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은 서울의 오랜 이야기가 잠든 곳이다. 나란히 줄을 맞춘 한옥 담장은 어디 하나 불쑥 발을 내민 곳이 없고 저마다 고개를 내민 처마들은 제 성에 부딪히는 법이 없다. 서울, 600년 고도의 향수가 숨 쉬는 그곳. 가회동 길 따라 세월을 거닐다.

1 한옥을 옷가게로 개조한 가회갤러리. 2 서예가이자 한국 화가인 구지회 화백의 한옥 일여헌.


가난한 선비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남산 기슭이 남촌이라면 벼슬 하던 양반들이 터를 이룬 곳이 북촌이었다. 예로부터 볕이 잘 들고 배수가 잘 될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도성의 중심에 놓여 있어 팔도 각지에서 올라온 양반들과 육조관아에 근무하던 관리들, 이들에 딸린 하인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 북촌을 이루고 있는 여러 동네 중 가회동은 뛰어난 한옥들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동네다. 1930년대를 전후하여 조선시대 고관대작들이 살던 대저택들이 중·소규모 한옥들로 자리바꿈하게 됐지만 풍양 조씨 집터, 백인제가, 일가정 터, 완순궁 터 등 솟을대문 뒤로 대감마님의 헛기침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대저택들은 지금까지 그 빛을 잃지 않았다.

3 비 그친 오후, 돌담길 너머로 드리운 초록 잎이 싱그럽다. 4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북촌에는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티 게스트하우스. 5 북촌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최소아과 의원. 6 옛날 물건들을 전시해놓은 유&미 갤러리

‘기쁘고 즐거운 모임’이라는 뜻의 가회(嘉會)라는 이름처럼 가회동엔 소박한 즐거움이 가득하다. 마주 보면 손 닿을 듯 가까운 이웃집, 작은 마당에 넘치지 않게 자라는 푸성귀, 담장 너머 골목길까지 열매를 떨어뜨리는 감나무, 소박함 가운데 풋풋한 정취가 살아 있는 정겨움이 이곳을 처음 찾은 손님들 발걸음 하나하나에 묻어난다. 특히 가회동 31번지와 11번지는 작고 아담한 한옥들이 서로 이야기하듯 마주 하고 있어 조용히 산책하기에 제격이다. 처마 사이를 걷고 있노라면 그다지 바쁠 것이 없다.

7 어느 카페에 적혀 있는 ‘커피 한잔’의 가사. ‘펄 시스터즈’의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8 가회동 31번지는 한옥 밀집 지역이다. 한옥들 사이로 조용히 산책하기 좋은 길이 많다. 9 소설화실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가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듯하다.
삼청동과 이웃한 가회동은 요즘 새로운 것을 찾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통 한옥에 현대적인 감각을 접목시킨 고급 갤러리와 카페, 음식점도 늘어가는 추세다. 가장 오래된 소재 중 하나인 한옥에서 새로운 관점을 포착하는 시선이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멈춰 있는 시간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변화다. 오랜 시간 삭아서 배인 세월만큼 쉽게 깨어지고 변할 가회동이 아니기에 오늘도 더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가회동을 거닌다.

가회동 가는 길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현대사옥 옆길로 올라가다 보면 왼편에 북촌문화센터가 보인다. 북촌은 가회동을 비롯해 계동과 재동, 원서동 등 여러 동네가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지도를 보고 올라가는 것이 좋다. 재동초등학교를 지나 가회동 길을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는 가회동 11번지, 동쪽으로는 정독도서관 위쪽으로 31번지가 있다. 골목 구석구석 숨어 있는 한옥체험관과 박물관, 갤러리도 놓치지 말자.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인성욱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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