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귀에 익은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그중 부르고뉴 공국의 오래된 중심 도시로 역사적 의의가 깊은 디종과 부르고뉴 국제 와인 거래의 중심지인 본은 특히 역사와 예술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 그리고 새로운 해를 맞아 뭔가 즐거움을 발견하고 싶다면 부르고뉴 지방으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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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커녕 술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부르고뉴 지방은 매력적인 곳이다. 쇠고기, 닭고기 요리 등 미식가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알아주는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하며 예술과 건축의 고장이기도 하다. 1889년에 파리 세계 만국박람회 때 에펠탑을 건설했던 에펠도 부르고뉴의 중심 도시인 디종 출신이며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 강의 수원(水原)이 바로 이곳 부르고뉴에서 시작된다. 샤넬의 전설적인 향수 샤넬 NO.5를 비롯한 각종 향수와 음식에도 들어가는 원료인 카시스란 열매도 부르고뉴 지방의 특산물이다.
부르고뉴 와인을 즐기는 법
얼마 전 신문에는 CEO들의 와인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기사가 실렸다. 최근 와인 열풍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할 때는 물론 평소 대화에서도 적절한 와인을 고르는 법이나 적어도 잘 알려진 와인 이름 몇 개는 외우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는단다.
보르도 와인에 비해 부르고뉴 와인은 그 스트레스가 좀 더 심한 편이다. 다른 곳에서는 여러 가지 품종의 포도를 함께 섞어 포도주를 만들지만 부르고뉴는 단 한 가지 종류의 포도로만 술을 담그는 것이 전통이자 특징이다. 1395년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는 자신의 영지 안에 심어진 가메(Gamay)란 포도 품종을 전부 뽑아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가메는 그루당 수확량이 많기 때문에 와인을 양껏 만들기에 적합한 품종이지만 불쾌하고 불충하다는 이유로 피노 누아란 품종만을 재배하도록 했다. 그후 6백년 동안 부르고뉴 농부들은 자연과 피노 누아에 의존하면서 와인을 만들고 있다. 피노 누아는 ‘카르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그만큼 재배하기 까다롭고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생산량이 많으면 맛이 묽어져버리기 때문. 양조용 포도 중에서 가장 경작하기 어렵다는 피노 누아와 전 세계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화이트와인용 포도 샤르도네가 부르고뉴 전역의 포도밭을 채우고 있다. 양보다는 품질을 추구하는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본격적인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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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년 재상이었던 니콜라 롤랭은 디종 인근이자 와인의 중심 도시인 본에 구제원(Hospices de Beaune)을 설립한다. 화려한 부르고뉴 스타일의 건축물로 지금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빈민을 치료하는 자선병원으로 수녀들이 헌신적으로 간호를 하고 요리를 만들며 자비를 베풀었다. 그러한 전통이 이어져 매년 11월에는 전 세계에서 애호가들이 찾아오고 와인 경매가 열린다. 여기서 얻은 수익금은 빈민들을 위한 자선사업에 쓰이게 된다. 디종과 본의 와인 산업이나 유적지들을 보면 중세시대 엄격하고 성실한 수도사들과 수녀들이 마구 땀 흘리고 노력해서 만들어낸 숭고한 자산들이다.
