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쇠고기, 대운하 정책보다 더 무섭다는 건강보험 민영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 ‘식코’를 본 사람들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다. 올 초 정부는 실제로 당연지정제를 완화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가 국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백지화하기도 했다. 건강보험 민영화가 되면 영화처럼 무시무시한 사태가 벌어지는 걸까? 당연지정제 완화가 백지화됐다면 건강보험 민영화가 없던 일이 되는 건가? 궁금한 사항을 시민 단체와 해당 부처의 목소리로 들어보았다.

어느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미국 유학생의 글이다.

영화 ‘식코’의 한 장면.
“지금 뉴욕에서 살고 있는데요, 아직 사회보장번호는 없고, 민간건강보험에 들었습니다. 반 년 전 심한 몸살감기를 앓아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주사 맞고, 약 이틀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병원비가 15만원이 나왔더군요. 제가 소지한 보험은 안 받아줬습니다. 제 친구는 엑스레이만 찍었는데 병원비를 백만원도 넘게 냈더라고요. (중략) 한국이 만약 건강보험 민영화를 통과시킨다면, 전 이곳에서 시민권 따서 힐러리 뽑아서 건강보험 국영화하려는 정책 편들어 미국에서 살렵니다.”

미국 의료 체계를 비판한 영화 ‘식코’를 보지 않아도 우리는 주변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맹장 수술비 1천만원이 없어 도망 나왔다는 이야기, 안경 가격은 8만원인데 시력 검사비는 15만원이라는 이야기….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곳, 바로 미국이다. 그런데 이제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입장이 못 된다. 건강보험 민영화가 된다면, 바로 우리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 민영화’란 무엇인가?
흔히 ‘국민건강보험 민영화’ 혹은 ‘의료보험 민영화’라 부르지만 정확히 말한다면 ‘보건의료서비스의 산업화’라고 하는 편이 맞다. 공보험은 사라지고 사보험만 남는다는 말이 아니다. 공보험이 축소된다는 뜻이다. 즉 의료서비스를 산업으로 받아들이는 것. 의료서비스 산업화는 크게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 혹은 폐지’‘민간의료보험 활성화’‘영리 법인 병원 도입’세 가지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연지정제’란 무엇인가?
당연지정제란 모든 의료기관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건강보험 혜택을 거절할 수 없는 제도다. 바로 앞서 거론되었던 유학생이 병원에서 보험 혜택을 볼 수 없었던 것은 병원이 보험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당연지정제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얼마 전 정부는 당연지정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가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없었던 일로 했다. 하마터면 우리는 응급 상황에서도 보험 적용이 되는 병원을 찾아 2, 3시간을 길에서 해매야 할 뻔했다.

‘당연지정제 완화’가 무효가 됐다니 이젠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기획재정부는 민간보험 활성화와 영리의료법인 도입 등에 대해 검토하고 세부안을 마련해 올해 안에 관련 법 개정까지 마치겠다고 보고했다. 법제처 또한 영리의료법인 허용의 전단계로 의료채권 발행에 관한 법률을 이달 정기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정책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정부는 민영의료보험 강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정부는 왜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나?
정부는 의료서비스 분야가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제부처가 이를 더 서두르고 있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의견1 시민연대 “정부가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것”
보건의료서비스의 산업화가 되면 당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이고, 또 심장병 등 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다. 국민주권수호 연합회의 모임인 의료보험 민영화 저지 연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문광덕씨(33). 그에게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들이 있다. 지금까지 들어간 아들의 병원비만 2천만원. 만약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더라면 1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됐을 거라 한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울분을 참지 못했다.

“‘당연지정제 완화’ 백지화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소화기일 뿐입니다. 정부가 의료 산업화 정책 자체를 포기해야 합니다.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어요. 정부가 민영보험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일급 정보인 개인 질병 정보를 민간보험사에 넘겨주겠다고 합니다. 이 정보에는 개인의 사생활과 재산, 질병 등 개인에 대한 모든 정보가 다 포함되어 있어요. 이 정보가 유출되는 순간 우리는 이걸 가진 사람의 노예가 되는 거죠.”
그는 ‘영리 법인 병원 도입’에 대해 “병원과 보험사의 이익을 채워주려는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병원이 영리 법인인 곳은 미국과 남미의 일부 국가밖에 없어요. 의료 서비스가 산업화된다면 환자가 아닌 보험사나 병원이 주체가 되기 때문에 그들의 주관적인 생각에 의해 판단되죠. 이미 건강보험 예산이 30% 이상 삭감 됐어요. 나머지를 민영보험으로 돌리려는 생각인데, 심장병이 있거나 병력이 있는 사람들은 가입 자체가 안 돼요. 이건 하나의 계략에 불과해요.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의료서비스를 국유화하려는 시점에서 정부는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겁니다.”

의견2 보건복지가족부 “미국을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의 여론과 전문가들의 비판에 대해 해당 부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보건복지부 김국일 서기관은 단호하게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민간보험은 공보험에 보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공보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공보험이 민간보험화되면서 공보험과 민간보험이 경쟁을 하게 되는 거죠. 한국의 공보험은 세계에서 굉장히 잘된 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의료 접근성이 보장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죠. 다만 보험료가 낮아 공보험에서 담당하는 급여율이 높지 않습니다. 앞으로 현행의 기본 틀을 유지하되 부족한 점을 점차 보안할 예정입니다.”
그는 정책이 오히려 민간보험을 규제하고 보험 소비자들을 보호할 거라고 반박한다.

“민간보험 중 실손 상품은 치료비를 전액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부담하는 비용이 없다면 당연히 의료 이용량이 늘어나고, 점차적으로 공보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 결과 보험료가 올라가는 거죠. 우리는 통제 없는 민간보험 시장을 얼마나 규제할 것인가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보험에 들기에 앞서 상품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소비자 중심으로 제도도 개선할 거고요.”

무엇보다 그는 미국을 따라가지 않을 거라 강조한다.
“미국형 의료 체계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따라가지도 않을 겁니다. 우리는 나름의 훌륭한 건강보험제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거죠. 게다가 미국도 변해가고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전 국민 건강보험체계를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았습니까? 양극화의 우려도 있고, 국민의 의료 접근성은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산 넘어 산이다. 오늘도 광우병 쇠고기 저지 촛불 집회가 열리는 마당에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직 국민건강보험은 어떤 결론에 다다를지 모른다. 수많은 예측만 있을 뿐이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이다.

글 / 두경아 기자

Posted by Redvirus
,