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와 광고 촬영, 레스토랑 컨설팅 등에서 감각적인 요리를 선보여왔던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노다. 지금껏 쌓은 내공을 모두 쏟아 ‘노다 보울(Nodabowl)’이라는 일식 퓨전 덮밥 전문점을 오픈했다. 그의 첫 번째 레스토랑에서 함께한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

어느 날 ‘노다 보울’이 오픈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이 분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노다씨가 레스토랑을 오픈한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뉴는 덮밥. 일본에서 유학한 그가 일식 메뉴를 선택할 거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덮밥은 상상 밖이었다.

“일본 유학 시절, 어느 허름한 음식점에 들어가 덮밥을 주문했는데 그 맛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를 떠올리며 덮밥이라는 요리에 대해 더 공부를 했고, 이곳의 주 메뉴로 결정하게 됐죠.”

타지에서 맛본 음식은 참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머무르게 마련. 그 역시 자신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덮밥이라는 음식을 가슴에 소중히 간직해왔다. 대중에게 선보일 날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해왔고, 그러던 중 삼청동의 운치와 압구정동의 트렌디한 분위기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도 미식가들이 많이 모이는 가로수길에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열었다.

덮밥 자체가 일본 음식이기 때문에 현지 전통식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그만의 레시피를 곁들인 완전한 퓨전식을 선보인다. 처음엔 광범위한 덮밥 메뉴를 정해놓고 지인들과 함께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그들의 냉철한 비평을 적극 수렴하고 레시피를 조정하는 과정을 반복한 끝에 탄생했기 때문에 한국인 입맛에 잘 맞으며, 특히 여자들이 좋아할 만하다. 그래서인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입소문을 타고 찾아든 손님들로 테이블이 부족할 정도.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나 프랑스 요리를 배우고 싶어 하는데, 저는 일본에서 요리 공부한 걸 후회하지 않아요. 우리나라에는 아직 초밥이나 우동 등 몇 가지 메뉴만 들어와 있기 때문에 제가 보여줄 것이 많아 오히려 잘했다 싶어요.”

1 사케와 함께 깔끔하게 세팅된 노다 보울의 테이블. 2 회색의 시멘트벽과 내추럴한 직사각형 테이블, 모던한 조명이 노다 보울의 인테리어 포인트. 3 주방 앞에 미니 바와 미니 스탠드를 놓아두어 혼자 오는 손님을 배려했다. 4 김노다씨가 직접 담은 오미자와 산수유로 만든 대나무 통주. 5 오픈 수납장에 깔끔하게 정돈된 노다 보울의 테이블웨어.
그가 직접 언급했듯, 왜 유럽이 아닌 일본에서 요리를 공부하게 됐을까? 사실 그곳으로 떠난 목적은 ‘요리’가 아니었다. 대학 전공을 국제경영학으로 정하고 일본 유학을 결심했던 것. 그런데 그곳에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여유롭게 시작한 유학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아르바이트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의 소개로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고급 음식만을 선보이는 멤버십 레스토랑의 주방 일. 여기서 그는 일본 전통 요리인 ‘정진 요리’를 접하고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정초에 먹는 이 음식은 말로 설명하기조차 힘든 요리인데, 우리나라에도 특급 호텔 몇 군데서만 선보일 정도죠. 태어나서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한 요리는 처음 봤어요.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고, 이때 ‘요리를 해야겠다,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굳혔죠.”


돈부리&이자카야, 노다 보울
다양한 일식 퓨전 덮밥을 주 메뉴로 맥주와 사케에 어울리는 안주까지 선보이는 곳. 드물고 귀하다는 뜻의 우리말 ‘노다’에 덮밥 그릇을 뜻하는 영어 ‘보울(Bowl)’이 결합된 상호에는 덮밥 전문점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맛있고 귀한 음식을 담는 가능성의 공간이란 뜻도 담겨 있다.

