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에 깊숙이 침투한 밀가루 음식에 대한 고찰

어느 날 문득 밀가루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얼마만큼의 밀가루를 먹고 사는 걸까? 생각은 또 이어졌다. 왜 밀가루는 몸에 나쁘다는 것일까?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왜 쉽게 배가 고플까? 여러 가지 궁금증을 안고 한 달간 밀가루 음식 안 먹기에 도전했다. 한 달간 밀가루 음식에 대한 유혹에 맞서 싸운 이야기를 공개한다.

나는 곧잘 끼니를 과자로 대신하곤 한다. ‘빵순이’라 불릴 정도로 빵을 사랑했고, 예전에는 마감이 되면 일주일 넘게 빵만 먹어댄 적도 있다. 웰빙 생활을 지향하면서도 일주일에 꼭 한 번은 라면을 ‘섭취’해야 했고, 저녁 약속으로는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파스타 먹는 걸 즐겼다. 최근에는 각국에서 들어온 다양한 도넛에 흥분했고, 빵과 수프가 주를 이루는 브런치 메뉴를 먹으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 적도 있다.

‘한 달 동안 밀가루 안 먹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한 것은 밀가루 때문에 몸이 안 좋아졌다거나 하는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문득 ‘내 식생활 속에 밀가루가 얼마나 깊숙이 자리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또 밀가루를 먹지 않을 때의 나의 식생활 변화나 건강상의 변화가 궁금했다. 또 밀가루 음식을 먹고 나면 왜 쉬이 배가 고플까,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 재료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과연 밀가루는 몸에 좋지 않을까? 밀가루에 대한 궁금증이 머릿속에서 풍선처럼 부풀어만 갔다. 그리고 30일 전 아침, 밀가루에 안녕을 고했다. 딱 한 달 동안만이었다.

난관 1 ●만두
일요일이었다. 밥통은 비어 있었다. 밥을 짓기도 귀찮고 반찬도 없었다. 일요일에 라면을 먹는 버릇이 있다 보니 라면 생각이 간절했다. 대신 냉동실에서 만두를 꺼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가스레인지를 켜는 순간, 아차 만두피가 밀가루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로 냉동실에 넣었다.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더 간절함이 밀려왔다. 갑자기 ‘쌀 만두’가 머리를 스쳤다. 언젠가 마트에서 시식해본 적이 있다. 그길로 슈퍼로 달려갔다. 그러나 결국 만두를 먹지 못했다. ‘쌀이 첨가된 만두’ 역시 만두피의 주재료는 밀가루였고, 쌀은 아주 소량만 들었을 뿐이었다.

난관 2 ●식사 약속
가장 염려된 부분이 식사 약속이었다. 여자들은 대개 양식당을 선호한다. 음식도 음식이려니와 무엇보다 오래 앉아서 이야기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체험을 시작한 지 이틀째, 점심 약속이 생겼다. 일단 쌀국수로 메뉴를 정했다. 알아보니 쌀국수는 정말 쌀로만 만든다고 했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러 갔다. 홍콩식 토스트를 파는 커피숍이었는데, 평소 좋아하는 메뉴라 반가운 마음에 들어섰다. 주문을 마치고 음식이 나왔다. 이야기에 빠져 있을 무렵, 순간 놀랐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토스트를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문하고 먹으면서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

난관 3 ●과자
과자에 대한 유혹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과자는 대부분 밀가루로 만들지만 옥수수, 감자, 고구마, 쌀로도 만들지 않던가. 게다가 나는 얼마 전부터 쌀과자에 꽂혀 있었다. 그래도 무엇을 금한다는 건 생각보다 스트레스였다. 그 덕분인지 더욱더 허기가 졌다. 퇴근하는 길 늘 먹던 쌀과자를 구입했다. 대충 살펴본 원료 및 함량에도 밀가루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런데 한두 개 먹으며 자세히 살펴본 결과 작은 글씨로 이러한 문구가 쓰여 있는 걸 발견했다. 전분(밀). 쌀과자에도 밀이 들어 있었다.

발견 1 ●쌀과자
굉장히 멋진 쌀과자를 발견했다. O회사에서 새로 출시한 ‘라이스칩’이다. 100% 순수 이천쌀이라는데 관심을 갖고 원료를 살펴보니 쌀가루(미분) 54% 외에 전분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전분은 따로 표시하지 않는 이상 감자녹말로 만든다. 그리고 ‘`밀`’이라는 단어도 눈에 들어왔는데 그건 ‘양조간장(대두, 밀)’이라는 단어에서였다. 간장에도 밀이 들어가는 걸 처음 알았다(간장은 밀 안 먹기 운동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과자 생각보다 무척이나 맛있다. 바삭한 식감은 물론 ‘`가쓰오 농축액``’이 들어서인지 고급스러운 간이 배어 있었다. 전혀 달지도, 짜지도 않았다. 먹다 보니 한 봉지를 다 먹었다. 보통 과자는 다 먹고 나면 속이 불편한데, 이건 달랐다. 기름에 튀기지 않고 구웠기 때문이다(식사 대용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난관 4 ●케이크
가장 견디기 힘든 품목은 바로 케이크였다. 밀가루 한 달 안 먹기 체험을 하면서 느낀 것은 세상에 온갖 달고 맛있고 예쁜 음식은 모조리 밀가루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중 케이크는 모양이나 색깔, 맛, 재료까지 모두 매력적이다. 음식이 아닌 예술이다(먹을 수 없다 보니 찬양이 더욱 거세졌다). 후식으로 먹는 따뜻한 브라우니, 입에서 살살 녹는 티라미수, 새콤한 딸기 무스케이크, 언제 먹어도 좋은 치즈케이크…

