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카페에서는 물을 팔고, 물 소믈리에는 물을 골라준다. 메뉴판에는 듣도 보도 못한 물 종류만 20여 가지다. 한 잔에 1만2천원 하는 물도 있다. 지금 물은 패션과 실용, 그 중간쯤에서 소비된다.

사 먹는 물, 이제 어색하지 않아
주말은 가족끼리 물 뜨러 가는 날이었다. 작은 물통은 엄마가, 큰 물통 두 개는 아빠가 들고 뒷산에 있는 약수터에 갔다. 한 통을 다 채우는 데 5분 이상이 걸렸다. 바위틈에서 새어 나오는 물은 아무렇게나 떠 마셔도 달았다. 그러다 물을 사 먹기 시작했고, 주방에는 정수기가 자리를 잡았다. 탄산수, 음이온수는 어떤 맛인지 몰라도 몸에 좋다기에 그냥 마셨다. 단 것도, 톡 쏘는 맛도 싫을 때는 5백 밀리리터짜리 생수에 손이 간다.

“거의 2년 전부터 미디어에서 물의 중요성을 말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참살이(웰빙) 붐을 타고 프리미엄 생수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요. 지금 홍대 클럽에서는 페리에 탄산수가 입장권이에요.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고, 젊은 층이 그런 걸 원하니까 클럽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하는 거죠.”

생수 시장은 날로 성장해왔다. 작년 매출은 3천9백억원에 달한다. 1년에 10% 정도의 성장세다. 물의 종류도 ‘먹는 샘물’에 머물지 않는다. 탄산수, 산소수, 해양심층수 등 기능성 생수가 속속 출시됐다. 세련된 용기 디자인과 희소성은 프리미엄 생수를 일종의 패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박람회에서 프리미엄 생수를 팔면,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묻는 분들이 많았는데, 이젠 그런 질문이 쏙 들어갔어요. 물의 용도가 다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왜 비싼지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을 하고 있다는 뜻이죠.”

유진환씨(35)는 인터넷 사이트 워터카페(www.watercafe.co.kr)의 대표다. 지난 2000년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모으기 시작한 물에 대한 정보를 체계화하고 2004년부터는 미네랄 워터, 탄산수를 비롯해 전 세계의 다양한 프리미엄급 생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충남 서산에 살다가 여섯 살에 서울에 왔죠. 피부병도 앓고 설사도 심했고. 그때는 그게 ‘물갈이’라는 걸 몰랐어요. 시골에서 먹듯이 수도관에 입 대고 마시고 그랬으니까요(웃음).”

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지난 2000년부터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래가 끼고, 기침도 심했다. 피우던 담배를 끊고 좋은 물을 찾아 마시기 시작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물을 조금씩 모으고, 외국에서는 어떤 물을 마시는지 찾아다녔다. ‘물에 관심이 있는 한국 청년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으니 샘플을 보내달라’는 메일을 해외업체에 보냈다. 서툰 영어였지만 그 횟수가 늘어나고, 내용이 체계적이 되니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한 미국 회사에서 종류별로 세 박스를 보내왔어요. 일본에서도 한 박스 보내오고. 중국 여행을 가면 직접 하나씩 들고 오곤 했죠. 그 당시 인터넷에 ‘물’이라고 치면 아무것도 안 나왔어요. 대기업에서 팔고 있는 석수, 아이시스, 삼다수 정도였죠.”

한국에 있는 물을 수집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대형 마트에 없는 물은 직접 지방으로 내려가서 마셔봤다. 친구들도 돕겠다고 나섰다. 지방에 내려갔다가 유명한 물이 있으면 ‘여긴 충북인데 초정광천수가 인기라더라’며 물을 보내왔다.

“그때는 물에 대한 정보가 다 맞는 줄 알고 커뮤니티에 그대로 올렸어요. 그러다 환경부에서 연락을 받았죠. ‘왜 물을 약처럼 소개하느냐’고 해서 그제야 관련 법규를 알게 됐고 그때부터는 체험, 디자인, 컨셉트 쪽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석회질 함유량이 높아 수돗물로 머리를 감으면 뻣뻣해지는 유럽에서 생수를 사 먹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산 좋고 물 좋은 한국에서는 굳이 좋은 물을 찾아 마시지 않아도 좋았다.

“기본적으로 판매량이 늘고 있어요. ‘돈이 되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인지 물을 마케팅의 도구로 사용하는 분들도 많죠.”

성분에 따라 달라지는 물 맛
‘물카페’에서는 ‘미네랄이 적절한 양으로 녹아 있으며 인체에 유해한 오염 물질이 없는 물’을 좋은 물이라고 소개한다. “이 물을 일주일만 마시면 변비가 사라지고 한 달을 마시면 체중 감량을 보장한다”는 식의 광고는 지양한다. 중요한 건 습관이다. 하루 2리터의 물을 자주 마시고, 아침에 마시는 물 한 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의 맛과 품질을 비교 판단하는 기준은 물의 맛(pH), 물의 느낌(경도), 미네랄 함유량, 탄산 함유량, 물의 품질(청결도)이다. 온도와 미네랄은 물의 맛을 결정하고, 경도와 탄산은 물의 느낌을 좌우한다.

물의 맛(pH)
pH는 물에 녹아 있는 수소 이온의 농도와 관련이 있는 수치다. 화학적으로 순수한 물 H2O를 기준으로 그보다 pH 수치가 작으면 산성, 크면 염기성이다. 일반적으로 산은 시큼한 맛이 난다. 개미의 항문에서 분비되는 개미산, 식초, 레몬즙은 대표적인 산성이다. 염기성은 쓴맛이다. 비눗물, 양잿물, 소다수 등이 대표적이다. 순수한 물은 중성이다. 섭씨 25도에서 pH 수치는 7이다. 온도가 높아지면 pH 수치가 작아진다. 같은 물이라도, 온도에 따라 pH 수치가 달라질 수 있다. 중성인 7을 기준으로 수치가 낮으면 산성, 높아지면 염기성 즉 알칼리성이 된다.


