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선행학습으로 시작한 인터뷰는 ‘영재교육’으로 흘렀다. 선행학습은 영재교육의 일부다. 한 독자는 “그래서 선행학습을 시켜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질문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오영주 영재교육학 박사는 영재의 기준과 부모의 자세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누가 영재인가
어릴 때 ‘신동’ 소리 한번 안 듣고 자란 사람 없고, 내 아이는 뭘 해도 영재로 보이는 게 부모 마음이다. ‘아이는 영재인데 내가 소홀한 건 아닐까’ ‘아이가 바라는 것을 다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는 건 아닐까’라는 건 부모의 당연한 조바심이다. 그리고 실제로, 영재의 기준은 생각처럼 엄격하지 않다. 아이의 현실보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거꾸로 한번 생각해보죠. 영재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성공 혹은 자아 성취를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보세요. 그게 더 정확할 것 같아요(웃음).”

아이큐는 영재를 갈음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기준이다.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지만, 대략 120 이상이면 영재의 가능성이 있다. 평균 이상의 지능이 전부는 아니다. 스스로 적성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영재다. 오영주 박사의 말을 들어보자.

“타고난 지능에 자신의 적성을 가져가는 과정이 더해져야죠. 열정, 집중력, 자신감, 자기 통제력은 기본입니다. 거기에 외부의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해요. 아이들은 타고난 적성이 있어요. 적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꿈을 아는 능력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아이들이 영재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 국립영재교육연구소장 조셉 렌줄리 박사는 영재의 세 가지 기준을 지능, 창의성, 과제집착력에서 찾는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할 수 있다. 자아개념 혹은 자아 통제가 이에 해당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나의 비전은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즉, 자신에 대한 통찰과 분석이 가능한 아이가 영재다. 렌줄리 박사의 세 번째 기준 ‘과제집착력’에도 전제가 있다. 열정과 관심 그리고 호기심이다. 열정과 호기심이 없는 아이는 벌려놓는 데만 익숙하다.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산만하다.

“이런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어요. ‘우리 아이는 머리가 무척 좋고 기발해요. 아무래도 영재인 것 같아요’ 그러길래 제가 물었죠. 아이에게 뭔가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면 끝까지 마무리를 하고 결과물을 내놓느냐고. 그랬더니 ‘잔뜩 벌려놓고 만다’고 해요(웃음).”

그렇다고 이런 아이가 영재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에는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운 적이 없는 아이일 수도 있고, 아직 연구 능력이 자리 잡지 않은 아이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일을 완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배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려 깊은 교육 과정을 거친 후에도 벌려놓은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는 아이라면 영재로 판단하기 힘들다는 게 오영주 박사의 조언이다.

“영재는 결국 산출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또 하나, 창의성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머리가 좋고 호기심, 과제집착력도 강한데 절대 창의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요.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는 게 창의성이죠. 남들이 다 하는 걸 잘하는 아이를 영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창의력으로 인류에 공헌한 위인들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우주의 원리를 공식으로 풀어낸 아인슈타인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영재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지구의 중력 법칙을 고안해낸 뉴턴은 말할 것도 없다. 디즈니를 설립하고 인류에 즐거움, 꿈과 희망을 안긴 월트 디즈니도 영재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한국 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 영화 ‘괴물’의 봉준호 감독,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한 장영주도 지능과 창의력, 과제완수력을 갖춘 영재라고 할 수 있다. ‘알 만한 사람’ 중에 예를 찾다 보니 유명인 위주의 리스트가 됐지만, 사실 영재가 그리 멀리 있는 개념은 아니다.

“인류의 행복과 복지를 위한 생산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영재라고 합니다. 가방이 너무 무거워 바퀴를 달아준 사람, 지우개를 자꾸 잊어버리니까 연필 끝에 지우개를 붙인 창의력도 영재의 특성입니다. 상식을 깨뜨리는 발상, 그 자체로 독창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영재죠.”

그렇다면 부모의 역할은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영재’의 지능은 20세 정도의 수준일 수 있다. 이런 경우, 어른들은 이 아이가 아직 ‘아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지능이 20세니, 스무 살이 마땅히 갖춰야 할 인성까지 기대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의 나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 ‘머리도 좋은 놈이 그거 하나 못해?’ 하는 식으로 윽박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아이가 성공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요. 강박적으로 만들어진 영재의 경우는 뒤탈이 있습니다. 과학고나 MIT 가서도 자살하는 아이가 있어요.”

