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끝에 정이 난다’는 말은 딱 이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요즘은 명절이라고 해도 음식이며 뭐든 워낙 흔전만전한 세상. 주고도, 받고 나서도 처치 곤란한 명절 음식 선물이 괴롭지 않냐며 효재 선생이 진짜 추석 음식 선물을 펼쳐보였다.

오가며 수차례 다닌 동네건만 삼청동길 초입에 있는 이 작고 예쁜 한옥집 ‘효재’는 한 번도 눈에 담은 적이 없었다. 서울 한복판, 이미 트렌드라는 유행을 좇은 지 오래된 삼청동 거리라지만 일단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당에는 자연이 가득하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시원한 뽕잎차부터 내오며 손님을 맞는 곳이다. 대문을 들어선 순간 삼청동의 바깥세상과 시공간을 달리하는 세계인 듯하다. 쇼룸도 없는 이 아담한 한옥집 효재에서 혼수 한복을 짓는 한복디자이너 효재 선생은 용인에 있는 시골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낮에는 한복을 짓고 퇴근해서는 산골 외딴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큰살림을 한다. 먹는 거, 집 꾸미는 거는 계집아이였을 때부터 유난을 떨었던 게 지금도 무엇 하나 바지런을 떨지 않으면 안 되는 일하는 주부로 만들었다. ‘효재의 손끝이 닿으면 누더기 헝겊도 선녀의 날개옷이 되고 초근목피도 진수성찬이 된다’고 말한 소설가 이외수 선생과 그녀가 예쁘다고 하는 건 다 예뻐 보인다는 탤런트 김수미씨의 말처럼 효재 선생의 손길은 요란하지 않은 담백한 멋을 부릴 줄 안다.

한복집이건 멀리 시골집까지 찾아온 손님이건 집을 나설 때는 부엌 찬장이라도 뒤져 손에 뭐라도 들려가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효재 선생의 바지런함이 명절을 맞아 추석 음식 선물에 가 닿았다. 커다란 스티로폴 박스에 몇 대씩 들어 있는 추석 갈비 선물이 하나 반갑지 않다는 효재 선생이 자신을 쏙 빼닮은 정성 가득한 소박한 추석 음식 선물 보자기를 하나씩 풀어놓았다.

효재의 추석 음식 선물 보따리 풀어보니

송편보다 더 감동하는 조선솔잎

“사람들이 송편보다 솔잎에 더 감동해요. 이맘때 되면 집마당에 있는 소나무 보면서 매일 어떤 가지의 솔잎을 딸까 고민하죠.”

명절 기분 내려면 송편은 떡집에서 살지언정 솔잎을 함께 꼭 선물한다. 몇 해 전에 조선소나무 어린 묘목을 마당에 심었는데 이제는 꽤 자라 매해 가지를 잘라줄 정도다. 송편을 찔 때는 물론 꿀물 탈 때나 밥할 때도 넣는데 솔향이 그윽해 어떤 것에도 잘 어울린다. 이 작은 제주도 도시락에 담아 주면 별것 아닌 것도 꽤나 감동적인 선물이 된다.

채썬 미역귀와 그릇째 주는 갈비찜

미역귀는 채썰어서 팬에 담아 올리브유로 볶아내요. 그 다음에 깨를 잔뜩 넣어 버무려주면 건강에도 좋고 입맛 돋우는 데도 일품이죠.

강원도 한우 갈비로 뼈째 그대로 줘야 좋은 고기인 줄 알잖아요(웃음). 대신 뼈 위에 장식처럼 고추를 얹어서 줘요. 느끼한 맛도 없애주니 좋고요. 갈비찜은 군내 없애주는 와인이랑 간장, 물로만 재운 뒤 만들었어요. 선물할 때는 국물은 따로 용기에 담아 함께 줘요. 보통 집에서 먹을 때는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잖아요. 먹기 편하라고 이렇게 그릇째 주는 게 내 음식 선물 특징이에요. 그렇게 준 음식 그릇이며 용기는 또 되돌려줄 때 다른 거 채워서 돌아오니 친구들끼리 서로 맛있고 정성 담은 음식을 선물하는 데 경쟁하게 된다니깐요.

