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김치’를 세계에 알릴 수 있어 행복해요”

1993년 슈퍼엘리트 모델로 데뷔해 모델과 방송인으로 종횡무진 활약했던 홍진경(31). 2003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떠났던 그녀는 2004년 김치사업을 시작, 지난해 1백2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사업가로 변신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4월부터 KBS-FM ‘가요광장’ DJ를 맡아 4년만에 방송에 컴백한 홍진경을 만나 ‘더김치’ 성공기, 방송을 떠난 이유, 결혼 생활 등에 대해 들어봤다.

“꼭두각시 같은 인생이 너무 무서웠어요”
지난 4월 7일, 인터뷰를 위해 도착한 청담동 홍진경의 자택. 한동안 방송이 뜸했던 홍진경이 반갑게 취재진을 맞았다. 천장이 일반 주택보다 2배가량 높아서 마치 외국의 고급 별장 같은 그녀의 집. “집이 고급스럽고 예쁘다”는 기자의 말에 집이 꼭대기층이어서 이런 구조가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2003년 결혼 후 돌연 연예계를 떠났던 그녀. 그동안 김치 사업가로 변신했다는 소식을 간혹 들을 수는 있었지만, 공식적인 연예계 활동이 없었던 터라 정말 오랜만에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결혼과 휴식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홍진경. 짧은 커트 머리 때문인지 쿨하면서도 어른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녀에게 그동안의 근황을 물었다.

“그동안 정말 평범하게 지냈어요. 살림도 하고요(웃음). 특히 사업을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죠. 즐겁게 하고 있어요.”

현재 생활에 무척 만족하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홍진경. 4년 전 연예계 생활을 청산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간 이유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연예계 활동에 많이 질렸고, 지쳐 있었어요. 물론 처음에는 모델 일이든 방송 일이든 재미가 있었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지고, 자아가 커지면서 제가 제 인생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프로듀서나 기획자들에 의해 제 모습이 만들어지고, 이미지가 왜곡되는 게 정말 싫었어요.”

누구나 진지하거나, 시니컬한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이 있는데, 방송에서는 밝고 코믹한 이미지만 부각돼서 ‘연예인 홍진경’이 만들어지는 게 무서웠다는 것.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본을 읽으면서 쳇바퀴 돌듯 남이 만들어준 인생을 살아가는 게 싫었고, 남이 만들어준 옷을 입고 꼭두각시처럼 워킹만 해야 하는 게 싫었다고 한다. 이런 것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남이 써준, 남이 만들어준, 남이 시키는 대로가 아닌, 내가 만들고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어요. 매니저에게 계약금을 물어주고 여의도를 떠나오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사업하는 재미에 푹~빠졌어요”
위기는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했던가. 연예계를 떠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녀는 기발한 사업 아이템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어머니의 ‘김치’였다.

집에 놀러 오던 홍진경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어머니의 음식솜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중에서 김치는 그야말로 인기 폭발이었다.

“제 동료들이 엄마가 만드신 음식을 무척 맛있다고 잘 먹었어요. 윤종신씨는 열무김치를 좋아했고, 최진실씨나 아들 환희도 우리집 총각무만 먹을 정도였거든요. 거기에 용기를 얻어서 정말 조그맣게, 아는 사람들에게 재료비만 받고 만들어주는 정도로 시작한 거예요.”

이렇게 주위 사람들에게만 만들어주던 홍진경 어머니의 김치는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결국에는 홈쇼핑을 통해 대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다.

때문에 홍진경은 “이 김치 사업은 엄마의 손맛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마케팅과 재료 수급, 홍보 활동에 주력했다. 특히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바로 패키지(포장) 컨셉트. 일반 시중에 나와 있는 전통적인 문양에서 탈피, 모던한 스타일로 젊고 세련된 김치 포장을 탄생시킨 것. 그리고 이런 세련된 김치 포장은 고객 사이에서 반응이 매우 좋았다.

