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마을’이라더니, 상점 75개 가운데 50곳이 한우 관련 가게다. 정육점 28곳, 식당 21곳, 내장과 뼈를 파는 한우 부산물 가게 1곳. 정읍에서도 자동차로 30분 걸리는 전북 정읍시 산외면에는 매일 전국 각지 번호판을 단 관광버스 10여대가 찾아온다. 주말엔 20여대로 늘어난다. 평일 3000여명, 주말엔 7000여명이 몰린다. 2800여명인 산외면민 전체 인구보다도 많다.
 

쇠고기 때문이다. 등심 한근(600g)이 1만4000원. 정육점에서 사서 식당에 가져가면 양념값만 받고 구워 먹도록 해 준다. 합쳐서 2만원. 보통 식당의 쇠고기 등심 1인분(200g)이 2만~3만원이니, 한근을 구워 먹으면 6만~9만원. 돼지고기 삼겹살도 1인분 7000원, 한근이면 2만원이 넘는다. 쇠고기가 돼지고기 값인 셈이다.

어떻게 이런 가격이 가능할까? 답은 성기를 제거하지 않은 수소인 비거세우를 쓴다는 데 있었다. 비거세우는 20~24개월이면 다 자라기 때문에 거세우보다 사육기간이 6~10개월 짧다. 비용이 적게 든다. 고기량도 많다. 전체의 48%를 고기로 사용할 수 있어 마리당 쇠고기 360여근이 나온다. 지방이 많아 280여근밖에 나오지 않는 암소보다 경제적이다.

2년 전만 해도 산외면의 정육점은 단 2곳이었다. 삼겹살을 주로 팔고, 이따금 한우도 팔았다. 2005년 초 이웃마을에서 비거세우 쇠고기를 싸게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계절 정육점이 처음 비거세우를 팔기 시작했다. 한근에 1만원.

“산외에서 한우를 돼지고기 값에 판다”는 입소문을 타고 정읍, 전주 등 전북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줄을 세우다 못해 번호표를 나눠줘야 할 정도였다. 고기 먹을 곳이 없어 자동차 안에서 육회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다 김용복 번영회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횟집처럼 양념값을 받고 구워먹을 자리와 가스레인지, 밑반찬을 내 주는 것. 창고를 개조해 탁자 몇개 놨을 뿐인데 사람이 ‘구름떼처럼’ 몰렸다. 김씨의 가게는 번듯한 별채까지 냈고, 정육점도 그해 말 4곳, 식당은 5곳으로 늘었다.

이듬해 김훈 현 산외면장이 부임하면서 한우 관련 업종을 집중 육성했다. 6개월 만에 정육점 21개, 식당 18개로 늘어났다. 오는 6월말까지 정육점과 식당은 도합 57곳으로 늘어나게 된다. 산외면의 한우 1일 매출액은 2005년 3000여만원에서 지난해 3억원으로 10배 뛰었다. 지난 2월 정육점 문을 연 임봉찬씨(54)는 “사람이 워낙 몰려들어 숨돌릴 틈도 없다”며 발길에 새카맣게 변한 문지방을 가리켰다.