프랑스 문화를 대표하고 세계적인 품질을 자랑하는 와인 역시 수도사들이 새벽부터 밤늦도록 척박한 밭을 하나씩 개간하면서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고, 수확하고, 직접 엄청난 크기의 절구에 빻고 통에 담그면서 품질 관리를 해왔기에 지금의 명성이 가능한 것 같다. 자료를 보면 수도사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일했으며 옷이라고 해야 통자루 같은 로브에 허리띠 하나 졸라맨 것뿐이다. 수도사들은 오랜 기간 대지와 호흡하면서 땅 등 환경을 뜻하는 ‘테루아르’의 우열을 구분했던 것이다. ‘가장 높은 언덕에서 난 와인은 교황을 위하여, 중간 언덕에서 난 와인은 추기경을 위하여, 아래에 있는 밭에서 난 와인은 주교들을 위하여’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포도밭의 위치는 품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수도사들은 포도밭을 관리하기 위해 울담을 쳤는데 ‘울담을 친 밭’이라는 의미를 지닌 ‘클로(clos)’가 포도주 이름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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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와인을 체험하려면 4가지 와인 루트나 포도원들, 와인 저장소들을 취향에 맞게 찾아갈 수 있다. 와인 초보자들을 위해 미리 신청하면 부르고뉴 와인의 특성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레드와인, 화이트와인을 종류별로 시음할 수 있는 시음장들도 많다. 아로마, 부케 등 와인의 전문적인 표현은 모르더라도 와인을 입 안 가득 품었다 내뱉고 혀와 목에 남아 있는 맛을 느낌대로 표현하면서 와인의 종류를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음장에서 와인글라스에 와인을 3분의 1쯤 담아주는데, 입에 오물거렸다 뱉으면 되기 때문에 취할 염려는 없다. 다만 너무 맛있고 고급스러운 와인이라면 그냥 꿀꺽 삼켜도 된다.
‘딸기밭 한가운데서 햇살이 내리쬐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 첫사랑 초등학교 동창과 다시 만났을 때의 가슴 설렘과 훈훈함 같은…’‘`새콤달콤한 사탕을 입 안 가득 물고 있다가 마지막에는 시가 담배 맛이 남는….’
와인 전문가들은 이런 서정적인(?)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세계 최고의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아스팔트 맛’ 등의 난해한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아스팔트나 흙 맛을 보려면 왜 비싼 와인을 마시나?’란 생각도 들지만 와인은 남들의 평가나 가격보다는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이 최고란다. 디종과 본의 와이너리에서 파는 최고급 품질 그랑크뤼의 경우 한국 와인 전문점에서 파는 가격의 3분의 1정도여서 ‘지름신’의 유혹을 느끼지만 한국에 무사히 들고 오기가 힘들어 한두 병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음식의 천국 부르고뉴
술이 발달된 지역에는 당연히 음식도 유명하다. 프랑스는 어느 곳에 가나 최고의 빵과 치즈를 맛볼 수 있지만 부르고뉴 지역은 특히 쇠고기, 닭고기, 토끼고기 등 고기류와 함께 달팽이 요리, 달걀 요리, 그리고 겨자인 머스터드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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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도 이 지방의 명품. 단순한 겨자가 아니라 각종 재료와 섞어 만든 것으로 도자기로 만든 병, 유리병 등에 담아 판매하는 겨자 전문점들이 많고 선물용으로도 인기다. 겨자와 치즈를 섞어 만든 겨자치즈는 가격에 비해 정말 맛있지만 오랜 여행길에 싸 들고 오기 힘들어 아쉬웠다. 여러 가지 빛깔의 초콜릿과 과자류도 빠질 수 없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입맛을 돋우는 식전주에서 시작, 마지막 초콜릿과 쿠키까지 12코스의 요리를 선보인다. 너무 맛있어 성급히 먹다가는 나중에 후회하거나 배가 불룩하게 나올 각오를 해야 한다. 하지만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부르고뉴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소화가 잘되기 때문에 살찔 걱정은 없다.
생의 어느 한순간, 중세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시간을 잊게 하는 곳에서 신비한 와인의 향기를 음미하고 풍성한 음식을 즐기는 건 가장 사치스럽지만 가치 있는 선물이 아닐까. 친절한 내가 성실한 내게 주는….
