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린 날의 초상
‘얼짱 각도’에 숨은 황금비
| 글 | 박수진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 박사ㆍeulb@yonsei.ac.kr |
최근 국내에 ‘동안(童顔) 바람’이 거세다.

맞선 장소에서는 ‘어려보이네요’라는 말이 최고의 칭찬으로 통하고, 30, 40대 직장인 사이에서는 어려보이는 외모가 ‘경쟁력’이다.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는 영화배우 문근영은 동안 열풍의 아이콘으로 각종 광고에서 종횡무진 하고 있다.

과연 어떻게 생겨야 동안으로 불릴 수 있을까. 우리가 동안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과학으로 해부한 ‘동안의 조건’이 여기 있다.
지난 설 연휴 SBS에서 ‘전국 동안(童顔) 선발대회’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더니 요즘 신문과 방송마다 ‘동안이 뜨고 있다’며 난리다. 한 기사에서는 이런 동안 열풍을 ‘얼짱과 몸짱의 시대가 가고 동안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동안이 ‘얼짱’이나 ‘꽃미남’으로 상징되는 얼굴의 미모와는 무관한 것일까. 진화적인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은 아름다운 얼굴의 특징을 어려 보이는 것과 연결시켜 설명하기도 한다. 얼굴이 아름답다는 것이 결국 젊고 건강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얼짱 대신 동안’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그렇다면 어떤 얼굴이 동안일까.



동글동글한 얼굴에 넓은 이마

어린이가 자라 성인이 되고 더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는 동안 얼굴은 조금씩 변한다. 얼굴형이 달라지고 피부가 푸석해진다. 그래도 우리는 그 사람이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오랜만에 만나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나이가 들면서 얼굴이 변하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리다. 때문에 늘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에 대해서는 그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하고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늙었다는 것도 어느 날 새삼스레 이마에 생긴 주름살을 보고 깨닫는다.

얼굴은 초등학생, 나이는 30대. SBS ‘전국 동안선발대회’에 참가한 출연자가 최고의 동안으로 뽑히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반면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는 일은 쉽지 않다. 수십 년 만에 만난 이산가족은 이미 서류로 확인을 했는데도 반 신반의하는 경우가 많고, ‘반갑다, 친구야!’를 외치는 KBS ‘해피 투게더’에서 중견 연예인은 친구를 찾아내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약 25년이 흐른 뒤 사진 속의 동창을 찾아내라고 하자 참가자들은 친구를 잘 찾아내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길래 같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일까.

어린이는 대개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짱구 같은 인상이며 얼굴 전체에서 이마가 차지하는 부위가 넓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특징은 인간의 유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포유류의 어린 새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어른은 이런 특징을 볼 때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갖는다. 보호받아야할 무력한 존재인 어린이가 어른에게 사랑스럽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아이의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답지 않은 얼굴 특징을 가진 경우는 실제로 관심과 사랑을 덜 받고 학대를 더 받는 경향이 있다. 즉 이런 어린이에 대해 어른들은 보호해줘야 한다는 느낌을 갖는 대신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행동을 기대하고, 어린이의 행동은 여전히 서툴기 때문에 그로 인해 야단맞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눈 크고 턱 짧아야

동그스름한 얼굴, 넓은 이마, 큰 눈, 짧은 턱. 동안은 젊기 때문에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 준다.
어린이의 이목구비에서 어른과 가장 큰 차이는 어릴수록 눈이 크고 턱이 작아 턱선이 도드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나이가 들면서 이마가 좁아지거나 눈이 작아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얼굴 상단부보다 하단부가 더 많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턱이 약간 짧아야 어려 보인다.

예를 들어 소위 ‘얼짱 각도’의 사진은 예쁘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려 보이는 경향도 있다. 이는 사진을 찍는 각도 때문에 실제보다 눈이 커지고 얼굴에서 코 위쪽의 상단부의 비중이 커지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눈이 크면 얼굴이 더 어리고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은 ‘특질 미인 가설’과 관계가 있다. 이 가설에서는 가령 큰 눈이나 도톰한 입술처럼 미인만의 특질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에서 두드러지는 이런 특징은 젊고 건강하다는 것이며 이것이 후손을 얻는데 유리한 특징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어릴수록 더 아름답다’는 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

‘립글로스를 입술 중앙 부분에 발라 입체감을 주고, 장밋빛 블러셔로 화사한 피부를 연출하고…’어려보이는 메이크업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한편 서양인이 일반적으로 동양인을 더 어리게 본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 역시 동양인의 얼굴 특징이 서양인과 비교해 동안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개 유럽인을 기준으로 서양인의 얼굴은 갸름하고 콧날이 오뚝하게 선 반면 아시아계는 얼굴이 동글동글한 편이며 콧대도 높지 않아서 서양인의 관점에서는 더 어려 보일 수 있다.