한국 영재교육의 맹점이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유아기나 초등학교 수준의 영재교육은 비교적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영재교육이 특목고 진학이나 대학입시와 맞물렸을 때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영재가 아닌 아이도 영재교육을 받고, 능력 이상의 성취를 강요받는다.

“갈수록 아이들이 힘들어지는 상황이에요.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사교육 시장이 초등학교 3학년까지 내려와 있어요. 게다가 아무리 영재라도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대접받기 힘든 한국적인 상황에서 영재교육이 대학입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거죠.”

영재로 태어난 아이를 부모 생각대로만 키울 수는 없다. 재능이 있는 아이에게 평범하길 강요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도, 재능이 없는 아이에게 능력 이상의 성취를 강요하는 것도 한국의 부모들이 쉽게 범할 수 있는 영재교육의 오류다.

“상위 3%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영재교육은 아닙니다. 어린 나이일수록 가능성의 문을 열어놓아야 해요. 전문가의 체크리스트를 통해 내 아이가 영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영재일 가능성이 있는 아이는 영재교육에 참여할 수 있다. 일단 수업이 시작되면, 따라가는 아이와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가 드러난다. 영재의 판별은 학년, 혹은 나이가 올라갈수록 그 범위를 좁혀나가는 식으로 이뤄진다.

“초등학교 5학년쯤 되면 엄마의 치맛바람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그전에는 엄마가 가르치는 대로, 혹은 강요하는 대로 아이가 따라갈 수 있죠. 하지만 5학년이 넘어가면 아이가 타고난 능력 이상의 성취는 어려워집니다. 자기 역량이 나타나기 시작하죠. 중학교 때부터는 핵심만 잡아 가르치는 수준이 돼야 해요.”

다음은 오영주 박사가 집필 중인 책에 소개될 체크리스트의 일부다. 아직 제목도 정해지지 않은 영재교육 길라잡이를, 「레이디경향」 독자들을 위해 먼저 공개했다.

오영주 박사의 체크리스트
영재의 기준을 갈음할 수 있는 오영주 박사의 체크리스트는 일단 아이의 적성 별로 일곱 분야가 있다. 언어적 적성, 논리 수학적 적성, 공간 적성 및 미술 적성, 신체 운동 적성, 음악 적성, 사회성 및 리더십, 개인적 통찰 적성이다. ‘각 영역별 체크리스트에 해당하는 항목의 개수가 몇 개 이상이면 영재의 가능성이 있음’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위한 항목들이다. 일단 공개하는 체크리스트는 이런 항목들을 통해 영재 여부를 판단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내 아이를 보다 주의 깊게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01 Check List 언어적 적성
□ 이야기나 동요, 동시, 역사적인 사실, 일상적인 일 등을 쉽게 기억한다.
□ 자기 생각을 상황에 맞고 타인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전달한다.
□ 자기가 이해하거나 알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 본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게 간단하고 명확하게 줄거리를 말한다.
□ 동의어, 반의어를 많이 안다.
□ 시, 동화나 낙서 등을 좋아한다.
□ 상황에 적절한 어휘를 사용해 조리 있게 말한다.
□ 사전이나 백과사전을 즐겨 찾는다.
□ 즐겨 읽는 책이 많다.
□ 오랜 시간 집중해서 독서를 한다.
□ 말을 일찍 하고 일찍 읽기 시작했다.
□ 읽거나 보거나 들었던 것을 잘 이해하고 전달한다.
□ 또래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어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 지적인 대화 능력이 우수하다.
□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잘 듣는다.
□ 어느 장소에 가더라도 책을 찾아서 읽는다.
□ 커서 소설가나 시인 혹은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 어른용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다.
□ 어른과의 대화에서도 상당히 의미 있게 주제를 전개한다.

02 Check List 논리 수학적 적성·수학 과학 적성
□ 한번 풀기 시작한 문제는 끝까지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 수와 관련지어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 수학적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기억한다.
□ 수, 연산, 시간, 돈과 관련된 개념을 잘 이해하고 그러한 활동을 즐긴다.
□ 숫자 세기, 측정하기, 무게 달기, 사물을 순서대로 배열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 수학과 관련된 활동을 할 때 장시간 집중한다.
□ 수학 개념을 다른 활동에 적용하고 응용해본다.
□ 패턴이나 규칙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 물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연의 이치에 대한 질문이 많다.
□ 여러 가지 자연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
□ 추상적인 개념(예 : 증발, 변형, 사랑, 행복)의 이해가 뛰어나다.
□ 사물을 주의 깊게 조사하거나 유심히 관찰한다.

