중심지인 월가()가 있다. 월가에서 북동쪽으로 브로드웨이와, 이것과 비스듬히 교차하는 5번가의 두 대로가 시를 종관()하고 있다. 브로드웨이의 42번가타임스스퀘어로 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며, 그 남쪽에 펜실베이니아역(), 동쪽에 그랜드센트럴역 등 도심의 두 주요역이 있으며, UN 본부도 동쪽 이스트 강가에 있다.

 

8위 호주 시드니

 

인구 약 393만 5000명(1997)이다. 시드니 대도시권은 서쪽 블루산맥, 북쪽 호크스베리강(), 남쪽 보터니만()까지 뻗어 있으며, 전국 인구의 약 1/4이 몰려 있는 이 나라 최대의 도시이다. 중생대의 사암층의 대지와, 서쪽 내륙에는 이암질()의 파랑상()의 저지를 사이에 두고 해발고도 1,000m 전후의 블루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이 대지의 계곡은 하류지역에서 익곡()을 이루어 포트잭슨만(), 보터니만 등을 이룬다.
포트잭슨만의 남안 일대는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시드니항의 항역()이 되어 있다. 이 항구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무역액의 1/4, 뉴사우스웨일스주 무역액의 3/4을 취급한다.
온화한 기후로도 유명하며, 연간
평균기온은 17.6℃, 가장 더운 달이 21.9℃, 가장 추운 달이 12.3℃로 연교차가 적다. 연평균강수량은 1,205mm이며, 1년 내내 강수량이 고르다. 1788년 1월 26일, 보터니만으로부터 포트잭슨에 들어온 총독 A.필립은 유형수() 770명, 군인 250명을 데리고 이곳에서 최초의 식민지 건설을 개시하였다.

 

7위 미국 라스베가스

 

인구는 47만 8434명(2000)이다. 관광과 도박의 도시로 네바다주 최대의 도시이다. 1700년대 초에 에스파냐인()들이 부근 지역을 발견하였고, 1855년경에 모르몬교() 지도자 브리검 영(Brigham Young)이 파견한 30여 명의 교도들이 요새를 지었으나 1857년에 인디언들이 파괴하였다. 1864년에는 미군이 베이커요새를 세웠다. 에스파냐어()로 '초원'이라는 뜻의 지명은 라스베이거스계곡을 처음으로 발견한 에스파냐인들이 지은 것이다.

 

6위 인도 암리차르 황금사원

 

인도 시크교의 성지이며, 황금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다. 1604년 구르아르준이 세웠다.

 

 

5위 남아공 케이프타운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주(州)의 주도(州都).
배후에 테이블산(1,087m)과 라이온즈헤드가 솟아 있으며 테이블만(灣)에 면하는 천연의 양항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의회의 소재지로서 행정부가 있는 프리토리아와 더불어 수도의 지위를 나누어 맡고 있다. 기후는 온대의 지중해성기후로 1월 평균기온 20.3℃, 7월 평균기온 11.6℃이며, 연강수량 526mm로 겨울인 5~8월에 비가 많다. 주민의 약 35%가 백인이며 유럽풍의 대도시 경관을 이룬다. 1652년 4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시아 무역의 보급기지로서 건설하여 처음에는 네덜란드어로 카프스타드(Kaapstad)라고 하였으나, 그 후 영국계 식민활동의 기점이 되었다.

1860년 창설된 독은 수에즈 운하 폐쇄 중에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남극 관측의 보급기지로서도 알려졌다. 조선·기계·냉장·농수산물 가공·제분·제과·가구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상업·금융업도 활발하다. 백인 전용으로 세운 케이프타운대학(1829), 유색인 전용으로 세운 서(西)케이프대학(1960)을 비롯하여 각종 전문학교, 박물관·미술관·도서관·식물원·동물원 등이 있다. 정비된 항만시설이 있는 외에 항공로·철도·도로 등의 기점을 이루는 교통상의 요지로 여름철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1666년에 기공한 성곽과 1699년에 기공한 네덜란드의 신교 교회 등 역사적 건축물이 많다.

 

4위 뉴질랜드 남섬


면적 15만 1,971㎢. 인구 약 92만 6천(1996). 뉴질랜드 최대의 섬으로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840km 가량 뻗어 있는 길쭉한 섬이며, 북쪽은 쿡 해협으로 북섬[]과 마주보고 남쪽은 포보 해협으로 스튜어트섬과 마주보고 있다. 산악과 구릉지가 많으며, 중서부의 서던알프스의 최고봉 쿡산(3,764m) 및 3,000m를 넘는 고봉군()과 많은 빙하가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어 태즈먼산() 부근과 나더 고개 부근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남서부에는 많은 피오르드가 후미져서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다. 동부는 비교적 비가 적으며, 서풍을 직통으로 받는다. 연간 강수량은 평균 2,000mm이지만, 일부 산악지역에서는 3,000∼5,000mm나 되어 삼림의 발달이 현저하다. 동해안의 캔터베리 평야, 남부의 오타고 고지, 인버카길 평야 등 낮은 대지와 충적평야가 주요한 농업지역을 이루며 밀 ·귀리 등의 재배 이외에 목축이 성행한다. 서부에서는 석탄과 주요 수출품인 금이 산출된다. 해안지대에 크라이스트처치 ·더니든 ·인버카길 등의 도시가 발달해 있다.

 

3위 미국 디즈니월드

 

정식명칭은 월트디즈니월드이다. 세계 최대규모의 종합 휴양지로, 올랜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32km 떨어져 있다. 개발되지 않은 호수·늪지대의 환경을 잘 살려 조성하였으며 1971년 개장하였다. 월트디즈니프로덕션이 경영하고 있다. 건설 당시 면적은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 있는 디즈니랜드보다 훨씬 넓은 111㎢였다.
마법의 왕국은 디즈니랜드에 있는 것과 유사한 내용과 시설로 이루어졌는데,
신데렐라성(
메인스트리트·모험의 나라·개척의 나라·자유광장·환상의 나라·미래의 나라 등의 테마랜드가 있다. 실험적 미래도시인 EPCOT센터(Experimental Proto type Community Of Tomorrow Center:1㎢)에는 미래의 세계와 세계 11개국의 모습이 인공호 주위에 조성되어 있으며 각국의 역사·특산품·요리 등이 즉석에서 연출된다. '영화의 세계'라는 주제 아래 1989년 세워진 영화촌 디즈니-MGM스튜디오에서는 영화촬영 장면을 직접 보거나 체험할 수 있으며, 할리우드와 뉴욕 거리를 재현한 6개 구역이 있다.
그밖에 6개의 골프장, 포트윌더니스 캠프장, 베이레이크와 세븐시즈래군의 수상
레크리에이션 시설, 플레저아일랜드, 동물의 왕국, 쇼핑몰, 호텔 등이 있다.

 

 

2위 호주 그레이트배리어리프

 

면적 20만 7,000㎢. 길이 약 2,000km. 너비 약 500~2,000m. 북쪽은 뉴기니 남안의 플라이강 어귀에서 남쪽은 퀸즐랜드의 레이디 엘리엇까지 이어져 있다. 대부분이 바다에 잠겨 있으나 군데군데에 무수히 많은 조그마한 산호초가 바다 위에 나와 있어 대륙의 방파제와 같은 외관을 한다. 대륙과의 사이의 초호(礁湖)는 수심 60m 이하의 대륙붕이며, 해저는 평탄하여 동쪽으로 약간 경사져 있을 뿐이다. 또한 바깥쪽은 급경사를 이루어 갑자기 깊어지며, 파도가 높고 세다. 초호 안을 항행하는 것은 많은 암초 때문에 위험하나, 근래에는 관광시설이 발달하였다. 북부의 케언스 부근에는 산호초에 열대수족관을 만들고 해저에서 수중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였다. 관광의 중심은 케언스와 브리즈번인데, 관광객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1위 미국 그랜드캐니온

 

미국 애리조나주(州) 북부에 있는 거대한 협곡(峽谷)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길이 350km(리틀콜로라도강의 합류점에서 미드호까지). 너비 6~30km. 깊이 약 1,600m.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협곡은 콜로라도강(江)이 콜로라도 고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곳에 형성되었다. 계곡 벽에는 많은 단구가 계단 모양을 이루며, 계곡 저지에는 콜로라도강이 곡류한다. 그랜드캐니언의 상 ·하류에도 협곡이 이어진다. 원래 콜로라도강이 흐르던 곳에 콜로라도고원의 일부가 융기하여 깊이 약 1,600m의 협곡이 생긴 것인데, 계곡벽에는 시생대 이후 7억 년 동안의 많은 지층이 나타난다. 지층의 빛깔은 여러 가지이나 적색 또는 주황색이 많다. 협곡의 북쪽은 카이바브 고원이고 남쪽은 코코니노 고원인데, 이들 고원은 평탄하다.

반건조지역이기 때문에 계곡 벽에는 수목이 간간이 있을 뿐이지만, 고원에는 수목이 무성하다. 그랜드캐니언의 단구에는 하바수파이 인디언 보호지구가 있으며, 소규모의 농경이 이루어진다. 고원에는 나바호 ·카이바브 ·후아르파이 등 인디언 부족의 보호지구가 있다. 그랜드캐니언의 중심부는 1919년 국립공원(면적 2,600㎢)으로 지정되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카이바브 고원과 코코니노 고원을 잇는 길은곡저에는 작은 길 하나뿐이며,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길로도 350km나 된다. 국립공원의 하류에는 그랜드캐니언 국립기념공원과 미드호(湖) 국립 레크리에이션 지역이 있다.

