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위에 꽃이 피고 새가 날아오르는 동네, 마른 가지 위에 꽃새가 지저귀고 담벼락에 나무가 울창한 그곳.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 혼자 있어도 그곳은 봄으로 충만하다.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 뒤로 좁은 길을 밟아 낙산(駱山)의 품을 파고들면 때 이른 봄이 손님을 맞이한다. 아직은 코끝이 시린 2월, 낙산공원엔 벌써 꽃이 피었다. 계단 위에 내려앉은 꽃은 아이들 발걸음 아래 생기를 얻는다. 동네는 사시사철 봄이다.

낙산은 서울의 형국을 구성하던 내사산(남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의 하나로 풍수지리상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이다. ‘낙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모양이 낙타 등처럼 볼록하게 솟았다 해서 지어진 것으로, 원래는 ‘낙타산’이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우유를 공급하던 유우소가 있었던 곳이라고 하니 그 시절 낙타의 혹 속에는 우유가 들어 있나 보다.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무분별한 개발로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던 성곽과 유적지를 서울시가 복원에 나섰고, 지난 2006년 ‘공공낙산프로젝트’가 시행되며 ‘달동네’'라 불리던 이 일대에 알록달록 예술이 내려앉았다. 서울 종로구 충신동과 이화동에 모여 있던 오래된 봉제공장들은 작가들이 만들어준 새 간판을 얻었고 버려진 우물 자리는 쉼터가 되었다.

굽이치는 돌계단과 벽화(사진 왼쪽). 40년째 낙산을 지키고 있는 굴다리 이발관. 이발사의 오래된 가위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사진 가운데). 계단위 볕을 쬐는 고양이는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사진 오른쪽).
동네는 미로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이 얼기설기 이어진 골목을 헤맬 법도 한데 모르는 길을 가도 길을 잃는 법이 없다. 좁고 오래된 골목은 한겨울에도 꽃이 만개한 그 계단으로,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새에게로, 이발사의 오래된 가위 소리가 들리는 그곳으로 발길을 안내한다. 꽃 계단과 새 계단, 하교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지나 정상에 다다르면 낙산의 품에 안긴 대학로와 서울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낙산의 봄 안에서 보는 서울은 아늑하기만 하다.

담벼락에 그려진 꽃밭. 나비까지 날아앉았다(사진 왼쪽). 비누방울 부는 아이들이 그려진 집. 벽화가 익살스럽다(사진 가운데). 촬영지로도 유명한 꽃계단.
▶낙산공원 가는 길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와 마로니에 공원과 방통대 사이 길로 직진하면 노란색의 ‘공공미술낙산프로젝트’ 안내소가 보인다. 그 뒷길로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낙산공원에 다다른다. 올라가는 길은 꽤 경사가 있기 때문에 편안한 복장으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5번 출구에서 마을버스(종로3번)를 타고 종점까지 가는 방법도 있다.

봉제 노동자들을 그린 벽화. 이화동 일대엔 2000여개가 넘는 소규모 봉제공장이 모여 있다(사진 왼쪽). 골목 안에 숨어있던 미술학원.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담벼락과 간판이 시선을 붙잡는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훈

Posted by Redvir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