하지만 김치의 포장만 예쁘다고 김치가 잘 팔렸을 리 만무. 바로 어머니가 직접 ‘집에서 만든’ 김치의 맛이 까다로운 고객들의 입맛을 만족시킨 것.

“저희 어머니는 요리사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살림만 해온 가정주부거든요. 어머니가 평소 집에서 하던 그대로 만들었어요.”

김치의 비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더니, 이제는 비밀도 아니라며 당당히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를 설명해준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김치에 설탕과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노가리 국물로 감칠맛을 낸 뒤, 국물에 양파즙, 찹쌀풀, 무즙 등을 갈아 넣어요. 김치가 익으면서 국물이 정말 시원하고 맛있어져요. 그리고 배추와 무 등 모든 재료는 100% 국내산만 사용한다는 것도 자랑거리죠.”

또 그녀는“아주 사소한 재료가 하나라도 어긋나면 맛이 달라지고, 재료의 배합과 비율이 무척 중요하다”며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많이 거쳤지만, 그만큼 김치의 맛은 더욱 업그레이드됐다”고 밝혔다.

100% 국내산을 외치며 ‘고급 김치’를 표방하는 ‘더 김치.’ 때문에 시중에서 파는 일반 김치보다 홍진경의 김치가 가격이 조금 비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홍진경은 “질 낮은 재료를 써서 싸게 판매하는 것은 다같이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비싸더라도 좋은 재료로 잘 만드는 게 소비자와 기업이 같이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고급 김치’를 표상한 홍진경의 사업 계획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자신의 입, 혹은 가족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가격이 비쌌음에도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이다.

못 보던 사이에 김치 전문가가 되어버린 그녀. 김치에 관한 이야기라면, 24시간도 모자랄 정도로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김치 종주국의 자존심 지킬 거예요”
그녀의 김치를 사먹는 사람들은 20대에서 5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처음에 청담동과 압구정동 등에서 많이 팔리던 ‘홍진경표 김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요가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초창기 홈페이지를 통해 하루에 10~15개가 팔리던 김치는 홈쇼핑을 통해 방송되면서 결국 지난해 1백20억원이라는 엄청난 매출을 기록하게 됐다.
하지만 홍진경은 1백20억원이라는 금액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판매 개수라고 강조했다.

“1백20억원이라는 가치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얼마나 많이 팔았냐는 거죠. 50만원짜리 제품으로 연간 매출 1백20억원을 올렸을 때와 3만9천9백원짜리 김치로 연간 1백20억원의 매출을 올렸을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많은 개수가 팔렸는지 그 차이를 느끼실 거예요.”

겉보기에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던 김치 사업에 장애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객들의 불평불만이 도를 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

“진짜 마음고생 많이 했어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냥 연예인 할걸’ 하고 생각한 적도 많아요.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홍진경 오라고 해~!’였어요. 그래서 막상 가면 정말 올 줄 몰랐다며, 장난이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배추로 맞은 적도 있고, 김치봉투를 집어던지는 사람도 있어요. 김치 맛에는 이상이 없는데, 그런 식으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어요.”

홍진경은 지금 판매되고 있는 ‘더 김치’와 ‘더 만두’ 이외에 오는 6월, 새로운 아이템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은 비밀이란다.

사업가로서 포부는 없냐고 물었더니 “매출을 늘리고 싶은 그런 포부는 없다”고 말한다. 돈을 벌고자 하면, 그만큼 이윤을 남기기 위해 저렴한 재료를 쓰게 된다는 것.