펌:http://blog.daum.net/hanlim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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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m이상

백두산 2,744m
한라산 1,950m 제주도
지리산(천왕봉) 1,915m 전남 구례, 전북 남원,
경남 함양, 산청, 하동
중 봉 1,875m -> 지리산
제석봉 1,806m -> 지리산
반야봉 1,732m -> 지리산
설악산(대청봉) 1,707.9m 강원 속초, 인제, 양양
금강산 1,638m 강원 화양, 통천, 고성, 인제군
덕유산 1,614m 전북 무주, 장수, 경남 거창, 함양
계방산 1,577m 강원 홍천 내면, 평창 진부면

함백산 1,573m 강원 정선 고한읍, 태백
태백산 1,566.7m 강원 태백, 경북 봉화 석포면
오대산 1,563.4m 강원 홍천 내면, 평창 진부면, 도암면
가리왕산 1,561m 강원 정선 북면, 평창 진부면
삼도봉 1,550m -> 지리산
토끼봉 1,533m -> 지리산
가리봉 1,519m 강원 인제
문수봉 1,517 강원 태백, 경북 봉화 석포면
남덕유산 1,507.4m -> 덕유산 무주, 함양
노고단 1,507m -> 지리산


★1400m이상
화악산 1,468m 경기 가평 북면, 강원 화천 사내면
두위봉 1,466m 강원 정선
발왕산 1,458m 강원 평창 도암면, 진부면
소백산 1,439.5m 충북 단양 가곡 영충 대강면, 경북 영주
방태산 1,435m 강원 인제
동대산 1,432m 강원 평창,진부면
가야산 1,430m 경남 합천 가야면, 거창, 경북 성주]
안 산 1,430m -> 설악산 강원 인제 북면
점봉산 1,424.2m 강원 인제, 인제읍, 기린면, 양양 양양읍
국망봉 1,420.8m 충북 단양 가곡 영충 대강면, 경북 영주

금대봉 1,418.1m 강원 태백, 정선, 삼척
상원산 1,412m 강원 정선군 북평면, 북면
장 산 1,408m 강원 태백
황병산 1,407m 강원 강릉 연곡면, 평창 도암면
청옥산 1,403m 강원 동해시, 삼척, 하장면, 정선 임계면
주걱봉 1,401m 강원 인제

★1300이상

박지산 1,394m 강원 평창 진부면
중왕산 1,376m 강원 정선 평창
백석산 1,365m 강원 평창 대화면, 진부면
응복산 1,360m 강원 양양 서면, 현북면, 홍천 내면
삼신봉 1,354m -> 지리산
두타산 1,353m 강원 동해시, 삼척 미로면, 하장면
금원산 1,352m 경남 거창군 위천면, 함양 안의면
백덕산 1,350m 강원 평창 방림면, 평창읍, 영월 수주면
개인산 1,341m 강원 인제, 홍천
노인봉 1,338m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기백산 1,331m 경남 거창 위천 북상 마리면, 함양 안의면
단지봉 1,326.7m 경북 김천 증산면, 경남 거창 가북면
보래봉 1,324m 강원 평창 봉평면
회령봉 1,324m 강원 평창 봉평
노추산 1,322m 강원 정선 북면
수도산 1,316m 경북 김천 증산 대덕면, 경남 거창 가북면
도솔봉 1,314.2m 충북 단양, 경북 영주
대덕산 1,307m 강원 태백, 정선, 삼척


★1200이상

대덕산 1,290m 전북 무주 무풍면
치악산 1,288m 강원 원주 신림면, 횡성 우천 안흥면
옥갑산 1,285m 강원 정선 북면, 북평면
백운산 1,278.6m 경남 함양, 전북 장수
월봉산 1,279m 경남 함양 서상면, 거창 북상면
명지산 1,267m 경기 가평 북면, 하면
백병산 1,259.3m 강원 태백
청옥산 1,256m 강원 평창
삼봉산 1,254m 경남 거창 고제면, 전북 무주 설천면
괘관산 1,252m 경남 함양군 병곡면, 지곡면, 서하면

거망산 1,245m 경남 함양 안의면, 서하면
왕시루봉1,243 -> 지리산
민주지산 1,242m 충북 영동, 전북 무주
옥석산 1,242m 경북 봉화 춘양면
가지산 1,240m 경남 밀양, 울산 울주, 경북 청도
가칠봉 1,240m 강원 홍천, 인제
장안산 1,237m 전북 장수
선달산 1,236m 강원 영월 하동면, 경북 봉화, 영주
삼정산 1,225m -> 지리산
면 산 1,221m 강원 삼척

일월산 1,218.5m 경북 영양, 봉화
백운산 1,217.8m 전남 광양 옥룡면 진상면
신불산 1,159m 울산 울주 상북면, 삼남면
신선봉 1,204m 강원 고성 토성면 , 인제 북면
석기봉 1,200m 전북 무주, 충북 영동
청태산 1,200m 강원 횡성 둔내면, 평창 방림면


★1100이상

사명산 1,197m 강원 양구
팔공산 1,192.9m 대구시 동구, 경산, 영천, 신녕, 군위
황석산 1,190m 경남 거창,함양, 충남
천황산 1,189m 경남 밀양 산내면, 단장면, 울산 울주 상북면
운문산 1,188m 경북 청도, 경남 밀양, 울산 울주
무등산 1,187m 광주, 전남 담양 남면, 화순 이서면
사달산 1,187m 강원 강릉, 정선
삼봉산 1,187m 경남 함양 함양읍, 전북 남원 산내면
사자산 1,181m 강원 영월 수주면
각화산 1,177m 경북 봉화 춘양면, 소천면

각호산 1,176m 충북 영동 용화면, 상촌면
삼도봉 1,177m 충북 영동, 전북 무주, 경북 김천
거문산 1,175m 강원 평창 용평면
금당산 1,173m 강원 평창 대화면
백석봉 1,170m 강원 정선 북평면
국망봉 1,168m 경기 포천 이동면, 가평 북면
바래봉 1,167m 전북 남원시 운봉면
문수봉 1,161.5m 충북 제천 덕산면
태기산 1,161m 강원 횡성 청일면, 평창 봉평면
신불산 1,159.3m 울산 울주 상북면, 삼남면

선자령 1,157.2m 강원 평창, 강릉
용문산 1,157m 경기 양평 용문면
석룡산 1,155m 경기 가평 북면, 강원 화천 사내면
고양산 1,151m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과 북면, 임계면
팔공산 1,151m 전북 장수
노목산 1,150m 강원 정선 사북읍, 동면
덕두산 1,150m 전북 남원 운봉읍, 동면, 산내면
남병산 1,149m 강원 평창 방림면, 대화면, 평창읍
묘적봉 1,148m 충북 단양 대강면
양각산 1,140m 경남 거창 웅양면, 가북면

오봉산 1,136m 강원 평창 방림면, 횡성 안흥면

오도산 1,133m 경남 합천 Link
운장산 1,125.9m 전북 진안 주천 부귀 정천면, 완주 동상면
덕고산 1,125m 강원 횡성청일 서석면
도솔봉 1,125m 전남 광양
비계산 1,125m 경남 거창,합천
촛대봉 1,125m 경기 가평
보현산 1,124.4m 경북 영천
능경봉 1,123m 강원 평창, 강릉
민둥산 1,120m 강원 정선 남면

쇠이봉 1,119m 강원 영월
상운산 1,118m 경북 청도
대미산 1,115m 경북 문경 문경읍, 동로면
성제봉 1,115m 경남 하동 화개면, 악양면
형제봉 1,115m -> 지리산
덕태산 1,113m 전북 진안 백운면
황악산 1,111m 경북 김천 대항면, 충북 영동 매곡면, 상촌면
장병산 1,108m 강원 삼척시 하장면
재약산 1.108m 경남 밀양시 단장면
황매산 1,108m 경남 합천군 가회면, 대병면


★1000이상

백암산 1,099m 강원 홍천 내촌면, 인제 상남면
웅석봉(웅석산) 1,099m -> 지리산
운달산 1,097.2m 경북 문경
월악산 1,097m 충북 제천 한수면, 덕산면

매봉산 1,095m 강원 원주 신림면, 영월 수주면
백운산 1,087.1m 강원 원주, 충북 제천
매화산 1,085m 강원 원주 소초면, 횡성 안흥면
비슬산 1,083.6m 대구 달성, 옥포 유가 가창면, 청도 각북면
간월산 1,083m 경남 양산
황장산 1,077.4m 경북 문경

주흘산 1,075m 경북 문경 문경읍
운봉산(문봉재) 1,074m 경북 문경 동로면
덕항산 1,070.7m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신기면
연인산 1,068m 경기 가평
목우산 1,066m 강원 영월 하동면, 중동면
백화산 1,063.5m 경북 문경, 마성면, 충북 괴산 연풍면
취서산 1,059m 경남 양산 하북 원동면 울산 울주 상북 삼남면
조화봉 1,058m 대구 달성, 옥포 유가 가창면, 청도 각북면
속리산 1,057.7m 충북 보은 내속리면, 경북 상주 화북면
복계산 1,057m 강원 철원

석병산 1,055m 강원 강릉 옥계면
서덕봉 1,052.6m 강원 강릉 왕산면
마대산 1,052m 강원 영월 하동면, 충북 단양 영춘면
마 산 1,052m 강원 고성 간성읍, 토성면
가리산 1,051m 강원 홍천 두촌면, 화촌면
광덕산 1,046m 경기 포천 이동면, 강원 철원 서면, 화천 사내면
별유산(의상봉) 1,046m 경남 거창군 가조면
삼 봉 1,037m 강원 원주 소초면
귀목봉 1,036m 경기 가평 북면, 하면
두무산 1,034m 경남 거창 가조면, 합천 묘산면, 가야면

적상산 1,034m 전북 무주 적상면
고헌산 1,033m 경남 울산 울주 두서면, 상북면, 언양면
닭이봉 1,028m 강원 정선
하설산 1,028m 충북 제천 덕산면
태화산 1,027m 강원 영월
할미봉 1,026m 경남 함양 서상면, 전북 장수 계내면
민둥산 1,023m 경기 포천 이동면, 가평 북면
민드기봉 1,023m 경기 가평
봉복산 1,022m 강원 횡성 청일면
수리봉 1,019m 충북 단양 단성면