강력한 유혹의 상황이 벌어졌다. 뒤늦게 생일 파티를 열게 된 것. 생일이 지난 지 열흘 정도 됐으나 내 좋은 친구들은 두 개의 케이크를 선물했다. 딸기케이크와 치즈케이크였다. 결국 그들을 실망시키는 꼴이 됐다. 나는 그들의 회유와 협박에도 전혀 굴하지 않았다(딸기를 조금 뜯어 먹다가 빵이 조금 묻었지만, 1g이 채 안 되니 ‘먹었다’보다 ‘안 먹었다’에 가깝다).

케이크를 먹고 싶을 때마다 대용으로 먹는 품목이 있다. 바로 아이스크림이었다. 효과는 좋았지만, 한 달 동안 1/4분기 양의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치운 것 같다.

난관 5 ●라면과 햄버거 또…
가장 힘든 품목이 케이크였다면 가장 몸에서 원하는 품목은 라면이었다. 속이 느끼해서 얼큰한 음식이 먹고 싶을 때, 간편하게 끼니를 때우고 싶을 때, 언제든 불쑥불쑥 라면에 대한 욕구가 샘솟았다. 외국에 나간 사람들이 라면이 가장 먹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를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라면은 과자같이 대체할 수 있는 품목이 없다. 우동이나 칼국수도 다 밀가루가 아닌가.

패스트푸드점에 갈 일이 있었다. 나는 평소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을 때 버거와 생수를 시킨다. 감자는 먹지 않는다. ‘패스트푸드점 감자는 해로워’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기간 중 패스트푸드점에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감자뿐이었다. 치킨도 시켜봤지만 튀김옷을 벗겨내는 것이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게다가 기껏 벗겨내고 나면 먹을 건 별로 없었다.

체험을 끝내며…
온갖 유혹을 뿌리치며 한 달을 견뎠다. 주위 사람은 알 것이다. 내가 어떤 노력으로 밀가루를 멀리해왔는지.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그냥 먹고 먹었다고 써버릴까?’ 혹은 ‘그냥 다 먹고 기사를 거짓말로 쓸까’ 생각도 했다. 마치 ‘그냥 죄를 짓고 회개할까?’와 비슷한 맥락이다. 가장 힘든 건 밀가루 안 먹기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더구나 밀가루 대체 식품으로 아이스크림, 스테이크, 튀긴 감자 등을 먹고 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무사히 체험을 마쳤다.

일단 체중을 재보았다. 절망적인 결과였다. 체중은 거의 줄지 않았다. 그밖에 다른 신체의 변화는 없었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은 나를 크게 바꾸어놓지는 않았다. 다만, 돌이켜 생각했을 때 한 달간 속이 부글거린다거나 답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밥 먹고 후식으로 케이크나 빵, 도넛 등을 먹는 일이 없으니 과식할 일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밀가루 음식에 대한 욕구가 옅어졌다. 체험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왔으나 식생활에 큰 변화는 없다. 여전히 나는 쌀과자를 먹고, 빵 대신 떡을 먹는다.


밀가루에 대한 궁금증 Q&A
밀가루는 왜 몸에 좋지 않을까요?
「동의보감」에서는 밀가루에 대해 “밀가루는 장(腸)과 위(胃)를 튼튼히 하고 기력을 세게 하며 오장(五臟)을 도우니 오래 먹으면 몸이 든든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밀가루는 그 뜻이 전혀 다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묵은 밀가루는 열(熱)과 독(毒)이 있고 풍(風)을 동(動)하게 한다”고 되어 있다. 밀농사를 지어 바로 제분해서 만들지 않는 한, 긴 유통 과정을 거쳐 수입되는 시중 대부분의 밀가루는 이러한 건강상의 문제들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정제된 밀가루는 그 흡수 속도가 너무 빨라 혈당 수치를 급격히 높이고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킨다. 몸에서는 혈당 수치를 내리기 위한 조치가 빠르게 진행되고 쉽게 저혈당이 된다. 이러한 저혈당 상태에서는 현기증, 식은땀, 짜증, 집중력 저하를 초래한다. 때문에 이러한 밀가루가 원재료인 과자, 라면, 빵, 국수 등 수많은 밀가루 음식들은 한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몸에 좋지 않은 음식으로 분류된다.

한약을 먹을 때 왜 밀가루 음식을 금기할까요?
일반적으로 한약을 복용할 때 밀가루를 포함해 술, 돼지고기, 녹두 등을 금기시한다. 이유는 보약에 들어간 한약재의 성질과 음식들이 상충되어 치료 효과가 반감되거나 혹은 질환을 오히려 악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따뜻한 성질을 지닌 인삼이나 녹용이 들어 있는 약을 찬 성질을 지닌 밀가루나 보리, 메밀과 함께 복용하면 약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이성훈,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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