여행 길잡이
디종(Dijon)의 관광 가이드
디종은 부르고뉴의 주도. 이 지역의 대표적인 와이너리인 마르사네 라 코트, 쥬브레 샹베르탱, 보슨 로마네, 뉘 생 조르쥬를 차례로 돌아보는 것이 가장 좋다. 이 지역 관광청들은 슈에트(Chouette, 올빼미) 코스라고 명명된 22개의 코스를 개발해 여행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디종 패스는 48시간, 72시간짜리 각각 2종류가 있다(관광 정보는 www.dijon-tourism.com, 호텔 정보는 www.reserver-dijon.fr).
파리에서 TGV로 1시간 35분 거리. 항공은 디종(Dijon-Longvic) 공항에서 연결된다. ‘Tour stops’는 미각 루트 코스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픈한다.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 30분, 오후 2시 30분부터 7시까지며 참가비 3유로로 사전 예약을 해야 정확한 시간에 영화감상과 설명 및 시식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주소 Bourgogne Street 61 rue de la Liberte 21000 Dijon, 홈페이지 www.bourgognestreet.fr, 전화 33(0)8030 2628).
가장 가볼 만한 레스토랑은 레스토랑 드 라 포르테 기욤(Restaurant de la Porte Guillaume). 호텔 뒤 노르(Hotel du Nord)에서 운영하는 개선문 광장 바로 앞에 자리한 레스토랑으로 1855년에 생긴 유서 깊은 곳이다. 특이하게 한글어판 메뉴가 갖추어져 있고 부르고뉴식 쇠고기 스튜와 디저트로 나오는 크레페 요리가 맛있다. 프레미어 클뤼 와인의 경우 50유로부터 즐길 수 있다(주소 Place Darcy, 21000 Dijon. 전화 03 8050 8050).
소피텔 호텔에 마련된 라 클로슈(La Cloche)는 전형적인 부르고뉴 스타일에 정통 프렌치 요리를 골고루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잘게 썬 부르고뉴산 달팽이와 옛날 채소, 블랙 올리브와 모차렐라치즈를 넣은 생선 그라탱 요리, 구운 노루(사슴)고기, 신선한 허브를 넣은 그노치(Gnocchis) 등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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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은 인구 2만3천 명의 작은 도시. 반나절만 돌아다니면 거의 모든 상점을 다 구경할 수 있지만 포도밭 부자들이 많이 살고 와인 교역이 이뤄지는 곳이어서 상점 물건들의 수준이며 식당들이 럭셔리하다.
‘라 파트데 앙게스’란 레스토랑은 메인 메뉴도 맛있지만 겨자치즈(Delice de Pommard)와 빵이 맛있는 곳. ‘Hesse’라는 사람이 만들어 유명해진 겨자치즈는 전부 세 가지 맛이 있다(주소 24 bis, rue de'Alsace 21200 Beaune, 전화 02 8022 0768).
본의 유명한 겨자 전문점인 ‘`La Moutarderie Fallot’는 관광 명소. 아주 옛날부터 만들어졌던 방식 그대로 제조되는 겨자는 본 여행의 독특한 관광 코스가 되고 있다. 겨자에 관한 한 뮤지엄이란 명칭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겨자를 시식, 판매한다(주소 31 rue faubourg Bretonniere 21200 Beaune).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픈한다. 오전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 견학 시간은 1시간 정도이며 일인당 요금은 10유로. 예약 전화 03 8026 2133.
본에서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벵 쌍싸시옹(Vin Sensation)이란 곳. 주소는 1 rue d'enfer 21200 BEAUNE. 예약은 33(0)3 8022 1757로 가능하며 가장 간단한 코스는 1인당 1만원 정도. 숙소로 추천할 만한 곳은 Le Cep. 겉으로 볼 때는 자그마한데 16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곳으로 매우 친절하고 아침식사도 맛있다(주소 27, Rue Maufoux B.P.224 F-21206 Beaune Cedex, 전화 03 8022 3548).
■글 / 유인경(경향신문 선임기자) ■사진 / 임재철(The Studio) ■자료 제공 / 프랑스관광청(02-773-9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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