복두봉 1,017m 전북 진안
조령산 1,017m 경북 문경시 문경읍, 충북 괴산 연풍면
금수산 1,016m 충북 제천수산면, 단양 적성면
매화산 1,010m 경남 합천군 가야면
상장바위산 1,006m 강원 정선
백암산 1,004m 경북 울진 온정면, 영양 수비면
구봉산 1,002m 전북 진안, 무주


★900이상

희양산 999.1m 충북 괴산 연풍면, 경북 문경 가은
응봉산 998.5m 강원 삼척 가곡면, 경북 울진 북면
발교산 998m 강원 횡성 청일면, 홍천 동면
두류산 993m 강원 화천 사내면
뇌정산 991m 경북 문경 가은읍
이만봉 989m 충북 괴산 연풍면, 경북 문경 가은읍
십자봉 985m 강원 원주 귀래면, 충북 제천 백운면
청화산 984.2m 충북 괴산 청천면, 경북 상주, 문경
성인봉 984m 경북 울릉도
만수봉 983.2m 충북 제천

시살등 980.9m 경남 양산 동면
운무산 980m 강원 횡성 청일면
복두산 978m 강원 삼척 가곡면
금오산 977m 경북 구미, 김천 남면, 칠곡 북삼면
토 산 974m 강원 삼척
백이산 972m 강원 정선
구학산 971m 강원 원주 신림면, 충북 제천 백운면
향로산 970m 경남 밀양 단장면
둔덕산 969.6m 경북 문경 가은읍
신선봉 968m 충북 충주, 괴산 연풍면

오봉산 967m 경남 양산 상북면, 원동면
배내봉 966m 울산 언양, 경남 양산
도락산 964m 충북 단양 단양읍, 대강면
푯대봉 962m 강원 영월
포암산 961.8m 충북 충주 상모면, 경북 문경 문경읍
구곡산 961m 경남 산청
성주봉 961m 경북 문경
아미산 961m 강원 홍천 서석면
연석산 960m 전북 완주 동상면

오룡산 959m 경남 양산 원동면

황정산 959m 충북 단양
단 산 956m 경북 문경 신북면
조항산 951m 충북 괴산 청천면, 경북 문경 농암면
군자산 948m 충북 괴산 칠성면
함왕봉 947m 경기 양평 옥천면, 용문면
감악산 945m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충북제천
억 산 944m 경북 청도, 경남 밀양
조두산 942m 경남 거창
마역봉 940m 충북 괴산 연풍면
백운봉 940m 경기 양평 양평읍

악휘봉 940m 충북 괴산
화악산 937.5m 경북 청도 청도읍, 경남 밀양

도마치봉 937m 경기 포천 이동면, 강원 화천 사내면
운악산 935.5m 경기 가평 하면, 포천 내촌면
백화산(포성봉) 933m 충북영동, 경북 상주
대야산 931m 충북 괴산 청천면, 경북 문경 가은읍
오음산 930.4m 강원 횡성,홍천
미녀산 930m 경남 거창 가조면
향로봉 929.9m 경북 포항 죽장면
도화산 928m 강원 삼척 도계읍

망덕봉 926m 충북 제천 수산면
감악삼봉 925m 강원 원주 신림면, 충북 제천 봉양면
운교산 925m 강원 영월 하동면, 중동면
벽암산 923.4m 강원 정선 남면
왕 산 923m 경남 산청군 금서면
명성산 922.6m 경기 포천 이동면, 강원 철원 갈말읍
원효산 922m 경남 양산 양산읍, 상북 하북 웅상 동면
병무산 920m 강원 횡성, 홍천
봉화산 920m 전북 남원
집선봉 920m -> 설악산

모후산 919m 전남 화순 남면, 동복면, 순천 송광면
보해산 917m 경남 거창
완택산 916m 강원 영월 영월읍
장성봉 915.3m 경북 문경 가은읍, 충북 괴산 청천면
시루봉 914.5m 충북 괴산 연풍면, 경북 문경 가은읍
공덕산 912.9m 경북 문경 산북면, 동로면
황학산 912.8m 경북 문경 문경읍, 충북 괴산 연풍면
부 봉 912.6m 경북 문경시 문경읍
삼봉산 910m 충북 제천 백운면
최정산 905m 대구 달성

백운산 904m 경기 포천 이동면, 강원 화천 사내면
서대산 903.7m 충남 금산 추부면, 군북면 충북 옥천 군서면
삼각봉 903m 경기 포천 이동면, 강원 철원 갈말읍
주론산 903m 충북 제천 봉양읍
가 산 902m 경북 칠곡 가산면, 동명면
칠성봉 900m 경남 하동
칼봉산 900m 경기 가평 가평읍, 북면


★800이상

자굴산 897m 경남 의령군 가레, 칠곡, 애의면
동 산 896m 충북 제천
백우산 894.7m 강원 홍천
북암산 894m 경남 밀양 산내면
용암봉 892m 충북 제천 한수면
꽤꼬리봉 890m 충북 제천 덕산면
덕주봉 890m 충북 제천, 단양
지각산 890m 강원 삼척시 하장면
구천산 888m 경남 밀양
위령산 888m 강원 정선 임계면

공작산 887m 강원 홍천 화촌면
샛등봉 885m 강원 화천 사내면, 춘천 사북면
조계산 884.3m 전남 순천 승주 송광면, 주암면
백운산 882.5m 강원 정선 신동읍, 평창 미탄면

묘 봉 879m 충북 보은 내속리면, 경북 상주 화북면
사 봉 879m 충북 단양 단성면
축령산 879m 경기 남양주 수동면, 가평군 상면
용화산 878.3m 강원 춘천 사북면, 화천 간동면
대둔산 878m 충남 금산, 논산, 전북 완주
부용산 878m 강원 춘천

구왕봉 877m 충북 괴산 연풍면, 경북 문경 가은읍
지장산 877m 경기 포천 관인면
청계산 877m 경북 상주 화서면, 화남면
구병산 876m 충북 보은 내속리 외속리 마로면, 경북 상주 화북면
대학산 876m 강원 홍천군 동면, 서석면
삼태산 876m 충북 단양 어상천면
성수산 876m 전북 임실
시루봉 876m 경북 문경 농암면
주행봉 874m 충북 영동 황간면, 경북 상주 모서면
용두산 871m 충북 제천

구봉대산 870m 강원 영월 수주면
청량산 870m 경북 봉화 재산면 명호면
학가산 870m 경북 안동, 예천
막장봉 868m 충북 괴산 칠성면, 경북 문경 가은읍
응봉산 868m 강원,홍천
북배산 867m 경기 가평 북면.강원 춘천 서면
도일봉 864m 경기 양평 용문면, 단월면
월여산 862m 경남 거창
유명산 862m 경기 가평 설악면, 양평 옥천면
정각산 859.5m 경남 밀양 단장면

가덕산 858.1m 경기 가평 북면, 강원 춘천 서면
구나무산 858m 경기 가평
백악산 858m 충북 괴산 청천면, 경북 상주 화북면
올 산 858m 충북 단양 대강면
바위산 857.7m 춘천시 북산면
봉미산 856m 경기 가평 설악면, 양평 단월면
토곡산 855m 경남 양산 원동면
고고산 854m 강원 영월 영월읍, 신동읍
월항삼봉 851m 충북 충주 상모면
덕가산 850m 충북 충주, 괴산 연풍면

연엽산 850m 강원 춘천 동산면, 북방면
금오산 849.1m 경남 하동 진교면, 금남면
청계산 849.1m 경기 포천 일동면, 가평 하면
주암산 846m 경북 달성
계룡산 845.1m 충남 공주 반포 계룡면, 논산 두마, 상월면
신선봉 845m 충북 제천 청풍면
제왕산 841m 강원 평창 도암면, 강릉 성산면
남 산 840m 경북 청도 각남면, 화양읍, 청도읍
메밀봉 839m 충북 제천
유학산 839m 경북 칠곡 동명

각흘산 838m 경기 포천 이동면, 강원 철원 갈말면
북한산 836.5m 서울 도봉, 은평, 종로, 경기 고양 신도읍
천주산 836m 경북 문경 동로면
감암산 834m 경남 합천군 가회면
중미산 834m 경기 가평 설악면, 양평 서종면
고대산 832m 강원 연천 철원
무학봉 832m 강원 화천 사내면
번암산 832m 강원 화천 사내면
옹강산 831.8m 경북 경주 산내면, 청도 운문면
강씨봉 830m 경기 포천 일동면, 가평 북면

회문산 830m 전북 순창

도장산 828m 경북 문경 농암면, 상주 화북면
금귀봉 827m 경남 거창
남군자산 827m 충북 괴산 청천면
단석산 827m 경북 건천읍
어비산 826m 경기 가평 설악면, 양평 옥천면
박달산 825.4m 충북 괴산 장연면, 감물면
상 산 825m 경기 남양주 수동면, 상면
병풍산 822m 전남 담양 수북면, 월산면
쌍 봉 822m 경남 밀양

남 산 821m 경북 상주시 은척면
매 봉 820m 경북 문경 동로면
송학산 819m 충북 제천 송학면, 강원 영월 주천면
천삼산 819m 강원 원주 신림면, 충북 제천 봉양읍
봉황산 818m 경북 영주 부석면, 봉화 물야면
주금산 813m 경기 포천 내촌면, 가평 상면, 남양주 수동면
천마산 812.4m 경기 남양주 화도읍,가곡리,호평동,묵현리
뇌암산 812m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둔철산 812m 경남 산청, 신등면, 신안면
천성산 812m 경남 양산 하북면, 웅상면

