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만 빼고 다 오른 요즘, 절약은 현대인의 필수 덕목이 됐다. 한 달 동안 과연 얼마나 절약할 수 있을까? 직장인이 한 달을 날 수 있는 최소 비용은 얼마일까? 소비와 절약에 관한 여러 가지 실험적인 의문이 들었다.

물가는 미친 듯이 오르고 있다. 평소와 똑같이 소비해도 어딘가 모르게 많이 쓰고 있는 느낌이다. 미리 다녀온 휴가 덕분에 통장의 잔고는 이미 바닥이 났다. 다음달 카드 대금이 나가면 파산 아니면 은행에 있는 목돈을 꺼내 써야 하는 상황. 한마디로 비상 사태다.

이달 기자 체험은 절약에 맞는 아이템을 찾아야 할 듯싶었다. 떠오른 아이디어는 ‘한 달 동안 카드 안 쓰기’ ‘한 달 동안 쇼핑 안 하기’ ‘한 달 동안 10만원으로 생활하기’ 등이었다. 결국 이 중 ‘한 달 동안 10만원으로 생활하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10만원으로 살려면 당연히 쇼핑도 못할 테고, 카드를 긁는 사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세 가지 아이템을 모두 다 실행하는 셈이다.

1단계 : 예산 짜기
먼저 10만원으로 살기에 앞서 나름의 기준을 정해야 했다. 집이 인천이기 때문에 한 달 교통비만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차비가 없어 출퇴근 할 수 없는 불상사는 막아야 했다. 그래서 왕복 교통비 10만원은 생활비에서 제외했다. 단 택시를 타거나 추가 요금이 발생했을 때는 소비로 인정하기로 했다. 취재 중 발생하는 비용은 따로 회사에 청구하기 때문에 이 역시 빼기로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나가는 각종 예금, 보험, 기부금도 제외시켜야 했다. 오로지 ‘생활비’만 10만원이었다. 이렇게 정하고 나니 왠지 자신감이 생겼다. 밥은 회사 식당(점심은 1500원, 저녁은 무료)에서 먹고, 당분간 쇼핑을 하거나 친구들을 안 만난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의 예산을 세우는 일. 10만원으로 살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무조건 안 쓰고 살면 될 것 같았지만 만일에 대비해서 이성적으로 예산을 짜야 했다. 예산을 짜다 보니 10만원이 꽤 큰 액수라는 감이 왔다. 갑자기 희망이 생겼다.

2단계 : 마음 다잡기
10만원 체험을 함께할 동료를 찾는 건 무척 중요한 일이다. 중간에 의지가 꺾이거나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서로 격려해주면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포털 사이트 다음(Daum)의 ‘짠돌이 카페’. 그곳에는 반갑게도 ‘한 달에 10만원으로 살기’라는 게시판이 따로 있었다. 정말 한 달에 10만원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이달 기자 체험도 무리 없이 성공할 것 같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성실했다. 게시판에 가계부를 공개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저축하고 소비하는지 정보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가계부를 보면서 갑자기 숙연해졌다.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문득 옷장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에 앞서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옷장에서 여름옷을 잔뜩 꺼냈다. 모두 꺼내놓으니 그동안 있는지도 몰랐던 옷들도 눈에 띄었다. 생각보다 옷이 많았다. 구겨진 옷들을 하나하나 다림질했다. 새 옷이 생긴 것 같아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다.

3단계 : 언제 이렇게 오른 거야?
10만원으로 살기 체험 첫날. 우선 회사 동료뿐 아니라 친한 사람들 모두에게 ‘한 달 10만원으로 살기’ 체험을 시작했다고 알렸다. 모두 나에게 박수를 보냈다. 함께 참여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생겼다. 성격 좋은 지인들은 밥을 사줄 테니 날짜를 잡으라는 고마운 제안도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저렴한 회사 식당으로 가겠다는 나에게 후배는 자신이 사겠으니 나가서 먹자고 했다.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떳떳하게 밥을 얻어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다소 불편했지만, 후배한테 밥을 얻어먹는 기분은 나름 괜찮았다. 식사 후 내가 저렴한 아이스크림이라도 산다고 했더니, 그나마도 절약하라며 손사래를 쳤다.

쇼핑하기 전 옷장 정리는 필수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 저녁을 먹지 않아 배에서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났다. 집에 도착하면 9시 정도가 될 것 같았다. 편의점에서 끼니가 될 만한 ‘뭔가’를 사 먹기로 했다. 그 비용으로 일단 500원을 책정했다. 그러나 편의점에 도착한 나는 깜짝 놀랐다. 언제 올랐는지 가장 싼 빵이 600원이었고, 대부분 800원에서 1000원을 넘었다. 빵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옆에 있는 500원짜리 약과를 골랐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빈속에 먹은 달디단 약과 때문에 속이 매우 불편해졌다.

