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 글 | 김지현 태평양연구소 피부연구팀 선임연구원ㆍnocti@amorepacific.com |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로 오드리 헵번은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도톰한 광대뼈와 큰 눈, 짧은 턱은 그녀를 더욱 발랄하고 어려 보이게 했다. 하지만 39년이 지난 1992년 생을 마감한 헵번의 얼굴은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했지만 말년에 유니세프 대사로 활동하며 아프리카의 강한 태양 아래에서 어린이들을 돌보느라 피부에 깊게 주름이 패었다.

헵번이 나이가 들어서도 그 탱탱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늙은 탈도 똑같네

젊은 시절 모습 그대로일 것 같던 오드리 헵번도 말년에는 얼굴에 주름이 패었다.
2002년 일본의 화장품 기업인 시세이도에서는 나이에 따라 일본 여성의 얼굴 윤곽이 어떻게 변하는지 독특한 방법으로 분석했다. 무아레(moire) 카메라라고 하는 특수 카메라로 얼굴 정면을 촬영하면 지형도의 등고선처럼 같은 높이를 연결한 무아레 선이 나타나는데, 이는 고고학에서 유골의 생전 얼굴을 유추하는데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형도와 마찬가지로 무아레 사진에서도 등고선이 밀접해 있으면 경사가 급한 것이고, 선이 어지럽게 널려있으면 표면이 상당히 울퉁불퉁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촬영 결과 여성의 나이가 많을수록 무아레선이 흐트러지면서 불규칙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에 주름이 많이 생겨 피부 표면에 굴곡이 생긴 탓이다.

일본 전통 탈 ‘노멘’(윗줄)을 무아레 카메라로 찍었다(아랫줄). 나이가 많은 오른쪽으로 갈수록 등고선이 불규칙하게 나타난다.
또 이 결과를 일본 전통극에서 쓰는 탈인 ‘노멘’을 연령별로 찍은 무아레 사진과 비교했더니 놀랍게도 실제 연령대의 여성과 노멘의 무아레 선이 유사한 형태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서 윗눈꺼풀이 늘어지고, 눈꼬리와 입꼬리가 처지며, 뺨은 야위어 전체적으로 그늘져 보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아마 우리의 전통 탈을 연령에 따라 부내탈, 각시탈, 할미탈로 놓고 무아레 카메라로 찍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처럼 피부 노화에서 주름은 피부 나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주름은 세월의 흔적을 반영하는 나이테로 동안(童顔)의 가장 큰 ‘적’이자 나이를 가늠케 하는 첫 번째 지표다.


콜라겐의 양과 질이 핵심

주름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사과가 오래돼 마를 때 껍질에 주름이 생긴다. 과육은 수분이 빠지면서 오그라드는데 겉껍질은 줄지 않기 때문에 껍질이 쪼글쪼글해지면서 표면적을 줄여 과육을 감싸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피부 안쪽의 섬유질이나 액체 성분이 감소하면 피부에 주름이 진다. 또 사과와 달리 사람은 근육이 피부를 잡아당기기 때문에 주름이 생기기도 한다. 얇은 비닐의 양끝을 잡아당기면 가운데 방향으로 주름이 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렇다면 피부 안쪽의 부피가 줄어드는 이유는 뭘까. 초기에는 피부에 수분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거나 피지 분비가 감소해 건조해져서 주름이 생긴다. 이때는 피부에 집중적으로 수분을 공급해주면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노화가 좀 더 진행된 피부에서는 각질형성세포의 증식 능력이 떨어지고 진피가 손상되면서 탄력이 없어지고 잔주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피부 표면뿐만 아니라 피부 깊숙이 손상돼 진피가 질적으로 변했을 뿐 아니라 양적으로 변한 것이다. 이때는 주로 콜라겐(collagen)이 변성되면서 주름이 생긴다.

콜라겐은 단백질 3개가 나선형태로 꼬인 구조다. 콜라겐은 진피의 90%를 차지하며 지방을 제외한 피부 전체 중량의 77%를 차지하고 있어 피부에 장력을 제공한다. 진피에 콜라겐이 제대로 자리 잡고 있어야 탱탱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노화가 진행된 피부에서는 콜라겐을 합성하는 세포인 섬유아세포의 증식 능력과 합성 능력이 점차 쇠퇴한다. 게다가 콜라겐 분해 효소(MMP-1)는 증가한다. 결국 피부에 노화가 진행될수록 점차 콜라겐 합성은 감소하고 동시에 콜라겐 분해는 증가해 피부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콜라겐의 총량이 큰 폭으로 감소한다. 이로 인해 주름이 생기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이 피부에 상처를 입었을 때 치유 속도가 더딘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미시건대 의대 피부과 보히스 박사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생성된 콜라겐의 분해 산물이 피부 속에서 다시 콜라겐 분해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콜라겐이 한번 분해되기 시작하면 이때 생성되는 콜라겐 조각들이 남아있는 콜라겐을 분해하면서 결과적으로 콜라겐의 양을 감소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콜라겐의 양적 변화와 함께 질적 변화도 일어난다. 정상적인 피부에 있는 콜라겐은 표면이 매끈하고 잘 정돈돼 있다. 그런데 노화가 일어나면 콜라겐끼리 결합되는 부자연스러운 가교결합이 늘어나면서 배열이 흐트러져 피부 표면이 거칠고 두께도 불균일해진다. 이 때문에 탄력과 장력을 유지하는 콜라겐 본연의 기능을 잃어버려 피부에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처지는 것이다.