월출산 808.7m 전남 영암 군서 학산면, 강진 성전면
천등산 807m 충북 충주 산척면, 제천 백운면
갑장산 806m 경북 상주 낙동면
매봉산 806m 강원 영월 상동읍. 중동면
선바위봉 806m 강원 영월
오정산 804.9m 경북 문경 호계면
불모산 802m 경남 창원 성주동
금정산 801m 부산 북구, 동래구, 경남 양산 동면
백아산 801m 전남 화순 북면
봉래산 800m 강원 영월군 영월읍

소구니산 800m 경기 가평 설악면, 양평 옥천면
중원산 800m 경기 양평 용문면, 단월면


★700이상

와룡산 799m 경남 사천시 사천읍,사남면
박달봉 796.6m 경기 포천 이동면, 강원화천 사내면
수덕산 796m 경기 가평 북면
치술령 796m 경북 경주, 울산
모악산 793m 전북 김제 금산면, 완주 구이면
성지봉 791m 경기 양평, 강원 횡성
오서산 790m 충남 보령 청소 청라면, 청양 화성면, 홍성 광천읍
어답산 789m 강원 횡성 갑천면
구만산 785m 경남 밀양시 산내면
마적산 785m 강원 춘천 신북며, 사북면

천마산 783m 경남 양산 상북면
연내봉 782m 충북 충주 상모면
금물산 780m 강원 횡성 서원면, 경기 양평 청운면
덕절산 780m 충북 단양 단성면
면위산(부산) 780m 충북 충주 동량면
보개산 780m 충북 괴산 칠성면, 연풍면
부산(면위산) 780m 충북 충주 동량면
오봉산 779m 강원 춘천 북산면, 화천 간동면
제암산 779m 전남 장흥, 보성
칠보산 778m 충북 괴산 칠성면

연엽산 775m 경북 문경 농암면
가리산 774.3m 경기 포천 이동면
계명산 774m 충북 충주
학 봉 774m 충북 제천
지장산 772.4m 경북 상주, 충북 영동
박쥐봉 772m 충북 충주 앙성면
북바위산 772m 충북 충주 상모면
아기봉 772m 경기 가평 상면, 하면
작성산 771m 충북 제천시 한수면
국망산 770m 충북 충주

금단산 767m 충북 괴산 청천면

무학산 767m 경남 마산
보련산 764m 충북 충주 앙성면, 노은면
통명산 764m 전남 곡성
내장산 763.2m 전북 정읍, 순창 복흥면, 전남 장성 북하면
만덕산 762m 전북 완주군 소양면,상관면, 임실 성수면
비학산 762m 경북 포항 시광면, 기계면, 기북면
팔음산 762m 경북 상주 화동면, 모서면, 충북 옥천 청산면
수리봉 761m 충북 제천 한수면
월악 수리봉 761m 충북 제천 한수면

선야봉 759m 전북 완주, 충남 금산
미숭산 757m 경남 합천군 야로면, 고령읍
선의산 756.4m 경북 청도
화왕산 756m 경남 창녕군 창녕읍
매봉 755m 경남 밀양, 양산
매봉산 755m 경남 밀양, 양산
화야산 755m 경기 가평 외서면, 설악면, 양평군 소종면
백련산 754m 전북 임실 강진면, 청웅면
봉두산 753m 전남 곡성, 순천
구절산 750m 강원 춘천 동산면

보배산 750m 충북 괴산 칠성면
토함산 745m 경북 경주
여항산 744m 경남 함안군
대부산 743.4m 경기 양평 옥천면
방장산 743m 전북 정읍 고창, 전남 장성
편전산 743m 경기 양평 옥천면
대운산 742m 울산 울주 경남 양산
관룡산 740m 경남 창녕 창녕읍, 고암면
낙영산 740m 충북 괴산군 청천면
도봉산 739.5m 서울 도봉, 경기 의정부, 양주 장흥면

영취산 739m 경남 창녕
작약산 738.8m 경북 문경시 농암면
서북산 738.5m 경남 함안군 여항면
왕방산 737m 경기 포천 포천읍, 신북면
애기암봉 737m 경북 문경
봉화산 736m 춘천 북산면
길매봉 735m 경기 포천, 가평
동악산 735m 전남 곡성
관음산 733m 경기 포천 이동면
두악산 732m 충북 단양 단성면

진락산 732m 충남 금산 금산읍, 남이면
추월산 731m 전남 담양 용면, 전북 순창 북흥면
금오산 730m 경남 양산 삼랑진
백암산 730m 전북 순창, 전남 장성 북상, 북하면
장군봉 727.6m 경남 양산

국사봉 727m 경북 문경 동로면
노음산 725m 경북 상주 외서면, 내서면
작약산 725m 경북 영양군 청기면
천관산 723m 전남 장흥 관산읍, 대덕읍
백양산 722m 전남 장성

주왕산 720.6m 경북 청송 부동면
광려산 720.2m 경남 함안 여항면,창원 내서면, 진북면
감투봉 715m 경남 산청
옥녀봉 715m 경기 가평
원등산 715m 전북 완주 소양면

이방산 715m 경남 산청
천태산 715m 충북 영동, 충남 금산
철마산 711m 경기 남양주 진접면, 진건면, 수동면
가섭산 710m 충북 음성

내연산 710m 경북 포항, 영덕 남정면

말목산 710m 충북 단양 적성면
뾰루봉 710m 경기 가평 외서면, 설악면
양자산 710m 경기 양평 강상면, 여주 금사면
제비봉 710m 충북 단양
덕가산 707m 경북 상주시 화북면

천등산 707m 전북 완주 운주면
기양산 706.8m 경북 상주시 청리면
대성산 705m 충북 옥천 이원면
대금산 704m 경기 가평 가평읍, 하면
두륜산 703m 전남 해남 삼산 현산 북평 옥천면

웅산(시루봉) 703m 경남 진해
무척산 702.5m 경남 양산시, 김해시
시루봉 703m 경남 진해
정족산 700m 경남 양산시 상북면


★600이상

광덕산 699m 충남 아산 배방 송악면, 천안 광덕면
용각산 697.4m 경북 청도 매전면
학일산 692.9m 경북 청도 매전면, 금천면
냉 산 692m 경북 구미 해평면, 도개면, 군위군 소보면
시랑산 691m 충북 제천 백운면, 봉양면
몽덕산 690m 경기 가평 북면, 강원 춘천 서면
미륵산 689m 강원 원주
오봉산 688m 경북 경주시 건천읍
용암봉 686m 경남 밀양 상동면
용마산 687m 충북 제천

사룡산 685m 경북 경주시, 영천시
조봉산 684m 충북 괴산 청천면
수선산 683.6m 경북 상주시 청리면
천택산 683.2m 경북 상주 화남면, 화서면
쉰움산 683m 강원 동해, 삼척 미로면
예봉산 683m 경기 남양주 와부읍
금 산 681m 경남 남해, 이동면 삼동면
수레의산 679m 충북 음성 생극면
은두봉 678.4m 경기 남양주 수동면, 가평군 상면
가야산 678m 충남 예산 봉산 덕산면, 서산 운산면 해미면

시루봉 677m 경북 청도

감악산 675m 경기 파주 적성면, 양주 남면
통내산 674.4m 경북 청도 금천면
마이산 673m 전북 진안 진안읍, 마령면
만어산 670.4m 경남 삼랑진
삼성산 668m 경북 청도 각북면

금전산 667.9m 전남 순천 낙안면
대암산 667m 경남 창원, 김해
앵자봉 667m 경기 광주 퇴촌면, 실촌면, 여주 금사면
인등산 666m 충북 충주

사자산 666m 전남 장흥, 보성
천황산 665m 경남 합천
사향산 664.5m 경기 포천 이동면
일림산 664.2m 전남 보성 웅치면, 화천면
종남산 663m 경남 밀양
굴암산 662m 경남 진해
촛대봉 661m 경북 문경 농암면
경각산 660m 전북 완주 구이면, 임실 신덕면
지룡산 659m 경북 청도 운문면
팔기산 659m 부산 기장

청계산 658m 경기 양평 서종면, 양서면
원통산 657m 충북 음성 감곡면, 충주 노은면
장용산 656m 충북 옥천 군서면 금산리
금확산 655m 강원 홍천 북방면, 남면
입암산 655m 전북 정읍 입암면, 전남 장성 북하면
가령산 654m 충북 괴산
삼악산 654m 강원 춘천 서면
석문봉 653m 충남 예산 봉산 덕산면, 서산 운산면 해미면
금병산 652m 강원 춘천 신동면, 동내면, 동산면
금적산 652m 충북 보은 삼승면

벽방산 650.3m 경남 통영 광도면, 고성 거류면
검단산 650m 경기 하남 창우, 광주 동부읍
백암산 650m 충남 금산 남이면
월성봉 650m 전북 완주
통방산 650m 경기 가평 설악면, 양평군 서종면
흑석산 650m 전남, 해남, 강진
작대산 648m 경남 함안 칠원면
육화산 647.9m 경북 청도 청도읍
수리봉 645m 강원 춘천
용골산 645m 전북 순창 동계면

깃대봉 644m 경기 가평
상황봉 644m 전남 완도
오봉산 644m 전남 완도 완도읍
태화산 644m 경기 광주 도척면
도명산 643m 충북 괴산 청천면
종자산 643m 경기 포천 관인면
주봉산 643m 충북 충주 동량면
백양산 642m 부산 부산진구
마니산 640m 충북 옥천군 이원면, 영동군 양산면
방문산 640m 전북 고창읍, 신림면, 전남 장성 북이면