“소비자들의 입맛이 얼마나 정확한데요.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 저렴한 재료를 쓰기 시작하면, 김치 맛이 변할 테고 우린 금방 외면당할 거예요. 좋은 재료로 한결같은 마음과 정성으로 김치를 만들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다 보면 일본이나 외국에서도 인정받는 김치가 될 것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그녀는 또 “돈을 버는 차원을 떠나서 김치 종주국으로서,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엄마가 소박한 뚝심으로 만든 김치. 그 김치를 지키고 세계적으로 알려야 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이 있다”며 “그렇게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엄마와 제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정말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라디오에서 새로운 홍진경을 보여드릴게요”
최근 그녀는 오랜만에 방송 활동에 복귀했다. 연예계 생활에 염증을 느껴 떠났던 그녀가 다시 마이크를 잡게 된 이유는 뭘까.

“아마 TV였으면 아직 자신이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라디오라는 매체를 워낙 좋아하거든요. 제 숨소리와 말 하나하나가 직접적으로 전달되고,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제가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을 자신도 생겼고요.”

특히 같은 시간에 타 방송에는 MBC 정선희, KBS2 이영자, SBS 최화정 등 평소 그녀와 친분이 남다른 언니들이 포진하고 있다. 홍진경의 라디오 DJ 복귀는 그 누구보다 이들의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사실 DJ 역시 좀 망설였는데, 이영자씨는 거의 매일 전화로 ‘무조건 해야 한다’고 강력추천했고, 정선희씨도 ‘왜 안 하냐. 안 하면 교만이다’라며 적극적으로 권했어요. 최화정씨 역시 문자로 많이 격려해주셨고요. 무척 감사했고, 언니들 덕분에 제가 DJ를 하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TV 보는 것을 싫어해 집에서는 하루 종일 라디오만 듣는다는 그녀.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라디오를 통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홍진경의 모습을 보여주겠단다.

“뒤돌아서면 남는 게 없는 프로그램 많잖아요. 저는 언론이 가진 파워를 백분 활용해서 뭔가 남는 게 있는 방송을 하고 싶어요. 누구든 도움이 필요하면 라디오가 가진 힘과 청취자의 힘을 통해 도와주고 싶어요.”

만약 라디오가 반응이 좋으면 TV에도 얼굴을 내비칠 의향이 있냐고 물었더니 “여전히 TV 방송은 나를 씁쓸하게 만든다”고 답한다.

“라디오 홍보 때문에 한 TV 방송에 나갔어요. 오랜만의 방송이라 재미있게 즐기고 왔지만, 여전히 방송은 재미만을 원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참 씁쓸했어요. 만약 제가 방송을 한다면, 재미가 없더라도 뭔가 특화된 방송을 하고 싶어요.”

“연예인들, 알고 보면 시니컬하고 예민해”
1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똑 부러진 말투로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홍진경. 과연 기자가 알고 있던 천방지축 그 홍진경이 맞나 의아할 정도로 성숙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홍진경은 “지금의 모습이 원래 성격”이라면서 “그동안 방송에서 보여진 모습이 많이 왜곡된 모습”이라고 말한다.

“저는 그다지 많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대중이 친근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연예인 대부분이 실제로 만나면 시니컬하고 진지하고 예민할 때가 많아요. 그게 저희들이에요. 그래서 만나면 당황하고 놀라는 사람들 많아요. 많은 연예인이 그런 부담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고, 그걸 박차고 나온 게 저예요. 수많은 연예인의 이미지가 정말 많이 왜곡되고 있는 거죠.”

6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한 현재 남편과는 벌써 만난 지가 9년째다. 이제는 그 누구보다 편한 ‘소울메이트.’ 2세 계획 역시 ‘생기면 낳고, 안 생기면 할 수 없다’며 남편과 본인 모두 편안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모델로 시작해서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동하다가 결혼 이후, 사업가로 변신해 한층 깊어지고 성숙해진 홍진경. 그녀는 “늘 과거보다 현재가 좋다”고 말하는 현실주의자다.

“배추밭과 새우젓 시장, 그리고 방송국을 넘나드는 이런 삶을 아무나 살 수는 없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DJ에 더 적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같은 또래의 30대보다는 더 많은 세상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과거보다 늘 ‘현재’가 중요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의 제 모습이 너무 좋아요.”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주석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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