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히는 듯 마는 듯 살캉한 멸치회무침에 입맛 돌고…
오태진 기자의 '이 맛' - 경남 남해 '우리식당'

남해 본섬과 동북쪽 창선도를 잇는 창선교 아래 지족해협은 죽방렴으로 이름났다. 물살이 빠르면서도 얕은 해협에 참나무 말뚝들을 V자로 박아 고기를 가둬 잡는 원시어업이다. 이렇게 잡은 멸치는 생채기 없이 눈부신 은빛을 띠고 담백 쫄깃해 귀하다.
“기장 사람들도 남해 생멸치 맛보고는 놀라데예. 다른 데 멸치는 너무 기름지고 뼈가 억세다 아입니꺼. 남해 멸치는 빠른 물살에서 노느라 몸을 많이 놀려서 육질이 쫀득하고 고소하지예.” 창선교 남쪽에서 32년째 ‘우리식당’을 꾸려 온 이순심(61)씨의 자랑이다. 이씨는 코앞 지족해협에서 갓 잡아 올린 죽방 멸치를 사철 싱싱한 무침과 조림으로 차린다.
 
멸치쌈밥(6000원)은 손가락 굵기만 한 대멸(큰 멸치)을 머리와 내장만 떼내고 통째로 매콤짭짤하게 조려 쌈 싸먹는 별미다. 고구마 줄기 넣고 국물이 자박자박하도록 조렸는데도 멸치의 은빛이 채 가시지 않았다. 조금 비릿한 멸치가 쌉싸름한 상추와 절묘한 궁합을 이루며 단숨에 입맛을 살린다.
 
매콤새콤한 멸치회무침(2만원)은 정성 덩어리다. 손으로 멸치 머리와 꼬리를 일일이 떼고 뼈, 내장 발라내고 길게 반으로 갈라 다듬는다. 미조항 할머니들이 손질해 놓은 것을 갖다 쓰는 집이 적지 않지만 이씨는 꼬박 손품을 들여야 성이 찬다. 손질이 서툴수록 멸치 쥐고 승강이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새 살이 흐물흐물해질 만큼 예민한 게 멸치다. 그래서 남의 손에 맡길 수가 없다. 이걸 깻잎 미나리 양파 고추와 함께 초장으로 무쳐 낸다. 비린내 없이 씹히는 듯 마는 듯 살캉살캉한 식감이 마치 젤리를 먹는 듯하다. 막걸리 식초를 다른 집보다 적게 써서 식초향만 살짝 느껴진다. 신맛이 세면 고소한 고기 본래 맛을 해치기 때문이다.
 
갈치회(2만원)도 제주도식과 달리 멸치회처럼 무친다. 너비가 손가락 둘 합친 것만 한 어린 죽방 갈치들을 뼈째 썰어 연한 살과 여린 뼈 맛이 산뜻하다. 흔히 젓가락으로 회를 뒤져야 할 만큼 야채와 양념이 더 많기 일쑤지만 이 집 회무침은 그 반대다. 갈치조림과 찌개(6000원) 갈치구이(7000원)도 양을 따지면 도시 절반 값이 안 된다.
 
찬거리도 모두 남해산을 쓰고 간장·된장 젓갈도 직접 담근다. 멸치젓 볼락젓 미역무침 깻잎절임 고추절임 마늘장아찌에 말린 잔갈치 조림까지 여남은 반찬이 허투루 내는 것 하나 없이 맛깔스럽다. 이것저것 먹어보고 싶어하는 손님에겐 양을 줄여 반값에 고루 맛보게 해준다. 운 좋으면 메뉴에도 없는 대멸구이를 몇 마리 얻어먹을 수 있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게 고소하다 못해 사르르 녹는다. 생멸치 구이만의 생생한 맛을 전어구이인들 따를까.
 
“인심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식당’이 그런 집이다. 싸고 맛나고 푸짐한 데다 꾸밈없이 살가운 시골 인심까지 누릴 수 있다. 홀 36석. 뒤쪽 칸막이 방 셋을 트면 단체 손님을 60명까지 들인다. 남해를 찾는 낚시·등산·골프객들 사이에 제법 소문이 났다. 창선교를 북쪽으로 건너기 직전 오른쪽 삼동면 지족리. 설·추석 하루씩만 쉬고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영업한다.(055)867-0074.
조선일보
오태진기자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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