천주산 640m 경남 창원, 마산, 함안
독실산 639m 전남 신안 흑산면 가거도
수락산 638m 서울 성북, 경기 의정부, 남양주 진건면
금봉산 636m 충북 충주
남 산 636m 충북 충주
천덕봉 635m 경기 이천, 여주, 광주
백하산 634m 충북 영동 학산면, 전북 무주
신어산 634m 경남 김해
장 산 634m 부산 해운대
관악산 632m 서울 관악, 경기 시흥, 과천, 안양

등선봉 632m 강원 춘천 강촌
용조봉 631m 경기 양평
천태산 630.9m 경남 양산 삼랑진
호명산 630m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청평리
곡달산 628m 경기 가평 설악면
장락산 627m 경기 가평 서락면, 강원 홍천 서면
고령산 622m 경기 파주시 광탄면, 양주군
문수산 621m 전북 고창 고수면, 전남 장성 서삼면
구천산 620m 경남 삼랑진
덕대산 620m 경남 밀양

명봉산 620m 강원 원주,문막
청우산 619.3m 경기 가평 상면, 외서면
청계산 618m 서울서초, 경기 과천, 의왕, 성남
어룡산 617m 경북 문경 마성면
국사봉 613.3m 전남 영암, 장흥
화학산 613m 전남 화순 청풍면, 도암면
만뢰산 611m 충북 진천
운길산 610.2m 경기 남양주 와부읍
미남봉 610m 충북 보은
죽엽산 610m 경기 포천 소흘 내촌면

오갑산 609m 충북 음성 감곡면, 제천 중원 앙성면
팔영산 609m 전남 고흥 정암면
천봉산 608m 전남 보성 문덕면
성주봉 607m 경북 상주 은천면
홍두께산 604m 경북 청도

불기산 601m 경기 가평 가평읍, 외서면
망경산 600m 충남 아산 배방면, 당진 송악면, 천안 광덕면
호렙산 600m 전북 완주 경천면
고동산 600m 경기 양평 서종면


★500이상

두타산 598m 충북 진천 초평면
산성산 598m 전북 순창 북흥면, 전남 담양 용면
식장산 598m 대전, 충북 옥천 군서면
운암산 597m 전북 완주 동상면, 고산면
용당산 596m 경북 청도 매전면
저승봉 596m 충북 제천시 수산면
용마산 595.7m 경기,광주
칠봉산 595.5m 경북 문경 농암면
구미산 594m 경북 경주시 현곡면
태청산 593m 전남 영광 장성

적대봉 592m 전남 고흥 거금도
백 봉 590m 경기 남양주 와부면, 미금면, 화도면
등곡산 589m 충북 제천 한수면
원정산 589m 경북 청도

종현산 589m 경기 포천 청산면
승무산 588m 경북 상주시 화북면
달음산 587.5m 부산 기장
갈기산 585m 충북 영동 양산면
강천산 583.7m 전북 순창 북흥면, 전남 담양 용면

주읍산 582.9m 경기 양평 용문

광교산 582m 경기 수원시 용인 수지면
장복산 582m 경남 진해시 여좌동
구현산 581m 경남 창녕
종자산 580.7m 강원 홍천
가라산 580m 경남 거제 남부면
무갑산 578.1m 경기 광주 퇴촌면
향로봉 578m 경남 고성
가은산 575m 충북 제천 수산면
만수산 575m 충남 보령 미산면, 부여 외산면
아미산 575m 충남 부여 외산면

무제봉 573m 충북 진천 이월면
우산봉 573m 대전 유성
산성산 572m 전남 담양군 금성면, 용면
거류산 570.5m 경남 고성 거류면
이명산 570m 경남 사천시 곤명면, 하동군 북천면, 진교면
금주산 569m 경기 포천 영종면
백운산 567m 경기 시흥, 수원, 용인 수지면
정병산 567m 경남 창원 동읍
치마산 567m 전북 완주 구이면, 임실 신덕면

승대산 566m 충북, 충주
노자산 565m 경남 거제시 동부면
계룡산 566m 경남 거제 신현읍
제석산 563m 전남 순천, 보성
황계산 562.7m 경북 문경 문경읍
구덕산 562m 부산 북구, 사하구
수인산 561m 전남 장흥
적갑산 561m 경기 남양주
칠갑산 561m 충남 청양 대치 정산 적곡면
관 산 556m 경기 광주 퇴촌면
승학산 556m 경남 밀양

옥녀봉 554.7m 경남 거제 일운면
삼성산 554.2m 경북 경산
안수산 554m 전북 완주 고산면
사패산 552m 경기 의정부, 양주 장흥면
연화산 552m 경남 고성 개천면
월이산 551m 충북 옥천 이원면
천등산 550m 전남 고흥
발치봉 549m 충북 충주 살미면
중수봉 548m 전북 완주 동상면

서운산 547m 경기 안성 서운면, 금광면, 충북 진천 백곡면
용천산 545m 경남 양산 웅천읍
나래산 544m 전북 임실 운암면
용암산 544m 전남 화순 한천면, 춘양면
거문산 543m 부산 기장 철마면
고래산 543m 경기 양평 지제면, 여주 북내면
석은덤산 543m 부산 기장, 경남 양산
성치산 542m 강원 홍천 북방면
당 산 541.1m 경기 양평 양동면, 여주 강천면, 강원 원주 지정면
보광산 539m 충북 괴산 사리면

마복산 538m 전남 고흥 포두면
옥교산 538m 경남 밀양
잣봉 537m 강원 영월 영월읍
문안산 536m 경기 남양주 화도면
소요산 535m 경기 동두천, 포천 청산면
지등산 535m 충북 충주
봉수산 534m 충남 예산 대술면, 아산 송악면, 공주 유구면
인내산 533m 경북 경주
성불산 532m 충북 괴산 감물면
오 산 531m 전남 구례 문척면

비봉산 531m 충북 제천 청풍면
해협산 531m 경기 광주 남종면, 퇴촌면
방어산 530.4m 경남 함안 군북면, 진양 수지면
검봉산 530m 춘천 남산면 강촌
연화산 530m 경남 밀양 언양
월형산 526m 충북 제천 한수면
오봉산 525m 경남 함안, 진양
백원산 523.7m 경북 상주시 인평동
선자산 523m 경남 거제 신현읍, 거제면
설 산 522m 전남 곡성, 담양, 순천

일락산 521.4m 충남 예산 봉산 덕산면, 서산 운산면 해미면
덕성산 519m 경기 안성, 충북 진천
교룡산 518m 전북 남원
칠현산 516.2m 경기 안성, 이죽면, 금광면
대곡산 516m 경남 마산
불갑산 516m 전남 영광군, 함평군 해보면
백마산 514m 경기 광주 초월면, 도척면, 오포면
오봉산 513m 전북 완주 구이면, 임실 운암면, 신덕면

서 산 512.9m 경북 상주시 외남면
영취산 510m 전남 여수

변 산 509m 전북 부안
복우산 508.7m 경북 상주시 낙동면
불암산 508m 서울 도봉, 경기 양주 별내면
산방산 507m 경남 거제 둔덕면
앵 산 507m 경남 거제
칠봉산 506m 경기 동두천, 양주군
근 산 505m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고원견산 503.9m 부산서구, 부산진구
식 산 503m 경북 상주시
좌방산 502m 강원 춘천 남면

천자봉 502m 경남 진해시 자은동
매곡산 501m 경기, 양평
천호산 500m 전북 익산 여산면, 완주 비봉면


★400이상

가야산 497.3m 전남 광양
적석산 497m 경남 고성, 창원,마산 합포 진전면
문형산 496.7m 경기 광주
덕숭산 495m 충남 예산 덕산면
칠탄산 495m 경남 밀양
남 산 494m 경북 경주
석룡산 493m 경남 김해
수주팔봉 493m 충북 충주 살미면
칠장산 492m 경기 안성 이죽면, 상죽면, 금광면
상당산 491.5m 충북 청원

주지봉 491m 전남 영암
달마산 489m 전남 해남 송지면, 북평면
수리산 489m 경기 안양, 시흥, 군포
봉화산 486.8m 강원 춘천 남면 강촌
구성산 488m 전북 김제시 금구면, 금산면
첨찰산 485m 전남 진도 진도읍 고군면
궁성산 484.2m 전남 영암, 나주
구녀산 484m 충북 청원 북이 미원면, 괴산 증평읍
달음산(월아산) 482m 경남 진주 금산면
월아산 482m 경남 진주 금산면

장암산 482m 전남 영광, 장성
삼성산 480.9m 서울 관악, 구로, 경기 안양
검 산 480m 전북 완주 구이면, 임실 신덕면
우두산 480m 경기 양평 지제면, 여주 대신면, 북내면
구룡산 479.4m 강원 원주 지정면
소리산 479.2m 경기 양평 단월면
보개산 478.9m 부산 강서구, 경남 진해
주작산 475m 전남 강진, 해남
망이산 472m 충북 음성 삼성면, 경기도 안성 일죽면
주월산 470m 충북 괴산 장연면

마니산 469.4m 인천 강화 화도면
백마산 465m 충북 괴산
북병산 465m 경남 거제
국사봉 462m 경남 거제 신현읍
경옥봉 461m 전북 완주 동상면
미륵산 461m 경남 통영 봉평동, 산양읍
동신어산 460m 경남 김해 상동면

불곡(국)산 460m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연대봉 459.4m 부산 가덕도
쌍선봉 459m 전북 부안 변산

비봉산 458m 강원 양구 양구읍
보문산 457m 대전 중구
여귀산 457m 전남 진도 임회면
백월산 453m 경남 창원
금성산 451m 전남 나주 경현동 대호동
계방산 450.5m 경남 함안 군북면, 진양 수지면
번대산 450m 경기 동두천, 포천 신북면
삼봉산 447.6m 경북 상주시 낙동면
마옥산 445.4m 경기 일죽,이천
경수산 444m 전북 고창

