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희한한 곳이 참 많다. 미국의 그랜드캐년이나 중국의 장가계는 대자연의 위용에 가슴이 뛰는 곳이다. 대자연뿐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곳을 만들었을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조형물이나 건축물도 있다. 아마도 피라미드 같은 곳이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그럼 자연도 희한하고, 사람들이 만든 조형물도 특이한 곳을 고르라면? 아마도 터키의 카파도키아쯤 될 것이다.

스머프 마을과 스타워즈 우주 계곡의 배경
카파도키아는 지하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초기 기독교 시절 교인들이 박해를 받아 숨어들었다는 지하 교회가 있는 곳이 바로 카파도키아다. 아니, 지하 교회가 생기기 오래전부터 지하 도시, 동굴 도시가 있던 곳이다. 철기 시대가 시작된 히타이트 때에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인 BC 2000년부터 시작돼 BC 717년쯤 사라진 히타이트 제국 시절부터라니 놀랍지 않은가? 히타이트는 성경에 나오는 헷 족속이다.

사진기만 들지 말고 볼펜도 들고 떠나자. 고대 인류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이곳은 공부할 게 많다. 카파도키아에 들어갈 때 10시간쯤 버스를 탄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버스를 타고 가니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대체 카파도키아가 뭐기에 이렇게까지 차를 타야 하나 하는 투정 때문이었다.

막상 카파도키아 지역의 괴뢰메에 도착하자 눈을 의심했다. 만화영화 ‘개구쟁이 스머프’를 연상시키는 버섯 바위들이 늘어서 있었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 버섯 바위 속에는 사람들이 사는 집까지 있다니…! 스머프를 보며 만화가들은 참 상상력도 풍부다고 생각했는데…. 영어안내책자에는 이런 암굴집을 ‘요정들의 굴뚝’이란 뜻의 페어리 침니(Fairy Chimney)라고 써놓았다. 알고 보니 스머프의 작가도 이곳에서 영감을 받았단다. 어디 스머프뿐인가? SF영화 ‘스타워즈’의 우주 계곡도 카파도키아 침식 계곡이 모델이 됐단다. 카파도키아는 그렇게 독특하고 희한하게 생겼다.

괴뢰메 교회 내부에 그려진 성화

기기묘묘한 바위들 사이로 열기구 투어
카파도키아는 지질학적으로도 중요한 세계 자연유산일 뿐 아니라 문화인류사에서도 중요한 유산이다. 땅 밑에는 지하 도시와 교회까지 있다. 가이드는 이런 마을이 한두 개가 아니라고 했다. 이런 독특한 지형은 위르굽, 괴레메, 아바노스 등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 있다.

먼저 자연사 공부부터 해보자. 지형을 제대로 보려면 열기구 투어를 해야 한다. 열기구 투어를 하는데 드는 비용은 1인당 20만원이 훌쩍 넘을 정도로 비싼 편이다. 혹시 그 많은 돈을 들여 타야 하냐고? 해외의 어느 유명 가이드북에는 빼놓을 수 없는 투어라고 적혀 있다. 막상 타보니 안 탔으면 후회할 뻔했다.

열기구 투어는 이튿날 새벽 시작됐다. 동 틀 녘 간단한 차 한 잔과 쿠키를 들고 열기구에 탑승한다. 열기구 비행사들은 대부분 유럽인. 이들은 괴레메 협곡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10여 대의 열기구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모습도 장관이다. 그랜드캐년처럼 불쑥 들어간 협곡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돋보기 들이대듯 둘러본다. 바람과 눈비가 만든 자연의 모습은 놀랍다는 표현을 넘어 그저 기이할 뿐이다. 카파도키아의 우치히사르는 괴레메와는 또 다르다. 말미잘의 촉수 같기도 하고, 꽃꽂이 바늘받침 같은 지형이다. 뾰족한 바위 옆구리엔 창문이 붙어 있고, 터키 국기가 내걸렸다. 마을은 SF영화에 나오는 외계 도시처럼 생겼다.

열강들 침략 피해 바위 속에 만든 집
사진기를 꺼내서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데 여행길 내내 심술을 부렸던 터키 가이드 세다트가 바윗집 몇 개 보고 또 한국 기자가 흥분을 한다고 빈정거렸다. 세다트는 가이드 학교에서 가이드를 가르치는 교사인데, 터키 관광청 주선으로 기자에게 길 안내를 하게 됐다. 역사적인 내용을 줄줄 외워대며 받아 적으라고 윽박지르는 이런 ‘자부심 넘치는’ 가이드를 만나면 피곤하다.

세다트가 도전적으로 물었다. “이런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나?” “내가 어떻게 알아. 지리학자도 아닌데.” “수백만 년 전 화산이 폭발했고, 두꺼운 화산재가 쌓여 돌처럼 굳었지. 화산재가 쌓이지 않은 부분은 푸석푸석해서 비바람에 의해 쉽게 깎여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단 말이야. 바위에 구멍을 뚫고 만든 암굴집은 1950년대까지는 사람들이 살았어. 지금은 대부분 비어 있지만.”