4단계 : 닭 대신 꿩
회사 근처에 근무하는 후배가 잠시 쉬는 틈을 타 놀러 왔다.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가까운 커피숍에 간다면 비용이 1만원 이상 들 것이다. 갑자기 회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샌드위치 가게가 생각났다. 인근 학교 학생들을 상대하는 가게였기에 저렴했다. 결국 후배와 나는 조금 걸어가서 2천5백원짜리 생과일주스를 마셨다. 둘이 5천원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만족스러운 소비였다.

토요일, 동생이 요즘 기분이 ‘꿀꿀하신’ 어머니를 달래드려야 하지 않겠냐느고 제안했다. 근사한 식사? 쇼핑? 식사라면 기본 3만~5만원, 쇼핑이라면 그 이상도 들었다.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든 생각, 피크닉이었다. 피크닉 장소는 집 부근에 있는 인하대학교 캠퍼스로 정했다. 어머니와 동생은 대찬성이었다. 피크닉에 음식이 빠질 수 없었다. 김밥과 음료, 과자 등을 구입했다. 총 비용 8천원. 결과는 근사한 식사나 쇼핑보다 좋았다.

5단계 : 지금 아니면 안 되는데!
사지 않을 거면 쇼핑하러 가지 말았어야 했다. 마트라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를 따라갔을 뿐이다. 장을 다 보고 나서 아쉬운 마음에 의류 매장을 지나쳤다. 마침 상설 매장에서 폭탄 세일을 하고 있었다. 잘만 고르면 괜찮은 여름 셔츠를 3천원에도 살 수 있었다. 거의 본능적으로 매장으로 달려가 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꽤 괜찮은 원피스 하나를 발견했다. 원래 판매가는 6만9천원인데, 세일가는 단돈 9천원. 거저였다. 상설 매장이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다시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민 고민 끝에 결국 구입 결정!

6월은 매실의 계절이다. 매실 명인 취재 후 부쩍 매실에 관심이 생긴 터였다. 마침 사무실 후배가 광양으로 매실을 따러 간다고 한다. 농약도 안 친 유기농 매실이라고 했다. 나는 당장 10kg을 주문했다. 매실을 받았을 때는 더 기분이 좋았다. 유기농이지만 상태가 생각보다 깨끗했다. 인천까지 들고 가는데도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매실 값 2만5천원. 그래도 좋은 매실을 샀으니 후회하지 않으련다.

6단계 : 과소비, 체험 자체 종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회사 동료 두 명의 생일이 있었던 것. 생일 파티를 위해 1만원씩 회비를 걷어야 했다. 아무리 내 사정을 동료들이 잘 안다고 해도 나만 예외일 수는 없었다. 회비를 내고 나니 지갑에는 5천원과 동전 몇 개만 남아 있었다. 파산의 조짐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오래전부터 한번 만나자, 만나자 했던 A양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늘 만나는 거 어때요?” 원래 이런 약속은 미루면 영원히 지켜지지 못하는 법이다. 그리고 먼저 연락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고맙기까지 했다. A양과의 술자리는 유쾌했다. 오래 만난 친구처럼 웃고 떠들고 놀다가 갈 시간이 됐다. A양이 잠깐 화장실에 간 틈에 고민했다. A양이 술값을 내도록 가만히 있는 것도 체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술값을 서로 내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A양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계산을 했다. 그것도 카드로. 많이 나오지 않았다. 3만1천원이었다. 체험은 그날로 끝이었다. 겨우 20일이 지났다.

체험을 마치며
돈을 쓰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스트레스였다. 마냥 사람들을 안 만날 수도 없고, 마냥 안 쓰고 안 먹을 수도 없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꼭 써야 할 때가 어쩔 수 없이 생긴다. 무조건 아낀다고 능사는 아니다. 어떤 때는 내가 들인 비용의 몇 배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번 체험을 통해 확실히 의미 없는 소비는 줄었다. 특별히 필요하지 않는데도,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옷을 사거나 필요치 않은 물건을 사는 일이, 돌이켜보면 얼마나 많았던가. 또 카드를 안 쓰고 현금만 쓰다 보니 내가 어느 정도 소비 하는지 눈에 보였다. 만원 한 장, 천원 한 장이 소중했다.

불필요한 외식이 줄었고, 주말이면 늘 백화점 가는 버릇을 고치면서 대신 그 시간에 가족과 소풍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소비 없이 소박하게 생활하는 것도 기분 좋았다. 이런 생활을 ‘심플 라이프’라고 하는 것일까?

예상 지출 내역
교통비… 10,000원
간식 포함 식대… 50,000원
유흥비… 20,000원
기타 잡비… 20,000원

실제 소비 내역
식대… 36,100원
교통비… 10,400원
경조사비… 10,000원
의류… 9,000원
유흥비… 31,000원
기타 잡비… 25,000원
총지출… 121,500원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원상희, 경향신문 포토뱅크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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