벗기고, 마비시키고, 채우고

그렇다면 주름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피부의 가장 바깥인 각질에 생기는 가는 주름은 화학적 필링(peeling)을 통해 어느 정도 개선이 가능하다. ‘peeling’이라는 뜻처럼 피부에서 묵은 각질을 벗겨내 피부 표면을 매끈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주름이 굵어지면 이는 진피의 문제이므로 정상적인 콜라겐과 엘라스틴*의 양을 늘리고 이들을 분해하는 효소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발현되거나 활성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레틴산*(retinoic acid) 피부제제나 레티놀*(retinol)이 함유된 주름 기능성 화장품이 바로 이를 이용한 것이다. 그밖에 항산화력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진 비타민 C와 E, 녹차의 폴리페놀 성분도 화장품에서 인정받은 대표적인 주름 개선 성분이다.

그런데 주름을 펴기 위해서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원래 사람의 피부는 인체 외부의 유해 환경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라는 사실이다.

즉 아무리 뛰어난 주름 개선 효능을 가진 물질이라도 피부를 직접 뚫고 들어가 피부 속까지 전달되지 못하면 허사인데, 피부의 원래 기능상 이 물질을 피부 속까지 전달하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 유수의 연구소에서 나노 기술을 써서 물질의 피부 투과율을 높이는 연구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피부 투과성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주름 개선 방법도 있다. 최근 성행하는 보톡스(botox)와 필러(filler)다.

최근 이탈리아 총선에서 패배한 국무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그의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왼쪽)이 보톡스 시술 뒤 완화됐다(오른쪽).
보톡스란 상한 통조림에서 생기는 박테리아가 만든 독소를 정제한 것으로 신경 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막아 근육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보톡스 시술로 이마, 눈가, 미간, 콧등, 윗입술 등 표정 근육에 의해 발생하는 표정 주름을 일정 기간 동안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입가의 팔(八)자 주름이나 굵은 주름은 피부의 진피가 손상돼 생겼기 때문에 보톡스로 해결하기 어렵다. 이때는 진피를 구성하는 성분과 유사한 성분을 주름이 생긴 부위에 채워 넣어 함몰된 부분을 원상복귀 시키는 방법을 쓰는데, 이것이 필러다. 필러는 콜라겐을 비롯해 생체 성분과 유사한 여러 성분을 사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고 자연스러운 개선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바르는 필러’도 주름 개선에 많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피부에 노화가 일어나면 진피 내에서 수분을 흡수해 유지하는 저수지 역할을 하는 글리코사미노글리칸(GAG)의 성분 중 하나인 히알루론산(hyaluronic acid)이 감소한다. 히알루론산은 피부에 0.1% 가량 존재하지만 수분을 흡수하면 부피가 1000배까지 팽창하기 때문에 진피의 보습과 피부의 탄력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히알루론산을 피부에 투과하기 쉽도록 작은 입자로 만들어 화장품처럼 바르면 히알루론산이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수분을 흡수해 순간적으로 팽창하면서 주름을 밀어 펼친다.

엘라스틴*
콜라겐과 함께 진피를 구성하는 단백질이다. 탄력섬유로 피부를 탱탱하게 잡아당겨 주는 역할을 한다.

레틴산, 레티놀*
비타민 A를 통칭해 레티노이드라고 한다. 레틴산은 비타민 A의 유도체로 피부의 각질을 제거하고 주름을 펴는 효과가 있다. 레티놀은 레틴산의 유도체로 주름 개선 효과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 피부는 내가 지킨다

얼굴의 주름살도 마음의 구김살도 활짝 펴 주는 링클 프리 묘약은 없을까.
오랫동안 강렬한 햇빛에 노출된 50대 인디언 여성과 일생의 대부분을 실내에서 지낸 70대 티베트 여승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인디언 여성은 티베트 여승보다 젊은 나이인데도 얼굴에는 온통 굵은 주름이 뒤덮고 있었다. 반면 티베트 여승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탱탱한 피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자외선이 주름과 같은 피부 노화를 일으키는 주범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바꿔 말하면 자외선에 의해 생기는 주름은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동일한 유전적 소인을 타고난 쌍둥이도 자라면서 피부를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따라 피부 상태가 서로 달라진다.

지난 4월 7일 세계보건기구(WTO)는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남성은 73세, 여성은 80세라고 발표했다. 2030년이 되면 선진국의 평균수명은 100세가 될 것이며, 한국도 지금 속도라면 100세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의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렇게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는 것이 현실이라면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더 오랫동안 유지하려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비록 우리 염색체 속에 녹아 있는 진화의 흔적을 바꿔놓을 마법은 불가능할지라도 내 피부의 역사는 내가 쓸 수 있지 않을까.



김지현 연구원은 | 경북대 생화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생화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터 태평양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항산화, 슬리밍(slimming) 등 피부에 관한 기초 연구를 토대로 사회 트렌드를 접목시켜 최근 헤라, 아이오페 등 여러 제품의 피부과학적 컨셉을 개발했다.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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