물의 느낌(경도)
물은 ‘경도’에 따라 연수, 중수, 경수로 나뉜다. 연수는 ‘단물’이라고도 하며 칼슘, 마그네슘 등의 미네랄이 적은 물이다. 미네랄은 자연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광물이다. 증류수, 빗물, 수돗물이 연수에 해당되며 비누 거품이 잘 일어나는 특성이 있다. 경수는 ‘센물’이라고도 한다.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게 녹아 있는 지하수, 우물물, 강물 등 생태계 대다수의 물이 경수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물에 무기물이 많이 녹아 있을수록 알칼리/경수가 되기 쉽다.

무기물 함류량(TDS)
TDS(Total Dissolved Solid)는 물 속에 녹아 있는 미네랄, 유기물, 무기물 등의 물질이 얼마나 녹아 있는가를 재는 수질 측정의 단위다. 먹는 물에서 가장 많은 무기물질은 칼슘, 철, 마그네슘 등으로 이 물질이 적당히 함유돼 있는 물이 맛이 좋다. 대략 40~200ppm 정도면 적당하다.

탄산함유량
병에 담긴 탄산수를 생각하면 쉽다. 기름진 음식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 전에 서빙 되는 물은 탄산 함유량이 높다. 탄산수소의 함유량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뉘며, 물맛이 결정된다.

물의 품질(청결함)
자연적인 물에는 리터당 질산염이 1밀리그램 이하로 포함돼 있다. 질산염이 높다는 것은 오염 물질이 많이 섞여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질산염 함유량은 물의 종합적인 품질을 측정하는 데 좋은 기초 자료가 된다. 질산염은 무색, 무취, 무미이기 때문에 측정기를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다.

대표 주자들의 성분표를 공개합니다
위의 다섯 가지 기준에 의거한 성분표를 공개한다. 지금 성분표를 공개하려는 프리미엄 생수의 대표 주자는 네 종류다.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에비앙과 볼빅을 비롯해 최근 주가 상승 중인 휘슬러, 탄산수의 대표주자 페리에를 소개한다. 칼슘, 나트륨, 칼륨 등 성분들의 자세한 함유량은 물 병에 기재돼 있다.

에비앙(Evian)
에비앙은 빙하수다. 취수원은 프랑스 알프스.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 트렌디하고 패셔너블한 이미지다.
물의 탄산 느낌 Still(0)
물의 맛(pH) 일반적(7.2)
물의 느낌(경도) 매우 세다(291)
물의 품질 우수하다(3.8)
무기질 함유 보통(357)

볼빅(Volvic)
프랑스 오베른 지역의 휴화산 청정 계곡이 취수원이다. 자극이 없는 중성이라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물의 탄산 느낌 Bold(71)
물의 맛(pH) 약간 달다(7.45)
물의 느낌(경도) 약간 부드럽다(48)
물의 품질 우수하다(1.4)
무기질 함유 보통(109)

휘슬러(Whistler)
캐나다 정부에서 자연보호구역으로 관리하고 있는 청정 지역의 빙하수다. 미네랄 성분의 용해도가 높아 흡수가 빠르다. 최근 주가 상승 중.
물의 탄산 느낌 Still(0)
물의 맛(pH) 일반적(7.2)
물의 느낌(경도) 약간 부드럽다(47)
물의 품질 매우 좋다(0.9)
무기질 함유 적다(120)

페리에(Perrier)
페리에는 프랑스 남부 지방인 베르제스(Vergeze)에서 생산되는 천연 탄산수로 세계 탄산수 시장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설탕을 비롯한 인위적인 첨가물을 완전히 배제했다.
물의 탄산 느낌 Bold(390)
물의 맛(pH) 신맛(5.5)
물의 느낌(경도) 매우 세다(380)
물의 품질 좋다(4.3)
무기질 함유 보통(475)

다양한 물, 맘 편히 즐기면 충분
물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프리미엄 생수'로 분류되는 해외의 물이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이미지나 효과에 거품이 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지'를 마시기 위해 굳이 비싼 물을 고르는 건 소모적이다. 실제로 산소 함유량이 높은 휘슬러는 연예인 축구단에서 선호하고 은행의 VIP룸이나 해외 바이어의 접대에는 에비앙 같은 물이 쓰이기도 한다.

“물은 어차피 드시는 분들의 용도와 취향이 다르고, VIP를 위한 물, 운동을 위해 먹는 물 등 다양해요. 그 물들이 좋고 나쁘고는 소비자의 판단이죠. 어떤 물은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기도 하고. 미네랄 함유량에서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건강에 큰 영향이 있지는 않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깨끗한 물을 습관적으로 많이 마시는 겁니다.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는 게 아니라, 물을 많이 마시면 몸에 좋다는 인식을 가지고 습관적으로 마시는 거죠. 용도나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시되, 꾸준히 마시는 게 건강에 좋아요.”

앞서 제시한 다섯 가지 기준과 네 종의 대표 주자들의 수치는 앞으로 다른 물을 마실 때 참고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를 갖는다. 다 똑같아 보이는 물이라도 성분에 따라 부드러운 정도가 달라지고 탄산 함유량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며 마시는 재미는, ‘물 마시는 습관’을 들이는 첫 번째 관문이 될 수도 있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 워터카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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