두승산 444m 전북 정읍
대금산 437.5m 경남 거제 장목면
천봉산 435.8m 경북 상주
관음봉 433m 전북 부안 변산, 상서면
덕룡산 432m 전남 강진 도암면
격자봉 430.3m 전남 완도 보길도
미륵산 430m 전북 익산 금마면, 삼기면, 낭산면
계족산 429m 대전 대덕구 동구
바라산 428m 경기 시흥, 의왕, 성남
불명산 428m 전북 완주 경천면, 운주면

황령산 427.9m 부산
태화산 416m 충남 공주 사곡면
선녀봉 414m 전북 완주 운주면
백족산 413m 충북 청원 가덕면
만덕산 409m 전남 강진 도암면
천생산 407m 경북 구미
군유산 403m 전남 함평, 영광
정암산 403m 경기 광주 남종면, 퇴촌면
환희산 402m 충북 진천 문백면


★300이상

불모산 399m 경남 통영 사량면(사량도)
사량도지리산 398m 경남 통영 사량면 돈지리
설봉산 394.4m 경기 이천읍
오봉산 392m 전남 보성 득량면
보금산 390m 경기 여주 강천면
중리동산 385m 경남 양산 원동면
용봉산 381m 충남 예산 덕산면, 삽교읍, 홍성 홍북면
덕룡산 376m 전남 나주 다도면, 봉황면
문수산 376m 경기 김포 월곶면
장태산 374m 대전 서구

봉실산 372m 전북 완주 봉동읍, 비봉면
녹수봉 370m 경기 가평 상면
산성산 368.2m 부산 기장
깃대봉 368m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
병풍산 365.6m 경북 상주시
두봉산 363m 전남 신안 자은도
팔봉산 362m 충남 서산 팔봉면
월방산 360.1m 경북 문경 산양면
천호봉 360m 충남 논산 연산면, 두마면, 벌곡면
도비산 352m 충남 서산 부석면

구수산 351m 전남 영광 백수읍
양천산 350m 충북 진천 문백면
도드람산 349m 경기 이천 마장면
아미산 349m 충남 당진 면천면
칠현산 349m 경남 사량도
모악산 348m 전남 함평, 영광
개이빨산 345m 전북 고창
수양산 342m 전북 완주 옹진면, 고산면
우금산 340m 전북 부안 상서면
왕의산 338.6m 경북 문경 산양면

인왕산 338.2m 서울 서대문구
우암산 338m 충북 청주 우암동
천보산 337m 경기 양주군 회천읍
선운산 336m 전북 고창
매악산 335m 경북 상주시 사벌면
덕암산 331.1m 경북 상주시 중동면
구담봉 330m 충북 제천 수산면, 단양군 단양읍
팔용산 328m 경남 마산 화원구
해명산 327m 인천 강화 삼산면 석모도
금오산 323m 전남 여수 돌산읍

승달산 318m 전남 무안
상봉산 316m 인천 강화 삼산면 석모도
수정산 316m 부산 동구
일광산 316m 부산 기장
팔봉산 302m 강원 홍천 서면


★200이상

구황봉 298m 전북 고창 아산면
양성산 297m 충북 청원 문의면
안 산 295.9m 서울 서대문구
대모산 293m 서울 서초, 강남
우면산 293m 서울 서초, 경기 과천
아차산 287m 서울 중량구, 경기 구리
옥순봉 286m 충북 제천 수산면, 단양군 단양읍
백화산 284m 충남 태안 태안읍
토 봉 284m 경북 상주, 의성
구룡산 283m 서울 서초

옥녀봉 281m -> 경남 통영시 사량도
마금산 280m 경남 창원 북면
천마산 279m 경북 문경 영순면
낙가산 267m 인천 강화 삼산면 석모도
구봉산 264m 대전 서구
남 산 262m 서울
절뒤산 260m 경북 경주 양북면
칠락산 260m 전남 신안 흑산면 대흑산도
오봉산 235m 경북 상주시 함창읍

칠보산 234m 경기 수원, 화성

비봉산 230m 경북 상주시 중동면

유달산 228m 전남 목포시 죽교동
정족산 220m 인천 강화 길상면
종고산 220m 전남 여수
백련산 215.5m 서울 은평구, 서대문구
봉대산 203m 전남 무안 해제면

★200m 미만의 산

가야산 189.3m 전남 나주
성산일출봉 182m 제주
옥주봉 163m 경북 상주 사벌면
갈두산 155m 전남 해남 송지면

인의산 152m 전남 무안 일로읍
망주봉 152m 전북 군산 선유도
양을산 151m 전남 목포
금골산 135m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우두산 133m 강원 춘천
일봉산 133m 충남 천안 다가동
완산칠봉 132m 전북 전주
수월산 128m 전남 여천군 삼산면 거문도
팔달산 128m 경기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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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재(三災)라 함은***



천살(천殺), 지살(地殺), 인살(人殺)을 두고 삼재라 한다
삼재는 어느 누구나 12년마다 누구에게나 한번씩은 돌아오게 되어 있고
세상에 삼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며
삼재에 대한 일반적 상식을 잘 알아두었다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생활하시는데 참고 하길 바라며
삼재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언제 자신에게 삼재가 들어 오는지도 알아 보자.

삼재(三災)라 함은 천살(천殺), 지살(地殺), 인살(人殺)을 두고 삼재라 하는데

1
.천살(天殺) 천재지변으로 당하는사고나 불가학력적인 사고를의미하고.
2.지살(地殺) 교통사고나 각종노상의 횡액을 말하며.
3.인살(人殺) 각종보증이나 사기수에 고통 당함을 의미한다.

삼재(三災)가 들면 자신에게 삼재 팔난(三災八難)이 생긴다고 하며
삼재는 화재(火災) 수재(水災) 풍재(風災)를 말하기도 하며
팔난은 손재, 주색, 질병, 부모, 형제, 부부, 관재, 학업등을 말하는데
이것을 합쳐 삼재 팔난(三災八難)이라고 하며
삼재가 들면 삼년 동안 이러한 것들로부터 고통을 받는다고 하는데
제일먼저 시작되는 때가 들삼재라 하며 중간이 눌삼재라 하고 마지막년(年)이 날삼재라 한다.

삼재의 시기 언제부터 삼재가 자신에게 들어오는지 알아 보도록 하며
삼재를 볼 때는 자신의 무슨 띠인지 알아야 언제부터 인지 아래 도표 참조

년도 삼재종류
地 支
2001年 (들삼재) 돼지띠, 토끼띠,양띠 (亥,卯,未)
2002年 (눌삼재) 토끼띠, 돼지띠, 양띠 (亥,卯,未)
2003年 (날삼재) 양띠, 돼지띠, 토끼띠 (亥,卯,未)
2004年 (들삼재) 범띠, 말띠, 개띠 (寅,午,戌)
2005年 (눌삼재) 말띠, 범띠, 개띠 (寅,午戌)
2006年 (날삼재) 개띠, 말띠, 범띠 (寅,午,戌)
2007年 (들삼재) 뱀띠, 닭띠, 소띠 (巳,酉,丑) r>2008年 (눌삼재) 닭띠, 뱀띠, 소띠 (巳,酉,丑)
2009年 (날삼재) 소띠, 닭띠, 뱀띠 (巳,酉,丑)
2010年 (들삼재) 원숭이띠, 쥐띠, 용띠 (申,子,辰)
2011年 (눌삼재) 쥐띠, 원숭이띠, 용띠 (申,子,辰)
2012年 (날삼재) 용띠, 쥐띠, 원숭이띠 (申,子,辰)
2013부터는 다시 돼지띠, 토끼띠, 양띠로 부터 시작됩니다.

위 표에서 보듯이 자신의 출생년 띠를 보고 해당년 띠를 찾아가면
자신이 지금 현재 삼재에 와 있는지 쉽게 알수가 있고
언제 삼재가 드는지를 찾을수 있을 것이며 일단 삼재에 들어오면
삼년 동안은 삼재의 영향아래 있다고 판단하면 된다.
이것을 토대로 보면 예를 들어 설명해 보면 br>뱀띠 해(2001년 :辛巳年-신사년)부터 3년간(2003년 :癸未年-계미년)까지 시작되는
재자의 띠는(돼지띠 토끼띠 양띠)가 해당되며 들삼재는 돼지띠가 되며
눌삼재는 토끼띠가 되며 날삼재는 양띠가 되는 것이다.

삼재의 원리
삼재는 어떤 원리에서 나온 것이며 자세한 것은 더 많은것을 알어보아야 하겠지만
삼재는 삼합(三合)으로 형성되어 있는것이 특징이며 역학에 관심 있는분은 금방 알것이며
삼합의 생지(生支)를 충(沖) 하는 년에 삼재가 들어 온다는 것이다.
를 들어 해묘미(亥卯未2001-2003까지) 삼합(三合)의 경우 생지(生支)에 br>해당하는 해(年)를 충(沖) 하는 사년(巳年)부터 삼재가 시작되어
오년(午年)과 미년(未年)까지 삼재(三災)가 형성되어 있다.

삼재와 풍파
부모나 아니면 주위에서 삼재가 들어오니 조심하라고 하면 기분이 그리 좋지도 않고
정말로 삼재(三災)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생길까 하고 걱정도 하고
한번쯤 의문을 제기하는 예가 꽤 많았을 것이며 생활하기 바빠 삼재고 뭐고 잊고 살았는데
삼재가 들어서 인지, 왠지 하는 일마다 안풀리고 점점 꼬여만 가면 걱정을 안하려고 해도
힘들어지면 여기 저기 알아보고 철학관에 가서 문의도 해보게 된다.

삼재에는 세가지로 나누어진다.

삼재(三災)종류 삼재의 설명
복삼재(福三災) br>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대운이 같이 들면 문서의 기쁨도 있으며
행운이들어 길한 운(運)으로 바뀌는 시기다.
평삼재(平三災)
무해무덕(無害無德)이니 좋은것도 나쁜것도 커게 영향을 받지않아
편안하게 지나간다는 것이고.
악삼재(
惡三災)
삼재팔난의 고비가들어 하는일이 막힘이많고 풍파가생겨 수많은 고생과
바야흐로 삼재의 고통이 많으니 지극정으로 기도하며 넘겨야 한다.