결국 동안이란 해부학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여러 변화를 겪지 않은 것처럼 어린이의 얼굴 특징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얼굴이다. 동그스름한 얼굴, 넓은 이마, 커다란 눈. 어린이가 이런 특징을 가질 때는 그저 아이다움에 지나지 않지만, 성인이 이런 특징을 보이면 아직 덜 자란, 그래서 젊고 더 성장할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보인다.

그렇다면 동안으로 보일 때 어떤 이점이 있을까.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미성년자 출입금지 같은 곤란한 일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안이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10년은 젊어 보여’가 여전히 칭찬이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어려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안은 잘못해도 용서된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동안인 성인은 일반적으로 어린이 같은 심리적 성향을 가질 것이라는 기대심리를 생기게 한다. 즉 동안인 사람은 따뜻하고 순종적이며 정직하고 순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는 ‘동안 과일반화 효과’(babyness overgeneralization effect)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죄를 짓더라도 동안인 사람은 으레 부주의에 의한 과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성숙한 얼굴을 가진 사람은 의도적으로 죄를 저질렀을 것이라고 짐작한다는 것이다. 동안인 성인의 잘못을 미성숙해서 실수한 것으로 봐준다는 것은 어린이답지 않게 생겼다고 해서 더 야단맞는 어린이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잘못에 관대한 태도는 아름다운 여성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죄는 친구를 잘못 뒀거나 그럴 만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로 해석되고 그래서 처벌도 조금 더 가벼워지는 경향이 있다.

어떤 연구자는 성인 여성이 동안이면 남성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흔히 신부의 나이가 신랑의 나이보다 적은 것은 동안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나이가 어린 사람을 선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동안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사람이 더 긍정적으로 평가돼 선량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후광 효과’(halo effect)와도 관련이 있다.

후광 효과 때문에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 쉽게 도움을 얻고, 결혼도 쉽게 하며, 심지어 취업도 잘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얼굴에는 젊어 보이는 것도 포함된다.

그런데 어려 보인다고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동안인 사람은 순진할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지적인 측면에서는 뒤처져 보일 수 있다. 따라서 동안이 신입사원으로는 매력적일지 몰라도 책임을 맡는 자리를 얻고 싶을 때는 불리할 수도 있다.

또 어린이가 무력하고 보호해줘야 할 대상으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안인 사람은 신체적으로 강인해 보이지 않는다. 신체적인 경쟁이 심한 남자의 경우 동안이어서 순종적이고 무력해 보인다는 것은 집단에서 서열이 낮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사회가 변하면서 신체적인 힘 이외의 다른 요소들이 중요하게 취급되지만 여전히 특정 분야에서는 신체적인 힘이 중요한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여성이 단순 범죄가 아닌 사기죄를 저지르면 가중 처벌을 받는 경향도 있다. 아름다운 외모를 범죄에 이용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안도 사안에 따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01폴드 주름(Fold) 관절 부위 안쪽에 생기는 주름. 손바닥에 있는 주름이 대표적인 예다. 관절을 폈다 굽히는 동작을 반복하면 관절을 감싼 피부와 근육이 신축하면서 생긴다. / 02링클 주름Wrinkles) 보통‘주름살’이라고 부르는 주름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자외선 등에 의한 피부 결함으로 생기기 때문에 화장품 연구나 피부과 치료에서 관심을 갖는 주름이다. / 03라인 주름(Lines) 얼굴을 찡그리거나 크게 웃을 때 특히 이마나 코언저리에 생기는 주름. 근육이 수축할 때 일시적으로 생긴다. 표정 주름의 원인이 된다.
광노화(Photoageing) 햇빛에 노출된 피부에서 나타나는 노화 현상을 말한다. 대개 내인성노화와 결합해 발생한다. 광노화는 햇빛 노출을 줄이면 예방할 수 있다. / 내인성노화(Intrinsic Ageing) 나이가 들어 자연스럽게 생기는 노화 현상을 일컫는다. 내인성노화가 진행되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탄력이 줄어들며, 잔주름이 생긴다.

젊음을 과시하는 사회

나이가 들면 배가 나와야 ‘중년의 향기’가 있다? 요즘은 꾸준한 관리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것이 경쟁력이다.
최근 동안이 각광받는 것은 경험이나 그와 더불어 축적된 지혜보다는 젊고 발랄한 것에 가치를 두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위엄이 없고 코믹한 중년 연예인이 인기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또 가난했던 시절에는 배가 나온 것이 부(富)의 상징이었던 반면 요즘에는 날씬한 외모가 운동으로 외모를 관리할 수 있을 정도의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있음을 암시한다. 피부 마사지를 받고 잡티나 검버섯을 제거하는 시술을 하며 축 처진 피부를 보톡스로 탱탱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표시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경쟁적으로 젊음을 과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박수진 박사는 |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디자인과 얼굴의 시각적 요소와 감성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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