일식의 바탕 위에 중식, 동남아식, 서양식 등이 접목된 다국적 퓨전 요리를 선보이는데, 특히 장어를 베이스로 한 타마리소스, 미소와 간장을 베이스로 한 챠슈소스, 청양고추와 칠리페퍼를 베이스로 한 핫칠리소스 등 셰프가 직접 개발한 수제 소스가 맛의 비결이다. 프리미엄 쌀을 사용해 밥맛 또한 일품이며 부재료인 허브도 농장에서 직송해 신선한 맛을 유지한다. 장어덮밥, 돼지고기덮밥, 가지덮밥이 이곳의 대표 메뉴. 장어덮밥은 국산 민물장어를 삶아 말린 뒤 타마리소스로 구워내 깊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며, 달콤하면서 짭짤한 감칠맛이 살아 있는 돼지고기덮밥은 양파와 파채를 곁들여 뒷맛이 깔끔하다.

가지덮밥은 이탈리아 채소 건강식인 카포나타를 덮밥에 접목시킨 메뉴로 특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저녁 무렵부터는 사케를 맛볼 수 있는 이자카야로 바뀌는데 달걀말이, 매운 해물볶음, 닭다리살볶음 등의 안주에서도 덮밥과 같은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사이드 메뉴로 구성된 얼큰 라면도 해장을 원하는 손님들에게 인기. 요리뿐 아니라 생강 맛의 탄산음료인 진저엘과 오미자 대나무주도 직접 만들어 판매, 시판 제품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은 맛을 선사한다.

DATA
메뉴 덮밥류 8천~1만2천원, 안주류 8천~2만원, 음료 2천~4천원, 대나무주 1만5천원, 맥주 5천~8천원, 사케 8천~7만원
위치 신사동 가로수길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자정
(주문은 오후 11시까지), 일요일 휴무
문의 02-515-9634, www.noda.co.kr


타마리소스로 구운 장어에 튀긴 꽈리고추와 생강을 곁들인 덮밥
일본의 장어 요리는 삶는 것과 굽는 것으로 관동, 관서로 구분되는데, 김노다씨는 관동에서 요리를 배워 삶은 장어 요리를 선보인다. 장어를 삶기 위해서는 7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지만 손님들에게 정직한 요리를 내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노력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타마리소스를 직접 만들어 삶은 장어를 다시 한번 굽는데 사람들은 종종 데리야키소스와 혼동한다고. 데리야키소스는 간장과 맛술, 물엿이 들어가지만, 타마리소스는 장어 육수와 간장, 정종, 맛술을 함께 졸여 더욱 깊은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요리는 하루에 20명만 먹을 수 있는 양으로 제한해 선보이기 때문에 발 빠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라 할 수 있다.

가지와 샐러리에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치즈가 어우러진 덮밥
이 메뉴에는 노다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요리 공부를 더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갔을 때 현지 친구를 한 명 사귀게 됐다. 그 친구는 한국에서 온 이방인을 집으로 초대했고, 함께 사는 할머니는 손수 이탈리아 가정식 요리를 대접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요리는 가지와 양파, 토마토소스 등으로 만드는 수프 종류의 카패타. 간단한 요리였지만 한국에 돌아와 직접 요리했더니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양한 잡지에 소개되면서 정확한 레시피가 완성됐고 모차렐라치즈를 넣는 그의 아이디어가 결합돼 드디어 완벽한 음식이 탄생됐다.