산외면에서 하루에 판매하는 소는 50마리 정도다. 한달이면 1300여마리. 많이 파는 정육점은 하루 4마리를 판다. 전북 한우를 모두 합쳐도 20여만마리, 비거세우는 10~15%인 3만여마리 정도다. 전북 소로는 감당이 안돼 최근엔 전라남도, 충청도, 경상도 등 전국 곳곳에서 소를 사 온다. 물량이 달리다보니 값도 크게 올랐다. 암소·거세우의 80% 수준이던 가격이 최근엔 거세우를 거의 따라잡았다. 김훈 면장은 “전국 비거세우 소값은 산외면에서 결정된다”며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축산농가들이 굉장히 힘들지만 산외면만은 예외”라고 말했다. 그는 “정육점과 축산농가의 직거래로 중간 유통 마진을 줄이고, 정육점이나 식당을 가족 단위로 경영해 인건비를 줄인 것도 싼 가격의 비결”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맛으로 따지면 비거세우는 거세우만 못하다. 운동량이 많아 지방이 적기 때문에 고기가 약간 질긴 편이다. 산외면에서 본격적으로 취급하기 전까지는 주로 햄같은 육가공품용으로 납품됐다. 김회장은 “그래도 같은 값인 돼지고기에 비하면 훨씬 맛있다”며 “부드럽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씹는 고기맛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고기도 신선하다. 소비량이 많기 때문에 냉동육이 거의 없다. 그날 잡아 숙성만 시켜 판다. 쇠고기는 산외면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면사무소 앞을 지나는 2차선 도로엔 한우 간판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우 식당을 빼면 토끼탕을 함께 파는 백반집과 중국집 정도가 유일한 식당이다. 김면장은 “산외 한우만 배달하는 전용 택배 사무실, 한우를 구워 먹도록 한 한우 펜션도 들어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우 장사를 하기 위해 외지인도 많이 들어왔다. 한우 관련업종 종사자의 60% 정도가 외지인이다. 2005년까지 평당 20만원이던 땅값은 현재 15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고기 먹으러 달려온 관광버스들이 빠져나가는 오후 5시. 정육점의 냉장고마다 분홍빛 등이 선명해진다. 갈고리에 꿴 갈비 덩어리, 창자, 간이 걸려있다. 고개 돌릴 때마다 ‘고기만 들고 오세요’라고 큼직하게 써 붙인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컬트적인’ 풍경이다. 돼지고기 값에 쇠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산외면. 이 독특한 모습은 맛여행의 덤이다.

▲한우마을 길잡이

행정구역은 정읍시지만 태인이 더 가깝다. 호남고속도로 태인IC로 빠져나와 우회전해 30번 국도 태인·칠보 방향을 탄다. 태인 읍내에서 30번 국도 강진·칠보 방향으로 달리다 산성교회 앞에서 산외방향 49번 지방도로로 갈아탄다. 태인IC에서 15분 정도 걸린다. 면사무소 뜰, 학교 운동장 모두 주차장으로 동원되지만 주말엔 교통체증이 심각하다. 면소재지 400m를 빠져나가는 데 15분 이상 걸린다.

정육점에서 직접 고기를 구입, 식당에 가서 구워 먹는다. 쇠고기 가격은 균일하다. 한근(600g) 기준으로 등심·차돌박이 등 구이 1만4000원. 날고기에 깨소금만 뿌려 먹는 육사시미 1만4000원, 육회 1만원. 사골은 4.5~5㎏짜리가 8만~10만원이다.

양념값은 한근 기준으로 구이 6000원, 육회 1만원. 쌈야채, 마늘, 김치, 무채 등이 나온다. 식사는 소면이나 된장찌개를 별도로 시키면 된다. “식당이 불친절하다”는 말이 가끔 나온다. 원래 식당을 하던 사람들이 아니라, 한우마을이 조성되면서 가족이 함께 식당을 차린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우명가(063-537-1586)는 한우마을 번영회 김용복 회장이 운영하는 식당. 양념값 받고 자리 차려주는 형태로는 산외면에서 가장 먼저 생겼다. ‘산외토종한우’(063-537-5308)는 집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목장에서 소를 대는 정육점이다.

전화로 주문하면 택배로 배달해준다. 하루 판매량의 절반가량이 택배 물량이다. 진공 포장해 아이스박스에 넣어 보내준다. 배달 비용은 수령지에서 계산한다. 단풍 여행지로 유명한 내장산, 장성 백양사, 정읍, 전주 등이 1시간 안팎에 있다. 지난해 단풍철엔 내장산을 들렀다 고기를 먹으러 온 관광버스가 매일 25대 찾아왔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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