위표를 보면 누구는 복삼재에 해당하고 누구는 흉 삼재에 해당이 되는것인가?
이런 의문이 생길것이며 그것은 본인 사주를 보고 운의 흐름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사주와 운의 흐름이며 br>운이 나쁘면 뭐든 하는일이 잘 안될것이고
운이 좋으면 뭐든 하는 일마다 잘될것이고
삼재가 들어 운이 나쁘면 더욱더 재난과 풍파가 생기는 것이니
운이 기신운으로 흐르면 풍파가 생긴다고 보고
운이 용신운으로 흐르면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한 해석이 되는 것이니 개개인의 사주를 전문가에 문의하면
정확한 삼재의 흉과 길함의 감정이 될것임.

모든것이 알면 병이라헀다. 따라서 위의 삼재도 생활에 대화중 삼재에 대하여란 정도로
이해하고 깊이 빠저드는것은 삶에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모든것은 자신에 하기 나름이며 과학에 바탕과 본인에 의지라본다.
위의글로 하여금 살아가는데 좀더 조심하며 침착할수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odibo123 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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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25가지 난제 선정

우주탐사선이 소행성을 명중시키고 인위적으로 만든 배아 줄기세포가 난치병 치료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고 있지만, 인간이 밝혀내지 못한 세상의 비밀은 아직도 너무 많다.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이 자신을 ‘진리의 대양에서 매끈한 조약돌을 찾으려는 소년’에 빗댄 것처럼, 과학자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수수께끼 투성이다.

미국에서 발행하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는 창간 20주년 기념으로 현대 과학자들이 너무도 해결하고 싶어하는 과학적 질문들을 정리했다. 사이언스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선정한 25개 질문들은 인간들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그러나 사실은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각 분야의 도전 목록이다. 이 중 흥미로운 주제들을 뽑아 정리했다.

▦우주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우주 95% 구성 암흑물질 아직 존재조차 확인못해


우주는 중력의 힘에 비해 너무도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것은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5%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암흑 에너지’, 보이지 않는 물질들은 ‘암흑 물질’이라고 일컬어진다. 우주의 95%를 구성하는 이들 물질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전 세계에서 지구 근처를 떠도는 암흑 물질의 흔적을 찾으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고병원 교수는 “암흑 물질을 찾아내는 것은 어두운 방에서 벌레가 내는 미미한 소리에 의존해 벌레의 존재를 알아내려는 것과 같다”면서 “암흑 물질의 성질이나 질량, 그 상호작용의 크기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아 어디서 신호가 나타날지도 알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지구의 내부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지구내부 들여다 볼래도 4㎞깊이 이상 탐사 불가


지각과 맨틀, 핵으로 이루어진 지구 내부에 대한 탐사는 극히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현재로선 지진파를 이용하는 것 외에 다른 탐사방법이 없다. 이 방법은 땅에 구멍을 뚫고 작게는 금속 추를, 크게는 폭약을 터뜨려 이 진동이 전달되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질자원연구원 지질기반연구부 이병주 박사는 “지표에서 지구 중심까지의 거리는 6,400㎞에 달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4㎞ 이상 들어가지 못했다”면서 “그 이상 들어가면 온도가 너무 높아 어떤 물질이라도 녹아 내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반도 아래가 어떤 형태의 지각으로 이뤄졌는지조차 아직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며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에 대해 아는 것은 지극히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유전자 수가 극히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유전자는 선충 수준 만물의 영장 노릇 어떻게


인간의 유전자 수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약 2만5,000개에 불과하다. 생명공학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을 때 인간이 적어도 10만개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던 것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이는 풀 종류인 아기장대나 C. 엘리건스라는 선충과 비슷한 수준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이처럼 적은 수의 유전자를 갖고 어떤 생물체에도 뒤지지 않는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힘쓰고 있다.

▦물리학의 ‘대통일 이론’은 성립할 수 있을까

표준모형 중력배제 약점 대체이론 구축 산넘어 산


쿼크나 렙톤 등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와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표준모형’이라는 이론으로 정리돼 있다. 표준모형이라는 명칭을 얻기까지 이 이론과 관련한 수많은 실험이 진행됐다. 이 모형은 거의 모든 검증 과정을 놀랄만한 정확도로 통과했다. 그러나 표준모형은 중력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 구축이 논의되는 중이다.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박재현 교수는 “우주의 생성과 자연 현상을 설명할 새 모델을 만드는데 가장 큰 장애는 그 이론이 맞는지 실험을 통해 증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라면서 “표준모형을 대체할 대통일 이론 등이 대두되고 있지만, 양성자 붕괴 현상을 규명하기 어렵다는 점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지구 밖에 생명체가 존재할까

외계생명체 있을까 과학적 증명은 全無


미확인 비행물체(UFO)를 관측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외계 생명체 존재 여부에 대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다. 화성에 한 때 미생물이 살았던 흔적이 있었다고는 하나 바로 지금 지구 밖에 살아있는 ‘그 무엇’이 있는지는 풀지 못한 숙제다.

지구 밖 고등생물의 존재를 탐사하는 계획은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라고 불린다. 1960년 미국 코넬대 프랭크 드레이크가 외계 문명이 보내는 전파신호를 잡기 위해 웨스트버지니아에 있는 미국국립전파천문대의 전파좆彭堧?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다. 92년 10월에는 미 항공우주국(NASA)까지 나서 SETI 사업을 추진했지만, 아직까지 ‘외계인의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


■나머지 난제 20가지는

▦인간 의식의 실체는 무엇일까?

▦타고난 유전자는 개인의 건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인간의 수명은 얼마나 늘어날 수 있을까?

▦동물의 겨울잠은 어떤 요소에 의해 조절될까?

▦인간의 피부세포는 어떻게 신경세포로 분화할까?

▦단 하나의 체세포가 거대한 식물로 자라는 원리는 무엇일까?

▦지구의 생명체는 언제, 어디서 등장했을까?

▦종의 다양성을 결정하는 변수는 무엇일까?

▦어떤 유전적 변화가 우리를 ‘인간’이라는 특이한 종으로 만들었을까?

▦우리의 기억은 어떤 방식으로 저장될까?

▦동물의 집단 행동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수많은 생물학적 정보를 통해 인간은 자연계의 통합된 모형을 도출할 수 있을까?

▦정보처리 속도의 한계는 어디일까?

▦원자 및 분자의 화학적 결합은 어느 선까지 가능할까

▦면역 반응을 선택적으로 제한할 수 있을까?

▦양자의 예측 불가능성 아래 심오한 원칙이 숨어있지 않을까?

▦효과적인 HIV 백신을 만들 수 있을까?

▦온실효과가 극대화한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는 무엇일까?

▦식량 증가가 인구 증가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맬더스의 인구법칙’은 계속 틀린 이론으로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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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조 모음

정보의바다 2007. 11. 21. 12:02
 
[가]
 
 
 
 
 
 
circle09_green.gif 가마귀 싸호는 골에 (정몽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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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지은이 미상]
 
 
 
 
 
 
 
 
 
 
 
 
 
 
 
 
 
 
 [아]
 
 
 
 
 
 
circle09_green.gif 어부가(漁夫歌) (이현보)
 
 
 
 
 
 
circle09_green.gif 어져 내 일이야 (황진이)
 
 
 
 
 
 
circle09_green.gif 오륜가 (주세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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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꽃이름을 클릭하면 사진과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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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지어 끈이 한쪽만 흘러내리는 이유

브래지어 끈이 유독 한쪽만 흘러내리거나 치마가 자꾸 한쪽으로 돌아가고, 신발 밑창이 유난히 한쪽만 닳는다면? 별거 아닌 것쯤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척추 건강이 심각히 위협받는 상태일 수도 있다. 척추뼈가 제 위치를 벗어나 휘어지는 ‘척추측만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우리 몸은 척추를 중심으로 좌우의 골격근이 대칭이어야 한다. 하지만 잘못된 생활습관과 나쁜 자세로 척추가 틀어져 정상적인 대칭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말한 증상은 척추가 휘어져 양쪽 골반과 어깨높이가 달라져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척추뼈가 제 위치를 벗어나서 휘어지는 증상을 ‘척추측만증’이라고 한다.
뒤에서 봤을 때 일자여야 할 척추뼈가 옆으로 휘어 C자나 S자로 변형되는 척추 이상질환이다.

수시로 몸의 균형을 살펴봐야 

척추측만증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양 어깨가 수평을 이루지 않거나 골반의 높이가 달라 치마가 돌아가는 경우다. 신발 밑창이 서로 다르게 닳고, 평평한 바닥에 똑바로 엎드렸을 때 양쪽 다리길이에 차이가 나기도 한다. 사진을 찍을 때 항상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어져 나오는 경우에도 휘어진 척추를 의심해야한다.

이렇게 척추측만증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간단하게나마 집에서 자신의 몸을 관찰해보는 것이 좋다. 옷을 다 벗고 거울 앞에 서서 골반 높이와 어깨 높이가 같은지 확인한다.
귀에서 복숭아뼈로 이어지는 옆모습 선이 나란한지 허리가 뒤로 볼록하지는 않은지도 체크해 본다. 몸을 똑바로 선 상태에서 어깨 높이가 다르거나 골반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경우, 좌우 견갑골(날갯죽지)의 높이나 또는 튀어나온 정도가 다를 때는 척추측만증을 의심해 정밀진단을 받아야 한다. 여성의 경우는 양쪽 유방의 크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다음으로 몸을 구부려 유연성이 어떤지, 양쪽으로 똑같이 내려가는 지를 확인한다. 옆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서있는 상태에서 몸 뒤쪽에 울퉁불퉁한 척추 뼈의 돌기에 손을 대고 쭈욱 따라 내려가 보면 척추모양이 정상인지 휘어져 있는지 대강 그려진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몸은 원래 태어났을 때는 좌우 대칭을 이루지만 오른손잡이, 왼손잡이 등 많이 쓰는 쪽의 근육이 발달하면서 좌우측 양쪽 몸이 조금씩 짝짝이를 이루게 된다. 때문에 정확한 척추전문가의 진단이 필수다. 의학적으로 전신 척추 엑스레이상 옆으로 휜 각도가 10도 이상일 때, 척추가 C자형이나 S자형으로 변형이 있을 때를 척추측만증이라 한다.
 
