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 신드롬
멜라닌 없애는 4 가지 방법
| 글 | 김주덕 숙명여대 원격대학원 향장미용 전공 주임교수ㆍjdkim303@sookmyung.ac.kr |
눈처럼 하얀 피부, 앵두처럼 빨간 입술, 숯처럼 까만 머리카락. 백설공주는 계모 왕비가 원하는 얼굴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 서양화가들이 그린 명화 속 여성들은 풍만한 자태와 함께 순백의 피부를 뽐낸다. 19세기에는 창백해 보일 만큼 흰 피부가 미인의 기준이었다. 최근 이런 ‘백설공주 신드롬’이 다시 일고 있다.


멜라노솜 크기 작아야 희다

우리가 보통 ‘어려보인다’고 판단할 때 피부색은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한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주름이나 잡티 없이 어린이처럼 맑고 투명한 뽀얀 피부를 가졌다면 생김새와는 무관하게 곱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사진을 찍기 전에 모델의 피부 표현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결점 없는 깨끗한 피부는 완벽한 얼굴의 시작인 셈이다.

피부색에 영향을 미치는 색소에는 크게 멜라닌, 헤모글로빈, 카로틴 3가지가 있다. 멜라닌은 표피에 있는 멜라닌세포(멜라노사이트)에서 생성되고, 헤모글로빈은 진피의 혈관 속에 함유돼 있으며, 카로틴은 피하조직에 들어 있다. 이 중 피부색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피부의 제일 바깥층에 있는 멜라닌이다.

피부가 햇빛을 받으면 색소형성 세포인 멜라노사이트에서 화학 반응이 일어나 멜라닌이 만들어진다. 이때 멜라닌은 대개 다갈색 내지 검은색을 띠는데, 이런 멜라닌은 정확히 ‘유멜라닌’이라고 불린다. 유멜라닌 외에 황적색을 띠는 ‘페오멜라닌’도 있는데, 페오멜라닌은 어떤 사람에게는 모발에서만 생성되기도 한다. 페오멜라닌이 합성되는 과정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피부색은 인종, 성별, 연령에 따라 다르다. 같은 사람도 신체 부위, 건강 상태나 스트레스 정도, 또 계절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런데 피부색이 다른 흑인, 황인, 백인의 같은 부위의 피부를 비교해보면 멜라노사이트의 밀도에는 차이가 없다. 다만 멜라노사이트의 멜라닌 합성 능력과 각질을 형성하는 케라티노사이트로 옮겨가는 멜라노솜의 수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흑인은 멜라노솜 수가 많고 골고루 퍼져 있으며 멜라노솜의 크기도 더 크고 멜라닌 색소도 많이 함유하고 있는 반면, 백인은 멜라노솜 수가 적고 함유하는 색소의 양도 적다. 한국인과 같은 황인은 그 중간으로 백인에 가까운 형태를 띤다.


비타민 C가 주근깨 제거에 좋다

황인이 백인처럼 하얘질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멜라닌 생성을 비롯해 피부에 색소가 침착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자외선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색소가 침착되는 정확한 과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화장품업계에서는 피부에 색소가 생성되는 것을 막거나 색소를 제거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멜라노사이트에 세포 독성을 줘서 멜라닌의 생성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다. 또 티로시나제의 작용을 억제해 멜라닌이 생성되는 화학적인 경로를 차단하기도 한다. 피부의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이미 생성된 멜라닌의 배출 속도를 증가시키는 방법도 있다. 멜라닌이 합성되는 화학 반응의 중간 단계에서 산화 멜라닌을 환원해 밝은 색의 환원 멜라닌으로 바꾸기도 한다. 흔히 비타민 C가 기미, 주근깨에 효과가 좋다고 얘기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멜라노사이트에 세포 독성을 주는 방법은 멜라닌의 생성을 억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세포에 독성을 주기 때문에 피부에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심하면 백반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화장품에서는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며 일부 의약품에서만 사용한다. 예를 들어 강력한 탈색제 중 하나인 ‘하이드로퀴논’은 의약품에서는 2~4% 함유될 수 있지만 화장품에서는 사용 자체가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피부에 자극이 거의 없는 천연 원료 개발이 활발하다. 현재 피부 색소를 없애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천연물로는 상백피, 감초, 닥나무 뿌리, 월귤나무 등에서 추출한 성분이 있다. 특히 감초나 상백피 추출물은 멜라닌 형성 효소인 티로시나제의 작용을 억제하는데 효과가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흰 피부가 뭐길래

하얀 살갗에 대한 동경은 유독 아시아에서 심하다. 피부 색에 상관없이 깨끗하고 투명하기만 하다면 충분히 매력적일텐데.
인도인은 결혼 상대자를 정하는 조건에 반드시 하얀 피부가 들어간다고 한다. 인도의 ‘카스트’가 원래 ‘색채’를 뜻하고 피부색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하니 흰 피부와 검은 피부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상징하는 ‘신분’이었을 터이다. 지난해 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는 베트남 여성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화장품이 ‘미백 크림’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렇게 흰색에 열광할 필요가 있을까.

피부 색소에 대한 동서양의 연구를 봐도 흰색이 어려보이는 얼굴 이외에 일종의 사회적인 함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는 대부분 백반증이나 백색증 등 질병을 없애는 문제에 집중해 멜라닌의 생성을 촉진하려는 연구가 많다. 반대로 동양에서는 가능한한 멜라닌의 생성을 저해하려는 연구가 많다. 이는 근대 이후 강대국이었던 서양에 대한 동양인의 ‘동경’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흰 피부라고 해서 우리가 타고난 피부가 모두 같은 정도로 하얗지는 않다. 같은 흰색이어도 개인에 따라 다양한 피부색이 존재한다. 핑크빛이 돌든, 까무잡잡하든, 노르스름하든 피부가 깨끗하고 투명하기만 하면 굳이 우윳빛의 하얀 피부가 아니어도 충분히 건강하고 매력적이다.

비록 흰 피부가 어려보이는 얼굴의 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각자의 생김새나 취향을 고려해 머리, 의상, 메이크업을 얼마든지 젊은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장점이나 개성을 무시한 채 흰 피부를 위해 진한 화장을 하며 역효과를 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


김주덕 교수는 | 성균관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화학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최초로 화장품학과를 개설했으며 현재 식약청 화장품 심의위원, 보건복지부 화장품산업발전협의회 위원장, 기능성화장품연구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화장품은 사치품이 아니며 첨단 기술이 필요한 미래형 산업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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