말린 청어새끼와 청국장 검은콩가루

말린 청어새끼는 한 번 씹어 먹어보면 고소한 맛에 손이 계속 가요. 칼슘이 풍부해 요즘 웰빙 웰빙 하니 이만한 건강 음식 선물이 없죠. 또 청국장가루랑 검은콩가루를 섞어 함에 넣어 주기도 해요. 밥 간단히 먹고 출출할 때 미숫가루처럼 물에 타 먹으면 속도 든든하고 고소해서 자주 먹어요.

효재 선생이 준 선물 받은 선물


우리 집에 오는 사람 누구나, 콩뻥튀기
메주콩이나 서리태를 한 말씩 잔뜩 사다 튀긴 콩뻥튀기는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기도 하고 가까운 이들에게 비닐봉지에 담아 한 봉지씩 들려 보내는 음식 선물이기도 하다.

음악 선생님 부인에게 보낸 서천 김
남편 임동창 선생이 지금 충남 서천의 동광중학교 음악 선생으로 지내는데 그곳 문화원장님이 선물로 김을 보내주셨다. 유명한 서천 김은 정말 먹어보니 맛도 있고 김밥 쌀 때 옆구리도 안 터져 좋았다.

김수미 선생이 보낸 밥도둑, 나라스케
일본식 오이절임인 나라스케는 선생님 집에서 묵은지와 함께 1년 내내 떨어지지 않는 음식. 선생님 특징은 검은깨를 뿌리는 건데 이게 여름 내내 내 입맛 살려주는 밥도둑이다.

김수미 선생이 보낸 다시마
나는 다시마를 가리지 않고 이 음식 저 음식에 다 넣는다. 두꺼우면 큼직하게 썰어 국거리에 넣고 얇으면 가위로 길게 썰어 그냥 씹어 먹기도 하고 밥할 때 넣어 같이 짓기도 한다. 김수미 선생이 워낙 누구 퍼주는 걸 좋아해서 음식 담는 그릇이며 용기가 항상 모자란다. 그래서 얼마 전에도 갖고 있는 용기를 한가득 박스에 넣어 택배로 보냈더니 그렇게 좋아하시더라.

선물 격 높이는 보자기 예찬

나는 선물 보낼 때 종이로 포장 안 해요. 북북 뜯으면 왠지 복도 달아나는 것 같고. 물자가 귀하던 시절에 자라서 그런지 반질반질 포장지 같은 거 쓰기 싫더라고. 대신 이렇게 예쁜 보자기로 감싸서 매듭지어 보내면 얼마나 고급스럽고 멋도 나는지. 보자기로 싸주면 격이 달라져요. 두꺼운 이불 호청 뜯어내면 그게 보자기고 그 보자기를 또 치마 앞에 두르면 앞치마가 되지요.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보자기를 얼마나 많이 살림에 활용했는지 생각해보면 참 정감 가는 우리 물건이잖아요. 이 보자기로 음식 싸 보내면 예쁘다고 푸르기 아깝다고 하는 분들도 계세요.

하나,

네모난 상자에 담긴 음식은 색이 화사한 양면 보자기로 마주보는 보자기 끄트머리를 한 번씩 묶어준 뒤 하나는 속으로 넣어 안 보이게 하고 나머지 하나는 매듭을 지어 마무리한다.

둘,

놋함에 넣어주는 갈비찜은 「왕조실록」이 쓰여진 보자기에 싼다. 마주보는 보자기 끄트머리를 두 번씩 묶어 한데 모아 매듭을 짓는다.

셋,

김이나 다시마 등 건조식품은 선물하기 좋은 음식. 선물할 때는 먼저 깨끗한 한지로 네 귀퉁이를 싼 다음 비단 보자기로 싸준다. 마름모꼴로 보자기를 놓고 그 위에 놓아 감싼다. 위로 모은 매듭을 매듭송곳으로 수국 모양을 만들어 장식한다.

진행 / 이지혜 기자 사진 / 이주석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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