휜 척추, 방치하면 디스크로 진행

대부분 척추측만증은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인 10세 전후에 시작된다. 초기에는 외관상 뚜렷한 변화도 없어 간과하고 지내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정도의 성장기에 갑자기 악화되고 급속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척추측만증은 남학생보다 여학생에게 많이 발생하는데, 사춘기 때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면 인대와 근육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잘못된 생활습관과 나쁜 자세, 근무조건으로 인해 성인의 발병률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휘어지는 모양은 처음에는 뒤에서 봤을 때 일자 형태인 척추뼈가 C자 모양으로 휘어지기 시작해서 점점 S자 모양으로 복잡하게 변해간다. 양쪽 골반과 어깨높이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아예 몸통 자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초기에 생활에 크게 불편함이 없다고 방치할 경우, 이후 디스크로 악화돼 엄청난 고통을 불러 오기도 한다.

척추측만증이 있으면 디스크의 말랑말랑한 조직이 압력을 고르게 받지 못하고, 삐뚤어진 채 불균형한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어 디스크의 손상이 빨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돌출된 디스크나 흘러나온 수핵이 척추뼈와 디스크 사이에 형성된 성장판을 침범하면 성장에 장애가 따를 수도 있다. 척추측만증을 그냥 방치할 경우 척추가 더 심하게 휘어지고 디스크로 악화되는 한편 심각한 신경손상까지도 야기할 수도 있다.

척추측만증 예방, 바른 자세는 필수 

척추측만증은 바른 자세가 예방의 최고 관건이다. 서 있을 때, 앉아 있을 때, 누워서 잘 때도 허리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TV를 보거나 의자에 앉을 때 등을 구부린 채 목을 앞으로 쑥 빼고 컴퓨터를 보는 등의 자세는 매우 좋지 않다.

다리를 꼬는 습관은 골반변형의 주요 원인이다. 엎드려서 책보기, 쭈그리고 앉아서 일하기, 방바닥에 다리 한쪽으로 모아서 얌전히 앉아 있기, 굽 높은 신발 등도 피하는 것이 좋다. 의자에 오래 앉아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학생과 직장인에게는 의자 선택도 중요하다. 의자가 높으면 발이 공중에 떠서 등받이에 의지할 수 없어 허리 주변 근육에 부담을 많이 준다.

발바닥 전체가 바닥에 편안하게 닿은 상태에서 허벅지는 지면과 수평이 되고, 무릎은 85도에서 90도 정도로 구부러진 각도를 유지하면서 편안하게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는 자세가 좋다.

원칙적으로 척추측만증은 한번 생기면 저절로 펴지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나빠지게 된다. 다만 키가 클 때는 좀 더 빨리 나빠지고 키가 다 크면 정지해 있는 것 같다가도 나이가 들면 빠른 속도로 몸이 앞으로 굽게 된다. 때문에 척추측만증 치료는 빠를수록 좋다.

최근에는 첨단재활기구들이 많이 개발되어 보조기 착용기간을 줄이고 운동치료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x-ray검사 상 옆으로 휜 각도가 40도 이상 넘어갈 경우(성장이 끝났을 경우는 50도 이상)는 나사못고정술과 같은 대수술도 고려해야 한다.


Tip 척추측만증, 이러면 의심해보세요

1. 똑바로 선 자세에서 거울을 보면 양 어깨가 수평을 이루지 않는다.
2. 골반의 높이가 다르다.(여성은 치마가 돌아가기도 한다)
3. 양팔을 옆으로 내렸을 때 팔과 몸통사이의 뜨는 간격이 좌우측이 서로 다르다.
4. 신발굽이 서로 다르게 닳는다.
5. 사진을 찍을 때 항상 고개가 삐딱하다.
6. 어깨를 펴고 선 모습을 옆에서 봤을 때 귀에서 떨어지는 선이 어깨 앞쪽에 위치한다.
7. 똑바로 누워 재보면 팔과 다리의 길이가 좌우측이 서로 다르다.
8. 무릎을 펴고 상체를 숙였을 때, 한쪽 등과 허리가 솟아 나와 있다.

이성호 현대유비스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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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퍼에는 YKK라는 이니셜이 있다. 이는 세계 최대의 지퍼 회사 Yoshida Kogyo Kabushibibaisha의 약자.
2. 갓 따른 샴페인에 건포도를 하나 넣으면 유리잔내에서 계속 위 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한다.
3. 오리가 꽥꽥거리는 소리는 메아리가 생기지 않는다. 아무도 그 이유는 모른다.
4. 맥도날드는 해피밀 세트 판매가 전체 수익의 40%를 차지한다.
5. 1996년판 웹스터 사전에는 315개 단어의 철자가 잘못 표기됐다.
6. 하루 평균 12명의 신생아는 부모가 바뀐다.
7. 초콜렛은 강아지를 죽일 수 있다. 초콜렛은 개의 심장과 신경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주 소량의 초콜렛으로도 강아지를 죽일 수 있다.
8. 대부분 립스틱 성분에는 물고기 비늘이 포함돼 있다.
9. 1830년경에는 케첩이 의료용으로 판매됐다.
10.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한 손으로 글을 쓰고 나머지 한 손으로 그림 그리기를 동시에 했다.

11. 2차대전 중에는 금속이 부족해 오스카상을 나무로 제작했다.
12.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에는 시계가 없다.
13.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가위를 발명했다. 그리고 모나리자의 입술을 그리는데 10년이 걸렸다.
14. 브루스 리(이소룡)의 몸동작은 너무 빨라서 그의 움직임을 보려면 테이프를 느리게 재생해야 한다.
15. 나비의 원래 이름은 flutterby였다.
16. 천천히 다리를 올리고 누우면 유사(빠져드는 모래)에 빠지지 않는다.
17. 모기약은 모기를 쫓는 게 아니라 사람을 숨겨주는 것이다. 모기약 스프레이는 모기의 센서를 방해해 사람이 있는 곳을 찾지 못하게 한다.
18. 치과의사들은 flush(변기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생기는 공기중 미생물로부터 칫솔을 보호하기 위해선 화장실에서 1.8m 정도 떨어진 곳에 칫솔을 놔두기를 권한다.
19. 최초의 바코드 상품은 Wrigley사의 껌이었다.

20. 말보로사의 초대 회장은 폐암으로 사망했다.
21. 마이클 조던은 나이키 사의 공장 모든 직원들의 월급을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돈을 매년 나이키로부터 벌고 있다.
22. 마릴린 먼로는 한 쪽 발에 여섯 개의 발가락을 갖고 있었다.
23. 히틀러의 어머니는 심각하게 낙태를 고려했으나 의사의 만류로 그만뒀다.
24. 지구상에서 가장 값나가는 브랜드는 순서대로 말보로, 코카콜라, 버드와이저다.
25. 왼손만 가지고 타이핑할 수 있는 단어 중 가장 긴 것은 Stewardesses이다.
26. 악어입에 물렸을 때는 손가락으로 악어 눈을 공격해라. 악어가 즉시 놔줄 것이다.
27. 111,111,111 곱하기 111,111,111을 하면 12,345,678,987,654,321 의 결과가 나온다.
28. 세계에서 제일 흔한 이름은 무하마드(Mohammed).
29. 사람들이 잠에 들기까지 평균 7분이 걸린다.
30. 키보드의 Pound(#) 키는 octothorp라고 불린다.

31.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은 유일한 가축은 고양이다.
32. 고무밴드는 냉장고에 놔두면 더 오래간다.
33. 사람들은 보통 타이핑할 때 평균적으로 왼손을 56% 사용한다.
34. 영어중에서 mt로 끝나는 유일한 단어는 Dreamt
35. 눈을 뜬 상태에서 코를 골 수 없다.
36. KFC의 슬로건 손가락을 빨아도 맛있어요~ 중국어로 손가락을 먹어치워라가 된다.
37. 바퀴는 머리가 잘려도 10일 동안 생존할 수 있다.
38. 유럽 여성들은 1900년까지 속옷을 입지 않았다.
39. 인간은 살면서 18kg 가량의 피부를 벗는다.
40. 요요는 한때 필리핀에서 무기로 사용됐다.

41. 코카콜라는 자동차용 오일로 사용 가능하다.
42. 멕시코시티는 매년 0.254m씩 가라앉고 있다.
43. 두뇌는 텔레비전을 볼 때보다 잠잘 때 더 활동적이 된다.
44. 미국인의 80%가 좋아하는 색상은 파란색이다.
45. 스리랑카에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이 그렇다는 긍정의 대답이다.
46. 지구상에는 사람보다 닭이 더 많다.
47. 아이슬란드에서 개를 키우는 건 불법이다.
48. 엄지 손가락의 손톱이 가장 천천히 자라며 가운데 손가락의 손톱이 가장 빨리 자란다.
49. 영어에서 모음이 역순으로 정리된 단어는 subcontinental
50. 워싱턴에는 사람보다 전화기 수가 더 많다.
51. 베토벤은 작곡하기 전에 머리에 얼음물을 쏟아부었다.
52. 파키스탄에서는 남에게 발을 보여주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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