이 중 일부(우치히사르)는 관광객을 위해 당국의 허가를 받아 호텔이나 커피숍 등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그럼 이런 곳에 왜 사람이 살게 됐을까? 이제부터는 문화인류사 공부가 필요하다. 카파도키아에는 BC 5000년 전엔 이미 여러 개의 소왕국이 있었다. 이어 BC 2000년 전에는 세계 최초로 철기를 사용했다는 히타이트도 제국을 세웠다. 이어 프리지아와 리키아, 페르시아 제국, 알렉산더 제국,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을 거쳐 셀주크투르크,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차례로 카파도키아를 점령했다. 어디 하나 빼놓을 수 없었던 강국들이다. 왜 이런 강국들이 거친 카파도키아를 노렸을까? 카파도키아는 유럽으로 가는 길목이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 이전부터 중요한 교역로였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무역이 발달했다. 제국이 일어설 때마다 카파도키아는 전쟁터로 변했다.

카파토키아의 우치히사르
주민들은 칼과 창을 피해 바위에 굴을 뚫었을 것이다. 그것도 부족해서 나중에는 아예 땅을 파서 지하에 도시를 만들었다. 지하 도시는 데린쿠유를 비롯해 와즈코낙, 아지굘, 타틀라른, 마즈 등에서 발견됐다. 지하 도시는 지금 발견된 것 외에도 더 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피난처 된 지하 도시
그럼 지하 도시에 들어가보자. 데린쿠유의 지하 도시는 미로처럼 복잡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통로를 지나면 꽤 널찍한 방이 나타나고 다시 지하로 내려가게 돼 있다. 길이 복잡해서 관광객들은 길을 잃기 십상이다. 관광객을 위해 붉은색 화살표는 지하로, 푸른색 화살표는 지상으로 간다는 표시를 해놓았다. 지하 도시의 깊이는 80m로 약 20층 규모다. 가이드는 일행을 떠나 잘못 돌아다니다간 지하 도시에서 평생 못 나올지도 모른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실제로 로마인들이 기독교도를 잡으러 굴속에 들어왔다가 길을 못 찾아 죽기도 했다.

이 중 지하 50m 정도만 개방된다. 지하 도시는 꽤 과학적이다. 환풍 통로, 밥 지을 때 나온 연기를 가둬두는 방도 있을 정도다. 물론 지하 교회도 있다. 데린쿠유의 지하 도시는 약 3만 명의 사람이 6개월 동안 살 수 있었다고 한다. 터키관광청은 기독교 박해 기간 동안 데린쿠유를 비롯한 지하 도시에 약 3백만 명이 몸을 숨겼다고 한다. 이 정도면 지하 메트로폴리스다. 아마 핵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지하 도시로 피할 수 있는 카파도키아 사람들은 화를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하도시는 언제 처음 생겼을까? 히타이트 제국이 들어서기 전인 BC 2500년 전에 생겼다는 학설도 있다. 문서나 기념물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연대는 파악되지 않는다.

1 말미알 촉수 같은 우치히사르의 바위들 2 카파토키아로 들어가는 버스. 3 공방의 여인들.
상상 이상의 도시, 카파도키아
기독교도 역시 로마의 종교 박해를 받자 지하 도시로 피난을 왔다. 괴뢰메의 암굴 박물관에서 이런 흔적을 볼 수 있다. 참, 교회 얘긴 안 했던가? 그럼 교회도 들러보고 가자. 괴뢰메엔 고대 교회의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카파도키아 전역에 교회만 2천여 개. 이 중 괴레메에만 2백 개가 있으며 괴레메 야외 박물관에는 샌달교회, 다크교회, 바바라교회 등 10여 개 교회가 남아 있다.

교회 내부의 벽과 천장엔 성화가 그려져 있다. 종교 박해를 피해 온 기독교도들이 특별히 예술성이 높아서 그림을 그렸을까? 아니다. 글을 못 읽는 수도사들이 예수의 일생이나 성경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9∼11세기에는 석회를 바르고 그림을 그렸던 프레스코화도 나타난다. 안타까운 것은 성화 속의 주인공인 성자의 눈동자가 훼손됐다는 것. 가이드는 “초창기엔 눈동자를 긁어먹으면 거룩해진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었으며 나중엔 이 땅을 점령한 이슬람교도들이 마음의 눈을 상징하는 눈동자를 의도적으로 훼손했다”고 한다. 어찌됐든 이런 역사성 때문에 카파도키아는 기독교 성지로 여겨져왔다.

마지막으로 공부 조금만 더 하자.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차이는 뭘까? 불문학자 이재룡은 기독교 문명을 이미지의 문명으로, 이슬람 문명을 기호의 문명으로 봤다.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를 예로 들어보자. 아야 소피아는 537년 유스티니아누스(원래 360년에 지어졌지만 화재로 타버렸다)가 완공한 성당이다. 기독교인들은 이 성당에 아름다운 성화를 남겼다. 1453년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꾼 뒤 이 아름다운 성당은 이슬람 사원이 됐다. 성화에 덧칠을 하고, 글씨와 희한한 문양만 남아 있다. 아라비아 문양을 기억하는가? 그게 바로 이슬람의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서양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성화와 조각 등 이미지로 표현했다면 이슬람에선 알라의 그림 대신 추상적인 문양으로 표현했다.

그럼 생각해보자. 카파도키아는 이미지의 도시인가? 기호의 도시인가? 너무 특이하게 생겨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 아마 포스트모던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공부 끝.

글&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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