와사비 매시드포테이토를 곁들인 돼지고기구이
이 요리는 양식과 중식, 일식이 더해져야만 완성된다. 어느 한 분야라도 잘 모르면 이 음식은 속된 말로 ‘꽝’이다. 4년 전 음식 컨설팅을 했을 때 시도했지만 실패였다. 중식을 하던 셰프에게 전수를 했지만 그는 양식에 대한 정보가 다소 부족했던 터. 그래서 지금 이렇게 직접 조리하게 됐다. 지금의 돼지고기는 그때와 조금 다르다. 처음에는 느끼함을 제거하기 위해 겨자를 넣었는데 풋내가 많이 나서 고추냉이로 바꿨다. 덕분에 느끼하지 않고 깔끔한 맛으로 변했다. 사케 안주로 만들어진 메뉴지만 식사 대신 즐길 수 있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렇게 그는 거대하고도 치열한 일본 땅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남들처럼 접시 닦는 것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수순을 밟아 올라갔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자신의 노하우를 쉽게 공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어깨너머로 보고 배워야만 했다. 설거지를 하는 몸과 보는 것을 외우는 머리를 따로 움직이니 더욱 바빴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그만큼 눈물나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좀 모자란 듯 바보같이 웃고, 바보같이 행동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드디어 타인들의 마음에 쌓인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흘러 그의 위치가 한 단계 올라서기에 이르렀다.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달걀말이. 그의 선임은 요리 과정을 단 한 번 보여주고는 따라 해보라고 했다. 쉽지 않았다. 무거운 팬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불 조절을 해가며 정말 ‘미친 듯이’ 6개월 동안 달걀말이만 만들었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팔의 인대가 늘어나기 직전에 이를 정도로. 덕분에 지금은 아주 부드러운 달걀말이를 눈감고도 만들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달걀말이는 원래 아주 강한 불에서 만들어야 적당히 부풀어 오르고, 팬에 달라붙지 않는다는 것이 그가 일본에서 배운 노하우. 우리나라의 많은 가정에서는 약한 불에서 달걀말이를 만드는데, 이렇게 하면 자칫 딱딱해질 수 있고 풍미도 떨어진다고. 달걀 푼 것에 소금과 함께 4가지 재료를 첨가해서 만든 그만의 비장의 소스를 넣어서 만들면 훌륭한 달걀말이가 완성되는데, 이 소스는 ‘셰프의 비밀’이기에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이 예의일 테니 궁금하다면 직접 찾아가 맛을 보는 게 좋을 듯하다.

이렇게 요리 하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도 몇 개월이 훌쩍 지나갈 만큼 공을 들여 배웠기에 지금 그의 요리는 특별하다 단정 지어도 좋겠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한 곳만 보고 달려온 김노다씨. 지금 그는 모든 신경을 노다 보울에 쏟고 있다. 비록 조그만 가게이긴 하지만 앞으로 더욱 늘어날 그의 레스토랑을 위해 첫발을 내딛은지라 불안하면서도 흥분된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푸드&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이자 아내인 상영씨와 지금까지 함께 작업해왔는데, 레스토랑 오픈을 계기로 일에 있어서도 완전히 독립했다. 덕분에 걱정이 늘기도 했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더욱 개발할 수 있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단편적인 예로, 노다 보울의 인테리어를 아내가 맡아주어 그는 메뉴 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

이제는 부부가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며 일을 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한 노다 보울이 더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은 늘 함께한다. 그리고 ‘노다’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꿈을 조심스레 키워나가고 있다.

허니머스터드드레싱을 곁들인 부드러운 달걀말이
눈감고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달걀말이에 달인이 된 그.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부드럽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 위에 직접 만든 허니머스터트드레싱을 곁들이면 계란말이와 소스의 맛이 함께 어우러져 또 다른 특별함이 전해진다.

달걀말이, 집에서 도전해보세요!
1 먹음직스러운 달걀말이를 만들기 위해 5~8개의 달걀을 사용한다. 2 젓가락을 이용해 한 방향으로 저어 흰자와 노른자를 섞는다. 3 소금 외에 4가지 재료를 섞은 소스를 달걀에 섞는다. 4 강한 불에 팬을 달군 뒤 국자를 이용해 달걀을 팬에 얇게 펴준다. 손목의 힘과 젓가락을 이용해 말아주고 불이 닿지 않는 곳에 올려둔다. 5·6 ④의 달걀 아래에 달걀을 한 번 더 붓고 말아놓은 달걀을 이용해 더 두껍게 말아준다. 3번 반복한다. 7 완성된 달걀말이를 도마에 올려놓고 흐트러지지 않게 칼로 썬다. 8 머스터드소스를 얻은 다음 파슬리가루를 뿌리면 완성.

진행 / 정수현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

Posted by Redvir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