03 Check List 공간 적성·미술 적성
□ 그림을 그리거나 물감 놀이를 좋아한다.
□ 특별히 좋아하는 색이 있다.
□ 동화책을 볼 때 그림에 더 관심이 많다.
□ 그림을 그릴 때 중요한 요소를 미리 생각하고 배치한다.
□ 놀이, 활동, 생각에서 상상력이 뛰어나다.
□ 본 것을 매우 세부적으로 기억해 그것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린다.
□ 여러 가지 사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유심히 관찰한다.
□ 퍼즐이나 기계 장난감들을 분리하고 다시 끼워 맞추기를 좋아한다.
□ 레고나 블록 쌓기 혹은 모래성 쌓기와 같은 만들기를 즐긴다.
□ 꿈 이야기를 자주 한다. 꿈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 길눈이 밝고 방향 감각이 뛰어나다.

04 Check List 신체 운동 적성
□ 걷기를 일찍 시작했다.
□ 찰흙 놀이, 가위질하기 등을 즐긴다.
□ 움직임이 많고 매우 활동적이다.
□ 여러 가지 운동을 잘한다.
□ 무용, 발레, 기계체조와 같은 신체적인 활동을 즐긴다.
□ 야외에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 일인 다역을 하면서 연극이나 인형극 놀이를 즐긴다.
□ 다른 사람의 몸짓을 순서에 맞게, 정교하게 잘 따라 한다.
□ 감정을 풍부히 실어 다양한 몸짓으로 표현한다.
□ 신체의 균형을 잘 잡고, 신체를 민첩하고 날렵하게 움직인다.

05 Check List 음악 적성
□ 한번 들은 음정을 정확하게 따라 부른다.
□ 서로 다른 리듬을 구별하고 그 리듬을 재생해낸다.
□ 장난감이나 가구, 부엌 용품으로 리듬 있게 소리 내기를 즐긴다.
□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해놓고 듣기를 즐긴다.
□ 혼자서 노래 만들어 부르기를 즐긴다.
□ 악기 연주하는 것을 즐긴다.
□ 멜로디, 리듬, 박자 등을 쉽게 기억해 노래나 악기로 재현해낸다.
□ 여러 가지 소리(개 짓는 소리, 바람 소리 등)를 잘 구별한다.
□ 음조를 바꾼 후에도 노래를 일관성 있게 잘 부른다.

06 Check List 대인관계 적성·사회성 적성·지도자 적성
□ 낯선 사람들과 빨리 친해진다.
□ 약속한 것을 꼭 지키며,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책임 있게 잘 수행해낸다.
□ 사교적이어서 혼자 있기를 싫어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 새로운 상황에 빨리 적응한다.
□ 사고와 행동에 융통성이 있어서 일상적인 상황이 바뀌어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 친구들 간에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중재 역할을 한다.
□ 또래들 사이에서 주도적인 지도자 역할을 한다.
□ 다른 사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
□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파악한다.
□ 다른 사람의 느낌을 쉽게 공감한다.
□ 세계의 여러 나라와 지역에 대해 관심이 많다.
□ 종종 문제 해결에 필요한 해결책과 방법을 생각한다.
□ 친구로부터 공부나 놀이 대상자로 자주 선택받는다.
□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려는 책임감이 있다.
□ 자신의 생각을 쉽고 요령 있게 표현한다.
□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이나 말을 잘 이해시킨다.

07 Check List 개인적 통찰 적성
□ 자립심이 강하다.
□ 혼자서 하는 놀이나 취미가 많다.
□ 혼자 있기를 원할 때 찾는 장소가 따로 있다.
□ 커서(장래에) 무엇이 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
□ 자아의식이 강하다.
□ 종교나 심미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에필로그
영재교육은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기준과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교육의 속성이기도 하다. 교육자는 피교육자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순발력 있게 대처해야 한다. 비전을 제시하고, 교육자의 능력이 허락하는 만큼 피교육자를 끌어줘야 한다. 백 명의 아이에겐 백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게 영재의 판단 기준이다. 영재교육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좋아서 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좋아서 하는 일엔 집중을 하게 되고, 성취물을 내놓는 특성이 있어요. 영재의 특성과도 일치하죠. 엄마들은, 아이가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것, 집중하고 완수하는 분야나 적성이 뭔가를 파악해야 해요. 엄마는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판별자니까요(웃음).”

대학 입시만을 염두에 둔 강박적인 선행학습은 해가 될 수 있다. 아이의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고, 앞길을 스스로 설계하기 이전 단계에서는 부모가 최선의 교육자다. 앞서 가길 강요하기보다 ‘내 아이에 맞는’ 최선의 교육을 선물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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